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co Pastorius
'나는 자코 파스토리우스, 세계 최고의 베이스 연주자다.' — 1970년대 중반 조 자비눌에게 처음 건넸다고 전해지는 인사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가족잭 파스토리우스
빅밴드 드러머이자 가수였던 아버지로, 아들이 처음 잡은 악기 드럼은 그에게서 왔다.
- 우정팻 메시니
마이애미 대학교에서 만나 「브라이트 사이즈 라이프」와 조니 미첼의 순회를 함께한 동갑내기 같은 동료였다.
- 후원바비 콜롬비
블러드, 스웨트 앤드 티어스의 드러머로, 그를 에픽 레코드에 데려가 데뷔 앨범을 제작했다.
- 동료조 자비눌
웨더 리포트의 공동 리더로, 당돌한 청년의 테이프를 듣고 그를 그룹에 받아들였다.
- 동료웨인 쇼터
데뷔 앨범과 웨더 리포트, 「워드 오브 마우스」까지 함께한 색소폰 주자로 그를 아낀 선배였다.
- 동료조니 미첼
「헤지라」부터 실황 「섀도스 앤드 라이트」까지 네 장의 앨범에서 그의 베이스를 노래의 또 다른 목소리로 삼았다.
I. 노리스타운의 소년 · 1951–1966 (0–15세)
(출생) 1951년 12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노리스타운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존 프랜시스 앤서니 파스토리우스 3세였다. 아버지 잭 파스토리우스는 빅밴드에서 드럼을 치고 노래하던 연주자로 일 때문에 길 위에 있는 날이 많았고, 어머니 스테퍼니는 핀란드계 집안 출신이었다. 그는 아들 삼 형제 가운데 맏이였다. (플로리다) 일곱 살 무렵 가족은 플로리다주 포트로더데일 근처 오클랜드파크로 옮겨 갔다. 아버지가 집을 비우는 동안 살림과 아이들은 어머니가 꾸렸다. 가톨릭 집안에서 자라 성당에서 복사를 섰고, 야구·농구·미식축구를 가리지 않는 운동광이었다. '자코'라는 별명은 그가 좋아한 야구 심판 조코 콘런에게서 왔다고 전해진다. 지는 것을 몹시 싫어하고 남 앞에 나서기를 즐기는 성격은 이때부터 또렷했다고 형제와 친구들은 회고했다. (손목) 그가 처음 잡은 악기는 아버지를 따라 배운 드럼이었다. 그러나 열세 살 무렵 미식축구를 하다 손목이 부러졌고, 훗날 그는 그 손목이 끝내 온전히 낫지 않아 드럼을 계속하기 어려웠다고 회고했다. 마침 드럼을 치던 동네 밴드 라스올라스 브라스의 베이스 주자가 떠나자 그 자리를 넘겨받았다. 1966년 무렵, 열다섯 살 소년의 손에 베이스가 쥐어진 것이다. 드럼으로 익힌 박의 감각,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R&B와 소울, 바다 건너 카리브에서 들려오던 음악은 훗날 그의 베이스가 리듬 악기이면서 동시에 노래하는 악기가 되는 밑바탕이 되었다.
II. 남플로리다의 밤무대 · 1966–1975 (15–24세)
(클럽) 십대 후반부터 그는 포트로더데일과 마이애미의 클럽, 호텔 라운지, 순회 쇼의 반주 밴드에서 일거리가 생기는 대로 연주했다. 1970년대 초에는 소울 가수 웨인 코크런이 이끄는 C.C. 라이더스에 들어가 관악기가 우렁찬 R&B를 밤마다 연주했다. 그는 제임스 브라운 밴드와 R&B 세션의 베이스 주자들을 스승처럼 들었고, 특히 제리 저멋의 연주에서 많이 배웠다고 밝혔다. (프렛리스) 이 무렵 그는 1962년형 펜더 재즈 베이스에서 프렛(음 높이를 칸칸이 나누는 금속 막대)을 뽑아 내고 홈을 메운 뒤 지판에 선박용 에폭시를 입혔다고 회고했다. 처음부터 프렛이 없는 상태로 손에 넣었다는 다른 증언도 있다. 어느 쪽이든 프렛이 사라진 베이스는 음과 음 사이를 미끄러지고 사람 목소리처럼 떨렸다. 그가 훗날 「베이스 오브 둠(Bass of Doom)」이라 부른 이 악기가 곧 그의 목소리가 되었다. (가정) 어린 가장에게 클럽 일은 생계였다. 1973년 무렵에는 마이애미 대학교에서 잠시 베이스를 가르쳤는데, 그곳에서 십대의 기타리스트 팻 메시니를 만나 함께 연주하기 시작했다. 1974년에는 피아니스트 폴 블레이의 앨범에 메시니와 나란히 참여했고, 같은 해 마이애미의 크라이테리아 스튜디오에서 자작곡들을 데모로 남겼다. 무명의 지역 연주자였지만,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마이애미 대학교에서 만난 팻 메시니의 첫 리더작이다. 남플로리다의 무명 베이스 주자가 세상에 처음 제대로 들려준 목소리가 여기 있다.
- 메시니의 맑은 기타 아래에서 프렛리스 베이스는 화음의 바닥음(근음)만 짚지 않고 기타와 대등하게 선율을 주고받는다. 두 선율이 동시에 따로 움직이는 짜임(대위법)처럼 들린다.
- 드러머 밥 모지스가 박을 촘촘히 채우기보다 가볍게 흔들어 주어, 세 악기 사이에 빈 공간이 많은 트리오의 호흡이 살아 있다.
- 1975년 12월 독일 루트비히스부르크의 스튜디오에서 ECM의 만프레트 아이허가 제작했다. 울림이 길고 투명한 이 레이블 특유의 소리 덕에 베이스의 미끄러지는 음까지 또렷하게 들린다.
- 녹음 당시 두 사람은 모두 이십대 초반이었다. 「브라이트 사이즈 라이프」 첫 곡의 밝은 주제를 베이스가 함께 노래하듯 받치는 대목을 들어 볼 만하다.
III. 세계 최고의 베이스 연주자 · 1975–1976 (24–25세)
(콜롬비) 그의 연주를 들은 블러드, 스웨트 앤드 티어스의 드러머 바비 콜롬비가 에픽 레코드에 그를 데려가 데뷔 앨범의 제작을 맡았다. 1975년에 녹음해 이듬해 나온 「자코 파스토리우스」에는 허비 행콕, 웨인 쇼터, 마이클·랜디 브레커 형제, 데이비드 샌번, 소울 듀오 샘 앤드 데이브까지 이름을 올렸다. 이름 없는 신인의 첫 앨범으로는 보기 드문 진용이었다. (도나리) 앨범은 찰리 파커의 이름으로 알려진 비밥 곡 「도나 리」로 시작했다(마일스 데이비스가 썼다는 설도 있다). 색소폰을 위해 쓰인 빠르고 꺾이는 선율을 베이스와 콩가 단 두 악기로 연주한 이 곡은 베이스 연주자들 사이에 하나의 사건이 되었다. 첫 아내의 이름을 딴 「포트레이트 오브 트레이시」에서는 줄을 살짝 짚어 내는 종소리 같은 배음만으로 한 곡을 지었다. 젊은 가장의 애정과 야심이 한 장의 음반에 함께 담겼다. (자비눌) 비슷한 무렵 그는 마이애미 공연을 마친 웨더 리포트의 키보드 주자 조 자비눌을 찾아가 자신을 세계 최고의 베이스 연주자라고 소개했다고 전해진다. 자비눌은 그 당돌함을 처음엔 웃어넘겼지만 테이프를 듣고 생각을 바꿨다고 회고했다. 1976년 그는 「블랙 마켓」의 두 곡에 참여한 뒤 알폰소 존슨의 뒤를 이어 정식 멤버가 되었다. 스물넷의 플로리다 청년이 웨인 쇼터와 자비눌이 이끄는 당대 최고의 퓨전 그룹 한복판에 선 것이다.
데뷔 앨범의 첫 곡이다. 비밥의 가장 까다로운 선율을 전기 베이스로 연주해 보인 이 트랙이 그의 이름을 단숨에 알렸다.
- 반주 화음 악기 없이 베이스와 돈 얼라이어스의 콩가만으로 연주한다. 베이스가 선율을 연주하면서 그 음들로 화음의 흐름까지 그려 낸다.
- 본래 색소폰을 위해 쓰인 빠르고 꺾이는 비밥 선율을 프렛 없는 지판에서 음 하나 흐트러짐 없이 짚어 낸다. 짧게 끊어 치는 음(스타카토)이 관악기의 혀놀림처럼 들린다.
- 형식은 주제 연주 뒤 즉흥연주가 이어지고 다시 주제로 돌아오는 짜임(헤드-솔로-헤드)이다. 솔로에서도 그는 비밥 연주자처럼 긴 음표 줄기를 이어 간다.
- 콩가가 박의 뒷부분을 살짝 당기고 미는 사이, 베이스는 박에 꼭 맞추어 달린다. 그 엇갈림이 곡 전체에 탄력을 준다.
첫 아내의 이름을 붙인 베이스 독주곡이다. 클럽 일로 생계를 꾸리던 젊은 가장의 서정이 배음의 종소리로 남았다.
-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줄을 꾹 누르지 않고 살짝 대기만 해서 내는 맑은 배음(하모닉스)으로 연주한다. 한 손으로 짚고 다른 손가락으로 배음을 끌어내는 인공 하모닉스까지 섞었다.
- 베이스 한 대로 두세 음을 동시에 울려 화음을 만든다. 낮은 악기라는 통념과 달리 높고 투명한 소리가 종이나 실로폰처럼 들린다.
- 템포가 느리고 음 사이의 여백이 넓다. 배음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호흡이 곡의 정서를 만든다.
- 이후 수많은 베이스 연주자가 이 곡을 교본처럼 익혔다. 악기의 가능성을 넓힌 연주로 평론가와 연주자들 사이에 널리 꼽힌다.
IV. 웨더 리포트의 날들 · 1976–1979 (25–28세)
(헤비웨더) 1976년 로스앤젤레스에서 녹음해 이듬해 발표한 「헤비 웨더」는 웨더 리포트 최대의 성공작이 되었다. 자비눌의 「버드랜드」가 라디오를 타고 퍼졌고, 그는 자작곡 「틴 타운」과 「하보나」를 실었다. 무대에서 그는 맨발로 뛰어다니고, 딜레이 장치로 소리를 겹겹이 쌓아 혼자 합주를 만들어 내는 솔로로 객석을 사로잡았다. 웨인 쇼터는 그를 아낀 동료였고, 세 사람은 이후 「미스터 곤」(1978)과 실황 「8:30」(1979)을 함께 만들었다. (미첼) 같은 시기 그는 싱어송라이터 조니 미첼과 「헤지라」(1976), 「돈 후안의 무모한 딸」(1977), 「밍거스」(1979)를 녹음했다. 「밍거스」는 찰스 밍거스가 말년에 미첼과 함께 구상한 작업이었으나, 밍거스는 1979년 1월 완성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재즈 콘트라베이스의 거인이 남긴 곡에 젊은 전기 베이스 주자가 답한 셈이었다. 1979년 미첼의 순회에는 팻 메시니와 함께 나섰고, 그 기록이 이듬해 실황 「섀도스 앤드 라이트」로 나왔다. (그늘) 명성이 커지는 만큼 집을 비우는 날도 길어졌다. 젊은 시절 술과 약을 멀리했던 그가 이 무렵부터 자주 술잔을 들기 시작했다고 동료들은 회고했다.
조니 미첼과의 첫 작업이다. 웨더 리포트에 막 들어간 그가 노래 곁에서 베이스가 얼마나 많은 말을 할 수 있는지 보여 주었다.
- 미첼은 화음의 바닥음만 짚는 베이스 대신 노래와 다른 선율을 주고받는 소리를 찾다가 그를 만났다고 회고했다. 노래가 쉬는 틈마다 베이스가 대답하듯 들어온다.
- 노래의 화자는 길 위를 떠도는 사람으로, 혼잣말하듯 긴 생각을 털어놓는다. 일정한 마디에 묶이지 않고 흘러가는 미첼의 화법에 베이스가 그림자처럼 붙는다.
- 베이스 소리가 여러 겹으로 들리는 대목이 있다. 이미 녹음한 소리 위에 덧녹음(오버더빙)해 쌓은 결이다.
- 프렛리스 특유의 미끄러지는 음과 떨림(비브라토)이 사람 목소리와 닮아, 두 목소리가 이중창을 하는 것처럼 들린다.
「헤비 웨더」에 실린 그의 자작곡이다. 웨더 리포트 전성기에 그가 작곡가로서도 그룹의 한 축이었음을 보여 준다.
- 베이스가 반주가 아니라 주선율을 맡아 빠른 16분음표로 달린다. 자비눌의 신시사이저가 같은 선율을 함께 연주하는(유니즌) 대목에서 두 소리가 한 몸처럼 들린다.
- 이 곡에서는 그가 드럼까지 직접 연주했다. 드럼에서 출발한 연주자다운 박의 감각이 베이스와 드럼 양쪽에 고르게 배어 있다.
- 같은 음형을 반복하면서 화음이 한 단계씩 올라가 긴장이 쌓이는 짜임이다. 3분 남짓한 짧은 곡 안에 퓨전의 에너지가 압축되어 있다.
- 같은 앨범의 「버드랜드」 첫머리에서 그가 배음(하모닉스)으로 연주하는 대목도 함께 들어 볼 만하다.
V. 워드 오브 마우스 · 1980–1982 (29–31세)
(워너) 1980년 그는 워너 브러더스와 솔로 계약을 맺었다. 당시로서는 후한 조건이었다고 전해진다. 직접 제작한 「워드 오브 마우스」(1981)는 빅밴드와 현악, 스틸 팬을 아우른 대작이었다. 비틀스의 「블랙버드」와 바흐의 「반음계적 환상곡」을 다루었고, 허비 행콕과 웨인 쇼터, 하모니카 주자 투츠 틸레망스가 참여했다. 「크라이시스」에서는 먼저 녹음한 자신의 베이스만 들려준 채 다른 연주자들이 각자 덧녹음하게 해, 서로를 듣지 않은 소리들이 부딪치는 긴장을 만들었다. 판매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빅밴드) 1982년 「웨더 리포트」를 끝으로 그는 그룹을 떠나 자신의 빅밴드 워드 오브 마우스를 이끌었다. 드러머 피터 어스킨, 트럼펫 랜디 브레커, 색소폰 밥 민처, 스틸 팬 주자 오셀로 몰리노가 함께한 그해 일본 순회는 실황 「트윈스 I & II」(국제판 「인비테이션」)로 남았다. 그러나 순회 동안 그는 머리를 밀고 얼굴에 칠을 하는 등 기행을 보였고, 베이스를 바다에 던졌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진단) 같은 해 쌍둥이 아들이 태어났다. 순회를 마친 1982년 말 그는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았다. 약이 연주의 감각을 무디게 한다며 복용을 꺼렸다고 가족과 동료들은 회고했다. 가장 높이 올랐던 해에 몰락의 그림자가 함께 드리웠다.
웨더 리포트 시절에 쓴 곡을 「워드 오브 마우스」에서 오케스트라 편곡으로 다시 녹음했다. 베이스 연주자가 아닌 작곡가·편곡가로서의 그가 가장 잘 드러난다.
- 한 마디를 세 박으로 세는 왈츠 박자 위에서, 화음이 반음씩 미끄러지며 낯선 색깔로 옮겨 간다.
- 투츠 틸레망스의 하모니카가 주선율을 노래하고, 현악과 관악이 그 뒤를 넓게 감싼다. 베이스는 앞에 나서지 않고 전체를 받친다.
- 1980년 웨더 리포트의 「나이트 패시지」에 실린 판과 견주어 들으면, 같은 곡이 소규모 그룹과 오케스트라에서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 수 있다.
- 그는 이 앨범을 직접 제작하며 여러 스튜디오에서 나누어 녹음했다. 겹겹이 쌓은 편곡의 결에서 그의 야심이 들린다.
VI. 마지막 해들 · 1983–1987 (32–36세)
(뉴욕) 1980년대 중반 그는 주로 뉴욕에 머물며 작은 클럽에서 기타리스트 마이크 스턴, 하이럼 불럭 등과 무대에 섰다. 그러나 술과 약물, 치료받지 못한 병이 겹치며 약속한 공연에 나타나지 않거나 무대에서 다투는 일이 잦아졌고 일거리는 끊겼다. 돈이 떨어지자 워싱턴 스퀘어 공원 농구장 근처에서 노숙하는 날도 있었다. 1986년 여름에는 벨뷰 병원 정신과 병동에 입원했고, 같은 해 오랜 동반자였던 「베이스 오브 둠」을 도난당했다. (유럽) 그 와중에도 연주는 이어졌다. 1985년에는 존경하던 제리 저멋과 교습용 영상을 찍었고, 1986년 유럽에서는 젊은 집시 재즈 기타리스트 비렐리 라그렌과 함께 연주해 앨범 「슈투트가르트 아리아」를 남겼다. 그해 말 그는 플로리다로 돌아왔다. (최후) 1987년 9월 11일 밤, 그는 선라이즈에서 열린 산타나 공연에서 무대에 오르려다 쫓겨난 뒤, 윌턴 매너스의 한 클럽에 들어가려다 경비원에게 폭행당해 크게 다쳤다. 혼수상태로 열흘을 버티다 9월 21일 포트로더데일의 병원에서 서른다섯 살로 세상을 떠났다. 경비원은 과실치사를 인정해 징역 22개월을 선고받았고 넉 달여 만에 풀려났다. 이듬해 그는 다운비트 독자 투표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쌍둥이 아들 펠릭스와 줄리어스는 훗날 각각 베이스와 드럼 연주자의 길을 걸었다.
덜 알려진 이야기
(데모) 그의 음악 세계는 웨더 리포트 이전에 이미 거의 완성되어 있었다. 1974년 마이애미 크라이테리아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데모에는 훗날 데뷔 앨범에 실릴 곡들의 초기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 테이프는 40년 가까이 묻혀 있다가 2014년에야 「모던 아메리칸 뮤직… 피리어드!」라는 제목으로 공식 발매되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그의 출발점은 콜롬비가 제작한 1976년 데뷔작으로만 알려졌다. (저멋) 1985년 그는 교습용 영상 「모던 일렉트릭 베이스」를 찍었는데, 질문을 던진 사람은 그가 젊은 날 스승처럼 들었던 R&B 베이스 주자 제리 저멋이었다. 말년의 혼란 속에서도 그가 자기 연주법을 차분하게 제 말로 설명한 몇 안 되는 기록이다. 교재용 비디오라는 형식 탓에 음반만큼 주목받지 못했다. (베이스) 1986년 뉴욕에서 도난당한 「베이스 오브 둠」은 20여 년 뒤 뉴욕의 한 악기점에 나타났고, 소유권을 둘러싼 다툼 끝에 메탈리카의 베이스 주자 로버트 트루히요가 사들여 유족과 함께 지키는 방식으로 매듭지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트루히요는 이후 다큐멘터리 「자코」(2015)의 제작에도 나섰다. (이름) 별명의 철자 Jaco는 플로리다 시절 함께 연주하던 피아니스트 알렉스 다르키가 쪽지에 그렇게 적은 데서 굳어졌다고 전기 작가 빌 밀코스키는 기록했다. 그는 그 철자를 마음에 들어 해 평생 썼다.
용어 노트 📚🔎
프렛리스 베이스
(말뜻) 프렛(fret)은 기타나 베이스의 지판에 가로로 박힌 금속 막대이고, 리스(-less)는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프렛리스는 그 막대가 없는 악기라는 말이다. (재즈에서) 프렛이 있으면 손가락이 칸 안 어디를 눌러도 정해진 음이 나지만, 프렛이 없으면 손가락이 닿는 자리 그대로의 음이 난다. 그래서 음과 음 사이를 부드럽게 미끄러질 수 있고 사람 목소리처럼 떨리는 소리를 내지만, 음정을 맞추기는 훨씬 어렵다. 계단과 미끄럼틀을 떠올리면 쉽다. 프렛이 있는 베이스는 한 칸씩 딛는 계단이고, 프렛리스는 어디서든 멈출 수 있는 미끄럼틀이다. 자코 파스토리우스는 이 악기를 전기 베이스의 대표적인 목소리로 만들었다.
하모닉스 (배음)
(말뜻) 하모닉(harmonic)은 어울림을 뜻하는 그리스어 하르모니아(harmonia)에서 왔다. 한 줄이 울릴 때 원래 음과 함께 어울려 울리는 높은 음들을 가리킨다. (재즈에서) 줄을 지판까지 꾹 누르지 않고, 줄의 절반이나 3분의 1 같은 지점에 손가락을 살짝 대기만 한 채 튕기면 종소리처럼 맑고 높은 음이 난다. 이것이 자연 하모닉스다. 한 손으로 음을 짚고 다른 손가락으로 배음을 끌어내는 방법은 인공 하모닉스라 한다. 고무줄 한가운데에 손가락을 가볍게 대고 튕겨 보면 그냥 튕길 때보다 높고 가는 소리가 나는데, 그 원리와 같다. 「포트레이트 오브 트레이시」는 거의 이 소리만으로 지은 곡이다.
퓨전
(말뜻) 퓨전(fusion)은 녹이다, 붓다라는 뜻의 라틴어 푼데레(fundere)에서 왔다. 여러 것을 녹여 하나로 합친다는 뜻이다. (재즈에서) 1970년대 무렵 재즈의 즉흥연주에 록과 펑크의 강한 리듬, 전기 기타와 신시사이저 같은 전기 악기를 합친 음악을 말한다. 웨더 리포트는 그 대표적인 그룹이었다. 김치와 파스타를 섞어 새 요리를 만드는 퓨전 요리처럼, 서로 다른 음악의 재료를 섞어 새로운 맛을 낸 것이다. (다른 데서는) 물리학에서는 가벼운 원자핵들이 합쳐지는 핵융합을 퓨전이라 부른다.
비밥
(말뜻) 빠르게 꺾이는 가락을 입으로 흉내 낸 소리에서 이름이 왔다고 흔히 설명된다. (재즈에서) 1940년대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 등이 만든 재즈 양식이다. 아주 빠른 속도로 복잡한 화음 위를 달리는 긴 즉흥 선율이 특징이고, 춤을 위한 음악이라기보다 귀 기울여 듣는 연주자들의 음악이었다. 줄넘기로 치면 그냥 뛰기가 아니라 빠른 이단 뛰기와 엇걸어 뛰기를 쉬지 않고 이어 가는 고난도 묘기 같은 것이다. 「도나 리」는 그런 비밥 선율을 베이스로 그대로 연주해 놀라움을 샀다.
펑크 (Funk)
(재즈에서) 1960~70년대 제임스 브라운 등이 이끈 흑인 대중음악으로, 짧게 끊어 치는 기타와 통통 튀는 베이스가 촘촘하게 맞물리며 몸을 들썩이게 하는 리듬이 핵심이다. 파스토리우스는 이 펑크 베이스의 탄력을 재즈 안으로 끌어들였다. 운동장에서 여럿이 줄넘기를 할 때 줄 돌리는 사람과 뛰는 사람의 박자가 딱 맞아떨어져 저절로 신이 나는 느낌, 그것이 펑크의 리듬이 주는 즐거움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우리말로 똑같이 펑크라 적지만, 197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 거칠고 반항적인 록으로 일어난 펑크(Punk)와는 전혀 다른 말이다.
오버더빙
(말뜻) 오버(over)는 위에, 더빙(dubbing)은 소리를 덧입힌다는 뜻이다. 이미 있는 녹음 위에 새 소리를 덧입히는 일이다. (재즈에서) 연주자들이 한자리에서 동시에 녹음하지 않고, 먼저 녹음한 소리를 들으면서 다른 악기나 같은 악기의 소리를 나중에 겹쳐 녹음하는 방법이다. 파스토리우스는 「크라이시스」에서 자신의 베이스만 들려준 채 다른 연주자들이 따로따로 덧녹음하게 했다. 투명한 필름 여러 장에 각각 그림을 그려 겹쳐 보면 한 장의 그림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그루브
(말뜻) 그루브(groove)는 본래 홈이라는 뜻이다. 레코드판에 소리가 새겨진 가느다란 홈도 그루브라 부르는데, 바늘이 홈을 따라 매끄럽게 돌듯 음악이 몸을 타고 흘러가는 느낌을 가리키게 되었다. (재즈에서) 베이스와 드럼이 만드는 반복 리듬이 딱 맞아떨어져 듣는 사람이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구르게 되는 흐름을 말한다. 음표가 정확하다고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연주자들 사이의 미묘한 밀고 당김에서 나온다. 반 친구들과 박수 놀이를 할 때 서로 손이 착착 맞아 점점 신이 나는 순간이 바로 그루브가 생긴 순간이다. (다른 데서는) 목공이나 기계에서는 부품을 끼우려고 파 놓은 홈을 그루브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