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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rtis Mayfield

커티스 메이필드 (1942–1999)

흑인 공동체의 자존과 희망을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래한 사람.

한눈에 보기 🔭💭

1. 뿌리미국 일리노이 시카고 출생할머니의 교회F샵 조율 기타2. 그룹제리 버틀러와 결성「집시 우먼」 재기3인조 임프레션스3. 시대「피플 겟 레디」민권운동의 찬가레이블 커텀 설립4. 솔로앨범 『커티스』「무브 온 업」「슈퍼플라이」 1위5. 작가아레사 『스파클』애틀랜타 이주디스코 시대의 그늘6. 말년1990년 무대 사고누워서 만든 마지막 앨범1999년 별세메이필드1942–1999임프레션스의 행진곡에서 「슈퍼플라이」까지, 부…
무대의 여정 🧭🗺️
N미국시카고1942–1980애틀랜타1980–1999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가족애너벨 메이필드

    할머니이자 목회자로, 그가 처음 노래하고 화음을 익힌 교회를 이끌었다.

  • 동료제리 버틀러

    교회 성가대에서 만나 임프레션스를 함께 시작했고, 그가 독립한 뒤에도 메이필드의 곡으로 히트를 내며 평생의 동료로 남았다.

  • 동료조니 페이트

    1960년대 임프레션스와 「슈퍼플라이」의 편곡을 맡아 메이필드의 노래에 혼과 현악의 옷을 입혔다.

  • 동료에디 토머스

    임프레션스의 매니저로 오래 함께했고, 1968년 레이블 커텀을 공동으로 세웠다.

  • 동료아레사 프랭클린

    1976년 영화음악 앨범 『스파클』을 메이필드가 작곡·제작했고, 훗날 그의 헌정 앨범에도 참여했다.

  • 영향밥 말리

    임프레션스의 화음을 본보기로 삼았고, 「피플 겟 레디」를 자신의 「원 러브」에 녹여 메이필드를 공동 작곡자로 올렸다.

YouTube에서 5곡 이어 듣기 ↗

I. 시카고의 소년 · 1942–1957

(출생) 1942년 6월,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케네스 메이필드는 그가 다섯 살 무렵 집을 떠났고, 어머니 메리언이 여러 형제자매를 홀로 키웠다. 가족은 시카고의 공공주택과 셋방을 전전했으며, 십대 무렵에는 북쪽의 카브리니-그린 단지에 자리를 잡았다. (어머니) 어머니는 그에게 피아노를 가르쳤고, 흑인 시인 폴 로런스 던바의 시를 읽어 주었다. 말의 운율과 이미지에 대한 감각은 이때 몸에 뱄다고 그는 훗날 회고했다. 노래의 언어를 설교처럼 거창하게 쓰기보다 시처럼 단정하게 다듬는 습관은 여기서 비롯됐다. (교회) 할머니 애너벨 메이필드는 '트래블링 소울스 스피리추얼리스트 교회'를 이끄는 목회자였다. 소년은 그 교회에서 노래했고, 성가대에서 세 살 위의 제리 버틀러를 만났다. 두 사람은 가스펠 그룹 노던 주빌리 가스펠 싱어스에서 함께 노래하며 화음을 익혔다. (기타) 기타는 독학이었다. 피아노의 검은 건반을 짚던 감각대로 여섯 줄을 F샵 장화음에 맞춰 조율했고, 평생 이 독특한 조율을 바꾸지 않았다. 남다른 화음과 부드럽게 울리는 반주는 정규 교육 대신 혼자 길을 찾은 결과였다. 그는 웰스 고등학교를 마치지 않고 음악의 길로 들어섰다.

II. 임프레션스 · 1957–1962

(루스터스) 테네시주 채터누가에서 시카고로 올라온 보컬 그룹 루스터스에 제리 버틀러가 합류했고, 버틀러의 권유로 열다섯 살의 메이필드도 기타와 화음을 맡아 들어갔다. 그룹은 임프레션스로 이름을 바꿨고, 1958년 비제이 계열 레이블에서 낸 「포 유어 프레셔스 러브」가 크게 히트했다. (이탈) 음반이 '제리 버틀러 앤 디 임프레션스'로 표기되면서 버틀러는 곧 독립했고, 남은 그룹은 후속 히트 없이 흔들렸다. 메이필드는 생계를 위해 버틀러의 순회공연에 기타리스트로 따라나섰다. (작곡) 그 시기 그는 버틀러에게 「히 윌 브레이크 유어 하트」를 써 주었고, 1960년 이 곡이 팝 차트 상위권에 오르며 작곡가로 이름을 알렸다. 여기서 번 돈으로 그는 흩어진 임프레션스를 뉴욕으로 불러 모아 다시 녹음을 시작했다. 일찍부터 자신의 노래 출판권을 직접 관리하려 한 것도 이 무렵의 경험 덕이었다 — 남이 쓴 계약서에 휘둘리던 동료들을 가까이서 보았기 때문이다. (재기) 1961년 ABC-파라마운트에서 낸 「집시 우먼」이 R&B 차트 2위에 오르며 그룹은 되살아났다. 원년 멤버 프레드 캐시가 돌아왔고, 1962년 브룩스 형제가 떠난 뒤 임프레션스는 메이필드·샘 구든·프레드 캐시의 3인조로 굳어졌다. 그는 리드 보컬이자 작곡가, 사실상의 프로듀서로 그룹의 중심이 됐다.

♪집시 우먼 (Gypsy Woman)1961실황 Curtis Mayfield · 1990 독일

버틀러의 공연에 따라다니며 번 돈으로 그룹을 다시 모은 뒤 낸 재기작이다. 스무 살이 채 안 된 메이필드가 작곡가이자 리드 보컬로 홀로 선 첫 증거였다.

  • 도입부에서 캐스터네츠처럼 딸깍이는 타악기와 라틴풍 리듬이 춤추는 집시를 눈앞에 그리듯 장면을 연다.
  • 메이필드의 리드는 힘을 빼고 높은 음역에서 가볍게 떠다니는 테너다. 외치지 않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법이 이후 그의 평생 특징이 된다.
  • 멤버들이 뒤에서 낮게 받쳐 주는 화음이 리드 보컬과 겹쳐지며, 가스펠 그룹 시절 다진 화음 감각이 팝의 틀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 3분이 안 되는 짧은 곡 안에 처음 만남과 아쉬운 이별까지 한 편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짜임새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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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행진의 노래 · 1963–1970

(편곡) 그룹은 시카고로 돌아와 편곡가 조니 페이트와 손잡았다. 1963년 「잇츠 올 라이트」에서부터 페이트의 경쾌한 혼 편곡과 세 사람이 리드를 주고받는 화음이 맞물려 '시카고 소울'이라 불리는 소리가 자리 잡았다. 화려한 기교보다 가볍고 단정한 울림이 특징이었다. (민권) 1960년대 중반 미국 남부의 민권운동이 절정으로 치닫자 그의 노래도 달라졌다. 1964년 「킵 온 푸싱」과 1965년 「피플 겟 레디」는 가스펠의 언어를 빌려 인내와 희망을 노래했고, 행진과 집회에서 불렸다.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이 노래들을 아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분노를 외치기보다 존엄을 지키라고 다독이는 화법을 택했다. (자존) 1968년 킹 목사가 암살된 해에 발표한 「위어 어 위너」는 흑인의 자부심을 정면으로 노래해 R&B 차트 1위에 올랐지만, 일부 라디오 방송국은 방송을 꺼렸다. 이듬해의 「초이스 오브 컬러스」는 공동체 안팎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커텀) 그는 노래뿐 아니라 사업의 주인이 되려 했다. 1968년 오랜 매니저 에디 토머스와 함께 레이블 커텀(Curtom)을 세웠고, 임프레션스도 이곳으로 옮겼다. 자신이 쓴 곡의 출판권과 음반을 직접 쥔 흑인 음악가는 당시 드물었다. 커텀은 시카고의 젊은 음악가들이 드나드는 작업장이 됐다.

♪킵 온 푸싱 (Keep On Pushing)1964

민권운동이 거세지던 해에 나와 행진하는 사람들의 노래가 됐다. 가스펠의 언어로 끈기를 노래한 그의 화법이 처음 시대와 맞물린 곡이다.

  • 세 사람이 한 소절씩 리드를 넘겨받는 임프레션스 특유의 짜임새가 뚜렷하다. 샘 구든의 낮은 목소리와 메이필드의 높은 목소리가 대비를 이룬다.
  • 조니 페이트가 편곡한 혼 섹션이 짧고 힘 있게 끊어 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걸음 같은 추진력을 만든다.
  • 가사는 장애물이 있어도 계속 밀고 나가겠다는 다짐을 담는데, 구호처럼 외치는 대신 차분히 되뇌듯 불러 오히려 단단하게 들린다.
  • 교회 성가에서 빌려 온 듯한 선율의 뼈대가 들리며, 세속의 히트곡과 신앙의 노래 사이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을 들을 수 있다.
♪피플 겟 레디 (People Get Ready)1965노래 Curtis Mayfield

할머니의 교회에서 배운 기차의 비유를 빌려, 누구에게나 열린 구원의 길을 노래했다. 민권운동의 찬가이자 그의 대표작으로 남았다.

  • 도입부의 기타는 그가 독자적으로 맞춘 F샵 조율에서 나오는 맑고 부드러운 울림이다. 줄을 긁기보다 화음을 살짝 꾸며 가며 퍼뜨리는 연주가 곡 전체의 숨결을 정한다.
  • 느린 템포 위에서 세 사람이 구절을 나눠 부르는데, 누구도 앞으로 튀어나오지 않는 절제가 기도 같은 분위기를 만든다.
  • 편곡은 현악과 종소리 같은 울림을 은은하게 깔아 가스펠의 경건함을 팝의 질감으로 옮겼다.
  • 기차에 올라타라는 초대의 이미지는 특정인을 지목하지 않고 모두를 부르는 화법이라, 분노보다 포용으로 들린다. 훗날 수많은 가수가 이 곡을 다시 부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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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홀로서기 · 1970–1972

(독립) 1970년 그는 임프레션스를 떠나 솔로로 나섰다. 3분짜리 히트 싱글의 틀에서 벗어나 더 길고 직설적인 노래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룹은 다른 리드 보컬을 맞아 활동을 이어 갔고, 그는 작곡과 제작으로 계속 도왔다. (커티스) 첫 솔로 앨범 『커티스』는 도시 빈민가의 마약과 폭력, 정치에 대한 냉소를 거침없이 다뤘다. 첫 곡부터 왜곡된 베이스와 웅성거림으로 듣는 이를 불안한 거리로 끌고 들어갔고, 이어지는 「무브 온 업」은 그 한복판에서 위로 올라가라고 북돋웠다. 콩가와 혼이 뒤엉킨 긴 연주는 소울과 훵크가 어디까지 넓어질 수 있는지 보여 주었다. (무대) 1971년 뉴욕 클럽에서 녹음한 『커티스/라이브!』와 『루츠』가 뒤를 이었다. 소규모 밴드와 함께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그의 무대는 화려한 쇼보다 대화에 가까웠다. (슈퍼플라이) 1972년 고든 파크스 주니어 감독의 영화 「슈퍼플라이」의 음악을 맡았다. 영화는 마약상을 멋지게 그렸다는 논란을 낳았지만, 그는 대본을 읽고 인물 하나하나의 처지를 노래로 풀어 마약의 비참함을 드러냈다. 사운드트랙은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4주간 머물렀고 「프레디스 데드」와 「슈퍼플라이」가 잇따라 히트했다. 그는 영화 속 클럽 장면에 직접 나와 「푸셔맨」을 부르기도 했다. 영화보다 음반이 더 오래 기억됐다는 평가가 지금도 이어진다.

♪무브 온 업 (Move On Up)1970실황 Curtis Mayfield

그룹을 떠나 처음 낸 솔로 앨범의 중심곡이다. 싱글의 틀을 벗고 싶었던 그의 바람이 9분 가까운 연주로 터져 나왔다.

  • 처음 터지는 혼 섹션의 팡파르가 곡의 문을 활짝 열고, 그 뒤로 콩가와 봉고가 쉼 없이 몰아치며 빠른 그루브를 이끈다.
  • 메이필드는 높은 음역에서 가볍지만 다급하게 노래하며, 포기하지 말고 위로 올라가라고 북돋는다. 앞선 곡들의 어두운 거리 묘사와 대비되는 희망의 곡이다.
  • 앨범판은 노래가 끝난 뒤에도 타악기와 혼, 기타가 길게 즉흥 연주를 이어 가는데, 이 부분에서 소울이 훵크와 재즈 쪽으로 넓어지는 모습을 들을 수 있다.
  • 미국보다 영국에서 먼저 싱글 히트가 됐고, 2005년 카니예 웨스트의 「터치 더 스카이」가 혼 도입부를 따다 쓰는(샘플링) 등 지금도 새 세대에게 불려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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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디스 데드 (Freddie's Dead)1972실황 Curtis Mayfield · 1972 콘서트

영화 「슈퍼플라이」의 조연 프레디의 죽음을 다룬 곡이다. 영화가 마약상을 화려하게 그릴 때 그는 길거리에서 쓰러지는 이의 비참함을 노래했다.

  • 낮은 음역에서 끈질기게 반복되며 곡의 뼈대를 이루는 베이스 리프가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붙든다.
  • 페달을 밟아 소리를 '와와' 하고 울게 만드는(와와 페달) 기타가 베이스 위를 맴돌며 1970년대 도시 영화의 질감을 만든다.
  • 조니 페이트가 편곡한 현악과 관악이 긴박하게 끼어들어, 3분 남짓한 곡이 영화 한 장면처럼 들린다.
  • 메이필드는 슬픔을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거의 보도하듯이 노래한다. 그 차분함이 오히려 마약의 해악에 대한 경고를 무겁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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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스크린과 그늘 · 1973–1989

(영화음악) 「슈퍼플라이」의 성공 뒤 영화음악 의뢰가 이어졌다. 1974년 「클로딘」에서는 글래디스 나이트 앤 더 핍스에게 곡을 써 주었고, 1975년 「레츠 두 잇 어게인」에서는 스테이플 싱어스에게 팝 차트 1위곡을 안겼다. 1976년에는 아레사 프랭클린의 『스파클』을 작곡·제작해 「섬싱 히 캔 필」을 R&B 1위에 올렸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 대신 다른 가수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가 됐다. (아메리카) 1975년 앨범 『데어스 노 플레이스 라이크 아메리카 투데이』는 1937년 홍수 이재민들이 '미국식 생활'을 자랑하는 광고판 아래 줄 선 사진을 그림으로 옮겨 표지에 썼다. 음악은 느리고 침잠했으며, 경제 불황과 공동체의 피로를 차분하게 응시했다. (디스코) 1970년대 후반 디스코가 시장을 휩쓸자 그의 사려 깊은 소울은 설 자리를 잃어 갔다. 커텀은 배급사를 옮기며 버텼지만 1980년 무렵 사실상 문을 닫았다. (애틀랜타) 그는 1980년 가족과 함께 조지아주 애틀랜타로 이주했다. 시카고의 거리에서 노래를 길어 올리던 사람이 남부의 조용한 집에 정착한 것이다. 1983년에는 제리 버틀러와 함께 임프레션스 재결합 공연에 나서 옛 동료들과 다시 무대에 섰고, 작은 레이블을 통해 꾸준히 음반을 냈다.

VI. 누워서 부른 노래 · 1990–1999

(사고) 1990년 8월 13일, 뉴욕 브루클린 플랫부시의 야외 공연장에서 무대에 오르려던 순간 강풍에 조명 구조물이 넘어져 그를 덮쳤다. 목뼈가 부러졌고 목 아래가 마비됐다. 마흔여덟 살이었다. 그는 다시 기타를 칠 수 없게 됐다. (헌정) 1990년대 초 그의 음악에 빚진 이들이 응답했다. 1994년 발매된 헌정 앨범 『어 트리뷰트 투 커티스 메이필드』에는 아레사 프랭클린, 엘턴 존, 에릭 클랩턴, 브루스 스프링스틴, 글래디스 나이트 등이 참여했고, 휘트니 휴스턴은 그가 『스파클』을 위해 썼던 「룩 인투 유어 하트」를 불렀다. 그는 1994년 그래미 레전드상, 1995년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임프레션스로는 1991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녹음) 1996년 그는 마지막 앨범 『뉴 월드 오더』를 냈다. 앉아서는 폐에 힘이 실리지 않아 침대에 누운 채 중력의 도움을 받아 숨을 모으며, 한두 줄씩 끊어 녹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목소리는 예전보다 낮고 숨결이 많았지만 희망을 말하는 태도는 그대로였다. 앨범은 그래미 후보에 올랐다. (작별) 당뇨가 악화돼 1998년 오른쪽 다리를 절단했다. 1999년 솔로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다시 이름을 올렸으나 몸이 허락하지 않아 시상식에는 가지 못했다. 그해 12월 26일, 조지아주 로즈웰의 병원에서 쉰일곱 살로 세상을 떠났다. 아들 토드 메이필드는 훗날 전기 『트래블링 소울』을 써서 아버지의 삶을 기록했다.

♪뉴 월드 오더 (New World Order)1996공식 MV — Curtis Mayfield

전신 마비 뒤 누운 채 한두 줄씩 녹음해 완성한 마지막 앨범의 표제곡이다. 몸은 묶였지만 희망을 말하는 그의 태도는 1960년대와 다르지 않았다.

  • 목소리는 전성기보다 낮고 숨결이 많이 섞여 있다. 한 번에 길게 부르지 못해 짧게 끊어 녹음한 사정을 알고 들으면 구절 사이의 이음새가 다르게 들린다.
  • 1990년대 R&B의 매끄러운 드럼 프로그래밍과 키보드 위에, 그의 옛 곡들을 떠올리게 하는 부드러운 화음이 얹힌다.
  • 새 세상의 질서를 노래하는 가사는 젊은 시절의 행진곡들처럼 공동체의 존엄과 화해를 말한다. 30년의 간격을 두고 같은 메시지가 이어진다.
  • 기타를 칠 수 없게 된 그 대신 다른 연주자들이 그의 스타일을 따라 연주한 부분에서, 그가 남긴 소리가 이미 하나의 언어가 됐음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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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알려진 이야기

그의 기타 소리가 남달랐던 이유는 조율에 있었다. 그는 피아노의 검은 건반만 짚어 연주하던 어린 시절의 감각을 기타로 옮겨, 여섯 줄을 F샵 장화음으로 맞췄다. 정식 레슨을 받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선택이었고, 그는 이 조율을 평생 고수했다. 그 결과 그의 반주를 일반 조율로 똑같이 따라 치기는 어렵다. 기타리스트들 사이에서는 오래전부터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의 노래와 메시지에 가려 대중에게는 잘 언급되지 않았다. 커텀은 메이필드 한 사람의 레이블이 아니었다. 젊은 시절의 도니 해서웨이가 이곳에서 편곡자·프로듀서로 일하며 경력을 시작했고, 1969년 커텀에서 듀엣 싱글을 내기도 했다. 해서웨이의 이름은 이후 애틀랜틱 레코드 시절의 명성으로 기억되면서 커텀 시절은 전기의 각주로 밀려났다. 「피플 겟 레디」는 바다 건너 자메이카에서도 살아남았다. 웨일러스는 1960년대 스카 시절부터 임프레션스의 화음을 본보기로 삼았고, 밥 말리는 1977년 『엑소더스』에 실은 「원 러브/피플 겟 레디」에서 메이필드를 공동 작곡자로 올렸다. 레게의 대표곡 뒤에 시카고 소울이 있다는 사실은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토록 많은 상과 헌사를 받았지만, 그는 현역 시절 경쟁 부문 그래미상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 그가 받은 그래미는 사고 이후의 레전드상과 평생공로상뿐이다. 「슈퍼플라이」가 앨범 차트 1위에 올랐던 1970년대에도 수상은 비켜 갔고, 그의 가치가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은 그가 더는 기타를 칠 수 없게 된 뒤였다.

용어 노트 📚🔎

팔세토

(말뜻) 팔세토(falsetto)는 이탈리아어로 '가짜'를 뜻하는 falso 에서 온 말로, 평소 목소리가 아닌 '가짜 목소리'라는 뜻이다. (팝에서) 성대를 얇게 써서 평소 음역보다 훨씬 높은 음을 가볍고 부드럽게 내는 창법이다. 소울 음악에서는 남자 가수가 이 소리로 부드럽고 애틋한 감정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고, 커티스 메이필드의 높고 가벼운 목소리도 이 계열로 자주 이야기된다. 친구를 놀래 주려고 갑자기 아주 가늘고 높은 목소리를 낼 때를 떠올리면 된다 — 그 소리를 힘을 빼고 고르게 다듬은 것이 팔세토다.

오픈 튜닝

(말뜻) 영어 open tuning 은 '열린 조율'이라는 뜻으로, 왼손으로 아무 줄도 누르지 않고 '열어 둔' 상태로 쳐도 화음이 울리게 맞춘다는 데서 왔다. (팝에서) 기타의 여섯 줄을 일반적인 음 대신 하나의 화음이 되도록 맞추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손가락 하나로 줄을 가로질러 눌러도 바로 화음이 나고, 일반 조율과는 다른 독특한 울림이 생긴다. 메이필드는 F샵 화음으로 맞춘 기타를 평생 썼다. 리코더를 불 때 구멍을 다 열어도 아무 음이나 나는 대신, 처음부터 듣기 좋은 화음이 나도록 악기를 고쳐 놓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비슷하다.

가스펠

(말뜻) 가스펠(gospel)은 옛 영어 god-spel, 즉 '좋은 소식'에서 온 말로, 기독교에서 예수의 가르침을 담은 '복음'을 뜻한다. (팝에서) 미국 흑인 교회에서 발전한 종교 음악으로, 힘찬 합창과 손뼉, 목사와 신도가 주고받는 노래가 특징이다. 소울과 R&B 가수들 상당수가 교회에서 노래를 배웠고, 메이필드도 할머니의 교회에서 가스펠로 화음을 익혔다. 학교 합창대회에서 반 친구들이 다 같이 목소리를 모아 부를 때의 뭉클함이 있다면, 가스펠은 그 감정을 신앙과 공동체의 힘으로 끌어올린 음악이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는 '가스펠처럼 믿는다'처럼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진리라는 뜻으로도 쓴다.

콜 앤 리스폰스

(말뜻) 영어 call and response 는 '부르고 답하기'라는 뜻이다. (팝에서) 한 사람이 한 구절을 부르면 다른 사람이나 무리가 그에 답하듯 이어 부르는 방식이다. 흑인 교회에서 목사가 외치면 신도들이 응답하던 전통에서 나왔고, 임프레션스처럼 리드 보컬과 화음 파트가 주고받는 노래에 고스란히 이어졌다. 체육 시간에 선생님이 '하나, 둘!' 하고 외치면 반 전체가 '셋, 넷!' 하고 받는 것과 같은 구조다.

출판권

(팝에서) 노래 자체, 즉 작곡과 가사에 대한 권리를 관리하고 거기서 나오는 돈을 받는 권리다. 녹음된 음반에 대한 권리(마스터)와는 따로 있어서, 다른 가수가 그 노래를 부르거나 영화·광고에 쓰일 때마다 출판권을 가진 쪽에 돈이 들어간다. 1950~60년대에는 많은 흑인 음악가가 이 권리를 레이블에 넘긴 채 일했는데, 메이필드는 일찍부터 자기 곡의 출판권을 직접 쥐었다. 반 친구가 내가 만든 보드게임 규칙을 빌려 쓸 때마다 사용료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 게임판을 누가 만들었든 규칙을 만든 사람에게 몫이 간다. (다른 데서는) 책 분야에서는 원고를 책으로 펴내 팔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와와 페달

(말뜻) 와와(wah-wah)는 이 장치를 거친 기타 소리가 사람이 '와-와-' 하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는 데서 붙은 소리흉내 말이다. (팝에서) 기타와 앰프 사이에 연결해 발로 밟는 장치로, 페달을 앞뒤로 움직이면 소리의 높은 부분과 낮은 부분이 번갈아 강조되며 우는 듯한 소리가 난다. 1970년대 훵크와 영화음악에서 특히 많이 쓰였고, 「프레디스 데드」에서 그 소리를 분명히 들을 수 있다. 손바닥으로 입을 막았다 뗐다 하며 '아' 소리를 내면 '와와' 하고 들리는데, 페달이 바로 그 일을 기계로 해 준다.

샘플링

(말뜻) 샘플(sample)은 '견본', '전체에서 떼어 낸 일부'라는 뜻이다. (팝에서) 이미 녹음된 다른 곡의 일부분을 잘라 와 새 곡에 다시 쓰는 기법이다. 힙합에서 특히 발달했는데, 옛 소울 음반의 드럼이나 혼 소리를 반복해 새 노래의 뼈대로 삼는 식이다. 메이필드의 곡들은 수많은 힙합 음악가에게 샘플로 쓰였다. 학교 발표 자료를 만들 때 유명한 사진 한 장을 오려 내 포스터에 붙이고 그 위에 내 글을 써 넣는 것과 비슷하다 — 다만 음악에서는 원작자의 허락과 사용료가 필요하다. (다른 데서는) 과학과 통계에서는 전체를 조사하기 위해 일부를 뽑아 보는 '표본 추출'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