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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 Michael

조지 마이클 (1963–2016)

완벽하게 다듬어진 팝송 밑에 가장 사적인 상실과 신앙, 두려움을 숨겨 둔 작곡가였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영국 런던 핀칠리 출생키프로스계 이민자 가정허트퍼드셔 유년2. 결성앤드루 리즐리와 만남왬 결성실업 노래한 데뷔3. 정점웨이크 미 업 1위케어리스 위스퍼중국 공연·라이브에이드4. 도약왬 해체솔로 앨범 페이스5. 상실펠레파의 죽음어머니의 죽음6. 말년커밍아웃심포니카 투어2016년 사망마이클1963–2016왬의 청년에서 솔로 스타로, 사랑과 상실을 노…
무대의 여정 🧭🗺️
N영국런던1963래드릿1963–1981런던1981–2016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가족키리아코스 파나이오두

    키프로스 출신 이민자 음식점 주인으로, 안정된 직업을 바란 아버지였다.

  • 가족레슬리 앤골드

    잉글랜드 출신 무용수였던 어머니로, 1997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 동료앤드루 리즐리

    왬의 파트너로, 이미지와 무대를 함께 짠 평생의 친구였다.

  • 동료사이먼 네이피어벨

    왬의 초기 매니저로, 레이블과의 싸움에서 조언자 역할을 했다.

  • 우정안셀모 펠레파

    1991년 만난 가까운 사이였고, 1993년 에이즈 관련 질환으로 세상을 떠나 깊은 상실을 남겼다.

  • 우정엘튼 존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를 함께 부른 동료로, 오랜 친구이자 음악적 동지였다.

YouTube에서 7곡 이어 듣기 ↗

I. 런던 동핀칠리의 소년 · 1963–1979

(출생) 1963년 6월, 영국 런던 동핀칠리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요르요스 키리아코스 파나이오두였다. 아버지 키리아코스 파나이오두는 키프로스에서 건너온 이민자로 음식점을 운영했고, 어머니 레슬리 앤골드는 잉글랜드 출신의 무용수였다. 누나 둘과 함께 자랐고, 가족은 그가 어릴 때 허트퍼드셔의 래드릿으로 옮겨 왔다. (성격) 학교에서는 통통하고 수줍은 아이로 기억됐다. 노래보다 레코드 수집에 먼저 빠졌고, 모타운과 소울, 디스코 음반을 밤새 들으며 혼자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집에서는 말이 적었지만 음악 앞에서는 달랐다. (만남) 1975년 무렵 부시 미즈 학교에서 앤드루 리즐리를 만났다. 리즐리는 자신감 있고 사교적인 소년이었고, 내향적인 자신과 정반대였다. 두 사람은 금세 가까워져 함께 밴드를 전전했고, 그 우정이 뒤에 한 그룹의 출발점이 됐다. (아버지) 아버지는 아들이 안정된 직업을 갖길 바랐고, 음악은 취미로만 여겼다. 그 기대와 거리를 두면서도 그는 아버지의 근면함을 존경했다고 뒤에 말했다 — 그 긴장은 성인이 된 뒤에도 쉽게 풀리지 않았다.

II. 왬의 결성 · 1981–1982

(결성) 1981년, 리즐리와 함께 왬을 만들었다. 이름은 가벼웠지만 주제는 가볍지 않았다 — 데뷔 싱글 「Wham Rap! (Enjoy What You Do?)」은 실업과 청년 세대의 무기력을 춤곡의 리듬에 얹었다. 당시 영국은 대량 실업이 사회 문제였고, 두 사람도 한동안 구직 수당으로 살았다. (역할) 그룹 안에서 역할은 분명했다. 곡을 쓰고 노래를 부른 쪽은 자신이었고, 리즐리는 이미지와 무대, 춤을 함께 짜는 파트너였다. 작곡가로서 재능은 일찍부터 두드러졌고, 그 비중은 활동 내내 거의 그의 몫이었다. (계약) 1982년 작은 레이블 이너비전과 계약했다. 조건은 불리했고, 뒤에 레이블을 상대로 소송을 벌여 계약에서 벗어나야 했다. 돈과 권리를 둘러싼 이 첫 싸움은 이후 평생 레이블과의 관계에서 되풀이될 패턴의 서곡이었다.

♪왬 랩! (Wham Rap! (Enjoy What You Do?))1982무대 George Michael · Andrew Ridgeley — 1986 Wembley 왬 종료 공연

실업 수당으로 살던 두 청년이 그 처지 자체를 춤곡으로 바꿔 낸 데뷔 싱글이다.

  • 랩처럼 말하듯 빠르게 뱉는 보컬 구간과 노래하듯 늘어지는 훅의 대비를 들어보라.
  • 통통 튀는 신스 베이스가 리듬의 뼈대를 이루는 초기 신스펑크 사운드.
  • 리즐리와 주고받는 듯한 대목에서 두 사람의 케미스트리가 드러난다.
  • 가벼운 댄스 비트 아래 실업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얹은 아이러니한 짜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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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세계의 왬 · 1983–1985

(히트) 「Young Guns (Go for It!)」와 「Club Tropicana」, 「Bad Boys」로 영국에서 먼저 자리를 잡았고, 1984년 「Wake Me Up Before You Go-Go」가 미국까지 1위에 오르며 왬은 세계적인 팝 듀오가 됐다. 밝은 색의 반바지와 환한 웃음은 당대 영국 팝의 낙천적인 얼굴이었다. (발라드) 같은 해 「Careless Whisper」를 내놓았다. 색소폰 리프로 시작하는 이 곡은 왬의 쾌활한 이미지와 다른 결의 노래였고, 영국에서는 왬이 아닌 그의 이름으로 처음 발매된 싱글이었다. 춤곡 뒤에 발라드를 쓸 줄 아는 작곡가라는 평판이 이때 굳어졌다. (중국) 1985년 왬은 서방 팝 그룹으로는 최초로 중국에서 공연했다. 냉전의 벽이 아직 높던 시절, 베이징의 무대는 음악이 정치보다 먼저 국경을 넘을 수 있음을 보여 준 사건으로 기록됐다. (라이브에이드) 같은 해 라이브 에이드 무대에도 섰다. 아프리카 기아 구호를 위한 그 모금 콘서트의 공기는, 몇 해 뒤 자신이 가까운 이를 질병으로 잃게 되리라는 것을 당시에는 알지 못한 채 지나간 순간이었다.

♪웨이크 미 업 비포 유 고고 (Wake Me Up Before You Go-Go)1984공식 MV — Wham! (George Michael · Andrew Ridgeley)

왬을 세계적인 듀오로 올려놓은 곡으로, 밝고 들뜬 리듬 속에 성공의 정점이 담겼다.

  • 도입부터 터지는 밝은 신스 브라스 리프가 곡 전체의 에너지를 예고한다.
  • 후렴에서 음을 높여 외치듯 부르는 대목이 떼창을 유도하는 핵심 훅.
  • 팔을 크게 휘젓는 춤과 화려한 반바지 무대 의상이 당시 TV 무대에서 각인됐다.
  • 규칙적인 드럼 머신 비트에 핸드클랩이 더해져 댄스 플로어를 겨냥한 짜임새를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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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어리스 위스퍼 (Careless Whisper)1984실황 George Michael · 2008 Earls Court, 25 Live Tour

쾌활한 왬의 이미지와 다른 결의 발라드로, 그의 작곡가로서의 재능이 처음 또렷이 각인된 곡이다.

  • 곡을 여는 색소폰 리프 하나로 전체 분위기가 즉시 결정된다 — 팝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색소폰 인트로로 꼽힌다.
  • 후렴으로 넘어가며 가성과 진성을 오가는 섬세한 보컬 컨트롤을 들어보라.
  • 펑키한 베이스라인이 느린 템포에도 그루브를 잃지 않게 받쳐 준다.
  • 숨을 아끼듯 또박또박 끊어 부르는 벌스와 길게 풀어내는 후렴의 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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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해체와 믿음 · 1986–1988

(해체) 1986년 왬은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마지막 콘서트를 열고 해체했다. 리즐리와의 우정은 이어졌지만, 음악적 방향은 이미 갈라져 있었다. 그는 혼자서 더 어둡고 성숙한 음악을 하고 싶어 했다. (파이스) 1987년 솔로 앨범 「Faith」를 내놓았다. 가죽 재킷과 선글라스, 수염으로 바뀐 이미지는 왬 시절의 소년 같던 얼굴과 의도적으로 결별한 모습이었다. 앨범은 미국에서 1위를 넉 곡이나 올리며 왬을 뛰어넘는 성공을 거뒀다. (상징) 타이틀곡의 십자가 귀걸이와 복음적인 리프는 신앙의 이미지를 끌어와 쓴 것이었는데, 일부 보수적인 청취자와 평자들에게는 불편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는 신앙 자체보다 그 이미지가 주는 긴장을 음악적 재료로 즐겼다. (명성) 하지만 성공은 그를 지치게 했다. 거리를 걸을 수 없을 만큼 유명해진 상황에 대해 그는 뒤에 여러 인터뷰에서 숨 막힘을 느꼈다고 말했다 — 다음 앨범은 그 피로에서 나왔다.

♪페이스 (Faith)1987실황 George Michael · 2008 Earls Court, 25 Live Tour

왬의 소년 이미지와 결별하고 새로 세운 솔로 정체성을 알린 타이틀곡이다.

  • 어쿠스틱 기타의 경쾌한 리프가 곡 전체를 끌고 가는 로커빌리풍 편곡.
  • 가성으로 가볍게 치고 올라가는 애드리브가 후렴 뒤에 붙는다.
  • 뮤직비디오에서 청바지와 가죽 재킷, 기타를 치는 모습이 솔로 전향의 상징이 됐다.
  • 짧고 반복적인 훅으로 밀어붙이는 구성이 라디오 친화적인 짜임새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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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계약과 상실 · 1990–1997

(무관심) 1990년 「Listen Without Prejudice Vol. 1」을 냈다. 자신의 얼굴을 앨범 표지와 뮤직비디오에서 거의 지웠고, 스타덤 자체에 대한 회의를 노래에 담았다. 상업적으로는 「Faith」에 못 미쳤지만, 그가 가장 자랑스러워한 작품 중 하나로 남았다. (소송) 소니가 이 변화를 반기지 않자 갈등이 불거졌고, 1992년 그는 소니를 상대로 계약 무효 소송을 냈다. 1994년 재판에서 패소해 계약에 묶였지만, 이 싸움은 이후 버진 레코드로 이적하는 길을 여는 계기가 됐다. 음반사와 권리를 둘러싼 싸움은 그의 경력 내내 반복된 주제였다. (상실) 1991년 브라질 디자이너 안셀모 펠레파를 만나 가까운 사이가 됐다. 1993년 펠레파가 에이즈 관련 질환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그는 깊은 상실을 겪었다. 그 슬픔은 1996년 발표한 「Jesus to a Child」로 흘러나왔다 — 느린 보사노바 리듬 위에 애도를 얹은 이 곡은 누구를 위해 썼는지 당시에는 밝히지 않았지만, 뒤에 스스로 그 의미를 설명했다. (어머니) 1997년에는 어머니 레슬리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가까운 이와 어머니를 잇따라 잃은 이 시기는 그의 음악에서 화려함이 걷히고 애도와 회고가 짙어진 전환점이었다.

♪프리덤! 90 (Freedom! '90)1990실황 George Michael · 2008 Earls Court, 25 Live Tour

스타덤 자체에 대한 회의를 담은 「Listen Without Prejudice」의 핵심 트랙으로, 과거와 거리를 두려는 의지가 짙게 배어 있다.

  • 두꺼운 가스펠풍 백보컬 합창이 곡 전체를 떠받친다.
  • 베이스와 드럼이 쌓아 올리는 그루브가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두꺼워진다.
  • 뮤직비디오에 자신의 얼굴 대신 톱 모델들을 등장시켜 스타덤과 거리를 두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 「Faith」 뮤직비디오 속 가죽 재킷과 주크박스, 기타를 불태우는 장면이 과거와의 결별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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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스 투 어 차일드 (Jesus to a Child)1996무대 George Michael · 1994 MTV 어워즈

가까운 이를 잃은 슬픔을 느린 보사노바 리듬에 담아낸 애도의 노래다.

  • 보사노바에서 가져온 느린 셋잇단 리듬이 애도의 정서를 차분히 감싼다.
  • 낮은 음역에서 속삭이듯 시작해 후렴에서 서서히 감정을 끌어올리는 보컬 빌드업.
  • 어쿠스틱 기타와 현악 편곡이 장식 없이 소박하게 곡을 감싼다.
  • 즉흥적으로 늘이는 멜리스마 창법이 후반부 애드리브에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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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아웃사이드와 말년 · 1998–2016

(공개) 1998년 로스앤젤레스의 한 공원에서 경찰의 함정 수사에 걸려 음란 행위 혐의로 체포됐다.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곧이어 발표한 「Outside」는 그 사건과 타블로이드의 시선을 유머로 되받아친 노래였다. (법정) 2006년과 2010년에도 약물 소지와 운전 관련 혐의로 체포되거나 기소되는 일이 있었고, 그는 이를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명성과 사생활 노출에 대한 피로는 이 시기 그의 발언과 음악에 되풀이해 나타난 주제였다. (패이션스) 2004년 앨범 「Patience」를 끝으로 신보 발표는 크게 줄었지만, 2011년부터 「Symphonica」 투어로 오케스트라와 함께 자신의 노래들을 다시 불렀다. 투어 중 오스트리아 빈에서 폐렴으로 위독해져 한 달가량 입원했다가 회복했다. (죽음) 2016년 12월 25일, 잉글랜드 옥스퍼드셔 고링온템스의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검시 결과 심장과 지방간 질환에 따른 자연사로 확인됐다. 향년 53세였다.

♪아웃사이드 (Outside)1998실황 George Michael · 2007 Wembley

체포 사건과 타블로이드의 시선을 정면으로 맞받아친, 그의 유머와 반항기가 함께 드러난 곡이다.

  • 경찰 사이렌 소리를 샘플링해 그대로 비트의 일부로 끌어들인 재치 있는 프로듀싱.
  • 디스코풍의 리듬 기타와 신스가 가볍고 장난스러운 분위기를 만든다.
  • 뮤직비디오에서 경찰 제복을 입고 등장해 사건을 유머로 되받아치는 태도를 시각화했다.
  • 후렴에서 가볍게 튕기듯 부르는 보컬이 곡의 경쾌함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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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알려진 이야기

「Careless Whisper」는 왬이 성공하기도 전인 열일곱 살 무렵 이미 머릿속에서 완성돼 있던 곡이라고 전해진다. 데모를 녹음해 두고도 몇 해를 묵혀 두었다가 왬의 성공 이후에야 세상에 내놓았다는 사실은, 그가 대중에게 알려지기 훨씬 전부터 이미 완성된 작곡가였음을 보여 준다. 그는 생전에 거액을 익명으로 기부해 왔는데, 이 사실의 대부분은 2016년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수혜자들의 증언으로 드러났다. 텔레비전 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해 사연을 밝힌 한 간호사의 체외수정 비용을 몰래 대신 내준 일이나, 자선단체 차일드라인에 꾸준히 기부한 사실 등이 그의 사후 언론을 통해 뒤늦게 알려졌다. 생전에는 철저히 숨긴 선행이었기에, 대중에게는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용어 노트 📚🔎

멜리스마

한 음절의 가사를 여러 음으로 굽이치듯 길게 늘여 부르는 창법이다. 팝에서는 가스펠과 소울 보컬에서 감정을 한껏 끌어올릴 때 자주 쓰인다. 노래방에서 한 글자를 길게 흔들며 꺾어 부르는 것을 떠올리면 가깝다 — 다만 멜리스마는 그 흔들림이 여러 개의 다른 음으로 또렷이 나뉜다는 점이 다르다.

보사노바

말뜻을 그대로 옮기면 포르투갈어로 새로운 흐름, 새로운 유행이라는 뜻이다. 1950년대 브라질에서 삼바를 더 차분하고 재즈에 가깝게 다듬으며 이 이름이 붙었다. 팝에서는 느긋한 셋잇단 리듬과 나른한 기타 반주가 특징인 음악 스타일을 가리킨다. 빗소리에 맞춰 천천히 발을 구르는 듯한 리듬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콜앤리스폰스

한쪽이 부르면 다른 쪽이 그에 답하듯 받아 주는 주고받기 방식의 노래 구조다. 팝에서는 리드 보컬과 백보컬, 혹은 두 보컬리스트가 짧은 구절을 번갈아 주고받으며 대화하듯 곡을 전개할 때 쓰인다. 체육 시간에 선생님이 구령을 외치면 학생들이 따라 외치는 것과 비슷한 구조다. 다른 데서는 교실에서 교사와 학생이 주고받는 질문과 답, 또는 종교 예배의 선창과 응답에서도 같은 구조가 쓰인다.

신스펑크

신시사이저와 펑크(funk) 리듬을 결합한 댄스 음악 스타일이다. 팝에서는 기타나 혼 섹션이 맡던 펑키한 리프를 신시사이저 베이스가 대신 연주하며 통통 튀는 그루브를 만든다. 전자 드럼과 신스로만 밴드 전체의 소리를 흉내 내는 셈이다.

가스펠

영어 gospel은 좋은 소식을 뜻하는 옛 영어 단어에서 왔고, 그리스도교 복음을 노래로 전하던 흑인 교회 음악에서 이름이 붙었다. 팝에서는 합창단처럼 여러 목소리가 쌓아 올리는 두꺼운 화음과, 감정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리는 보컬 스타일을 가리킨다. 학교 합창부가 여러 성부로 나뉘어 한 음을 두껍게 쌓아 올리는 소리와 비슷하다.

셋잇단음표

원래 두 개로 나뉘는 박자를 세 개로 똑같이 쪼개 연주하는 리듬 표기다. 팝에서는 보사노바나 발라드에서 느긋하면서도 흔들리는 듯한 리듬감을 만들 때 쓰인다. 하나, 둘을 세던 박자를 하나-둘-셋으로 더 촘촘히 세어 보면 그 흔들림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