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e Gees
피를 나눈 세 목소리가 한 마이크 앞에서 겹칠 때, 다른 누구도 낼 수 없는 화음이 났다.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가족휴 기브
댄스 밴드 드러머였던 아버지로, 아들들의 첫 매니저 노릇을 하며 오스트레일리아와 영국을 오가는 이민을 이끌었다.
- 후원로버트 스티그우드
1967년 형제와 계약해 국제 스타로 키우고 「토요일 밤의 열기」를 기획한 매니저이자 음반사 RSO의 수장이었다.
- 동료아리프 마딘
애틀랜틱의 프로듀서로 형제에게 리듬 앤드 블루스를 권하고 배리의 팔세토를 이끌어 내, 1975년의 재탄생과 1987년의 복귀를 함께했다.
- 가족앤디 기브
배리가 써 준 곡들로 1970년대 말 솔로 스타가 된 막내로, 1988년 서른 살에 세상을 떠나 형들의 음악에 깊은 그림자를 남겼다.
- 동료바브라 스트라이샌드
1980년 배리가 공동 프로듀싱한 음반 「길티」로 크게 성공해, 그룹이 밀려난 시기 기브 형제의 작곡 재능을 다시 증명한 가수였다.
- 우정마이클 잭슨
배리와 오래 가깝게 지낸 사이로, 두 사람이 함께 녹음한 「올 인 유어 네임」은 잭슨 사후인 2011년에 공개됐다.
I. 섬에서 온 형제들 · 1946–1966
(결성) 1958년, 오스트레일리아 퀸즐랜드주 레드클리프에서 기브 집안의 세 형제가 한 그룹으로 무대에 서기 시작했다. 맏이 배리는 1946년 9월, 쌍둥이 로빈과 모리스는 1949년 12월 영국 왕실령 맨섬의 더글러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휴는 댄스 밴드를 이끄는 드러머였고, 어머니 바버라는 그 밴드에서 노래하던 가수였다. 위로 누나 레슬리가 있었고, 1958년 3월 막내 앤디가 태어났다. (맨체스터) 1955년 무렵 가족은 잉글랜드 맨체스터로 옮겼다. 동네 영화관 막간에 음반을 틀고 입만 맞추려다 음반이 깨져 직접 노래하게 됐다는 일화가 형제들의 회고로 전해진다. 살림은 넉넉지 않았고, 휴는 1958년 여름 가족을 데리고 배를 타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민했다. (이름) 레드클리프의 자동차 경주장에서 관중에게 노래하던 소년들을 눈여겨본 사람은 경주장 운영자 빌 굿과 라디오 디제이 빌 게이츠였다. 두 사람과 배리의 머리글자가 겹치는 B.G.가 그룹 이름의 출발이었고, 브라더스 기브라는 풀이는 뒤에 붙었다. 형제는 브리즈번의 지역 방송에 나가며 무대를 익혔다. (시드니) 1960년대 초 가족은 시드니로 옮겼고, 형제는 1963년 페스티벌 레코드 산하 레이블과 계약했다. 배리는 이미 다른 가수들에게 곡을 줄 만큼 부지런한 작곡가였고, 로빈은 떨림이 큰 독특한 리드 보컬로, 모리스는 베이스·건반·기타를 오가는 연주자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몇 해 동안 큰 히트는 없었다. (영국행) 1966년 시드니 근교 허스트빌의 작은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스픽스 앤 스펙스」가 마침내 전국적인 히트가 됐다. 그때 형제는 이미 비틀스가 휩쓴 영국에서 승부하기로 마음먹은 뒤였다. 휴는 브라이언 엡스타인의 회사 NEMS에 녹음테이프를 보냈고, 1967년 초 가족은 다시 배를 타고 영국으로 향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몇 해를 버틴 끝에 얻은 첫 전국 히트로, 형제가 영국행을 결심한 무렵의 녹음이다.
- 도입부터 피아노가 같은 화음을 또박또박 두드리며 곡의 걸음걸이를 정한다. 장식 없이 걷는 박자감이 1960년대 중반 영국 비트 음악의 영향을 짐작하게 한다.
- 리드는 배리가 맡았는데, 훗날의 높은 가성이 아니라 가슴에서 울리는 중음역 목소리(흉성)다. 마이애미 시절과 비교해 들으면 같은 사람의 다른 얼굴이 보인다.
- 중반 이후 트럼펫이 짧게 끼어들어 작은 스튜디오 녹음에 색을 더한다.
- 후렴에서 형제의 목소리가 포개지는 방식은 아직 단순하지만, 이후 비지스 화음의 밑그림이 이미 들린다.
II. 런던의 소년들 · 1967–1969
(스티그우드) 런던에서 형제를 맞은 사람은 NEMS의 공동 경영자이던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흥행사 로버트 스티그우드였다. 그는 1967년 2월 형제와 계약하고 드러머 콜린 피터슨, 기타리스트 빈스 멜루니를 더해 5인조로 꾸렸다. 첫 국제 싱글 「뉴욕 탄광 참사 1941」은 화음이 워낙 비슷해 비틀스가 이름을 감추고 낸 곡이 아니냐는 말까지 돌았다. (행진) 그해부터 이듬해까지 히트가 쉼 없이 이어졌다. 오티스 레딩을 떠올리며 쓴 소울 발라드 「투 러브 섬바디」, 영국 1위에 오른 「매사추세츠」, 「워즈」, 역시 영국 1위가 된 「아이브 갓타 겟 어 메시지 투 유」, 「아이 스타티드 어 조크」가 그 목록이다. 대부분 세 형제의 공동 작곡이었고, 현악을 넉넉히 두른 편곡에 애상이 짙은 노래가 많았다. (사고) 1967년 11월 로빈은 런던 남동부 히더그린에서 일어난 열차 탈선 사고의 객차에 타고 있었다. 수십 명이 숨진 참사였지만 그는 크게 다치지 않고 빠져나왔다. 열일곱 살이었다. (균열) 성공은 형제 사이의 긴장도 키웠다. 1969년 두 장짜리 야심작 「오데사」를 만들면서 어느 곡을 싱글로 낼지를 두고 의견이 갈렸고, 로빈은 그룹 안에서 자기 몫이 줄어든다고 느꼈다. 그해 3월 로빈은 그룹을 떠나 솔로 싱글 「세이브드 바이 더 벨」을 영국 2위에 올렸다. 배리와 모리스는 음반과 TV 특집 「큐컴버 캐슬」을 만들었으나, 그해 말 그룹은 해체를 발표했다. 배리는 1970년 미스 에든버러 출신 린다 그레이와 결혼해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다.
런던에 도착한 첫해, 미국 소울 가수 오티스 레딩을 떠올리며 쓴 곡으로 형제의 흑인 음악 취향을 일찍 보여 준다.
- 배리의 리드는 소울 가수처럼 목을 긁듯 거칠게 밀어붙인다. 같은 시기 비지스의 다른 발라드보다 한층 뜨거운 목소리다.
- 후렴에서 로빈과 모리스가 들어오며 소리가 갑자기 넓어진다. 혼자 부르던 탄식이 셋의 호소로 바뀌는 순간이다.
- 편곡자 빌 셰퍼드의 현악이 바닥을 받치며 곡을 웅장하게 만든다. 리듬 섹션보다 현악이 감정의 높낮이를 이끈다.
- 니나 시몬, 재니스 조플린 등 수많은 가수가 다시 불렀다. 여러 버전을 비교하면 곡 자체의 소울 뼈대가 얼마나 튼튼한지 드러난다.
III. 갈라섬과 재회 · 1970–1974
(재회) 해체는 오래가지 않았다. 1970년 여름 세 형제는 다시 모였고, 그해 「론리 데이스」가 미국 3위에 올랐다. 이듬해 배리와 로빈이 함께 쓴 「하우 캔 유 멘드 어 브로큰 하트」는 그룹의 첫 미국 1위가 됐다. 본래 가수 앤디 윌리엄스에게 주려던 곡이었으나 형제가 직접 불렀고, 막 화해한 형제의 사정이 곡의 정서와 겹쳐 들린다는 평이 뒤따랐다. (내리막) 그러나 1972년 「런 투 미」 이후 히트는 말라 갔다. 「라이프 인 어 틴 캔」(1973)은 반응이 미지근했고, 그다음에 녹음한 음반은 음반사가 발매를 거절해 창고에 묻혔다. 형제는 잉글랜드 북부의 클럽 무대를 돌며 일을 이었다. 몇 해 전 미국 차트 정상에 섰던 그룹이 술손님 앞에서 노래하던 이 시절을, 형제는 훗날 가장 낮은 곳이었다고 돌아봤다. (마딘) 돌파구는 애틀랜틱 레코드의 프로듀서 아리프 마딘이었다. 1974년 「미스터 내추럴」에서 처음 손을 잡은 그는 형제에게 당시 미국 흑인 음악, 특히 리듬 앤드 블루스의 리듬을 귀 기울여 들어 보라고 권했다. 「미스터 내추럴」 자체는 팔리지 않았지만, 이 만남이 다음 시대의 씨앗이 됐다. (마이애미) 같은 해 같은 매니저 아래 있던 에릭 클랩턴이 미국 마이애미의 크라이테리아 스튜디오에서 음반 「461 오션 불러바드」를 녹음해 성공을 거뒀다. 클랩턴이 그곳 작업을 권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1975년 초 형제는 가족과 함께 마이애미로 건너갔다. 이 도시는 이후 그들의 평생 근거지가 됐다.
해체 뒤 다시 모인 형제가 거둔 첫 미국 1위로, 상처를 어떻게 꿰매느냐는 물음이 재회한 형제의 처지와 겹쳐 들린다.
- 첫 절은 로빈, 둘째 절은 배리가 부른다. 떨림이 많은 로빈의 목소리와 둥근 배리의 목소리가 같은 슬픔을 다른 결로 들려준다.
- 후렴에서 세 형제의 화음이 한 덩어리로 합쳐지며, 따로 노래하던 두 사람이 다시 하나가 되는 짜임이 그대로 소리로 옮겨진다.
- 현악이 처음엔 숨죽였다가 곡이 진행될수록 서서히 부풀어 오른다.
- 이듬해 소울 가수 알 그린이 이 곡을 다시 녹음했다. 같은 곡이 소울 창법으로 어떻게 달라지는지 비교해 들을 만하다.
IV. 마이애미의 팔세토 · 1975–1979
(다리) 1975년 크라이테리아에서 녹음한 「메인 코스」는 그룹을 새로 태어나게 했다. 스튜디오로 오가던 다리 위에서 차바퀴가 이음매를 넘는 소리를 리듬 삼아 「자이브 토킹」이 나왔고, 이 곡은 미국 1위에 올랐다. 건반 주자 블루 위버가 신시사이저로 친 베이스가 소리의 바탕이 됐다. (팔세토) 「나이츠 온 브로드웨이」 녹음 중 마딘이 후렴 끝을 더 높이 올려 보라고 하자, 배리가 가성, 곧 팔세토로 소리를 냈다. 그는 그 목소리가 자기 안에 있는 줄 몰랐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이 높고 가는 목소리가 이후 비지스의 상징이 됐다. (독립) 음반사 사정으로 마딘과 더 일할 수 없게 되자 형제는 엔지니어 칼 리처드슨, 건반 주자 앨비 갈루텐과 함께 직접 프로듀싱에 나섰다. 1976년 「유 슈드 비 댄싱」이 다시 미국 1위에 올랐다. (열기) 1977년 프랑스 파리 근교 에루빌 성의 스튜디오에서 실황 음반을 손보던 형제에게 스티그우드가 영화에 쓸 곡을 청했다. 며칠 사이 「하우 딥 이즈 유어 러브」, 「스테인 얼라이브」, 「나이트 피버」가 나왔다. 존 트래볼타 주연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의 사운드트랙은 4천만 장 넘게 팔린 것으로 알려져 있고, 1979년 그래미 올해의 앨범상을 받았다. (정점) 1979년 「스피리츠 해빙 플론」까지 미국 싱글 1위가 여섯 곡 연달아 이어졌다. 그해 1월 형제는 유엔 총회장에서 열린 유니세프 자선 공연에 나가 「투 머치 헤븐」의 저작권 수익을 유니세프에 내놓았다. 막내 앤디도 배리가 써 준 곡들로 솔로 스타가 되어, 한때 미국 차트 상위권을 기브 형제의 노래가 나눠 가졌다.
마이애미의 다리 위에서 들은 차바퀴 소리가 리듬이 된 곡으로, 아리프 마딘과 함께 그룹이 새 소리를 찾은 첫 결과다.
- 곡 전체를 끌고 가는 통통 튀는 리듬은 다리 이음매를 넘는 차바퀴 소리에서 나왔다고 형제가 여러 번 설명했다.
- 낮은 음역에서 반복되며 그루브의 뼈대를 이루는 베이스를 전기 베이스가 아니라 블루 위버가 신시사이저로 연주했다. 당시로서는 새로운 시도였다.
- 기타가 줄을 짧게 긁어 끊는 주법(초킹 없이 잘게 끊는 리듬 기타)으로 리듬의 틈을 촘촘히 메운다.
- 배리의 리드는 아직 팔세토가 아니라 중음역이다. 몇 달 뒤 녹음에서 가성이 등장하기 직전의 목소리다.
프랑스 에루빌 성의 스튜디오에서 영화를 위해 서둘러 만든 곡 가운데 가장 먼저 1위에 오른 발라드다.
- 도입의 부드러운 건반은 블루 위버가 연주했다. 그가 에루빌에서 이 도입부를 다듬었다고 회고했다.
- 배리는 진성과 가성을 자연스럽게 오가며 노래한다. 높은 대목에서 힘을 빼고 숨을 섞는 방식이 곡의 친밀한 분위기를 만든다.
- 후렴에서는 세 형제의 목소리가 여러 겹으로 쌓여, 한 사람이 부르는 사랑 노래가 합창처럼 넓어진다.
- 같은 사운드트랙의 댄스곡들과 달리 템포가 느리고 리듬이 절제돼, 디스코 시대의 비지스가 결국 발라드 작가였음을 보여 준다.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의 첫 장면을 연 곡으로, 비지스의 정점과 디스코 시대 자체를 상징하게 됐다.
- 드러머 데니스 브라이언이 녹음에 빠지자, 형제는 「나이트 피버」의 드럼에서 두 마디를 잘라 반복하는 루프로 리듬을 만들었다. 음반 크레딧에는 버나드 루프라는 가상의 드러머 이름을 농담처럼 적었다.
- 배리가 팔세토로 리드를 맡고 형제의 가성 화음이 그 위아래를 감싼다. 남성 셋의 높은 목소리가 디스코의 얼굴이 된 순간이다.
- 곡은 어두운 느낌의 음계(단조)로 쓰였다. 흥겨운 춤곡 아래 도시에서 살아남으려는 절박함이 깔려 있다.
- 영화 첫 장면에서 존 트래볼타가 페인트 통을 들고 거리를 걷는 걸음이 이 곡의 템포와 맞물린다. 이 장면이 곡의 이미지를 굳혔다.
V. 반발과 펜 · 1979–1986
(반발) 정점은 곧 표적이 됐다. 1979년 7월 미국 시카고의 야구장에서 디스코 음반을 모아 폭파하는 행사가 열렸고, 라디오는 디스코와 함께 비지스의 노래를 피했다. 앞서 1978년 형제가 주연한 영화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의 혹평도 겹쳤다. 형제는 자신들을 디스코 그룹으로만 부르는 데 오래 불편함을 드러냈다. (펜) 그룹 이름이 라디오에서 밀려나자 형제의 곡은 남의 목소리로 돌아왔다. 배리는 1980년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음반 「길티」를 공동 프로듀싱해 「우먼 인 러브」를 세계적 히트로 만들었다. 디온 워릭의 「하트브레이커」(1982), 케니 로저스와 돌리 파턴의 듀엣 「아일랜즈 인 더 스트림」(1983), 다이애나 로스의 「체인 리액션」(1985)이 잇따랐다. 그룹은 조용했지만 작곡가로서의 기브 형제는 이때 가장 폭넓은 가수들과 일했다. (공백) 형제 각자의 작업도 이어졌다. 로빈은 「줄리엣」(1983)으로 유럽에서 솔로 히트를 냈고, 배리는 1984년 솔로 음반 「나우 보이저」를 냈다. 1983년 영화 「스테잉 얼라이브」의 사운드트랙에 몇 곡을 실었을 뿐, 비지스의 새 정규 음반은 1981년 「리빙 아이스」 이후 여섯 해 동안 나오지 않았다. (앤디) 같은 시기 막내 앤디는 코카인 중독과 싸우며 일과 건강이 함께 흔들렸다. 그는 출연하던 TV 음악 프로그램에서도 하차했고, 형들은 그의 곁을 지키려 했다고 전해진다.
VI. 막내를 잃다 · 1987–1997
(복귀) 1987년 형제는 워너 브러더스로 옮겨 다시 아리프 마딘과 「E.S.P.」를 만들었다. 첫 싱글 「유 윈 어게인」이 영국 1위에 오르면서, 비지스는 1960·70·80년대 세 시대에 걸쳐 영국 1위를 낸 첫 그룹이 됐다. (상실) 이듬해 3월 10일, 서른 살 생일을 닷새 넘긴 앤디가 잉글랜드 옥스퍼드의 병원에서 심근염으로 세상을 떠났다. 오랜 약물 문제가 심장을 약하게 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이다. 그는 형들과 함께 비지스로 활동하자는 이야기가 오가던 참이었다. 배리는 막내를 지키지 못했다는 마음을 오래 품었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털어놓았다. (추모) 1989년 음반 「원」에는 앤디를 기리는 「위시 유 워 히어」가 실렸다. 타이틀곡 「원」은 미국 7위에 올라 그룹을 오랜만에 미국 차트 상위권으로 데려왔다. 1992년에는 아버지 휴가 세상을 떠났다. (회복) 모리스는 오랜 음주 문제와 싸우다 1990년대 초 치료를 받고 술을 끊었다. 형제는 「사이즈 이즌트 에브리싱」(1993), 「스틸 워터스」(1997)를 꾸준히 냈고, 세 사람은 다시 한 팀으로 오래 버티는 법을 익혀 갔다. (헌정) 1997년 비지스는 미국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그해 1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공연은 실황 음반·영상 「원 나이트 온리」로 나왔는데, 무대에서는 녹음으로 남은 앤디의 목소리와 형들이 함께 노래하는 순서도 있었다. 같은 해 셀린 디옹은 형제가 써 준 「이모털리티」를 음반 「렛츠 토크 어바웃 러브」에 실었고, 기브 형제가 그 곡에 함께 목소리를 얹었다.
여섯 해의 공백 끝에 낸 복귀작의 첫 싱글로, 비지스를 세 시대에 걸쳐 영국 1위를 낸 첫 그룹으로 만들었다.
- 행진하듯 쿵쿵 울리는 타악기가 도입부터 곡을 밀고 나간다. 1980년대 디지털 녹음 특유의 단단하고 큰 소리다.
- 배리의 리드는 가성보다 중음역의 진성 쪽에 무게를 두어, 70년대 디스코 시절과 다른 목소리를 들려준다.
- 후렴에서 형제의 화음이 크게 부풀며, 지는 쪽이 자신이라고 인정하는 체념의 정서를 합창처럼 키운다.
- 아리프 마딘과 브라이언 텐치가 공동 프로듀싱을 맡아, 마딘과 형제가 십여 년 만에 다시 손잡은 결과이기도 하다.
VII. 마지막 화음 · 1998–2021
(이어짐) 2001년 비욘세가 속한 그룹 데스티니스 차일드가 배리와 로빈이 1977년 가수 사맨사 상에게 준 곡 「이모션」을 다시 불러 히트시켰다. 1970년대 기브 형제의 곡이 새로운 세대의 R&B로 돌아온 셈이었다. 같은 해 형제는 「디스 이즈 웨어 아이 케임 인」을 냈다. 셋이 함께 쓴 곡과 각자 쓴 곡을 고루 담은 이 음반이 비지스의 마지막 정규 음반이 됐다. (우정) 배리와 마이클 잭슨은 오래 가깝게 지냈다. 두 사람은 2000년대 초 함께 「올 인 유어 네임」을 녹음했고, 배리는 잭슨이 세상을 떠난 뒤인 2011년 이 곡을 공개했다. (모리스) 2003년 1월 12일, 모리스가 미국 마이애미비치의 병원에서 꼬인 장을 수술하던 중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쉰셋이었다. 배리와 로빈은 비지스라는 이름을 더는 쓰지 않겠다고 밝혔고, 1958년 레드클리프에서 시작된 45년의 활동이 이렇게 끝났다. 쌍둥이 형제 사이에서, 그리고 맏형과 로빈 사이에서 말없이 다리를 놓던 사람이 모리스였다는 회고가 많다. (그후) 로빈은 2012년 5월 런던에서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 바버라는 2016년 마이애미에서 눈을 감았다. 홀로 남은 배리는 2018년 기사 작위를 받았다. 2020년 다큐멘터리 「하우 캔 유 멘드 어 브로큰 하트」가 형제의 음악을 다시 비췄고, 이듬해 배리는 컨트리 가수들과 형제의 노래를 다시 부른 음반 「그린필즈」를 냈다.
덜 알려진 이야기
영국 1위곡 「매사추세츠」는 형제가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곳에 대한 노래였다. 1967년 미국 뉴욕의 호텔에서 쓴 이 곡을 로빈은 훗날 매사추세츠에 가 본 적도 없이 만들었다고 말했고, 형제는 처음에 오스트레일리아 그룹 시커스에게 주려 했다고 회고했다. 곡이 그룹의 대표곡이 되면서 이런 출발점은 인터뷰 속 여담으로만 남았다. 「토요일 밤의 열기」의 곡들은 영화 장면에 맞춰 쓰인 것이 아니었다. 형제는 대본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프랑스에서 곡을 썼고, 감독 존 뱃햄은 촬영 당시 춤 장면을 다른 가수들의 곡에 맞춰 찍은 뒤 나중에 비지스의 곡으로 바꿔 끼웠다고 밝혔다. 음악과 영상이 한 몸처럼 기억되는 탓에, 둘이 따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케니 로저스와 돌리 파턴의 듀엣으로 컨트리 차트와 팝 차트를 함께 석권한 「아일랜즈 인 더 스트림」은, 배리에 따르면 처음엔 다이애나 로스를 떠올리며 쓴 리듬 앤드 블루스 곡이었다. 완성된 곡이 컨트리 듀엣으로 너무 성공한 나머지 이 출발점은 작곡가의 회고 속에만 남았다. 모리스는 무대 위에서 가장 눈에 덜 띄는 형제였지만, 1960년대 녹음의 베이스와 피아노, 기타 상당 부분을 맡은 연주자였다. 그는 쌍둥이 로빈과 맏형 배리 사이에서 다툼을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했다고 형제와 주변 사람들이 회고했다. 두 형의 목소리가 워낙 뚜렷해 그의 몫은 음반 크레딧과 동료들의 증언 속에서야 제대로 드러난다.
용어 노트 📚🔎
팔세토
(말뜻) 이탈리아어 falso(가짜)에서 온 말로, 가짜 목소리라는 뜻이다. 우리말로는 가성(假聲)이라고 하는데, 역시 거짓(假) 목소리(聲)라는 뜻이다. (팝에서) 평소 말하는 목소리보다 훨씬 높은 음을, 성대를 얇게 써서 가늘고 맑게 내는 창법이다. 비지스의 배리 기브는 1975년 녹음 중 우연히 이 목소리를 찾아냈고, 이후 그룹의 상징이 됐다. 친구들 앞에서 아기나 만화 캐릭터 흉내를 내며 일부러 목소리를 높게 올릴 때, 목이 갑자기 가볍고 가늘어지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그 목소리를 노래로 다듬은 것이 팔세토다.
화음(하모니)
(말뜻) 화음(和音)은 어울리는(和) 소리(音)라는 뜻이다. 영어 하모니는 그리스어 harmonia에서 왔는데, 조각을 이어 맞춘다는 뜻이 들어 있다. (팝에서) 여러 사람이 서로 다른 음높이로 동시에 노래해 하나의 소리를 만드는 것이다. 비지스는 피를 나눈 형제라 목소리 결이 비슷해서, 세 사람의 화음이 마치 한 사람이 여러 겹으로 부르는 것처럼 들렸다. 합창 대회에서 소프라노와 알토가 서로 다른 가락을 부르는데도 합쳐지면 더 풍성하게 들리는 경험을 떠올리면 된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 하모니는 사람들 사이의 조화나 화합을 뜻하기도 한다.
소울
(말뜻) 영어로 영혼이라는 뜻이다. (팝에서) 1950~60년대 미국 흑인 교회의 가스펠과 리듬 앤드 블루스가 합쳐져 생긴 음악 장르로, 감정을 숨기지 않고 목청껏 쏟아내는 창법이 특징이다. 오티스 레딩, 아레사 프랭클린 같은 가수가 대표적이다. 비지스는 영국 출신 백인 형제였지만 「투 러브 섬바디」처럼 소울을 닮은 곡을 일찍부터 썼다. 학예회 무대에서 박자나 음정보다 마음을 실어 부르는 친구의 노래가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처럼, 소울은 기술보다 감정의 진심을 앞세운다.
프로듀서
(말뜻) 영어 produce(만들어 내다)에서 온 말로, 만들어 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팝에서) 음반 녹음 전체를 지휘하는 사람이다. 어떤 악기를 쓸지, 노래를 어떻게 부를지, 소리를 어떻게 섞을지를 정하고 가수의 숨은 능력을 끌어낸다. 아리프 마딘이 배리에게 더 높게 불러 보라고 권해 팔세토를 찾아낸 일이 좋은 예다. 학교 연극에서 배우는 무대에 서지만, 대사 톤과 조명, 배경 음악을 정해 작품 전체를 만드는 연출 선생님이 있는 것과 같다. (다른 데서는) 영화나 방송에서는 돈과 사람을 모아 작품 제작을 책임지는 제작자를 가리키고, 과학 시간에는 광합성으로 양분을 만드는 식물을 생산자(producer)라고 부른다.
신시사이저
(말뜻) 영어 synthesize(합성하다)에서 왔다. 전기 신호를 합쳐 소리를 만들어 내는 기계라는 뜻이다. (팝에서) 건반을 누르면 전자 회로가 소리를 만들어 내는 악기로, 피아노 소리부터 세상에 없는 소리까지 낼 수 있다. 「자이브 토킹」의 베이스는 원래라면 베이스 기타로 쳤을 부분을 신시사이저로 연주해, 통통 튀는 새로운 질감을 얻었다. 미술 시간에 빨강과 파랑 물감을 섞어 보라색을 만들듯, 신시사이저는 기본 소리들을 섞고 다듬어 원하는 소리를 만든다. (다른 데서는) 화학에서 합성(synthesis)은 여러 물질을 결합해 새 물질을 만드는 일을 뜻한다.
루프
(말뜻) 영어로 고리라는 뜻이다. 끝이 다시 처음으로 이어지는 둥근 모양을 가리킨다. (팝에서) 짧은 소리 토막을 잘라 끊김 없이 반복해 재생하는 기법이다. 「스테인 얼라이브」는 드러머가 녹음에 빠지자 다른 곡의 드럼 두 마디를 잘라 이어 붙여 곡 전체의 박자를 만들었다. 게임을 오래 하다 보면 배경 음악의 같은 부분이 자연스럽게 반복되는 것을 알아챌 수 있는데, 그것도 루프다. (다른 데서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에서 루프는 같은 명령을 정해진 만큼 되풀이하는 반복문을 뜻한다.
디스코
(말뜻) 프랑스어 디스코테크(discothèque)를 줄인 말이다. 음반(disque)을 모아 둔 곳이라는 뜻으로, 책(biblio)을 모아 둔 곳이 도서관(bibliothèque)인 것과 같은 짜임이다. 생음악 대신 음반을 틀어 춤추는 클럽을 부르던 말이 음악 장르 이름이 됐다. (팝에서) 1970년대 유행한 춤 음악으로, 큰북이 한 박도 빠짐없이 쿵쿵 울리고 현악과 높은 목소리가 화려하게 얹힌다. 「토요일 밤의 열기」가 디스코를 세계적 유행으로 만들었고, 그만큼 1979년 이후의 반발도 비지스에게 크게 돌아왔다. 체육 시간에 단체 줄넘기를 할 때 모두가 같은 박자에 맞춰 뛰어야 줄이 걸리지 않는 것처럼, 디스코는 흔들림 없는 일정한 박자 위에서 모두를 춤추게 한다.
사운드트랙
(말뜻) 영어 sound(소리)와 track(길, 띠)을 합친 말이다. 옛날 영화 필름의 가장자리에 소리를 기록하던 가는 띠를 부르던 이름에서 나왔다. (팝에서) 영화에 쓰인 노래와 음악을 모은 음반을 가리킨다. 보통은 영화의 덤처럼 여겨지지만, 「토요일 밤의 열기」의 사운드트랙은 영화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둬 그래미 올해의 앨범상까지 받았다. 좋아하는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의 배경 음악 모음을 따로 찾아 들어 본 적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사운드트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