novareads.musicRock

Bruce Springsteen

브루스 스프링스틴 (1949–)

뉴저지 해안의 작은 공장 마을에서 출발해, 평범한 사람들의 노동과 꿈과 상실을 반세기 넘게 세 시간짜리 무대 위의 이야기로 옮겨 온 사람.

한눈에 보기 🔭💭

1. 뿌리미국 뉴저지 롱브랜치 출생프리홀드 노동자 가정애즈버리 파크 클럽2. 도약존 해먼드 오디션본 투 런타임·뉴스위크 표지3. 어둠녹음 공백 1년다크니스네브래스카 4트랙4. 정점본 인 더 USA레이건과 오독1989 밴드 해산5. 재회아카데미 주제가상1999 재결합9·11과 더 라이징6. 유산클레먼스 별세자서전·브로드웨이트랙스 II스프링스틴1949–뉴저지 노동자 마을의 삶을 미국의 노래로 바꾼…
무대가 된 도시 🧭🗺️
N미국롱브랜치1949프리홀드1949–1969애즈버리 파크1969–1975콜츠넥1981–현재로스앤젤레스1989–1994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멤버와 동료들 ⏳🌊

  • 가족더글러스 스프링스틴

    말수 적던 노동자 아버지로, 그와의 서먹한 관계는 아들의 노래에 평생 되풀이된 주제가 됐다.

  • 멤버클래런스 클레먼스

    E 스트리트 밴드의 색소폰 연주자이자 무대 위의 단짝으로, 2011년 세상을 떠났다.

  • 우정스티븐 반 잔트

    애즈버리 파크 클럽 시절부터의 친구이자 기타리스트로, 밴드의 편곡과 무대를 함께 다졌다.

  • 매니저존 랜도

    로큰롤의 미래라는 평론을 쓴 뒤 《본 투 런》의 공동 프로듀서가 됐고, 1977년부터 매니저를 맡았다.

  • 가족패티 스캘파

    1984년 투어부터 밴드의 보컬로 함께했고 1991년 그와 결혼했다.

  • 멤버톰 모렐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기타리스트로, 「더 고스트 오브 톰 조드」를 커버한 인연으로 2010년대 E 스트리트 밴드에 참여했다.

YouTube에서 7곡 이어 듣기 ↗

I. 프리홀드의 아들 · 1949–1964

(출생) 1949년 9월, 미국 뉴저지주 롱브랜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더글러스 스프링스틴은 아일랜드·네덜란드계, 어머니 아델 제릴리는 이탈리아계였다. 가족은 인근의 작은 공장 도시 프리홀드에서 친가 조부모와 함께 살았고, 아래로 여동생 둘이 태어났다. (아버지) 아버지는 공장 노동자, 버스 운전사, 교도관 등으로 일자리를 자주 옮겼고 일이 없는 날이 많았다. 스프링스틴은 2016년 자서전 『본 투 런』에서 불 꺼진 부엌에 홀로 앉아 맥주를 마시던 아버지, 말이 통하지 않던 부자 관계, 그리고 훗날 아버지가 정신 질환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담담히 적었다. 이 아버지의 모습은 1978년 앨범 《다크니스 온 디 에지 오브 타운》의 곡들에 거듭 등장하게 된다. (어머니) 어머니는 법률 사무소 비서로 일하며 사실상 가계를 지탱했다. 아들은 매일 아침 출근하던 어머니에게서 일의 존엄과 성실함을 배웠다고 회고했다. 기타를 원하는 아들에게 할부로 기타를 장만해 준 것도 어머니였다. (신앙) 그는 세인트 로즈 오브 리마 가톨릭 학교를 다녔다. 수녀들의 엄격한 규율은 답답한 기억으로 남았지만, 죄와 구원, 약속된 땅 같은 가톨릭의 언어는 평생 그의 노래 깊숙이 배어들었다. (로큰롤) 1956년 일곱 살 때 텔레비전 「에드 설리번 쇼」에서 엘비스 프레슬리를 보고 처음 음악에 마음을 빼앗겼다. 1964년 같은 프로그램에 나온 비틀스를 본 뒤로는 기타를 놓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겉도는 아이였지만, 방 안에서 라디오의 노래를 따라 치며 그는 자기 자리를 찾아 갔다.

II. 저지 쇼어의 클럽 · 1965–1972

(캐스틸스) 1965년 프리홀드의 10대 밴드 캐스틸스에 기타리스트로 들어갔다. 이웃의 공장 노동자 고든 '텍스' 바이너드 부부가 집을 연습실로 내주고 공연을 잡아 주었다. 밴드는 뉴저지의 댄스 홀과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의 카페 와?까지 무대를 넓혔다. (애즈버리) 고교를 졸업한 뒤 지역 전문대학을 잠시 다녔으나 그만두고 음악에 전념했다. 1969년 부모가 막내 여동생을 데리고 캘리포니아로 이주했을 때도 그는 뉴저지에 남았다. 해안 휴양 도시 애즈버리 파크의 클럽 업스테이지가 그의 학교였다. 그곳에서 기타리스트 스티븐 반 잔트, 오르간의 대니 페데리치, 드럼의 비니 로페즈 같은 평생의 동료들을 만났다. (수련) 1969년부터 이끈 하드 록 밴드 스틸 밀은 저지 쇼어에서 수천 명을 모으는 인기를 누렸지만 음반 계약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후 그는 관악기를 갖춘 대편성 밴드들을 거치며 리듬 앤드 블루스와 소울의 맛을 익혔다. 지역에서 그는 이미 '보스'로 불렸는데, 공연이 끝나면 동료들에게 출연료를 나눠 주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클레먼스) 1971년 무렵 애즈버리 파크의 한 클럽에서 색소폰 연주자 클래런스 클레먼스를 만났다. 폭풍우 치던 밤 클럽 문이 바람에 떨어져 나가며 그가 들어섰다는 장면은 두 사람이 무대에서 즐겨 되풀이한 이야기로, 사실 그대로라기보다 신화로 다듬어진 것으로 보인다. (해먼드) 1972년 매니저 마이크 아펠과 계약했고, 아펠의 주선으로 그해 5월 컬럼비아 레코드의 존 해먼드 앞에서 통기타를 들고 오디션을 봤다. 빌리 홀리데이와 밥 딜런을 발굴한 해먼드는 곧바로 계약을 추진했고, 회사는 그를 '새로운 딜런'으로 소개하기 시작했다.

III. 마지막 기회 · 1973–1975

(데뷔) 1973년 1월 첫 앨범 《그리팅스 프롬 애즈버리 파크, 뉴저지》가 나왔다. 단어가 쏟아지는 노랫말은 딜런과 견주어졌지만 첫해 판매는 미미했다. 그해 11월의 두 번째 앨범 《더 와일드, 디 이노선트 앤드 디 E 스트리트 셔플》에서는 데이비드 산시어스의 재즈풍 건반이 더해졌고, 7분을 넘는 「로절리타」 같은 곡들이 무대의 열기를 옮겼다. 평단은 호평했지만 판매는 여전히 부진했고, 그를 지지하던 경영진이 회사를 떠나면서 계약 해지설까지 돌았다. (랜도) 1974년 5월, 보스턴의 평론가 존 랜도는 공연을 본 뒤 '나는 로큰롤의 미래를 보았고, 그 이름은 브루스 스프링스틴이다'라고 썼다. 회사는 이 문장을 광고에 썼고, 랜도는 곧 그의 공동 프로듀서이자 평생의 조언자가 됐다. (야심) 세 번째 앨범은 마지막 기회였다. 그는 필 스펙터가 1960년대에 쓰던, 악기를 겹겹이 쌓아 하나의 거대한 소리 덩어리로 만드는 방식(월 오브 사운드)을 목표로 삼았다. 제목곡 하나를 완성하는 데만 몇 달이 걸렸고, 기타와 건반을 수없이 덧입혀 녹음(오버더빙)했다. 1974년 드럼의 맥스 와인버그와 피아노의 로이 비턴이 합류했고, 이듬해 스티븐 반 잔트가 정식으로 들어와 관악 편곡을 도왔다. (표지) 1975년 8월 발매된 《본 투 런》은 작은 마을을 벗어나려는 젊은이들의 절박함을 장대한 사운드에 담았다. 그해 10월 그는 『타임』과 『뉴스위크』의 표지에 같은 주에 나란히 실렸다. 정작 그는 과장된 홍보를 불편해했고, 완성된 음반을 처음 들었을 때 마음에 들지 않아 내던지고 싶었다고 전해진다.

♪본 투 런 (Born to Run)1975실황 Bruce Springsteen · 2002 바르셀로나

계약 해지의 문턱에서 모든 것을 건 곡이다. 작은 마을을 벗어나려는 연인에게 함께 달아나자고 다그치는 화자의 절박함이, 그 무렵 그 자신의 처지와 겹친다.

  • 도입부 기타 리프 위로 쇳소리처럼 반짝이는 철금(글로켄슈필)이 같은 선율을 겹쳐 친다. 악기를 겹겹이 쌓아 하나의 거대한 소리로 만드는 필 스펙터식 녹음(월 오브 사운드)을 의도한 대목이다.
  • 앨범 표지에서 그가 메고 있는 펜더 기타(텔레캐스터 몸통에 에스콰이어 넥을 단 악기)로 연주했고, 기타 파트를 여러 번 덧입혀(오버더빙) 두텁게 만들었다.
  • 드럼은 맥스 와인버그가 합류하기 전 어니스트 '붐' 카터가 쳤다. 뉴욕 근교 914 사운드 스튜디오에서 이 한 곡에만 몇 달이 들었다.
  • 두 번째 후렴 뒤 클레먼스의 색소폰 솔로가 이어지고, 악기들이 낮게 웅성거리는 간주 끝에 스프링스틴이 숫자를 세며 밴드 전체를 한꺼번에 다시 불러들인다. 라이브에서 객석이 가장 크게 반응하는 순간이다.
YouTube에서 듣기 ↗

IV. 어둠의 가장자리 · 1976–1982

(분쟁) 성공과 함께 매니저 아펠과의 계약 문제가 불거졌다. 1976년 프로듀서 선택 권한과 수익 배분을 둘러싼 소송이 시작됐고, 그 사이 랜도와의 녹음이 막혀 약 1년간 새 앨범을 낼 수 없었다. 분쟁은 1977년 5월 합의로 끝났고, 이후 랜도가 매니저를 맡았다. 그는 이 일로 음악 산업의 계약과 소유를 뼈저리게 배웠다고 말했다. (다크니스) 녹음이 묶인 동안 그는 투어로 밴드를 다지며 수십 곡을 썼다. 그 가운데 패티 스미스가 완성한 「비코즈 더 나이트」는 그녀의 대표곡이 됐다. 1978년 6월의 《다크니스 온 디 에지 오브 타운》은 《본 투 런》의 낭만을 걷어 내고, 공장 노동과 아버지 세대의 체념을 건조한 소리로 그렸다. 세 시간을 넘기기 일쑤인 그해 공연들은 라디오 중계를 타고 전설이 됐다. (리버) 1980년 10월의 두 장짜리 앨범 《더 리버》는 그의 첫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였고, 「헝그리 하트」가 처음으로 싱글 톱10에 올랐다. 파티 같은 로큰롤과, 이른 결혼과 실직으로 꿈이 꺾인 노동자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제목곡이 한 앨범에 나란히 섰다. (네브래스카) 1982년 1월, 그는 뉴저지 콜츠넥의 셋집 침실에서 네 칸짜리 카세트 녹음기로 통기타와 하모니카 중심의 데모를 녹음했다. 여러 소리를 각각의 칸에 따로 담아 겹치는 방식(멀티트랙 녹음)의 가장 소박한 형태였다. 밴드와 다시 녹음해 보았지만 데모의 고독한 기운이 살아나지 않자, 그는 카세트를 그대로 앨범으로 냈다. 살인자와 실직자, 고속도로 순찰대원의 독백으로 채운 《네브래스카》는 투어도 싱글도 없이 발매됐고, 평단은 그를 로큰롤 스타를 넘어선 미국의 이야기꾼으로 다시 보게 됐다.

♪앨범 《다크니스 온 디 에지 오브 타운》 (Darkness on the Edge of Town)1978실황 「Badlands」 Springsteen · 1979 No Nukes

1년의 녹음 공백 끝에 나온 앨범으로, 공장과 아버지 세대의 체념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꿈을 노래하던 화자가 일하는 어른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 첫 곡 「배드랜즈」(이 카드의 영상)는 맥스 와인버그의 드럼 연타와 함께 로이 비턴의 피아노, 대니 페데리치의 오르간이 동시에 터지며 시작한다. 《본 투 런》처럼 겹겹이 쌓기보다 악기 수를 줄여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들린다.
  • 스프링스틴이 원하는 드럼 소리를 찾느라 스튜디오에서 오래 씨름했다고 전해진다. 그 결과 소리의 잔향(리버브)을 줄인 건조하고 단단한 울림이 앨범 전체를 지배한다.
  • 「배드랜즈」 중반에는 스프링스틴의 짧은 기타 솔로와 클레먼스의 색소폰 솔로가 차례로 이어진다. 분노와 해방이 한 곡 안에서 맞붙는 구성이다.
  • 「아담 레이즈드 어 케인」에서는 기타를 일부러 찢어지게 왜곡한 음색(디스토션)과 거칠게 갈라지는 보컬이 아버지와의 긴장을 소리로 옮긴다.
YouTube에서 듣기 ↗
♪앨범 《네브래스카》 (Nebraska)1982실황 「Atlantic City」 Springsteen · MTV Plugged

콜츠넥 셋집 침실의 카세트 데모가 그대로 앨범이 됐다. 범죄자와 실직자의 1인칭 독백을 판단 없이 들려주는 화법이 그의 이야기꾼으로서의 깊이를 드러냈다.

  • 1982년 1월 초 하룻밤 사이에 네 칸짜리 카세트 녹음기(멀티트랙 녹음)로 대부분을 녹음했다. 테이프 특유의 잡음과 얇은 음색이 그대로 남아 있어, 방 안에서 혼자 부르는 소리처럼 들린다.
  • 「애틀랜틱 시티」(이 카드의 영상)는 통기타를 긁는 소리(스트로크) 위에 만돌린이 덧대어지고, 후렴 사이사이로 메아리 효과(에코)를 건 낮은 울부짖음 같은 목소리가 맴돈다.
  • 밴드와 다시 녹음해 보았지만 데모의 기운이 살아나지 않아 카세트를 원본으로 썼고, 그 낮은 음량을 음반으로 옮기는 데 애를 먹었다고 전해진다.
  • 보컬은 소리치지 않는다. 사건을 저지른 사람이 듣는 이에게 담담히 사정을 털어놓는 어조로, 하모니카가 문장 사이의 침묵을 메운다.
YouTube에서 듣기 ↗

V. 미국에서 태어나 · 1983–1992

(정점) 1984년 6월 《본 인 더 유에스에이》가 나왔다. 상당수는 《네브래스카》와 같은 시기에 밴드와 녹음한 곡들로, 전자적으로 소리를 만들어 내는 건반 악기(신시사이저)와 거대한 드럼 소리가 앨범을 이끌었다. 싱글 일곱 곡이 톱10에 올랐고 앨범은 전 세계에서 3,000만 장 넘게 팔린 것으로 집계된다. 그는 미국 중서부 노동자의 정서를 담은 록(하트랜드 록)의 대표 주자가 됐다. 스티븐 반 잔트가 솔로 활동을 위해 떠나고 기타의 닐스 로프그렌, 보컬의 패티 스캘파가 합류한 투어는 경기장 규모로 커졌다. (오독) 제목곡은 귀향한 베트남 참전 군인의 쓰라림을 노래했지만 우렁찬 후렴만 애국가처럼 퍼졌다. 1984년 9월 칼럼니스트 조지 윌의 칼럼에 이어 재선 유세 중이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연설에서 그의 이름을 언급하자, 스프링스틴은 며칠 뒤 공연에서 대통령이 즐겨 듣는다는 앨범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며 《네브래스카》의 곡을 불렀다. 그는 이 무렵부터 공연마다 지역 푸드 뱅크와 노동 단체를 소개하고 후원했다. (결혼) 1985년 배우 줄리앤 필립스와 결혼했으나 1989년 이혼했다. 1987년의 《터널 오브 러브》는 밴드 없이 혼자 녹음한 곡이 많았고, 성공 뒤의 공허와 사랑의 불확실함을 차분한 목소리로 탐구했다. 그의 노래는 이 무렵부터 거리와 공장에서 한 사람의 마음속으로 시선을 옮겼다. (해산) 1988년 그는 국제앰네스티 인권 콘서트 투어에 나서 폴리스 출신의 스팅, 피터 게이브리얼 등과 여러 대륙의 무대에 함께 섰다. 이듬해 10월 E 스트리트 밴드의 해산을 알렸다. 로스앤젤레스로 옮긴 그는 1991년 패티 스캘파와 결혼했고, 1992년 세션 연주자들과 만든 《휴먼 터치》와 《러키 타운》을 같은 날 발매했다. 두 앨범은 차분한 안정을 담았지만 반응은 엇갈렸다.

♪본 인 더 유에스에이 (Born in the U.S.A.)1984실황 Bruce Springsteen

귀향한 참전 군인의 쓰라림을 노래했지만 후렴만 애국가처럼 퍼져 레이건 유세에까지 불려 나간 곡이다. 그가 정치적 발언을 시작한 계기가 됐다.

  • 도입부의 반복되는 건반 리프는 로이 비턴이 신시사이저로 연주했다. 원래 《네브래스카》 시기의 어두운 통기타 곡이었으나, 밴드 녹음에서 이 리프가 붙으며 전혀 다른 곡이 됐다.
  • 맥스 와인버그의 스네어(작은북)는 거대한 공간에서 친 듯 길게 울린다. 1980년대 경기장 록의 대표적인 드럼 소리로 꼽힌다.
  • 1982년 뉴욕 파워 스테이션 스튜디오에서 밴드가 거의 즉석으로 합을 맞춘 몇 번째 테이크가 그대로 쓰였다고 멤버들은 회고한다.
  • 절에서는 쓰라린 사연을 거칠게 토해 내고 후렴에서는 외치듯 노래한다. 이 대비가 오독의 원인이었다. 곡이 끝날 듯하다가 드럼과 피아노가 다시 몰아치는 긴 마무리도 녹음 현장의 즉흥에서 나왔다.
YouTube에서 듣기 ↗

VI. 다시 모인 밴드 · 1993–2010

(필라델피아) 1993년 조너선 드미 감독의 부탁으로 에이즈에 걸린 변호사의 이야기인 영화 「필라델피아」의 주제가를 썼다. 정해진 박자를 반복 연주하는 기계(드럼 머신)와 신시사이저 위에 낮게 읊조린 「스트리츠 오브 필라델피아」는 1994년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이듬해 그래미 4개 부문을 받았다. (국경) 1995년 《더 고스트 오브 톰 조드》에서 그는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에 기대어 멕시코 국경의 이주 노동자와 밀려난 사람들을 다시 통기타로 노래했다. 1997년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이 이 제목곡을 육중한 록으로 커버했고, 그 기타리스트 톰 모렐로는 훗날 그의 밴드에서 함께 연주하게 된다. 1998년 아버지 더글러스가 세상을 떠났다. (재결합) 1999년 3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고, 소개자로 나선 이는 U2의 보노였다. 그해 E 스트리트 밴드와 재결합 투어를 시작했다. 그는 2005년 U2를 명예의 전당에 소개하며 답례했다. (애도) 2001년 9·11 테러로 그가 사는 뉴저지 먼마우스 카운티에서도 많은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공격 직후 한 시민이 차창 너머로 이제 당신이 필요하다고 외쳤다는 일화를 그는 여러 차례 전했다. 2002년 프로듀서 브렌던 오브라이언과 만든 《더 라이징》은 상실과 애도를 가스펠식 주고받는 노래(콜 앤드 리스폰스)로 감쌌고, 18년 만의 E 스트리트 밴드 정규 앨범이었다. (연대) 2003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그는 스티븐 반 잔트, 데이브 그롤, 엘비스 코스텔로와 함께 세상을 떠난 더 클래시의 조 스트러머를 기려 「런던 콜링」을 불렀다. 2004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는 R.E.M., 펄 잼 등과 보트 포 체인지 투어에 나섰고 R.E.M.의 무대에도 함께 올랐다. 2008년 오르간의 대니 페데리치가 흑색종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듬해 1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 축하 무대에 섰고, 2월에는 슈퍼볼 하프타임 공연을 했다.

♪스트리츠 오브 필라델피아 (Streets of Philadelphia)1993공식 MV — Bruce Springsteen

E 스트리트 밴드 해산 뒤 혼자 만든 곡으로, 에이즈로 죽어 가는 사람의 고독을 그 사람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그의 첫 아카데미상이었다.

  • 곡을 받치는 것은 사람이 친 드럼이 아니라 느릿하게 반복되는 기계 박자(드럼 머신)다. 그 무렵 힙합 리듬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신시사이저가 길게 깔아 주는 부드러운 화음 위로 거의 모든 악기를 스프링스틴이 직접 연주했다.
  • 보컬은 높이 올라가지 않고 속삭이듯 낮게 머문다. 듣는 사람에게 털어놓는 고백의 어조라, 크게 외치던 1980년대의 목소리와 대조된다.
  • 곡에는 뚜렷한 기타 솔로도 브리지도 없다. 같은 진행이 담담히 되풀이되며 쓸쓸함이 쌓이는 구성에 귀를 기울여 볼 만하다.
YouTube에서 듣기 ↗
♪더 라이징 (The Rising)2002실황 Bruce Springsteen · 2002 바르셀로나

9·11 이후 이웃의 죽음을 지켜본 그가 18년 만에 E 스트리트 밴드와 만든 정규 앨범의 제목곡이다. 무너지는 건물을 오르는 구조대원의 시선으로 애도와 희망을 함께 노래한다.

  • 프로듀서 브렌던 오브라이언이 애틀랜타의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다. 이전 작품보다 소리가 촘촘하고 현대적이며, 통기타와 일렉트릭 기타가 층을 이루며 도입을 연다.
  • 후렴에서는 스프링스틴의 선창에 밴드와 패티 스캘파의 목소리가 가사 없는 감탄사로 화답한다. 가스펠의 주고받는 노래(콜 앤드 리스폰스)를 들여온 대목이다.
  • 수지 타이렐의 바이올린이 배경에서 선율을 길게 끌며 기도 같은 분위기를 더한다.
  • 화자는 계단을 오르는 1인칭 인물이다. 장면 묘사로 시작해 후렴에서 공동체의 합창으로 넓어지는 흐름을 따라 들으면 좋다.
YouTube에서 듣기 ↗

VII. 남은 사람들 · 2011–2026

(상실) 2011년 6월 클래런스 클레먼스가 뇌졸중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스프링스틴은 추도사에서 무대 위의 두 사람이 흑인과 백인이 함께 꿈꾸는 미국의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색소폰 자리는 클레먼스의 조카 제이크 클레먼스가 이어받았다. (분노) 2012년 《레킹 볼》은 금융 위기 이후의 실업과 금융가에 대한 분노를 아일랜드 민요와 가스펠, 힙합식 반복 리듬까지 섞어 노래했다. 톰 모렐로는 이 시기 투어와 2014년 《하이 호프스》에 사실상 정식 멤버로 참여했다. (자서전) 2016년 9월 그는 7년에 걸쳐 쓴 자서전 『본 투 런』을 냈고, 오랫동안 우울증과 싸워 왔다고 스스로 밝혔다. 같은 해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았다. 2017년부터 이듬해까지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자서전을 바탕으로 한 1인 공연 「스프링스틴 온 브로드웨이」를 236회 이어 가며 특별 토니상을 받았다. (회고) 2019년 오케스트라를 곁들인 《웨스턴 스타스》, 2020년 집 녹음실에서 밴드와 닷새 만에 라이브로 녹음한 《레터 투 유》가 이어졌다. 《레터 투 유》는 캐스틸스 시절 동료 조지 시스의 죽음을 계기로, 먼저 떠난 친구들과 음악의 의미를 돌아본 앨범이었다. 2021년에는 버락 오바마와 대담 팟캐스트를 진행했고, 그해 말 음반 원본과 저작권 일체를 소니 뮤직에 넘겼다. (현재) 2024년 1월 오랫동안 알츠하이머병을 앓던 어머니 아델이 98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70대 중반에도 E 스트리트 밴드와 세 시간짜리 경기장 공연을 이어 갔고, 2025년 유럽 투어 무대에서는 미국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민주주의를 지키자고 호소했다. 같은 해 미발표 앨범 일곱 장을 묶은 《트랙스 II: 더 로스트 앨범스》를 공개했고, 《네브래스카》 제작기를 그린 영화 「스프링스틴: 디리버 미 프롬 노웨어」가 개봉했다.

♪랜드 오브 호프 앤드 드림스 (Land of Hope and Dreams)2012실황 Springsteen & E Street Band · 뉴욕

1999년 재결합 투어 때부터 부르던 곡을 《레킹 볼》에 처음 정식으로 담았다. 클레먼스가 세상을 떠난 뒤 발매된 이 녹음에는 그의 색소폰이 남아 있다.

  • 1999년 재결합 투어에서 처음 선보인 곡으로, 모든 사람을 태우고 달리는 기차의 이미지를 담았다. 스네어와 탬버린이 기차 바퀴처럼 쉬지 않고 굴러가는 리듬을 만든다.
  • 가스펠 합창단이 후렴을 받쳐 교회 예배 같은 열기를 더한다.
  • 곡 중반에 나오는 색소폰 솔로는 클래런스 클레먼스의 연주로, 그의 생전 마지막 녹음 가운데 하나다. 스프링스틴은 이 솔로를 일부러 앨범에 남겼다.
  • 마지막 부분에서 커티스 메이필드의 「피플 겟 레디」를 떠올리게 하는 선율이 겹쳐진다. 소울 음악에 바치는 인사로 읽힌다.
  • 라이브에서는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곡으로 자주 쓰이며, 스튜디오판보다 훨씬 길게 늘어난다.
YouTube에서 듣기 ↗

덜 알려진 이야기

밴드 이름 E 스트리트는 뉴저지 벨마의 실제 거리 이름에서 왔다. 초기 키보드 연주자 데이비드 산시어스의 어머니 집이 그 거리에 있었고, 밴드가 그 집에서 연습하곤 했다. 산시어스가 1974년에 밴드를 떠나면서 이 유래는 팬 사이의 각주로만 남았다. 작곡가 스프링스틴의 유일한 빌보드 싱글 1위는 그 자신의 노래가 아니라 남이 부른 곡이었다. 데뷔 앨범의 「블라인디드 바이 더 라이트」를 맨프레드 맨스 어스 밴드가 편곡해 1977년 정상에 올렸다. 패티 스미스의 「비코즈 더 나이트」, 포인터 시스터스의 「파이어」도 그가 쓴 곡이지만, 부른 사람의 이름으로 기억되는 탓에 그의 몫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본 인 더 유에스에이」라는 제목은 원래 각본가 폴 슈레이더가 쓰던 영화 각본의 제목이었다. 스프링스틴은 그 제목을 빌려 곡을 썼고, 슈레이더에게는 답례로 그가 감독한 영화 「라이트 오브 데이」의 주제곡을 써 주었다. 그는 발표한 곡보다 훨씬 많은 곡을 서랍에 넣어 두는 작가였다. 《다크니스》 시기의 미발표곡들은 2010년 《더 프로미스》로 32년 만에 나왔고, 2025년 《트랙스 II》에는 1990년대 중반 드럼 머신을 중심으로 만들고도 접어 둔 앨범을 비롯해 완성된 채 묵혀 둔 앨범 일곱 장이 담겼다. 그는 일부를 가까운 친구들에게만 들려주었을 뿐, 오랫동안 공식적으로 내놓지 않았다.

용어 노트 📚🔎

월 오브 사운드

(말뜻) 영어 wall of sound 를 그대로 옮긴 말로, 소리의 벽이라는 뜻이다. 소리가 벽처럼 빈틈없이 꽉 들어찬다는 뜻이 이름에 담겨 있다. (록에서) 1960년대 초 프로듀서 필 스펙터가 만든 녹음 방식이다. 기타, 피아노, 현악기, 타악기를 여러 대씩 동시에 연주하고 겹겹이 녹음해, 악기 하나하나가 따로 들리기보다 하나의 거대하고 두꺼운 소리 덩어리가 되게 한다. 합창 대회에서 반 전체가 한목소리로 부르면 누구 목소리인지는 안 들리고 커다란 울림 하나만 남는 것과 비슷하다. 스프링스틴은 《본 투 런》에서 이 소리를 목표로 삼았다.

오버더빙

(말뜻) 위에(over) 덧입힌다(dub)는 뜻의 영어다. (록에서) 이미 녹음해 둔 연주를 들으면서 그 위에 새 연주를 하나씩 덧입혀 녹음하는 방법이다. 한 사람이 기타를 여러 번 겹쳐 녹음해 기타 서너 대가 동시에 연주하는 것처럼 만들 수도 있다. 투명한 필름을 그림 위에 한 장씩 겹쳐 가며 색을 덧칠하면, 마지막에는 여러 겹이 하나의 그림처럼 보이는 것과 같다. (다른 데서는) 영화에서 더빙은 외국 영화의 대사를 우리말 목소리로 바꿔 입히는 일을 가리킨다.

멀티트랙 녹음

(말뜻) 여러(multi) 개의 길(track)이라는 뜻이다. 소리를 담는 칸이 여러 개라는 말이다. (록에서) 노래, 기타, 하모니카를 각각 다른 칸에 따로 녹음해 두었다가 나중에 크기를 조절하며 하나로 섞는 방식이다. 한 칸을 망쳐도 그 칸만 다시 녹음하면 된다. 조별 과제에서 각자 맡은 부분을 따로 만든 뒤 마지막에 한 파일로 합치는 것과 비슷하다. 《네브래스카》는 칸이 네 개뿐인 가정용 카세트 녹음기로 만들어졌다.

신시사이저

(말뜻) 합성하다(synthesize)에서 나온 말로, 소리를 합성하는 기계라는 뜻이다. (록에서) 전기 신호를 조합해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 내는 건반 악기다. 피아노나 오르간 소리를 흉내 낼 수도 있고, 세상에 없던 소리를 만들 수도 있다. 물감 몇 가지를 섞어 팔레트에 없던 새 색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다. 1980년대 록에서 크게 유행했고, 「본 인 더 유에스에이」의 도입 리프가 대표적이다. (다른 데서는) 화학에서 합성(synthesis)은 여러 물질을 결합해 새로운 물질을 만드는 일을 뜻한다.

드럼 머신

(록에서) 사람이 북을 치는 대신, 미리 입력해 둔 박자를 기계가 정확하게 반복해서 연주해 주는 장치다. 힙합과 전자 음악에서 널리 쓰였고, 사람이 칠 때보다 일정하고 차가운 느낌을 준다. 리듬 게임에서 똑같은 박자 무늬가 화면에 끝없이 반복되며 흘러나오는 것과 비슷하다. 「스트리츠 오브 필라델피아」는 이 기계 박자 위에 만들어졌다.

하트랜드 록

(말뜻) 하트랜드(heartland)는 심장부가 되는 땅이라는 뜻으로, 미국에서는 농장과 공장이 많은 중서부 지역을 가리킨다. (록에서) 1970~80년대 미국에서 자리 잡은 록의 한 갈래다. 화려한 기교보다 단단한 밴드 연주와 솔직한 노래를 앞세우고, 작은 마을과 공장 노동자, 평범한 가족의 삶을 이야기한다. 학교 축제에서 유명한 아이돌 노래보다 우리 동네 이야기를 담은 반 노래가 더 마음을 울리는 것과 비슷하다. 스프링스틴, 톰 페티, 존 멜런캠프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콜 앤드 리스폰스

(말뜻) 부르고(call) 응답한다(response)는 뜻이다. (록에서) 한 사람이 한 소절을 부르면 다른 사람들이 그에 화답하듯 이어 부르는 방식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교회 음악(가스펠)과 노동요에서 내려온 전통으로, 소울과 록으로 이어졌다. 응원단장이 선창하면 관중석 전체가 구호로 받아치는 학교 체육 대회 응원과 똑같은 구조다. 《더 라이징》의 후렴과 스프링스틴의 공연에서 관객이 함께 부르는 대목이 이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