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ooni
혼혈이라는 이유로 받은 시선을 목소리 하나로 넘어서, 반세기 가까이 무대 한가운데에 선 가수.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가족김양배
친정과 연이 끊긴 채 혼혈 딸을 홀로 키운 어머니로, 인순이는 그를 두고 갈 수 없어 미국행을 거절했다(1932–2005).
- 후원한백희
백댄서였던 인순이의 노래 실력을 알아보고 희자매로 데뷔시킨 기획자로, 김완선의 이모로 알려져 있다.
- 프로듀서박진영
1996년 「또」로 침체기의 그를 젊은 청중 앞에 다시 세웠고, 2023년 골든걸스로 27년 만에 다시 손잡았다.
- 우정조PD
2004년 「친구여」에 인순이를 피처링으로 불러 힙합 세대와 그를 이어 주었다.
- 프로듀서이현승
17집 「인순이」 작업에 참여해 그를 생각하며 「아버지」를 쓴 작곡가다.
- 우정이은미
골든걸스에서 함께 무대에 선 후배 보컬리스트로, 두 사람은 2023년 같은 그룹으로 데뷔곡을 냈다.
I. 백의리의 아이 · 1957–1977
(출생) 1957년 4월, 대한민국 경기도 포천군 청산면 백의리(오늘날 연천군)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김인순이다. 아버지는 주한미군으로 복무하던 아프리카계 미국인 병사였고, 어머니 김양배는 한국인이었다. 아버지는 딸이 태어난 뒤 미국으로 돌아갔고, 인순이는 그의 뒷모습조차 기억하지 못한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말했다. (어머니) 어머니는 혼혈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친정과 연이 끊긴 채 홀로 딸을 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열두 살 무렵 아버지와 편지가 오가며 미국으로 오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혼자 남을 어머니를 두고 갈 수 없어 거절했다. 그 뒤 아버지와의 연락은 끊겼다. 어린 시절 그에게 아버지 노릇을 해 준 또 다른 미군 병사가 있었다는 사실은 훗날 본인이 직접 밝혔다. (경계) 미군 부대가 가까운 경기 북부에서 피부색이 다른 아이로 자라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는 한국과 미국 어느 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다는 혼란을 오래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백의초등학교와 청산중학교를 마쳤으나 가정 형편 때문에 고등학교에는 진학하지 못했고, 고졸 학력은 훗날 검정고시로 얻었다. (생계) 그에게 노래는 꿈이기 전에 먹고사는 일이었다. 1970년대 한국 대중음악은 미8군 무대에서 실력을 기른 연주자와 가수들이 방송으로 옮겨 오던 시기였고, 흑인 음악의 리듬과 발성은 그 통로를 따라 이미 국내 무대에 스며들어 있었다.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열아홉, 스무 살의 인순이는 그 무대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II. 희자매와 컬러 시대 · 1978–1986
(희자매) 가수의 길을 처음 열어 준 사람은 김완선의 이모로 알려진 기획자 한백희였다. 인순이는 그의 밑에서 백댄서로 일하다 노래 실력을 인정받았고, 1978년 3인조 여성 그룹 희자매의 멤버로 데뷔했다. 타이틀곡 「실버들」은 7주 연속 1위에 올랐다고 전해진다. TBC는 2년 뒤 언론 통폐합으로 사라졌으니, 그의 첫 성공은 한 방송사의 마지막 시절과 겹친다. (독립) 1980년 1집 「인연」으로 솔로가 되었고, 1981년 「떠나야 할 그 사람」으로 이름을 굳혀 갔다. 같은 해 12월 시작된 컬러텔레비전 방송은 가수를 듣는 사람에서 보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다. 큰 몸짓과 춤, 강렬한 무대 의상을 갖춘 그에게는 맞춤한 시대였다. (디스코) 1983년 「밤이면 밤마다」가 크게 히트하면서 인순이는 인기 가수 반열에 올랐다. 빠른 디스코 리듬 위에서 춤추며 노래하는 그의 무대는 당시로서는 드문 풍경이었다. (리듬터치) 그는 백댄서 팀 인순이와 리듬터치를 이끌었다. 이 팀을 거쳐 간 김완선은 훗날 한국 댄스 가수의 상징이 되었다. 1980년대 한국 댄스 음악의 계보 한쪽 끝에 인순이의 무대가 있었던 셈이다.
컬러텔레비전이 막 자리 잡던 시절, 춤추며 노래하는 혼혈 가수의 무대를 전국에 각인시킨 출세작이다.
- 빠르게 몰아치는 디스코 리듬(1970년대 클럽에서 유행한 네 박자 춤곡)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져, 발라드 중심이던 당시 가요 무대에서 몸이 먼저 반응하게 만든다.
- 관악기와 전기 기타가 짧은 반복 구절(훅)을 주고받는 아날로그 밴드 녹음으로, 1980년대 초 한국 댄스 가요의 소리를 그대로 담고 있다.
- 보컬은 꾸밈음보다 힘 있게 내지르는 쪽에 무게를 둔다. 흑인 음악의 발성과 트로트 시대의 대중성이 한데 섞인 것처럼 들린다.
- 이 곡은 지금도 그의 공연 후반부에서 객석을 일으켜 세우는 곡으로 쓰인다. 세대를 넘어 따라 부르는 장면이 자주 보도되었다.
III. 긴 밤무대 · 1987–1995
(침체) 1980년대 후반, 한백희와의 관계가 끝나면서 방송 출연이 눈에 띄게 줄었다. 이후 10년 가까이 그는 야간 업소 무대와 복음성가 공연을 중심으로 노래했다. 히트곡은 드물었지만 노래를 멈춘 적은 없었다. 이 시기의 경험은 훗날 그가 자신을 스타보다 일하는 가수로 소개하는 바탕이 되었다. (김형석) 1989년 발표한 「이별연습」은 당시 신인 작곡가였던 김형석의 곡이다.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김형석은 몇 해 뒤 그의 재기작을 편곡하는 자리로 다시 돌아온다. 1991년에는 「착한 여자」를 냈다. 음반 시장이 LP에서 카세트와 CD로 넘어가고, 신세대 댄스 음악이 순위 프로그램을 장악하던 무렵이었다. (가정) 1994년 그는 결혼했고, 이후 딸 하나를 두었다. 본인이 방송과 인터뷰에서 공개해 온 사실이다. (앙코르) 같은 해 KBS 「열린음악회」 출연이 전환점이 되었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오랜 슬럼프 끝에 선 그 무대에서 예상치 못한 앙코르 요청이 나왔고, 그는 반주 없이 민요 「창부타령」을 불렀다. 그 한 곡이 분위기를 뒤집었다고 그는 말한다. 이후 이 프로그램의 단골 출연자가 되면서 가창력만큼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가수로 자리 잡았고, 1995년 한국방송대상 가수상을 받았다. (무게) 다만 공개홀 클래식풍 무대의 반복은 30대의 그에게 무거운 이미지를 씌웠다는 평가도 있다. 젊은 청중과 다시 만날 노래가 필요했다.
IV. 또, 다시 · 1996–2006
(박진영) 생방송 현장에서 만난 박진영은 그에게 트로트풍이 아니라 젊은 층이 듣는 노래를 하라고 권했다. 한 달 뒤 박진영이 건넨 곡이 자신이 작사·작곡하고 김형석이 편곡한 「또」였다. 인순이는 녹음 때 제목의 한 음절만 수백 번 불렀다고 회고하면서도, 배운다는 마음으로 버텼다고 했다. 1996년 발표된 이 곡으로 그는 다시 순위 프로그램에 섰다. (인정) 1997년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고, 1999년에는 뉴욕 카네기홀 무대에 섰다. 한국 대중가수로서는 조용필, 패티김에 이은 기록이었다. 뮤지컬 「시카고」의 벨마 켈리 역을 맡아 무대의 폭을 넓히기도 했다. 2001년 앨범 「My Turn」을 냈다. (유학) 2002년 그는 재즈를 공부하러 미국으로 떠났고, 이듬해 재즈 앨범을 냈다. 데뷔 25년 차 가수가 학생으로 돌아간 셈이다. (친구여) 미국에서 공부하던 그에게 소방차 출신 정원관을 통해 조PD의 데모곡이 도착했다. 가사가 마음에 들었던 그는 2004년 조PD의 앨범 수록곡 「친구여」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힙합과 50세를 바라보는 디바의 만남은 그해 가장 화제가 된 협업 중 하나였고, 그를 모르던 10대에게 이름을 알렸다. (세대) 같은 해 앨범 「A to Z」를 냈고, 2004년과 2005년 연이어 KBS 가요대상 본상을 받았다. 2006년에는 리메이크곡 「열정」을 불렀다. MP3와 휴대전화 벨소리가 음반을 대신하던 시대에 그는 장르와 세대를 가로지르는 목소리로 다시 중심에 섰다.
긴 침체 끝에 박진영이 작사·작곡하고 김형석이 편곡해 건넨 곡으로, 인순이를 젊은 청중 앞에 다시 세운 재기작이다.
- 1990년대 중반 서울 댄스 가요의 전형인 드럼머신 비트와 신시사이저 위에, 흑인 음악식 리듬 앤드 블루스(R&B) 창법이 얹혔다.
- 제목인 한 음절이 곡의 중심 훅이다. 인순이는 녹음 때 이 한 음절만 수백 번 불렀다고 회고했다. 박진영 특유의 박자 단위 디렉팅이 어떤 것이었는지 짐작하게 하는 일화다.
- 열린음악회식 큰 성량을 일부러 눌러 두고 리듬에 말을 짧게 끊어 태우는 대목에서, 이전의 그와는 다른 가볍고 젊은 결이 들린다.
- 훗날 2023년 골든걸스에서 두 사람이 다시 만났을 때, 이 곡은 둘의 첫 협업으로 자주 소환되었다.
미국에서 재즈를 공부하던 그가 데모곡의 가사에 끌려 참여한 조PD의 곡으로, 10대에게 인순이라는 이름을 새로 알렸다.
- 곡의 주인은 조PD다. 래퍼가 벌스(이야기를 풀어 가는 절)를 맡고, 인순이가 후렴(코러스)을 맡아 곡의 감정을 끌어올리는 구조다.
- 건조하게 말을 이어 가는 랩과 넓은 음역의 소울 보컬이 맞붙는 대비가 이 곡의 핵심이다. 힙합과 성인 가요 청중이 한 곡 안에서 만난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 주제는 오래된 우정과 세월을 돌아보는 회고다. 50세를 앞둔 가수의 목소리가 그 정서에 설득력을 더한다.
- 2004년 Mnet 음악 시상식에서 힙합 뮤직비디오 부문을 수상했다. 2015년 조PD가 이 곡을 다시 녹음할 때는 손승연이 후렴을 맡았다.
V. 거위의 꿈 · 2007–2012
(거위) 「거위의 꿈」은 원래 이적과 김동률의 프로젝트 카니발이 1997년 발표한 곡이다. 당시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인순이가 KBS 「윤도현의 러브레터」 등 무대에서 부르고 싸이월드 배경음악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널리 퍼졌다. 2007년 정식 음원으로 발매되었고, 그해 11월 음악 방송에서 1위에 올랐다. 편견을 넘어온 그의 삶이 노래 위에 겹쳐 읽히면서, 리메이크곡이 그의 자서전처럼 받아들여졌다. (아버지) 2009년 그는 5년 만의 정규 17집 「인순이」를 냈다. 작곡가 이현승과 함께 만든 앨범으로, 타이틀곡은 「판타지아」였고 「딸에게」와 「아버지」가 함께 실렸다. 「아버지」는 이현승이 인순이를 생각하며 쓴 곡으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는 그의 사연이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2010년에는 라디오 방송 횟수 1위에 올랐다. 2009년에는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대통령상을 받았고, 상금 전액을 어린이 재단에 기부하기로 했다. (카네기) 2010년 2월에는 카네기홀 측의 제안으로 두 번째 뉴욕 공연을 열었다. 국내 가수로서는 처음 있는 일로 보도되었다. (나가수) 2011년 8월, 오래 출연을 고사하던 그는 MBC 「나는 가수다」에 합류했다. 첫 무대에서 그는 가장 부르기 싫었던 노래라고 털어놓은 「아버지」를 불러 1위를 했다. 같은 회차에는 바비킴, 장혜진, 김조한, 윤민수 등이 섰다. 경연 프로그램이라는 새 매체가 50대 중반의 가수를 다시 음원 차트 위로 끌어올렸다. 같은 해 「어퍼컷」을 내기도 했다.
카니발(이적·김동률)의 1997년 곡을 다시 불러, 편견을 넘어온 그의 삶을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다.
- 피아노와 현악이 조용히 여는 발라드다. 절이 거듭될수록 악기가 겹겹이 쌓이며 마지막 후렴으로 밀려 올라가는, 점층의 형식이 뼈대를 이룬다.
- 원곡의 담담한 남성 듀엣과 달리 인순이는 낮은 음역에서 말하듯 시작해 클라이맥스에서 소울풍의 긴 고음으로 터뜨린다. 같은 노래가 고백에서 선언으로 바뀌는 지점이다.
- 노래는 꿈을 비웃는 시선 앞에서도 날기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1인칭으로 말한다. 청중은 여기에 혼혈 가수로 살아온 그의 이력을 겹쳐 들었다.
- 무대와 싸이월드 배경음악으로 먼저 퍼진 뒤 정식 음원이 나왔다.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를 둔 그가 가장 부르기 싫었다는 노래로, 2011년 나는 가수다 첫 무대에서 1위를 했다.
- 작곡가 이현승이 인순이를 생각하며 쓴 곡이다. 피아노가 이끄는 절제된 편곡이라 목소리의 떨림과 숨이 그대로 드러난다.
- 곡은 아버지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을 뒤늦게 고백하는 화법이다. 그의 사연을 아는 청중에게는 노랫말이 이중으로 들린다.
- 후반부에서 감정을 크게 터뜨리기보다 끝까지 눌러 두는 창법은, 가창력으로 유명한 그가 오히려 덜 부르는 쪽을 택한 것처럼 들린다.
- 2011년 8월 나는 가수다 무대에서 청중 평가단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화제가 되었고, 2년 전 발표한 곡이 음원 차트를 거슬러 올랐다.
VI. 해밀 · 2013–2026
(해밀) 2013년 그는 강원도 홍천에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위한 대안학교 해밀학교를 세우고 이사장을 맡았다. 해밀은 비 갠 뒤 맑게 갠 하늘을 뜻하는 우리말이다. 혼혈 아이들이 자신처럼 차별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했다고 그는 밝혔다. 같은 해 앨범 「Umbrella」를 냈다. (도전) 60세를 앞두고도 그는 새로운 일을 멈추지 않았다. 2015년 보디빌딩 대회에 참가했고, 뮤지컬 「캣츠」에서는 그리자벨라 역을 맡았다. 2017년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봉송 주제가를 불렀다. (골든걸스) 2023년 KBS 「골든걸스」는 박진영이 인순이, 박미경, 신효범, 이은미를 묶어 걸그룹을 만드는 프로그램이었다. 「또」 이후 27년 만에 박진영과 다시 손잡은 셈이다. 네 사람은 그해 12월 데뷔곡 「One Last Time」을 발표했고, 일본 무대에도 섰다. 네 사람은 그해 KBS 연예대상에서 쇼·버라이어티 부문 신인상을 받았다. 인순이에게는 데뷔 40여 년 만에 받은 신인상이었다. (현재) 2025년에도 펄벅인터내셔널의 '영향력 있는 여성상'을 받는 등 그는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유튜브와 스트리밍의 시대에 그의 옛 무대 영상은 새 세대에게 다시 발견되고 있다. 스스로를 작곡가나 프로듀서가 아니라 노래하는 사람이라고 불러 온 그에게, 오래 서 있는 일 자체가 이력이 되었다.
박진영이 인순이·박미경·신효범·이은미를 묶은 골든걸스의 데뷔곡으로, 「또」 이후 27년 만의 재회였다.
- 네 명의 베테랑 보컬이 파트를 나누어 이어 부르는 구조다. 저마다 다른 음색, 곧 인순이의 소울과 이은미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차례로 드러나는 것이 듣는 재미다.
- 아이돌 그룹처럼 파트 분배와 안무를 갖추었다. 1990년대 리듬 앤드 블루스(R&B)의 질감을 지금의 프로덕션으로 되살린 것처럼 들린다.
- 인순이는 맏언니로서 고음 애드리브(즉흥으로 덧붙이는 가락)를 앞세우기보다 화음의 중심을 잡는 쪽에 가깝다.
- 발매 직후 멜론 핫100에 올랐다. 방송 화제성에 비해 음원 성적은 아쉬웠다는 평가도 함께 있었다.
덜 알려진 이야기
인순이의 재기는 흔히 「또」에서 시작된 것으로 이야기된다. 그러나 본인은 첫 번째 기적으로 1994년 「열린음악회」를 꼽는다. 오랜 슬럼프 끝에 선 무대에서 뜻밖의 앙코르가 나왔고, 그가 반주 없이 부른 노래는 팝도 소울도 아닌 경기 민요 「창부타령」이었다. 흑인 음악의 발성으로 기억되는 가수의 전환점이 한국 민요였다는 사실은, 뒤이은 댄스곡의 성공에 가려 잘 회자되지 않는다. 카네기홀 무대에 선 한국 대중가수의 계보는 조용필(1981), 패티김(1989), 인순이(1999·2010), 이선희(2011) 순으로 정리된다. 이 가운데 같은 무대에 두 번 선 사람은 이선희 이전까지 인순이뿐이었다. 2010년 공연은 카네기홀 측의 제안으로 성사됐다고 당시 보도되었다. 「거위의 꿈」의 정식 음원은 노래가 이미 유명해진 뒤에 나왔다. 그는 이 곡을 먼저 무대에서 불렀고, 음원은 2007년에야 나왔다. 원곡자 이적과 김동률의 카니발 음반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곡이, 10년 뒤 다른 가수의 목소리를 통해 널리 알려진 셈이다. 1980년대 그의 백댄서 팀 리듬터치는 한국 댄스 음악사의 작은 산실이었다. 김완선이 이 팀을 거쳤다. 1980년대 후반 댄스 가수의 상징이 된 김완선이 인순이의 무대 뒤에서 춤을 배운 것이다. 이 연결은 각자의 전기에 짧게 언급될 뿐, 하나의 계보로 정리되는 일은 드물다.
용어 노트 📚🔎
디스코
(말뜻) 음반(disc)을 틀어 주는 춤추는 곳이라는 프랑스어 디스코테크(discothèque)에서 나온 말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1970년대 미국 클럽에서 유행해 한국에 들어온 빠른 춤곡이다. 한 마디의 네 박마다 큰북이 쿵쿵 울리는 것이 특징이다. 1980년대 초 「밤이면 밤마다」 같은 곡이 이 리듬을 가요에 들여왔다. 체육 시간 줄넘기에서 박자에 맞춰 같은 간격으로 계속 뛰는 느낌을 떠올리면 된다. 디스코의 큰북이 바로 그 일정한 발 구르기다.
백댄서
(말뜻) 뒤(back)에서 춤추는 사람(dancer)이라는 뜻으로, 한국에서 만든 영어식 표현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가수 뒤에서 함께 춤을 추며 무대를 꾸미는 무용수다. 인순이는 데뷔 전 백댄서로 일했고, 스타가 된 뒤에는 리듬터치라는 자신의 백댄서 팀을 이끌었다. 학예회에서 주인공이 노래하는 동안 뒤에서 율동하는 친구들을 떠올리면 된다. 그 친구들 가운데 다음 해 주인공이 나오기도 하듯, 김완선도 그렇게 자랐다.
밤무대
(한국 대중음악에서) 나이트클럽, 호텔 라운지, 유흥업소처럼 밤에 문을 여는 곳에서 노래하는 일을 가리킨다. 텔레비전 출연이 줄어든 가수들이 생계를 이어 가거나 실력을 다지던 곳이다. 인순이는 1980년대 후반부터 10년 가까이 이 무대에서 노래했다. 학교 대표로 뽑히지 못한 운동선수가 동네 경기에서 꾸준히 뛰며 감각을 유지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게 버틴 사람이 다시 대표가 되기도 한다.
리메이크
(말뜻) 영어 remake는 다시(re) 만든다(make)는 뜻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이미 발표된 남의 노래나 자기 옛 노래를 새로 편곡해 다시 녹음하는 것이다. 원곡자의 허락을 받고 저작권료를 나눈다. 인순이의 「거위의 꿈」은 카니발의 1997년 곡을 리메이크한 것인데, 원곡보다 더 크게 히트했다. 요리로 치면 할머니의 김치찌개 조리법을 받아 자기 식으로 다시 끓이는 것이다. 재료는 같아도 맛은 끓이는 사람을 닮는다. (다른 데서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옛 작품을 새 배우와 감독으로 다시 만드는 것을 리메이크라고 한다.
피처링
(말뜻) 영어 featuring은 특별히 내세운다, 출연시킨다는 뜻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한 가수의 곡에 다른 가수가 손님으로 참여해 일부를 부르는 것이다. 곡의 주인은 원래 가수이고, 손님 가수는 제목 옆에 이름이 붙는다. 「친구여」는 조PD의 곡이고, 인순이는 피처링으로 후렴을 맡았다. 모둠 발표에서 다른 반 친구를 초대해 한 부분만 맡기는 것과 같다. 발표의 주인은 우리 모둠이지만, 그 친구 덕분에 발표가 더 빛난다.
디지털 싱글
(말뜻) 싱글(single)은 한 곡이라는 뜻으로, 원래 한두 곡만 담은 작은 음반을 가리켰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CD 같은 실물 음반 없이 인터넷 음원 사이트에만 한 곡이나 몇 곡을 올리는 발매 방식이다. 2000년대 중반 MP3와 음원 사이트가 퍼지면서 흔해졌다. 인순이의 「거위의 꿈」도 2007년 디지털 싱글로 나왔다. 종이 문집을 만들지 않고 학급 게시판에 글 한 편만 올리는 것과 비슷하다. 빨리 낼 수 있고, 읽고 싶은 사람은 바로 찾아 읽는다.
경연 프로그램
(말뜻) 경연(競演)은 겨루며(競) 공연한다(演)는 뜻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가수들이 매주 무대에 서고 청중이나 심사위원의 평가로 순위를 매기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다. 2011년 MBC 「나는 가수다」는 이미 유명한 가수들을 경쟁시켜 큰 화제가 되었다. 인순이는 여기서 「아버지」로 1위를 했다. 반 대항 합창 대회에서 매번 점수가 발표되는 것과 비슷하다. 순위가 나오는 만큼 긴장이 크고, 잘 부른 노래는 학교 밖에서도 소문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