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Gun-mo
피아노 앞에 앉은 국악과 출신 청년이 레게와 소울과 발라드를 한국어로 녹여, 1990년대 가장 많은 음반을 판 목소리가 되었다.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가족이선미
어머니로, 「미운 우리 새끼」에 함께 출연해 무대 밖 김건모의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 주었다.
- 후원박미경
서울예전 선배 가수로, 스티비 원더를 잘 부르는 후배라며 그를 김창환에게 소개해 데뷔의 문을 열어 주었다.
- 프로듀서김창환
1~3집을 만든 프로듀서로 「핑계」와 「잘못된 만남」을 함께 만들었고, 결별 뒤 2008년 다시 손잡았다.
- 프로듀서김형석
「첫인상」과 「아름다운 이별」, 2014년의 「멍」까지 김건모 발라드의 선율을 함께 만든 작곡가다.
- 경쟁신승훈
1990년대 발라드 시장을 함께 이끈 동시대 라이벌로, 국내 최고의 가창력으로 김건모를 꼽았다고 전해진다.
- 우정박정현
2011년 「나는 가수다」 첫 시즌을 함께했으며, 그 무대에서 그의 곡 「첫인상」을 다시 불렀다.
I. 피아노 앞의 소년 · 1968–1990
(출생) 1968년 1월, 대한민국 부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김성대와 어머니 이선미 사이에서 세 형제와 함께 자랐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카레이서를 꿈꿨으나 가족을 위해 접었다고 전해진다. (서울) 집안은 서울로 올라왔고, 그는 서울 신월초등학교와 화곡중학교, 화곡고등학교를 다녔다. 네 살에 피아노를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건반은 이후 그의 작곡과 무대에서 늘 중심에 있었다. (국악) 1986년 서울예술전문대학(오늘날 서울예술대학교) 국악과에 들어갔다. 서양 화성과 흑인 음악에 끌린 청년이 우리 전통음악의 장단과 시김새를 공부했다는 점은 훗날 꺾고 늘이는 그의 독특한 창법을 설명할 때 자주 언급된다. 학교에서는 스티비 원더의 노래를 잘 부르는 후배로 알려졌다고 한다. (해군) 1980년대 후반에는 해군 홍보단에서 수병으로 복무했다. 군 홍보단 무대는 위문 공연을 다니며 여러 장르를 소화해야 하는 곳이었고, 그는 여기서 관객 앞에 서는 법을 몸으로 익혔다. (시대) 이 무렵 한국 가요계는 라디오와 카세트테이프, 그리고 컬러TV의 주말 순위 프로그램이 판매를 좌우하던 시기였다. 조용필 이후 발라드와 댄스가 나뉘어 자라고 있었지만, 흑인 음악의 리듬을 한국어로 자연스럽게 부를 가수는 아직 드물었다. 그가 들어설 빈자리는 그런 모양이었다.
II. 보물을 찾다 · 1991–1993
(평균율) 1991년 무렵 그는 록 밴드 평균율의 키보디스트로 잠시 활동했다. 무대 한쪽에서 건반을 치던 그를 알아본 사람은 서울예전 선배이자 가수 박미경이었다. (만남) 박미경은 스티비 원더를 잘 부르는 후배가 있다며 그를 프로듀서 김창환에게 소개했다. 김창환은 훗날 방송에서 그때 보물을 찾은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김건모는 김창환에게서 반년이 넘는 혹독한 훈련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데뷔) 1992년 1집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로 데뷔했다. 같은 해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해 가요계 판도를 흔들었고, 김건모는 그와 다른 길, 곧 흑인 음악의 그루브를 한국어 발라드 감성에 녹이는 쪽에서 이름을 얻었다. 처음에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 목소리로만 알려졌는데, TV에 나오기 시작하자 음반 판매가 한동안 멈칫했다고 김창환은 털어놓았다. 이들은 오히려 방송 출연을 늘려 친근함으로 낯섦을 이기는 쪽을 택했다. (레게) 1993년 2집의 「핑계」는 한국 가요에 레게 리듬을 본격적으로 들여온 곡으로 꼽힌다. 실연을 겪은 사람이 떠나는 연인의 변명을 듣는 장면을, 무겁지 않게 엇박으로 튀는 리듬에 실었다. 이 곡은 1990년대 중반 레게 유행을 열었고, 아시아권에서도 불리며 한류 이전의 이른 사례로 거론된다. (김형석) 이에 앞서 1집에서 작곡가 김형석과 「첫인상」으로 처음 손을 잡았다. 김창환의 리듬과 김형석의 선율이라는 두 축이 이 시기 김건모 음악의 뼈대였다.
얼굴보다 목소리가 먼저 알려졌던 데뷔곡이다. 김창환이 찾던 목소리가 처음 대중에게 닿은 순간이었다.
- 비 오는 밤의 외로움을 말하는 발라드지만 리듬은 R&B(미국 흑인 음악에서 나온 리듬감 있는 대중음악)의 결을 띠고 있어, 당시 한국 발라드와 다르게 들린다.
- 음을 곧게 뻗지 않고 끝에서 살짝 꺾어 올리거나 흘리는 처리에서 스티비 원더를 좋아했던 그의 취향이 느껴진다.
- 신시사이저(전자 건반 악기)와 드럼머신(리듬을 자동으로 연주하는 기계) 중심의 1990년대 초 스튜디오 사운드가 그 시대의 질감을 그대로 담고 있다.
- 2023년 방송에서 31년 만에 공개된 원곡 데모와 비교해 들으면, 데뷔 전 곡이 어떻게 다듬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한국 가요에 레게를 본격적으로 들여온 곡이다. 이별의 아픔을 가벼운 엇박 위에 올려 놓아 1990년대 중반 레게 유행을 열었다.
- 기타가 박의 뒤쪽을 짧게 끊어 치는 반주(레게의 스캥크 주법)가 처음부터 곡 전체의 흔들림을 만든다.
- 가사는 떠나는 연인의 변명을 듣는 쓸쓸한 이야기인데 리듬은 경쾌해서, 슬픔과 흥이 엇갈리는 묘한 맛이 이 곡의 핵심이다.
- 그는 박자 위에서 말을 조금씩 밀고 당기며 부르는데, 국악과에서 익힌 장단 감각과 이어 보는 해석도 있다.
- 이 곡 이후 여러 가수가 레게풍 곡을 냈고, 아시아권에서도 불리며 한류 이전의 이른 사례로 거론된다.
III. 음반의 정점 · 1994–1995
(대상) 1994년부터 그는 연말 시상식의 주인공이 되었다. KBS 가요대상 대상을 1994년부터 1996년까지 3년 연속 받았고, 골든디스크 대상도 같은 기간 세 차례 받았다. 1994년에는 서울가요대상 대상도 안았다. (3집) 1995년 3집 「잘못된 만남」이 나왔다. 가장 친한 친구와 연인이 이어지는 것을 지켜보는 화자가, 억울함과 체념을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말과 빠른 댄스 비트에 실어 털어놓는 곡이다. 김창환이 작사·작곡했고, 김건모는 훗날 노래 속에서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하는 친구가 바로 김창환이라고 방송에서 밝혔다. (기록) 이 앨범의 판매량은 출처마다 다르다. 250만 장, 280만 장으로 적은 국내 보도가 있고, 330만 장 이상으로 보는 자료도 있다. 어느 쪽이든 한국 단일 음반 최다 판매로 한국 기네스에 올랐다는 점은 널리 기록되어 있다. 카세트테이프와 CD가 함께 팔리고, 가요톱텐 같은 순위 프로그램에서 5주 연속 1위를 해야 받는 골든컵이 인기의 상징이던 시대의 정점이었다. (이별) 같은 앨범의 첫 곡 「아름다운 이별」은 김형석과 만든 발라드로, 빠른 타이틀곡과 대조를 이루며 그가 댄스 가수만이 아님을 보여 주었다. 이 곡은 뒤에 여러 가수가 다시 부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별) 3집 활동을 마친 뒤 그는 데뷔를 이끈 김창환과 결별했다.
한국 단일 음반 최다 판매 기록을 세운 3집의 타이틀곡이다. 노래 속에서 위로하는 친구가 김창환 자신이라는 그의 회고가 곡에 또 하나의 이야기를 더한다.
- 빠른 댄스 비트 위로 가사가 쉴 새 없이 쏟아지는데, 한 음절도 뭉개지지 않는 발음과 호흡이 그의 가창력을 보여 주는 대목으로 꼽힌다.
- 친구에게 연인을 빼앗긴 화자가 억울함을 하소연하듯 털어놓는 화법이라, 노래라기보다 이야기를 듣는 느낌을 준다.
- 후렴에서 반복되는 짧은 가락(훅)이 귀에 박히도록 짜여 있어, 당시 노래방과 거리에서 이 부분을 따라 부르는 장면이 흔했다.
- 신시사이저 소리를 겹친 반주와 강한 드럼은 1990년대 중반 한국 댄스 가요의 전형적인 소리다.
빠른 타이틀곡과 같은 앨범의 첫 곡에 실린 김형석과의 발라드다. 김건모가 댄스 가수만이 아님을 보여 준 곡이다.
- 피아노 반주로 조용히 시작해 후렴으로 갈수록 현악과 함께 감정을 쌓아 올리는 정통 발라드 구성이다.
- 헤어짐을 원망하기보다 담담히 받아들이려 애쓰는 화자의 태도가 절제된 목소리에 담겨 있다.
- 고음에서 힘으로 지르기보다 목소리를 얇게 띄우는 처리에서 그의 맑은 음색이 잘 드러난다.
- 훗날 여러 가수가 다시 부른 것으로 알려져 있어, 원곡과 비교해 듣는 재미가 있다.
IV. 홀로서기 · 1996–2000
(4집) 1996년 4집 「Exchange kg. m4」는 김건모가 직접 프로듀싱한 첫 앨범이었다. 타이틀곡 「스피드」는 최준영이 작곡하고 이건우가 작사했으며, 솔리드의 정재윤도 이 앨범 작업에 참여했다. 정재윤은 미국에서 R&B와 힙합을 익힌 프로듀서였고, 그 감각이 김건모의 소울풍 목소리와 맞물렸다. (게다리) 「스피드」 무대에서 그는 다리를 안팎으로 흔드는 이른바 게다리춤을 췄다. 원로 코미디언 남철·남성남의 왔다리 갔다리 춤에서 착안한 것으로, 세련된 사운드에 익살을 섞는 그의 기질이 드러난 장면이었다. 앨범은 150만 장 안팎이 팔린 것으로 집계되었고, 가요톱10에서 4주 연속 1위에 올랐다. 수록곡 「미련」과 「빨간 우산」도 사랑받았다. (작곡) 「미련」은 그가 직접 쓴 곡이었다. 1997년 5집의 타이틀곡 「사랑이 떠나가네」도 자작곡이었다. 제작자의 그늘을 벗어난 그는 피아노 앞에서 스스로 곡을 짓는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면모를 키워 갔다. 5집 작업에는 작곡가 윤일상도 함께했다. (외환위기) 1997년 말 외환위기가 닥치며 음반 시장도 얼어붙었고, 1999년 6집 「Growing」이 나올 무렵에는 H.O.T.를 비롯한 아이돌 그룹과 기획사 중심 체제가 가요계의 중심으로 올라와 있었다. 1990년대 초반을 대표하던 솔로 가수들에게는 변화의 시간이었다. (꾸준함) 그는 1990년대 후반 이후에도 꾸준히 앨범을 냈고, 라이브 무대에서 노래하는 가수라는 정체성을 놓지 않았다.
김창환과 헤어진 뒤 직접 프로듀싱한 4집의 타이틀곡이다. 홀로서기가 실패가 아님을 증명한 곡이었다.
- 최준영이 작곡한 빠른 댄스 곡으로, 제목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속도감을 늦추지 않는다.
- 무대에서 다리를 안팎으로 흔드는 게다리춤이 리듬에 맞물려, 세련된 소리와 익살스러운 몸짓이 함께 기억되는 곡이 되었다.
- 높고 부드럽게 울리는 그의 목소리가 강한 비트 위에서도 묻히지 않고 떠오르는 점이 자주 언급된다.
- 2025년 복귀 공연에서도 다시 부른 곡이다. 30년 가까이 지나 같은 곡을 부르는 목소리의 변화를 비교해 볼 수 있다.
V. 발라드의 시간 · 2001–2015
(미안해요) 2001년 7집 「Another Days」의 타이틀곡 「미안해요」는 그를 발라드 가수로 다시 세웠다. 최준영과 공동 프로듀싱한 이 앨범으로 그는 그해 서울가요대상 대상과 엠넷 뮤직비디오 페스티벌(오늘날 MAMA)의 발라드 부문 상을 받았다. 같은 해 한국방문의해 명예홍보사절로도 활동했다. (8집) 2003년 8집 「Hestory」는 그해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기록되었다. 소리바다 같은 파일 공유와 MP3로 CD 시장이 빠르게 줄어들던 때여서, 음반으로 한 해 정상에 오른 것은 그 자체로 기록이었다. 2014년에는 김형석과 다시 만나 「멍」을 내놓았다. (서울의달) 2005년 10집의 「서울의 달」은 대도시에서 혼자 살아가는 사람의 쓸쓸함을 담담한 블루스풍 발라드로 그린 곡이다. 방송 무대와 노래방에서 오래 불리며 그의 후반기 대표곡이 되었다. (재회) 2007년 한국대중문화예술인복지회 가수 부문 회장을 맡았고, 2008년에는 10여 년 전 헤어진 김창환과 화해해 12·13집을 함께 만들었다. 데뷔를 이끈 두 사람이 다시 한 스튜디오에 섰다. (경연) 2011년 MBC 「나는 가수다」 첫 시즌에 출연했다. 김범수, 박정현, 윤도현, 이소라, 백지영, 정엽과 함께한 첫 출연진이었다. 첫 경연에서 최하위가 되면서 재도전 기회가 주어졌으나, 그는 결국 프로그램을 떠났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박정현은 그의 곡 「첫인상」을 불렀다. 그해 그는 데뷔 20년을 정리한 「자서전」 앨범을 냈고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아이돌 중심으로 바뀐 가요계에서 그를 발라드 가수로 다시 세운 7집 타이틀곡이다. 그해 시상식의 발라드 부문 상을 받았다.
- 누군가에게 미안함을 고백하는 화법의 노래로, 목소리를 낮게 깔고 시작해 점점 감정을 끌어올린다.
- 피아노와 현악이 중심인 반주는 20대의 댄스곡과 달리 30대 김건모의 성숙한 목소리를 앞에 세운다.
- 후렴의 긴 음에서 숨을 아끼며 끝까지 끌고 가는 처리가 듣는 사람을 붙잡는다.
- CD 판매가 무너지기 시작하던 시기에 나온 곡이라, 음반 시대의 마지막 대형 발라드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대도시에서 혼자 버티는 사람의 쓸쓸함을 그린 후반기 대표곡이다. 2025년 복귀 무대에서도 다시 불렀다.
- 블루스(미국 흑인 음악에서 나온 느리고 애수 어린 장르)의 느낌이 묻어나는 느린 템포가 밤의 도시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기보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화법이라, 젊은 날의 히트곡과는 다른 담담함이 있다.
- 목소리를 조금 거칠게 긁는 소울풍 창법이 곡의 고독한 정서와 잘 맞는다.
- 노래방과 경연 프로그램에서 자주 다시 불리며 그의 곡 가운데서도 오래 사랑받는 곡이 되었다.
VI. 기타를 들다 · 2016–2026
(50) 2016년 데뷔 25주년을 맞아 앨범 「50」을 냈다. 타이틀곡 「다 당신 덕분이라오」는 오랜 세월 곁을 지킨 사람들에게 건네는 감사를 담은 노래였다. 쉰을 앞둔 가수가 지난날을 돌아보는 시선이 앨범 제목에도 들어 있었다. (어머니) 같은 해부터 SBS 예능 「미운 우리 새끼」에 출연해 어머니 이선미와 함께 일상을 보여 주었다. 무대 위의 대스타가 아니라 어머니 앞에서는 여전히 철없는 아들인 모습이 새 세대 시청자에게 그를 다시 알렸다. 음반이 아니라 예능과 유튜브 클립으로 가수를 처음 만나는 시대였다. (공백) 2019년 말부터 그는 6년 가까이 무대를 떠나 있었다. 공백기 동안 하루 네다섯 시간씩 통기타를 붙들고 있었다고 그는 인터뷰에서 밝혔다. 평생 피아노 앞에서 노래하던 사람이 새 악기를 처음부터 배운 시간이었다. (복귀) 2025년 9월 부산 KBS홀에서 전국 투어 첫 공연을 열며 돌아왔다. 태어난 도시에서 「서울의 달」, 「핑계」, 「스피드」 등 27곡을 불렀고, 공연 초반에는 이번에는 쉼표가 아니라 마침표를 찍겠다고 말했다. (신곡) 2026년 7월에는 10년 만의 신곡 「어디쯤 가고 있을까」를 발표했다. 가수 전영이 1977년 발표한 1집 타이틀곡을 다시 부른 것으로, 그는 처음으로 피아노 대신 어쿠스틱 기타를 직접 연주했다. 소속사는 홀로 기타를 치며 수없이 불러 온 노래라고 소개했다. 2026년 10월 10일 대구에서 데뷔 35주년 전국 투어를 시작했고, 투어는 2027년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가수 전영이 1977년 발표한 곡을 다시 부른 10년 만의 신곡이다. 공백기 내내 기타를 치며 불렀다는 노래가 복귀의 첫 음원이 되었다.
- 데뷔 이후 처음으로 피아노 대신 직접 연주한 어쿠스틱 기타가 반주의 중심에 선다.
- 원곡의 서정적인 선율은 살리고 악기 수를 줄인 편곡이라, 목소리의 결이 가까이 들린다.
- 자신이 지금 삶의 어디쯤 와 있는지 묻는 정서가, 오랜 공백 뒤 돌아온 쉰여덟 가수의 처지와 겹쳐 들린다.
- 원곡을 만든 작곡가 이현섭·작사가 이경미 부부가 뜻밖의 선물 같다고 반긴 리메이크다.
덜 알려진 이야기
레게와 R&B로 이름을 얻은 가수가 대학에서 공부한 것은 국악이었다. 1986년 서울예술전문대학 국악과에 들어간 그의 이력은 화려한 히트곡에 가려 잘 거론되지 않지만, 박자 위에서 말을 밀고 당기는 그의 노래를 장단 감각과 이어 보는 시각도 있다. 데뷔곡에는 31년 동안 공개되지 않은 원래 모습이 있었다. 2023년 김창환이 출연한 방송에서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의 데뷔 전 원곡이 처음 공개되었다. 녹음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은 습작으로 여겨졌을 이 데모가 뒤늦게 나오면서, 데뷔곡이 어떻게 다듬어졌는지를 엿볼 수 있게 되었다. 데뷔 초 그는 목소리로만 알려진 가수였다. 김창환의 회고에 따르면 얼굴이 TV에 나오기 시작하자 음반 판매가 한동안 멈췄고, 두 사람은 숨기는 대신 방송 출연을 늘려 친근함으로 맞섰다. 훗날 예능에서 사랑받은 그의 넉살은 이 위기에서 시작된 전략이기도 했다. 「스피드」의 게다리춤은 원로 코미디언 남철·남성남의 왔다리 갔다리 춤에서 따온 것이다. 최신 댄스 사운드에 1970년대 코미디 무대의 몸짓을 얹은 셈으로, 그가 세대를 가로질러 웃음을 빌려 오는 데 능했음을 보여 준다. 「잘못된 만남」에서 화자를 위로하는 친구가 작곡가 김창환 자신이라는 이야기는 김건모가 방송에서 직접 밝힌 것이다. 결별 이전 두 사람의 가까운 관계가 노래 속 인물로 남아 있는 셈이다.
용어 노트 📚🔎
프로듀서
(말뜻) 영어 produce는 만들어 내다라는 뜻이고, 프로듀서는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앨범 한 장이 나오기까지 곡 고르기, 편곡, 녹음, 가수 훈련까지 전체를 책임지는 사람이다. 김창환은 김건모의 목소리를 발견해 훈련시키고 1~3집의 곡을 쓰고 만들었다. 학교 연극에서 대본을 고르고 배역을 정하고 연습을 이끄는 담임 선생님이 있다면, 배우는 가수이고 선생님은 프로듀서인 셈이다. (다른 데서는) 영화나 방송에서는 돈과 일정, 사람을 모아 작품을 성사시키는 제작자를 가리킨다.
레게
(한국 대중음악에서) 1960년대 카리브해의 섬나라 자메이카에서 생긴 음악으로, 기타나 건반이 박의 앞이 아니라 뒤쪽을 짧게 툭툭 끊어 치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몸이 위아래로 가볍게 흔들리는 느낌이 난다. 김건모의 「핑계」가 이 리듬을 한국 가요에 본격적으로 들여와 1990년대 중반 레게 유행을 일으켰다. 줄넘기를 할 때 줄이 바닥에 닿는 순간이 아니라 그 사이에 손뼉을 친다고 생각해 보면, 레게 기타가 치는 자리와 비슷하다.
밀리언셀러
(말뜻) 영어로 백만(million)과 파는 것(seller)을 합친 말로, 백만 장 넘게 팔린 음반을 뜻한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카세트테이프와 CD가 음악을 듣는 주된 방법이던 1990년대에는 백만 장을 넘기는 앨범이 여럿 나왔고, 그 자체가 최고 인기의 증표였다. 김건모의 3집은 250만~330만 장으로 집계되어 한국 단일 음반 최다 판매로 기록되었다. 우리 학교 전교생이 천 명이라면, 천 개 학교의 학생 모두가 한 장씩 산 것과 같은 숫자다. 스트리밍 시대인 지금은 음반 대신 재생 횟수로 인기를 잰다.
골든컵
(한국 대중음악에서) KBS 순위 프로그램 「가요톱10」에서 한 곡이 5주 연속 1위를 하면 받던 상이다. 1위를 다섯 번 내리 해야 해서 아무나 받을 수 없었고, 김건모는 1집부터 3집까지 이 상을 받으며 전성기를 증명했다. 게임에서 연승을 다섯 번 이어 가야 받는 특별 칭호가 있다면, 그런 것과 비슷한 무게였다.
리메이크
(말뜻) 영어 remake는 다시(re) 만들다(make)라는 뜻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이미 발표된 남의 곡이나 옛 곡을 새로 편곡해 다시 녹음해 내는 것이다. 원래 작곡가에게 허락을 받고, 가락은 살리되 악기나 분위기를 바꾸는 경우가 많다. 김건모의 2026년 신곡 「어디쯤 가고 있을까」는 가수 전영이 1977년 부른 곡을 기타 반주로 다시 만든 리메이크다. 할머니의 김치찌개 조리법을 그대로 따르면서 내 입맛에 맞게 재료를 조금 바꿔 끓이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영화에서는 예전 영화를 새 배우와 기술로 다시 찍는 것을 말한다.
경연 프로그램
(말뜻) 경연(競演)은 겨루며(競) 공연한다(演)는 뜻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가수들이 방송에서 노래로 겨루고 청중 평가단의 투표로 순위를 매기는 프로그램이다. 2011년 MBC 「나는 가수다」는 신인이 아니라 이미 이름난 가수들이 겨룬다는 점에서 큰 화제가 되었고, 김건모는 그 첫 시즌 출연진이었다. 반 대항 합창대회에서 이미 노래를 잘한다고 소문난 학생들끼리 순위를 다투는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