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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Seung-hwan

이승환 (1989–)

'음악인에 대한 고정된 시선을 벗어나고 싶어요.' — 이승환, 2019년 정규 12집 발표를 앞두고

한눈에 보기 🔭💭

1. 뿌리대한민국 부산 출생장난감 공장장 아버지기획사 16곳 거절2. 데뷔유산으로 자비 제작텅 빈 마음오태호와 이오공감3. 정점어머니 추모곡덩크 슛·천일동안데이비드 캠벨4. 독립드림팩토리가족·팬 549명차카게 살자5. 무대라이브의 황제9시간 30분 공연어떻게 사랑이 그래요6. 지금Fall to Fly 연작나는 다 너야공개적인 소신이승환1989–기획사 열여섯 곳에서 거절당하고 스스로 음반을…
무대의 여정 🧭🗺️
N대한민국부산1965대구1970년대 초–1975서울1975–현재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가족이현종

    장난감 공장장이던 아버지로, 아들에게 유산을 미리 내주어 데뷔 음반의 제작비를 마련하게 했다.

  • 프로듀서조동익

    어떤날 출신의 음악인으로, 데뷔곡 「텅 빈 마음」을 비롯한 1집의 여러 곡을 썼고 5집까지 함께했다.

  • 우정오태호

    1집부터 곡을 주었고 1992년 이오공감으로 함께 음반을 내 골든디스크를 받은 초기의 동반자다.

  • 우정김동률

    휘문고 후배로, 이승환이 가사를 쓴 「천일동안」의 곡을 썼다.

  • 프로듀서데이비드 캠벨

    그래미 수상 경력의 미국 편곡자로, 4집과 5집의 프로듀서와 편곡을 맡아 그의 사운드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 프로듀서유희열

    5집에서 몫이 커진 뒤 오랫동안 작업을 함께했고, 4집의 사운드를 높이 평가했다.

YouTube에서 7곡 이어 듣기 ↗

I. 장난감 공장장의 아들 · 1965–1988

(출생) 1965년 12월, 대한민국 부산 부산진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가정사에 대해 본인이 자세히 밝힌 것은 많지 않다. 다만 이 집안의 기억은 훗날 그의 노래에 여러 번 돌아온다. (이사) 집안의 근거지는 몇 차례 바뀌었다. 대구 계성국민학교를 다니다가 서울로 올라와 혜화국민학교로 전학했다. 이후 보성중학교와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휘문고는 훗날 「천일동안」을 함께 만드는 김동률이 후배로 다닌 학교이기도 하다. 서울 도심에서 10대를 보내며 그는 라디오와 팝 음반으로 음악을 익힌 세대에 속했다. (대학)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에 들어간 뒤 가수의 길을 택했다. 1980년대 후반의 가요계는 텔레비전 가요 순위 프로그램과 대형 음반사, 기획사가 신인의 운명을 쥐고 있던 시기였다. 스스로 곡을 쓰고 노래하겠다는 대학 중퇴생에게 문은 좁았다. (거절) 그는 음반 기획사들을 찾아다녔으나 열여섯 곳에서 거절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열일곱 번째로 찾아간 서울음반이 계약을 제안했지만 조건이 무거웠다. 3년 동안 앨범 세 장을 내고, 해마다 홍보비 2천만 원을 가수가 직접 마련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한때 이를 받아들였다가 결국 계약을 깨뜨렸다. 이 경험은 산업에 대한 깊은 불신으로 남았다. 그가 평생 스스로 음반을 만들고 회사를 꾸리는 쪽을 택한 데에는 이때의 기억이 컸다.

II. 스스로 만든 데뷔 · 1989–1992

(유산) 그는 아버지에게 유산을 미리 받아 데뷔 음반의 제작비로 썼다. 1989년 10월 15일 발매된 정규 1집 「B.C 603」은 한국에서 가수가 직접 제작한 두 번째 음반으로 꼽힌다. 그는 1인 기획사 우리기획을 세워 음반을 냈다. 가수가 직접 회사를 세워 데뷔한 초기 사례로 꼽힌다. (조력) 음반에는 이름난 음악인들이 손을 보탰다. 타이틀곡 「텅 빈 마음」은 류화지가 가사를 쓰고 어떤날 출신의 조동익이 곡을 썼다. 「좋은 날」, 「그냥 그런 이야기」는 이승환이 가사를 쓰고 조동익이 곡을 붙였다. 「기다린 날도 지워질 날도」와 「눈물로 시를 써도」는 오태호가 작사·작곡했다. 포크와 재즈 감각을 지닌 연주인과 젊은 발라드 작곡가가 한 음반에서 만난 셈이었다. (라디오) 그는 방송의 정해진 각본과 촌지 관행을 꺼려 텔레비전 출연을 피했다. 홍보는 라디오 방송과 입소문에 기댔다. 그런데도 1집은 100만 장 넘게 팔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카세트테이프가 음반 시장의 중심이던 시절, 방송 화면에 나오지 않고도 판매로 증명한 드문 데뷔였다. 앳된 얼굴과 맑고 높은 목소리 덕에 그는 어린 왕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오태호) 1991년 2집 「Always」의 「너를 향한 마음」으로 골든디스크 본상을 받았다. 1992년에는 작곡가 오태호와 함께 이오공감이라는 이름으로 음반을 내고 다시 골든디스크를 받았다. 이 음반에 실린 「잃어버린 건… 나」 연작은 다음 앨범까지 이어진다. 데뷔 3년 만에 그는 기획사의 손을 빌리지 않고도 정상에 설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텅 빈 마음1989실황 이승환 · 2010 MBC 음악여행 라라라

기획사의 문이 모두 닫힌 뒤 아버지에게 미리 받은 유산으로 만든 데뷔 음반의 타이틀곡이다. 방송 없이 라디오만으로 그의 이름을 알렸다.

  • 류화지 작사, 조동익 작곡의 곡이다. 어떤날의 섬세한 포크·재즈 감각을 지닌 작곡가가 쓴 발라드라는 점에서, 같은 시기의 정형화된 가요 발라드와 결이 조금 다르게 들린다.
  • 갓 데뷔한 그의 맑고 가벼운 고음을 들어 볼 것. 어린 왕자라는 별명이 어디서 왔는지 짐작하게 한다.
  • 피아노와 신시사이저 현악 소리(전자 악기로 흉내 낸 현악)를 중심으로 한 편곡은 카세트 시대 말기 1980년대 가요 발라드의 전형적인 질감을 보여 준다.
  • 텔레비전 출연 없이 100만 장 넘게 팔린 음반의 첫 곡이다. 라디오가 신인을 키우던 시대의 마지막 장면 가운데 하나로 들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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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어머니를 잃은 해 · 1993–1996

(상실) 1993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그해 9월 나온 정규 3집 「My Story」는 어머니를 잃은 뒤 만든 음반이다. 표지와 전체 분위기가 앞선 두 장보다 무겁고 진지해졌다. 열한 번째 곡 「내 어머니」는 그가 직접 가사를 쓰고 박용준이 곡을 붙인 추모곡이다. (전환) 이 음반에서 그의 음악은 방향을 틀었다. 1980년대식 발라드에서 벗어나 아이돌풍 발라드와 록 발라드로 옮겨 갔다. 015B의 정석원과 처음 작업했고, 이듬해 그가 직접 제작하게 되는 더 클래식의 김광진·박용준도 불러들였다. 김광진이 가사를 쓰고 김현철이 곡을 쓴 타이틀곡 「내게」와 「덩크 슛」이 나란히 인기를 얻었다. 오태호가 작사·작곡한 「화려하지 않은 고백」은 꾸준히 사랑받았다. 음반은 100만 장 이상 팔렸고, 「내게」로 그는 1993년 골든디스크를 받았다. 슬픔 속에서 만든 음반이 그의 가장 밝은 히트곡을 함께 품게 된 것이다. (야심) 1995년 6월의 정규 4집 「Human」에서 그는 소리의 수준을 국제 무대에 맞추려 했다. 그래미상 수상 경력이 있는 편곡자 데이비드 캠벨을 프로듀서와 편곡자로 기용했고, 녹음과 믹싱을 미국에서 진행했다. 제작비를 크게 들였다고 전해진다. 음반은 발라드를 모은 전반부 Water Side와 록을 모은 후반부 Fire Side로 나뉘었다. 발라드 가수라는 대중의 인식과 록에 뿌리를 둔 그의 취향을 한 장에 함께 담은 구성이었다. (천일동안) 타이틀곡 「천일동안」은 그가 가사를 쓰고 휘문고 후배 김동률이 곡을 썼으며, 데이비드 캠벨이 오케스트라 편곡을 맡았다. 곡의 인기에 힘입어 음반은 100만 장 넘게 팔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훗날 유희열은 이 음반의 사운드를 높이 평가했다.

♪덩크 슛1993무대 이승환 · 1993 KBS 뮤직스테이션

어머니를 잃은 해에 만든 무거운 음반에서 오히려 가장 밝은 곡이 가장 크게 사랑받았다. 타이틀곡 「내게」보다 더 큰 인기를 얻었다.

  • 김광진 작사, 김현철 작곡이다. 더 클래식과 김현철 같은 1990년대 초 세련된 팝 작곡가들의 감각이 이승환의 목소리와 만난 곡이다.
  • 농구를 소재로 짝사랑의 설렘을 장난스럽게 풀어낸 화법이 핵심이다. 1990년대 초 대학 농구 열기와 맞물린 소재라 시대의 공기가 묻어난다.
  • 경쾌한 리듬 위에서 그는 발라드 때와 달리 힘을 빼고 가볍게 튀듯 노래한다. 같은 음반의 「내 어머니」와 이어 들으면 한 음반에 담긴 감정의 폭이 드러난다.
  • 후렴(코러스)에 이르면 박자가 확 트이면서 몸이 먼저 반응하게 짜여 있다. 공연에서 관객이 함께 뛰는 곡으로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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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지 않은 고백1993실황 이승환 · 2025 HEAVEN 콘서트

「My Story」의 두 히트곡 그늘에 가려졌지만, 해가 갈수록 꾸준히 사랑받아 그의 대표 발라드가 된 곡이다.

  • 오태호가 가사와 곡을 모두 썼다. 데뷔 때부터 함께한 오태호와의 인연이 이어진 곡이다.
  • 거창한 맹세 대신 소박한 진심을 털어놓는 고백의 화법이 제목 그대로 곡 전체의 태도를 이룬다.
  • 목소리를 크게 터뜨리기보다 한 음 한 음 낮게 눌러 담는 보컬이 돋보인다. 후반부로 갈수록 감정이 조금씩 차오르도록 짜였다.
  • 발표 당시에는 주목을 덜 받았으나 시간이 지나며 재평가되었다. 훗날 규현이 다시 불러 새 세대에게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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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동안1995무대 이승환 · 1995 KBS 가요톱10

미국에서 녹음한 야심작 「Human」의 타이틀곡이다. 고교 후배 김동률의 멜로디에 그가 가사를 붙이고 데이비드 캠벨이 오케스트라를 입혔다.

  • 이승환 작사, 김동률 작곡, 데이비드 캠벨 편곡이다. 1990년대 한국 발라드를 대표하는 두 사람의 감각에 할리우드 편곡자의 관현악이 더해진 곡이다.
  • 피아노로 조용히 시작해 현악기와 관악기가 겹겹이 쌓이며 커지는 구성이다. 실제 오케스트라를 녹음한 아날로그 시대의 풍성한 소리를 확인할 수 있다.
  • 곡 후반 오케스트라가 정점에 이를 때 터지는 긴 고음이 이 곡의 상징적인 순간이다. 공연에서도 가장 숨죽여 듣는 대목으로 꼽힌다.
  • 긴 시간 끝에 찾아온 이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려 애쓰는 화법이다. 절제된 앞부분과 터지는 뒷부분의 대비가 그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 이 곡의 인기로 「Human」은 100만 장 넘게 팔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CD 시대 대형 발라드의 정점을 보여 주는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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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꿈의 공장 · 1997–2002

(윤회) 1997년 1월의 정규 5집 「Cycle」은 윤회라는 제목 아래 삶의 여러 단계를 그린 컨셉 앨범이다. 제작의 상당 부분을 미국에서 진행했다. 데이비드 캠벨과 김 불라드가 다시 프로듀서로 참여했고, 유희열의 몫이 앞선 음반보다 커졌다. 데뷔 때부터 함께한 조동익과 오태호가 참여한 마지막 음반이기도 했다. (소동) 타이틀곡 「애원」은 뮤직비디오에 귀신 같은 형상이 보인다는 소문이 돌면서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다. 그 자리를 메운 곡이 「가족」이다. 이 곡의 합창에는 팬 549명이 참여했고, 음반 속지에 그들의 사진과 이름이 실렸다. 방송 활동 없이 60만 장 넘게 팔린 음반에서 가장 사랑받은 곡이 팬들의 목소리로 완성된 노래였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독립) 「Cycle」은 우리기획에서 낸 마지막 음반이었다. 같은 해 발표한 「His Ballad」부터 그는 드림팩토리라는 이름으로 음반을 냈다. 회사 대표와 가수를 겸하는 체제는 이후 30년 가까이 이어진다. 이 무렵 한국 음반 시장은 CD 판매가 정점에 이르렀고, 기획사가 만든 아이돌 그룹이 순위 프로그램을 차지해 가던 때였다. 그는 그 흐름 밖에서 제작비와 공연으로 승부했다. (영상) 1999년 3월 정규 6집 「The War in Life」를 냈고, 그해 Mnet 뮤직비디오 시상식에서 남자 가수상과 올해의 뮤직비디오상을 받았다. 2001년에는 정규 7집 「Egg: Sunny Side Up」을 냈다. 2002년에는 같은 시상식에서 뮤직비디오 개척자상을 받았다. 케이블 음악 채널이 막 영향력을 키우던 시기에 그는 영상을 음악의 연장으로 공들인 가수로 평가받았다. (나눔) 2001년에는 자선 공연 「차카게 살자」를 시작해 수익금을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에 전달했다. 스태프가 무보수나 실비만 받고 참여하는 이 공연은 이후 해마다 이어졌고, 국내 최장수 자선 콘서트로 불리게 된다.

♪가족1997실황 이승환 · 2025 HEAVEN 콘서트

타이틀곡 「애원」이 뮤직비디오 소동으로 멈춘 자리를 이 곡이 채웠다. 합창에 팬 549명이 참여해 음반 속지에 이름을 남겼다.

  • 삶의 단계를 다룬 컨셉 앨범 「Cycle」 안에서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관계를 다룬 곡이다. 고마움과 미안함이 섞인 고백의 정서가 중심을 이룬다.
  • 후반부에 겹쳐지는 많은 사람의 목소리(합창)는 실제 팬 549명의 노래다. 가수와 듣는 이의 관계를 소리로 옮긴 장면이다.
  • 미국에서 상당 부분을 작업한 음반답게 악기 소리가 맑고 공간감이 넓다. 1990년대 후반 고예산 CD 녹음의 질감을 들어 볼 수 있다.
  • 방송 활동 없이 60만 장 넘게 팔린 음반에서 가장 사랑받은 곡이다. 이후 가족을 주제로 한 행사와 무대에서 자주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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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라이브의 황제 · 2003–2013

(결혼) 2003년 배우 채림과 결혼식을 올렸고, 2006년 두 사람이 갈라섰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사적인 사정은 이 정도로만 공개되어 있다. (행복) 2004년 10월 정규 8집 「Karma」를 냈다. 그는 훗날 팬들이 8집을 아쉬운 음반으로 꼽는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행복하던 시기에 만든 8집은 약하다는 평을 들었고, 오히려 그 뒤에 나온 슬픈 음반들이 걸작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개인의 삶과 음악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지점을 그는 담담하게 인정했다. (환타스틱) 2006년 정규 9집 「Hwantastic」의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는 그의 2000년대를 대표하는 발라드가 되었다. 그는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이 곡의 실마리를 얻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음원 다운로드가 CD를 빠르게 밀어내던 시기였지만 그는 여전히 앨범 단위로 공을 들였다. (협업) 2010년 5월의 정규 10집 「Dreamizer」는 권순관이 작곡한 「완벽한 추억」을 타이틀곡으로 내세웠다. 「롹스타되기」에는 윤도현과 노브레인의 이성우, 피아의 옥요한이 함께했다. 히든 트랙에는 유희열이 참여했다. 이 음반은 그해 가온 앨범 주간 차트 1위에 올랐다. 데뷔 20년을 넘긴 가수가 록 음악계의 후배들을 한 곡에 불러 모은 모습은 그가 놓인 위치를 보여 준다. (공연) 이 시기 그는 라이브의 황제, 공연의 신으로 불렸다. 그는 국내 처음으로 전국 투어에 이름을 붙여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었고, 단독 공연 1천 회를 넘겼다. 국내 단독 공연 최장 시간 기록 1위부터 7위까지가 모두 그의 공연이다. 방송을 멀리했던 데뷔 시절의 선택이 결국 그를 무대 위의 가수로 만들었다.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2006무대 이승환 · 2013 KBS 콘서트 7080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실마리를 얻었다고 그가 밝힌 것으로 전해지는 곡이다. 2000년대 그의 대표 발라드가 되었다.

  • 사랑이 끝났는데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묻고 또 묻는 화법이다. 원망보다 당혹스러움에 가까운 정서가 곡을 이끈다.
  • 데뷔 시절의 맑은 미성보다 한층 굵고 거칠어진 목소리를 들어 볼 것. 마흔을 넘긴 가수의 음색 변화가 발라드에 무게를 더한다.
  • 피아노와 현악 중심의 편곡이 절제되어 있어 목소리가 앞에 선다. 후렴에서 감정이 크게 솟았다가 다시 가라앉는 굴곡이 뚜렷하다.
  • 음원 다운로드가 CD를 밀어내던 시기에 나온 곡이다. 정규 앨범 안에서 소리를 완성하는 그의 방식이 여전함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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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추락하여 날다 · 2014–2026

(대작) 2014년 그는 CD 두 장짜리 정규 11집 「Fall to Fly 前」을 냈다. 세계적인 연주자들이 참여해 소리의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평단은 사운드의 질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이런 공이 음원 차트 성적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고 보았다. 스트리밍과 단일 곡 중심으로 바뀐 시장에서 그는 정규 앨범을 일종의 자존심이라 불렀다. 2015년에는 미니 앨범 「3+3」을 냈다. (일상) 2019년 10월, 5년 만에 정규 12집 「Fall to Fly 後」를 냈다. 처음으로 모니터링을 거쳐 타이틀곡을 골랐고, 30~40대 청자들이 가장 많이 지지한 「나는 다 너야」가 그 자리에 올랐다. 그는 이 음반이 절박한 사랑이 아니라 작고 일상적인 행복을 다룬다고 설명했다. 미국 캐피톨 스튜디오 사람들이 자신을 케이팝 아티스트라 부르더라는 일화도 전했다. 한국 대중음악의 위상이 달라졌음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기록) 같은 해 공연 「라스트 빠데이: 괴물」에서 9시간 30분 동안 무대에 올라 자신의 최장 공연 기록을 새로 썼다. 그해 11월에는 데뷔 30주년 공연 「무적전설」을 열었다. 그는 믹 재거처럼 음악인의 수명을 늘리는 사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매니저도 프로듀서도 없이 홀로 시작한 30년을 돌아보며 한 말이었다. (신념) 그는 사회 문제에 대한 생각을 공개적으로 밝혀 온 가수이기도 하다. 2016년 대통령 퇴진 촛불 집회 무대에 섰고, 2024년 12월 비상계엄 사태 뒤에는 탄핵을 요구하는 집회를 지지하며 시민단체에 기부하고 무대에 올랐다. 12집에는 「Do The Right Thing」도 실렸다. 그 뒤의 세월은 정직하게 살고 싶었던 시간이었다고 덧붙였다. (현재) 2026년 현재 그는 드림팩토리 대표이자 현역 가수로 공연을 이어 가고 있다. 열여섯 번 거절당하고 스스로 만든 음반으로 출발한 가수는 거의 40년 가까이 같은 방식을 지켜 왔다.

♪나는 다 너야2019실황 이승환 · 라이브 온 언플러그드

데뷔 30주년 해에 낸 정규 12집의 타이틀곡이다. 그가 처음으로 청자 모니터링을 거쳐 골랐다.

  • 절박한 사랑보다 작고 일상적인 행복을 다루겠다는 12집의 방향을 대표하는 곡이다. 상대에게 자신의 전부를 건네는 다정한 화법이 중심을 이룬다.
  • 30~40대 모니터 요원들의 지지가 가장 높았던 곡이다. 오랜 팬층과 함께 나이 들어 온 가수의 현재를 보여 준다.
  • 그는 이 곡으로 20대에게도 닿고 싶다고 했다. 무겁던 대작 발라드 대신 가볍고 산뜻하게 들리도록 소리를 비웠다.
  • 스트리밍 시대에도 그는 이 곡을 앨범 열 곡 가운데 하나로 냈다. 단일 곡 중심 시장에서 정규 앨범을 고집해 온 태도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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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알려진 이야기

발라드 왕자로 불린 그의 데뷔곡을 쓴 사람은 조동익이었다. 조동익은 이병우와 함께 어떤날을 이끈 음악인으로, 포크와 재즈에 가까운 하나음악 계열을 대표한다. 오늘날 이승환을 이야기할 때 그 이름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1집의 타이틀곡과 수록곡 여러 곡이 그의 손에서 나왔고, 그는 5집 「Cycle」까지 편곡자로 함께했다. 가요 발라드와 언더그라운드 음악이 따로 놀던 시절에 둘이 처음부터 한 음반에서 만났다는 사실은 흔히 각주로만 남는다. 4집과 5집을 맡은 데이비드 캠벨은 할리우드 영화음악과 팝 음반에서 관현악 편곡으로 이름난 인물이다. 그가 한국 가수의 음반을 프로듀싱했다는 사실은 당시 국내에서 제작비를 아끼지 않은 사례로만 회자되었다. 1990년대 중반 한국 가요가 해외 스튜디오와 연주자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흐름에서 「Human」은 이른 축에 속하는 사례였다. 그의 1집은 한국에서 가수가 직접 제작한 두 번째 음반으로 꼽힌다. 그가 처음이 아니었다는 점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 기록이 덜 알려진 데에는 그 뒤로 가수 겸 제작자의 길을 30년 넘게 이어 간 사람이 드물었던 탓도 있다. 그래서 처음이라는 수식이 자연스럽게 그에게 붙었다. 「가족」의 합창에 참여한 팬 549명의 사진과 이름은 실제로 「Cycle」 음반 속지에 실렸다. 팬클럽이 조직적으로 순위 경쟁에 나서기 전, 가수가 팬을 음반의 공동 참여자로 기록한 초기 사례로 볼 수 있다.

용어 노트 📚🔎

타이틀곡

(말뜻) 영어 title은 제목이라는 뜻이다. 앨범의 얼굴이 되는 곡이라 붙은 이름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앨범에 실린 여러 곡 가운데 방송과 홍보에 앞세우는 대표곡이다. 뮤직비디오를 찍고 음악 방송에서 부르는 곡이 대개 타이틀곡이다. 반 대항 합창대회에 여러 곡을 연습해 두고 그중 가장 자신 있는 한 곡을 본선에 내보내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이승환의 「덩크 슛」이나 「가족」처럼 타이틀곡이 아닌 곡이 더 큰 인기를 얻는 일도 자주 있다.

프로듀서

(말뜻) 영어 produce는 만들어 내다라는 뜻이다. 음반을 만들어 내는 책임자라는 말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음반 전체의 방향을 정하고 작곡가와 편곡자, 연주자를 고르며 녹음 현장을 이끄는 사람이다. 영화의 감독과 비슷한 자리다. 모둠 과제에서 누가 자료를 찾고 누가 발표할지 정하고 마지막에 전체를 다듬는 조장을 떠올리면 된다. 이승환은 자기 음반의 프로듀서를 직접 맡았고, 4집과 5집에서는 미국의 데이비드 캠벨과 함께했다. (다른 데서는) 방송에서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제작을 책임지는 사람, 곧 PD를 가리킨다.

편곡

(말뜻) 편곡(編曲)은 곡을 엮는다(編)는 뜻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작곡가가 쓴 멜로디에 어떤 악기를 쓰고, 전주를 어떻게 시작하며, 어디서 소리를 키울지를 정하는 일이다. 같은 멜로디라도 편곡에 따라 조용한 발라드가 되기도 하고 신나는 록이 되기도 한다. 똑같은 라면에 무엇을 넣고 어떻게 끓이느냐에 따라 맛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과 같다. 「천일동안」의 웅장한 오케스트라 소리는 김동률의 멜로디 위에 데이비드 캠벨이 입힌 편곡이다.

록 발라드

(말뜻) 록(rock)과 발라드(ballad)를 합친 말이다. 발라드는 원래 이야기를 담은 노래를 뜻하는 말이었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느리고 서정적인 발라드에 전기기타와 힘 있는 드럼 같은 록 밴드의 소리를 더한 노래다. 조용히 시작했다가 후렴에서 기타와 함께 크게 터지는 경우가 많다. 잔잔하게 시작해 마지막에 모두 소리 높여 부르는 응원가를 떠올리면 비슷하다. 이승환은 3집부터 이 방향으로 옮겨 가며 발라드 가수와 록 음악인 사이의 자리를 만들었다.

기획사

(말뜻) 기획(企劃)은 일을 꾀하여 계획한다는 뜻이고, 사(社)는 회사라는 뜻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가수를 발굴하고 음반 제작과 홍보, 방송 출연, 공연을 관리하는 회사다. 가수는 기획사와 전속 계약을 맺고 수입을 나눈다. 운동부에서 감독과 코치가 선수의 훈련과 경기 출전을 정해 주는 것과 비슷하다. 이승환은 기획사 열여섯 곳에서 거절당한 뒤 스스로 1인 기획사를 차렸고, 이것이 지금의 드림팩토리로 이어졌다.

컨셉 앨범

(말뜻) 영어 concept는 개념, 주제라는 뜻이다. 하나의 주제로 묶인 앨범이라는 말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여러 곡을 따로따로 모은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이야기나 주제를 따라가도록 만든 앨범이다. 곡 순서에도 의미가 있어서 처음부터 차례대로 들어야 제맛이 난다. 한 단원을 여러 차시로 나눠 배우되 모두 같은 주제로 이어지는 수업과 비슷하다. 이승환의 5집 「Cycle」은 윤회라는 주제로 삶의 여러 단계를 그렸다.

피처링

(말뜻) 영어 featuring은 특별히 내세운다는 뜻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한 가수의 곡에 다른 가수나 연주자가 손님처럼 참여해 한 부분을 맡는 것이다. 곡 제목 뒤에 Feat.라고 적고 참여한 사람의 이름을 쓴다. 학교 축제 무대에 다른 반 친구가 잠깐 올라와 한 소절을 같이 불러 주는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이승환의 10집 「롹스타되기」에는 윤도현과 노브레인의 이성우, 피아의 옥요한이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다른 데서는) 영화나 잡지에서는 어떤 인물이나 내용을 특집으로 다룬다는 뜻으로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