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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eun Haneul

푸른하늘 (1988–1997)

얼굴보다 목소리가 먼저 알려졌던 밴드. 텔레비전보다 라디오에서 더 오래 기억된 1980년대 말 서울의 서정이었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대한민국 서울 결성동아기획 오디션겨울바다 데뷔2. 변화유영석·송경호 2인조유재하 추모곡겨울바다 재녹음3. 작법객원 보컬원맨 밴드라디오 중심4. 정점김현식 추모자아도취 1위얼굴 공개5. 종막Final Sound오렌지족 풍자1994 실황 음반6. 이후화이트 결성사랑 그대로의 사랑라디오 DJ푸른하늘1988–1997동아기획 오디션으로 시작해 유영석의 서정 발라…
무대의 여정 🧭🗺️
N대한민국서울1988–1994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멤버유영석

    거의 모든 곡의 작사, 작곡, 편곡과 노래를 맡아 사실상 푸른하늘 그 자체였던 중심 인물이다.

  • 멤버송경호

    1집에 세션 드러머로 참여했다가 2집부터 정식 멤버가 되어 마지막까지 유영석과 2인조를 이루었다.

  • 영향유재하

    1987년 세상을 떠난 발라드의 개척자로, 푸른하늘은 2집에 그를 기리는 노래 두 곡을 실었다.

  • 영향김현식

    동아기획의 상징이던 선배로, 1990년 그가 세상을 떠나자 4집에 추모곡 「영원히 나의 가슴속에」를 실었다.

  • 우정이승환

    음악 색깔은 달랐지만 유영석의 오랜 절친으로, 6집의 「마지막, 그 아쉬움은...」에 목소리를 보탰다.

  • 우정김기형

    푸른하늘 해체 뒤 유영석과 화이트를 결성해 편곡을 함께 맡은 음악인이다.

YouTube에서 4곡 이어 듣기 ↗

I. 오디션으로 만든 밴드 · 1987–1988

(출발) 1988년 3월, 대한민국 서울에서 동아기획 소속 5인조 밴드로 첫 음반을 냈다. 동아기획은 조동진, 들국화, 김현식, 한영애, 봄여름가을겨울 같은 음악인이 모여 있던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산실이었다. 푸른하늘은 이 회사가 오디션으로 연주자를 뽑아 꾸린 기획 프로젝트로 출발했다. (유영석) 팀의 중심은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서 자란 유영석이었다.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아주대학교에서 산업공학을 공부했고, 뒤에 서울예술전문대학도 마쳤다. 학창 시절에는 록 음악을 즐겨 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1987년 록 밴드 비상탈출의 피아노 세션으로 음악계에 들어섰다. (구성) 1집 멤버는 보컬과 신시사이저를 맡은 유영석과 이종석(뒤에 이동은으로 개명), 기타 전영준, 베이스와 퍼커션 박준섭, 드럼 원해승이었다. 송경호는 세션 드러머로 녹음에 참여했다. 원해승은 1집까지 활동한 뒤 팀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겨울바다) 타이틀곡 「겨울바다」는 유영석이 중학교 3학년 때 쓴 노래로 알려져 있다. 그때는 LP와 카세트테이프가 음반 시장을 이끌었고, 심야 라디오가 새 노래를 알리는 주된 창구였다. 이 밴드는 처음부터 텔레비전보다 라디오에서 이름을 얻었다.

♪겨울바다1988노래 푸른하늘 (유영석)

유영석이 중학생 때 써 둔 곡으로 알려진 데뷔 음반 타이틀곡이다. 다음 해 2집에서 록 편곡으로 다시 녹음되어 두 가지 판이 남았다.

  • 1집 판과 2집 판을 나란히 들어 볼 것. 2집 판은 송경호의 드럼이 리듬을 이끄는 밴드 사운드(록 편곡)로 새로 녹음되었다.
  • 십대에 쓴 곡답게 가락의 진행이 단순하고 곧다. 그래서 한 번 들으면 후렴 가락을 쉽게 따라 흥얼거리게 된다.
  • 1980년대 말 신시사이저와 피아노 중심의 가요 녹음이 어떤 질감이었는지 들려준다. 따뜻하지만 조금 얇게 들리는 아날로그 음색이 그 시대의 소리다.
  • 겨울 바다라는 풍경에 쓸쓸한 마음을 얹어 혼잣말처럼 털어놓는 화법이다. 큰 소리로 호소하지 않고 조용히 독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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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두 사람의 밴드 · 1988–1989

(이탈) 첫 음반 활동이 끝나자 초기 멤버 대부분이 팀을 떠났다. 기획사 오디션으로 모인 팀이어서 결속이 오래가기 어려웠다. 1집에서 세션으로 드럼을 쳤던 송경호가 2집부터 정식 멤버가 되었고, 박준섭도 2집까지 함께했다. 그 뒤 푸른하늘은 유영석과 송경호 두 사람을 축으로 움직였다. (추모) 1989년 7월에 나온 2집에는 먼저 떠난 선배의 그림자가 짙었다. 1987년 11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유재하를 기리며 만든 곡이 「슬픈 안녕」과 「그대 다시오면」이다. 유재하는 클래식의 화성을 대중가요에 들여온 발라드의 개척자였다. 훗날 유영석은 이영훈, 유재하와 함께 한국 발라드의 선구자로 거론되곤 했다. (재녹음) 2집에는 「겨울바다」가 다시 실렸다. 이번에는 송경호의 드럼이 이끄는 록 사운드로 새로 녹음했다. 오디션 프로젝트로 시작한 팀이 직접 연주하는 밴드의 모양을 갖추려 한 흔적으로 읽을 수 있다. 유영석이 십대 시절부터 록을 들어 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방향이기도 했다. (위로) 타이틀곡 「눈물나는 날에는」은 슬픔을 억누르기보다 곁에서 다독이는 화법의 발라드였다. 추모곡이 함께 실린 음반답게 상실과 위로가 음반 전체에 흐른다. 섬세하고 여린 감수성은 이후 푸른하늘을 떠올리게 하는 특징이 되었는데, 그 결이 이 무렵 자리를 잡았다.

♪눈물나는 날에는1989무대 푸른하늘·장필순 · 1990 KBS 쇼 토요특급

유재하 추모곡이 함께 실린 2집의 타이틀곡이다. 상실의 해에 만든 음반답게 슬픔을 다독이는 위로의 정서가 중심에 있다.

  • 슬픔을 크게 터뜨리지 않고 곁에서 다독이는 화법에 귀 기울여 볼 것. 푸른하늘 특유의 여린 정서가 가장 잘 드러난다.
  • 유영석의 목소리는 힘으로 밀어붙이기보다 맑은 음색으로 높은 음을 가볍게 짚는다. 그래서 감정이 넘치지 않고 담담하게 들린다.
  • 같은 음반의 「슬픈 안녕」, 「그대 다시오면」과 이어 들으면 2집 전체에 흐르는 추모의 정서가 또렷해진다.
  • 피아노를 바탕으로 가락을 쌓아 가는 짜임은 유재하 이후 한국 발라드가 걸어간 길과 맞닿아 있는 것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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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빌려 온 목소리 · 1990

(솔로) 1990년, 유영석은 「유영석 Vol.1 - 푸른하늘」이라는 이름으로 첫 솔로 음반을 냈다. 밴드와 개인의 경계가 흐릿한 이 음반은 푸른하늘이 사실상 유영석 한 사람의 작업이라는 점을 드러냈다. 그는 거의 모든 곡의 작사, 작곡, 편곡과 노래를 맡았다. (객원) 그해 7월에 나온 3집 「푸른하늘Ⅲ」에서는 작업 방식이 달라졌다. 유영석은 자기 목소리로만 곡을 채우지 않고 다른 가수들을 곡 안으로 불러들였다. 「우리모두 여기에」에는 장필순, 박학기, 오태호가, 「축하해요」에는 오태호와 김미진이 참여했다. 한 회사 음악인들이 서로의 음반을 자유롭게 오가던 동아기획의 공동체 문화가 있었기에 가능한 작업이었다. (라디오) 타이틀곡 「이밤이 지나도록」을 비롯한 3집의 노래들도 주로 라디오를 타고 퍼졌다. 푸른하늘은 텔레비전 출연을 꺼렸다. 유영석은 텔레비전보다 라디오와 음반으로 음악을 알리는 쪽을 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비) 이 시기는 컬러TV 가요 프로그램이 가수의 얼굴과 춤을 앞세워 노래를 알리던 때였다. 푸른하늘은 얼굴을 거의 드러내지 않고 곡과 목소리만으로 알려졌다. 그 덕분에 청취자는 노래만 듣고 부른 사람을 상상해야 했고, 이것이 오히려 신비감을 더했다.

♪축하해요1990

3집에서 시작된 객원 보컬 방식이 잘 드러나는 곡이다. 유영석의 노래에 오태호와 김미진의 목소리가 더해졌다.

  • 유영석 혼자가 아니라 오태호와 김미진이 함께 부른다. 다른 가수가 손님처럼 와서 부르는 방식(객원 보컬)이 곡에 여러 겹의 색을 입힌다.
  • 남녀 목소리가 번갈아 들어오는 대목에서 음색이 어떻게 바뀌는지 들어 볼 것. 같은 가락도 누가 부르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 제목 그대로 상대에게 축하를 건네는 화법의 노래다. 기쁨과 아쉬움이 함께 섞인 듯한 정서가 푸른하늘다운 대목이다.
  • 같은 회사 음악인들이 서로의 음반을 오가던 동아기획 시절의 협업 문화가 소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

IV. 떠난 선배에게 · 1991

(상실) 1990년 11월, 동아기획의 상징이던 김현식이 세상을 떠났다. 들국화와 함께 이 회사의 얼굴이던 그의 죽음은 가요계 전체를 흔들었다. 그가 남긴 「내 사랑 내 곁에」는 사후에 큰 사랑을 받았다. 같은 회사의 후배들은 선배를 잃은 슬픔을 각자의 음악에 담았다. (추모) 1991년 5월에 나온 4집 「푸른하늘Ⅳ」의 마지막 곡 「영원히 나의 가슴속에」는 김현식을 추모하는 노래였다. 2집에서 유재하를 기렸던 유영석은 두 해 만에 또 한 사람의 선배를 노래로 보냈다. 푸른하늘의 음반에서 추모는 거듭 돌아오는 주제였다. (거리) 타이틀곡 「꿈에서 본 거리」는 제목처럼 꿈속의 풍경을 더듬어 가는 듯한 발라드였다. 「그때 그시절」에는 장필순, 송재호, 박영애가 목소리를 보탰다. 객원 보컬을 쓰는 방식은 이 무렵 푸른하늘만의 작법으로 굳어졌다. (시장) 1990년대 초 카세트테이프 판매는 정점을 향해 가고 있었고, CD도 막 보급되기 시작했다. 공연이나 텔레비전 출연이 드물어도 음반이 꾸준히 팔릴 수 있었던 데는 그 시대의 유통 구조가 있었다. 라디오가 노래를 알리고 동네 음반 가게가 그 노래를 청취자의 손에 쥐여 주었다.

♪꿈에서 본 거리1991노래 푸른하늘 · 「응답하라 1994」 18화 장면

김현식 추모곡 「영원히 나의 가슴속에」가 실린 4집의 타이틀곡이다. 선배를 잃은 해에 만든 음반의 몽환적인 정서를 대표한다.

  • 제목처럼 꿈속의 풍경을 더듬는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에 주목할 것. 신시사이저의 길게 퍼지는 음색이 그 공기를 만드는 것처럼 들린다.
  • 같은 음반의 마지막 곡 「영원히 나의 가슴속에」와 함께 들으면 4집이 품은 상실의 정서가 이어져 들린다.
  • 1990년대 초 카세트와 CD가 함께 쓰이던 시기의 가요 녹음이다. 1980년대보다 소리가 한결 매끄럽고 정돈되어 있다.
  • 유영석이 작사, 작곡, 편곡, 노래를 거의 혼자 맡았다는 점을 떠올리며 들으면,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그린 그림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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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순위의 정상 · 1992

(정상) 1992년 9월, 영문 제목을 단 5집 「Blue Sky Vol.5」가 나왔다. 타이틀곡 「자아도취」는 KBS 「가요톱텐」에서 1위에 올랐다. 라디오 밴드로 알려진 푸른하늘이 텔레비전 순위 프로그램 정상에 선 것이다. 3집부터 함께해 온 김미진이 이 곡에도 목소리를 보탰다. (얼굴) 순위가 올라간 뒤 유영석은 결국 방송에 얼굴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훗날 얼굴 공개를 두고 농담을 하곤 했다고 전해진다. 스스로를 낮추는 이 유머는 훗날 라디오 진행자로 오래 사랑받은 그의 성품과도 이어진다. (전환) 1992년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해 가요계의 중심이 춤과 랩으로 옮겨 가기 시작한 해였다. 같은 해 피아노와 신시사이저 위주의 서정적인 노래로 순위 정상에 선 「자아도취」는 거대한 전환이 일어나기 직전, 발라드 시대의 끝자락에 놓인 노래였다. (회고) 5집에는 「넌 기억하니, 그때 그 크리스마스 노래를」, 「구속받기 싫어」, 「내게 펼쳐진 날을 위해」 같은 곡도 실렸다. 제목만 보아도 유영석의 노래가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는 회고와 얽매이기 싫다는 선언, 앞날을 향한 다짐 사이를 오갔음을 알 수 있다. 이십대 후반에 접어든 작곡가의 마음이 음반 곳곳에 드러나 있다.

♪자아도취1992무대 푸른하늘 · 1993 KBS 가요톱10

KBS 「가요톱텐」 1위에 오른 곡이다. 라디오 밴드였던 푸른하늘이 텔레비전 순위 프로그램의 정상에 섰고, 유영석이 얼굴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 김미진이 객원으로 참여했다. 유영석의 목소리와 여성 보컬이 어떻게 맞물리는지 들어 볼 것.
  • 제목이 말하듯 자기 감정에 빠져드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화법이다. 자신을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 춤과 랩이 가요계의 중심으로 들어서던 1992년, 피아노와 신시사이저 위주의 서정적인 발라드가 순위 정상에 섰다는 점이 이 곡의 시대적 의미다.
  • 같은 해 순위 프로그램에 오른 댄스곡들과 비교해 들으면 발라드 시대와 새 시대가 엇갈리던 순간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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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마지막 소리 · 1993–1994

(종막) 1993년 8월, 6집 「The Blue Sky 'Final Sound'」가 나왔다. 제목부터 마지막을 알린 음반이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로 앞뒤를 닫은 짜임에서 한 시기를 정리하려는 뜻을 읽을 수 있다. (풍자) 타이틀곡 「오렌지 나라의 앨리스」는 당시 서울 압구정동 일대의 부유층 젊은이를 가리키던 말인 오렌지족을 꼬집은 노래였다. 과시적인 소비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던 분위기를 정면으로 겨눈 이 곡에 서정 발라드를 기대하던 기존 팬들은 충격을 받았다. 섬세한 사랑 노래의 작곡가가 세태 풍자로 마지막 인사를 건넨 셈이었다. (동료) 「마지막, 그 아쉬움은 기나긴 시간 속에 묻어둔 채...」에는 변진섭, 이승환, 조규만, 박상민이 목소리를 보탰다. 이승환은 음악 색깔이 달랐지만 유영석과 오랜 절친으로 알려져 있다. 동시대 가수들이 한 곡에 모인 이 트랙은 푸른하늘이 쌓아 온 관계를 결산하는 노래처럼 들린다. (씨앗) 음반 끝자락에 실린 「사랑 그대로의 사랑」은 이 음반에서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몇 해 뒤 다시 녹음되고 나서야 유영석의 대표곡이 된다. (해체) 6집을 끝으로 푸른하늘은 해체했고, 1994년 2월 마지막 공연 실황을 담은 「The Best Of Blue Sky Last Concert」가 나왔다. 일부 목록에는 활동 기간이 1997년까지로 적혀 있지만, 확인되는 기록은 1993년 해체와 1994년의 실황 음반까지다.

♪사랑 그대로의 사랑1993

6집 「Final Sound」의 끝자락에 실린 곡이다. 처음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고, 해체 뒤 화이트의 음반에 다시 실리고 나서야 유영석의 대표곡이 되었다.

  • 푸른하늘 6집에 실린 원래 판과 화이트가 다시 녹음한 판을 비교해 볼 것. 같은 곡이 편곡과 시기에 따라 어떻게 달리 들리는지 알 수 있다.
  • 꾸미지 않은 사랑을 그대로 건네는 고백의 화법이다. 훗날 고백과 청혼 자리에 자주 쓰이게 된 것도 이 솔직한 정서 덕분이다.
  • 풍자곡 「오렌지 나라의 앨리스」로 시작한 같은 음반이 이 곡처럼 조용한 사랑 노래로 끝나 간다. 마지막 음반 안에 있는 그 낙차를 느껴 볼 것.
  • 발라드 작곡가 유영석의 가장 순한 얼굴이 담긴 곡으로, 푸른하늘과 화이트를 잇는 다리 같은 노래다.

VII. 하늘 이후 · 1994–2025

(화이트) 해체 뒤 유영석은 김기형과 화이트를 결성했다. 전곡을 유영석이 쓰고 편곡은 김기형과 함께했다. 푸른하늘 6집에 처음 실렸던 「사랑 그대로의 사랑」은 화이트의 음반에 다시 실리며 널리 알려졌고, 고백과 청혼 자리에 자주 흐르는 노래가 되었다. 화이트는 1999년 뱅크의 정시로와 함께한 화이트&뱅크 작업을 끝으로 활동을 마무리했다. (곡 제공) 작곡가로서도 동료들과의 인연은 이어졌다. 그는 김장훈에게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와 「슬픈 선물」을 써 주었고, 이선희의 12집 등에도 곡을 보탰다. 2000년대 들어서는 가수로 무대에 서기보다 작곡과 프로듀싱, 방송에 무게를 두었다. (라디오) 그가 가장 오래 머문 무대는 라디오였다. 「FM 인기가요」, 「밤을 잊은 그대에게」 등을 거쳐 2015년부터 2025년 8월까지 「유영석의 팝콘」을 진행했다. 김현철과는 지금까지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2016년에는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우수상을 받았고, 「복면가왕」 판정단으로 텔레비전에도 모습을 비쳤다. (계승) 송경호는 솔로 활동을 거친 뒤 뉴 푸른하늘이라는 이름으로 팀의 이름을 이어 갔다. (유산) 푸른하늘의 노래는 텔레비전보다 라디오에서, 얼굴보다 목소리로 기억되었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이어진 발라드 시대의 한 단면으로 남았다.

덜 알려진 이야기

(중학생의 곡) 밴드의 첫 타이틀곡 「겨울바다」는 데뷔 무렵에 쓴 노래가 아니었다. 경향신문의 겨울 노래 기획 기사는 이 곡을 유영석이 중학교 3학년 때 작사, 작곡했다고 소개한다. 1988년 음반을 듣던 청취자 대부분은 스물두셋 청년이 아니라 열다섯 살 소년의 노래를 듣고 있었던 셈이다. (같은 제목) 가요사에는 「겨울바다」가 두 곡 있다. 최이철이 만들고 김현식과 이승철의 리메이크로 유명해진 「겨울바다」와 푸른하늘의 「겨울바다」는 서로 다른 노래다. 김현식과 푸른하늘이 같은 동아기획 소속이었다는 점 때문에 두 곡이 더 자주 헷갈렸다. (공학도) 유영석의 학력은 음악인으로서 흔치 않다. 아주대학교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한 공학도였고, 이와 별도로 서울예술전문대학에서도 공부했다. 서양 팝 발라드의 작곡가로 기억되는 사람이 공학도 출신이라는 사실은 화려한 히트곡에 가려 잘 언급되지 않는다. (늦게 핀 노래) 지금 유영석의 대표곡으로 꼽히는 「사랑 그대로의 사랑」은 푸른하늘 시절의 곡이다. 처음 실린 곳은 1993년 마지막 음반인 6집이었지만, 해체 뒤 화이트의 음반에 다시 실리고 나서야 널리 알려졌다. 그래서 많은 이가 이 곡을 화이트의 노래로만 기억한다. (얼굴 공개) 유영석은 얼굴 공개를 두고 농담을 하곤 했다고 전해진다. 순위가 높아진 뒤 결국 방송에 출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목소리로만 알려졌던 시절에 청취자들이 품었던 상상이 그 농담의 배경에 있다.

용어 노트 📚🔎

세션

(말뜻) 영어 session은 원래 정해진 시간 동안 함께 모여 무언가를 하는 자리라는 뜻이다. 음악에서는 녹음이나 공연을 위해 잠깐 모이는 자리를 가리키게 되었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밴드나 가수의 정식 멤버가 아니면서 녹음이나 공연 때 불려 와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또는 그 일을 말한다. 송경호는 푸른하늘 1집에서 세션 드러머로 북을 쳤다가 2집부터 정식 멤버가 되었다. 학교 합창 대회에 우리 반 피아노 칠 사람이 없어 옆 반 친구에게 반주를 부탁했다면, 그 친구가 바로 세션이다. 그 친구가 마음에 들어 아예 우리 반으로 전학 왔다면 정식 멤버가 된 셈이다. (다른 데서는) 회의나 학회에서는 주제별로 나뉜 발표 시간을 세션이라고 부른다.

객원 보컬

(말뜻) 객원(客員)은 손님(客)으로 참여하는 사람(員)이라는 뜻이다. 보컬(vocal)은 노래하는 목소리, 또는 노래하는 사람을 말한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그 팀의 정식 멤버가 아닌 가수가 특정 곡에 초대받아 노래를 부르는 것을 말한다. 푸른하늘은 3집부터 장필순, 오태호, 김미진, 이승환 같은 가수들을 곡마다 불러 목소리를 빌렸다. 연극 발표회에서 우리 반에 맞는 목소리가 없어 다른 반 친구를 한 장면에만 특별 출연시키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객원 교수나 객원 연구원처럼 학교나 연구소에서도 정식 소속이 아닌 초빙 인원을 객원이라고 부른다.

신시사이저

(말뜻) 영어 synthesizer는 합성하다(synthesize)라는 말에서 왔다. 여러 전기 신호를 합쳐서 소리를 만들어 내는 악기라는 뜻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건반을 누르면 전자 회로가 소리를 만들어 내는 악기다. 피아노 소리뿐 아니라 현악기, 관악기, 세상에 없는 신비한 소리까지 낼 수 있다. 1980년대 중반부터 가요 녹음에 널리 쓰였고, 유영석도 보컬과 함께 신시사이저를 맡았다. 미술 시간에 빨강과 파랑 물감을 섞어 새 색을 만드는 것처럼, 신시사이저는 소리의 재료를 섞어 새 소리를 만든다. (다른 데서는) 화학이나 생물학에서는 물질을 합성하는 장치나 효소를 가리킬 때 같은 뿌리의 말을 쓴다.

가요 순위 프로그램

(한국 대중음악에서) 음반 판매, 방송 횟수, 시청자 엽서 등을 합쳐 매주 인기곡의 순위를 매기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다. 1위를 하면 그 주의 가장 인기 있는 노래로 인정받았다. KBS 「가요톱텐」이 대표적이었고, 푸른하늘의 「자아도취」가 여기서 1위에 올랐다. 학교에서 매주 급식 메뉴 인기 투표를 해 1등 메뉴를 게시판에 붙인다고 생각하면 비슷하다. 다만 가요 순위는 온 나라가 함께 지켜보는 게시판이었다.

원맨 밴드

(말뜻) 영어 one-man band는 원래 북, 하모니카, 기타를 한 몸에 매달고 혼자 연주하는 거리 악사를 가리키던 말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겉으로는 여러 사람이 모인 밴드지만 실제로는 한 사람이 작사, 작곡, 편곡, 노래를 거의 다 맡는 팀을 가리킨다. 푸른하늘은 멤버가 여러 차례 바뀌는 동안에도 유영석이 거의 모든 곡을 만들고 불러서 원맨 밴드에 가까웠다. 모둠 과제를 내는데 한 친구가 조사, 글쓰기, 발표 자료까지 거의 혼자 다 했다면 그 모둠은 사실상 원맨 밴드다. (다른 데서는) 회사나 일상에서는 혼자 여러 역할을 다 해내는 사람을 원맨 밴드라고 부르기도 한다.

라이브 앨범

(말뜻) 라이브(live)는 살아 있다는 뜻이다. 녹음실에서 다듬은 소리가 아니라, 관객 앞에서 바로 그 순간 살아 움직이는 연주라는 의미로 쓰인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녹음실이 아닌 공연장에서 실제 공연을 녹음해 만든 음반이다. 관객의 환호와 박수, 그날만의 즉흥적인 변화가 함께 담긴다. 푸른하늘은 해체 뒤인 1994년 2월 마지막 공연을 담은 라이브 앨범을 냈다. 체육대회 계주 영상을 다시 보면 연습 때와 달리 응원 소리와 긴장감이 함께 남아 있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방송에서 라이브는 녹화가 아닌 생방송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