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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gei Rachmaninoff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1873–1943)

“나는 러시아 작곡가다. 내가 태어난 땅이 나의 기질과 세계관을 만들었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러시아 노브고로드 출생가세 몰락·누나들의 죽음즈베레프 문하2. 데뷔알레코 대금메달전주곡 C♯단조차이콥스키 추모3. 좌절교향곡 1번 실패달 박사의 치료피아노 협주곡 2번4. 정점나탈리야와 결혼협주곡 3번·말러철야기도5. 망명1917년 출국미국 연주 생활편곡·출판사 타이르6. 말년세나르·파가니니 랩소디교향적 무곡1943년 베벌리힐스라흐마니노프1873–1943몰락한 귀족 집안의 소년이 좌절과 망명을 지나…
삶의 여정 🧭🗺️
N미국러시아독일노브고로드1873–1882모스크바1885–1917드레스덴1906–1909뉴욕1918–1942베벌리힐스1942–1943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스승니콜라이 즈베레프

    낙제생 소년을 집에 들여 엄격한 규율로 피아니스트의 기초를 다져 주었다.

  • 영향표트르 차이콥스키

    어린 시절의 우상이자 '알레코'의 볼쇼이 상연을 격려한 선배로, 그의 죽음에 '비가풍 3중주' 2번이 바쳐졌다.

  • 가족나탈리야 사티나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사촌이자 아내로, 망명 뒤에도 그의 일정과 원고를 지켰다.

  • 우정표도르 샬랴핀

    마몬토프 오페라단에서 만난 베이스 가수로, 가장 어두운 시기에 그를 이탈리아로 데려가 기운을 북돋웠다.

  • 영향구스타프 말러

    1910년 뉴욕에서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지휘하며 보여 준 철저한 리허설로 그의 깊은 존경을 받았다.

  • 우정블라디미르 호로비츠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자기 것으로 만든 후배로, 말년에 가까이 지내며 함께 연주했다.

YouTube에서 6곡 이어 듣기 ↗

I. 영지의 아이 · 1873–1885 (0–12세)

(출생) 1873년 4월(구력 3월 20일), 러시아 제국(오늘날 러시아) 노브고로드 지방의 세묘노보 영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바실리는 군 장교 출신 지주로 피아노를 즐겨 쳤고, 어머니 류보피는 장군의 딸로 여러 영지를 지참금으로 가져왔다. 형 블라디미르, 누나 옐레나와 소피야, 동생 아르카디 등이 있었다. (몰락) 아버지는 돈을 헤프게 써서 영지를 하나씩 잃었다. 마지막 남은 오네그 영지마저 팔리자 1882년 무렵 가족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셋집으로 옮겼고, 얼마 뒤 부모는 갈라섰다. 어머니에게 피아노 첫걸음을 배운 소년은 아홉 살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예비 과정에 들어갔다. (상실) 1883년 누나 소피야가 디프테리아로 숨졌고, 1885년에는 볼쇼이 극장 무대를 앞두고 있던 누나 옐레나가 열여덟 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옐레나는 동생에게 차이콥스키의 노래를 처음 들려준 사람이었다. (종소리) 위안은 외할머니 소피야 부타코바였다. 할머니는 손자를 노브고로드의 교회에 데려가곤 했고, 소년은 그곳의 종소리와 정교회 성가를 평생 귀에 담고 살았다. 훗날 그의 음악에 끊임없이 울리는 종의 음향은 이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낙제) 집안이 흔들리는 사이 소년은 수업을 빼먹고 스케이트를 타러 다녔고, 성적표를 고치기까지 했다. 1885년 일반 과목 시험에 모두 떨어지자, 어머니는 조카이자 리스트의 제자였던 피아니스트 알렉산드르 질로티에게 의견을 구했다. 질로티가 내놓은 답은 모스크바의 엄격한 교사 니콜라이 즈베레프였다.

II. 즈베레프의 집 · 1885–1893 (12–20세)

(규율) 즈베레프는 재능 있는 소년 몇을 집에 들여 무료로 먹이고 가르쳤다. 새벽부터 피아노 앞에 앉는 생활이었지만, 주말이면 극장과 음악회에 데려가 견문을 넓혀 주었다. 이 집에는 모스크바 음악계 인사들이 드나들었고, 그중에 차이콥스키가 있었다. 소년은 그를 우상처럼 따랐다. (결별) 1888년 음악원 본과에 올라 타네예프에게 대위법을, 아렌스키에게 화성을 배웠다. 작곡에 빠져들수록 혼자 쓸 방이 필요했고, 1889년 이를 청했다가 즈베레프와 크게 다투고 집을 나왔다. 그를 받아 준 것은 고모 바르바라 사티나의 집안이었다. 사촌들과 여름을 보낸 탐보프 지방의 이바놉카 영지는 이후 그의 작업실이 됐고, 사촌 나탈리야는 훗날 아내가 된다. (금메달) 1891년 피아노과를 한 해 앞당겨 마쳤고, 이듬해에는 단막 오페라 '알레코'를 17일 만에 써서 작곡과 졸업 대금메달을 받았다. 같은 해 쓴 '전주곡 C♯단조'는 곧 세계로 퍼져 그의 이름표가 됐다. 그러나 출판사에 넘긴 값은 적었고, 러시아가 국제 저작권 협약 밖에 있어 외국 판본에서는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작별) 1893년 봄 '알레코'가 볼쇼이 극장에 올랐을 때 차이콥스키는 객석에서 힘껏 박수를 보냈다. 그해 11월 차이콥스키가 세상을 떠나자, 스무 살의 그는 '비가풍 3중주' 2번(Op.9)을 썼다. 차이콥스키 자신이 니콜라이 루빈시테인을 추모하며 쓴 피아노 3중주의 형식을 그대로 따른 곡이었다.

♪전주곡 C♯단조, Op.3 No.21892 (19세)실황 Evgeny Kissin (피아노) · 2014 Salle Pleyel

갓 졸업한 열아홉 살 청년의 이름을 세계에 알렸지만, 저작권 보호를 받지 못해 정작 그에게는 거의 돈이 되지 않은 곡이다.

  • 첫머리에서 피아노 맨 아래 음역의 세 음(라–솔♯–도♯)이 가장 세게(fff) 내려앉는다. 곡 전체가 이 세 음에서 자라나므로 처음 세 번의 타격을 기억해 두면 좋다.
  • 가운데 부분은 '아지타토(격하게)'로 바뀌어 빠른 셋잇단음(한 박을 셋으로 쪼갠 음)이 소용돌이친다. 앞뒤의 무거운 화음과 대비를 느껴 보자.
  • 첫 주제가 돌아올 때는 악보가 네 줄(4단 보표)로 늘어날 만큼 화음이 두껍게 쌓여 큰 종소리처럼 들린다. 다만 작곡가는 이 곡에 표제를 붙이지 않았다.
  • 마지막은 아주 여리게 사그라든다. 연주자마다 첫 타격의 무게와 끝맺음의 고요함이 크게 달라 비교해 듣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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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긴 침묵 · 1894–1901 (21–28세)

(실패) 1897년 3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교향곡 1번이 초연됐다. 지휘자 알렉산드르 글라주노프는 리허설을 충분히 하지 못했고, 훗날 아내 나탈리야는 그가 술에 취해 있었다고 회고했다. 연주는 엉망이었다. 작곡가 세자르 퀴는 지옥에 음악원이 있다면 그곳 우등생이 쓸 만한 곡이라고 혹평했다. 그는 연주 도중 객석을 빠져나와 계단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침체) 이후 3년 가까이 작곡을 거의 하지 못했다. 생계는 사바 마몬토프의 사설 오페라단 부지휘자 일로 이었다. 그곳에서 젊은 베이스 표도르 샬랴핀을 만나 무소륵스키의 오페라 악보를 함께 파고들었고, 둘은 평생의 벗이 됐다. 1900년 1월 샬랴핀과 함께 톨스토이를 찾아갔지만, 노작가는 그의 노래를 듣고 이런 음악이 누구에게 필요하냐는 투로 말했다고 그는 회고했다. (치료) 사티나 집안의 권유로 1900년 초부터 몇 달 동안 의사 니콜라이 달을 찾았다. 달은 최면 요법과 대화로 당신은 협주곡을 쓰게 될 것이며 일이 술술 풀릴 것이라는 암시를 거듭했다고 전해진다. 그해 여름 샬랴핀의 초대로 이탈리아에서 지내며 기력을 되찾았고, 협주곡의 2악장과 3악장이 먼저 완성됐다. (재기) 1901년 11월 모스크바에서 그가 독주를 맡고 질로티가 지휘해 피아노 협주곡 2번 전곡이 초연됐다. 곡은 달에게 헌정됐다. 4년의 침묵 끝에 나온 이 곡은 실패의 상처를 딛고 선 그 자신의 목소리였고, 첫머리 종소리 같은 화음은 어린 날 들은 교회 종을 떠올리게 한다.

♪피아노 협주곡 2번 C단조, Op.181900–1901 (27–28세)연주 Anna Fedorova (피아노) · 실황

교향곡 1번의 실패 뒤 4년 가까운 침묵을 깨고 나온 곡으로,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의사 니콜라이 달에게 헌정됐다.

  • 피아노 홀로 여린 화음을 여덟 번 울리며 점점 세게 키워 간다. 화음 사이마다 낮은 '파' 음이 끼어들어 멀리서 다가오는 종소리처럼 들린다.
  • 곧이어 주제를 노래하는 것은 현악기이고, 피아노는 화음을 한 음씩 펼쳐 흐르게 하는 분산화음(아르페지오)으로 뒤를 받친다. 독주자가 잠시 주인공 자리를 내주는 대목이다.
  • 2악장에서는 피아노의 잔잔한 분산화음 위로 플루트, 이어 클라리넷이 긴 선율을 부른다. 1975년 팝송 'All by Myself'가 이 선율을 빌려 왔다.
  • 3악장의 서정적인 둘째 주제는 오보에와 비올라가 먼저 부르고 피아노가 이어받는다. 곡 끝에서 이 주제가 오케스트라 전체로 크게 다시 울리는 순간이 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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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이바놉카의 여름 · 1902–1917 (29–44세)

(결혼) 1902년 봄 사촌 나탈리야 사티나와 결혼했다. 사촌 간 혼인이라 황제의 허가가 필요했고, 모스크바의 군 막사 교회에서 조촐하게 식을 올렸다. 음악원에서 피아노를 공부한 나탈리야는 이후 그의 일정과 원고를 챙기는 동반자가 됐다. 1903년 맏딸 이리나, 1907년 둘째 딸 타티야나가 태어났다. (지휘) 1904년부터 두 시즌 동안 볼쇼이 극장 지휘자로 일하며 림스키코르사코프의 '판 보예보다'와 자신의 오페라들을 무대에 올렸다. 1905년 혁명의 소요가 극장에까지 번지자 자리를 내려놓았고, 1906년 가족과 독일 드레스덴으로 옮겨 작곡에 몰두했다. 교향곡 2번, 그리고 뵈클린의 그림을 흑백 복제본으로 보고 쓴 교향시 '죽음의 섬'이 그곳에서 나왔다. (미국) 1909년 첫 미국 순회를 위해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썼고, 대서양을 건너는 배 안에서 소리 나지 않는 연습용 건반으로 손을 풀었다. 이듬해 1월 뉴욕에서는 구스타프 말러가 지휘를 맡았다. 말러는 반주가 만족스러울 때까지 예정 시간을 넘겨 리허설을 이어 갔고, 그는 이 일을 오래 존경심으로 이야기했다. (성가) 여름마다 이바놉카에서 농장 일을 직접 돌보고 자동차를 몰았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5년, 옛 정교회 성가에 바탕을 둔 무반주 합창곡 '철야기도'를 썼다. 같은 해 음악원 동문 스크랴빈과 스승 타네예프가 잇달아 세상을 떠났다. 그는 스크랴빈의 작품으로 추모 순회 연주를 했는데, 그때까지 주로 자기 곡만 치던 그가 남의 곡으로 무대를 채운 첫 순회였다.

♪피아노 협주곡 3번 D단조, Op.301909 (36세)연주 임윤찬 (피아노) · 2022 클라이번 결선

첫 미국 순회를 위해 이바놉카에서 쓴 곡으로, 뉴욕에서 말러의 지휘로도 연주됐다.

  • 첫머리에서 오케스트라의 낮은 반주 위로 피아노가 두 손으로 같은 음을 옥타브(8도) 간격으로 겹쳐 소박한 선율을 부른다. 작곡가는 이 선율이 민요나 성가에서 빌린 것이 아니라 저절로 쓰였다고 말했다.
  • 1악장 카덴차(독주자 혼자 기량을 펼치는 대목)는 두 가지 판본이 있다. 두꺼운 화음으로 몰아치는 '오시아(대안)' 판과 가벼운 원래 판 가운데 연주자가 무엇을 고르는지가 비교 포인트다. 작곡가 자신은 가벼운 판을 녹음했다.
  • 음표가 빽빽하고 손을 크게 벌려야 하는 대목이 많아 가장 어려운 협주곡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호로비츠가 이 곡을 자기 것으로 만들자 작곡가는 그가 곡을 통째로 삼켜 버렸다고 했다.
  • 3악장 중간에 1악장의 주제가 다시 비친다. 처음의 소박한 선율이 마지막에 어떻게 변해 돌아오는지 따라가 보면 곡 전체가 하나로 이어져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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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야기도(저녁기도), Op.371915 (42세)노래 VOCES8 · 「Bogoroditse Devo」

전쟁의 한가운데서 어린 날 할머니와 들었던 정교회 성가로 돌아간 곡으로, 그는 이 가운데 한 곡을 자기 장례식에서 불러 달라고 했다.

  • 악기 없이 목소리만으로 부르는 무반주 합창이다. 열다섯 곡 가운데 열 곡이 즈나메니 성가 같은 옛 정교회 선율에 바탕을 둔다.
  • 5번 '이제는 주의 종을'에서는 테너 독창 위로 합창이 흔들리듯 반복되다가, 끝에서 베이스가 계단처럼 차례로 내려가는(하행) 선율로 아주 낮은 시♭까지 닿는다. 이 음을 내는 가수를 구하는 것이 공연의 관건으로 꼽힌다.
  • 2번 '내 영혼아 주를 찬양하라'는 그리스 성가에 바탕을 두며, 알토 독창이 합창의 잔잔한 울림 위에 떠오른다.
  • 9번 '주님은 찬양받으소서'의 성가 선율은 25년 뒤 마지막 작품 '교향적 무곡'에 다시 나타난다. 이 곡을 기억해 두면 그 순간을 알아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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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망명의 피아니스트 · 1917–1931 (44–58세)

(탈출) 1917년 혁명 뒤 이바놉카는 농민들에게 몰수됐다. 그해 12월 스톡홀름 연주회 초청을 계기로 그는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핀란드를 거쳐 러시아를 떠났다. 짐은 작은 가방 몇 개와 약간의 악보가 전부였고, 그는 다시는 고국 땅을 밟지 못했다. (생계) 1918년 11월 뉴욕에 닿았을 때 그는 마흔다섯이었다. 가족을 먹여 살릴 길은 피아노였다. 자기 작품 위주로만 치던 그는 레퍼토리를 새로 익혀 한 시즌에 수십 차례 무대에 섰고, 스타인웨이, 빅터 레코드와 손잡고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자리 잡았다. 수입이 늘자 어려운 망명객들을 이름을 밝히지 않고 도왔다. (편곡) 앙코르로는 직접 다듬은 편곡을 즐겨 쳤다.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3번, 슈베르트의 가곡 '어디로?', 멘델스존 '한여름 밤의 꿈'의 스케르초, 무소륵스키의 '호파크',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 비제 '아를의 여인'의 미뉴에트가 그의 손을 거쳐 피아노곡이 됐다. 친구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슬픔' 편곡도 있다. (가족) 맏딸 이리나는 1924년 볼콘스키 공과 결혼했으나 이듬해 남편을 잃고 갓난 딸과 남았다. 그는 1925년 파리에 출판사를 세워 두 딸 이름의 첫머리를 따 '타이르(TAIR)'라 이름 짓고, 친구 메트네르 같은 망명 작곡가들의 악보를 펴냈다. (정체) 그러나 정작 작곡은 거의 멈췄다. 고국을 잃으면서 쓰고 싶은 마음도 잃었다고 그는 털어놓았다. 1926년 메트네르에게 바친 피아노 협주곡 4번은 차가운 반응을 얻었고, 1931년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 그 뒤를 이었다.

VI. 세나르와 마지막 춤 · 1931–1943 (58–70세)

(단절) 1931년 소련 체제를 비판하는 공개서한에 이름을 올리자, 소련에서는 한동안 그의 음악이 공식적으로 배척됐다. 고국과의 거리는 더 멀어졌다. (세나르) 같은 무렵 스위스 루체른 호숫가 헤르텐슈타인에 별장을 지었다. 세르게이와 나탈리야의 이름 첫머리에 라흐마니노프의 R을 붙여 '세나르'라 불렀다. 장미를 가꾸고 모터보트를 몰던 이곳에서 1934년 여름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를, 1936년 교향곡 3번을 썼다.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24번은 리스트와 브람스도 변주한 주제였는데, 그는 이 곡에 진노의 날 성가를 엮어 넣었다. (작별) 1939년 유럽에 전쟁이 닥치자 세나르를 떠나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듬해 여름 롱아일랜드에서 마지막 작품 '교향적 무곡'을 완성했다. 이 곡에는 실패했던 교향곡 1번의 주제와 '철야기도'의 성가가 숨어 있고, 악보 끝에 그는 “주여, 감사합니다”라고 적었다. 1928년 뉴욕에서 만난 젊은 피아니스트 호로비츠와는 이 무렵 가까운 사이가 되어, 서로의 집에서 두 대의 피아노로 함께 치곤 했다. (최후) 1942년 캘리포니아 베벌리힐스로 옮겼고, 1943년 2월 미국 시민권을 받았다. 같은 달 녹스빌 연주회를 끝으로 쓰러졌는데, 흑색종이 이미 퍼져 있었다. 3월 28일, 일흔 번째 생일을 나흘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세나르에 묻히기를 바랐으나 전쟁 탓에 뉴욕 근교 켄시코 묘지에 안장됐다. 나탈리야는 1951년, 딸 타티야나와 이리나는 1961년과 1969년에 세상을 떠났다.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 Op.431934 (61세)연주 Daniil Trifonov (피아노) · 18변주

스위스 세나르의 여름에 쓴 곡으로, 그는 훗날 악마에게 영혼을 판 파가니니의 전설을 담은 발레 대본을 안무가 포킨에게 제안하기도 했다.

  • 주제보다 변주 1이 먼저 나온다. 오케스트라가 주제의 뼈대만 툭툭 친 다음에야 바이올린이 파가니니의 주제를 온전히 들려준다.
  • 변주 7에서 피아노는 죽음을 상징하는 중세 성가 '디에스 이레(진노의 날)'를 느리게 연주하고, 오케스트라는 그 아래로 파가니니 주제를 흘린다. 두 선율이 겹치는 순간을 들어 보자.
  • 가장 유명한 변주 18은 주제를 위아래로 뒤집은(전위) 선율을 느리게 늘여 D♭장조로 노래한다. 그는 이 변주를 두고 내 매니저를 위한 것이라고 농담했다고 전해진다.
  • 끝은 거대한 절정 뒤에 피아노가 가볍게 두 음을 툭 치고 끝난다. 장난스럽게 눈짓하는 것처럼 들린다는 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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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적 무곡, Op.451940 (67세)실황 Radio Filharmonisch Orkest · Gardner 지휘

고국에도 세나르에도 돌아갈 수 없게 된 해에 쓴 마지막 작품으로, 실패한 첫 교향곡과 젊은 날의 성가를 조용히 불러냈다.

  • 1악장 가운데에서 알토 색소폰이 쓸쓸한 독주를 맡는다. 그의 관현악에서 드문 악기라 음색이 더욱 도드라진다.
  • 1악장 끝 무렵 현악기가 교향곡 1번의 첫 주제를 장조로 부드럽게 바꿔 부른다. 1941년 초연 때는 그 교향곡의 악보가 사라진 상태라 거의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 2악장은 약음기(소리를 줄이는 마개)를 끼운 금관이 여는 어두운 왈츠다. 그는 처음에 세 악장에 '정오', '황혼', '자정'이라는 제목을 붙이려 했다.
  • 3악장에서는 '디에스 이레'와 '철야기도' 9번의 성가가 맞서다가 성가가 이긴다. 악보에는 '알릴루야'라고 적혀 있으며, 마지막 탐탐(큰 징)을 길게 울리게 둘지 끊을지는 지휘자마다 해석이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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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알려진 이야기

그를 세계에 알린 전주곡 C♯단조는 정작 그를 지치게 했다. 청중이 앙코르마다 이 곡을 외쳐 대자 그는 곡을 '그것'이라고 부르며 질려 했다는 일화가 여러 증언에 남아 있다. 저작권 보호가 없어 수입이 되지 않았다는 사정까지 겹쳐, 이 곡은 그에게 영광이면서 짐이었다. 니콜라이 달의 최면 치료 이야기는 대부분 1934년 리제만이 펴낸 '라흐마니노프의 회상'에 기대고 있다. 그런데 그는 이 책에 자신이 하지 않은 말이 많다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래서 버텐슨과 레이다는 1956년 전기에서 편지와 처제 소피야 사티나의 기억으로 내용을 하나하나 대조해야 했다. 교향곡 1번은 초연 실패 뒤 다시 연주되지 않았고, 그는 악보를 러시아에 두고 떠났다. 그가 죽은 뒤 레닌그라드 음악원 도서관에서 관현악 파트보가 발견됐고, 이를 바탕으로 복원된 총보가 1945년 모스크바에서 연주됐다. '교향적 무곡'에 숨은 인용이 이 복원 뒤에야 비로소 들리게 된 셈이다. 소련 체제를 비판한 그였지만 1941년 독소전이 시작되자 연주회 수익을 러시아 전쟁 구호에 보냈고, 소련 측에 직접 기부하며 한 러시아인이 러시아 민중의 싸움에 보태는 것이라는 글을 붙였다. 반공 망명객이라는 이미지에 가려 덜 언급되는 대목이다.

용어 노트 📚🔎

전주곡

(말뜻) 전주곡(前奏曲)은 앞에(前) 연주하는(奏) 곡이라는 뜻이다. 서양 이름 프렐류드도 라틴어 praeludere, 곧 미리 연주한다는 말에서 왔다. (음악에서) 원래는 큰 곡이나 예배 앞에 분위기를 잡으려고 짧게 연주하던 곡이었다. 바흐는 전주곡 뒤에 푸가를 붙였고, 쇼팽부터는 전주곡이 뒤에 아무것도 오지 않는 독립된 소품이 됐다. 라흐마니노프도 쇼팽처럼 모든 조성을 하나씩 돌며 전주곡 24곡을 썼다. 체육 시간 본운동 전에 하는 준비 운동이 전주곡의 원래 쓰임과 닮았지만, 쇼팽 이후의 전주곡은 준비 운동만으로 한 편의 경기가 된 셈이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는 '비극의 전주곡'처럼 어떤 큰일이 일어나기 전의 조짐이라는 뜻으로 쓴다.

협주곡

(말뜻) 협주곡(協奏曲)은 함께(協) 연주하는(奏) 곡이라는 뜻이다. 서양 이름 콘체르토의 라틴어 뿌리 concertare 에는 겨루다라는 뜻도 있어서, 독주자와 오케스트라가 겨루듯 주고받는 이 음악의 성격이 이름에 이미 들어 있다. (음악에서) 피아노나 바이올린 같은 독주 악기 하나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하는 곡이다. 보통 빠르게–느리게–빠르게의 세 악장으로 되어 있다. 학급 발표회에서 한 친구가 앞에 나와 독창을 하고 반 전체가 뒤에서 합창으로 받쳐 주다가, 어떤 대목에서는 반 전체가 주인공이 되는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카덴차

(말뜻) 이탈리아어 카덴차(cadenza)는 '떨어지다'라는 라틴어 cadere 에서 나온 말로, 곡이 끝을 향해 내려앉는 마침(종지)을 가리켰다. 원래 마침 직전에 독주자가 장식을 덧붙이던 자리였기에 이 이름이 붙었다. (음악에서) 협주곡에서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멈추고 독주자 혼자 화려한 기교를 펼쳐 보이는 대목이다. 예전에는 즉흥으로 연주했지만, 라흐마니노프 시대에는 작곡가가 악보에 직접 써 넣었다. 농구 경기 중간 쉬는 시간에 모두 물러나고 한 선수만 나와 덩크 묘기를 보여 주는 순간과 비슷하다.

변주곡

(말뜻) 변주곡(變奏曲)은 바꾸어(變) 연주하는(奏) 곡이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먼저 짧은 주제를 들려준 다음, 그 주제를 빠르기·리듬·화음·분위기를 바꿔 가며 여러 번 다시 들려주는 곡이다. 주제의 뼈대는 남아 있어서 듣는 사람은 모습이 바뀌어도 같은 선율임을 알아챈다. 같은 라면을 어느 날은 치즈를, 어느 날은 김치를 넣어 끓여도 라면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것과 같다.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는 주제 하나로 변주를 스물네 번 이어 간다. (다른 데서는) 생물학에서는 같은 영어 variation 을 같은 종 안의 개체 차이, 곧 변이라는 뜻으로 쓴다.

교향시

(말뜻) 교향시(交響詩)는 오케스트라가 함께 울리는 곡(교향)과 시(詩)를 합친 말로, 시처럼 이야기나 장면을 담은 관현악곡이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그림·시·소설·전설 같은 바깥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한 악장짜리 관현악곡이다. 리스트가 이 이름을 처음 만들어 썼다. 라흐마니노프의 '죽음의 섬'은 뵈클린의 그림 속, 노 젓는 배가 관을 싣고 바위섬으로 다가가는 장면을 소리로 그렸다. 미술 시간에 본 그림 한 장을 놓고 글짓기를 하듯, 그림을 보고 소리로 이야기를 지어낸 셈이다.

무반주 합창

(말뜻) 흔히 '아 카펠라(a cappella)'라고도 하는데, 이탈리아어로 '예배당(cappella) 식으로'라는 뜻이다. 옛 예배당에서 악기 없이 목소리로만 부르던 데서 나온 이름이다. (음악에서) 피아노나 오케스트라 같은 악기 반주 없이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부르는 합창이다. 러시아 정교회는 예배에서 악기를 쓰지 않아서, 라흐마니노프의 '철야기도'도 목소리만으로 오르간 같은 낮은 울림과 종소리 같은 효과까지 만들어 낸다. 음악 시간에 반주 없이 친구들끼리 화음을 맞춰 불러 본 적이 있다면, 서로의 소리를 더 잘 들어야 음이 맞는다는 것을 느꼈을 텐데 바로 그 원리다.

디에스 이레

(말뜻) 라틴어 Dies irae 는 '진노의 날'이라는 뜻으로, 세상 끝 심판의 날을 가리킨다. (음악에서) 가톨릭 장례 미사(레퀴엠)에서 부르던 중세 그레고리오 성가의 첫머리다. 차례로 내려가는 짧은 몇 음이 너무 유명해져서,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과 리스트의 '죽음의 무도'처럼 죽음을 나타내고 싶은 작곡가들이 즐겨 인용했다. 라흐마니노프는 거의 집착하듯 이 선율을 여러 작품에 넣었다. 영화에서 악당이 나올 때마다 같은 짧은 음악이 흘러 그것만 들어도 누가 나올지 아는 것처럼, 이 몇 음은 듣는 순간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신호다.

분산화음(아르페지오)

(말뜻) 아르페지오(arpeggio)는 이탈리아어로 하프(arpa)를 뜻하는 말에서 나왔다. 하프를 탈 때처럼 줄을 하나씩 차례로 튕기는 연주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화음을 이루는 여러 음을 한꺼번에 누르지 않고 한 음씩 펼쳐서 흐르게 연주하는 방법이다. 같은 화음이라도 물결처럼 출렁이는 느낌이 생긴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에서 피아노는 이 분산화음으로 오케스트라의 선율을 받친다. 기타의 여섯 줄을 한꺼번에 긁지 않고 아래 줄부터 하나씩 튕겨 보면 바로 분산화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