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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ny Hathaway

도니 해서웨이 (1945–1979)

교회의 피아노와 대학의 화성학을 한 목소리에 품었던 가수이자 편곡자.

한눈에 보기 🔭💭

1. 뿌리미국 일리노이 시카고 출생할머니의 가스펠세인트루이스 성장2. 하워드음악 장학생로버타 플랙과 만남르로이 허트슨3. 시카고커텀 편곡자킹 커티스의 발탁「디스 크리스마스」4. 정점「어 송 포 유」그래미 듀엣상1972 라이브 앨범5. 그늘조현병 진단자유를 노래한 곡긴 공백6. 말년1978년 재결합 히트서른셋의 죽음앨리샤 키스의 계승해서웨이1945–1979가스펠과 화성학을 품은 목소리로 소울을 깊게 …
무대의 여정 🧭🗺️
N미국시카고1945세인트루이스1945–1963워싱턴 D.C.1963–1967시카고1967–1979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가족마사 피츠

    그를 키운 할머니이자 가스펠 가수로, 세 살배기 손자를 교회 무대에 세웠다.

  • 우정르로이 허트슨

    하워드 대학 룸메이트로, 「더 게토」를 함께 쓴 평생의 음악 동료였다.

  • 후원커티스 메이필드

    자신의 레이블 커텀에서 그에게 편곡과 프로듀싱을 맡기며 업계에 들어설 발판을 놓아 주었다.

  • 후원킹 커티스

    그의 연주를 듣고 애트코와의 계약을 이끈 색소폰 연주자이자 프로듀서였다.

  • 동료로버타 플랙

    하워드 시절부터 알던 선배로, 「웨어 이즈 더 러브」와 「더 클로저 아이 겟 투 유」를 함께 부른 듀엣 파트너였다.

  • 동료아리프 마딘

    애틀랜틱의 프로듀서로 듀엣 앨범과 「익스텐션 오브 어 맨」을 함께 만들었다.

YouTube에서 2곡 이어 듣기 ↗

I. 세인트루이스의 소년 · 1945–1963

(출생) 1945년 10월 1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도니 에드워드 해서웨이(Donny Edward Hathaway)였다. 어머니는 드루셀라 헌틀리(Drusella Huntley)였고, 아버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그는 아주 어릴 때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로 옮겨 할머니 마사 피츠(Martha Pitts)의 손에 자랐다. 어머니와 함께 지낸 시간이나 둘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전하는 기록은 많지 않다. (할머니) 마사 피츠는 직업 가스펠 가수였다. 손자는 세 살 무렵부터 할머니를 따라 교회와 집회 무대에 섰고, 할머니의 성을 빌린 「도니 피츠, 전국 최연소 가스펠 가수」라는 이름으로 소개됐다. 그는 이 시기에 피아노를 익혔다. 성가의 화음, 인도자가 부르면 회중이 받아 부르는 주고받기, 감정이 차오를 때 가락을 늘이고 꺾는 노래법이 말보다 먼저 몸에 배었다. 훗날 그의 녹음 곳곳에서 들리는 교회식 화음과 즉흥은 이 무렵에 뿌리를 두고 있다. (동네) 가족은 세인트루이스의 공공 주택 단지 카 스퀘어 빌리지(Carr Square Village)에서 살았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다. 블루스와 재즈, 가스펠이 한데 섞인 도시에서 그는 교회 밖의 음악도 가까이 들으며 자랐다. 훗날 그가 노래한 빈민가의 풍경은 상상이 아니라 그가 자란 동네의 기억이었다. (진학) 그는 바숀 고등학교(Vashon High School)에 다니며 피아노와 음악 공부를 이어 갔고, 1963년에 졸업했다. 그 성취로 워싱턴 D.C.의 하워드 대학교에서 예술 분야 장학금을 받았다. 교회에서 귀와 손으로 배운 음악을 이제 악보와 이론으로 다시 배울 차례였다.

II. 하워드의 시절 · 1963–1967

(하워드) 하워드 대학교는 오랫동안 미국 흑인 지식인과 예술가를 길러 온 학교였다. 그는 이곳에서 음악 이론과 작곡, 피아노를 공부했다. 교과서의 화성학과 교회에서 익힌 화음이 서로를 설명해 주는 경험은 그의 음악을 결정지었다. 그는 악보를 빠르게 읽고 남의 곡을 즉석에서 다른 화음으로 바꿔 치는 학생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정) 기숙사 룸메이트 르로이 허트슨(Leroy Hutson)은 평생의 음악 동료가 됐다. 두 사람은 함께 곡을 쓰고 노래했으며, 훗날 그의 첫 싱글 「더 게토」를 공동으로 썼다. 허트슨은 뒷날 커티스 메이필드의 뒤를 이어 임프레션스(The Impressions)의 리드 보컬을 맡게 된다. 해서웨이는 드러머 릭 파월(Ric Powell)의 트리오에서 건반을 치며 워싱턴의 클럽 무대에도 섰다. 파월은 이후 그의 첫 앨범을 함께 제작했다. (인연) 이 시기 그는 하워드 출신의 선배 음악가 로버타 플랙을 알게 됐다. 플랙은 워싱턴의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면서 밤에는 클럽에서 노래하고 있었다. 같은 학교에서 클래식을 배운 두 사람은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닮았고, 이 친분은 몇 해 뒤 미국 소울 음악에서 손꼽히는 듀엣으로 이어졌다. (결혼) 그는 하워드 대학교에서 함께 음악을 공부하던 율랄라 밴(Eulaulah Vann)을 만나 1967년에 결혼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두 딸이 태어났고, 큰딸 랄라 해서웨이(Lalah Hathaway)는 훗날 그래미를 받은 가수가 됐다. (중퇴) 1967년, 그는 학위를 마치기 전에 학교를 떠났다. 편곡자이자 건반 연주자로 일해 달라는 음반 업계의 제안이 졸업보다 먼저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는 가족을 데리고 자신이 태어난 도시 시카고로 향했다.

III. 시카고의 편곡자 · 1967–1970

(커텀) 시카고에서 그는 커티스 메이필드가 세운 레이블 커텀(Curtom)에 들어갔다. 편곡과 건반 연주, 프로듀싱을 두루 맡으며 메이필드 주변 가수들의 녹음에 화음을 짜고 악단을 이끌었다. 메이필드는 흑인 공동체의 자긍심과 사회 문제를 정면으로 노래하던 작가였다. 해서웨이는 그 곁에서 노래가 시대를 말하는 방식을 가까이서 배웠다. 1969년에는 가수 준 컨퀘스트(June Conquest)와 함께 듀엣 「아이 땡크 유 베이비(I Thank You Baby)」를 커텀에서 냈다. (세션) 이 무렵 그는 시카고의 여러 녹음실을 오가는 세션 연주자이자 편곡자였다. 남의 음반을 완성하는 일은 생계였지만, 동시에 현악과 금관, 리듬 섹션을 어떻게 겹쳐야 소리가 사는지를 몸으로 익히는 시간이었다. 그의 앨범에서 편곡이 노래만큼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발탁) 1969년, 색소폰 연주자이자 애틀랜틱 레코드의 프로듀서였던 킹 커티스가 한 음악 업계 행사에서 그의 연주를 들었다. 커티스의 주선으로 그는 애틀랜틱 계열의 애트코(Atco)와 계약했다. 남의 음반 뒤에 있던 사람이 자기 이름을 건 음반을 낼 기회였다. (데뷔) 같은 해 첫 싱글 「더 게토」가 나왔고, 1970년 첫 앨범 「에브리싱 이즈 에브리싱(Everything Is Everything)」이 뒤따랐다. 릭 파월과 함께 만든 이 앨범은 그가 자란 동네의 풍경과 흑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노래했다. 니나 시몬의 「투 비 영, 기프티드 앤드 블랙」을 다시 부른 것도 같은 흐름이었다. 가스펠의 열기와 재즈의 화음, 거리의 리듬이 한 앨범 안에 공존했다. (성탄) 1970년 겨울, 그는 나딘 매키너(Nadine McKinnor)와 함께 쓴 「디스 크리스마스」를 싱글로 냈다. 교회 성가가 아니라 소울의 문법으로 쓴 성탄 노래였다.

♪더 게토 (The Ghetto)1969실황 Donny Hathaway · 1970

르로이 허트슨과 함께 쓴 첫 싱글로, 그가 자란 동네의 풍경을 말보다 리듬으로 그렸다. 시카고 세션 시절 익힌 편곡 감각이 그대로 드러난다.

  • 낮은 음역에서 같은 음형을 되풀이하는 베이스 리프와 일렉트릭 피아노가 곡의 뼈대를 이루고, 그 위로 콩가 같은 타악기가 쉬지 않고 굴러간다.
  • 노래보다 연주가 훨씬 긴 곡이다. 목소리는 짧은 외침과 후렴 정도로 물러나 있고, 나머지는 건반의 즉흥 연주와 리듬의 반복이 채운다.
  • 같은 패턴이 계속되는데도 지루하지 않은 것은 악기가 하나씩 들고 나며 밀도를 조절하기 때문이다. 편곡자의 손길이 가장 잘 보이는 대목이다.
  • 1972년 「라이브」의 버전은 12분 가까이 늘어나고, 관객이 손뼉과 함성으로 리듬에 끼어들어 공연장이 하나의 타악기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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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 크리스마스 (This Christmas)1970공식 MV — Donny Hathaway·Lalah Hathaway

나딘 매키너와 함께 쓴 성탄 노래로, 처음엔 조용히 지나갔지만 세월이 흐르며 그의 가장 널리 불리는 곡이 됐다.

  • 도입부에서 금관 악기들(혼 섹션)이 짧은 팡파르로 들뜬 명절 기분을 단숨에 연다.
  • 리듬은 캐럴보다 소울에 가깝다. 둘째·넷째 박을 세게 치는(백비트) 드럼과 굵게 움직이는 베이스가 춤출 수 있는 성탄 노래를 만든다.
  • 목소리는 서두르지 않고 박자 뒤에 살짝 기대어 부르는데, 그 여유가 따뜻한 실내 풍경처럼 들린다.
  • 곡 끝에서는 같은 구절을 되풀이하며 즉흥으로 덧붙이는 가락(애드리브)을 쌓아 올려, 교회의 마지막 찬송처럼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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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두 목소리 · 1971–1972

(2집) 1971년 두 번째 앨범 「도니 해서웨이」는 반 매코이의 「기빙 업」으로 문을 열었고, 리언 러셀의 「어 송 포 유」가 그 뒤를 이었다. 대부분 남의 곡이었지만 그는 곡마다 템포와 화음을 새로 짰고, 노래는 원곡보다 더 느리고 깊어졌다. 이 앨범으로 그는 작곡가보다 해석자로서 먼저 이름을 얻었다. (듀엣) 같은 해 애틀랜틱의 제리 웩슬러와 아리프 마딘은 그를 하워드 시절부터 알던 로버타 플랙과 한 녹음실에 세웠다. 첫 싱글은 캐럴 킹의 「유브 갓 어 프렌드」였다. 1971년에 나온 이 듀엣은 빌보드 핫 100 29위에 올랐다. 1972년 앨범 「로버타 플랙 앤드 도니 해서웨이」에 실린 「웨어 이즈 더 러브」는 핫 100 5위에 오르고, 이듬해 그래미 시상식에서 듀오·그룹 팝 보컬 부문을 받았다. (상실) 그 사이 1971년 8월, 그를 발탁한 킹 커티스가 뉴욕 자택 앞에서 시비 끝에 흉기에 찔려 세상을 떠났다. 경력의 문을 열어 준 후견인을 잃은 일이었다. (라이브) 1972년에 나온 「라이브(Live)」는 로스앤젤레스의 트루바도어와 뉴욕의 비터 엔드 공연을 담았다. 마빈 게이의 「왓츠 고잉 온」, 존 레넌의 「질투하는 남자(Jealous Guy)」, 그리고 다시 캐럴 킹의 「유브 갓 어 프렌드」를 불렀다. 마지막 곡에서는 객석이 첫 소절부터 함께 노래해, 그가 관객을 교회 회중처럼 이끄는 장면이 그대로 남았다. 베이스의 윌리 윅스와 기타의 필 업처치, 코넬 듀프리, 그리고 훗날 형 모리스 화이트가 이끄는 어스 윈드 앤 파이어에 합류하는 드러머 프레드 화이트가 무대를 받쳤다. 이 앨범은 소울 라이브 음반의 본보기로 꼽힌다. (영화) 같은 해 그는 영화 「컴 백, 찰스턴 블루」의 음악을 맡았다. 가수와 편곡자, 작곡가의 일이 한꺼번에 몰려든 시기였다.

♪어 송 포 유 (A Song for You)1971

리언 러셀의 곡을 2집의 앞머리에 싣고 완전히 자기 노래로 바꿔 놓았다. 해석자로서의 그를 가장 잘 보여 주는 녹음이다.

  • 노래가 시작되기 전 피아노 독주가 꽤 길게 이어진다. 재즈풍 화음과 클래식풍 장식음이 섞여, 하워드에서 공부한 연주자의 얼굴이 먼저 드러난다.
  • 원곡보다 템포를 늦추고 화음을 더 복잡하게 바꿨다. 같은 멜로디인데도 훨씬 깊은 고백처럼 들리는 이유다.
  • 첫 소절은 숨소리가 들릴 만큼 낮고 조용하게 시작하고, 후반으로 갈수록 목소리가 높은 음역으로 올라가며 거칠게 터진다.
  • 절정에서는 한 음절을 여러 음으로 굽이치게 늘이는 창법(멜리스마)이 나오는데, 화려함보다 감정의 무게를 싣는 데 쓰인다.
  • 뒤에서 현악이 아주 조심스럽게 받쳐 주어, 피아노와 목소리 단 둘이 있는 듯한 친밀함이 깨지지 않는다.
♪웨어 이즈 더 러브 (Where Is the Love)1972

하워드 시절부터 알던 로버타 플랙과의 듀엣으로 핫 100 5위에 오르고 그래미를 받았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처음 대중의 정점에서 만난 곡이다.

  • 두 사람이 한 소절씩 주고받다가 후렴에서 하나로 합쳐지는 구성이다. 대화가 이중창으로 바뀌는 순간을 따라가 보면 좋다.
  • 플랙의 맑고 절제된 목소리와 해서웨이의 따뜻하고 조금 거친 목소리가 대비를 이루면서도 음색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는다.
  • 라틴 음악풍의 가벼운 타악기와 부드러운 현악이 깔려, 이별의 질문을 담은 노래인데도 무겁게 가라앉지 않는다.
  • 3분이 채 안 되는 짧은 곡이다. 군더더기 없이 끝나는 편곡이 오히려 여운을 남긴다.
♪왓츠 고잉 온 (What's Going On)1972

「라이브」 앨범의 첫 곡으로, 마빈 게이의 사회적 소울을 그만의 건반과 목소리로 다시 풀어냈다.

  • 원곡의 색소폰 대신 일렉트릭 피아노의 화음으로 문을 연다. 같은 곡이 처음부터 다른 색깔로 들린다.
  • 중반에 이어지는 건반 즉흥 연주는 재즈와 가스펠의 어법이 섞여 있어, 그가 노래하는 사람이자 연주하는 사람이었음을 보여 준다.
  • 리듬 섹션이 템포를 단단히 붙잡은 채 반복되는 짧은 음형(리프)을 굴려, 긴 즉흥이 흩어지지 않는다.
  • 관객의 박수와 환호가 곡의 일부처럼 녹음돼 있다. 같은 앨범의 「보이시스 인사이드」에서는 윌리 윅스의 베이스 독주도 함께 들어 볼 만하다.

V. 무너지는 마음 · 1973–1976

(3집) 1973년 「익스텐션 오브 어 맨(Extension of a Man)」은 그의 야심이 가장 크게 드러난 앨범이었다. 아리프 마딘과 함께 만든 이 앨범은 그가 쓴 관현악 서곡 「아이 러브 더 로드; 히 허드 마이 크라이」로 시작해 소울과 재즈, 클래식 편곡을 넘나들었다. 하워드에서 배운 작곡 공부와 교회의 기억을 한자리에 모은 작업이었지만, 판매는 앞선 앨범들에 미치지 못했다. (가사) 이 앨범의 둘째 곡 「섬데이 위일 올 비 프리」는 그가 곡을 쓰고 에드워드 하워드(Edward Howard)가 가사를 붙였다. 하워드는 훗날 해서웨이가 겪던 마음의 고통을 생각하며 가사를 썼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흔히 민권의 노래로 들리는 이 곡에는 한 친구의 안녕을 비는 마음이 겹쳐 있는 셈이다. (병) 이 무렵 그는 편집성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감정의 기복이 심해졌고, 누군가 자신을 해치려 하거나 자신의 음악을 가로채려 한다는 생각에 시달렸다고 주변 사람들은 전했다. 여러 차례 병원에 입원했고, 약을 꾸준히 먹지 못하는 시기도 있었다. 정신 질환에 대한 이해가 지금보다 훨씬 부족하던 시절이었다. (공백) 로버타 플랙과의 협업도 이 무렵 끊겼다. 두 사람 사이가 멀어진 경위는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는 1973년 이후 몇 해 동안 새 스튜디오 앨범을 내지 못했다. 시카고에서 가족과 지내며 이따금 무대에 서고 녹음실을 찾았지만, 1970년대 중반의 그는 대중의 시야에서 거의 사라졌다. 데뷔 후 불과 몇 해 만에 쌓은 이름이 빠르게 옛일이 되어 갔다.

♪섬데이 위일 올 비 프리 (Someday We'll All Be Free)1973

병이 깊어 가던 시기에 나온 곡으로, 친구가 그의 고통을 생각하며 가사를 붙였다고 전해진다. 개인의 위로와 공동체의 희망이 한 노래에 겹쳐 있다.

  • 교회 반주처럼 차분한 피아노와 느린 템포로 시작해, 서두르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간다.
  • 현악과 금관은 그가 직접 짰는데, 처음엔 멀리 있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가까이 다가오며 곡을 부풀린다.
  • 목소리는 초반의 부드러운 중음역에서 후반의 높고 갈라지는 소리로 옮겨 간다. 그 갈라짐이 기술보다 진심처럼 들린다.
  • 가사는 누군가를 다독이는 말투를 띠는데, 한 사람에게 하는 말로도, 공동체 전체에 하는 말로도 들리는 두 겹의 화법이 이 곡의 힘이다.

VI. 다시 함께 · 1977–1979

(재회) 1977년 무렵 로버타 플랙이 다시 그를 녹음실로 불렀다. 제임스 엠투메와 레지 루커스가 쓴 「더 클로저 아이 겟 투 유」는 1978년 플랙의 앨범 「블루 라이츠 인 더 베이스먼트」에 실려 빌보드 핫 100 2위, R&B 차트 1위에 올랐다. 그의 경력에서 가장 높은 순위였다. 몇 해의 공백 끝에 돌아온 그의 목소리는 젊은 날보다 한결 가라앉아 있었다. (녹음) 성공에 힘입어 두 사람은 두 번째 듀엣 앨범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의 병은 나아지지 않았다. 1979년 1월 13일 녹음실에 함께 있던 사람들은 그가 불안하고 혼란스러워 보였다고 전했다. (죽음) 그날 밤 그는 뉴욕 맨해튼의 에식스 하우스 호텔 15층 객실 창밖으로 떨어져 숨졌다. 서른셋이었다. 경찰은 객실에 몸싸움의 흔적이 없었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판단했다. 「웨어 이즈 더 러브」로 그래미를 받은 지 6년이 채 지나지 않은 때였다. (유작) 1980년, 그가 남긴 녹음을 담은 플랙의 앨범 「로버타 플랙 피처링 도니 해서웨이」가 나왔다. 「백 투게더 어게인」과 스티비 원더가 공동으로 쓴 「유 아 마이 헤븐」이 실렸다. 같은 해 미발표 공연 녹음을 모은 「인 퍼포먼스」도 나왔다. (유산) 그가 남긴 정규 앨범은 많지 않지만, 그 노래들은 후배 가수들의 교본이 됐다. 앨리샤 키스는 2001년 9·11 테러 직후의 추모 방송 「아메리카: 어 트리뷰트 투 히어로즈」에서 「섬데이 위일 올 비 프리」를 불렀다.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생전에 녹음한 「어 송 포 유」는 사후 앨범 「라이어니스: 히든 트레저스」(2011)에 실렸다. 「디스 크리스마스」는 해마다 겨울이면 다시 울리는 성탄 표준곡이 됐다.

♪더 클로저 아이 겟 투 유 (The Closer I Get to You)1978

긴 공백 뒤 플랙과 다시 만나 그의 경력 최고 순위인 핫 100 2위에 오른 곡. 그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누린 큰 성공이었다.

  • 부드러운 신시사이저와 일렉트릭 피아노가 넓게 깔리고, 느린 템포의 베이스가 그 아래를 조용히 받친다. 1970년대 후반의 매끄러운 발라드 소리다.
  • 플랙이 먼저 노래하고 해서웨이가 뒤를 이은 뒤 두 목소리가 화음으로 겹친다. 서로 거리를 좁혀 가는 곡의 주제가 짜임새에도 들어 있다.
  • 그의 목소리는 데뷔 무렵보다 한결 가라앉고 부드러워진 것처럼 들린다. 힘을 빼고 부르는 대목에 오히려 무게가 실린다.
  • 곡의 끝부분에서는 두 사람이 즉흥으로 덧붙이는 가락(애드리브)을 주고받으며 천천히 사라진다.

덜 알려진 이야기

1972년 미국 CBS에서 방영을 시작한 시트콤 「모드(Maude)」의 주제가를 부른 사람이 그였다. 앨런·메릴린 버그먼 부부와 데이브 그루신이 만든 이 가스펠풍 주제가는 1972년부터 1978년까지 방영 내내 흘렀다. 「라이브」 앨범에서 드럼을 맡은 연주자 가운데 한 명인 프레드 화이트는 당시 십 대였고, 얼마 뒤 형 모리스 화이트의 어스 윈드 앤 파이어에 들어가 그룹 전성기의 드러머가 됐다. 두 이름이 이어진다는 사실은 앨범의 연주자 명단에만 남아 있어 잘 거론되지 않는다. 「디스 크리스마스」는 1970년 처음 나왔을 때 큰 히트가 아니었다. 이 곡이 성탄 표준곡으로 자리 잡은 것은 재발매와 라디오의 반복 방송, 후대 가수들의 다시 부르기가 쌓인 뒤의 일이다. 그가 생전에 이 곡의 위상을 보지 못했다는 점은 흔히 간과된다. 2013년에 나온 네 장짜리 모음집 「네버 마이 러브: 디 앤솔러지」에는 1970년대에 녹음된 뒤 서랍에 남아 있던 미발표 스튜디오 녹음이 실렸다. 공식 앨범이 끊겼던 시기에도 그가 녹음을 이어 가고 있었다는 사실이 사후 수십 년 만에 드러난 셈이다.

용어 노트 📚🔎

가스펠

(말뜻) 영어 gospel 은 옛 영어 godspel, 곧 좋은(gōd) 소식(spel)에서 온 말로, 기독교의 복음(福音) 즉 기쁜 소식을 뜻한다. (팝에서) 미국 흑인 교회에서 자라난 종교 음악을 가리킨다. 인도자가 한 구절을 부르면 회중이 받아 부르고, 감정이 차오르면 손뼉과 외침이 더해진다. 학교 합창부에서 지휘자가 먼저 한 줄을 부르고 모두가 따라 부르는데, 따라 부를수록 점점 목소리가 커지고 신이 나는 장면을 떠올리면 비슷하다. 소울과 R&B의 노래법 상당 부분이 가스펠에서 나왔다. (다른 데서는) 영어에서 gospel truth 라고 하면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라는 뜻으로 쓴다.

소울

(말뜻) 영어 soul 은 영혼, 마음이라는 뜻이다. 노래에 마음을 온전히 싣는다는 뜻이 이름에 담겨 있다. (팝에서) 1950~70년대 미국 흑인 음악가들이 가스펠의 뜨거운 노래법을 사랑과 삶, 사회 이야기에 옮겨 담아 만든 대중음악이다. 교회에서 쓰던 창법과 화음에 리듬 앤 블루스의 박자가 합쳐졌다. 같은 반 친구가 장기 자랑에서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을 넘어, 듣는 사람이 그 친구의 속마음까지 느끼게 될 때가 있는데, 소울은 바로 그런 전달을 목표로 하는 음악이다. (다른 데서는) 소울 푸드는 미국 남부 흑인 가정의 전통 요리를 가리키고, 소울메이트는 마음이 꼭 맞는 짝을 말한다.

편곡

(말뜻) 편곡(編曲)은 엮을 편(編)에 노래 곡(曲)을 쓴 말로, 이미 있는 곡을 새로 엮어 짠다는 뜻이다. (팝에서) 멜로디와 가사는 그대로 두고, 어떤 악기가 언제 들어오고 어떤 화음을 쓰며 템포를 얼마로 할지를 정하는 일이다. 같은 곡도 편곡에 따라 신나는 춤곡이 되기도 하고 조용한 발라드가 되기도 한다. 같은 라면이라도 어떤 사람은 달걀과 파를 넣고 어떤 사람은 치즈를 넣어 전혀 다른 맛을 내는 것과 비슷하다. 도니 해서웨이는 가수이기 전에 뛰어난 편곡자였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는 잘 쓰지 않지만, 기존 이야기를 새로 각색한다는 비유로 쓰이기도 한다.

세션 연주자

(말뜻) 영어 session 은 라틴어 sessio, 곧 앉아 있음에서 온 말로, 사람들이 모여 일정 시간 일하는 한 차례의 자리를 뜻한다. (팝에서) 특정 밴드의 정식 멤버가 아니라, 녹음이 있을 때마다 불려 가 다른 가수의 음반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다. 앨범 표지에는 이름이 작게 나오지만 곡의 소리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학교 연극에서 주연은 아니지만 여러 반 공연에 불려 다니며 조명이나 음향을 맡아 주는 솜씨 좋은 친구를 생각하면 된다. (다른 데서는) 국회의 회기나 회의 시간, 컴퓨터에서 한 번 접속해 있는 동안의 기록도 세션이라고 부른다.

멜리스마

(말뜻) 그리스어 melisma 는 노래, 가락이라는 뜻의 말에서 왔다. (팝에서) 가사의 한 음절을 여러 음으로 굽이치게 늘여 부르는 창법이다. 예를 들어 사랑이라는 말의 '사'를 한 음으로 끝내지 않고 위아래로 물결치듯 여러 음을 오가며 부르는 식이다. 운동장에서 친구 이름을 부를 때 마지막 글자를 길게 늘이며 음을 오르내리는 것과 비슷하다. 가스펠에서 시작해 소울과 R&B 가수들의 대표적인 기술이 됐다. (다른 데서는) 중세 교회 성가 연구에서도 같은 말을 쓰는데, 이때는 한 음절에 여러 음이 붙는 선율 형식을 가리킨다.

리프

(팝에서) 짧은 음형을 여러 번 되풀이해 곡의 뼈대를 만드는 연주를 말한다. 기타나 베이스, 건반이 맡는 경우가 많고, 듣는 사람은 이 반복 덕분에 곡을 쉽게 기억한다. 줄넘기를 할 때 같은 박자로 계속 넘다 보면 몸이 저절로 리듬을 타게 되는데, 리프는 곡 안에서 그 줄넘기 박자 같은 역할을 한다. 「더 게토」의 낮은 베이스 반복이 좋은 예다.

애드리브

(말뜻) 라틴어 ad libitum 을 줄인 말로, 마음 내키는 대로라는 뜻이다. (팝에서) 악보나 정해진 멜로디에 없는 가락을 노래하는 사람이 즉석에서 덧붙이는 것이다. 주로 곡의 끝부분이나 후렴이 반복될 때 나오며, 가수의 개성과 실력이 가장 잘 드러나는 순간이다. 친구들과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다가 누군가 마지막 소절에서 장난스럽게 음을 바꿔 길게 늘여 부르는 것이 바로 작은 애드리브다. (다른 데서는) 연극이나 방송에서 대본에 없는 말을 즉석에서 하는 것도 애드리브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