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ton John
수줍던 피아노 소년이 남이 쓴 가사에 반세기 동안 가장 자기다운 멜로디를 입혔다.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가족실라 페어브러더
음악을 반대한 아버지와 달리 어린 아들에게 로큰롤 음반을 사 주며 그의 귀를 열어 준 어머니였다.
- 동료버니 토핀
1967년 우편으로 가사를 주고받으며 시작해 반세기 넘게 그의 노래 대부분의 가사를 쓴 평생의 작사 파트너다.
- 동료거스 더전
1970년 앨범 「엘튼 존」부터 1970년대 전성기 앨범 대부분을 맡아 그의 사운드를 다듬은 프로듀서다.
- 우정존 레넌
1974년 함께 녹음한 곡이 1위에 오르자 약속대로 매디슨 스퀘어 가든 무대에 올라 엘튼과 함께 노래했다.
- 우정조지 마이클
라이브 에이드와 1991년 실황에서 「돈트 렛 더 선 고 다운 온 미」를 함께 불러 영국과 미국 1위에 오른 후배이자 친구였다.
- 가족데이비드 퍼니시
2005년 시민 동반자 관계를 맺고 2014년 결혼한 배우자로, 그의 활동을 가까이에서 함께해 왔다.
I. 피너의 소년 · 1947–1966
(출생) 1947년 3월, 영국 잉글랜드 미들섹스의 피너에서 레지널드 케네스 드와이트가 태어났다. 아버지 스탠리 드와이트는 영국 공군 장교였고 젊은 시절 트럼펫을 불었지만, 아들이 음악을 업으로 삼는 데는 반대했다. 집을 자주 비우던 아버지와 엄격한 집안 분위기 속에서, 소년은 어머니 실라와 외할머니 아이비 곁에서 자랐다. (귀) 세 살 무렵 외할머니의 피아노 앞에 앉아 들은 곡을 귀로 따라 쳤다고 전해진다. 열한 살에 런던 왕립음악원의 토요 주니어 과정 장학생이 되어 몇 해 동안 클래식을 배웠다. 악보보다 귀가 빨랐던 그는 쇼팽과 바흐를 익히면서도, 어머니가 사 온 엘비스 프레슬리와 리틀 리처드의 음반에 더 깊이 끌렸다. (펍) 부모는 그가 10대였던 1962년 무렵 이혼했다. 어머니는 실내 장식공 프레드 페어브러더와 재혼했고, 소년이 더프라고 부른 이 새아버지는 그의 음악을 지지해 주었다. 열다섯 살부터는 동네 노스우드 힐스 호텔의 펍에서 주말마다 피아노를 치며 손님들의 노래를 반주했다. 시끄러운 술집에서 사람들의 귀를 붙잡는 법을 그곳에서 배웠다고 그는 훗날 회고했다. (블루솔로지) 학교를 마칠 무렵 그는 음악 출판사의 사환으로 일하며 밴드 블루솔로지의 키보드를 맡았다. 밴드는 영국을 찾은 미국 소울 가수들의 순회 반주를 하다가 블루스 가수 롱 존 볼드리의 반주단이 되었다. 무대 뒤편의 건반 주자로 지내던 이 시절, 그는 훗날의 예명을 밴드의 색소폰 주자 엘튼 딘과 볼드리의 이름에서 빌려 왔다.
II. 편지로 만난 단짝 · 1967–1970
(광고) 1967년 6월, 리버티 레코드가 음악 주간지에 신인 작가와 가수를 찾는 광고를 냈다. 오디션에서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한 그에게 담당자 레이 윌리엄스는 같은 광고에 응모한 링컨셔의 열일곱 살 청년 버니 토핀의 가사 꾸러미를 건넸다. 두 사람은 한동안 얼굴도 모른 채 우편으로 가사와 곡을 주고받았다. (분업) 둘의 방식은 이때 굳어졌다. 토핀이 가사를 먼저 써서 넘기면 엘튼은 혼자 피아노 앞에 앉아 대개 짧은 시간 안에 곡을 붙였다. 한 방에 마주 앉아 쓰는 일은 거의 없었고, 이 분업은 반세기 넘게 이어졌다. 1968년 딕 제임스 뮤직과 작가 계약을 맺으면서 둘은 주급을 받는 전업 작곡가가 됐다. 한동안 토핀은 피너 근처 엘튼의 집에서 한방을 쓰며 함께 살았다. (무명) 처음 몇 해는 다른 가수에게 줄 곡을 쓰는 한편, 생계를 위해 남의 녹음에 불려 가 연주하는 세션 연주를 이어 갔다. 1969년 첫 앨범 「엠프티 스카이」는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길이 열린 것은 프로듀서 거스 더전과 편곡자 폴 벅매스터가 합류한 1970년 앨범 「엘튼 존」에서였다. 현악기를 두텁게 깐 벅매스터의 편곡과 더전의 정교한 녹음은 피아노 한 대의 노래를 영화 같은 규모로 키웠다. (트루바두어) 1970년 8월, 로스앤젤레스의 클럽 트루바두어에서 연 미국 첫 공연이 전환점이 됐다. 피아노 의자를 걷어차고 건반 위로 몸을 던지는 무대에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평론가 로버트 힐번이 극찬하는 평을 썼다. 곧이어 앨범 속 「유어 송」이 미국과 영국 차트에 오르며, 무명의 작곡가는 하룻밤 사이에 주목받는 가수가 됐다.
토핀이 10대 시절 쓴 가사에 엘튼이 곡을 붙인 노래로, 무명의 두 작곡가를 세상에 알린 첫 히트곡이다.
- 피아노가 화음을 한 음씩 풀어 펼치는 짧은 도입 뒤로, 목소리가 힘을 빼고 말하듯 들어온다. 크게 내지르지 않는 담담함이 곡의 성격을 정한다.
- 곡이 진행될수록 폴 벅매스터가 편곡한 현악이 조금씩 겹쳐 들어온다. 피아노 한 대의 사적인 고백이 점점 넓은 방으로 퍼지는 것처럼 들린다.
- 가사는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고르지 못해 쑥스러워하는 젊은이의 화법이다. 서툰 고백이라는 설정이 오히려 진심처럼 들리게 한다.
- 후렴에서 선율이 위로 열리며 감정이 한 번에 터지는데, 그 직후 곧바로 조용한 절로 돌아온다. 절제와 고조가 짧게 번갈아 귀를 붙잡는다.
III. 노란 벽돌길 · 1971–1976
(질주) 1970년대 전반 그는 해마다 한두 장씩 앨범을 냈다. 「텀블위드 커넥션」과 「매드맨 어크로스 더 워터」에 이어, 1972년 「혼키 샤토」부터는 투어 밴드인 베이시스트 디 머리, 드러머 나이절 올슨, 기타리스트 데이비 존스턴이 녹음까지 맡으며 단단한 밴드 사운드를 얻었다. 프랑스 파리 근교의 에루빌 성 스튜디오에서 만든 이 앨범은 미국 앨범 차트 1위에 올라, 일곱 장 연속 1위 행진의 출발점이 됐다. (가면) 1973년 두 장짜리 앨범 「굿바이 옐로 브릭 로드」는 그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다. 무대 위의 그는 깃털과 반짝이 의상, 거대한 안경으로 변신했다. 외모에 자신이 없던 수줍은 레지 드와이트가 화려한 의상 뒤에서는 대담해질 수 있었다고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말했다. 같은 해 그는 자신의 레이블 로켓 레코드를 세웠다. (레넌) 1974년 존 레넌의 「Whatever Gets You thru the Night」 녹음에 피아노와 코러스로 참여한 그는, 이 곡이 1위에 오르면 자신의 공연에 함께 서 달라는 약속을 받아 냈다. 곡은 실제로 1위에 올랐고, 그해 11월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 무대에 레넌이 올랐다. 생전 레넌의 마지막 대형 콘서트 무대로 남은 밤이었다. (정상) 1975년 「캡틴 판타스틱 앤드 더 브라운 더트 카우보이」는 미국 빌보드 앨범 차트에 1위로 곧장 진입한 첫 앨범이 됐다. 엘튼과 토핀의 무명 시절을 자전적으로 되짚은 음반이었다. 그해 10월 로스앤젤레스 다저 스타디움 이틀 공연에는 10만 명이 넘는 관객이 모였다. 1976년에는 어린 시절부터 응원하던 고향 근처의 축구팀 왓퍼드 FC의 구단주가 되어, 하부 리그 팀이 1부 리그에 오르는 길을 함께했다.
에루빌 성에서 투어 밴드와 함께 녹음한 「혼키 샤토」의 대표곡으로, 1970년대 전반 그의 질주를 알린 노래다.
- 우주 비행을 출퇴근처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비행사의 독백이다. 토핀은 레이 브래드버리의 단편에서 착상을 얻었다고 밝혔다. 화려한 소재를 쓸쓸한 생활의 시선으로 그린다.
- 데이비 존스턴의 슬라이드 기타(금속 막대를 줄 위에 미끄러뜨려 음을 끄는 주법)가 몽롱한 우주의 거리감을 만든다.
- 후렴에서 디 머리와 나이절 올슨의 화음 코러스가 겹치며 소리가 갑자기 넓어진다. 밴드가 직접 녹음에 참여한 효과가 가장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 뒤편에 깔린 신시사이저의 긴 음이 공간을 채운다. 프로듀서 거스 더전의 정돈된 녹음 덕분에 악기마다 자리가 또렷하게 들린다.
그를 세계적 스타로 만든 동명 앨범의 타이틀곡이지만, 정작 노래는 화려한 세계를 떠나 소박한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담고 있다.
- 후렴에서 목소리가 평소 음역을 넘어 가볍고 높은 가성(팔세토)으로 올라간다. 화려한 고음이 아니라 떠나는 사람의 아련함처럼 들린다.
- 델 뉴먼이 편곡한 현악이 피아노 화음 아래를 부드럽게 받친다. 소리는 풍성하지만 들뜨지 않는다.
- 가사는 스타를 길들이려는 화려한 세계에 이별을 고하고 시골로 돌아가겠다는 화자의 이야기다. 스타의 정점에서 그 정점을 의심하는 역설이 곡의 뼈대다.
- 절에서 후렴으로 넘어갈 때 화음이 예상 밖의 방향으로 꺾이며 분위기가 환해진다. 클래식을 배운 그의 화성 감각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1974년 앨범 「카리부」에 실린 대형 발라드로, 훗날 라이브 에이드와 1991년 실황에서 조지 마이클과의 듀엣으로 다시 생명을 얻었다.
- 비치 보이스의 칼 윌슨과 브루스 존스턴이 코러스에 참여했다. 후렴 뒤편의 두텁고 매끈한 화음에서 그들의 색깔이 들린다.
- 델 뉴먼이 편곡한 금관(혼 섹션)이 클라이맥스에서 한꺼번에 터지며 곡을 웅장하게 끌어올린다.
- 조용한 피아노와 목소리로 시작해 마지막 후렴까지 단계적으로 쌓아 올리는 짜임새다. 무너지기 직전의 관계를 붙잡으려는 절박함이 소리의 크기로 커진다.
- 1985년 라이브 에이드 무대에서 조지 마이클이 이 곡을 함께 불렀고, 엘튼은 소개말로 그를 추어올렸다. 젊은 가수에게 무대를 내어 주는 선배의 모습으로 회자되는 장면이다.
IV. 여전히 서 있다 · 1977–1989
(피로) 쉼 없는 투어와 녹음은 그를 지치게 했다. 1977년 무렵 그는 공연을 크게 줄였고, 토핀과도 잠시 각자의 길을 걸었다. 1978년 「싱글 맨」에서는 작사가 게리 오즈번과 손을 잡았다. 1979년에는 타악기 주자 레이 쿠퍼와 단둘이 소련 순회공연을 열어, 냉전기 소련 무대에 선 드문 서방 팝 스타가 됐다. (고백) 그는 1976년 「롤링 스톤」 인터뷰에서 양성애자라고 밝혔고, 이후 동성애자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사생활이 거듭 신문 지면에 오르내리던 시기였지만, 그는 음악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재회) 1980년대 초 토핀과 다시 손잡은 그는 1983년 「투 로우 포 제로」로 기운을 되찾았다. 「아임 스틸 스탠딩」은 1970년대 말의 부진을 딛고 일어선 선언처럼 받아들여졌다. 1985년 7월 런던 웸블리의 라이브 에이드 무대에서는 조지 마이클과 함께 「돈트 렛 더 선 고 다운 온 미」를 불렀다. 둘의 듀엣은 1991년 조지 마이클의 웸블리 공연 실황으로 다시 나와 영국과 미국에서 1위에 올랐다. (소송) 돈 문제는 법정으로 갔다. 그와 토핀은 초기 계약이 젊은 작곡가들에게 불공정했다며 딕 제임스 측을 상대로 소송을 냈고, 1985년 런던 고등법원은 밀린 로열티(곡이 쓰일 때마다 작가에게 돌아가는 사용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곡의 저작권 자체를 돌려주지는 않았다. 1987년에는 성대 수술을 받았고, 그 뒤로 그의 목소리는 한층 낮고 굵어졌다. 1989년 앨범 「슬리핑 위드 더 패스트」는 그 새 목소리로 부른 성숙한 발라드를 담았다.
토핀과 다시 손잡은 「투 로우 포 제로」의 곡으로, 1970년대 말의 부진을 딛고 일어선 그의 재기 선언처럼 받아들여졌다.
- 피아노가 일정한 박자로 화음을 힘차게 내리치며 곡 전체를 밀고 간다. 건반이 곧 리듬 악기다.
- 가사는 자신을 깎아내렸던 상대에게 보란 듯이 건재함을 보여 주는 화법이다. 원망보다 유쾌한 반격에 가깝다.
- 후렴에서 제목을 외치는 대목이 짧고 강하게 반복돼 한 번만 들어도 따라 부를 수 있다.
- 러셀 멀케이가 연출한 뮤직비디오는 프랑스 칸과 니스 해변에서 찍었다. 무용수들과 원색 의상이 어우러진 화면으로 MTV 초기의 대표 영상이 됐다.
V. 회복과 헌신 · 1990–2004
(회복) 1990년 그는 술과 약물 중독 치료를 받았고, 이후 줄곧 끊고 지내 왔다고 자서전과 인터뷰에서 밝혀 왔다. 그가 계기로 꼽은 사람 중 하나가 수혈로 에이즈에 감염돼 차별과 싸우던 미국 인디애나의 소년 라이언 화이트였다. 엘튼은 그의 가족 곁을 지켰고, 1990년 4월 장례식에서 피아노를 치며 노래했다. (재단) 같은 해 「새크리파이스」가 그의 첫 영국 솔로 1위 싱글이 되자, 그는 싱글 수익을 에이즈 관련 단체에 기부했다. 1991년 친구 프레디 머큐리를 에이즈로 잃은 뒤에는 1992년 미국에, 1993년 영국에 엘튼 존 에이즈 재단을 세웠다. 재단은 이후 수억 달러의 기금을 모아 세계 곳곳의 예방과 치료 사업을 지원했다. (라이온) 1994년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을 위해 작사가 팀 라이스와 곡을 썼고, 「캔 유 필 더 러브 투나잇」으로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았다. 이 작업은 뮤지컬 「라이온 킹」과 「아이다」, 훗날의 「빌리 엘리어트」로 이어지는 무대 음악가의 길을 열었다. 같은 해부터는 빌리 조엘과 함께 「페이스 투 페이스」라는 이름의 공동 투어를 여러 차례 열었다. 두 피아노맨이 무대 양쪽에서 마주 보며 서로의 곡을 주고받는 공연이었다. (추모) 1997년 9월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장례식에서 그는 토핀이 가사를 새로 고쳐 쓴 「캔들 인 더 윈드 1997」을 불렀다. 본래 1973년 메릴린 먼로를 기리며 쓴 곡이었다. 이 싱글은 영국 차트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싱글이 됐고, 수익은 다이애나 기념 기금으로 갔다. 이듬해 그는 기사 작위를 받았다. 2001년 「송스 프롬 더 웨스트 코스트」에서는 피아노 중심의 1970년대 초 작법으로 돌아가 호평을 받았다.
성대 수술 이후 낮아진 목소리로 부른 발라드로, 1990년 그의 첫 영국 솔로 1위가 되자 그는 수익을 에이즈 관련 단체에 기부했다.
- 느린 템포 위에 신시사이저가 길고 부드러운 화음을 깔아 둔다. 1970년대의 피아노 발라드와는 다른, 공기처럼 퍼지는 소리다.
- 수술 이후 한층 낮고 굵어진 목소리가 중저음에서 담담하게 노래한다. 높이 올라가지 않아도 무게가 실린다.
- 가사는 오래된 관계가 서서히 식어 가는 어른의 이별을 다룬다. 극적인 파국 대신 체념과 회한의 정서다.
- 2021년 히트곡 「콜드 하트」의 절 부분이 바로 이 곡의 선율에서 왔다. 두 곡을 이어 들으면 30여 년을 건너뛴 멜로디의 생명력이 보인다.
팀 라이스와 함께 쓴 「라이온 킹」의 노래로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았고, 그가 뮤지컬 작곡가로 나아가는 문을 열었다.
- 영화 본편에서는 등장인물들이 부르고, 엔딩 크레디트에서는 엘튼이 직접 부른 팝 버전이 흐른다. 두 버전을 비교하면 같은 선율이 극과 음반에서 어떻게 달리 쓰이는지 들린다.
- 엘튼의 버전은 피아노와 코러스가 점점 겹치며 교회 성가 같은 장중함(가스펠풍)으로 커진다.
- 후렴의 선율이 크게 도약하지 않고 계단처럼 차근차근 올라가 아이부터 어른까지 따라 부르기 쉽다.
- 가사는 서로에게 마음이 있으면서도 말하지 못하는 두 인물의 망설임을 그린다. 고백 직전의 고요한 설렘이 곡의 정서다.
VI. 작별 그리고 계속 · 2005–2026
(가족) 2005년 12월, 영국에서 동성 커플의 시민 동반자 관계 등록이 시작된 첫날 그는 캐나다 출신의 영화 제작자 데이비드 퍼니시와 동반자 관계를 맺었고, 2014년 정식으로 결혼했다. 부부는 두 아들을 두었다. 2004년부터는 라스베이거스 시저스 팰리스에서 한 공연장에 머물며 정기 공연을 이어 가는 레지던시 「더 레드 피아노」를 열었다. (듀엣) 2010년 그는 젊은 날의 우상이던 미국 피아니스트 리언 러셀을 찾아가 프로듀서 T 본 버넷과 함께 앨범 「더 유니언」을 만들었다. 같은 해 그래미 시상식에서는 레이디 가가와 피아노 두 대를 마주 놓고 「유어 송」과 가가의 「Speechless」를 이어 불렀다. 2021년 오스트레일리아 듀오 피나우가 그의 옛 곡 여러 개를 엮어 만든 매시업 「콜드 하트」는 두아 리파와의 듀엣으로 영국 1위에 올랐고, 2022년에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타이니 댄서」 등을 엮은 「홀드 미 클로저」를 냈다. (작별) 2018년 시작한 「페어웰 옐로 브릭 로드」 투어는 코로나19 유행으로 멈췄다가 재개돼, 2023년 6월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 헤드라이너 무대를 거쳐 7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막을 내렸다. 당시 사상 최고 흥행 투어였고, 이 기록은 이후 테일러 스위프트의 「디 에라스 투어」가 넘어섰다. 2019년에는 전기 영화 「로켓맨」과 자서전 「미」가 나왔고, 영화를 위해 토핀과 쓴 곡으로 이듬해 두 번째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았다. (현재) 2024년 에미상을 받으며 에미·그래미·오스카·토니상을 모두 거머쥔 몇 안 되는 인물이 됐고, 같은 해 토핀과 함께 미국 의회도서관 거슈윈상을 받았다. 대규모 투어에서는 물러났지만 2025년 브랜디 칼라일과 앨범 「후 빌리브스 인 에인절스?」를 내며 곡 쓰기를 이어 가고 있다. 토핀의 가사가 도착하면 피아노 앞에 앉는 방식은 처음 우편으로 가사를 받던 때와 다르지 않다.
오스트레일리아 듀오 피나우가 그의 옛 곡들을 엮어 만든 매시업으로, 데뷔 반세기 만에 젊은 세대의 클럽과 차트에서 그를 다시 1위에 올렸다.
- 후렴은 「로켓 맨」, 절은 「새크리파이스」의 선율에서 가져왔다. 1972년과 1989년의 노래가 한 곡 안에서 만난다.
- 박자마다 킥 드럼이 고르게 쿵쿵 울리는(포 온 더 플로어) 하우스 리듬이 깔려, 원곡의 쓸쓸한 발라드가 춤곡으로 바뀐다.
- 엘튼이 「새크리파이스」에서 온 대목을, 두아 리파가 「로켓 맨」에서 온 후렴을 나눠 부른다. 맑고 가벼운 젊은 목소리와 세월이 실린 낮은 목소리의 대비가 곡의 핵심이다.
- 원곡의 우주적 고독감은 남아 있지만, 반짝이는 신시사이저 덕분에 그리움보다 들뜬 해방감처럼 들린다.
덜 알려진 이야기
(무명) 1969년과 1970년 사이, 그는 당시 히트곡을 원곡과 비슷하게 흉내 내 싸게 파는 염가 커버 음반들에 이름 없이 노래를 불렀다. 생계를 위한 일이라 크레디트에 이름이 실리지 않았고, 오랫동안 잊혀 있다가 수집가들이 목소리를 알아보면서 1990년대에 편집 음반으로 다시 묶여 나왔다. (세션) 같은 무렵 세션 피아니스트로도 일해, 홀리스의 1969년 히트곡 「He Ain't Heavy, He's My Brother」에서 피아노를 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타가 되기 전의 일이라 당시에는 누구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유로비전) 1969년 영국의 유로비전 출전곡을 고르는 경연에서 룰루가 부른 엘튼과 토핀의 곡이 후보에 올랐지만 여섯 곡 가운데 꼴찌로 끝났다. 훗날의 명성에 가려 두 사람의 초기 좌절로 각주에만 남은 대목이다. (허큘리스) 1972년 그는 이름을 법적으로 엘튼 허큘리스 존으로 바꿨다. 가운데 이름 허큘리스는 영국 시트콤 「스텝토 앤드 선」에 나오는 말의 이름에서 따온 농담이었다. (러셀) 젊은 시절 그가 가장 닮고 싶어 한 피아니스트는 미국의 리언 러셀이었다. 40년 뒤 러셀이 잊혀 가는 것을 안타까워한 그가 먼저 연락해 2010년 앨범 「더 유니언」이 만들어졌고, 이 음반은 러셀의 마지막 전성기를 열어 주었다.
용어 노트 📚🔎
프로듀서
(말뜻) 영어 produce는 만들어 내다라는 뜻이어서, 프로듀서는 말 그대로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팝에서) 노래를 녹음할 때 어떤 악기를 쓰고, 소리를 어떻게 다듬고, 여러 번 연주한 것 가운데 무엇을 고를지까지 전체를 책임지는 사람이다. 가수가 배우라면 프로듀서는 영화감독에 가깝다. 학급 연극에서 대본은 한 친구가 쓰고 연기는 다른 친구들이 해도, 무대 전체를 어떻게 보여 줄지 정하는 연출 담당이 따로 있는 것과 같다. (다른 데서는) 방송이나 영화에서는 제작비와 일정을 관리하며 작품 제작을 이끄는 제작자를 가리키는 말로 쓴다.
편곡
(말뜻) 편곡(編曲)은 곡(曲)을 엮는다(編)는 뜻이다. 이미 있는 노래를 새로 엮어 짠다는 말이다. (팝에서) 만들어진 멜로디와 화음에 어떤 악기가 언제 들어오고 어떤 리듬으로 받칠지를 정하는 일이다. 같은 노래라도 편곡에 따라 피아노 한 대의 조용한 곡이 되기도 하고, 현악기가 울리는 웅장한 곡이 되기도 한다. 똑같은 라면을 끓여도 달걀·파·치즈를 언제 무엇을 넣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이 나는 것과 비슷하다.
로열티
(말뜻) 영어 royalty는 원래 왕의 권한을 뜻했다. 왕이 광산 같은 권리를 허락해 주고 사용료를 받던 데서 지금의 뜻이 나왔다. (팝에서) 노래가 음반·방송·스트리밍으로 쓰일 때마다 작곡가·작사가·가수에게 돌아가는 사용료다. 처음에 어떤 계약을 맺었느냐에 따라 같은 곡이 똑같이 팔려도 손에 쥐는 몫이 크게 달라진다. 친구들이 내가 만든 게임 맵을 쓸 때마다 사용료를 조금씩 받기로 약속했다고 해 보자. 처음 약속을 불리하게 해 두면 맵이 아무리 인기를 끌어도 내 몫은 적다. (다른 데서는) 영어에서 royalty는 왕족이라는 뜻으로도 쓴다.
세션 연주
(팝에서) 특정 밴드에 속하지 않은 연주자가 녹음이 있을 때마다 불려 가 연주하고 보수를 받는 일이다. 앨범에 이름이 작게 실리거나 아예 빠지는 경우도 많아서, 유명한 곡 속 연주를 누가 했는지 한참 뒤에야 알려지기도 한다. 운동회 이어달리기에서 반에 사람이 모자랄 때 다른 반 친구가 잠깐 대신 뛰어 주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session은 보통 회의나 수업의 한 회차를 뜻하고, 컴퓨터에서는 접속해 있는 동안을 가리킨다.
팔세토
(말뜻) 이탈리아어 falso(가짜)에서 나온 말로, 우리말로는 가성(假聲), 곧 가짜 목소리라고 부른다. (팝에서) 평소 말하는 목소리보다 훨씬 높은 음을 내려고 성대를 얇게 써서 내는 가볍고 맑은 목소리다. 남자 가수가 갑자기 여자 목소리처럼 높고 여리게 올라가는 대목이 대개 팔세토다. 친구 흉내를 내려고 목소리를 가늘게 높여 본 적이 있다면, 그게 팔세토의 아주 서툰 버전이다.
매시업
(말뜻) mash는 으깨어 섞는다는 뜻이다. 감자를 으깨 만드는 매시드 포테이토의 그 mash다. (팝에서) 둘 이상의 노래에서 부분을 떼어 와 한 곡처럼 이어 붙이고 겹치는 방식이다. 한 곡의 후렴과 다른 곡의 절이 새 리듬 위에서 만난다. 학예회에서 여러 곡을 차례로 이어 부르는 메들리와 비슷하지만, 메들리가 한 곡씩 이어 간다면 매시업은 아예 섞어서 한 곡으로 만든다. (다른 데서는) 프로그래밍에서는 여러 서비스의 데이터를 합쳐 새 서비스를 만드는 것을 매시업이라고 부른다.
레지던시
(말뜻) 영어 residency는 거주를 뜻한다. 한곳에 살듯이 머문다는 말이다. (팝에서) 가수가 여러 도시를 도는 대신 한 공연장에 자리를 잡고 몇 달, 몇 년에 걸쳐 정기적으로 공연하는 방식이다. 미국 라스베이거스가 대표적인 무대다. 순회 공연이 여러 경기장을 돌아다니는 원정 경기라면, 레지던시는 홈구장에서 시즌 내내 치르는 홈경기다. (다른 데서는) 의학에서는 전문의가 되기 위한 전공의 수련 과정을, 미술계에서는 작가가 일정 기간 머물며 작업하는 입주 프로그램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