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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BA

아바 (1972–)

두 사람이 곡을 쓰고 두 사람이 노래했다. 두 목소리가 겹치면 한 사람의 소리처럼 들렸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스웨덴 스톡홀름 결성헵 스타스와 후테나니노르웨이 태생 프리다2. 도약링 링 예선 3위이름 ABBA워털루 우승3. 정점호주 열풍댄싱 퀸 미국 1위폴라 스튜디오4. 이별유니세프 공연위너 테이크스 잇 올방문객과 휴지5. 각자뮤지컬 체스맘마 미아!마돈나 헝 업6. 귀환보이지 앨범아바타 공연바사 훈장아바1972–스웨덴의 두 작곡가와 두 가수가 유로비전에서 …
무대의 여정 🧭🗺️
N스웨덴에스킬스투나1940년대 후반–1960년대옌셰핑1950–1960년대베스테르비크1950–1960년대스톡홀름1946–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동료스티그 안데르손

    폴라 뮤직을 세운 매니저이자 초기 공동 작사가로, 아바라는 이름을 지었다.

  • 동료미카엘 B. 트레토

    겹쳐 녹음하는 기법으로 아바 특유의 두꺼운 소리를 만든 녹음 엔지니어였다.

  • 우정비지스

    1979년 비지스가 주도한 유니세프 자선 공연에서 아바는 「Chiquitita」를 처음 공개했다.

  • 동료팀 라이스

    비에른·베니와 뮤지컬 「Chess」를 함께 만든 영국 작사가다.

  • 후원주디 크레이머

    오랜 설득 끝에 뮤지컬 「Mamma Mia!」를 무대에 올려 아바의 노래에 새 생명을 준 제작자다.

  • 영향마돈나

    아바의 영향을 받은 그는 2005년 「Hung Up」에 아바의 리프를 쓰려고 직접 편지를 보내 허락을 얻었다.

YouTube에서 8곡 이어 듣기 ↗

I. 네 사람 · 1945–1972

(결성) 1972년 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두 쌍의 연인이 함께 첫 싱글을 녹음하며 한 그룹이 됐다. 곡은 「People Need Love」였고, 이름은 아직 없었다. 음반에는 '비에른 & 베니, 아그네타 & 아니프리드'라는 긴 표기가 붙었다. (포크) 비에른 울바에우스는 1945년 예테보리에서 태어나 동해안 소도시 베스테르비크에서 자랐다. 10대에 포크 그룹 후테나니 싱어스를 결성했고, 이 그룹과 음반 계약을 맺은 사람이 폴라 뮤직의 스티그 안데르손이었다. (아코디언) 베니 안데르손은 1946년 스톡홀름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 무렵 아버지에게서 아코디언을 받아 할아버지와 함께 민요를 연주했고, 피아노는 거의 혼자 익혔다. 1960년대 중반 그가 건반을 맡은 헵 스타스는 스웨덴의 비틀스로 불렸다. 1966년 두 청년은 처음으로 함께 곡을 썼다. (옌셰핑) 아그네타 펠트스코그는 1950년 옌셰핑에서 태어났다. 아마추어 무대를 즐기던 아버지 곁에서 노래와 피아노를 배웠고, 열일곱 살에 직접 쓴 「Jag var så kär」로 스웨덴 차트 1위에 올랐다. 1969년 TV 방송 녹화장에서 비에른을 만나 1971년 결혼했다. (노르웨이) 아니프리드 륑스타드, 곧 프리다는 1945년 노르웨이 북부에서 노르웨이인 어머니와 독일군 병사 사이에 태어났다.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난 뒤 외할머니 손에 스웨덴 에스킬스투나 인근에서 자랐으며, 이 사실은 본인이 공개적으로 이야기해 왔다. 10대부터 댄스 밴드에서 재즈와 스탠더드를 불렀고, 1967년 신인 경연에서 우승했다. 1969년 베니를 만났다. (카바레) 1970년 네 사람은 예테보리에서 카바레 공연 「Festfolk」를 함께 올렸으나 반응은 미지근했다. 그래도 남자 둘의 곡과 여자 둘의 목소리가 맞물린다는 사실은 그때 이미 드러났다. 프리다의 두텁고 따뜻한 중음과 아그네타의 맑은 고음은 서로를 보완했다.

II. 워털루 · 1972–1974

(예선) 「People Need Love」가 스웨덴에서 작은 성공을 거두자 네 사람은 1973년 2월 유로비전 스웨덴 예선인 멜로디페스티발렌에 「Ring Ring」을 냈다. 결과는 3위였다. 그러나 같은 해 나온 첫 앨범 「Ring Ring」은 스웨덴 밖에서도 팔렸고, 네 사람은 국제 무대를 노릴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이름) 1973년 스티그 안데르손은 네 사람의 이름 머리글자를 이어 아바(ABBA)라는 이름을 붙였다. 같은 이름을 쓰던 예테보리의 생선 통조림 회사에 양해를 구한 뒤였다. 스티그는 매니저이자 레이블 수장이었고, 초기에는 가사를 함께 다듬는 공동 작사가였다. 그의 사업 감각과 비에른·베니의 작곡 집념이 초기 아바의 두 기둥이었다. (녹음실) 녹음은 엔지니어 미카엘 B. 트레토가 맡았다. 그는 같은 파트를 여러 번 겹쳐 녹음하는 기법(더블 트래킹)에 테이프 속도를 미세하게 바꾸는 방법을 더해 소리를 두껍게 만들었다. 미국 프로듀서 필 스펙터가 만든 이른바 소리의 벽을 스웨덴식으로 옮긴 셈이었다. 아그네타와 프리다의 목소리가 겹친 아바 특유의 질감은 여기서 태어났다. (브라이턴) 1974년 4월 6일, 영국 브라이턴에서 열린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아바는 「Waterloo」로 우승했다. 나폴레옹 복장의 지휘자, 별 모양 기타를 든 비에른, 반짝이는 무대 의상은 점잖은 발라드가 주류이던 대회에서 낯선 광경이었다. 곡은 영국 싱글 차트 1위에 올랐다. (압박) 그러나 우승은 출발점일 뿐이었다. 유로비전 우승자가 한 번 반짝이고 잊히는 일은 흔했고, 후속 싱글들은 영국에서 기대만큼 팔리지 않았다. 네 사람은 다음 곡이 그룹의 운명을 가른다는 압박 속에서 1975년 앨범 「ABBA」를 만들었다.

♪워털루 (Waterloo)1974실황 ABBA · 1974 유로비전 우승 무대

유로비전 우승으로 아바를 세계에 알린 곡이다. 사랑에 항복하는 마음을 나폴레옹의 패배에 빗댄 재치가 무대 연출과 맞물렸다.

  • 피아노가 블루스에서 온, 왼손으로 통통 튀는 리듬을 반복하는 연주(부기우기)를 깔고 색소폰이 거칠게 끼어들어 영국 글램 록의 들뜬 기운을 낸다.
  • 아그네타와 프리다는 대부분의 대목을 같은 선율로 함께 부르는(유니즌) 방식이라, 한 사람의 목소리보다 넓고 밝게 울린다.
  • 트레토가 보컬과 악기를 여러 번 겹쳐 녹음해 소리가 벽처럼 두껍게 들린다 — 초기 아바 사운드의 원형이다.
  • 1974년 브라이턴 무대에서는 나폴레옹 차림의 지휘자와 비에른의 별 모양 기타가 화제가 됐다. 노래만큼 보여 주는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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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춤추는 여왕 · 1975–1977

(호주) 반전은 먼 곳에서 왔다. 1975년 호주 음악 프로그램 「Countdown」이 아바의 영상을 거듭 내보내자 「Mamma Mia」가 호주 차트 정상에 올랐고, 유럽에서는 「SOS」가 다시 길을 열었다. 영상 대부분은 훗날 영화감독으로 이름을 얻는 라세 할스트룀이 적은 예산으로 찍은 것이었다. 텔레비전 영상이 음반을 파는 시대를 아바는 일찍 맞이했다. (왕실) 1976년 6월, 스웨덴 국왕 칼 16세 구스타프의 결혼 전야 축하 공연에서 아바는 「Dancing Queen」을 불렀다. 1975년 여름부터 다듬어 온 곡으로, 비에른과 베니는 조지 매크레이의 「Rock Your Baby」 같은 미국 소울의 느긋한 리듬에서 출발했다고 밝혔다. 그해 앨범 「Arrival」에 실린 이 곡은 1977년 아바의 유일한 미국 빌보드 1위가 됐다. (분업) 이 무렵 역할이 굳어졌다. 베니가 피아노 앞에서 선율을 만들면 비에른이 기타로 거들고 가사를 썼다. 두 사람은 스톡홀름 앞바다 섬 비그쇠의 작은 오두막에서 직장인처럼 정해진 시간에 곡을 썼다. 아그네타와 프리다는 곡을 쓰지 않았지만, 누가 리드를 맡느냐에 따라 곡의 표정이 바뀌었다. 맑고 애절한 곡은 아그네타에게, 따뜻하고 극적인 곡은 프리다에게 가는 경우가 많았다. (돈) 전성기의 아바는 볼보에 버금가는 스웨덴의 외화벌이로 불렸다고 전해진다. 높은 세율 탓에 수입의 상당 부분이 세금으로 나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투어) 1977년 유럽과 호주 투어는 가는 곳마다 매진이었다. 할스트룀은 호주 공연을 따라다니며 영화 「ABBA: The Movie」를 찍었다. 같은 해 나온 「The Album」에는 「The Name of the Game」, 「Take a Chance on Me」가 실렸고, 곡의 짜임은 점점 더 정교해졌다.

♪맘마 미아 (Mamma Mia)1975무대 ABBA · 1976 BBC Top of the Pops

호주 TV가 먼저 알아본 곡으로, 유로비전 이후 주춤하던 아바를 다시 세계 무대로 끌어올렸다. 훗날 뮤지컬의 제목이 됐다.

  • 시계 초침처럼 똑딱이는 마림바(나무 건반을 채로 두드리는 타악기) 음형으로 시작한다. 이 짧은 소리가 곡 전체의 첫인상이 된다.
  • 흔들리는 마음을 털어놓는 절에서 감정을 누르다가 후렴에서 두 여성 보컬이 화음으로 갈라지며 확 넓어진다.
  • 잘게 끊어 치는 어쿠스틱 기타와 단단한 드럼이 서두르지 않는 중간 빠르기의 그루브를 끝까지 지킨다.
  • 할스트룀이 찍은 뮤직비디오는 두 여성의 얼굴을 한 화면에 겹쳐 잡은 구도로 기억되며, 호주 「Countdown」에서 거듭 방영돼 현지 열풍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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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싱 퀸 (Dancing Queen)1976무대 ABBA · 1976 TV 특집 ABBA Down Under

국왕의 결혼 전야 축하 공연에서도 불린 아바의 대표곡이자 유일한 미국 1위곡이다. 열일곱 살의 밤을 바라보는 시선이 들뜨면서도 어딘가 아련하다.

  • 피아노가 건반을 손으로 쓸어내리는 주법(글리산도)으로 문을 열고, 절을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후렴 같은 절정부터 시작하는 짜임이 귀를 붙잡는다.
  • 드럼은 조지 매크레이 「Rock Your Baby」에서 영감을 받은 느긋한 리듬으로, 빠른 디스코보다 넓고 여유 있게 흔들린다.
  • 아그네타와 프리다가 높은 음역에서 같은 선율을 겹쳐 부르고, 그 위로 현악과 백보컬이 층층이 쌓여 반짝이는 소리의 막을 만든다.
  • 기쁨을 노래하면서도 화음 곳곳에 아쉬움이 묻어 있어, 축제의 한가운데서 그 순간이 지나갈 것을 아는 사람의 노래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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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갈라지는 목소리 · 1978–1980

(폴라) 1978년 스톡홀름에 폴라 스튜디오가 문을 열었다. 아바가 시간에 쫓기지 않고 녹음하려고 지은 곳으로, 곧 레드 제플린과 제네시스도 이곳에서 앨범을 녹음했다. (결별) 그해 10월 베니와 프리다는 조용히 결혼했다. 반면 비에른과 아그네타는 연말에 갈라서기로 하고 1979년 초 이를 공개했으며, 두 사람 모두 그룹 활동은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유니세프) 1979년 1월, 뉴욕 유엔 총회장에서 열린 '유니세프를 위한 음악' 콘서트에 아바는 비지스, 도나 서머, 어스 윈드 앤 파이어, 로드 스튜어트 등과 함께 섰다. 비지스와 제작자 로버트 스티그우드가 주도한 공연이었고, 출연자들은 각자 한 곡의 저작권 수익을 유니세프에 내놓았다. 아바가 고른 곡은 이날 처음 공개한 「Chiquitita」였다. (마이애미) 앨범 「Voulez-Vous」를 만들며 비에른과 베니는 미국 마이애미의 크라이테리아 스튜디오에서 타이틀곡의 반주를 녹음했다. 비지스가 디스코 시기의 히트곡을 만든 곳이었다. 「Gimme! Gimme! Gimme! (A Man After Midnight)」까지, 이 시기 아바는 미국 디스코의 리듬을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해 가을 첫 북미 투어와 유럽 투어가 이어졌다. (위너) 1980년 앨범 「Super Trouper」에 실린 「The Winner Takes It All」은 비에른이 가사를 쓰고 아그네타가 부른 이별 노래였다. 비에른은 인터뷰에서 이 곡이 자신들의 이혼을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그 경험이 바탕이 됐음은 인정했다. 헤어진 두 사람이 한 사람은 쓰고 한 사람은 부른 노래라는 사실이 곡에 남다른 무게를 실었다. 오늘날 이 곡은 아바가 남긴 가장 깊은 발라드로 꼽힌다.

♪치키티타 (Chiquitita)1979실황 ABBA · 1979–80 북미·유럽 투어

1979년 유엔 총회장의 유니세프 자선 공연에서 비지스, 도나 서머와 같은 무대에 서며 처음 공개한 곡이다. 저작권 수익은 유니세프에 기부됐다.

  • 조용한 피아노 위에서 아그네타가 상심한 친구를 다독이듯 부드럽게 말을 거는 화법으로 노래를 시작한다.
  • 후렴 뒤의 기타와 피아노 간주가 남미 민속 춤처럼 흔들리는 리듬을 들여와 곡에 이국적인 색을 입힌다.
  • 곡이 진행될수록 백보컬과 현악이 차곡차곡 쌓여 마지막 후렴은 합창처럼 커진다.
  • 스페인어판도 따로 녹음돼 중남미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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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다 (The Winner Takes It All)1980공식 MV — ABBA

비에른이 쓰고 아그네타가 부른 이별 노래다. 두 사람의 결별이 감정의 바탕이 됐다는 사실이 곡을 아바의 가장 깊은 발라드로 만들었다.

  • 베니의 피아노가 화음을 한 음씩 차례로 펼쳐 치는 연주(아르페지오)로 처음부터 끝까지 곡의 바닥을 깐다.
  • 절과 후렴의 경계가 흐릿하고 같은 선율 덩어리가 되풀이되며 조금씩 높아지는 짜임이라, 감정이 한 번에 터지지 않고 서서히 차오른다.
  • 아그네타는 처음엔 낮고 담담하게 시작해 뒤로 갈수록 힘을 실어, 고음에서 무너질 듯 버티는 목소리를 들려준다.
  • 백보컬이 아그네타의 말끝을 메아리처럼 받아 부르는 대목이 혼잣말과 대답이 오가는 대화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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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마지막 방문객 · 1981–1982

(재편) 1981년 초 베니와 프리다도 이혼을 발표했다. 아바는 이제 두 쌍의 부부가 아니라 네 명의 동료였고, 녹음실의 공기도 달라졌다. 비에른과 베니는 그 무렵부터 그룹 바깥의 더 긴 이야기, 곧 뮤지컬에 마음을 두기 시작했다. (방문객) 1981년 말 나온 「The Visitors」는 앞선 앨범들과 결이 달랐다. 타이틀곡은 냉전기 소련의 반체제 인사가 문 두드리는 소리를 두려워하는 장면을 그렸고, 「One of Us」와 프리다가 부른 「When All Is Said and Done」은 이별 뒤의 체념과 정리를 담담하게 노래했다. 화려한 춤곡 대신 어둡고 성숙한 정서가 앨범 전체를 덮었다. (전자음) 베니는 신시사이저를 더 깊이 끌어들였고, 「The Visitors」는 디지털 장비로 녹음된 초기 대중음악 앨범 가운데 하나였다. 트레토가 다듬던 두꺼운 아날로그 질감은 차갑고 선명한 1980년대의 소리로 옮겨 갔다. (마지막) 1982년 여름 네 사람은 새 앨범을 위해 다시 모였지만 작업은 더뎠다. 대신 신곡 「The Day Before You Came」과 「Under Attack」을 담은 편집 앨범 「The Singles: The First Ten Years」를 냈다. 그해 12월 영국 BBC 프로그램에 스톡홀름에서 위성으로 출연한 것이 오랫동안 네 사람이 함께한 마지막 모습으로 남았다. (휴지) 아바는 해체를 선언하지 않았다. 네 사람은 훗날 인터뷰에서 그저 쉬기로 했을 뿐이며, 그 휴식이 길어졌다고 말했다. 공식 발표 없는 멈춤은 이후 수십 년 동안 재결합을 묻는 질문을 끊임없이 불러왔다.

♪당신이 오기 전날 (The Day Before You Came)1982공식 MV — ABBA

네 사람이 함께 녹음한 마지막 곡들 가운데 하나다. 평범한 하루를 담담히 되짚는 노래가 그룹의 조용한 퇴장과 겹쳐 들린다.

  • 아그네타가 하루의 사소한 일과를 거의 말하듯 낮게 이어 가는 서술형 화법으로, 극적인 고음 없이 6분 가까이 긴장을 붙든다.
  • 기계처럼 일정하게 반복되는 리듬과 베니의 신시사이저가 1980년대 초 전자음의 차갑고 선명한 질감을 만든다.
  • 후렴 뒤편에서 프리다가 높은 음역으로 가사 없이 길게 뽑는 소리가 유령처럼 떠다니며 곡에 불안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 끝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하지 않고 끝나는 짜임이, 결말을 비워 둔 단편 소설처럼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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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각자의 무대 · 1983–2020

(체스) 비에른과 베니는 영국 작사가 팀 라이스와 손잡고 냉전기 체스 대결을 다룬 뮤지컬 「Chess」를 만들었다. 1984년 콘셉트 앨범이 먼저 나와 「One Night in Bangkok」과 「I Know Him So Well」이 히트했고, 1986년 런던 웨스트엔드 무대에 올랐다. 베니는 이후 스웨덴 이민사를 그린 뮤지컬 「Kristina från Duvemåla」를 쓰고, 스웨덴 민속 음악 악단을 이끌었다. (솔로) 프리다는 1982년 필 콜린스가 프로듀싱한 솔로 앨범 「Something's Going On」을 냈고, 이후 스위스에 자리 잡아 환경 운동을 후원했다. 아그네타는 1983년 「Wrap Your Arms Around Me」, 1985년 「Eyes of a Woman」, 1987년 「I Stand Alone」을 낸 뒤 오랫동안 공식 활동에서 물러나 있다가 2004년과 2013년 앨범으로 돌아왔다. (매각) 1989년 폴라 뮤직은 음반사 폴리그램에 팔렸다. (골드) 1992년 편집 앨범 「ABBA Gold」가 나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음반 가운데 하나가 됐다. 1999년에는 아바의 노래로 이야기를 엮은 뮤지컬 「Mamma Mia!」가 런던에서 막을 올렸다. 제작자 주디 크레이머가 오랜 설득 끝에 허락을 얻어 낸 작품이었고, 2008년 메릴 스트립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샘플링) 2000년 무렵 네 사람은 재결합 공연 제안으로 10억 달러를 제시받고도 거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곡 사용에 엄격하던 비에른과 베니도 2005년 마돈나의 부탁은 받아들였다. 마돈나는 「Gimme! Gimme! Gimme!」의 신시사이저 리프를 「Hung Up」에 가져다 쓰는(샘플링) 허락을 얻으려고 직접 편지를 보냈고, 이 곡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1위에 올랐다. 2010년 아바는 미국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김미! 김미! 김미! (Gimme! Gimme! Gimme! (A Man After Midnight))1979실황 ABBA · 1979–80 북미·유럽 투어

1979년 디스코 시기의 곡이지만, 2005년 마돈나가 「Hung Up」에 그 신시사이저 리프를 쓰면서 새 세대에게 다시 알려졌다.

  • 어둡고 날카로운 신시사이저 리프가 처음부터 끝까지 곡을 끌고 간다 — 마돈나가 「Hung Up」으로 가져간 바로 그 소리다.
  • 네 박을 모두 똑같이 세게 밟는 디스코 킥드럼(포 온 더 플로어) 위로 두 여성 보컬이 고음에서 긴장감 있게 겹친다.
  • 한밤의 외로움을 호소하는 정서가 춤추는 리듬과 엇갈려, 신나면서도 쓸쓸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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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 여행 · 2021–2026

(재회) 2018년 네 사람은 새 곡을 녹음했다고 발표했다. 작업은 예상보다 길어졌고, 2021년 9월 40년 만의 새 앨범 「Voyage」가 공개돼 11월 발매됐다. 70대가 된 네 사람의 목소리는 젊은 날보다 낮고 차분했으며, 앨범은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1위에 올랐다. (아바타) 2022년 5월 런던 동부에 전용 공연장 아바 아레나가 문을 열고 「ABBA Voyage」 공연이 시작됐다. 네 사람은 몸의 움직임을 기록하는 장비(모션 캡처)를 입고 몇 주 동안 노래하고 움직였고, 조지 루카스가 세운 특수효과 회사 ILM이 이를 1970년대 모습의 디지털 아바타로 되살렸다. 무대 위 실연 밴드와 화면 속 네 사람이 함께하는 이 공연은 장기 흥행을 이어 갔다. (그래미) 전성기의 아바는 그래미 후보에 한 번도 오르지 못했다. 2022년 「I Still Have Faith in You」가 올해의 레코드 후보에 오르며 처음 그래미 후보가 됐고, 이듬해에는 「Voyage」가 올해의 앨범 후보에 올랐다. (훈장) 2024년, 「Waterloo」 우승 50주년을 맞아 네 사람은 스웨덴 왕실의 바사 훈장을 받았다. 반세기 가까이 수여되지 않던 이 훈장이 다시 주어진 첫 사례였다. 1976년 국왕의 결혼 전야에 노래하던 그룹이 같은 왕실에서 국가의 공로를 인정받은 셈이었다. (현재) 비에른은 「Voyage」가 아바의 마지막 앨범이라고 말했다. 네 사람은 실제로 함께 무대에 서지 않지만, 그들의 노래는 뮤지컬과 아바타 공연, 그리고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라디오와 스트리밍 속에서 계속 불리고 있다.

♪날 밀어내지 마 (Don't Shut Me Down)2021공식 MV — ABBA

40년 만의 앨범 「Voyage」의 곡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문을 두드리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바 자신의 귀환과 겹쳐 들린다.

  • 피아노와 목소리로 느린 발라드처럼 시작하다가 어느 순간 1970년대풍 디스코 리듬으로 확 바뀌는 지점이 곡의 반전이다.
  • 70대 아그네타의 목소리는 전보다 낮고 둥글어졌지만, 리드를 맡아 전성기 아바 특유의 높은 겹소리 후렴으로 곡을 이끈다.
  • 베니의 피아노와 현악 편곡이 고전 아바 곡을 스스로 인용하듯 떠올리게 해, 반세기를 잇는 다리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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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알려진 이야기

1973년 「Ring Ring」의 영어 가사는 미국의 히트 작곡가 닐 세다카와 그의 작사 파트너 필 코디가 다듬었다. 국제 시장을 노린 스티그 안데르손이 부탁한 일이었다. 이름도 없던 스웨덴 신인과 미국 팝의 베테랑이 손잡은 이 협업은, 아바가 처음부터 스웨덴 밖을 겨냥하고 있었음을 보여 주지만 그룹의 이후 성공에 가려 각주로만 남았다. 1974년 유로비전 출품곡으로 처음 거론된 곡은 아그네타 혼자 리드를 맡은 발라드 「Hasta Mañana」였다. 네 사람이 함께 노래하는 곡이 그룹을 알리기에 낫다는 판단에 「Waterloo」가 선택됐다. 그 결정이 없었다면 아바는 발라드 가수의 그룹으로 기억됐을지도 모른다. 「Thank You for the Music」은 원래 1977년 투어에서 공연한 짧은 뮤지컬 「The Girl with the Golden Hair」의 한 곡이었다. 가수를 꿈꾸는 소녀의 이야기를 네 곡으로 엮은 이 무대는 음반으로 따로 나오지 않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비에른과 베니가 뮤지컬에 품은 꿈이 「Chess」나 「Mamma Mia!」보다 훨씬 앞서 있었음을 보여 준다. 1982년 독일 필립스 공장에서 처음 시험 생산된 CD 가운데 하나가 아바의 「The Visitors」였다고 기록돼 있다. 새 매체의 시작을 함께했다는 이 사실은 음악사보다 기술사 쪽 자료에 주로 남아 있다.

용어 노트 📚🔎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말뜻) 유로비전(Eurovision)은 유럽(Europe)과 텔레비전(television)을 합친 말로, 유럽 여러 나라 방송사가 프로그램을 함께 중계하는 망의 이름이다. (팝에서) 1956년부터 유럽방송연맹이 해마다 여는 나라 대항 노래 경연이다. 나라마다 한 곡씩 내보내고, 각국 심사위원과 시청자 투표로 우승곡을 뽑는다. 반마다 대표 곡을 정해 무대에 서고 다른 반들이 점수를 매기는 학교 합창 대회를 온 유럽 규모로 키웠다고 생각하면 된다. 아바는 1974년 이 대회 우승으로 세계에 알려졌다.

더블 트래킹

(말뜻) 영어 double(두 번)과 track(녹음 줄)을 합친 말로, 같은 소리를 녹음 줄 두 개에 따로 담는다는 뜻이다. (팝에서) 같은 노래나 연주를 두 번 이상 녹음해 겹쳐 트는 기법이다. 사람은 똑같이 부르려 해도 매번 미세하게 달라서, 겹치면 한 번 녹음보다 두껍고 풍성하게 들린다. 혼자 부를 때보다 친구와 같은 노래를 함께 부를 때 소리가 꽉 차는 것과 비슷한데, 그 친구가 바로 나 자신인 셈이다. 아바의 엔지니어 트레토는 여기에 테이프 속도를 살짝 바꾸는 방법까지 더했다.

유니즌

(말뜻) 라틴어 unus(하나)와 sonus(소리)에서 온 말로, 하나의 소리라는 뜻이다. (팝에서) 여러 사람이나 악기가 같은 선율을 같은 음높이로 함께 내는 것이다. 화음처럼 서로 다른 음으로 갈라지지 않고 한 줄로 겹친다. 조회 시간에 전교생이 교가를 같은 가락으로 함께 부르는 것이 유니즌이다. 아바에서는 아그네타와 프리다가 유니즌으로 부를 때 한 사람보다 넓고 밝은 소리가 났다.

글리산도

(말뜻) 프랑스어 glisser(미끄러지다)를 이탈리아어처럼 바꾼 말로, 미끄러지듯 연주하라는 뜻이다. (팝에서) 음과 음 사이를 끊지 않고 미끄러지듯 이어 가는 연주다. 피아노에서는 손가락이나 손등으로 건반을 쭉 쓸어 여러 음을 줄줄이 낸다. 미끄럼틀을 타고 위에서 아래로 한 번에 내려오는 느낌을 떠올리면 된다. 「Dancing Queen」은 피아노 글리산도로 문을 연다.

아르페지오

(말뜻) 이탈리아어 arpa(하프)에서 온 말로, 하프를 타듯 연주한다는 뜻이다. (팝에서) 화음을 이루는 음들을 한꺼번에 누르지 않고 한 음씩 차례로 펼쳐 치는 연주다. 같은 화음이라도 펼쳐 치면 흐르는 물결처럼 움직임이 생긴다. 계단을 한꺼번에 뛰어오르지 않고 한 칸씩 밟아 오르는 것과 같다. 「The Winner Takes It All」의 피아노가 곡 내내 아르페지오로 흐른다.

디스코

(말뜻) 프랑스어 discothèque에서 줄인 말이다. 원래 음반(disque)을 모아 두는 곳이라는 뜻이었는데, 음반을 틀어 춤추는 클럽을 가리키게 됐다. (팝에서) 1970년대 클럽에서 꽃핀 춤 음악이다. 네 박을 모두 똑같이 세게 밟는 킥드럼(포 온 더 플로어), 통통 튀는 베이스, 화려한 현악이 특징이다. 줄넘기를 할 때 일정한 박자에 맞춰 계속 뛰게 되듯, 디스코의 고른 박자는 몸을 저절로 움직이게 만든다. 비지스와 도나 서머가 이 장르의 대표 주자였고, 아바도 1979년 무렵 디스코를 깊이 받아들였다.

샘플링

(팝에서) 이미 있는 녹음의 일부를 잘라 새 곡에 넣어 쓰는 방법이다. 남의 녹음을 쓰는 것이므로 원래 곡의 주인에게 허락을 받고 사용료를 내야 한다. 레고 블록으로 집을 지을 때 친구가 만든 멋진 창문 하나를 빌려 끼우는 것과 비슷한데, 빌리기 전에 꼭 물어봐야 한다. 마돈나는 아바의 허락을 받아 「Gimme! Gimme! Gimme!」의 신시사이저 리프를 「Hung Up」에 샘플링했다. (다른 데서는) 통계나 과학에서는 전체에서 일부를 골라 조사하는 표본 추출을 뜻한다.

로열티

(말뜻) 영어 royalty는 원래 왕(royal)의 권리라는 뜻으로, 옛날 영국에서 왕의 땅에서 광물을 캐면 왕에게 바치던 몫에서 사용료라는 뜻이 나왔다. (팝에서) 노래나 음반이 팔리거나 방송·공연·광고에 쓰일 때마다 작곡가·작사가·가수 같은 권리자에게 돌아가는 돈이다. 한 번 받고 끝나는 돈이 아니라 쓰일 때마다 계속 생긴다. 내가 만든 보드게임 규칙을 다른 반이 쓸 때마다 사탕 하나씩 받기로 약속했다면, 그 사탕이 로열티다. (다른 데서는) 일상 영어에서 royalty는 왕족 자체를 가리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