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mmy Smith
교회와 동네 술집의 악기였던 해먼드 오르간을 재즈의 맨 앞자리로 끌어낸 사람. 왼손으로는 베이스를 걸었고, 오른손으로는 관악기처럼 노래했다.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영향와일드 빌 데이비스
그의 해먼드 연주를 들은 것이 피아니스트 스미스가 오르간으로 돌아선 계기였다.
- 후원앨프리드 라이언
블루노트 사장으로, 1956년 뉴욕 클럽에서 그를 듣고 곧바로 계약해 수많은 녹음을 남기게 했다.
- 동료아트 블레이키
「더 서먼!」과 「하우스 파티」의 드러머로, 교회 박수 같은 뒷박으로 그의 블루스를 받쳤다.
- 후원크리드 테일러
버브의 프로듀서로, 그의 오르간을 빅밴드 편곡 한가운데 세워 팝 차트까지 데려갔다.
- 동료웨스 몽고메리
1966년 「다이내믹 듀오」에서 블루스에 뿌리를 둔 두 장인으로 만나 대화하듯 연주했다.
- 제자조이 디프란체스코
그를 출발점으로 삼은 계승자로, 생애 마지막 녹음 「레거시」를 함께 만들었다.
I. 노리스타운의 소년 · 1928–1950 (0–22세)
(노리스타운) 1928년 12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노리스타운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제임스 오스카 스미스였다. 자료에 따라 출생 연도가 1925년으로 적히기도 하는데, 어느 쪽이 맞는지는 지금도 확정되지 않았다. 노리스타운은 필라델피아에서 북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작은 공업 도시였다. 부모가 모두 피아노를 쳤고, 아버지는 노래와 춤을 곁들여 무대에 서는 연예인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어린 지미는 아버지의 무대에 함께 오르며 일찍부터 객석을 상대하는 법을 몸으로 익혔다. (부기우기) 정식 레슨보다는 귀로 배웠다. 아홉 살 무렵 필라델피아의 라디오 아마추어 경연에 나가 부기우기 피아노로 상을 받았다. 부기우기는 왼손이 같은 저음 무늬를 쉬지 않고 되풀이하는 음악이다. 왼손 하나로 리듬과 저음을 함께 떠받치는 이 감각은 훗날 오르간 앞에서 그대로 되살아났다. (생계) 십대 중반에 해군에 들어갔다고 전해진다. 전역한 뒤에는 필라델피아의 해밀턴 음악학교(1948)와 온스타인 음악학교(1949~1950)에서 피아노와 베이스를 공부했다. 학비와 생활비를 대려고 낮에는 아버지를 도와 벽에 회반죽을 바르는 미장 일을 했다. 이 시기 그는 피아노를 치는 노동자였고, 음악만으로 먹고살 길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II. 해먼드라는 악기 · 1951–1955 (23–27세)
(소노톤스) 1951년 무렵 그는 돈 가드너가 이끄는 리듬 앤드 블루스 그룹 소노톤스에서 피아노를 쳤다. 춤추는 관객을 상대하는 무대였다. 그 경험은 그루브(몸이 저절로 따라 움직이게 되는 리듬의 흐름)를 무엇보다 앞세우는 그의 음악관을 굳혔다. (와일드빌) 전환점은 와일드 빌 데이비스의 해먼드 오르간 연주였다. 오르간이 재즈에 처음 들어온 악기는 아니었다. 패츠 월러는 파이프 오르간으로 녹음을 남겼고 카운트 베이시도 이따금 해먼드를 쳤다. 하지만 오르간은 여전히 교회 반주 악기나 피아노의 곁가지로 여겨졌다. 스미스는 이 악기에서 다른 가능성을 들었다. 1953년 무렵 첫 해먼드를 마련한 그는 창고 같은 공간에 틀어박혀 1년 가까이 혼자 연습했다고 회고했다. (왼손) 그 연습에서 그만의 방식이 나왔다. 발 건반은 박자를 찍는 데 주로 쓰고, 베이스 라인은 왼손으로 한 박에 한 음씩 걸었다(워킹 베이스). 음색은 드로바(음색 조절 막대)를 당겨 맞추고, 레슬리 스피커로 소리에 출렁임을 입혔다. 오른손으로는 찰리 파커 같은 관악기 주자의 숨 긴 선율을 옮기려 했다고 스스로 밝혔다. (트리오) 1955년 무렵 그는 오르간·기타·드럼으로 된 오르간 트리오를 꾸려 필라델피아 클럽에 섰다. 오르간 한 대가 베이스까지 맡으니 클럽 주인은 연주자 한 명 몫을 아낄 수 있었다. 대신 200킬로그램 가까운 악기를 무대마다 옮기는 고생은 고스란히 그의 몫이었다.
III. 블루노트의 새 별 · 1956–1958 (28–30세)
(라이언) 1956년 초 그는 뉴욕으로 진출해 카페 보헤미아와 할렘의 클럽에서 연주했다. 그 무대를 블루노트 레코드 사장 앨프리드 라이언이 들었고, 곧바로 녹음 계약이 이어졌다. 가수이자 기획자였던 밥스 곤잘레스가 둘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고 전해진다. 첫 앨범 제목은 「어 뉴 사운드, 어 뉴 스타」였다. 블루노트는 그를 「인크레더블 지미 스미스」라는 이름으로 내세웠다. (녹음) 라이언은 그를 거의 쉼 없이 녹음했다. 엔지니어 루디 반 겔더의 스튜디오에서 트리오 녹음이 이어졌고, 디지 길레스피의 곡을 제목으로 삼은 「더 챔프」도 이때 나왔다. 기타의 손넬 슈워츠와 케니 버렐, 그리고 오랫동안 드럼을 맡은 도널드 베일리가 그의 곁을 지켰다. 1957년에는 할렘의 스몰스 파라다이스에서 실황 녹음도 했다. (블레이키) 1957~1958년에는 리 모건, 루 도널드슨, 티나 브룩스, 케니 버렐, 아트 블레이키가 함께한 잼 세션식 녹음을 했다. 이 녹음들이 「하우스 파티」와 「더 서먼!」이 되었다. 블레이키의 드럼은 교회 박수 같은 뒷박을 오르간 밑에 깔았다. 마일스 데이비스가 그를 '세계 여덟 번째 불가사의'라고 불렀다는 말이 전해지는데, 정확한 출처는 확인되지 않는다. 어쨌든 그는 서른 즈음에 재즈의 새 얼굴이 되어 있었다.
블루노트와 계약한 첫해의 트리오 녹음으로, 창고에서 다듬은 오르간 어법이 처음으로 전부 드러난다. 디지 길레스피의 곡을 비밥 관악기 주자처럼 몰아붙인다.
- 오른손은 오르간이라기보다 색소폰처럼 들린다. 한 음씩 빠르게 쏟아지는 선율이 숨 쉴 틈 없이 이어지는데, 그가 찰리 파커의 프레이징을 건반으로 옮기려 했다는 말을 떠올리며 들어 보면 좋다.
- 베이스 주자가 없다. 저음은 스미스의 왼손과 발 건반이 맡는다. 한 박에 한 음씩 걷는 저음(워킹 베이스)이 솔로 내내 흔들리지 않는다.
- 솔로가 달아오르면 그는 높은 화음 하나를 오래 눌러 붙든다. 그 사이 드럼이 계속 끓어오르며 긴장을 끌어올리는데, 이 '붙들기'는 이후 오르가니스트들이 앞다투어 흉내 낸 그의 상표가 되었다.
- 레슬리 스피커(회전하는 스피커)의 속도가 바뀌며 소리가 천천히 출렁이다가 빠르게 떨린다. 이 변화가 곡의 흐름에 맞춰 일어나는지 귀 기울여 보자.
아트 블레이키, 리 모건, 루 도널드슨 등과 함께한 잼 세션식 녹음이다. 제목처럼 교회 설교의 열기를 블루스로 옮겼다.
- 표제곡은 20분 가까이 이어진다. 형식은 12마디짜리 틀을 되풀이하는 블루스(12마디 블루스) 하나뿐인데, 여러 연주자가 차례로 솔로를 이어 가며 같은 틀 위에서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한다.
- 아트 블레이키의 드럼은 서두르지 않는다. 느긋한 미디엄 템포에서 뒷박을 무겁게 찍어, 교회에서 박수를 치는 듯한 그루브를 만든다.
- 다른 연주자가 솔로를 할 때 스미스는 짧은 화음을 툭툭 던져 받쳐 준다(컴핑). 설교자의 말에 회중이 '아멘'으로 답하는 것처럼 들린다.
- 미리 짜인 편곡 없이 블루스 위에서 자유롭게 연주한 녹음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정교함보다 현장의 느슨한 열기가 앞에 선다.
IV. 소울 재즈의 한복판 · 1959–1962 (31–34세)
(그루브) 1950년대 말 그의 음악은 블루스와 가스펠 쪽으로 더 깊이 내려앉았다. 「홈 쿠킹」이 그 무렵의 앨범이다. 1960년 4월에는 테너 색소폰의 스탠리 터렌타인, 기타의 케니 버렐, 드럼의 도널드 베일리와 하루 동안 녹음했고, 이 세션에서 「백 앳 더 치킨 섀크」와 「미드나이트 스페셜」이 나왔다. 빠르고 화려한 비밥 대신 느긋한 템포와 묵직한 뒷박, 교회 음악의 부르고 답하는 화법이 앞에 섰다. 사람들은 이런 음악을 소울 재즈라고 불렀다. (서킷) 이 음악의 무대는 흑인 동네의 바와 클럽이었다. 인종 분리가 아직 생활 곳곳에 남아 있던 시절, 많은 클럽이 아예 해먼드를 들여놓았고 오르가니스트들이 그 클럽을 돌며 연주하는 길이 생겼다. 흔히 오르간 서킷이라 불렸다. 지미 맥그리프, 셜리 스콧, 잭 맥더프, 리처드 그루브 홈스 같은 오르가니스트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스미스는 이 흐름의 기준점이자 겨뤄야 할 상대였다. (이적) 블루노트에서 그는 소화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녹음을 남겼다. 「백 앳 더 치킨 섀크」도 녹음한 지 3년이 지난 1963년에야 나왔다. 1962년 그는 더 큰 유통망과 더 큰 무대를 약속한 버브 레코드로 옮겼다. 블루노트와의 마지막 세션들에서는 「프레이어 미틴」처럼 교회를 떠올리게 하는 제목이 이어졌다.
스탠리 터렌타인과 하루 동안 녹음한 세션에서 나왔다. 흑인 동네 클럽의 공기를 그대로 담은 소울 재즈의 교과서 같은 앨범이다.
- 표제곡의 템포는 느리고 끈적하다. 빠른 손놀림보다 음 하나를 얼마나 오래, 얼마나 무겁게 놓느냐가 이 곡의 맛이다.
- 스탠리 터렌타인의 테너 색소폰은 굵고 거친 숨결이 섞인 소리로, 블루스를 말하듯 노래한다. 그 뒤에서 스미스가 길게 깔아 주는 화음을 함께 들어 보자.
- 케니 버렐의 기타는 음을 아껴 쓰는 담백한 블루스 프레이징으로 오르간과 색소폰 사이에 숨 쉴 틈을 만든다.
- 녹음은 1960년에 끝났지만 발매는 1963년이었다. 블루노트에 그의 녹음이 얼마나 쌓여 있었는지 보여 주는 대목이다.
V. 버브의 스타 · 1962–1969 (34–41세)
(크리드테일러) 버브에서 그를 맡은 프로듀서는 크리드 테일러였다. 테일러는 오르간을 빅밴드 편곡 한가운데 세우는 길을 택했다. 1962년 올리버 넬슨이 편곡한 앨범 「배싱」에 실린 영화 주제곡 「워크 온 더 와일드 사이드」는 빌보드 팝 싱글 차트 20위권에 올랐다. 재즈 오르간이 라디오와 주크박스로 퍼져 나간 순간이었다. (빅밴드) 1964년에는 랄로 시프린의 금관 편곡으로 「더 캣」을 녹음했다. 같은 시기 영화 주제를 다룬 「후즈 어프레이드 오브 버지니아 울프?」, 블루스 넘버를 모은 「갓 마이 모조 워킹」이 이어졌다. 그는 한편으로 케니 버렐, 드러머 그레이디 테이트와 트리오 앨범 「오건 그라인더 스윙」(1965)을 내며 작은 편성의 뿌리도 놓지 않았다. 다운비트 독자 투표 오르간 부문은 여러 해 동안 그의 차지였다. (웨스) 1966년에는 기타리스트 웨스 몽고메리와 「다이내믹 듀오」를 녹음했다. 두 사람 모두 블루스에 뿌리를 두고 대중적 성공을 누리던 연주자였다. 녹음에서 둘은 경쟁이라기보다 서로 말을 받아 주는 대화처럼 어울렸다. 일부 평론가는 버브 시절의 대편성 음반이 상업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대중이 즐기는 음악을 연주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동네 클럽의 춤추는 관객과 차트의 청취자를 다르게 보지 않은 셈이다. 유럽 순회 공연도 이 무렵 잦아졌다.
버브로 옮긴 첫해, 올리버 넬슨의 빅밴드 편곡으로 녹음해 팝 차트에 오른 히트곡이다. 동네 클럽의 오르간이 라디오로 건너간 순간이었다.
- 곡은 금관 악기들의 강렬한 합주로 열린다. 그 위로 오르간이 주제 선율을 이어받는다. 큰 편성과 오르간 한 대가 맞서는 구도를 들어 보자.
- 원곡은 엘머 번스타인이 쓴 영화 주제곡이다. 넬슨은 이를 묵직한 블루스풍 그루브로 바꿨고, 그 결과 춤추기에도 라디오로 듣기에도 알맞은 곡이 되었다.
- 스미스의 솔로는 짧고 굵다. 몇 개의 블루스 음형을 되풀이하며 밀어붙이는데, 3분 안팎의 싱글 길이에 맞춘 구성이다.
- 프로듀서 크리드 테일러의 손길이 분명하다. 오르간을 늘 소리의 맨 앞에 세우는 편곡과 녹음이 버브 시절의 표준이 되었다.
랄로 시프린의 금관 편곡으로 만든 버브 시절의 대표작이다. 대편성 안에서도 블루스 오르가니스트의 본색이 흐려지지 않는다.
- 표제곡은 시프린이 쓴 곡이다. 금관이 짧은 리프(되풀이되는 짧은 가락)를 던지면 오르간이 받아치는 주고받기로 짜여 있다.
- 리듬은 통통 튀는 셔플(박자를 길고 짧게 나눠 걷는 듯 굴리는 리듬)에 가깝다. 스미스의 오르간은 그 위에서 장난스럽게 미끄러진다.
- 솔로가 진행될수록 금관이 점점 두터워진다. 오르간도 높은 화음을 붙들며 함께 소리를 키워 정점을 만든다.
- 엔지니어 루디 반 겔더가 녹음을 맡았다. 블루노트 시절과 같은 엔지니어의 손을 거쳤기에 오르간의 따뜻한 질감이 이어진다.
같은 시기 대중적 성공을 누리던 웨스 몽고메리와 만난 앨범이다. 두 블루스 장인이 경쟁보다 대화를 택한 기록이다.
- 몽고메리는 엄지로 줄을 퉁기며 같은 음을 한 옥타브 차이로 겹쳐 치는 연주(옥타브 주법)로 유명하다. 그 굵고 둥근 기타 소리와 오르간의 날카로운 소리가 어떻게 어울리는지 들어 보자.
- 「다운 바이 더 리버사이드」 같은 흑인 영가 곡에서는 두 사람 모두의 뿌리인 교회 음악의 정서가 드러난다.
- 두 사람이 짧은 구절을 번갈아 주고받는 대목이 있다. 서로 말을 받아 이어 가는 대화처럼 들린다.
- 일부 곡은 올리버 넬슨의 빅밴드 편곡 위에서, 일부는 작은 편성으로 녹음되었다. 편성에 따라 달라지는 두 사람의 호흡을 비교해 보면 좋다.
VI. 서부로 간 오르간 · 1970–1994 (42–66세)
(로스앤젤레스) 1970년대 들어 그는 로스앤젤레스 지역에 근거지를 두었다. 1972년 이곳 봄베이 바이시클 클럽에서 녹음한 실황 앨범 「루트 다운」에는 일렉트릭 베이스와 펑크 리듬이 들어왔다. 왼손이 베이스를 내려놓자 그의 연주는 더 날카로운 리듬 악기처럼 움직였다. 수십 년 뒤 이 녹음은 힙합 세대에게 다시 발견된다. (부침) 퓨전과 디스코, 신시사이저가 득세하면서 무겁고 비싼 해먼드는 유행에서 밀려났다. 그는 머큐리를 비롯한 여러 레이블을 옮겨 다녔다. 로스앤젤레스 근처에서 자기 이름을 건 클럽을 운영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1980년대에는 엘렉트라 뮤지션에서 음반을 냈다. 1990년 11월에는 오랜 동료 스탠리 터렌타인, 케니 버렐, 그레이디 테이트와 뉴욕 팻 튜즈데이스에서 실황을 녹음했고, 이 녹음은 이듬해 마일스톤에서 「포모스트」로 나왔다. (배드) 1987년 마이클 잭슨의 앨범 「배드」 표제곡에 그의 오르간 솔로가 실렸다. 프로듀서는 퀸시 존스였다. 재즈를 모르는 수천만 청취자가 그의 소리를 들었다. (부흥) 1980년대 말부터 조이 디프란체스코 같은 젊은 오르가니스트들이 등장해 해먼드의 부흥을 이끌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스미스를 출발점으로 꼽았고, 그는 자연스럽게 원로의 자리에 섰다.
로스앤젤레스 클럽 실황으로, 일렉트릭 베이스와 펑크 리듬을 받아들인 1970년대의 스미스를 담았다. 훗날 힙합 세대가 다시 찾아낸 녹음이다.
- 일렉트릭 베이스 주자가 저음을 맡는다. 왼손이 자유로워진 스미스는 화음을 끊어 치며 오르간을 리듬 악기처럼 쓴다.
- 리듬은 스윙보다 펑크(16분음표로 잘게 쪼개 몸을 들썩이게 하는 리듬)에 가깝다. 드럼과 베이스가 같은 무늬를 고집스럽게 되풀이한다.
- 클럽 관객의 소리가 그대로 담겼다. 솔로가 달아오를 때 객석의 반응이 연주에 다시 불을 붙이는 실황의 흐름을 느껴 보자.
- 1994년 비스티 보이스가 「루트 다운」이라는 곡에서 이 녹음을 샘플링(녹음의 일부를 떼어 새 곡의 재료로 쓰는 것)했다.
VII. 마지막 코러스 · 1995–2005 (67–77세)
(귀환) 1995년 그는 버브로 돌아와 「댐!」을 냈다. 젊은 연주자들과 함께 녹음한 이 앨범으로 그는 여전히 경쟁하는 현역임을 보였다. 2001년 「닷컴 블루스」에는 비비 킹, 에타 제임스, 닥터 존이 손님으로 참여했다. 블루스와 교회, 동네 클럽에서 출발한 그의 음악이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로 온 앨범이었다. (롤라) 그의 곁에는 오랜 아내 롤라가 있었다. 결혼 생활의 자세한 사정이나 자녀에 관해 공개된 기록은 많지 않다. 2004년 두 사람은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로 옮겨 갔다. 그러나 롤라는 그해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를 기억하는 이들은 이 상실이 말년의 그를 크게 흔들었다고 회고했다. (레거시) 같은 해 그는 조이 디프란체스코와 두 대의 오르간으로 앨범 「레거시」를 녹음했다. 스승과 계승자가 한 무대에서 소리를 주고받는 기록이었다. 2005년 미국 국립예술기금(NEA)은 그를 재즈 마스터로 선정했다. 함께 순회 공연을 할 계획이었지만, 그는 2005년 2월 8일 스코츠데일 자택에서 잠든 채 세상을 떠났다. 「레거시」는 그 뒤에 발매되었다. 노리스타운의 부기우기 소년이 남긴 마지막 녹음이 후배와의 이중주였다는 사실은, 그의 소리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 준다.
덜 알려진 이야기
(출생 연도) 지미 스미스의 출생 연도는 자료마다 1925년과 1928년으로 엇갈린다. 1950년대 음반사 자료와 이후의 사전·부고가 서로 다른 해를 적었고, 그 차이가 지금까지 정리되지 않았다. 재즈 연주자가 활동 초기에 나이를 조정하는 일은 드물지 않았다. 다만 그가 그렇게 했다는 증거도 없어서, 신중한 자료들은 두 연도를 함께 적는다. (발 건반) 오르가니스트라면 발로 베이스를 친다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스미스는 베이스 라인의 대부분을 왼손으로 쳤다. 발 건반은 줄을 퉁기는 듯한 둔탁한 음을 박자에 맞춰 덧붙이는 데 주로 썼다. 손이 발보다 빠르고 섬세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그의 워킹 베이스는 콘트라베이스 주자처럼 유연했다. 무대 위에서는 발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 이 사실이 잘 드러나지 않았고, 연주법을 분석한 교본과 후배 오르가니스트들의 증언으로 알려졌다. (쌓인 테이프) 블루노트 시절 앨프리드 라이언은 시장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보다 많이 그를 녹음했다. 그래서 1958년 스몰스 파라다이스 실황 등을 담은 「쿨 블루스」는 녹음된 지 20년도 더 지난 1980년에야 세상에 나왔고, 그 밖에도 여러 세션이 1980년대 이후에야 발매되었다. 우리가 아는 블루노트 시절의 스미스는 상당 부분 뒤늦게 정리된 모습인 셈이다. (힙합) 1990년대 힙합 프로듀서들은 그의 1960~70년대 녹음을 샘플링 재료로 즐겨 썼다. 비스티 보이스의 「루트 다운」(1994)이 대표적이다. 재즈 역사책은 이 대목을 대개 각주로 넘기지만, 젊은 청취자 상당수는 그의 이름보다 그의 그루브를 먼저 만났다.
용어 노트 📚🔎
해먼드 오르간
(말뜻) 해먼드는 이 악기를 발명한 미국인 로런스 해먼드의 이름이다. 오르간은 그리스어 오르가논(organon)에서 왔는데, 원래 도구나 기구라는 뜻이다. (재즈에서) 1930년대에 나온 전기 오르간이다. 파이프에 바람을 불어넣는 대신, 톱니바퀴 모양의 금속 원판이 돌며 전기 신호로 소리를 만든다. 그중 B-3 모델이 재즈와 소울에서 가장 사랑받았다. 교회의 커다란 파이프 오르간을 동네 클럽에 들일 수 있게 줄여 놓은 악기라고 생각하면 쉽다. 그래도 무게는 200킬로그램 가까이 나가서, 연주자들은 공연 때마다 이삿짐을 나르듯 옮겨야 했다. (다른 데서는) 오르간(organ)은 영어에서 심장이나 간 같은 몸의 기관이라는 뜻으로도 쓴다.
드로바
(말뜻) 영어 drawbar 로, 당기다(draw)와 막대(bar)를 합친 말이다. 이름 그대로 잡아당겨 쓰는 막대다. (재즈에서) 해먼드 오르간 건반 위에 줄지어 있는 막대들이다. 막대 하나하나가 서로 다른 높이의 배음을 맡고, 얼마나 당기느냐에 따라 그 소리가 커지거나 작아진다. 여러 막대를 조합하면 플루트처럼 부드러운 소리부터 날카롭고 쨍한 소리까지 만들 수 있다. 떡볶이 양념을 만들 때 고추장·설탕·간장을 얼마씩 넣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과 같다. 지미 스미스는 자기만의 드로바 조합으로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를 만들었다.
레슬리 스피커
(말뜻) 이 스피커를 만든 미국인 돈 레슬리의 이름을 땄다. (재즈에서) 상자 안에서 스피커 나팔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특수한 스피커다. 소리가 나오는 방향이 계속 바뀌어서 소리가 출렁이거나 떨리는 것처럼 들린다. 회전 속도를 느리게 하면 물결처럼 일렁이고, 빠르게 하면 바르르 떨린다. 구급차가 다가왔다 멀어질 때 사이렌 소리가 높아졌다 낮아지는 것, 또는 돌아가는 선풍기 앞에서 '아' 소리를 내면 목소리가 떨리는 것과 같은 원리다. 해먼드 오르간과 짝을 이루어 재즈 오르간 특유의 소리를 만들었다.
오르간 트리오
(말뜻) 트리오(trio)는 이탈리아어로 셋이 함께하는 무리라는 뜻이다. (재즈에서) 해먼드 오르간·기타·드럼, 또는 오르간·색소폰·드럼으로 된 3인조다. 보통의 재즈 밴드에는 베이스 주자가 따로 있지만, 오르간 트리오에서는 오르가니스트가 왼손과 발로 베이스까지 맡는다. 모둠 활동에서 한 친구가 발표와 자료 정리를 함께 맡아 모둠 인원이 줄어드는 것과 비슷하다. 연주자가 한 명 적으니 클럽 주인은 출연료를 아낄 수 있었고, 그래서 1950~60년대 흑인 동네 클럽에 이 편성이 널리 퍼졌다.
소울 재즈
(말뜻) 소울(soul)은 영어로 영혼이나 마음이라는 뜻이다. 미국 흑인 사회에서는 흑인 고유의 정서와 문화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였다. (재즈에서) 1950년대 후반부터 유행한 재즈다. 흑인 교회의 가스펠 음악과 블루스의 느낌을 깊이 받아들였다. 빠르고 복잡한 비밥보다 템포가 느긋하고, 몸이 저절로 들썩이는 리듬과 따라 부르기 쉬운 짧은 가락을 앞세운다. 한 사람이 부르면 여럿이 받아 답하는 교회의 화법도 자주 쓴다. 학교 응원전에서 응원단장이 외치면 학생들이 함께 받아 외치는 것과 비슷하다. 지미 스미스의 블루노트 후반기 음반들이 대표적이다. (다른 데서는) 소울은 음식 이름에도 붙는다. 미국 남부 흑인 가정의 전통 요리를 소울 푸드라고 부른다.
워킹 베이스
(말뜻) 영어 walking 은 걷는다는 뜻이다. 베이스가 걸어간다는 말이다. (재즈에서) 베이스가 한 박에 한 음씩, 쉬지 않고 계단을 오르내리듯 음을 이어 가는 연주법이다. 코드가 바뀌는 길을 따라 걸으면서 밴드 전체에 박자와 화음의 바닥을 깔아 준다. 운동장을 일정한 걸음으로 걸을 때 발소리가 하나, 둘, 셋, 넷 고르게 나는 것처럼, 워킹 베이스는 음악의 발걸음 역할을 한다. 지미 스미스는 이 베이스를 콘트라베이스 대신 오르간의 왼손으로 연주했다.
12마디 블루스
(말뜻) 마디는 악보를 일정한 박자 단위로 나눈 칸이다. 12마디 블루스는 열두 칸짜리 틀로 된 블루스라는 뜻이다. (재즈에서) 블루스의 가장 기본적인 형식이다. 12마디 동안 정해진 순서로 코드가 바뀌고, 이 틀을 계속 되풀이한다. 연주자들은 같은 틀 위에서 한 바퀴(코러스)씩 돌아가며 즉흥 솔로를 한다. 줄넘기 노래가 같은 가락을 되풀이하는 동안 들어가는 사람이 바뀌며 저마다 다른 동작을 해 보이는 것과 비슷하다. 틀은 단순하지만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끝이 없어서, 「더 서먼!」은 이 틀 하나로 20분 가까이 이어진다. (다른 데서는) 블루스(blues)는 영어 일상어에서 우울함이나 울적한 기분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