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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s Montgomery

웨스 몽고메리 (1923–1968)

공장 교대를 마친 손이 피크 대신 엄지로 줄을 쓸었고, 그 둥근 소리가 재즈 기타의 말투를 바꾸었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미국 인디애나폴리스 출생몽크·버디 형제찰리 크리스천2. 엄지피크 없는 독학햄프턴 악단 순회1950년 귀향3. 교대공장과 클럽옥타브 3단 솔로캐넌볼의 추천4. 리버사이드「인크레더블」콜트레인과 협연「풀 하우스」5. 버브하프 노트 실황그래미 수상지미 스미스 듀오6. 말년「어 데이 인 더 라이프」상업화 논쟁45세 심장마비몽고메리1923–1968엄지와 옥타브로 재즈 기타의 소리를 바꾼 인디…
무대의 여정 🧭🗺️
N미국인디애나폴리스1923–1968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가족몽크 몽고메리

    첫 기타를 사 준 형으로, 전기 베이스의 선구자가 되어 동생과 여러 차례 함께 녹음했다.

  • 영향찰리 크리스천

    만난 적은 없지만 그의 녹음을 한 음씩 따라 익히며 기타를 배웠다.

  • 동료라이어널 햄프턴

    1948년부터 약 2년간 그의 악단에서 전국을 순회하며 큰 무대를 경험했다.

  • 후원캐넌볼 애덜리

    1959년 인디애나폴리스에서 그의 연주를 듣고 리버사이드에 알려 뉴욕 데뷔의 길을 열었다.

  • 후원오린 킵뉴스

    리버사이드의 프로듀서로 「인크레더블 재즈 기타」와 「풀 하우스」를 제작했다.

  • 후원크리드 테일러

    버브와 A&M에서 그를 오케스트라 편곡과 대중가요로 감싸 대중적 성공으로 이끌었다.

YouTube에서 2곡 이어 듣기 ↗

I. 인디애나폴리스의 형제들 · 1923–1943 (0–20세)

(출생) 1923년 3월, 미국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존 레슬리 몽고메리였고, 가운데 이름 레슬리에서 웨스라는 애칭이 나왔다. 부모가 일찍 갈라선 뒤 형제들이 한동안 아버지를 따라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서 지냈다고 전해지지만, 부모의 삶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형제) 위로 형 몽크(본명 윌리엄 하워드, 1921년생), 아래로 동생 버디(본명 찰스, 1930년생)가 있었다. 몽크는 훗날 전기 베이스 기타를 재즈 악단에서 처음 쓴 연주자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버디는 비브라폰과 피아노를 연주했다. 세 형제 모두 정규 음악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채 귀로 음악을 익혔다. (테너기타) 웨스가 열두 살 무렵, 몽크가 네 줄짜리 테너 기타를 사 주었다. 그는 이 악기를 오래 붙들지는 않았고, 여섯 줄 기타를 본격적으로 잡은 것은 열아홉 살 무렵이었다. (크리스천) 계기는 베니 굿맨 악단에서 전기 기타로 관악기처럼 긴 선율을 뽑아낸 찰리 크리스천의 녹음이었다. 「솔로 플라이트」를 듣고 곧장 전기 기타와 앰프를 샀다고 전해진다. 크리스천은 1942년 스물다섯에 세상을 떠났고, 웨스는 그가 남긴 음반을 스승 삼아 솔로를 한 음씩 귀로 따라 익혔다. 악보 없이 음반에서 배운 이 방식은 평생 그의 공부법이 되었다. (결혼) 1943년, 스무 살에 세린 밀러와 결혼했다. 부부는 일곱 자녀를 두었다. 악보 한 장 읽지 못하는 청년이 일찍 가장이 되었다는 사실은, 이후 그가 어디서 얼마나 연주할지를 정하는 가장 큰 조건이 되었다.

II. 엄지 · 1943–1950 (20–27세)

(엄지) 그는 피크 대신 오른손 엄지의 살로 줄을 쳤다. 가족과 이웃이 잠든 밤에 소리를 줄여 연습하다 생긴 습관이라는 이야기가 널리 전해지지만, 그 자신은 피크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도 회고했다. 어느 쪽이든 엄지 끝의 둥근 살은 쇳줄의 날카로움을 덜어 낸, 두텁고 부드러운 소리를 낳았다. (클럽) 크리스천의 솔로를 통째로 외운 덕에, 기타를 잡은 지 1년 남짓 만에 고향 클럽에서 그 솔로들을 연주하는 일자리를 얻었다고 전해진다. 흑인 상점과 클럽이 모여 있던 인디애나 애비뉴 일대가 그의 학교였다. 인종 분리가 엄연하던 도시에서 흑인 연주자가 설 수 있는 무대는 대개 그 거리 안에 있었다. (햄프턴) 1948년, 비브라폰 연주자이자 악단장 라이어널 햄프턴의 악단에 들어가 약 2년간 미국 전역을 순회했다. 악단은 크고 화려했지만 기타의 자리는 넓지 않았고, 이 시기 그의 솔로가 음반에 남은 것은 거의 없다. 대신 그는 매일 밤 큰 편성의 호흡과 청중을 상대하는 법을 몸으로 익혔다. 형 몽크도 몇 해 뒤 같은 악단에서 전기 베이스를 연주했다. (귀향) 1950년, 그는 악단을 떠나 인디애나폴리스로 돌아왔다. 순회 생활로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했다고 전해진다. 이후로도 그는 큰 무대의 기회보다 집 가까이 머무는 쪽을 거듭 택했고, 이 선택이 그를 거의 10년 동안 지역 연주자로 남게 했다.

III. 낮의 공장, 밤의 클럽 · 1950–1959 (27–36세)

(교대) 1950년대 그의 하루는 둘로 나뉘었다. 낮에는 라디오 부품 공장 등에서 일했고, 밤에는 클럽 무대에 올랐다. 아침 7시부터 오후까지 공장에서 일한 뒤, 밤 9시부터 새벽 2시까지 한 클럽에서, 그다음에는 새벽까지 문을 여는 다른 클럽에서 연주했다는 증언이 전한다. 일곱 아이를 먹이려면 어느 쪽도 놓을 수 없었다. (형제악단) 그사이 몽크와 버디는 서부에서 마스터사운즈라는 그룹으로 이름을 알렸다. 1957년 웨스는 형제들과 함께 서부 레이블 퍼시픽 재즈에서 몽고메리 형제의 이름으로 녹음했다. 이 음반들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엄지와 옥타브를 쓰는 그의 주법이 이미 자리 잡았음을 보여 준다. (옥타브) 옥타브 주법은 같은 음을 여덟 음 차이로 겹쳐 동시에 치는 방식이다. 손가락을 넓게 벌린 채 빠르게 움직여야 해서 까다롭다. 그는 홑음 선율로 시작해 옥타브로 굵기를 더하고, 마침내 화음 덩어리로 선율을 미는 연주(블록 코드)로 솔로를 끝맺는 3단 구성을 뼈대로 삼았다. 같은 손님 앞에서 밤새 길게 연주해야 했던 클럽 생활이 이렇게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구성을 길렀다고 보는 평자가 많다. (캐넌볼) 1959년, 인디애나폴리스에 들른 알토 색소폰 연주자 캐넌볼 애덜리가 그의 연주를 듣고 리버사이드 레코드의 프로듀서 오린 킵뉴스에게 알렸다. 킵뉴스는 곧 그와 계약했다. 서른여섯 살, 공장과 클럽을 오가던 지역 연주자가 뉴욕의 문턱을 넘는 순간이었다.

IV. 리버사이드 · 1959–1963 (36–40세)

(데뷔) 1959년 가을, 오르간 연주자 멜빈 라인, 드러머 폴 파커와 트리오 음반을 녹음했다. 텔로니어스 몽크의 「라운드 미드나이트」와 듀크 엘링턴의 「새틴 돌」을 담은 이 음반은, 고향 클럽에서 매일 밤 하던 오르간 트리오 편성을 그대로 스튜디오로 옮겨 온 것이었다. (인크레더블) 1960년 1월, 뉴욕에서 피아니스트 토미 플래너건, 베이시스트 퍼시 히스, 드러머 앨버트 히스와 「인크레더블 재즈 기타」를 녹음했다. 소니 롤린스의 「에어긴」도 이때 다루었다. 이 음반으로 그는 『다운비트』 평론가 투표의 신인상을 받으며 단숨에 주목받았다. 그러나 명성이 곧 넉넉한 형편을 뜻하지는 않았고, 그는 뉴욕에 눌러앉지 않은 채 고향과 서부를 오가며 형제들과도 함께 연주했다. (콜트레인) 1961년, 존 콜트레인의 그룹과 몇 차례 함께 무대에 섰다. 콜트레인이 합류를 제안했으나 그가 자기 그룹을 꾸리는 길을 택했다고 전해진다. 같은 해 비브라폰 연주자 밀트 잭슨과 「백스 미츠 웨스」를 녹음하는 등, 그는 평단보다 동료들 사이에서 먼저 인정받았다. (풀하우스) 1962년 6월, 캘리포니아 버클리의 커피하우스에서 테너 색소폰 연주자 조니 그리핀, 그리고 마일스 데이비스 밴드의 리듬 섹션이던 윈턴 켈리, 폴 체임버스, 지미 콥과 실황을 녹음했다. 3박자로 흔들리는 자작곡(재즈 왈츠)을 표제로 한 「풀 하우스」다. 곡의 형식을 여러 바퀴(코러스) 돌며 길게 뻗는 그의 즉흥이 가장 자유롭게 풀린 기록으로 꼽힌다. 1963년에는 현악 편곡을 곁들인 음반도 냈는데, 훗날의 방향이 이미 여기서 싹텄다.

♪인크레더블 재즈 기타 (The Incredible Jazz Guitar of Wes Montgomery)1960 (37세)실황 「Four on Six」 Wes Montgomery · 1965 유럽 TV

공장과 클럽을 오가며 십 년 넘게 다듬은 주법이 처음으로 뉴욕의 일류 리듬 섹션을 만나 온전히 기록된 음반이다.

  • 자작곡 「포 온 식스」는 거슈윈의 「서머타임」 코드 진행에서 나왔다고 알려져 있다. 단단한 단조 반복 악구 위에서 홑음, 옥타브(같은 음을 여덟 음 차이로 겹쳐 치기), 블록 코드(화음 덩어리로 선율 치기)로 쌓아 가는 솔로의 3단 구성을 들을 수 있다.
  • 소니 롤린스의 「에어긴」에서는 빠른 템포에서도 피크 없이 엄지 하나로 긴 선율을 끊김 없이 이어 가는 대목에 귀 기울여 보자.
  • 「웨스트 코스트 블루스」는 블루스를 3박자로 옮긴 곡(재즈 왈츠)이라, 넘실거리듯 흔들리는 박자감이 독특하다.
  • 「폴카 도츠 앤드 문빔스」 같은 발라드에서는 엄지가 만드는 둥글고 따뜻한 음색이 가장 잘 드러난다. 토미 플래너건의 피아노는 화음을 짧게 끊어 받쳐 주는 반주(컴핑)로 기타에 자리를 비워 준다.
  • 1960년 1월, 뉴욕에서 이틀에 걸쳐 녹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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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하우스 (Full House)1962 (39세)연주 Wes Montgomery Quartet

고향 클럽의 밤을 버클리의 작은 커피하우스로 옮겨 놓은 듯한 실황으로, 그가 무대에서 얼마나 길고 자유롭게 연주했는지를 보여 준다.

  • 표제곡 「풀 하우스」는 그의 자작곡으로 3박자(재즈 왈츠)다. 기타와 테너 색소폰이 번갈아 솔로를 잡는다.
  • 조니 그리핀의 테너 색소폰은 빠르고 거칠게 몰아치고, 웨스는 차분하게 쌓아 올린다. 두 사람의 대비가 이 음반의 긴장이다.
  • 「아이브 그로운 어커스텀드 투 허 페이스」에서는 반주 없이 기타 홀로 선율과 화음을 함께 다룬다.
  • 윈턴 켈리, 폴 체임버스, 지미 콥은 마일스 데이비스 밴드에서 손발을 맞춘 리듬 섹션이라, 박자의 뒷부분을 살짝 끌어 밀고 당기는 느낌(스윙)이 자연스럽고 탄력 있다. 객석의 소리가 섞인 실황의 공기도 함께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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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버브와 크리드 테일러 · 1964–1966 (41–43세)

(파산) 1963년 말 리버사이드의 공동 경영자 빌 그라워가 세상을 떠나고, 이듬해 회사가 무너졌다. 그는 1964년 버브 레코드로 옮겨 프로듀서 크리드 테일러와 일하게 되었다. 테일러는 재즈 연주자를 오케스트라 편곡과 대중가요 레퍼토리로 감싸 더 넓은 청중에게 내놓는 데 능했다. (두갈래) 버브 시절의 그는 두 갈래로 기록되었다. 한쪽은 빅밴드나 현악 위에서 대중가요 선율을 옥타브로 노래하는 짧은 곡들이었고, 다른 한쪽은 소편성으로 마음껏 즉흥한 음반이었다. 1965년 윈턴 켈리 트리오와 녹음한 「스모킨 앳 더 하프 노트」가 후자의 정점이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12마디 블루스 「노 블루스」에서 그는 수많은 코러스를 쌓아 올렸다. (유럽) 1965년 봄에는 유럽을 순회하며 파리와 런던 등지의 무대에 섰고, 여러 방송 녹화가 남았다. 음반에서는 편곡에 둘러싸여 있던 그가 무대에서는 여전히 긴 솔로를 펼치는 즉흥 연주자였음을 보여 주는 기록이다. (그래미) 편곡가 올리버 넬슨과 만든 「고잉 아웃 오브 마이 헤드」는 그래미상을 받았고, 1966년에는 오르간 연주자 지미 스미스와 「다이내믹 듀오」를 녹음했다. 고향 클럽에서 오르간과 맞춰 온 세월이 당대 최고의 오르간 연주자와의 대화로 이어진 셈이다. 판매량이 늘며 벌이는 눈에 띄게 나아졌지만, 상업화에 대한 평단의 비판도 이 무렵부터 커졌다.

♪스모킨 앳 더 하프 노트 (Smokin' at the Half Note)1965 (42세)

대중화의 길로 들어서던 바로 그해, 소편성 즉흥의 정점을 남겼다. 상업 음반과 무대의 그가 따로 있었다는 말을 가장 잘 증명하는 기록이다.

  • 마일스 데이비스의 「노 블루스」는 12마디 블루스다. 웨스의 솔로는 여러 코러스(곡의 형식을 한 바퀴 도는 단위)에 걸쳐 홑음에서 옥타브, 블록 코드로 차례로 쌓아 올라가며, 많은 기타리스트가 받아 적어 공부하는 솔로로 꼽힌다.
  • 윈턴 켈리의 피아노는 통통 튀는 반주로 솔로이스트를 부추기고, 폴 체임버스의 베이스와 지미 콥의 드럼은 고른 스윙으로 바닥을 깐다. 솔로가 달아오를수록 리듬 섹션도 함께 밀어붙이는 주고받음(인터플레이)을 들어 보자.
  • 발라드 「이프 유 쿠드 시 미 나우」에서는 빠른 곡과 달리 음 하나하나를 길게 머금는 프레이징이 돋보인다.
  • 앞면의 두 곡만 뉴욕 하프 노트 클럽 실황이고, 뒷면 세 곡은 같은 멤버로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다. 팻 메시니가 이 음반을 최고의 재즈 기타 음반으로 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잉 아웃 오브 마이 헤드 (Goin' Out of My Head)1966 (43세)

크리드 테일러와 올리버 넬슨이 짠 큰 편곡 속에서 그는 즉흥가보다 선율을 노래하는 사람이 되었고, 이 음반으로 그래미상을 받았다.

  • 원곡은 한 사람에게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하는 화자가 애타게 털어놓는 대중가요다. 웨스는 그 선율을 노래하듯 옥타브로 또박또박 짚는다.
  • 올리버 넬슨의 빅밴드 편곡에서 관악 섹션이 짧게 되받는 문구(리프)로 기타를 감싸는 짜임을 들어 보자.
  • 곡마다 길이가 짧고 즉흥은 몇 마디로 줄었다. 라디오 방송을 염두에 둔 구성으로, 이후 그의 음반 방향을 정한 작품이다.
♪다이내믹 듀오 (Jimmy & Wes: The Dynamic Duo)1966 (43세)

고향 클럽에서 오르간과 맞춰 온 세월이 당대 최고의 오르간 연주자 지미 스미스와의 대화로 이어졌다.

  • 「제임스 앤드 웨스」는 빅밴드 없이 작은 편성으로 블루스를 길게 늘인 곡이다. 두 사람이 번갈아 솔로를 이어 가며 서로의 문구를 받아친다.
  • 오르간은 낮은 음역을 두텁게 채우고 화음을 길게 끌 수 있는 악기라, 그 위에서 기타의 옥타브가 또렷하게 떠오른다.
  • 다른 곡들에서는 올리버 넬슨의 빅밴드가 큰 덩어리의 관악으로 밀어붙이고, 두 솔로이스트가 그 사이를 뚫고 나온다.

VI. 마지막 노래 · 1967–1968 (44–45세)

(A&M) 1967년, 크리드 테일러가 A&M 레코드 아래 새 제작 라인을 세우자 그도 함께 옮겼다. 편곡가 돈 세베스키와 만든 「어 데이 인 더 라이프」는 비틀스의 곡을 표제로 내세워 크게 팔렸고, 그해 가장 많이 팔린 재즈 음반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이어 「다운 히어 온 더 그라운드」와 「로드 송」이 나왔다. (논쟁) 오랜 재즈 팬과 평론가 일부는 그가 즉흥을 버렸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음반은 대중을 위한 것이고 무대에서는 여전히 재즈를 한다는 취지로 답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이 시기 클럽 공연은 음반보다 훨씬 길고 거친 즉흥으로 채워졌다고 전한다. (가장) 마흔을 넘겨 얻은 성공은 그에게 무엇보다 생활의 안정이었다. 일곱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순회를 줄이고 인디애나폴리스의 집에 머물 시간을 원했다고 전해진다. 수줍고 겸손한 사람이었다는 증언이 많고, 악보를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편곡 위에서 선율을 또박또박 노래하는 말년의 음반들은, 귀로 배운 사람이 대중가요의 선율을 얼마나 아꼈는지를 들려준다. (죽음) 1968년 6월 15일 아침, 그는 인디애나폴리스의 집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마흔다섯 살이었고, 마지막 음반 「로드 송」을 녹음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는 고향 땅에 묻혔고, 엄지와 옥타브는 조지 벤슨, 팻 메시니 같은 다음 세대 기타리스트들의 언어가 되었다.

♪어 데이 인 더 라이프 (A Day in the Life)1967 (44세)

생애 가장 많이 팔린 음반으로, 성공과 안정, 그리고 즉흥을 버렸다는 비판을 동시에 가져다준 말년의 상징이다.

  • 비틀스의 원곡은 일상의 무심한 풍경과 몽환이 엇갈리는 노래다. 웨스는 노래 선율을 옥타브로 짚으며 즉흥을 아주 짧게만 덧붙인다.
  • 돈 세베스키의 현악과 관악 편곡이 공간을 넓게 채운다. 크리드 테일러가 즐긴 매끈하고 울림이 큰 음향이 특징이다.
  • 「윈디」, 「엘리너 릭비」처럼 당대 팝 히트를 고른 선곡이 이 음반의 성격을 말해 준다.
  • 편곡 사이 짧은 틈에 나오는 몇 마디의 꾸밈에 귀 기울이면, 무대의 즉흥가가 여전히 그 안에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덜 알려진 이야기

「스모킨 앳 더 하프 노트」는 제목과 달리 전부가 클럽 실황이 아니다. 1965년 6월 뉴욕 하프 노트에서 녹음된 것은 앞면의 두 곡뿐이고, 뒷면의 「유닛 세븐」, 「포 온 식스」, 「왓츠 뉴」는 같은 해 9월 뉴저지의 루디 밴 겔더 스튜디오에서 같은 멤버로 녹음되었다. 원반 표기가 이를 분명히 밝히지 않아 오랫동안 통째로 실황으로 여겨졌고, 후대의 재발매와 디스코그래피 연구로 바로잡혔다. 대중을 겨냥한 현악 편곡으로의 전환은 흔히 크리드 테일러의 작품으로 기억되지만, 그 첫걸음은 리버사이드에서 나왔다. 1963년 오린 킵뉴스는 지미 존스의 현악 편곡을 곁들인 「퓨전!」을 먼저 제작했다. 리버사이드가 곧 무너지고 버브 시절의 성공이 워낙 컸던 탓에 이 음반은 그늘에 가려졌다. 캐넌볼 애덜리가 그를 발견했다는 이야기는 극적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그는 이미 1957년 서부의 퍼시픽 재즈에서 형제들과 녹음을 남겼다. 이 녹음들이 거의 팔리지 않아 묻힌 데다, 무명의 공장 노동자가 하룻밤에 발견되었다는 이야기가 더 매력적이었기에 발견담이 정설처럼 굳어졌다.

용어 노트 📚🔎

옥타브 주법

(말뜻) 옥타브는 라틴어 octavus(여덟째)에서 왔다. 도에서 시작해 한 음씩 올라가면 여덟 번째에 다시 높은 도가 나오는데, 이 두 음 사이의 거리가 옥타브다. (재즈에서) 기타로 같은 이름의 음 두 개를 옥타브 차이로 겹쳐 동시에 치는 연주법이다. 한 음만 칠 때보다 소리가 굵고 또렷해져서, 선율이 노래하듯 앞으로 나온다. 웨스 몽고메리는 이것을 빠른 즉흥에서도 자유롭게 써서 자신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남자와 여자가 같은 노래를 함께 부르면 높이는 달라도 같은 가락으로 들리는 것과 비슷하다 — 그 두 목소리를 기타 한 대가 동시에 내는 셈이다.

블록 코드

(재즈에서) 선율의 음 하나하나에 화음을 통째로 붙여, 여러 음을 덩어리(블록)처럼 한꺼번에 치며 선율을 이어 가는 연주법이다. 홑음보다 훨씬 두껍고 힘차게 들려서, 웨스 몽고메리는 솔로의 마지막 절정 단계에 이 방법을 썼다. 혼자 노래하다가 마지막 후렴에서 반 전체가 화음을 넣어 함께 부르는 순간을 떠올리면 된다. (다른 데서는) 블록은 일상에서 장난감 쌓기 조각이나 도시의 한 구획을 가리킨다.

코러스

(말뜻)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함께 노래하고 춤추던 무리를 코로스(choros)라 불렀고, 대중가요에서 여럿이 따라 부르는 주된 부분도 코러스라 부르게 되었다. (재즈에서) 곡의 형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바퀴 도는 것을 한 코러스라고 한다. 예를 들어 12마디 블루스라면 12마디가 한 코러스다. 솔로이스트는 같은 형식을 여러 바퀴 돌며 즉흥을 이어 가는데, 운동장 트랙을 몇 바퀴 도느냐처럼 솔로의 길이를 코러스 수로 센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는 흔히 합창이나 합창단을 뜻한다.

12마디 블루스

(말뜻) 블루(blue)에는 영어로 우울하다는 뜻이 있어, 슬픔과 한을 노래하던 흑인 민요가 블루스라는 이름을 얻었다. (재즈에서) 12마디를 한 단위로 정해진 순서의 코드가 되풀이되는 형식이다. 짧고 단순해서 처음 만난 연주자들도 곧바로 함께 연주할 수 있어, 재즈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틀 가운데 하나다. 줄넘기 노래처럼 박자와 순서가 정해져 있으니 누구든 중간에 뛰어들어 자기 동작을 보여 줄 수 있는 것과 같다.

재즈 왈츠

(재즈에서) 춤곡 왈츠처럼 한 마디를 쿵-짝-짝 세 박으로 세는 3박자에 재즈의 스윙과 즉흥을 얹은 음악이다. 재즈는 대개 네 박으로 세기 때문에, 3박자 곡은 둥글게 흔들리며 도는 독특한 느낌을 준다. 「풀 하우스」와 「웨스트 코스트 블루스」가 그렇다. 그네를 탈 때 앞으로 갔다 뒤로 돌아오는 흔들림을 셋으로 세는 느낌을 떠올리면 된다.

오르간 트리오

(말뜻) 트리오는 이탈리아어로 셋이 함께하는 무리라는 뜻이다. (재즈에서) 전자 오르간, 기타(또는 색소폰), 드럼 세 사람으로 이루어진 편성이다. 오르가니스트가 발 페달이나 왼손으로 베이스 선까지 맡기 때문에 베이스 연주자 없이도 소리가 꽉 찬다. 1950~60년대 미국 흑인 동네 클럽에서 크게 사랑받았고, 웨스 몽고메리도 고향에서 이 편성으로 연주했다. 세 명이 한 팀인 게임에서 한 사람이 공격과 수비를 함께 맡아 인원이 적어도 빈틈이 없는 것과 비슷하다.

리듬 섹션

(말뜻) 리듬은 그리스어 rhythmos(흐름, 규칙적인 움직임)에서 왔다. (재즈에서) 피아노, 베이스, 드럼처럼 박자와 화음의 바탕을 깔아 주는 악기들의 묶음을 말한다. 솔로이스트가 마음껏 즉흥을 펼치도록 길을 닦고, 솔로가 뜨거워지면 함께 밀어붙이며 대화를 주고받는다. 이어달리기에서 앞에 나서지는 않아도 트랙을 만들고 박자를 맞춰 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주자가 힘껏 달릴 수 있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