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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tha Franklin

아레사 프랭클린 (1942–2018)

교회에서 배운 목소리를 팝 차트 꼭대기까지 데려가, 존중이라는 말을 한 시대의 요구로 바꾼 가수.

한눈에 보기 🔭💭

1. 뿌리미국 테네시 멤피스 출생목사 아버지·교회열 살에 어머니 잃음2. 견습컬럼비아와 계약재즈·표준곡 시절존 해먼드의 발굴3. 정점머슬숄스 녹음「Respect」 1위소울의 여왕4. 신앙킹 목사 장례 무대『Amazing Grace』아버지의 피격5. 재기아리스타·클라이브조지 마이클 듀엣명예의 전당 헌액6. 말년오바마 취임식캐럴 킹 헌정 무대디트로이트 영면프랭클린1942–2018디트로이트 목사의 딸, 가스펠의 힘으로 소울을…
무대의 여정 🧭🗺️
N미국이집트멤피스1942–1944버펄로1944–1946디트로이트1946–1960뉴욕1960–1970년대로스앤젤레스1978–1982디트로이트1982–2018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가족C. L. 프랭클린

    설교 녹음으로 명성을 얻은 침례교 목사이자 아버지로, 딸을 순회 공연에 데리고 다니며 음악과 민권운동의 세계로 이끌었다.

  • 스승제임스 클리블랜드

    어린 아레사에게 가스펠 피아노와 화음을 가르쳤고, 1972년 『Amazing Grace』 녹음에서 그의 곁을 지켰다.

  • 동료제리 웩슬러

    애틀랜틱의 프로듀서로, 그를 피아노 앞에 앉혀 교회의 소리 그대로 노래하게 함으로써 소울의 여왕을 탄생시켰다.

  • 동료클라이브 데이비스

    아리스타 레코드 수장으로 1980년대 그의 두 번째 전성기를 이끌었고, 2014년 마지막 무렵의 앨범까지 함께했다.

  • 영향휘트니 휴스턴

    백 보컬 시시 휴스턴의 딸로, 그를 이모라 부르며 자라 그의 창법을 다음 세대로 이었다.

  • 우정조지 마이클

    1987년 듀엣 「I Knew You Were Waiting (for Me)」로 그에게 20년 만의 핫 100 1위를 함께 안겼다.

YouTube에서 7곡 이어 듣기 ↗

I. 뉴 베설 교회의 딸 · 1942–1959

(출생) 1942년 3월,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C. L. 프랭클린은 침례교 목사였고, 어머니 바버라 시거스 프랭클린은 피아노를 치고 노래하던 가스펠 가수였다. 위로 오빠 본과 언니 어마, 오빠 세실이 있었고 아래로 여동생 캐럴린이 있었다. 가족은 아버지의 부임지를 따라 뉴욕주 버펄로를 거쳐 1946년 무렵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 자리 잡았다. (상실) 1948년 어머니가 집을 떠나 버펄로로 돌아갔고, 1952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때 아레사는 열 살이었다. 집안 살림은 할머니 레이철이 맡았다. 아레사는 훗날 자서전에서 어머니에 대해 말을 아꼈지만, 어린 시절의 그 빈자리는 평생 그의 수줍고 조심스러운 성격과 함께 언급되곤 했다. (교회) 아버지가 이끈 뉴 베설 침례교회와 집은 그 자체로 음악 학교였다. 설교 녹음으로 전국적 명성을 얻은 아버지의 집에는 머핼리아 잭슨, 클래라 워드, 샘 쿡, 다이나 워싱턴 같은 이들이 드나들었다. 피아노는 귀로 익혔고, 가스펠 가수이자 편곡자 제임스 클리블랜드에게 화음과 반주의 요령을 배웠다. 클래라 워드의 노래를 듣고 가수가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순회) 십대 초반부터 아버지의 가스펠 순회 공연에 따라나섰다. 1956년, 열네 살에 뉴 베설 교회에서 녹음한 노래들이 앨범 『Songs of Faith』로 나왔다. 이 시기 그는 열두 살과 열다섯 살에 두 아들을 낳았고, 아이들은 할머니와 가족이 돌봤다. 고등학교는 마치지 않았다. 가스펠에서 팝으로 건너가 성공한 샘 쿡의 길은 그에게 다음 행선지를 보여 주었다.

II. 뉴욕의 긴 견습 · 1960–1966

(뉴욕) 1960년, 열여덟 살의 아레사는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 뉴욕으로 갔다. 디트로이트에서 모타운을 세운 베리 고디도 관심을 보였지만, 그는 컬럼비아 레코드와 계약했다. 빌리 홀리데이와 밥 딜런을 발굴한 프로듀서 존 해먼드가 그를 두고 홀리데이 이후 가장 뛰어난 목소리라고 평한 일은 널리 알려져 있다. (표준곡) 컬럼비아는 그를 재즈와 브로드웨이 표준곡을 부르는 세련된 가수로 키우려 했다. 첫 싱글 「Today I Sing the Blues」는 R&B 차트 상위권에 올랐고, 1961년 「Rock-a-Bye Your Baby with a Dixie Melody」는 팝 차트에 진입했다. 그러나 큰 악단과 현악에 둘러싸인 녹음에서 교회에서 단련한 목소리의 불길은 자주 눌려 있었다. 여러 프로듀서가 번갈아 맡으며 방향이 흔들렸고, 판매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결혼) 1961년 테드 화이트와 결혼했고, 화이트가 매니저를 맡았다. 이 무렵 그는 클럽과 극장을 도는 고된 일정을 소화하며 무대 경험을 쌓았다. 수줍음이 많아 무대 밖에서는 말수가 적었지만, 피아노 앞에 앉으면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동료들은 전한다. (전환) 1966년 컬럼비아와의 계약이 끝나 갈 무렵, 그는 이미 여섯 해 동안 십여 장의 앨범을 낸 베테랑이었다. 실패라기보다는 긴 견습에 가까웠던 이 시기에 그는 재즈 가수들의 프레이징, 곧 가사를 어디서 끊고 어디서 밀어붙일지를 고르는 감각을 몸에 익혔다. 그 감각이 다음 장에서 가스펠의 힘과 만나게 된다.

♪록어바이 유어 베이비 위드 어 딕시 멜로디 (Rock-a-Bye Your Baby with a Dixie Melody)1961노래 Aretha Franklin · TV 프로그램 〈Shindig!〉

1910년대 알 졸슨이 부른 옛 노래를 컬럼비아가 큰 악단 편곡으로 다시 꾸민 곡이다. 표준곡 가수로 키우려던 컬럼비아의 기획과, 그 틀을 비집고 나오는 교회의 목소리가 한 곡 안에 함께 들어 있다.

  • 현악과 금관이 화려하게 받치는 전형적인 1960년대 초 대중가요 편곡이다. 애틀랜틱 시절의 날것 같은 소리와 비교해 들으면 그가 어디서 출발했는지 분명해진다.
  • 점잖게 시작하던 목소리가 곡 후반으로 갈수록 한 음절을 여러 음으로 굽이치게 늘이는 창법(멜리스마)으로 번진다. 가스펠의 버릇이 표준곡 안으로 새어 나오는 대목이다.
  • 박자를 살짝 뒤로 미루거나 당겨 부르는 재즈식 프레이징이 들린다. 컬럼비아 시절 재즈 가수들에게서 익힌 감각으로, 훗날 소울 녹음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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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머슬숄스에서 온 소울 · 1967–1968

(웩슬러) 1966년 11월, 애틀랜틱 레코드의 프로듀서 제리 웩슬러가 그를 영입했다. 웩슬러의 방침은 단순했다. 아레사를 피아노 앞에 앉히고, 그가 교회에서 하던 대로 노래하게 하는 것이었다. 1967년 1월, 웩슬러는 그를 앨라배마주 머슬숄스의 페임 스튜디오로 데려가 그 지역 세션 연주자들과 만나게 했다. (하루) 첫날 녹음한 「I Never Loved a Man (The Way I Love You)」는 몇 시간 만에 완성됐다. 그러나 그날 밤 스태프 사이의 술자리 다툼으로 세션은 중단됐고, 나머지 곡들은 연주자들을 뉴욕으로 불러 마무리했다. 이렇게 나온 앨범은 그를 단숨에 스타로 만들었다. 엔지니어 톰 다우드와 편곡자 아리프 마딘이 웩슬러와 함께 이후 애틀랜틱 시절의 소리를 다듬었다. (존중) 같은 해 오티스 레딩의 곡을 다시 부른 「Respect」가 빌보드 핫 100 1위에 올랐다. 언니 어마와 동생 캐럴린이 코러스를 맡았고, 제목의 철자를 한 글자씩 짚어 부르는 대목 등 원곡에 없던 장치는 자매들이 함께 짰다. 남편에게 아내의 몫을 요구하던 노래는 민권운동과 여성운동이 동시에 끌어안는 노래가 되었다. 「Chain of Fools」, 「Think」가 뒤를 이었고, 그는 소울의 여왕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민권) 1968년 2월 디트로이트에서는 그의 이름을 딴 기념일이 열렸고,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직접 상을 건넸다. 아버지와 친분이 깊던 킹은 그해 4월 암살되었고, 아레사는 장례식에서 킹이 좋아하던 찬송 「Precious Lord, Take My Hand」를 불렀다. 같은 해 6월 그는 『타임』 표지에 올랐다.

♪아이 네버 러브드 어 맨 (I Never Loved a Man (The Way I Love You))1967실황 Aretha Franklin · 2007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식

머슬숄스의 첫날, 단 한 번의 세션에서 살아남은 곡이다. 컬럼비아의 여섯 해가 쌓아 온 것이 남부의 리듬 섹션을 만나 한꺼번에 터져 나온 순간이 담겨 있다.

  • 곡을 여는 끈적한 전기 피아노(워리처) 소리는 세션 건반 주자 스푸너 올덤이 즉석에서 찾아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몇 마디가 곡 전체의 분위기를 정한다.
  • 느린 셋잇단 박자 위에서 드럼은 둘째·넷째 박을 무겁게 누르는(백비트) 방식으로 걸음을 늦춘다. 서두르지 않는 리듬이 목소리에 숨 쉴 자리를 만들어 준다.
  • 아레사가 직접 피아노를 치며 노래했다. 반주와 노래가 한 사람의 몸에서 나오기 때문에, 목소리가 치솟는 자리에서 피아노도 함께 힘을 싣는다.
  • 벗어날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체념과 고백을 노래하는데, 절제하던 목소리가 후반으로 갈수록 거칠고 높게 갈라지며 감정의 수위가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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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펙트 (Respect)1967실황 Aretha Franklin · MDA 텔레톤

오티스 레딩의 곡을 여성의 목소리로 뒤집어, 한 가정의 요구를 한 시대의 요구로 바꾼 노래다. 자매들과 함께 짠 편곡이 원곡을 전혀 다른 노래로 만들었다.

  • 원곡에 없던 두 장치, 제목의 철자를 한 글자씩 짚어 부르는 대목과 코러스가 짧게 받아치는 추임새는 아레사와 동생 캐럴린이 함께 고안한 것이다. 노래가 가장 크게 기억되는 순간이 원곡에는 없던 부분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 리드 보컬이 한 줄을 던지면 언니 어마와 동생 캐럴린의 코러스가 곧바로 받아치는 주고받기(콜 앤드 리스폰스)가 곡 내내 이어진다. 교회 예배에서 목사와 신도가 주고받는 방식 그대로다.
  • 중간의 테너 색소폰 독주는 킹 커티스가 맡았다. 이 독주 부분의 화성 진행은 샘 앤드 데이브의 곡에서 빌려 왔다고 제리 웩슬러가 회고했다.
  • 목소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힘을 거의 빼지 않는다. 부탁하는 화법이 아니라 당연한 몫을 요구하는 화법이어서, 곡이 2분 반 남짓으로 짧은데도 압도적으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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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다시 교회로 · 1969–1979

(이혼) 1969년 테드 화이트와 헤어졌다. 이후 매니지먼트는 오빠 세실이 맡았고, 세실은 198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의 곁을 지켰다. 1970년 앨범 『Spirit in the Dark』는 그가 직접 쓴 곡들이 중심이 된 작품으로, 교회 예배의 열기를 세속의 사랑 노래로 옮겨 놓았다. (확장) 1971년 샌프란시스코의 히피 공연장 필모어 웨스트 무대에서는 록 관객을 사로잡았고, 공연 중 레이 찰스가 무대에 올라 함께 노래했다. 1972년 『Young, Gifted and Black』은 니나 시몬의 곡을 표제로 삼아 흑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노래했다. 이 시기 도니 해서웨이가 일부 녹음에 건반으로 참여했다. (은총) 1972년 1월, 그는 로스앤젤레스의 한 침례교회에서 스승 제임스 클리블랜드, 성가대와 함께 이틀 밤 가스펠 공연을 녹음했다. 아버지도 객석에 앉아 있다가 연단에 올라 딸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렇게 나온 『Amazing Grace』는 그의 경력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자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가스펠 앨범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스타가 된 뒤에도 그의 뿌리가 어디인지를 그 자신이 선언한 기록이었다. (침체) 1970년대 중반 이후 디스코의 물결 속에서 판매는 줄었다. 1976년 커티스 메이필드가 작곡과 프로듀싱을 맡은 영화 음악 『Sparkle』이 잠시 반등을 이끌었다. 1978년 배우 글린 터먼과 재혼해 로스앤젤레스에서 지냈으나 1984년 헤어졌다. 1979년 6월, 아버지가 디트로이트 자택에 든 강도의 총에 맞아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는 1982년 아버지 곁을 지키려 로스앤젤레스를 떠나 디트로이트로 돌아왔고, 이후 다시는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어메이징 그레이스 (Amazing Grace)1972실황 Aretha Franklin · 2014 백악관 Women of Soul

스타가 된 뒤 스승 제임스 클리블랜드와 함께 교회로 돌아가 녹음한 실황 앨범의 표제곡이다. 그의 경력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음반의 중심에 이 한 곡이 있다.

  • 누구나 아는 찬송을 열 분이 넘는 길이로 늘여 부른다. 한 음절에 수많은 음을 얹는 멜리스마가 극단까지 밀려, 가락보다 기도에 가깝게 들린다.
  • 클리블랜드가 피아노를 치며 성가대를 이끈다. 아레사가 길게 떠나 있는 동안 반주는 자리를 지키며 기다리고, 그가 돌아오는 순간 성가대가 함께 부풀어 오른다.
  • 객석의 외침과 박수, 흐느낌이 그대로 녹음에 담겨 있다. 무대와 회중이 하나가 되는 흑인 교회 예배의 현장감이 이 녹음의 핵심이다.
  • 클리블랜드가 감정이 북받쳐 노래를 잇지 못하는 순간도 기록에 남았다. 연출된 공연이 아니라 실제 예배였다는 증거로 자주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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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두 번째 전성기 · 1980–1998

(아리스타) 1980년 애틀랜틱을 떠나 클라이브 데이비스가 이끄는 아리스타 레코드로 옮겼다. 같은 해 영화 「블루스 브라더스」에서 식당 주인으로 나와 「Think」를 다시 불러 새 세대 관객과 만났다. 1982년에는 루서 밴드로스가 프로듀싱한 「Jump to It」이 R&B 차트 1위에 오르며 재기를 알렸다. 밴드로스는 어린 시절부터 그를 우상으로 여겼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작별) 1984년 7월, 다섯 해 가까이 혼수상태였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1980년대 초 소형 비행기에서 겪은 심한 난기류 뒤로 그는 비행기 타기를 두려워해, 남은 생의 투어를 대부분 버스로 다녔다. 1988년 동생 캐럴린이, 이듬해 오빠 세실이 세상을 떠났다. 가족을 잃는 시간 속에서 그는 1987년 아버지의 교회 뉴 베설로 돌아가 가스펠 실황 앨범 『One Lord, One Faith, One Baptism』을 녹음했다. (차트) 1985년 프로듀서 내러다 마이클 월든과 만든 『Who's Zoomin' Who?』는 신시사이저와 뮤직비디오의 시대에 그를 다시 팝 차트로 올려놓았다. 1987년 조지 마이클과 부른 듀엣 「I Knew You Were Waiting (for Me)」는 미국과 영국에서 모두 1위에 올랐고, 같은 해 그는 여성 최초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1989년에는 엘튼 존과 「Through the Storm」을 불렀다. (대모) 그의 백 보컬을 맡았던 시시 휴스턴의 딸 휘트니 휴스턴은 그를 이모라 부르며 자랐다. 1998년 그래미 시상식에서는 몸이 불편해진 파바로티를 대신해 공연 직전에 오페라 아리아 「Nessun dorma」를 불렀다. 같은 해 로린 힐이 쓰고 프로듀싱한 「A Rose Is Still a Rose」로 힙합 세대와 손잡았고, VH1 「Divas Live」에서 셀린 디옹, 머라이어 캐리, 캐럴 킹과 한 무대에 섰다.

♪프리웨이 오브 러브 (Freeway of Love)1985공식 MV — Aretha Franklin

아리스타 시절 내러다 마이클 월든과 만든 곡으로, 마흔세 살의 그를 MTV 시대의 팝 차트로 되돌려 놓았다.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문화를 경쾌하게 끌어안은 노래다.

  • 신시사이저와 전자 드럼이 만드는 1980년대 중반 특유의 반짝이는 소리 위에 그의 목소리가 실린다. 애틀랜틱 시절과 전혀 다른 소리 안에서도 창법은 그대로다.
  • 중간의 색소폰 독주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밴드에서 활약한 클래런스 클레먼스가 맡았다. 록과 소울이 한 곡 안에서 악수하는 순간이다.
  • 분홍색 캐딜락이 등장하는 뮤직비디오가 MTV에서 자주 방영되며 젊은 시청자들에게 그를 새로 소개했다.
  • 드라이브의 해방감을 노래하는 가볍고 즐거운 정서다. 무겁던 1970년대 말을 지나온 가수가 처음으로 홀가분하게 웃는 것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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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뉴 유 워 웨이팅 (I Knew You Were Waiting (for Me))1987공식 MV — George Michael · Aretha Franklin

조지 마이클과 부른 듀엣으로, 그에게 20년 만의 핫 100 1위를 안겼다. 소울의 여왕과 그를 들으며 자란 후배가 대등하게 맞서는 노래다.

  • 두 사람이 한 줄씩 주고받다가 점점 겹쳐 부르는 짜임이다. 앞부분은 대화처럼, 후반은 맞붙는 경연처럼 들린다.
  • 곡 후반에서 조성을 한 단계 올리는(전조) 순간 두 목소리가 동시에 치솟는다. 1980년대 팝 발라드가 절정을 만드는 전형적인 장치다.
  • 조지 마이클은 비교적 맑고 고른 음색으로, 아레사는 거칠고 굵은 음색으로 노래한다. 음색의 대비가 듀엣의 긴장을 만든다.
  • 기다림 끝에 마침내 만난 사랑을 확인하는 정서다. 이 곡으로 두 사람은 그래미 듀오 부문 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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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여왕의 마지막 무대 · 1999–2018

(훈장) 2005년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았다. 2009년 1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에서 「My Country, 'Tis of Thee」를 불렀는데, 커다란 리본이 달린 회색 모자가 화제가 되었고 그 모자는 훗날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민권운동의 현장에서 노래하던 가수가 첫 흑인 대통령의 취임식에 선 장면은 그 자체로 한 시대의 요약이었다. (투병) 2010년 말 그는 큰 수술을 받았고, 병명을 공개하지 않은 채 무대로 돌아왔다. 체중이 크게 줄어든 모습에도 공연은 이어졌다. 2014년 클라이브 데이비스와 다시 손잡고 낸 『Aretha Franklin Sings the Great Diva Classics』에서는 아델의 「Rolling in the Deep」을 불러, 자신이 길을 연 후배들의 노래를 거꾸로 해석했다. (헌정) 2015년 12월 케네디 센터 공로상 시상식에서 그는 수상자 캐럴 킹을 위해 「(You Make Me Feel Like) A Natural Woman」을 불렀다. 객석의 킹이 일어나 환호했고, 오바마 대통령이 눈물을 훔치는 장면이 중계되었다. 2017년 초 투어 은퇴를 밝혔고, 그해 11월 뉴욕에서 열린 엘튼 존 에이즈 재단 자선 행사가 그의 마지막 공개 무대가 되었다. (영면) 2018년 8월 16일, 디트로이트 자택에서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76세였다. 장례는 디트로이트의 대형 교회에서 여덟 시간 가까이 이어졌고, 동료 음악가들과 정치인들이 노래와 추도사로 그를 배웅했다. 이듬해 퓰리처상 위원회는 미국 음악과 문화에 대한 기여를 기려 그에게 특별상을 주었다. 생전에 그가 직접 낙점한 배우 제니퍼 허드슨이 주연을 맡은 전기 영화 「리스펙트」는 2021년에 개봉했다.

♪내추럴 우먼 ((You Make Me Feel Like) A Natural Woman)1967실황 Aretha Franklin · 1995 로큰롤 명예의 전당 콘서트

제리 웩슬러가 제목을 제안하고 캐럴 킹과 제리 고핀이 쓴 곡이다. 48년 뒤 케네디 센터 무대에서 그는 이 노래를 작곡자 캐럴 킹에게 되돌려 주었다.

  • 조용한 피아노와 낮은 목소리로 시작해, 현악과 금관이 차례로 더해지며 서서히 부풀어 오르는 짜임이다. 웩슬러와 아리프 마딘의 애틀랜틱 시절 제작 방식이 잘 드러난다.
  • 사랑을 통해 비로소 자기 자신이 된 듯한 감사와 안도를 노래한다. 후렴에 이를 때마다 목소리가 한 단계씩 더 열린다.
  • 2015년 케네디 센터 무대에서 그는 모피 코트를 입고 피아노 앞에 앉아 노래하다가, 절정에서 코트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객석의 캐럴 킹이 일어나 환호하는 장면과 함께 그의 말년을 대표하는 명연으로 회자된다.
  • 1967년 원녹음과 2015년 실황을 나란히 들으면, 젊은 날의 날카로운 고음 대신 깊고 굵어진 저음으로 같은 정서를 끌어올리는 원숙함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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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알려진 이야기

그는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다. 애틀랜틱 시절의 여러 녹음에서 직접 피아노를 쳤고, 코러스의 화음과 곡의 짜임을 스스로 짜는 일이 많았다고 제리 웩슬러는 회고했다. 대중의 기억 속에서는 목소리가 너무 압도적이어서, 편곡자이자 연주자로서의 역할은 대체로 프로듀서의 공으로 돌려지곤 했다. 컬럼비아 시절은 오랫동안 실패한 서곡으로 취급됐다. 그러나 이 시기에 녹음한 재즈와 표준곡들은 훗날 비평가들에게 재평가를 받았고, 그 시기의 녹음을 모은 박스 세트가 나오면서 그가 재즈 가수로서도 일가를 이룰 수 있었다는 평이 늘었다. 소울의 여왕이라는 이름이 너무 강해 그 앞의 여섯 해가 가려진 셈이다. 『Amazing Grace』의 실황은 영화감독 시드니 폴락이 촬영했지만, 박자를 맞추는 표지(클래퍼보드)를 쓰지 않아 화면과 소리를 맞출 수 없었고 필름은 수십 년간 창고에 묻혀 있었다. 기술 발전으로 복원된 뒤에도 아레사는 2011년과 2015년 상영을 법적으로 막았다. 영화는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유족의 동의를 얻어 2018년 말에야 공개됐다. 2020년 잡지 『롤링 스톤』이 정보공개 청구로 입수한 문서에 따르면, 미 연방수사국(FBI)은 민권운동과 관련된 그의 활동을 수십 년에 걸쳐 감시하며 270쪽가량의 파일을 남겼다. 그가 생전에 이 사실을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용어 노트 📚🔎

소울

(말뜻) 영어 soul 은 영혼이라는 뜻이다. 교회에서 영혼을 울리던 노래의 힘을 세속의 사랑 노래로 옮겨 왔다는 의미가 이름에 들어 있다. (팝에서) 1960년대 미국에서 흑인 교회의 가스펠과 리듬 앤드 블루스가 합쳐져 생긴 음악이다. 뜨거운 목소리, 주고받는 코러스, 묵직한 리듬이 특징이다. 아레사 프랭클린은 이 장르를 대표하는 가수라 소울의 여왕이라 불렸다. 예를 들어 응원가를 부를 때 그냥 가사를 읽듯 부르는 것과 온몸으로 외치듯 부르는 것이 다르듯, 소울은 감정을 숨기지 않고 몸 전체로 쏟아내는 노래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는 소울 푸드처럼 흑인 공동체의 전통과 정서를 가리키는 말로도 쓴다.

가스펠

(말뜻) 영어 gospel 은 옛 영어에서 좋은 소식이라는 뜻으로, 원래 예수의 가르침을 담은 복음을 가리켰다. (팝에서) 미국 흑인 교회에서 부르는 찬양 음악이다. 성가대와 독창자가 주고받으며 노래하고, 손뼉과 외침이 함께 어우러진다. 소울과 R&B 가수 가운데 많은 이가 어린 시절 교회에서 가스펠로 노래를 배웠다. 학교 합창 대회에서 반 전체가 한마음으로 부를 때 소름이 돋는 순간이 있는데, 가스펠은 그런 순간을 매주 예배에서 만들어 내는 음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는 절대적으로 믿는 말이라는 뜻으로, 그의 말은 가스펠이다처럼 쓰기도 한다.

멜리스마

(말뜻) 그리스어 melisma 는 노래라는 뜻의 말에서 왔다. (팝에서) 가사의 한 음절을 여러 개의 음으로 굽이치듯 늘여 부르는 창법이다. 아레사 프랭클린, 휘트니 휴스턴, 머라이어 캐리 같은 가수들의 노래에서 자주 들을 수 있다. 친구 이름을 부를 때 짧게 부르지 않고 이름의 끝 글자를 오르락내리락 길게 늘이며 부르는 장난을 떠올리면 비슷하다. 잘 쓰면 감정이 깊어지지만, 지나치면 가사가 들리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콜 앤드 리스폰스

(말뜻) 영어 call and response 는 부름과 응답이라는 뜻이다. (팝에서) 한 사람이 한 줄을 부르면 다른 사람들이 그에 답하듯 받아 부르는 방식이다. 아프리카 음악과 흑인 교회 예배에서 시작되어 가스펠, 블루스, 소울로 이어졌다. 「Respect」에서 아레사가 노래하고 자매들이 코러스로 받아치는 부분이 좋은 예다. 체육 시간에 선생님이 하나 둘 하고 외치면 학생들이 셋 넷 하고 받는 구령과 같은 원리다.

세션 뮤지션

(말뜻) 세션 session 은 정해진 시간 동안 함께 모여 일하는 자리라는 뜻으로, 녹음 일정 한 번을 가리킨다. (팝에서) 특정 밴드의 정식 멤버가 아니라, 녹음이 있을 때마다 불려 가 연주하는 전문 연주자다. 앨범 표지에는 이름이 잘 나오지 않지만, 머슬숄스의 연주자들처럼 수많은 명곡의 소리를 실제로 만든 이들이 많다. 학교 연극에서 주인공은 아니지만 무대 장치와 음향을 맡아 공연 전체를 살리는 친구들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회의나 행사에서 세션은 시간대별로 나뉜 한 부분을 가리킨다.

크로스오버

(말뜻) 영어 crossover 는 경계를 넘어간다는 뜻이다. (팝에서) 한 장르나 한 집단의 청중을 위해 만든 음악이 다른 장르나 더 넓은 청중에게까지 인기를 얻는 것을 말한다. 1960년대 미국에서는 흑인 청취자 중심의 R&B 차트 곡이 백인 청취자 중심의 팝 차트까지 오르는 것이 대표적인 크로스오버였다. 학교 축구부에서 유명하던 선수가 다른 학교 학생들과 동네 사람들에게까지 알려지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자동차에서 크로스오버는 승용차와 SUV의 특징을 섞은 차종을 가리킨다.

전조

(말뜻) 전조(轉調)는 조(調)를 바꾼다(轉)는 뜻이다. 조는 노래의 중심이 되는 음, 곧 노래의 기본 높이를 말한다. (팝에서) 노래 도중에 기본 음높이를 한 단계 올리거나 내리는 기법이다. 팝 발라드에서는 마지막 후렴 직전에 음을 올려 절정을 만드는 데 자주 쓴다. 노래방에서 마지막 후렴 때 키를 한 칸 올려 더 힘차게 부르는 것과 같은 효과다. 「I Knew You Were Waiting (for Me)」 후반에서 이 장치를 들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