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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 Mi-rae

윤미래 (1997–)

두 나라와 두 언어 사이에서 자란 소녀가 노래와 랩 사이의 경계를 지우고, 한국 여성 힙합의 첫 문장이 되었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미국 텍사스 포트 후드 출생디제이 아버지의 레코드외국인학교와 차별2. 데뷔정연준의 발탁업타운의 타샤타샤니 결성3. 정점시간이 흐른 뒤 1위Gemini 두 얼굴무브먼트 크루4. 침묵솔로 공백기검정고시 합격정글 창립5. 고백검은 행복한국대중음악상타이거 JK와 결혼6. 지금필굿뮤직·MFBTYTouch Love·ALWA…제이홉 NEURON·숨윤미래1997–열다섯에 데뷔해 노래와 랩을 함께 한, 한국 …
무대의 여정 🧭🗺️
N미국대한민국텍사스 포트 후드(킬린)1981–1990년대 초서울1990년대 초–현재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가족토머스 J. 리드

    주한미군이자 부대 클럽 디제이였던 아버지로, 그의 레코드 수집이 딸의 음악적 뿌리가 됐고 「검은 행복」에는 내레이션으로 참여했다.

  • 프로듀서정연준

    1995년 그를 발굴해 업타운 멤버로 데뷔시킨 작곡가 겸 가수다.

  • 프로듀서박근태

    「시간이 흐른 뒤」를 만든 것으로 알려진 프로듀서로, 솔로 가수 티의 첫 성공을 함께 만들었다.

  • 가족타이거 JK

    무브먼트 크루의 수장이자 2007년 결혼한 남편으로, 정글 엔터테인먼트와 필굿뮤직을 함께 세우고 지금까지 곡을 함께 쓰는 동반자다.

  • 우정바비킴

    무브먼트 크루에서 함께한 동료로, 2000년 무렵 윤미래의 매니저 일을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 우정박정현

    2009년 「나 같은 사람 너 같은 사람」에 여자 래퍼 중 최고라며 그를 불러 랩을 맡겼다.

YouTube에서 5곡 이어 듣기 ↗

I. 텍사스의 외동딸 · 1981–1996

(출생) 1981년 5월, 미국 텍사스주의 육군 기지 포트 후드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나타샤 샨타 리드다. 아버지 토머스 J. 리드는 주한미군으로 복무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고, 어머니는 한국인이다. 형제 없는 외동딸이었다. (레코드) 아버지는 복무하던 부대 클럽에서 디제이(DJ)로 일했다. 집에 레코드가 3만 장쯤 있었다고 전해진다. 딸은 말을 배우듯 소울과 펑크, 초기 힙합을 들으며 자랐다. 훗날 윤미래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서 음악을 배웠다고 여러 번 말했다. (이주) 군인 가족이라 미국과 독일, 한국을 오가며 자주 이사했다. 열 살 무렵 한국에 처음 왔고, 서울의 외국인학교를 다녔다. 흑인 혼혈이라는 이유로 놀림과 차별을 받았다. 집에 와서 어머니 앞에서 울었던 날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외로움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정체성 문제로 흔들리던 시기에 버팀목이 된 것이 음악이었다. (발탁) 1995년, 새 그룹 멤버를 찾던 작곡가 겸 가수 정연준의 눈에 띄었다. 미국에서 만났다는 기록도 있고, 친구의 오디션에 따라갔다가 발견됐다는 기록도 있다. 그 무렵 한국 가요계는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랩과 댄스 음악이 주류로 올라서던 때였다. 다만 영어와 한국어로 랩을 하는 10대 여성은 전례가 거의 없었다. 그렇게 해서 그는 기획사에 들어가 데뷔를 준비했다.

II. 열다섯 살의 타샤 · 1997–2000

(데뷔) 1997년, 혼성 그룹 업타운의 멤버 타샤로 데뷔했다. 한국 사람들이 나타샤라는 이름을 어려워해서 붙인 이름이었다. 실제로는 만 열다섯이었지만 기획사는 프로필 나이를 열아홉으로 바꿨다. 검은 피부를 감추려고 짙게 화장하고 무대에 섰다고 본인이 훗날 털어놓았다. 데뷔곡 「다시 만나줘」는 크게 사랑받았다. (희소성) 1997년은 외환위기가 닥친 해였다. 그래도 가요계는 카세트와 시디(CD) 판매가 정점으로 향하고 있었고, 텔레비전 가요 순위 프로그램이 신인의 운명을 갈랐다. 남성 래퍼 일색이던 무대에서, 노래도 하고 원어민 발음으로 랩도 하는 여성 멤버는 그 자체로 화제였다. 하지만 본인은 그 시절을 아쉬움이 남는 때로 돌아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타샤니) 1999년에는 업타운과 별개로 애니(한국명 이수아)와 2인조 타샤니를 결성했다. 알앤비와 댄스를 섞은 듀오였다. 이 듀오는 뒤늦게 재평가를 받았다는 평도 있다. 2000년 업타운의 활동이 멈추면서, 열아홉 살에 그는 그룹이라는 울타리를 잃었다. (전환) 이 시기를 거치며 그는 다른 사람이 정해 준 나이와 얼굴로 무대에 서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그 기억은 몇 년 뒤 자신의 출생과 피부색을 정면으로 노래하는 작업의 씨앗이 된다.

III. 시간이 흐른 뒤 · 2001–2002

(솔로) 2001년 월드뮤직과 계약했고, 이름을 티(T)로 줄였다. 그해 9월 첫 솔로 앨범 「As Time Goes By」를 냈다. 대표곡 「시간이 흐른 뒤」는 박근태가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래하는 알앤비 위에 랩을 얹은 「시간이 흐른 뒤」가 크게 사랑받았다. 2002년 1월 6일 SBS 「인기가요」에서 1위에 올랐다. 시련을 견디는 태도를 담은 「삶의 향기」와 「행복한 나를」도 이 음반에 실렸다. 여성 래퍼가 가요 순위 정상에 오른 드문 순간이었다. (쌍둥이) 2002년 5월에는 힙합 앨범 「Gemini」를 냈다. 쌍둥이자리라는 제목대로, 노래하는 티와 랩하는 티라는 두 얼굴을 따로 보여 주려는 기획이었다. 영어 랩을 전면에 내세웠고, 같은 해 일본 가수 더블(Double)과도 작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같은 해 12월에는 「To My Love」를 냈고, 연말 SBS 가요대전에서 알앤비 부문상을 받았다. (시대) 이 무렵 가요 시장은 정점을 지나고 있었다. 소리바다 같은 파일 공유 서비스로 엠피스리(MP3)가 퍼지면서 시디 판매가 꺾이기 시작했다. 한쪽에서는 힙합이 언더그라운드 클럽과 피시통신 동호회를 거쳐 주류로 올라오고 있었다. 노래와 랩을 한 몸에 지닌 티는 두 흐름이 만나는 자리에 서 있었다. (무브먼트) 이 시기 그는 타이거 JK가 이끄는 힙합 크루 무브먼트와 가까워졌다. 드렁큰 타이거, 바비킴, 훗날의 에픽하이 등이 모인 이 공동체가 이후 그의 음악적 가족이 된다.

♪시간이 흐른 뒤 (As Time Goes By)2001무대 윤미래 · 2001 KBS 이소라의 프로포즈

업타운이 멈춘 뒤 처음 낸 솔로 앨범의 대표곡이다. 2002년 1월 지상파 순위 프로그램 1위에 오르며 여성 래퍼가 가요 정상에 설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 감성적인 알앤비 반주 위에 노래와 랩을 함께 얹은 곡이다. 한 사람이 노래로 부르는 부분(보컬 파트)과 말하듯 박자를 타는 부분(랩 파트)을 오가는 구조에 귀를 기울여 보자.
  • 랩이 박자 사이사이를 미끄러지듯 채우는 방식(플로우)이 부드럽고 정확하다. 당시 한국 랩이 흔히 내세우던 강한 발음 대신 노래에 가까운 리듬감을 앞세운다.
  • 드럼머신 비트와 매끈한 건반 소리가 2000년대 초 가요 알앤비 프로덕션의 전형처럼 들린다. 프로듀서는 박근태였다.
  • 지나간 사랑을 시간이 흐른 자리에서 담담하게 돌아보는 화법이다. 과장된 감정 대신 절제된 목소리 톤이 곡의 정서를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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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멈춘 시간 · 2003–2006

(공백) 2002년 소속사가 부도를 맞은 뒤 솔로 활동이 멈췄다. 2003년 4월 베스트 앨범이 나왔다. 그러나 이후 4년 가까이 새 솔로 음반을 내지 못했다. 한창 정점을 향해 가던 스물두 살 가수에게는 긴 정지였다. 그는 이때를 음악을 그만두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공부) 그 대신 일상을 되찾았다. 미뤄 둔 공부를 해 고등학교 졸업 학력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늘렸다. 열다섯 살부터 무대에 선 그에게는 처음으로 한 사람으로 살아 보는 시간이었다. (객원) 솔로 활동은 막혔지만 음악은 멈추지 않았다. 무브먼트 동료들의 음반에 객원 보컬과 래퍼로 참여하고 방송에도 출연하면서 크루 안에서 감각을 이어 갔다. 타이거 JK와는 오랜 동료에서 연인이 되어 갔다. (정글) 2006년 타이거 JK와 함께 정글 엔터테인먼트의 창립 멤버가 됐다. 한국 힙합이 대형 기획사 밖에서 자기 회사를 세우던 흐름의 초기 사례였다. 이 무렵 음원 시장은 엠피스리 다운로드와 휴대전화 벨소리로 옮겨 가고 있었다. 그는 오래 쌓아 둔 이야기를 제 손으로 엮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V. 검은 행복 · 2007–2012

(귀환) 2007년 2월, 본명 대신 쓰던 한국 이름을 내건 세 번째 앨범 「Yoonmirae」를 냈다. 윤미래가 가까운 동료들과 함께 직접 프로듀싱을 맡았다. 활동곡은 알앤비 발라드 「잊었니」였다. 그는 이 앨범에서 꾸미지 않은 자신을 보여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고백) 화제가 된 곡은 「검은 행복」이었다. 혼혈로 자라며 겪은 설움, 나이를 속여야 했던 데뷔 시절, 그리고 음악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는 깨달음을 1인칭으로 털어놓은 곡이다. 곡 말미에는 아버지 토머스 J. 리드가 직접 녹음한 내레이션이 들어갔다. 딸에게 강해지라고 당부하는 목소리다. 그는 혼혈이라는 화제에만 관심이 쏠리는 것을 아쉬워했다고 전해진다. 앨범은 2007년 엠넷 KM 뮤직 페스티벌 베스트 알앤비 퍼포먼스 상을 받았다. 이듬해 제5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는 최우수 알앤비 앤 소울 음반과 노래 부문을 받았다. (가정) 2007년 타이거 JK와 결혼했고, 2008년 아들을 얻었다. 그는 2012년 아동학대 예방의 날에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협업) 2009년에는 박정현의 「나 같은 사람 너 같은 사람」에 랩으로 참여했다. 박정현은 여자 래퍼 가운데 최고라고 생각해 부탁했다고 밝혔다. 2011년에는 타이거 JK, 정인과 함께한 디지털 싱글 「Get It In」을 냈다. 음반보다 디지털 음원이 기준이 되어 가던 시장에서도 그는 작업을 이어 갔다.

♪검은 행복 (Black Happiness)2007공식 MV — 윤미래

혼혈로 자란 설움과 나이를 속여야 했던 데뷔 시절을 직접 털어놓은 자전적 곡이다. 공백기 끝에 음악이 자신을 살렸다는 깨달음이 곡의 중심에 있다.

  • 곡 말미에 아버지 토머스 J. 리드가 직접 녹음한 영어 내레이션이 나온다. 딸에게 강해지라고 당부하는 목소리로, 이 곡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순간이다.
  • 랩은 연설이 아니라 일기처럼 1인칭으로 이어진다. 차별의 기억을 고발하기보다 담담하게 되짚는 화법이 오히려 무게를 만든다.
  • 윤미래가 프로듀싱을 맡은 3집 수록곡이다. 화려한 장식을 줄이고 목소리와 이야기를 앞에 세운 편곡이 앨범 전체의 방향을 보여 준다.
  • 한국 대중음악에서 혼혈인의 정체성을 당사자가 직접 노래한 드문 사례로 남았다. 본인은 혼혈이라는 화제에만 관심이 쏠리는 점을 아쉬워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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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었니 (Incomplete)2007공식 MV — 윤미래

4년 가까운 공백을 끝낸 3집의 활동곡이다. 이 앨범으로 그는 이듬해 한국대중음악상 알앤비 부문을 받았다.

  • 랩 대신 노래를 전면에 세운 알앤비 발라드다. 래퍼로 먼저 알려진 그의 보컬리스트 면모가 가장 잘 드러난다.
  • 음을 길게 끌다 살짝 꺾어 내리는 처리(멜리스마)를 절제해서 쓴다. 고음을 밀어붙이기보다 숨결이 섞인 중음역으로 감정을 끌고 가는 것처럼 들린다.
  • 떠나간 상대에게 정말 다 잊었는지 되묻는 화법이다. 원망보다 미련에 가까운 정서가 곡 전체에 깔려 있다.
  • 디지털 음원이 음반을 대신해 가던 2007년, 공백기를 거친 가수가 음원 시장에서 다시 존재감을 확인한 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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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필굿의 시간 · 2013–2018

(독립) 2013년 타이거 JK, 비지(Bizzy)와 함께 정글 엔터테인먼트를 떠나 필굿뮤직(Feel Ghood Music)을 세웠다. 같은 해 세 사람은 프로젝트 팀 MFBTY도 결성했다. 남의 회사에 기대지 않고 가족과 동료가 함께 음악을 만드는 구조였다. 이는 그가 10대에 겪은 기획사 시스템과 정반대였다. (드라마) 같은 해 SBS 드라마 「주군의 태양」에 실린 「Touch Love」가 빌보드 코리아 케이팝 핫 100에서 1위에 올랐다. 멜론뮤직어워드와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의 OST 부문상도 받았다. 스마트폰과 음원 스트리밍이 퍼지면서 드라마 OST가 음원 차트를 이끌던 때였다. 2014년에는 「괜찮아 사랑이야」의 「너를 사랑해」가 나왔고, 12월에는 타이거 JK와 비지가 함께한 싱글 「ANGEL」이 나왔다. (한류) 2016년 2월,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OST 「ALWAYS」가 나왔다. 드라마가 아시아 전역에서 방영되면서 이 곡은 한류 팬들에게 윤미래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다. 래퍼로 알려졌던 그가 정통 발라드 보컬로도 사랑받은 곡이었다. 이보다 앞선 2016년 1월에는 2015년 활동으로 하이원 서울가요대상 본상을 받았다. (쌍둥이2) 2018년 7월, 16년 만의 후속편인 힙합 앨범 「Gemini 2」를 냈다. 노래하는 윤미래가 대중에게 더 익숙해진 시점에, 처음 그를 특별하게 만든 랩으로 돌아간 선택이었다. 2002년의 「Gemini」와 짝을 이루는 이 음반으로 그는 데뷔 20년을 넘긴 래퍼로서 자기 정체성을 다시 확인했다.

♪터치 러브 (Touch Love)2013

필굿뮤직을 세운 해에 부른 드라마 「주군의 태양」의 OST다. 빌보드 코리아 케이팝 핫 100 1위에 오르고 그해 주요 시상식의 OST 상을 받았다.

  • 랩 없이 노래만으로 끌고 가는 미디엄 템포 곡이다. 드라마 장면에 깔리도록 리듬이 서두르지 않는다.
  • 벌스에서는 낮고 부드럽게 시작하고 후렴에서 목소리를 한 단계 열어 올린다. 그 대비가 곡의 설렘을 만든다.
  • OST가 음원 차트를 이끌던 스마트폰·스트리밍 시대의 곡이다. 드라마 방영과 함께 차트가 오르는 당시 소비 방식을 잘 보여 준다.
  • 다가오는 사랑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이는 화법이다. 상대에게 직접 말을 거는 듯한 친밀한 톤이 돋보인다.
♪올웨이즈 (Always)2016공식 MV — 윤미래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첫 OST다. 드라마가 아시아 전역에서 방영되며 한류 팬들에게 윤미래라는 이름을 알린 곡이 되었다.

  • 피아노와 현악으로 시작하는 정통 발라드 편성이다. 오케스트라처럼 넓게 펼쳐지는 반주가 드라마의 규모를 닮았다.
  • 후렴에서 고음으로 올라가는 대목에서 목소리를 거칠게 긁지 않고 맑게 뻗는다. 래퍼라는 이미지와 다른 보컬의 힘을 보여 준다.
  • 곡의 뒷부분으로 갈수록 반주가 두꺼워지며 감정을 끌어올린다. 드라마의 결정적 장면들과 맞물려 기억되는 구조다.
  • 어떤 상황에서도 곁에 있겠다는 다짐을 담은 곡이다. 연인에게 건네는 약속의 화법이 드라마의 서사와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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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 다음 세대와 함께 · 2019–2026

(그림책) 2020년에는 그림책을 내며 음악 밖에서도 아이들에게 말을 건넸다. 아동 학대 예방 활동과 이어지는 관심사였다. 2021년에는 드라마 OST 「It's my life」를 불렀고, 이하이의 「Red Lipstick」에 참여했다. (후배) 후배 세대와의 작업이 늘었다. 2022년 엠넷 「스트릿 맨 파이터」의 곡 「Law」를 비비(BIBI)와 함께 불렀다. 같은 해 타이거 JK, 에프히어로 등과 함께 「Self Love」에도 참여했다. 유튜브와 스트리밍으로 한국 힙합이 세계로 퍼지면서, 그가 1990년대 말에 처음 연 여성 래퍼의 자리를 이어받은 세대가 그를 기준점으로 불러냈다. (뉴런) 2024년 3월에는 방탄소년단 제이홉의 솔로 앨범 「HOPE ON THE STREET VOL.1」의 타이틀곡 「NEURON」에 개코와 함께 참여했다. 제이홉이 데뷔 전 몸담은 댄스 크루의 이름을 딴 곡이다. 2000년대 초 힙합의 질감을 되살린 이 곡에서 세 사람은 각자의 뿌리를 이야기했다. 한국 힙합 1세대와 세계적 아이돌이 한 곡 안에서 만난 장면이었다. (숨) 2025년 12월 23일, 디지털 싱글 「숨 (Breath)」을 냈다. 타이거 JK와 함께 쓰고 만든 어쿠스틱 알앤비로, 기타 반주만으로 목소리의 감정선에 집중했다. 열다섯 살 때 남이 정한 나이와 얼굴로 무대에 섰던 그는, 2026년 현재 필굿뮤직에서 남편과 함께 자기 이름으로 음악을 만들고 있다.

♪숨 (Breath)2025공식 MV — 윤미래

2025년 12월 타이거 JK와 함께 쓰고 만든 디지털 싱글이다. 데뷔 30년을 앞두고 가장 단출한 편성으로 목소리 하나에 집중했다.

  • 기타 반주만으로 이루어진 어쿠스틱 알앤비다. 드럼과 신시사이저를 덜어 낸 빈자리가 목소리의 결을 그대로 드러낸다.
  • 숨소리까지 들릴 만큼 가까이 녹음한 듯한 보컬이 제목과 맞닿아 있다. 큰 고음 없이 낮은 음역에서 감정을 끌고 가는 것처럼 들린다.
  • 이별 뒤에도 남는 감정을 겨울의 소박한 일상 풍경에 빗대어 그린다. 슬픔을 외치지 않고 사물에 기대어 조용히 말하는 화법이다.
  • 부부가 함께 작사·작곡한 곡이다. 2010년대 「Get It In」, 「ANGEL」로 이어진 두 사람의 공동 작업이 이번에는 가장 작은 규모로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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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알려진 이야기

업타운 시절 프로필에 적힌 열아홉이라는 나이는 기획사가 정한 것이었다. 윤미래는 2007년 인터뷰에서 데뷔 당시 프로필 나이가 실제와 달랐다고 밝혔다. 피부색을 감추려고 짙게 화장했다고도 했다. 당시 방송과 잡지에 남은 기록만 보면 알 수 없는 사실이어서, 「검은 행복」이 나온 뒤에야 그 무게가 제대로 읽혔다. 아버지 토머스 J. 리드는 주한미군으로 복무하면서 부대 클럽에서 디제이로 일했다. 집에 레코드가 3만 장쯤 있었다고 전해진다. 미8군 무대가 한국 대중음악의 한 뿌리였듯, 기지 문화 속 흑인 음악이 한 세대 뒤 그 딸을 거쳐 가요의 중심으로 들어온 셈이다. 이 연결은 그의 음악을 혼혈이라는 개인사로만 보던 시선에 가려 잘 이야기되지 않았다. 발탁 경위는 기록마다 결이 조금 다르다. 국내 자료는 대개 정연준이 그를 발탁했다고 쓴다. 반면 영문 자료에는 친구의 오디션에 따라갔다가 눈에 띄었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 어느 쪽이든 1995년 열네 살 무렵의 일이다. 바비킴의 소속사 대표는 바비킴이 2000년 무렵 윤미래의 매니저로 일했다고 언론에 밝힌 적이 있다. 바비킴이 새 계약을 앞두었을 때 윤미래가 그를 적극 추천했다는 것이다. 훗날 솔로 가수로 크게 성공한 바비킴의 출발점 한쪽에 무브먼트 동료의 추천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그의 데뷔담에서 자주 빠진다.

용어 노트 📚🔎

알앤비 (R&B)

(말뜻) 리듬 앤드 블루스(Rhythm and Blues)의 줄임말이다. 리듬이 살아 있는 블루스라는 뜻으로, 1940년대 미국 흑인 음악 시장을 부르던 이름에서 왔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부드럽고 끈적한 리듬 위에서 음을 꺾고 늘이며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노래 스타일을 가리킨다. 1990년대 말부터 한국 가요에 본격적으로 들어왔고, 윤미래는 이 노래 방식과 랩을 한 사람이 함께 해낸 드문 가수였다. 같은 문장을 국어책 읽듯 읽지 않고, 친구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듯 말끝을 늘이고 살짝 떨어뜨리며 말하는 것을 떠올리면 비슷하다.

플로우

(말뜻) 영어 flow는 흐름이라는 뜻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래퍼가 비트 위에 말을 얹는 방식을 말한다. 어디서 빠르게 몰아치고 어디서 쉬는지, 어느 박에 힘을 주는지가 모두 플로우에 들어간다. 줄넘기를 할 때 줄이 도는 박자는 같아도, 어떤 친구는 한 번에 두 번 뛰고 어떤 친구는 엇박으로 뛰며 리듬을 바꾸는 것과 같다. 같은 비트라도 플로우에 따라 전혀 다른 노래가 된다. (다른 데서는) 심리학에서는 어떤 일에 완전히 몰입한 상태를 플로우라고 부른다.

피처링

(말뜻) 영어 featuring은 특별히 내세운다는 뜻으로, 곡 제목 뒤에 feat.라고 줄여 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한 가수의 곡에 다른 가수가 손님으로 들어와 일부분을 맡는 것을 말한다. 박정현의 노래에 윤미래가 랩으로 참여하거나, 제이홉의 곡에 윤미래와 개코가 들어간 것이 그 예다. 학급 발표에서 우리 모둠 발표 중간에 다른 반의 잘하는 친구가 잠깐 나와 한 부분을 맡아 주는 것과 비슷하다. 발표는 여전히 우리 모둠의 것이지만, 그 부분 덕에 발표가 더 빛난다.

크루

(말뜻) 영어 crew는 배나 비행기에서 함께 일하는 승무원 무리를 뜻한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힙합에서 음악적 뜻을 같이하는 래퍼, 디제이, 프로듀서, 댄서가 모인 공동체를 말한다. 회사처럼 계약으로 묶이기보다 서로의 음반에 참여하고 무대를 나누며 끈끈하게 이어진다. 타이거 JK가 이끈 무브먼트에는 드렁큰 타이거, 윤미래, 바비킴, 에픽하이 등이 있었다. 학교 동아리와 비슷하다. 동아리 친구들이 서로의 작품을 도와주고 축제 무대에 함께 서는 것처럼, 크루 멤버들도 서로의 앨범을 함께 채운다. (다른 데서는) 영화나 방송에서는 촬영을 맡는 제작진 전체를 크루라고 부른다.

OST

(말뜻) Original Soundtrack의 줄임말이다. 영화 필름 가장자리에 소리를 기록하던 띠(사운드트랙)에서 나온 말로, 작품을 위해 처음 만든 음악이라는 뜻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드라마나 영화에 쓰려고 만든 노래를 말한다. 2010년대에는 드라마 장면과 함께 노래가 퍼지면서 음원 차트를 OST가 이끄는 일이 흔했고, 윤미래의 「Touch Love」와 「ALWAYS」가 그 대표적인 예다. 게임에서 특정 장면에 늘 같은 배경 음악이 나오면, 나중에 음악만 들어도 그 장면이 떠오르는 것과 같은 원리다.

프로듀싱

(말뜻) 영어 produce는 만들어 내다라는 뜻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곡을 고르고 편곡 방향을 정하고, 녹음에서 어떤 목소리와 소리를 쓸지 결정해 음반 전체를 완성하는 일이다. 윤미래는 3집에서 이 일을 직접 맡아 자기 이야기를 자기 방식으로 담았다. 모둠 요리 실습에서 무슨 요리를 할지 정하고, 누가 재료를 썰고 누가 간을 볼지 나누고, 마지막 맛을 책임지는 조장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영화나 방송에서는 제작비와 인력을 꾸려 작품 전체를 책임지는 일을 가리킨다.

가요 순위 프로그램

(한국 대중음악에서) 음반 판매, 방송 횟수, 시청자 투표 등을 합쳐 그 주의 인기곡 순위를 매기고 가수들이 무대에 서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다. SBS 「인기가요」, KBS 「뮤직뱅크」 같은 프로그램이 있고, 1990년대와 2000년대 초에는 여기서 1위를 하는 것이 가수의 성공을 가르는 기준이었다. 윤미래의 「시간이 흐른 뒤」도 2002년 1월 「인기가요」 1위에 올랐다. 학교 체육대회에서 반별 점수판에 점수가 쌓이고 마지막에 1등 반이 발표되는 장면을 떠올리면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