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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car Peterson

오스카 피터슨 (1925–2007)

결핵이 트럼펫을 빼앗은 자리에 건반이 들어섰고, 그는 평생 그 건반 위에서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캐나다 몬트리올 출생철도 포터의 아들다이지에게 사사2. 도약아트 테이텀 충격CBC 아마추어 우승노먼 그란츠의 발견3. 트리오레이 브라운허브 엘리스에드 식펜 합류4. 투쟁인종분리 투어자유의 찬가토론토 음악학교 좌절5. 파블로닐스헤닝 페데르센조 패스 듀오엘라와 함께한 음반6. 말년1993년 뇌졸중오른손 중심 연주2007년 미시소거 별세피터슨1925–2007결핵으로 트럼펫을 접고 피아노로 세계적 명성을…
무대의 여정 🧭🗺️
N캐나다몬트리올1925–1958토론토1958–1990년대미시소거1990년대–2007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가족다이지 피터슨 스위니

    누나이자 첫 피아노 스승으로 혹독하게 가르쳤다.

  • 스승폴 데마르키

    헝가리 출신 교사로 클래식 기초를 다져 주었다.

  • 영향아트 테이텀

    그의 레코드를 처음 듣고 충격받아 연습에 몰두하게 만든 존재였다.

  • 후원노먼 그란츠

    평생의 매니저로 인종차별에 맞서며 투어를 지켜냈다.

  • 동료레이 브라운

    거의 이십 년을 함께한 베이시스트이자 음악적 동반자였다.

  • 우정엘라 피츠제럴드

    오랜 무대 동료로 1976년 음반 「엘라 앤드 오스카」를 함께 남겼다.

YouTube에서 6곡 이어 듣기 ↗

I. 몬트리올의 피아노집 · 1925–1939 (0–14세)

(몬트리올) 1925년 8월,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대니얼 피터슨은 서인도제도 출신 이민자로 캐나다 태평양철도에서 짐꾼으로 일했고, 어머니 올리비아와 함께 다섯 남매를 길렀다. 흑인 노동자 계층이 모여 살던 리틀버건디 동네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철도 일을 하며 익힌 트럼펫 솜씨로 아이들에게 직접 악기를 가르쳤고, 음악이 가난을 벗어나는 길이라 믿었다. (결핵) 일곱 살 무렵 결핵에 걸려 거의 일 년을 병상에서 보냈다. 원래 트럼펫을 배우고 있었지만 폐가 약해진 뒤로는 관악기를 불 수 없게 됐고, 아버지는 대신 피아노 앞에 앉혔다. 이 전환은 선택이 아니라 병이 정해 준 길이었다. (다이지) 누나 다이지 피터슨이 첫 피아노 선생이었다. 다이지는 훗날 몬트리올에서 이름난 피아노 교사가 되어 많은 흑인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동생에게는 유독 엄격했다고 회고했다. 아버지도 연습을 거르면 크게 꾸짖었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몇 시간씩 건반 앞을 떠날 수 없었다. (데마르키) 열네 살 무렵부터는 헝가리 출신 클래식 피아니스트 폴 데마르키에게 따로 배웠다. 쇼팽과 리스트 같은 정통 레퍼토리를 손에 익히며 손가락의 정확성과 힘을 다졌는데, 이때 다진 고전 주법은 훗날 그의 연주를 특징짓는 화려한 기교의 바탕이 됐다.

II. 테이텀의 그림자 아래 · 1940–1949 (15–24세)

(대회) 1940년, 열네 살 나이로 캐나다방송공사(CBC) 전국 아마추어 경연에 나가 우승했다. 이 우승으로 지역 신문에 이름이 실리고 라디오 출연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학교를 그만두고 음악에 전념하기로 했다. 교사들은 만류했지만 아버지는 이미 생계로 삼을 만한 재능이라고 판단했다. (테이텀) 비슷한 시기 아버지가 들려준 아트 테이텀의 레코드를 듣고 충격을 받아 몇 주 동안 피아노 뚜껑을 닫아 버렸다고 훗날 회고했다. 자신이 평생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 경험은 그를 주저앉히는 대신, 평생 쉬지 않고 연습하는 습관을 만든 계기가 됐다. (조니홈스) 열일곱 살 무렵 밴드리더 조니 홈스의 오케스트라에 들어가 몬트리올과 캐나다 전역에 송출되는 라디오 생방송 무대에 섰다. 전국적으로 얼굴 없는 목소리로 먼저 알려진 셈이었다. 같은 시기 릴리안 프레이저와 결혼해 가정을 꾸렸고, 투어와 방송을 병행하며 어린 나이에 가장의 책임을 떠안았다. (차별) 캐나다는 미국보다 관대하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몬트리올에서도 흑인 음악가가 설 수 있는 무대와 숙박, 레스토랑은 분명히 제한돼 있었다. 리틀버건디 바깥의 상당수 클럽은 흑인 연주자를 받지 않았고, 이런 현실은 이후 미국 투어에서 맞닥뜨릴 더 노골적인 차별의 예고편이었다.

♪아이 갓 리듬 (I Got Rhythm)1945 (20세)

몬트리올에서 RCA 빅터 캐나다에 남긴 초기 녹음으로, 열아홉 살 피아니스트의 야심이 그대로 드러난다.

  • 경쾌한 템포 속에서 왼손이 낮은 음과 화음을 번갈아 짚는 주법(스트라이드 피아노)이 또렷이 들린다 — 아트 테이텀에게서 받은 영향이 짙게 남아 있다.
  • 오른손은 빠른 음표를 촘촘히 엮어 달려가는 즉흥연주를 들려주는데, 손가락이 건반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화려함을 이미 선보이고 있다.
  • 78회전 음반 시절의 거친 음질이 그대로 남아 있어 스튜디오보다 라디오 생방송에 더 가까운 현장감을 준다.
  • 조지 거슈윈이 쓴 32마디 노래 형식(AABA)을 그대로 따르면서도, 후렴을 반복할 때마다 장식음을 조금씩 바꿔 넣는다.

III. 택시 안에서 들려온 소리 · 1949–1952 (24–27세)

(그란츠) 1949년, 미국의 프로듀서 노먼 그란츠가 몬트리올에 들렀다가 택시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그의 연주를 듣고 수소문 끝에 클럽을 찾아왔다고 전해진다. 그란츠는 그 자리에서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릴 재즈 앳 더 필하모닉(JATP) 콘서트에 깜짝 출연을 제안했다. (카네기홀) 무대에 오른 그는 관객을 압도했고, 하룻밤 사이에 미국 재즈계에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미국음악인조합의 규정 때문에 곧바로 미국 클럽에서 정규로 연주할 수는 없었고, 캐나다와 미국을 오가며 JATP 순회공연에 합류하는 방식으로 조금씩 입지를 넓혀야 했다. (동반자) 그란츠는 이후 평생의 매니저이자 음반사 사장이 됐다. 그는 투어 계약서에 숙박과 식당에서 인종에 따른 거절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넣고, 거부하는 업소는 예약을 취소하는 식으로 맞섰다고 알려져 있다. 음악 바깥에서 벌어진 이런 싸움은 그가 무대 위에서 안정적으로 연주에 집중할 수 있었던 바탕이 됐다. (레이브라운) 이 무렵 JATP 무대에서 베이시스트 레이 브라운을 만났다. 둘은 즉시 음악적으로 통했고, 이후 거의 이십 년 가까이 가장 신뢰하는 파트너가 됐다.

♪텐덜리 (Tenderly)1950 (25세)무대 냇 킹 콜 · 오스카 피터슨 · 1957 TV쇼

카네기홀 데뷔 이후 처음 남긴 발라드 녹음으로, 평생 관객이 가장 많이 신청한 곡 가운데 하나가 됐다.

  • 도입부는 정해진 박자 없이 화음을 자유롭게 펼치며 시작한다(박자를 살짝 늘이고 당기는 연주, 루바토).
  • 오른손 멜로디 아래로 풍성한 화음을 겹겹이 쌓는 화음 배치(보이싱)가 두드러져, 화려한 화성 감각을 가장 선명하게 들을 수 있다.
  • 레이 브라운의 베이스와 단둘이 남긴 듀오 녹음이라, 피아노와 베이스가 주고받는 단출한 소리를 집중해서 들을 수 있다.
  • 이후 수십 년간 공연 때마다 거듭 신청받아, 그의 레퍼토리 중 가장 자주 다시 연주된 곡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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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기타, 베이스, 피아노 · 1953–1958 (28–33세)

(트리오) 1953년, 레이 브라운과 기타리스트 허브 엘리스를 더해 드럼 없는 트리오를 꾸렸다. 드럼 대신 기타가 리듬을 받치는 편성은 당시로서는 이례적이었는데, 세 사람이 서로의 소리에 바짝 귀를 기울여야 했기 때문에 대화하듯 주고받는 연주가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투어) 미국 남부를 순회할 때는 호텔이 숙박을 거부하고 식당이 출입을 막는 일이 흔했다. 밴드는 종종 차 안에서 밤을 보내거나 먼 길을 돌아가야 했다. 그는 훗날 그런 경험이 쌓인 분노와 피로가 연주 속도와 타건의 날카로움으로 묻어났다고 돌아봤다. (계약) 그란츠의 음반사 밑에서 꾸준히 녹음할 수 있었고 투어 수입도 안정됐다. 몬트리올 시절의 궁핍과는 분명히 다른 처지가 됐지만, 쉼 없는 연중 일정이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갉아먹었다. (평판)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화려한 기교를 두고 테이텀의 아류라거나 감정보다 기술이 앞선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는 이런 평가에 불편해하면서도 연습량과 완성도로 답하려 했다.

♪앳 더 스트랫퍼드 셰익스피어리언 페스티벌 (At the Stratford Shakespearean Festival)1956 (31세)실황 Oscar Peterson Trio · 로마 Teatro Sistina

드럼 없는 트리오가 캐나다 온타리오주 스트랫퍼드 무대에서 남긴 실황으로, 고향에서 거둔 드문 승리였다.

  • 드럼 없이 기타와 베이스, 피아노만으로 리듬을 만들어 내는 편성이라, 허브 엘리스의 기타가 때로 드럼처럼 박자를 쪼개 준다.
  • 피아노와 기타가 멜로디를 번갈아 주고받는 대화 같은 연주(연주자 사이의 즉각적인 주고받음, 인터플레이)가 트랙마다 이어진다.
  • 레이 브라운의 베이스는 코드 구성음을 한 음씩 짚어 걸어가듯 진행을 만드는 주법(워킹 베이스)으로 곡 전체를 든든히 받친다.
  • 축제 현장 실황이라 객석의 반응과 공기가 그대로 녹음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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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자유의 찬가 · 1959–1968 (34–43세)

(교체) 1958년 말 허브 엘리스가 트리오를 떠나면서 드러머 에드 식펜이 자리를 채웠다. 기타 대신 드럼이 들어오면서 트리오의 소리는 더 단단해졌고, 레이 브라운-에드 식펜과 함께한 이 편성이 그의 경력에서 가장 자주 정점으로 꼽힌다. (캐나디아나) 1964년에는 고국에 대한 애정을 담은 모음곡 「캐나디아나 스위트」를 녹음했다. 끊임없는 미국 투어로 정작 고향에 머물 시간이 적었던 그가, 음악으로나마 캐나다의 여러 지역을 그려 낸 작업이었다. (자유의찬가) 같은 시기 미국 민권운동이 한창이었다. 1962년 「자유의 찬가」를 작곡해 흑인들이 겪어 온 차별에 대한 자신의 분노와 바람을 담았다. 가사 없는 피아노곡이었지만 이후 가사가 붙어 민권운동가요로도 불리게 됐고, 그는 이 곡이 자신의 어떤 연주보다 많은 사람에게 가닿았다고 여겼다. (학교) 1960년에는 레이 브라운, 에드 식펜과 함께 토론토에 고급현대음악학교를 세워 재즈 교육에 뛰어들었다. 이상은 컸지만 순회공연 일정에 쫓겨 강사들이 학교를 지킬 수 없게 되면서 몇 년 만에 문을 닫았다.

♪나이트 트레인 (Night Train)1962 (37세)실황 Oscar Peterson Trio · 1964 덴마크

재즈와 블루스, 리듬 앤드 블루스 스탠더드를 짧은 곡 위주로 모은 트리오 음반이다.

  • 표제곡은 네 마디씩 세 단락으로 된 열두 마디 블루스 형식 위에서 느긋하게 스윙하며, 중간 템포가 기차가 덜컹이며 나아가는 느낌을 준다.
  • 에드 식펜의 드럼은 브러시로 심벌을 쓸어내듯 연주해 거친 타격감 대신 스며드는 듯한 스윙감을 만든다.
  • 피아노 솔로는 짧은 블루스 프레이즈를 여러 번 변형해 되풀이하며 서서히 긴장을 쌓아 올린다.
  • 앨범이 재즈와 블루스, 리듬 앤드 블루스 스탠더드 위주로 짜여 있어, 트리오의 블루스 감각을 한자리에서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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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투 프리덤 (Hymn to Freedom)1962 (37세)실황 Oscar Peterson Trio · 1964 Denmark

민권운동이 한창이던 때 쓴 가사 없는 피아노곡으로, 그는 이 곡이 가장 멀리 가닿았다고 여겼다.

  • 교회 찬송가를 떠올리게 하는 단순하고 느린 화성 진행 위에서 시작해, 가사 없는 피아노만으로도 간절한 기도 같은 분위기를 만든다.
  • 화려한 기교를 자제하고 꾸밈없는 화음을 느릿하게 짚어 나가는 연주는 그의 다른 녹음과 비교해 유독 절제돼 있다.
  • 후반부로 갈수록 화음이 조금씩 두꺼워지며 고조되는 구성이 함께 부르는 사람이 늘어나는 듯한 인상을 준다.
  • 이후 가사가 붙어 합창단이 부르는 버전으로도 퍼지면서 원곡과는 다른 생명력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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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페이버릿 인스트루먼트 (My Favorite Instrument)1968 (43세)연주 Oscar Peterson · Boston Pops 협연 (지휘 John Williams)

1968년 독일의 작은 스튜디오에서 홀로 남긴 솔로 피아노 음반이다.

  • 독일의 작은 레이블 스튜디오에서 홀로 녹음한 솔로 피아노 음반으로, 트리오 녹음에서는 듣기 힘든 여백과 호흡이 두드러진다.
  • 왼손 스트라이드 주법과 오른손의 빠른 즉흥연주가 번갈아 전면에 나서며, 자신만의 솔로 피아노 언어를 완성해 가는 과정을 들려준다.
  • 곡과 곡 사이 템포와 분위기를 크게 바꿔가며 다양한 스탠더드를 배치해, 혼자서도 트리오 못지않은 다채로움을 만들어 낸다.
  • 제작자와의 신뢰 속에 비교적 편안한 분위기에서 녹음됐다고 알려져 있으며, 깔끔한 녹음 상태도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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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파블로와 새 얼굴들 · 1969–1990 (44–65세)

(공백) 그란츠가 1960년 말 음반사 버브를 MGM에 넘긴 터라, 1960년대 후반에는 기댈 만한 그란츠의 음반사가 없었다. 한동안 음반 녹음이 뜸해졌고, 그는 유럽으로 눈을 돌려 독일의 작은 레이블을 통해 솔로 피아노 음반을 남기며 공백기를 메웠다. (파블로) 1973년 그란츠가 새 음반사 파블로를 세우면서 다시 꾸준히 녹음할 발판이 생겼다. 레이 브라운이 다른 활동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에는 덴마크 베이시스트 닐스헤닝 외르스테드 페데르센이, 기타 자리에는 조 패스가 새로 합류해 트리오와 듀오를 오갔다. (엘라) 오랜 동료 엘라 피츠제럴드와는 함께 선 무대가 수없이 많았다. 1976년 피아노와 목소리를 중심으로 꾸민 「엘라 앤드 오스카」는 화려한 기교를 거둬낸 자리에서 둘 사이의 오랜 신뢰를 들려준 음반이었다. (가정) 이 시기까지 그는 네 차례 결혼했고 슬하에 여러 자녀를 두었다. 끝없는 순회공연 일정은 스스로도 인정한 약점이었는데, 가정보다 연주를 앞세울 수밖에 없었던 삶이라고 돌아보곤 했다.

♪엘라 앤드 오스카 (Ella and Oscar)1976 (51세)

오랜 무대 동료 엘라 피츠제럴드와 피아노, 목소리를 중심으로 꾸민 친밀한 음반이다.

  • 드럼 없이 앞면은 피아노와 목소리 둘만, 뒷면 네 곡은 레이 브라운의 베이스까지 더한 단출한 편성이라, 두 사람이 서로의 숨소리까지 들릴 만큼 가까이에서 주고받는 느낌을 준다.
  • 엘라 피츠제럴드의 노래가 멜로디를 살짝 비껴가며 스윙감을 줄 때마다, 피아노가 그 틈을 메우듯 짧은 응답을 끼워 넣는다.
  • 반주보다는 대등한 대화에 가까운 피아노 파트여서, 노래를 얼마나 섬세하게 듣고 반응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 오랜 세월 함께 무대에 선 두 사람의 편안함이 녹음 전반에 흘러, 긴장보다 여유가 두드러진다.

VII. 왼손이 멈춘 뒤 · 1993–2007 (68–82세)

(뇌졸중) 1993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왼손의 움직임이 크게 둔해졌다. 평생 양손의 눈부신 기교로 평가받던 연주자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는 손상이었다. 같은 해 캐나다 최고의 음악상인 글렌 굴드상을 받았는데, 이 아이러니를 두고 복잡한 심경을 밝힌 바 있다. (재기) 몇 년의 재활 끝에 무대로 돌아왔다. 왼손은 화음을 짧게 짚는 역할에 머물고 멜로디는 오른손이 도맡는 식으로 주법을 바꿨다. 1996년 트럼페터 로이 하그로브, 색소포니스트 랄프 무어와 함께 녹음한 음반은 달라진 손으로도 자신만의 음악을 계속 만들어 갈 수 있음을 보여 준 기록으로 평가받는다. (영예) 캐나다 훈장, 프레미엄 임페리얼레상, 여덟 개가 넘는 명예박사 학위를 받으며 생전에 이미 캐나다를 대표하는 음악가로 공인받았다. 이런 인정을 반기면서도, 정작 더 듣고 싶은 것은 관객의 즉각적인 반응이라고 말하곤 했다. (별세) 2007년 12월 23일, 캐나다 온타리오주 미시소거 자택에서 신부전으로 세상을 떠났다. 여든두 살이었다. 장례식에는 그가 평생 몸담았던 캐나다와 미국 재즈계 인사들이 함께했다.

♪오스카 피터슨 미츠 로이 하그로브 앤드 랄프 무어 (Oscar Peterson Meets Roy Hargrove and Ralph Moore)1996 (71세)실황 Oscar Peterson Quartet · 1987 도쿄 (Joe Pass 참여)

뇌졸중에서 회복한 뒤의 스튜디오 녹음으로, 달라진 몸으로 새 세대와 나눈 대화였다.

  • 뇌졸중 이후의 스튜디오 녹음으로, 왼손은 짧고 단순한 화음으로 역할을 줄이고 오른손이 멜로디 대부분을 책임지는 달라진 균형이 들린다.
  • 트럼페터 로이 하그로브와 테너색소포니스트 랄프 무어라는 젊은 세대 연주자들과 세대를 넘나드는 대화를 나누듯 연주한다.
  • 화려한 속주보다 여백과 리듬의 정확함으로 설득하는 연주여서, 전성기 레코딩과는 다른 종류의 감동을 준다.
  • 달라진 몸 상태를 감추기보다 그대로 받아들여 새로운 표현을 찾아낸 기록이라는 점에서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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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알려진 이야기

듀크 엘링턴은 그를 '건반 위의 마하라자'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대편성 밴드를 이끌던 거장이 작은 트리오의 피아니스트에게 건넨 이 별명은 세대를 넘은 존중을 보여 주는 일화로 종종 인용되지만, 엘링턴의 수많은 어록 중 하나로 흩어져 있어 그의 전기 밖에서는 잘 언급되지 않는다. 1949년 카네기홀 무대는 종종 '예고 없이 끌려 나간 깜짝 데뷔'로 전해지지만, 그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1949년 여름 몬트리올 클럽에서 노먼 그란츠와 처음 이야기를 나눈 뒤 9월 카네기홀 무대까지 몇 달의 여유가 있었다고 밝혔다. 즉흥적인 발견담이 더 극적이어서 널리 퍼졌을 뿐, 본인의 기억은 그보다 차분했다. 1945년 무렵 몬트리올에서 RCA 빅터 캐나다에 남긴 초기 녹음들은 대중가요를 커버한 소품들이었지만, 캐나다에서 큰 인기를 끌며 그를 캐나다가 처음으로 자기 나라 사람이라 내세울 수 있는 재즈 스타로 만들었다. 1949년까지 이렇게 남긴 78회전 음반은 열여섯 장에 이른다. 뇌졸중으로 왼손이 자유롭지 못해진 뒤에도 구술과 받아쓰기를 거쳐 자서전 「재즈 오디세이」를 완성해 2002년에 펴냈다. 건반 위에서 손으로 하던 이야기를 말로 풀어내야 했던 이 작업은, 몸이 달라진 뒤에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정리하려 한 고집을 보여 준다.

용어 노트 📚🔎

스트라이드 피아노

(말뜻) 영어 스트라이드(stride)는 성큼성큼 내딛는 큰 걸음이라는 뜻이다. 왼손이 낮은 음과 화음 사이를 성큼성큼 오가는 모습에서 이름이 왔다. (재즈에서) 왼손이 박자의 강박에서 낮은 베이스 음 하나를, 여린박에서 그 위의 화음을 번갈아 짚어 혼자서도 베이스와 리듬을 동시에 만들어 내는 피아노 주법이다. 한 사람이 양손으로 드럼과 베이스 역할을 동시에 해내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데서는) 사업이나 정책에서 큰 진전을 이뤘다는 뜻으로 '스트라이드'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워킹 베이스

(말뜻) 영어 워킹(walking)은 걷는다는 뜻으로, 베이스가 한 걸음씩 걸어가듯 음을 짚어 나가는 모습에서 이름이 왔다. (재즈에서) 베이스가 코드의 구성음과 그 사이를 잇는 음을 한 박에 하나씩 매끄럽게 이어 연주해 화음 진행을 걸어가듯 만들어 내는 베이스 라인이다. 징검다리를 한 걸음씩 건너가는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

인터플레이

(말뜻) 영어 인터(inter, 사이)와 플레이(play, 연주)가 합쳐진 말로, 연주자들 사이에서 오가는 연주를 뜻한다. (재즈에서) 연주자들이 서로의 소리를 실시간으로 듣고 즉각 반응하며 멜로디와 리듬을 주고받는 것을 가리킨다. 친구와 즉흥으로 말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 가는 대화와 비슷하다. (다른데서는) 연극이나 스포츠에서도 선수나 배우들 사이의 호흡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보이싱

(재즈에서) 같은 화음이라도 어떤 음을 맨 위에 놓고 어떤 음을 가운데나 아래에 두는지에 따라 소리의 색깔이 달라지는데, 이렇게 화음을 이루는 음들을 어떻게 배열할지 정하는 것을 말한다. 합창에서 같은 화음도 소프라노가 맡는 음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데서는) 음성학에서 보이싱은 성대를 울려서 내는 유성음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AABA 형식

(재즈에서) 재즈와 대중가요에서 가장 흔히 쓰이는 32마디 노래 형식으로, 여덟 마디씩 네 토막으로 나뉘어 처음 멜로디(A)가 두 번 반복된 뒤 다른 멜로디(B, 브리지)가 한 번 나오고 다시 처음 멜로디(A)로 돌아와 끝난다. 짧은 글짓기에서 같은 후렴을 두 번 쓰고 중간에 새 문단을 넣은 뒤 다시 후렴으로 마무리하는 것과 비슷하다.

12마디 블루스

(재즈에서) 블루스 음악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화성 틀로, 네 마디씩 세 단락으로 이루어진 열두 마디 안에서 정해진 화음 순서가 반복된다. 운동 경기에서 정해진 크기의 코트 안에서 매번 다른 작전을 펼치듯, 연주자들은 같은 열두 마디 틀 안에서 매번 다른 즉흥연주를 쌓아 올린다.

루바토

(말뜻) 이탈리아어 루바토(rubato)는 '도둑맞은'이라는 뜻의 단어에서 왔다. 정해진 박자에서 시간을 살짝 훔쳐 와 자유롭게 늘이고 줄인다는 뜻이 그대로 이름이 됐다. (재즈에서) 일정한 박자 없이 연주자가 감정에 따라 음을 늘이거나 당겨서 자유롭게 흐름을 조절하는 연주 방식이다. 친구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때 중요한 대목에서 일부러 말을 천천히 하거나 잠깐 멈추는 것과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