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areads.musicJazz

Keith Jarrett

키스 재럿 (1945–)

아무것도 정해 두지 않은 채 무대에 올라, 침묵 속에서 첫 음이 찾아오기를 기다린 피아니스트.

한눈에 보기 🔭💭

1. 뿌리미국 앨런타운 출생일곱 살 독주회버클리 중퇴2. 수련블레이키 메신저스찰스 로이드 4중주마일스 밴드 건반3. 독주아이허와 ECM쾰른 콘서트두 개의 4중주4. 트리오피콕·디조넷스탠더즈 198330년의 대화5. 고전바흐 평균율구르지예프 성가해리슨 협주곡6. 고요멜로디 앳 나이트헤이든 듀오2017 카네기 홀재럿1945–즉흥 독주와 스탠더드 트리오로 재즈 피아노의 …
무대의 여정 🧭🗺️
N미국영국보스턴1963–1964뉴욕1964–1971옥스퍼드(뉴저지)1970년대 초–현재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동료아트 블레이키

    빌리지 뱅가드 잼 세션에서 그를 발견해 1965년 재즈 메신저스로 불러들였다.

  • 동료찰스 로이드

    1966년부터 함께한 4중주로 재럿을 넓은 청중에게 처음 알렸다.

  • 영향마일스 데이비스

    1970–71년 그의 밴드에서 전기 건반을 맡았고, 재럿은 평생 그에게 존경을 표했다.

  • 후원만프레드 아이허

    ECM의 설립자이자 프로듀서로 1971년부터 반세기 동안 그의 녹음을 만들었다.

  • 동료찰리 헤이든

    첫 리더 트리오와 미국 4중주를 거쳐 말년의 듀오 녹음까지 함께한 40년 지기였다.

  • 동료게리 피콕

    1983년부터 30년 넘게 스탠더드 트리오의 베이스를 맡았다.

YouTube에서 3곡 이어 듣기 ↗

I. 앨런타운의 신동 · 1945–1962 (0–17세)

(앨런타운) 1945년 5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앨런타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대니얼과 어머니 아이르마 사이에서 난 다섯 아들 가운데 맏이였다. 어머니 쪽은 슬로베니아계 혈통으로 전해진다. 집안에 직업 음악가는 없었지만, 아이의 재능을 일찍 알아보고 레슨을 붙여 준 것은 부모였다. 형제 가운데 동생 크리스 재럿도 훗날 피아니스트가 됐다. (절대음감) 세 살이 되기 전에 피아노 앞에 앉았고, 들은 음의 높이를 기준음 없이 알아맞히는 절대음감을 지니고 있었다. 일곱 살에 첫 공식 독주회를 열었는데, 고전 레퍼토리 사이에 자신이 지은 작은 곡들을 섞어 넣었다고 전해진다. 십대 내내 그는 엄격한 클래식 피아노 교육을 받았고, 그 훈련은 수십 년 뒤 바흐와 모차르트를 녹음할 때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재즈) 재즈에 이끌린 것은 십대 중반이었다. 악보에 적힌 음을 정확히 되살리는 클래식의 세계와, 그 자리에서 음악을 지어내는 재즈의 세계 사이의 긴장은 이 무렵 시작되어 평생 그의 음악을 따라다녔다.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 프랑스 파리에서 작곡 교육자 나디아 불랑제에게 배울 길이 있었으나 사양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유럽 고전 음악의 정통 경로 대신 미국 재즈의 현장을 택했고, 그 선택이 그를 보스턴으로 이끌었다.

II. 보스턴에서 뉴욕으로 · 1962–1969 (17–24세)

(버클리) 1963년 고등학교를 마친 뒤 보스턴의 버클리 음악원에 들어갔지만 1년 남짓 다니다 그만두었다. 강의실보다 클럽 무대에서 배우는 것이 많았고, 그는 보스턴의 작은 무대들에서 연주하며 실전 감각을 익혔다. (뉴욕) 1964년 무렵 뉴욕으로 옮겼다. 이름 없는 젊은 피아니스트는 빌리지 뱅가드의 월요일 잼 세션에 나가 기회를 엿보았고, 그곳에서 드러머 아트 블레이키의 눈에 들었다. 1965년 블레이키의 재즈 메신저스에 들어가 몇 달을 활동했다. 하드밥의 엄격한 학교에 머문 기간은 짧았지만, 뉴욕 무대에 이름을 알리기에는 충분했다. (로이드) 1966년 색소폰 연주자 찰스 로이드의 4중주단에 들어갔다. 베이스 세실 맥비, 드럼 잭 디조넷과 함께한 이 밴드는 그해 몬터레이 재즈 페스티벌 실황 「포레스트 플라워」로 큰 성공을 거뒀고, 샌프란시스코 필모어 같은 록 공연장에서 젊은 세대 청중 앞에 섰다. 1967년에는 소련 탈린 재즈 페스티벌 무대에도 올랐다. 재럿은 피아노 뚜껑 안의 현을 직접 뜯고 두드리는 연주로도 주목받았다. 이때 만난 디조넷과의 인연은 이후 반세기 가까이 이어진다. (첫 리더작) 같은 시기 베이시스트 찰리 헤이든, 드러머 폴 모션과 트리오를 이뤄 첫 리더 앨범 「라이프 비트윈 디 엑시트 사인스」(1967)를 녹음했다. 모션은 빌 에번스 트리오에서 피아노와 대화하듯 연주하던 드러머였고, 헤이든은 오넷 콜먼과 함께 프리 재즈의 문을 연 베이시스트였다. 에번스의 서정과 콜먼의 자유가 스물두 살 피아니스트의 트리오 안에서 만났다.

♪포레스트 플라워 (Forest Flower)1966 (21세)실황 Charles Lloyd · 2023 Monterey Jazz Festival

찰스 로이드 4중주의 몬터레이 재즈 페스티벌 실황으로, 스물한 살 재럿이 넓은 청중에게 처음 이름을 알린 녹음이다. 훗날 반세기를 함께할 디조넷과의 호흡도 여기서 시작된다.

  • 로이드의 곡은 「Sunrise」와 「Sunset」 두 부분으로 이어져, 밝게 튀는 리듬과 느리고 서정적인 대목이 교차한다.
  • 재럿의 솔로는 짧은 동기를 되풀이하며 점점 밀도를 높여 가는데, 디조넷이 심벌로 그 고조를 함께 끌어올리는 것처럼 들린다.
  • 세실 맥비의 베이스는 박을 단단히 짚으면서도 솔로이스트의 움직임에 맞춰 선을 바꾼다 — 리듬 섹션 셋이 서로를 듣고 반응하는 연주(인터플레이)의 좋은 예다.
  • 야외 페스티벌 실황이라 곡이 끝날 때마다 청중의 환호가 그대로 담겨 있고, 재즈가 록 세대 청중에게 다가가던 1960년대 후반의 공기가 함께 들린다.
YouTube에서 듣기 ↗

III. 마일스 데이비스의 건반 · 1970–1971 (25–26세)

(마일스) 1970년 봄, 마일스 데이비스의 밴드에 합류했다. 마일스는 이미 「비치스 브루」로 전기 악기와 록 리듬을 재즈에 끌어들인 뒤였다. 재럿은 전기 악기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마일스와 함께 연주할 기회였기에 펜더 로즈 전기 피아노와 전기 오르간을 받아들였다고 회고했다. (코리아) 합류 초기 몇 달 동안 밴드에는 건반 연주자가 둘이었다. 칙 코리아가 전기 피아노를, 재럿이 오르간을 맡은 편성으로 그해 6월 뉴욕 필모어 이스트, 8월 영국 와이트섬 페스티벌 무대에 섰다. 두 건반이 서로의 빈틈을 메우고 때로 부딪히는 소리는 「마일스 데이비스 앳 필모어」 등에 남아 있다. 코리아가 그해 가을 밴드를 떠난 뒤로는 재럿 혼자 두 건반을 맡았다. (셀러도어) 1970년 12월 워싱턴 D.C.의 클럽 셀러 도어 실황은 그 시기의 정점이었다. 디조넷의 드럼과 마이클 헨더슨의 펑크 베이스 위에서 재럿은 양손으로 서로 다른 건반을 치며 일그러지고 뒤엉킨 소리를 쏟아냈다. 이 녹음은 프로듀서 테오 머세로의 편집을 거쳐 「라이브-이블」로 발표됐다. (맹세) 1971년 말 밴드를 떠난 뒤 그는 전기 악기를 장난감이라 부르며 멀리했고, 이후 대체로 어쿠스틱 피아노만 연주했다. 마일스는 그가 평생 존경을 아끼지 않은 몇 안 되는 음악가였다. 전기 소음의 한가운데서 보낸 1년 반은 역설적으로 그를 어쿠스틱 피아노의 순수한 울림으로 되돌려 보냈다.

♪라이브-이블 (Live-Evil)1970 (25세)실황 Miles Davis · Keith Jarrett · 1971

전기 악기를 꺼리던 재럿이 마일스 밴드에서 두 건반을 동시에 맡아 가장 거칠게 연주한 시기의 기록이다. 이 경험 뒤 그는 어쿠스틱 피아노로 돌아가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

  • 재럿은 전기 피아노와 전기 오르간을 양손으로 동시에 연주하며, 일그러지고 뒤엉킨 소리로 밴드의 소용돌이를 만든다.
  • 마이클 헨더슨의 베이스가 짧은 음형을 끈질기게 되풀이하고(리프), 디조넷의 드럼이 그 위에서 록과 펑크에 가까운 그루브를 쌓는다.
  • 마일스는 트럼펫에 와와 페달(음색을 입 모양처럼 열고 닫는 장치)을 달아 말하듯 꺾이는 소리를 낸다.
  • 실황 대부분은 1970년 12월 워싱턴 D.C. 셀러 도어 녹음이며, 기타리스트 존 매클러플린은 마지막 날에만 합류했다.
  • 프로듀서 테오 머세로가 여러 날의 실황을 잘라 붙여 곡을 만들었기에, 무대의 흐름 그대로가 아니라 편집으로 재구성된 음악이다.
YouTube에서 듣기 ↗

IV. 홀로 무대에 서다 · 1971–1977 (26–32세)

(아이허) 1971년 11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첫 피아노 독주 앨범 「페이싱 유」를 녹음했다. 이끈 이는 서독 뮌헨에서 레이블 ECM을 막 세운 프로듀서 만프레드 아이허였다. 아이허는 맑고 공간감 있는 소리를 고집했고, 두 사람의 협업은 이후 반세기 동안 이어졌다. 이 무렵 그는 뉴저지주 북서부 시골의 오래된 농가로 옮겨 정착했고, 그곳은 지금까지 그의 집이자 작업실이다. (4중주) 1970년대 그는 두 밴드를 나란히 이끌었다. 미국 4중주에는 오넷 콜먼의 동료였던 테너 색소폰 연주자 듀이 레드먼, 찰리 헤이든, 폴 모션이 있었고, 더 큰 레이블 임펄스!와 계약해 여러 장을 냈다. 유럽 4중주는 노르웨이의 얀 가바렉(색소폰), 스웨덴의 팔레 다니엘손(베이스), 노르웨이의 욘 크리스텐센(드럼)으로 이뤄져 ECM에서 「빌롱잉」 「마이 송」을 남겼다. 거칠고 뜨거운 미국 밴드와 서늘하고 노래하는 유럽 밴드는 그 안의 두 기질처럼 들렸다. (쾰른) 1975년 1월 24일 서독(오늘날 독일) 쾰른 오페라하우스 독주회는 그의 삶을 바꿨다. 기획자는 10대 후반의 베라 브란데스였다. 약속된 연주회용 피아노 대신 상태가 나쁜 작은 그랜드가 무대에 놓였고, 며칠째 잠을 제대로 못 잔 재럿은 공연을 접으려 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고음과 저음이 약한 악기를 피해 가운데 음역과 끈질긴 왼손 반복 음형으로 음악을 지어 나갔다. 실황 앨범 「쾰른 콘서트」는 수백만 장이 팔려 피아노 독주 음반 가운데 손꼽히는 판매고를 올렸다. (선 베어) 성공은 경제적 여유와 함께 독주라는 형식의 무게를 안겼다. 1976년 일본 순회 독주회는 LP 열 장짜리 「선 베어 콘서트」로 나왔다.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다는 원칙은 이 무렵 그의 신념이 됐다.

♪쾰른 콘서트 (The Köln Concert)1975 (30세)

잠이 모자란 연주자와 상태 나쁜 피아노라는 최악의 조건에서 태어난 즉흥 독주로, 그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고 삶의 경제적 토대를 바꾼 음반이다.

  • 첫 몇 음은 오페라하우스에서 청중을 자리로 부르는 안내 종소리의 가락을 받아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 1부의 긴 대목은 두 화음을 흔들리듯 오가는 왼손의 되풀이 음형(오스티나토) 위에서 진행되며, 오른손 선율이 그 위에서 점점 부풀었다 가라앉는다.
  • 고음과 저음이 약한 악기의 한계 때문에 재럿은 가운데 음역에 머물며 왼손으로 소리의 힘을 채웠다 — 이 제약이 오히려 음악을 노래처럼 단순하고 끈질기게 만들었다.
  • 연주 중 재럿이 내는 신음과 발 구르는 소리가 그대로 녹음돼 있어, 즉흥이 몸을 통과해 나오는 과정이 들린다.
  • 짧은 마지막 대목 「Part IIc」는 노래 같은 선율로 유명해 훗날 악보로 출간되어 널리 연주된다.
♪마이 송 (My Song)1977 (32세)

같은 시기 미국 4중주의 뜨거움과 대조되는 유럽 4중주의 서정을 대표하는 앨범이다. 재럿 안의 노래하는 기질이 가장 순하게 드러난다.

  • 제목곡은 민요처럼 단순하고 따라 부를 수 있는 선율로, 재럿은 화려한 기교 대신 그 선율을 오래 머금는다.
  • 얀 가바렉의 색소폰은 떨림(비브라토)을 거의 쓰지 않는 곧고 긴 음색으로, 북유럽의 차가운 공기 같은 결을 더한다.
  • 욘 크리스텐센의 드럼은 박을 크게 강조하지 않고 심벌의 잔향으로 공간을 채우며, 팔레 다니엘손의 베이스가 그 사이를 노래하듯 걷는다.
  • 오슬로의 탈렌트 스튜디오에서 엔지니어 얀 에리크 콩스하우그가 녹음한, 잔향이 넉넉하고 맑은 이른바 ECM 사운드의 전형이다.

V. 고전과 스탠더드 · 1978–1995 (33–50세)

(구르지예프) 그는 영적 사상가 G. I. 구르지예프의 가르침에 깊이 끌렸다. 음악이 연주자 개인의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흘러 들어오는 것이라는 그의 즉흥관에는 이 영향이 배어 있다. 1980년에는 구르지예프와 작곡가 토마스 드 하르트만이 지은 성가들을 피아노로 녹음했다. (바흐) 1980년대 후반 그는 클래식 연주자로서의 경력을 본격적으로 열었다. 1987년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을 피아노로, 1989년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하프시코드로 녹음했고, 헨델·모차르트·쇼스타코비치와 미국 작곡가 루 해리슨의 작품도 연주했다. 악보의 한 음 한 음에 자신을 맞추는 일은 어린 시절 클래식 훈련으로 돌아가는 길이었고, 즉흥연주자로서 스스로를 비우는 연습이기도 했다. (트리오) 1983년 1월 뉴욕 파워 스테이션 스튜디오에서 베이시스트 게리 피콕, 드러머 잭 디조넷과 녹음했다. 피콕은 빌 에번스 트리오에서도 연주했던 베이시스트였다. 한 번의 세션에서 「스탠더즈 Vol. 1」 「스탠더즈 Vol. 2」 「체인지스」가 나왔다. 누구나 아는 옛 노래를 세 사람이 대등하게 다시 짓는 이 트리오는 이후 30년 넘게 이어졌다. (스피릿츠) 1985년 무렵 그는 음악적 방향을 잃은 듯한 시기를 지났다. 집의 작은 스튜디오에서 플루트·리코더·타악기 등을 혼자 겹쳐 녹음한 「스피릿츠」가 그 결과였고, 그는 이 작업이 자신을 다시 음악으로 데려다 주었다고 회고했다. (빈) 1991년 빈 국립 오페라극장 독주회 실황 「비엔나 콘서트」는 그가 특별히 아낀 녹음으로 알려져 있다. 쾰른의 열기 대신 고요하고 단단한 구조가 들어선 연주였다.

♪스탠더즈 Vol. 1 (Standards, Vol. 1)1983 (38세)실황 Keith Jarrett·Gary Peacock·Jack DeJohnette · 1985 도쿄

30년 넘게 이어질 피콕·디조넷 트리오의 첫 녹음이다. 고전과 독주로 자기만의 길을 걷던 재럿이 누구나 아는 옛 노래로 돌아와 세 사람의 대화를 시작했다.

  • 재럿은 먼저 원곡 선율을 느슨하게 들려준 뒤, 그 밑의 화음을 조금씩 바꿔 끼우며(리하모니제이션) 익숙한 노래를 낯설게 만든다.
  • 「God Bless the Child」에서는 같은 리듬을 15분 넘게 되풀이하며 가스펠과 록에 가까운 그루브로 몰고 간다.
  • 게리 피콕의 베이스는 반주에 머물지 않고 높은 음역에서 피아노와 선율로 대화하고, 디조넷의 심벌은 박을 쪼개고 흩뜨리며 숨 쉴 공간을 만든다.
  • 1983년 1월 뉴욕 파워 스테이션의 한 번의 세션에서 이 앨범과 함께 「Vol. 2」와 「체인지스」가 모두 녹음됐다.
YouTube에서 듣기 ↗

VI. 멈춤과 귀환 · 1996–2014 (51–69세)

(공백) 1996년 이탈리아 순회공연 도중 극심한 피로로 무대를 떠났고, 그는 이후 만성피로증후군 진단을 받았다고 인터뷰와 다큐멘터리에서 스스로 밝혔다. 2년 가까이 그는 공연하지 못했다. (멜로디) 1997년 12월, 그는 집 스튜디오에서 아내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발라드 몇 곡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화려한 즉흥을 걷어내고 옛 노래의 선율을 천천히 짚어 가는 연주였다. 1999년 「더 멜로디 앳 나이트, 위드 유」로 발표된 이 음반은 투병기에 집에서 녹음한 기록으로, 그의 음반 가운데 가장 사적인 기록으로 꼽힌다. (귀환) 1998년 말 그는 트리오와 함께 무대로 돌아왔고, 1999년 파리 공연은 트리오 실황 「위스퍼 낫」으로 나왔다. 트리오는 2000년 「인사이드 아웃」에서 정해진 곡 없이 자유롭게 즉흥을 펼치기도 했다. 독주의 형식도 바뀌었다. 한 시간 가까이 쉼 없이 흐르던 1970년대의 즉흥 대신 「레이디언스」(2002)와 「카네기 홀 콘서트」(2005)에서는 성격이 저마다 다른 짧은 조각들을 이어 붙였다. (헤이든) 2007년에는 40년 지기 찰리 헤이든을 집으로 불러 둘이서 스탠더드를 녹음했다. 이 녹음은 「재스민」(2010)과 「라스트 댄스」(2014)로 나왔고, 헤이든은 「라스트 댄스」가 나온 2014년 여름 세상을 떠났다. (영예) 2003년 스웨덴의 폴라 음악상을 받았고, 미국 국립예술기금의 재즈 마스터 칭호도 받았다. 스탠더드 트리오는 2014년 공연을 끝으로 무대 활동을 멈췄다.

♪더 멜로디 앳 나이트, 위드 유 (The Melody at Night, With You)1998 (53세)

오랜 공백 끝에 집 스튜디오에서 아내를 위해 녹음한 발라드집이다. 무대에 서지 못하던 시기의 조용한 소리가 그대로 담겼다.

  • 즉흥으로 멀리 나아가는 대신 원곡 선율을 거의 그대로 천천히 짚어 가며, 한 음 한 음의 여운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 템포가 아주 느리고 화음이 넓게 벌어져 있어, 음 사이의 침묵이 연주의 일부처럼 들린다.
  • 집 스튜디오에서 피아노 가까이 마이크를 대고 녹음해, 큰 공연장의 울림 대신 방 안에서 듣는 듯한 친밀한 소리가 난다.
  • 스탠더드뿐 아니라 「My Wild Irish Rose」 「Shenandoah」 같은 옛 민요도 같은 태도로 다뤄, 노래 자체의 단순함을 드러낸다.

VII. 고요 · 2015–2026 (70–81세)

(순회) 2016년 여름 그는 유럽 독주 순회에 나서 헝가리 부다페스트, 프랑스 보르도, 오스트리아 빈, 독일 뮌헨의 무대에 섰다. 일흔을 넘긴 피아니스트는 여전히 아무것도 정하지 않은 채 피아노 앞에 앉았고, 짧은 즉흥 조각들 사이사이에 블루스와 찬송가풍의 가락, 옛 스탠더드를 섞었다. 2017년 2월 뉴욕 카네기 홀 독주회가 지금까지 그의 마지막 공개 무대로 남아 있다. (침묵) 2020년 10월 뉴욕 타임스 인터뷰에서 그는 2018년 두 차례 뇌졸중을 겪었으며 다시 공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해 9월에는 30년 넘게 함께한 베이시스트 게리 피콕이 세상을 떠났다. 함께 길을 열었던 동료들 가운데 폴 모션은 2011년, 듀이 레드먼은 2006년에 이미 떠난 뒤였다. (기록) 무대는 멈췄지만 음악은 이어서 세상에 나왔다. ECM은 2016년 순회의 녹음을 차례로 공개해 「뮌헨 2016」(2019), 「부다페스트 콘서트」(2020), 「보르도 콘서트」(2022)를 발표했다. 반세기 동안 그를 녹음해 온 아이허의 레이블이 그의 마지막 무대들을 정리하는 셈이었다. (유산) 그는 클래식 신동으로 출발해 하드밥과 전기 재즈를 거쳤고, 즉흥 독주라는 형식을 한 시대의 대중이 듣는 음악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스탠더드라는 오래된 노래들을 세 사람의 대화로 새로 썼다. 뉴저지 시골집에서 지내는 그의 음악은 지금 녹음으로만 남아 있지만, 침묵에서 첫 음을 기다리던 그 태도는 많은 후배 피아니스트들의 출발점이 됐다.

♪부다페스트 콘서트 (Budapest Concert)2016 (71세)

마지막 유럽 독주 순회의 한 밤으로, 그가 무대에 서지 못하게 됐음을 밝힌 2020년에 발표됐다. 1970년대의 긴 즉흥과 달리 짧은 조각들로 이뤄진 말년의 독주 형식을 보여 준다.

  • 2016년 7월 부다페스트 벨러 버르토크 국립 콘서트홀에서 사전 준비 없이 연주한 열두 개의 즉흥 조각으로 이뤄져 있다.
  • 조각마다 성격이 크게 다르다 — 조성이 흐릿한 날카로운 조각 뒤에 블루스와 찬송가풍의 따뜻한 조각이 이어진다.
  • 앙코르로 연주한 스탠더드 「It's a Lonesome Old Town」과 「Answer Me」에서는 즉흥보다 선율을 노래하는 쪽에 무게를 둔다.
  • 한 곡을 한 시간 가까이 이어 가던 쾰른 시절과 견주어 들으면, 같은 즉흥 독주가 반세기 동안 어떻게 압축되고 단단해졌는지 알 수 있다.

덜 알려진 이야기

(포크 록) 1968년 재럿은 「레스토레이션 루인」이라는 앨범을 냈다. 피아노는 거의 들리지 않고, 그가 직접 노래하며 기타·하모니카·소프라노 색소폰 등 대부분의 악기를 혼자 연주한 포크 록 음반이다. 훗날 쌓인 진지한 즉흥 피아니스트의 이미지와 너무 달라 오래 잊혔지만, 여러 악기를 혼자 겹쳐 녹음하는 습관은 1985년 「스피릿츠」로 다시 이어졌다. (셀러 도어) 마일스 데이비스 밴드에서 재럿이 맡은 역할의 크기는 2005년에야 제대로 드러났다. 그해 1970년 12월 셀러 도어 공연 여러 밤의 녹음이 편집 없이 여섯 장짜리 음반으로 공개되면서, 머세로의 편집으로 짧게 잘려 있던 재럿의 긴 솔로와 반주가 비로소 온전히 들리게 됐다. (해리슨) 미국 작곡가 루 해리슨은 재럿을 위해 피아노 협주곡을 썼다. 재럿은 이 곡을 초연했고 1986년 1월 도쿄에서 신일본필하모니 교향악단과 실황으로 녹음했으며, 음반은 1988년에 나왔다. 재즈 피아니스트를 위해 현대 작곡가가 협주곡을 쓴 이 일은 그의 클래식 활동이 곁가지가 아니라 진지한 작업이었음을 보여 주지만, 재즈 쪽 전기에서는 대개 한 줄로 지나간다. (브란데스) 「쾰른 콘서트」를 성사시킨 10대 기획자 베라 브란데스의 이야기는 수십 년 동안 음반의 전설 뒤에 가려져 있었다. 그가 직접 공연장을 빌리고 표를 팔았던 사정은 그 뒤 인터뷰로 알려졌고, 2025년 독일 영화 「쾰른 75」가 그 밤을 기획자의 시선에서 다루면서 널리 조명됐다.

용어 노트 📚🔎

즉흥연주

(말뜻) 즉흥(卽興)은 그 자리에서(卽) 일어나는 흥(興)이라는 뜻이다. 미리 써 둔 것 없이 그 순간 떠오르는 대로 한다는 말이다. (재즈에서) 악보에 적힌 음을 그대로 치는 대신, 연주하는 그 자리에서 가락을 지어내는 것이다. 보통은 곡의 화음 틀을 지키며 그 위에서 새 선율을 만들지만, 키스 재럿의 독주회처럼 곡 자체를 아무것도 정하지 않고 무대에서 처음부터 지어내기도 한다. 친구와 이야기를 이어 짓기 놀이를 할 때 앞사람이 던진 문장을 받아 즉석에서 다음 이야기를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 미리 외운 대사가 없으니 매번 다른 이야기가 된다.

오스티나토

(말뜻) 이탈리아어로 고집스럽다, 끈질기다는 뜻이다. 같은 것을 고집스럽게 되풀이한다는 성격이 이름에 담겨 있다. (재즈에서) 짧은 음형이나 리듬을 계속 되풀이해 연주하는 것이다. 주로 왼손이나 베이스가 이 반복을 맡고, 그 위에서 오른손이나 다른 악기가 자유롭게 선율을 펼친다. 「쾰른 콘서트」의 1부에서 두 화음을 오가는 왼손 반복이 대표적이다. 긴 줄넘기에서 줄을 돌리는 두 사람이 일정한 박자를 지켜 주면, 가운데서 뛰는 사람이 마음 놓고 여러 동작을 해 보이는 것과 같다.

스탠더드

(재즈에서) 많은 재즈 연주자가 되풀이해 연주해 온 옛 노래들을 말한다. 대부분 1920~50년대 미국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영화에서 나온 대중가요이며, 재즈 연주자들은 그 선율과 화음을 바탕 삼아 저마다의 즉흥을 펼친다. 반 친구들이 모두 아는 노래를 장기자랑에서 각자 다른 편곡으로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 노래는 같아도 누가 부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무대가 된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는 표준이나 기준이라는 뜻으로 쓰여, 표준 규격이나 업계 기준을 가리킨다.

리듬 섹션

(재즈에서) 밴드에서 박자와 화음의 바탕을 맡는 악기들, 보통 피아노·베이스·드럼을 함께 부르는 말이다. 색소폰이나 트럼펫 같은 솔로 악기가 앞에서 선율을 연주하는 동안, 리듬 섹션은 그 아래에서 박을 유지하고 화음을 깔아 준다. 축구에서 수비수와 미드필더가 공을 이어 주고 공간을 만들어 주어야 공격수가 골을 넣을 수 있는 것과 같다. 키스 재럿의 스탠더드 트리오처럼 리듬 섹션만으로 이뤄진 밴드도 있다.

인터플레이

(말뜻) 영어 inter(서로, 사이)와 play(놀다, 연주하다)가 합쳐진 말로, 서로 주고받으며 노는 것을 뜻한다. (재즈에서) 연주자들이 서로의 소리를 들으며 즉석에서 반응하고 주고받는 연주를 말한다. 한 사람이 리듬을 바꾸면 다른 사람이 받아서 이어 가고, 피아노의 한 음에 드럼이 대답하는 식이다. 반주자와 솔로이스트의 구분이 흐려지고 모두가 대화하듯 연주한다. 배구에서 리시브와 토스, 스파이크가 미리 정해진 순서 없이 공의 흐름에 따라 즉석에서 이어지는 것과 닮았다.

퓨전

(말뜻) 영어 fusion은 라틴어 fundere(붓다, 녹이다)에서 왔다. 서로 다른 것을 녹여 하나로 합친다는 뜻이다. (재즈에서) 1960년대 말부터 재즈에 록과 펑크의 리듬, 전기 기타와 전기 피아노 같은 전기 악기를 섞은 음악을 가리킨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비치스 브루」와 「라이브-이블」이 그 출발점으로 꼽히며, 재즈 록이라고도 부른다. 떡볶이에 치즈를 넣어 한국 음식과 서양 음식의 맛이 섞인 새 맛을 만드는 것처럼, 두 장르의 장점을 합친 음악이다. (다른 데서는) 과학에서는 가벼운 원자핵이 합쳐지는 핵융합을, 요리에서는 여러 나라 음식을 섞은 퓨전 요리를 뜻한다.

프리 재즈

(재즈에서) 1950년대 말 오넷 콜먼 등이 시작한 재즈로, 정해진 화음 진행이나 일정한 박자 같은 틀에서 벗어나 연주자들이 더 자유롭게 즉흥하는 음악이다. 화음 틀이 없으니 연주자들은 서로의 소리를 들으며 방향을 함께 정해 나간다. 정해진 규칙과 경기장 선이 있는 체육 시간의 경기와 달리, 친구들끼리 그 자리에서 규칙을 만들어 가며 노는 놀이와 비슷하다. 키스 재럿과 함께한 찰리 헤이든과 듀이 레드먼은 프리 재즈의 출발을 함께한 연주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