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Hyun-sik
텔레비전보다 무대와 음반을 택했고, 거칠어져 가는 목소리를 끝까지 노래에 바친 1980년대의 가객.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후원전유성
음악다방 DJ 시절 소년 김현식의 노래를 듣고 본격적으로 음악을 하라고 권했다.
- 후원김영
동아기획 대표로 2집부터 그의 음반을 냈고, 1987년 구속 때 나서서 도왔으며 사후 미발표 녹음까지 음반으로 냈다.
- 우정유재하
봄여름가을겨울의 키보드 연주자로 잠시 함께했고 「가리워진 길」을 주었다. 1987년 그의 죽음이 김현식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 작곡박성식
봄여름가을겨울의 건반 연주자로, 대표곡 「비처럼 음악처럼」을 썼다.
- 우정이문세
같은 시대의 가수이자 벗으로, 건강을 해치는 그의 술을 걱정하며 말렸다고 전해진다.
- 작곡오태호
신촌블루스의 기타 연주자로, 유작 6집의 「내 사랑 내 곁에」를 쓰고 노랫말도 붙였다.
I. 인현동의 아이 · 1958–1974
(출생) 1958년 1월, 대한민국 서울 중구 인현동 1가에서 태어났다. 호적에 오른 생일은 1월 7일이다. 실제로는 음력 1957년 12월 30일, 양력으로 1958년 2월 18일에 태어났다는 기록도 있다. (상실) 집안 형편은 넉넉한 편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었고, 아버지는 1969년에 세상을 떠났다. 소년 시절 그는 서울의 학교와 충청북도 옥천 죽향초등학교를 거쳐 서울 수유초등학교를 다녔다. 몇 차례 학교를 옮긴 것으로 보아 집안 사정이 순탄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를 잃은 뒤 그는 반항기 많은 학생이 되었다는 회고가 많다. (기타) 1970년 보성중학교에 들어가 사촌형 양국정에게 기타를 배웠다. 1973년 명지고등학교에 진학해 밴드부에 들었다. 그러나 선배 부원의 악기를 허락 없이 만졌다가 싸움이 붙었고, 그 일로 밴드부에서 쫓겨났다고 전해진다. 이듬해인 1974년 초 그는 학교를 그만두었다. 열여섯 살 소년에게 남은 것은 기타 한 대와 노래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정규 교육 바깥에서 음악을 익힌 이 경험은 훗날 그가 방송과 제도의 관행에 고분고분하지 않았던 태도와도 닿아 있다.
II. 명동의 통기타 · 1975–1983
(검정고시) 1975년, 열일곱 살에 고등학교 졸업 학력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그 무렵부터 명동과 종로의 음악다방에서 통기타를 메고 노래했다. 당시 음악다방에서는 DJ가 신청곡을 틀어 주는 사이사이 젊은 가수들이 노래를 불렀다. 그곳에서 DJ로 일하던 전유성이 그의 노래를 듣고 본격적으로 음악을 해 보라고 권했다고 한다. (밤무대) 그는 검은나비, 동방의 빛 같은 밴드에서 보컬을 맡아 밤무대를 돌며 실력을 쌓았다. 이 시절 대마초 사건에 연루돼 몇 달간 수감되었다. 이 사건이 1975년 무렵이었다는 기록과 1978년이었다는 기록이 엇갈린다. 어느 쪽이든 1970년대 후반 가요계를 뒤흔든 대마초 단속의 여파였고, 준비하던 데뷔도 그만큼 늦어졌다. (데뷔) 1980년, 자작곡 「봄 여름 가을 겨울」과 「당신의 모습」을 담은 1집이 나왔다(1981년 발매로 적은 자료도 있다). 맑고 부드러운 미성이 돋보이는 음반이었다. 그러나 1980년 말 컬러TV 방송이 시작되며 가요계의 중심은 텔레비전 화면으로 옮겨 가고 있었고, 방송과 거리가 먼 신인의 LP는 거의 팔리지 않았다. 다만 언더그라운드 음악인들 사이에서는 좋은 평을 들었다. (가정) 1982년 결혼했고, 곧 아들을 얻었다. 음반은 팔리지 않았지만 가족과 보낸 이 무렵을 그는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로 기억했다고 전해진다.
III. 동아기획과 돌개바람 · 1984–1985
(동아기획) 다시 기회를 연 사람은 동아기획 대표 김영이었다. 동아기획은 1980년대 중반부터 들국화, 한영애, 신촌블루스, 봄여름가을겨울 같은 음악인들의 음반을 잇달아 냈다. 텔레비전 대신 공연과 음반으로 승부하는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본거지였다. 김현식은 그 흐름의 앞자리에 섰다. (돌개바람) 1984년 9월, 2집 「사랑했어요 / 어둠 그 별빛」이 나왔다. 반주는 그의 밴드 김현식과 돌개바람이 맡았다. 타이틀곡 「사랑했어요」는 그가 직접 쓴 곡이다. 떠나간 사랑을 과거형으로 담담하게 되돌아보는 노래로, 크게 꾸미지 않은 노랫말과 선율이 그의 목소리를 오롯이 드러냈다. 이 곡이 라디오 신청곡으로 퍼지면서 그는 비로소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무대) 이 시기 그는 텔레비전 출연을 꺼렸다. 그래서 노래는 알려졌으나 얼굴은 잘 알려지지 않아 얼굴 없는 가수라는 별명이 붙었다. 노래는 라디오와 카세트테이프로 퍼졌고, 사람들은 소극장과 대학가 공연장에서 그를 만났다. 방송 출연이 곧 흥행이던 시대에 무대와 음반만으로 팬을 모은 방식은, 이후 동아기획 음악인들이 걸어간 길의 본보기가 되었다. (형편) 음악으로 생계를 꾸리는 일은 여전히 넉넉하지 않았다.
동아기획에서 다시 출발한 2집의 타이틀곡으로, 그가 직접 썼다. 얼굴 없는 가수라는 별명을 안긴 라디오 시대의 첫 히트곡이다.
- 목소리가 아직 거칠어지기 전인 시기의 녹음이다. 쉰 소리가 거의 없는 맑은 고음을 3집 이후의 노래와 견주어 들어 보면, 짧은 기간에 목소리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 수 있다.
- 노랫말이 지나간 사랑을 과거형으로 담담하게 돌아본다. 그래서 감정을 터뜨리기보다 한 발 물러서서 회상하는 말투로 노래한다.
- 밴드 돌개바람의 반주는 기타, 건반, 드럼을 중심으로 소박하게 짜였다. 화려한 장식 없이 목소리를 앞에 세우는 1980년대 중반 아날로그 녹음의 질감을 느낄 수 있다.
IV. 봄여름가을겨울 · 1986–1987
(결성) 1986년, 그는 새 밴드를 꾸렸다. 이름은 1집 수록곡에서 따온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이었다. 기타 김종진, 드럼 전태관, 그리고 훗날 빛과 소금을 결성하는 장기호와 박성식이 함께했다. 막 군 복무를 마친 유재하도 키보드로 들어왔다. 유재하는 앨범 작업 도중 음악적 견해 차이로 여섯 달 만에 팀을 떠났지만, 두 사람의 우정은 그 뒤로도 이어졌다. (정점) 1986년 12월 3집이 나왔다. 박성식이 쓴 「비처럼 음악처럼」, 유재하가 쓴 「가리워진 길」이 실렸다. 재즈와 퓨전의 감각을 갖춘 젊은 연주자들의 세련된 반주 위에, 술과 담배로 거칠어지기 시작한 목소리가 얹혔다. 맑던 미성에 쉰 소리(허스키)가 섞이면서 노래의 감정은 오히려 깊어졌다는 평이 많다. 음반은 30만 장 넘게 팔렸다. 발매 직후보다 시간이 흐르며 꾸준히 팔렸다는 회고도 있다. (구속) 봄여름가을겨울과의 활동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김현식은 블루스 연주자들의 느슨한 모임인 신촌블루스와 무대에 섰다. 1987년 10월에는 대마초와 필로폰 투약 혐의로 다시 구속되었다. 김영 대표가 나서서 도운 끝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이별) 그해 11월 1일, 유재하가 교통사고로 스물다섯에 세상을 떠났다. 유일한 음반 「사랑하기 때문에」를 낸 지 석 달 만이었다. 이후 김현식의 술은 눈에 띄게 늘었다고 주변 사람들은 기억한다.
봄여름가을겨울과 함께 만든 3집의 타이틀곡이다. 박성식이 쓴 곡으로, 김현식의 대표곡이 되었다.
- 작곡자 박성식은 훗날 빛과 소금으로 활동한 건반 연주자다. 재즈풍의 세련된 화음(코드 진행)이 깔려, 당시 가요 발라드와는 결이 다른 도시적인 분위기를 낸다.
- 쉰 소리가 섞이기 시작한 목소리가 매끈한 반주 위에 얹힌다. 이 대비가 곡의 쓸쓸한 정서를 키운다는 평이 많다.
- 후렴에서 목소리를 길게 끌다가 끝을 흐리듯 놓는 대목이 있다. 고음을 힘으로 밀어붙이기보다 감정을 실어 흘려보내는 그의 창법이 잘 드러나는 순간이다.
- 지금도 비 오는 날이면 라디오에서 자주 신청되는 곡이다. 여러 후배 가수가 경연 프로그램과 리메이크 음반에서 다시 불렀다.
잠시 밴드 동료였던 유재하가 쓴 곡이다. 유재하 자신의 음반보다 김현식의 3집에 먼저 실렸다.
- 유재하 특유의 클래식풍 화음이 바탕에 깔려 있다. 김현식은 그 위에서 정해진 가락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말하듯 박자를 조금씩 늦추며 노래한다.
- 이듬해 나온 유재하 1집의 같은 곡과 견주어 들어 보면 좋다. 작곡자의 섬세한 미성과 김현식의 거친 목소리가 같은 노래를 얼마나 다르게 만드는지 알 수 있다.
- 앞이 보이지 않는 길 앞에서 머뭇거리는 마음을 그린 노래다. 두 사람이 모두 일찍 세상을 떠난 탓에, 지금은 두 사람의 우정을 떠올리게 하는 곡으로 자주 이야기된다.
V. 다시 무대로 · 1988–1989
(재기) 1988년, 그는 복귀 공연으로 무대에 다시 섰다. 같은 해 9월에 4집이 나왔다(1989년 발매로 적은 자료도 있다). 베이시스트 송홍섭이 편곡을 맡았다. 이정선의 「한밤중에」, 유재하의 「그대 내 품에」, 장기호의 「사랑할 수 없어」, 당시 신인 작곡가였던 윤상의 「여름밤의 꿈」이 실렸다. 송병준이 작곡하고 그가 송병준과 함께 노랫말을 쓴 「언제나 그대 내 곁에」와 하모니카 연주곡 「한국사람」도 함께 담겼다. 세상을 떠난 친구의 노래를 다시 부르고, 새 세대 작곡가의 곡을 받아들인 이 음반은 이별과 출발이 겹친 시기를 그대로 보여 준다. (협업) 1989년에는 영화 주제가 「비오는 날의 수채화」를 강인원, 권인하와 함께 부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같은 해 신촌블루스 2집 작업에도 참여했다. 동료들과 어울려 노래하는 자리에서 그는 즐거워 보였다는 증언이 많다. (술) 그러나 몸은 무너지고 있었다. 이문세와 기타리스트 함춘호 같은 벗들이 술을 줄이라고 여러 차례 말렸다고 전해진다. 성미가 급해 방송 PD들과 자주 부딪혔고, 밴드 동료들에게 엄했다는 증언도 남아 있다. 반대로 그를 속정 깊은 선배로 기억하는 동료들도 있다고 전해진다. 후배 신해철은 방송 제작진 앞에서도 굽히지 않던 그의 태도를 존경했다고 밝힌 바 있다.
복귀 음반인 4집에 실린 곡으로, 당시 신인이던 윤상이 썼다. 새 세대 작곡가의 곡을 받아들인 그의 열린 귀를 보여 준다.
- 건반이 만드는 몽환적인 울림이 곡 전체를 감싼다. 훗날 전자음악으로 이름을 날린 윤상의 초기 감각을 엿볼 수 있다.
- 그는 이 곡에서 목소리를 낮게 눌러 속삭이듯 부른다. 같은 음반의 다른 곡들보다 힘을 뺀 노래여서 그의 목소리가 지닌 다른 결을 들을 수 있다.
- 편곡은 베이시스트 송홍섭이 맡았다. 1980년대 후반 동아기획 계열 연주자들의 꼼꼼한 녹음을 느낄 수 있다.
4집의 타이틀곡으로, 송병준이 작곡하고 그가 송병준과 함께 노랫말을 썼다. 친구를 잃고 무대로 돌아온 시기의 마음이 담겨 있다.
- 곁에 있어 달라고 상대에게 직접 말을 건네는 노래다. 그래서 노래 전체가 고백처럼 들린다.
- 곡이 진행되면서 목소리가 점점 거칠게 터져 나온다. 처음에는 낮게 시작해 뒤로 갈수록 감정을 쌓아 올리는 형식이다.
- 4집에는 같은 시기에 다시 부른 유재하의 「그대 내 품에」도 실려 있다. 두 곡을 이어 들으면 이 음반이 지닌 그리움의 정서가 또렷해진다.
VI. 마지막 노래 · 1990–1991
(투병) 1990년 3월, 생전의 마지막 음반인 5집이 나왔다. 이 무렵 간경화는 폐로까지 번진 상태였다고 전해진다. 타이틀곡 「넋두리」에는 시계 초침 소리가 들어가 있다. 이 소리를 남은 시간을 헤아리는 소리로 읽는 평이 많다. 그는 불러 온 배를 헐렁한 옷으로 가린 채 무대에 섰다고 한다. (녹음) 병세가 깊어진 뒤에도 그는 6집을 녹음했다. 병원을 빠져나와 녹음을 이어 갔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10월 30일에는 「그대 빈 들에」를 쓰고 녹음했다. 사흘 뒤인 1990년 11월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자택에서 서른두 살로 세상을 떠났다. 유재하가 떠난 지 꼭 3년째 되는 날이었다. 장례는 11월 3일에 치러졌고, 화장한 뒤 분당 메모리얼파크(옛 남서울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유작) 1991년 1월, 유작 6집이 나왔다. 수록곡 「내 사랑 내 곁에」는 신촌블루스에서 기타를 치던 오태호가 써 둔 곡이다. 이 노래는 가요 순위 프로그램 1위에 올랐다. 음반 판매량은 50만 장에서 100만 장 이상까지 자료마다 크게 엇갈린다. 그해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6집은 음반 대상을 받았고, 어린 아들이 무대에 올라 아버지 대신 상을 받았다. (유산) 그 뒤에도 그의 노래는 끊임없이 다시 불렸다. 2010년 서거 20주기 다큐멘터리가 방송되었다. 2015년부터는 서대문구에서 김현식가요제가 해마다 열린다. 2020년에는 인공지능으로 그의 목소리를 되살린 방송 기획이 나오기도 했다. 카세트테이프와 LP 시대의 목소리는 CD와 스트리밍 시대로 이어져, 비 오는 날의 노래로 지금도 꾸준히 불려 나온다.
생전 마지막 음반인 5집의 타이틀곡이다. 간경화가 깊어진 몸으로 녹음했다.
- 곡에 들어간 시계 초침 소리가 유명하다. 이 소리를 남은 시간을 헤아리는 장치로 읽는 평이 널리 퍼져 있다.
- 목소리는 한층 거칠고 숨이 짧게 들린다. 기교를 덜어 내고 떨리는 소리를 그대로 남긴 녹음이어서 듣는 사람에 따라 고통스럽게도, 더없이 솔직하게도 들린다.
- 제목처럼 혼잣말하듯 신세를 털어놓는 화법이다. 누군가를 설득하려 하기보다 자신에게 중얼거리는 태도에 가깝다.
오태호가 써 둔 곡을 받아 6집에 담았다. 세상을 떠난 뒤 나온 이 노래가 그에게 가장 큰 성공을 안겼다.
- 병세가 깊던 시기에 녹음한 목소리라 쉰 소리와 갈라지는 소리가 그대로 담겨 있다. 일부는 완성 전의 녹음(가이드 보컬)을 살려 썼다고 전해진다.
- 단순한 반주 위에서 곁을 떠나지 말아 달라고 간절하게 비는 노래다. 그가 처한 상황과 겹쳐 들리면서 듣는 이들에게 특별한 무게로 다가갔다.
- 1991년 가요 순위 프로그램 1위에 올랐고, 골든디스크 음반 대상 시상식에서 어린 아들이 대신 상을 받은 장면이 오래 기억되었다.
- 오늘날까지 리메이크가 가장 많이 된 그의 곡 가운데 하나다. 후배들이 부른 담백한 버전과 원곡을 견주면 원곡의 거친 질감이 지닌 힘이 더 잘 보인다.
덜 알려진 이야기
(먼저 부른 노래) 유재하의 대표곡으로 알려진 「가리워진 길」은 사실 1986년 김현식의 3집에 먼저 실렸다. 유재하 자신의 녹음은 이듬해 1집에 들어갔다. 유재하의 유일한 음반이 전설이 되면서 순서가 흔히 거꾸로 기억되지만, 이 노래는 두 사람이 같은 밴드에 몸담았던 짧은 시기가 남긴 기록이기도 하다. (병상의 녹음) 김현식은 생의 마지막 1년 동안 병상과 자택에서 노래를 녹음했다. 이 녹음은 23년 동안 공개되지 않다가 2013년 동아기획 김영 대표의 기획으로 「김현식 2013년 10월」이라는 음반이 되었다. 처음 공개된 곡 9곡과, 기존 곡을 병상에서 다시 부른 12곡이 실렸다. 완성된 음반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그의 마지막 해를 보여 주는 1차 자료다. (두 개의 생일) 그의 생일은 자료마다 다르다. 호적에는 1958년 1월 7일로 올라 있지만, 실제로는 음력 섣달그믐에 태어나 양력으로 2월 18일이라는 기록이 있다. 출생 신고를 실제 생일과 다르게 하는 일이 흔했던 시대의 흔적이다.
용어 노트 📚🔎
언더그라운드
(말뜻) 영어 underground는 땅 밑이라는 뜻이다. 눈에 잘 띄는 큰 무대 아래쪽에서 활동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1980년대에 텔레비전 가요 프로그램에 잘 나오지 않고, 소극장 공연과 음반, 라디오를 통해 팬을 모은 음악인들을 가리켰다. 김현식, 들국화, 신촌블루스가 대표적이다. 학교 축제의 큰 무대에는 서지 않아도, 쉬는 시간마다 음악실에서 연주해 아는 친구들 사이에서 소문이 퍼진 밴드를 떠올리면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지하철을 뜻하기도 하고, 정치에서는 몰래 하는 비밀 활동을 뜻하기도 한다.
음악다방
(말뜻) 다방(茶房)은 차(茶)를 마시는 방(房)이라는 뜻이다. 음악다방은 음악을 들려주는 찻집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1970년대에는 DJ가 유리방 안에서 손님의 신청곡을 LP로 틀어 주는 다방이 젊은이들의 놀이터였다. 신인 가수들이 통기타를 메고 노래하며 실력을 쌓는 무대이기도 했다. 김현식도 명동과 종로의 음악다방에서 노래를 시작했다. 학교 방송반이 점심시간에 친구들의 신청곡을 틀어 주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음악다방에서는 가수가 그 자리에서 직접 노래하기도 했다.
백밴드
(말뜻) 영어 back은 뒤라는 뜻이다. 백밴드는 가수 뒤에서 반주를 맡는 밴드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김현식과 돌개바람,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처럼 가수 이름 뒤에 밴드 이름을 붙여 함께 녹음하고 공연했다. 봄여름가을겨울은 백밴드로 출발해 나중에 독립된 그룹이 되었다. 합창대회에서 지휘자와 함께 무대에 서는 피아노 반주자와 비슷하다. 다만 백밴드는 여러 악기를 맡은 사람들이 한 팀을 이룬다.
사단
(말뜻) 사단(師團)은 원래 군대에서 큰 부대 단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한 기획사나 한 음악인을 중심으로 모여 서로 곡을 주고받고 함께 연주하는 무리를 가리킨다. 1980년대의 동아기획 사단에는 김현식, 들국화, 한영애, 신촌블루스, 봄여름가을겨울, 빛과 소금 같은 음악인들이 있었다. 같은 체육관에서 함께 훈련하며 서로 기술을 가르쳐 주는 선후배들을 떠올리면 된다. (다른 데서는) 군대에서는 여러 연대를 묶은 부대를 뜻한다.
허스키 보이스
(말뜻) 영어 husky는 목이 쉬어 거친 소리를 뜻한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맑지 않고 쉰 소리가 섞인 목소리를 말한다. 김현식의 목소리는 3집 무렵부터 술과 담배로 거칠어졌는데, 이 쉰 소리가 노래의 슬픔을 더 깊게 만든다는 평을 들었다. 운동회 날 응원을 너무 많이 해서 목이 쉬면 같은 말을 해도 더 절실하게 들릴 때가 있다. 그 느낌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허스키는 썰매를 끄는 개의 품종 이름으로도 쓰인다.
가이드 보컬
(말뜻) 영어 guide는 길잡이라는 뜻이다. 가이드 보컬은 노래의 길잡이가 되는 임시 목소리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반주를 녹음하거나 곡의 모양을 잡을 때 참고하려고 미리 불러 두는 임시 노래다. 보통은 나중에 정식으로 다시 녹음하지만, 김현식의 유작 6집에는 끝내 다시 부르지 못한 녹음이 일부 그대로 쓰였다고 전해진다. 미술 시간에 연필로 밑그림을 그려 두고 나중에 물감을 칠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밑그림이 그대로 작품이 된 셈이다.
유작
(말뜻) 유작(遺作)은 남길 유(遺)와 지을 작(作)이 합쳐진 말로, 세상을 떠난 사람이 남긴 작품이라는 뜻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음악인이 살아 있을 때 녹음했지만 세상을 떠난 뒤에 발표된 음반을 말한다. 김현식의 6집과 유재하의 1집이 대표적이다. 전학 간 친구가 남기고 간 롤링페이퍼를 나중에 펼쳐 보는 것처럼, 듣는 사람은 그 안에서 떠난 사람의 마지막 목소리를 찾게 된다.
골든디스크
(말뜻) 영어 golden disc는 금빛 음반이라는 뜻이다. 많이 팔린 음반에 금으로 된 음반 기념패를 주던 서양의 관행에서 나왔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1986년에 시작된 음반 시상식으로, 한 해 동안 많이 팔리고 사랑받은 음반에 상을 준다. 1991년 김현식의 유작 6집이 음반 대상을 받았고, 어린 아들이 대신 상을 받았다. 학년 말에 한 해 동안 가장 열심히 한 친구에게 주는 상과 비슷하다. 다만 이 상은 음반이 얼마나 팔렸는지도 함께 따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