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nic
두 사람은 주류 스타가 되기보다 소수의 지지를 받는 '문화 게릴라'로 남고 싶어 했다고 전해진다.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I. 데모 테이프 · 1994–1995
(결성) 1995년, 들국화 출신 최성원이 프로듀서를 맡은 신촌뮤직 음반으로 2인조 패닉이 데뷔했다. 멤버는 싱어송라이터 이적과 래퍼 김진표였다. 1974년생인 이적은 스물한 살, 1977년생인 김진표는 열여덟 살 고등학생이었다.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알던 사이였지만 음악 취향은 전혀 달랐다. 이적은 밴드 음악을 했고, 김진표는 PC통신에서 힙합 정보를 나누던 학생이었다. (집안) 이적은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 다니고 있었다. 2013년 한 방송에서 그는 삼형제가 모두 서울대에 진학했다고 밝혔다. 신문기자 출신인 어머니는 서른아홉 살에 여성학 공부를 다시 시작했는데, 공부는 엄마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아들들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김진표의 성장 환경은 공개된 자료가 많지 않다. (데모) 처음에 이적은 솔로 데뷔를 준비하고 있었다. 자작곡을 들려준 것을 계기로 김진표에게 함께하자고 권하면서 팀이 꾸려졌다. 데모 테이프는 최성원에게 닿기 전에 거절당한 적이 있다고 전해진다. 이 테이프를 알아본 사람이 최성원이었다. 그는 앨범 전체의 프로듀서를 맡아 상업적인 가요의 틀을 벗어난 음악을 만들자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비대칭) 솔로 앨범으로 준비하던 곡들이 그대로 1집 「Panic」이 됐다. 그래서 김진표는 녹음이 거의 끝날 무렵 합류했다. 이적이 대부분의 곡을 작사·작곡·편곡했고, 김진표가 중심이 된 곡은 랩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다시 처음부터 다시」 정도였다. 이 곡은 김진표가 훗날 래퍼 JP로 활동하는 출발점이 됐다. 이 비대칭은 2집에서 바로잡힌다.
II. 느린 걸음의 1위 · 1995–1996
(실패) 1집은 1995년 10월 1일에 나왔다. 같은 달 서태지와 아이들의 4집도 나왔다. 타이틀곡 「아무도」는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 두 사람은 훗날 데뷔곡이 원래 「아무도」였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서 「달팽이」로 바꿨다는 농담을 하곤 했다. (라디오) 반전은 라디오에서 시작됐다. 청취자들이 「달팽이」를 계속 신청하면서 입소문이 났고, 이 곡이 타이틀곡 자리를 대신했다. 발매 반년 뒤인 1996년 4월 KBS 「가요톱10」에서 1위에 올랐고, MBC와 SBS의 순위 프로그램에서도 정상을 차지했다. 9회 1위를 했다고 기록돼 있다. 「달팽이」는 쳇바퀴 같은 일상에 지친 사람이 먼 바다를 꿈꾸는 마음을 느린 동물에 빗댄 노래였다. 1990년대 중반 20대의 막막함과 꿈이 이 곡에 겹쳐졌다. (왼손잡이) 후속곡 「왼손잡이」도 크게 사랑받았다. 다수와 다르다는 이유로 손가락질받는 사람의 편에 서서 당당하게 말하는 노래였다. 이 곡은 흔히 차별받는 소수자를 위한 노래로 해석된다. 순위 프로그램 무대에 이런 주제를 올린 것은 당시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성적) 카세트테이프와 CD가 함께 팔리던 시절, 1집의 누적 판매량은 60만 장을 넘었다고 전해진다. 1996년 말에는 연말 음악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해 가을 H.O.T.가 데뷔했고, 가요계는 기획형 아이돌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었다. 패닉은 바로 그 길목에서 정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타이틀곡이 외면받은 뒤 라디오 신청곡으로 살아남아 반년 만에 1위에 오른 곡이다. 느린 걸음으로 성공한 이력이 노래 속 달팽이와 닮았다.
- 이적이 작사·작곡한 곡이다. 앨범 녹음에는 김진표의 목소리가 들어 있지 않고, 방송 무대에서는 김진표가 색소폰을 불었다. 그래서 무대 영상과 음반을 비교해 들으면 1집이 사실상 이적의 솔로 앨범으로 출발했다는 사정이 드러난다.
- 조용히 혼잣말하듯 시작한 노래가 후렴(코러스)에서 먼 바다를 향해 크게 열리는 구조다. 갑갑한 일상과 꿈이 노래 형식 안에서 대비를 이룬다.
- 1990년대 중반의 아날로그 밴드 녹음이 남아 있는 소리다. 기계로 만든 소리보다 사람이 직접 친 악기의 질감이 앞에 선다.
- 2015년 「나는 가수다3」에서 양파는 이 곡을 피아노로 잔잔하게 열었다가 2절부터 밴드 소리로 키워 갔다. 원곡의 정서가 큰 무대용 편곡에도 버틴다는 것을 보여 준 장면으로 회자된다.
「달팽이」에 이어 인기를 얻은 곡이다.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받는 사람의 편에 서서 당당하게 말한다.
- 노래하는 사람이 움츠러들지 않고 반항하듯 맞서는 화법이 곡의 핵심이다. 같은 앨범의 「달팽이」가 가진 서정과는 정반대 결이다.
- 이 곡은 다수와 다르다는 이유로 손가락질받는 사람들의 편에 선 노래다. 그래서 이 곡은 오늘날 차별받는 소수자를 상징하는 노래로 해석된다.
- 경쾌하게 내달리는 록 리듬 덕에 무거운 주제가 오히려 신나게 들린다. 순위 프로그램에서 흥을 돋우는 곡으로도 통했다.
- 2026년 재결합 공연에서도 「달팽이」와 함께 히트곡으로 불렸다. 세대를 넘어 객석이 함께 반응한 곡이다.
III. 밑바닥의 목소리 · 1996–1997
(칼날) 이적은 1집 활동 중에 쇼 비즈니스의 좋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 마음에 칼날이 서 있었다고 회고했다. 최성원은 2집을 두 사람 뜻대로 만들게 했다. 1996년 9월에 나온 2집 「밑」은 김진표가 처음부터 제작에 참여한 앨범이었고, 저음 랩이 앨범 전체의 한 축을 이뤘다. (비판) 「밑」은 사회 전체를 겨눈 앨범이었다. 김진표가 가사를 쓴 「벌레」는 학생을 억누르는 교사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홍보곡 「UFO」를 비롯한 여러 곡이 입시 교육과 사회의 위선을 다뤘다. 소리도 당시 히트 가요의 문법을 벗어났다. 거친 록과 힙합, 기괴하게 들리는 실험이 섞여 있었다. 당시 한 언론은 거친 숨소리와 툭하면 나오는 욕설을 제목으로 뽑았다. (심의) 대가는 방송에서 치렀다. 수록곡 대부분이 전파를 타지 못했다. 「벌레」와 「Mama」는 가사 일부를 지운 판이 따로 만들어졌다. 같은 해 가을 헌법재판소가 공연윤리위원회의 음반 사전심의를 위헌으로 결정했지만, 방송사 심의라는 문은 여전히 좁았다. (게릴라) 상업적으로는 1집에 크게 못 미쳤다. 대신 이 앨범은 훗날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이름을 올렸다. 두 사람은 주류 스타보다 소수가 지지하는 문화 게릴라가 되고 싶어 했다고 전해진다. 이적은 오랜 뒤에 이 앨범을 두고 지금 생각하면 참 대견하다고 말했다.
방송의 문이 좁았던 2집 「밑」에서 대표로 알려진 곡이다. 교육 현실과 사회를 겨눈 2집의 날 선 태도를 들을 수 있다.
- 김진표가 앨범 제작에 처음부터 참여하면서 이적의 노래와 김진표의 낮은 랩이 주고받는 구성이 뚜렷해졌다. 1집과 달리 패닉이 진짜 2인조로 들리는 곡이다.
- 1집의 정돈된 포크·록 사운드보다 훨씬 거칠고 낯선 소리를 쓴다. 듣는 사람을 편하게 두지 않으려는 의도처럼 들린다.
- 당시 히트 가요의 문법, 곧 쉬운 후렴을 반복하는 공식을 비껴간다. 노래가 말하려는 비판이 형식에도 그대로 스며 있다.
- 2집은 판매에서는 1집에 못 미쳤지만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올랐다. 평가가 시간이 지나서야 따라온 앨범의 대표곡이다.
IV. 서랍 속의 바다 · 1997–2004
(우회) 2집 이후 이적은 패닉 바깥에서 실험을 이어 갔다. 1997년에는 동갑내기 싱어송라이터 김동률과 프로젝트 그룹 카니발로 앨범을 냈다. 1999년에는 정원영·한상원이 이끌던 6인조 밴드 긱스에 보컬로 합류해 재즈와 펑크(funk)를 넘나들었다. 김진표는 랩의 영역을 넓혀 가고 있었다. (내면) 1998년, 3집 「Sea Within」이 나왔다. 외환위기의 충격이 사회를 덮친 해였다. 그런데 이 앨범은 바깥을 향하던 칼끝을 안쪽으로 돌렸다. 이적이 직접 프로듀싱했고, 상처와 그리움, 어긋난 마음 같은 내면의 바다를 그렸다. 타이틀곡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와 후속곡 「숨은 그림찾기」가 사랑받았다. 2집의 파격은 줄었지만 대중성과 완성도는 오히려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동료) 크레디트에는 긱스의 이상민, 그리고 훗날 영화음악가로 이름을 알릴 정재일 등이 연주자로 올라 있다. 3집은 한 사람의 곡을 여러 음악가의 소리로 넓혀 간 앨범이었다. (휴지) 3집을 끝으로 두 사람은 언젠가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각자의 길을 갔다. 김진표는 1999년 하드록 밴드 노바소닉에 참여했고, 이후 JP라는 이름으로 솔로 래퍼 활동을 했다. 2000년 12월 소속사가 베스트 앨범 「Best of Panic」을 냈는데, 두 멤버와 상의 없이 만든 것이어서 두 사람은 유감을 표했다. 휴지기에도 두 사람은 이따금 함께 작업하거나 무대에 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팀은 끝나지 않고 잠시 멈춰 있었다.
칼끝을 안으로 돌린 3집의 타이틀곡이다. 외환위기의 해에 사회 대신 마음속 바다를 노래했다.
- 이적이 직접 프로듀싱했다. 2집의 공격성이 빠진 자리를 서정적인 선율과 풍성한 편곡이 채운다.
- 오래 접어 둔 기억을 꺼내 보는 듯한 회상의 화법이다. 1집 「달팽이」의 바다가 꿈이었다면, 이 곡의 바다는 지나간 시간 쪽에 가깝다.
- 이상민과 정재일 등 여러 연주자가 참여한 앨범답게 악기 소리가 겹겹이 쌓여 있다. 1990년대 말 한국 록·발라드 녹음의 공들인 질감을 들을 수 있다.
- 2026년 공연에서는 조각을 이어 붙인 돌고래 같은 연극적 무대 장치와 함께 불렸다. 「나는 가수다3」의 「달팽이」 편곡에도 이 곡의 선율이 녹아 있었다.
V. 로시난테를 타고 · 2005–2006
(재회) 두 사람은 3집 뒤 각자 활동하다가 나중에 다시 함께 작업하자고 약속해 두었다. 이듬해 두 사람은 패닉다운 노래를 다시 만들고 싶다는 데 뜻을 모았다. 약 1년 동안 음반사와 제작진을 스튜디오에 들이지 않고 둘이서만 작업했다. 그 사이 이적은 소설 「지문사냥꾼」을 펴냈고, KBS FM에서 DJ를 맡았다. (4집) 2005년 12월, 3집 이후 7년 만에 4집 「PANIC 04」가 나왔다. 타이틀곡 「로시난테」는 「돈키호테」의 주인공이 타는 늙은 말에서 착상한 곡이다. 이적이 기타로 처음 들려준 선율이 곡의 바탕이 됐고, 무대에는 마임 배우와 퍼포먼스 배우들이 함께했다. 무모해 보여도 꿈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의 이야기가 서른을 넘긴 두 사람의 목소리로 다시 쓰였다. 후속곡 「정류장」은 떠난 사람을 기다리는 쓸쓸한 마음을 담담하게 그린 발라드로, 앨범에서 가장 오래 사랑받은 곡이 됐다. (앨범) 이적은 음악이 액세서리가 돼 가는 것 같다며, 금방 소비되는 히트곡보다 되풀이해 들을 수 있는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앨범이라는 형식이 곧 사라질지도 모른다고도 했다. 실제로 MP3와 디지털 음원 판매가 CD 시장을 빠르게 밀어내던 무렵이었다. 김진표의 몫은 랩을 넘어 앨범 전체로 넓어졌고, 선배 가수 이승환은 두 사람이 성숙해져 돌아온 것 같다고 평했다. (마무리) 4집 활동은 2006년 4월 전국 투어로 마무리됐다. 그 뒤 두 사람은 다시 각자의 일로 돌아갔고, 「PANIC 04」는 오랫동안 패닉의 마지막 앨범으로 남았다.
7년 만의 재결합을 알린 4집 타이틀곡이다. 돈키호테의 늙은 말을 빌려 무모해도 앞으로 나아가는 마음을 그렸다.
- 이적이 직접 쓴 기타 선율이 곡을 이끈다. 전주부터 귀에 남는 짧은 반복 가락(훅)을 기타가 맡는다.
- 김진표의 역할이 랩 한 구간을 넘어 곡 전체의 결로 퍼져 있다. 재결합 당시 언론도 이 점을 짚었다.
- 1년 가까이 제작진을 스튜디오에 들이지 않고 두 사람이 만든 곡이다. 1990년대의 날것 대신 다듬어지고 성숙한 소리로 들린다.
- 뮤직비디오에는 마임 배우와 퍼포먼스 배우들이 나온다. 2026년 공연의 거대한 풍차 무대 장치도 이 곡의 돈키호테 이미지와 맞닿아 있다.
4집의 후속곡이다. 활동 기간은 짧았지만 훗날 오디션 프로그램을 거치며 패닉의 가장 오래 사랑받는 노래가 됐다.
- 감정을 터뜨리지 않고 담담하게 눌러 담는 이적의 보컬이 핵심이다. 떠난 사람을 기다리는 쓸쓸함이 절제된 음색에 실린다.
- 악기를 덜어 낸 소박한 편곡이어서 목소리와 노랫말의 정서가 앞으로 나온다.
- 2011년 「슈퍼스타K3」에서 버스커버스커가 이 곡을 불렀다. 그 무대를 계기로 원곡을 모르던 세대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VI. 다시 패닉 · 2007–2026
(재조명) 2010년 Mnet 「슈퍼스타K2」에서 허각이 이적의 솔로곡 「하늘을 달리다」를 부르면서 패닉의 노래들도 다시 주목받았다. 이듬해 「슈퍼스타K3」에서는 버스커버스커가 「정류장」을 불렀다. 2015년 MBC 「나는 가수다3」에서는 양파가 「달팽이」를 편곡해 불렀다. 편곡자 권태은은 이 무대에 「달팽이」와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 「로시난테」가 함께 녹아 있다고 설명했다. 오디션과 경연 프로그램이 옛 노래를 새 세대에게 건네는 통로가 된 시대였다. (각자) 이적은 솔로 가수이자 방송인으로 활동 폭을 넓혔다. 2013년 한 방송에서는 서울대 사회학과 8년 후배인 장기하와의 인연을 소개하기도 했다. 김진표는 2012년 무렵 프로 레이싱팀의 정식 드라이버로 활동했고, 10년 넘게 문구 유통 회사를 운영해 왔다. 이적은 패닉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귀환) 2026년 2월 이적이 공연을 예고했다. 4월 16일부터 19일까지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열린 「패닉 이즈 커밍」은 2006년 이후 20년 만의 단독 공연이었다. 나흘치 표가 1분이 안 돼 매진됐다. 무대에는 「달팽이」, 「왼손잡이」와 함께 한때 방송 전파를 타지 못한 「벌레」, 「MAMA」도 올랐다. 객석에는 40~50대와 20~30대가 함께 앉았다. (지금) 6월에는 4집 발매 20주년을 기념하는 리마스터 LP가 나왔다. 10월에는 12월 4일부터 6일까지 서울에서 다시 단독 공연을 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공식 해체를 한 적이 없는 패닉은 데뷔 31년째에 다시 무대에 서 있다.
덜 알려진 이야기
히트곡 「달팽이」의 음반에는 패닉의 절반인 김진표의 목소리가 들어 있지 않다. 1집은 원래 이적의 솔로 앨범으로 준비됐고, 김진표는 녹음이 거의 끝날 무렵 합류했다. 그래서 방송에서 이 곡을 부를 때 김진표는 노래 대신 색소폰을 불었다. 2인조의 대표곡이 사실상 한 사람의 녹음이라는 이 사정은, 「달팽이」가 크게 성공하면서 오히려 잘 드러나지 않게 됐다. 패닉의 데모 테이프는 최성원에게 닿기 전에 거절당한 적이 있다고 전해진다. 당시 데모를 돌려보낸 쪽이 훗날 라디오에서 「달팽이」를 듣고 아쉬워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거절당한 데모가 다른 문으로 들어가 성공하는 일은 드물지 않다. 다만 이 일화는 대부분 당사자들의 회고와 위키 자료로만 남아 있다. 2000년 12월에 나온 「Best of Panic」은 두 멤버와 상의 없이 소속사가 만든 앨범이었고, 두 사람은 유감을 밝혔다. CD 시장이 정점이던 시절에는 기획사가 활동을 멈춘 가수의 옛 녹음으로 편집 음반을 내는 일이 잦았다. 이 앨범은 그런 산업 관행이 창작자의 뜻과 어긋난 사례로 남아 있다. 3집 「Sea Within」의 연주자 명단에는 훗날 영화음악가로 이름을 알린 정재일이 들어 있다. 당시 그는 젊은 연주자였다. 1990년대 말 이적을 중심으로 한 긱스·패닉 인맥이 다음 세대 음악가들의 작업장이 됐다는 사실은 앨범 크레디트에서나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용어 노트 📚🔎
타이틀곡
(말뜻) 영어 title(제목)에서 온 말로, 앨범의 얼굴이 되는 곡이라는 뜻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앨범을 낼 때 방송과 홍보에 가장 먼저 내세우는 곡이다. 뮤직비디오를 찍고 순위 프로그램 무대에 올리는 곡이 대개 타이틀곡이다. 학급 문집을 만들 때 표지에 실을 그림을 하나 골라 맨 앞에 두는 것과 비슷하다. 패닉은 타이틀곡 「아무도」가 반응을 얻지 못했고, 뒤에 나온 「달팽이」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다른 데서는) 출판이나 영화에서는 타이틀이 그냥 작품의 제목을 뜻한다.
후속곡
(말뜻) 뒤(後)를 잇는(續) 곡이라는 뜻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타이틀곡으로 한동안 활동한 뒤, 같은 앨범에서 골라 이어서 홍보하는 곡이다. 첫 곡보다 후속곡이 더 크게 성공하는 일도 있다. 축구 경기에서 후반전에 교체로 들어간 선수가 결승골을 넣는 것과 비슷하다. 패닉 4집에서는 후속곡 「정류장」이 타이틀곡 「로시난테」만큼 오래 사랑받았다.
가요 순위 프로그램
(한국 대중음악에서) 방송사가 음반 판매, 방송 횟수, 시청자 투표 같은 기준으로 그 주의 인기곡 순위를 매겨 1위를 발표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다. 1990년대에는 KBS 「가요톱10」 같은 프로그램에서 1위를 하는 것이 인기의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반에서 매주 칭찬 스티커를 세어 가장 많이 받은 친구를 발표하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순위 프로그램의 기준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방송사마다 다르다. 「달팽이」는 세 방송사 순위 프로그램에서 모두 1위를 했다.
방송 부적격
(한국 대중음악에서) 방송사가 자체 심의를 거쳐 어떤 노래를 자기 방송에 내보내지 않기로 정하는 것이다. 가사에 욕설이나 거친 표현이 있거나, 특정 상표 이름이 나오거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이런 판정을 내린다. 학교 방송반이 점심시간에 틀 노래를 고를 때 학교 분위기에 맞지 않는 노래는 빼는 것과 비슷하다. 음반은 팔 수 있지만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는 들을 수 없게 되므로, 1990년대처럼 방송이 홍보의 거의 전부이던 시절에는 큰 타격이었다. 패닉 2집의 여러 곡이 이런 처지에 놓였다.
프로듀서
(말뜻) 영어 produce(만들어 내다)에서 온 말로, 작품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앨범 전체의 방향을 정하고 곡 선정, 편곡, 녹음, 연주자 섭외를 이끄는 사람이다. 직접 곡을 쓰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곡을 어떻게 다듬을지 결정하기도 한다. 모둠 과제에서 각자 맡은 부분을 모아 발표가 한 흐름이 되도록 정리하는 조장과 비슷하다. 패닉 1집은 들국화의 최성원이 프로듀서였고, 3집부터는 이적이 직접 그 역할을 맡았다. (다른 데서는) 방송에서는 프로그램 제작을 책임지는 PD를 가리키는 말로 더 흔히 쓴다.
싱어송라이터
(말뜻) 영어 singer(노래하는 사람)와 songwriter(노래를 쓰는 사람)를 합친 말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자기가 부를 노래를 직접 작사·작곡하는 가수다. 남이 써 준 곡을 부르는 가수와 구분할 때 쓴다. 요리 대회에서 남이 정한 메뉴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메뉴를 직접 짜고 요리까지 하는 사람과 비슷하다. 이적은 패닉의 노래 대부분을 직접 쓰고 불렀다.
리마스터
(말뜻) 다시(re) 마스터링한다는 뜻이다. 마스터링은 녹음을 마친 소리를 음반으로 내기 전에 음량과 음색을 마지막으로 다듬는 작업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예전에 발표한 녹음을 새 장비와 기술로 다시 다듬어 내는 것이다. 곡을 새로 녹음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녹음의 소리를 더 깨끗하고 고르게 만든다. 오래된 사진을 스캔해서 색과 밝기를 보정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진 속 장면은 그대로지만 더 선명해진다. 2026년 패닉 4집이 이렇게 LP로 다시 나왔다.
듀오
(말뜻) 이탈리아어 duo는 라틴어 duo(둘)에서 온 말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두 사람이 한 팀으로 활동하는 그룹이다. 두 사람이 비슷한 역할을 나누기도 하고, 패닉처럼 노래와 랩, 작곡과 작사를 서로 다르게 맡기도 한다. 탁구 복식에서 한 사람은 받아 넘기고 다른 사람은 공격하는 식으로 역할을 나누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클래식 음악에서는 두 악기를 위한 곡이나 두 사람의 연주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