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éo Delibes
성당 오르간과 극장 연습실에서 자라, 발레 음악에 교향악의 품격을 들여온 파리의 작곡가.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스승아돌프 아당
〈지젤〉의 작곡가로, 파리 음악원에서 들리브에게 작곡을 가르치며 발레 음악의 길을 열어 주었다.
- 후원자크 오펜바흐
자신의 부프파리지앵 극장에 젊은 들리브의 오페레타를 올려 무대 작곡가로서 첫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 가족레옹틴 에스텔 드냉
코메디프랑세즈 배우의 딸로, 1871년 들리브와 결혼해 그가 겸직을 그만두고 작곡에 전념하던 시기를 함께했다.
- 영향표트르 차이콥스키
〈실비아〉를 듣고 이 음악을 먼저 알았다면 〈백조의 호수〉를 쓰지 않았으리라고 편지에 적을 만큼 들리브의 발레 음악에 감탄했다.
- 우정쥘 마스네
들리브가 세상을 떠난 뒤 미완의 오페라 〈카시아〉를 정리하고 관현악 편곡을 마무리해 1893년 초연에 이르게 했다.
I. 라플레슈의 소년 · 1836–1853 (0–17세)
(출생) 1836년 2월, 프랑스 서부 사르트 지방의 생제르맹뒤발(오늘날 라플레슈의 일부)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클레망 필리베르 레오 들리브였다. 아버지는 우편 업무를 맡은 공무원이었고, 어머니 클레망스 바티스트는 음악가 집안 출신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오페라 무대에서 노래한 성악가였고, 외삼촌 에두아르 바티스트는 파리에서 이름난 오르가니스트이자 파리 음악원 교수였다. (상실) 1847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열한 살 아들을 데리고 파리로 옮겼다. 형제자매에 대해서는 남은 기록이 거의 없다. 홀로 된 어머니에게 외가의 음악 인맥은 중요한 버팀목이었고, 소년은 그해 파리 음악원에 들어갔다. (성가대) 그는 마들렌 성당의 소년 성가대원으로 노래했다. 1849년에는 마이어베어의 대작 오페라 〈예언자〉 초연 무대에 어린 합창 단원으로 섰다고 전해진다. 합창과 관현악, 무대 장치가 한데 움직이는 파리 오페라 극장의 광경을 그는 무대 안쪽에서 보았다. 극장은 그가 처음 음악을 배운 장소 가운데 하나였다. (음악원) 음악원에서는 1850년 솔페주(악보를 읽고 노래하는 기초 훈련) 부문 1등상을 받았다. 이어 오르간을 프랑수아 브누아에게, 작곡을 아돌프 아당에게 배웠다. 아당은 발레 〈지젤〉의 작곡가였다. 춤을 위한 음악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그는 스승의 작품에서 먼저 익혔다. 훗날 그가 발레로 이름을 얻게 되는 길은 이 사제 관계에서 시작되었다.
II. 오르간과 극장 사이 · 1853–1866 (17–30세)
(겸직) 1853년, 열일곱 살의 들리브는 두 가지 일을 함께 맡았다. 하나는 파리 생피에르드샤이오 성당의 오르가니스트, 다른 하나는 테아트르 리리크의 반주자(가수들의 연습을 피아노로 이끄는 역할)였다. 주일에는 성당 오르간 앞에, 평일에는 극장 연습실에 앉았다. 성당은 몇 차례 옮겼지만 오르가니스트 일은 1871년까지 이어졌다. 생계를 위한 겸직이었고, 동시에 교회 음악과 무대 음악을 함께 몸에 익히는 시간이었다. (리리크) 테아트르 리리크는 새 프랑스 오페라를 활발히 올리던 극장이었다. 1859년 구노의 〈파우스트〉가, 1863년 비제의 〈진주잡이〉가 이곳에서 초연되었다. 들리브는 가수들과 악보를 한 줄씩 맞추며 무대 음악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겪었다. (오페레타) 그는 이 무렵 가벼운 희가극(오페레타)을 잇달아 썼다. 1856년 에르베가 운영하던 폴리누벨 극장에서 단막극 〈석탄 두 푼〉을 올렸고, 같은 해 오펜바흐의 부프파리지앵 극장에서 〈두 늙은 경비병〉이 호평을 받았다. 이후 10여 년 동안 이런 소품을 여러 편 무대에 올렸다. 큰 명성은 아니었지만 짧은 장면 안에서 선율로 인물의 성격을 그려 내는 솜씨가 이때 다듬어졌다. (오페라극장) 1864년 그는 파리 오페라 극장의 제2합창 지휘자로 자리를 옮겼다. 2년 뒤 극장은 새 발레 〈샘〉의 음악을 그와, 빈 태생으로 러시아에서 활동하던 루트비히 밍쿠스에게 나누어 맡겼다. 들리브가 쓴 2막과 3막 첫 장면이 더 신선하다는 평을 받았고, 극장 안에서 그는 발레 작곡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III. 코펠리아 · 1866–1871 (30–35세)
(꽃) 1867년 오페라 극장은 스승 아당의 발레 〈해적〉을 다시 올리면서 들리브에게 새 장면을 청했다. 그가 쓴 왈츠 〈꽃의 춤〉은 1856년에 세상을 떠난 스승의 작품에 제자가 덧붙인 음악이었다. (코펠리아) 1870년 5월 25일 〈코펠리아〉가 초연되었다. E. T. A. 호프만의 단편 「모래 사나이」에서 착상해 샤를 뉘테르와 안무가 아르튀르 생레옹이 대본을 꾸몄다. 인형장이 코펠리우스가 만든 자동인형 코펠리아에게 마음을 빼앗긴 청년 프란츠, 그리고 인형인 척하며 그를 되찾는 약혼녀 스와닐다의 이야기다. 원작의 섬뜩함은 덜어 내고 희극으로 바꾸었다. (동기) 들리브는 인물과 장면마다 정해진 짧은 선율, 곧 유도동기(라이트모티프)를 되풀이해 이야기를 이끌었다. 헝가리의 차르다시, 폴란드의 마주르카 같은 민속 춤곡을 발레 무대에 본격적으로 들여온 점도 새로웠다. 발레 음악이 춤의 반주에 머물지 않고 극의 흐름을 스스로 끌고 갈 수 있음을 이 작품이 보여 주었다. (전쟁) 성공의 기쁨은 짧았다. 두 달 뒤 프로이센과의 전쟁이 일어났고 파리는 포위되었다. 9월에 생레옹이 세상을 떠났고, 11월에는 스와닐다를 춤춘 발레리나 주세피나 보차키가 포위된 도시에서 병으로 숨졌다. 열일곱 번째 생일이었다. 작품을 함께 만든 두 사람을 그는 한 해에 잃었다. (결혼) 1871년 들리브는 오페라 극장의 자리와 오르가니스트 일을 모두 내려놓았다. 같은 해 코메디프랑세즈 배우 드냉의 딸 레옹틴 에스텔 드냉과 결혼했다. 〈코펠리아〉의 성공과 결혼 뒤의 안정 속에서 그는 처음으로 겸직 없이 작곡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두 사람 사이에 자녀가 있었다는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스승 아당의 발레를 다시 올리며 제자가 덧붙인 왈츠다. 〈코펠리아〉 직전, 들리브의 발레 선율이 어떤 빛깔이었는지 가장 짧게 보여 준다.
- 원래 〈해적〉에서 무희들이 꽃 정원을 이루는 장면을 위해 쓴 곡이다. 한 마디에 세 박씩 흔들리는 왈츠 리듬 위로 선율이 길게 부풀었다 가라앉는다.
- 에르뇌 도흐나니가 이 곡을 화려한 피아노 독주곡으로 편곡한 '나일라 왈츠'는 피아니스트들의 앙코르 곡으로 사랑받는다. 관현악판과 피아노판을 나란히 들어 보면 같은 선율이 얼마나 다르게 빛나는지 알 수 있다.
- 관현악판에서는 현악기가 주선율을 노래하는 동안 목관악기가 장식처럼 덧붙이는 짧은 음형에 귀를 기울여 보자.
전쟁과 상실 직전에 완성된 희극 발레로, 유도동기와 민속 춤곡을 들여와 발레 음악을 극의 주인공으로 끌어올렸다. 초연의 주역 두 사람을 그해 잃었다는 사실을 알고 들으면 그 밝음이 다르게 다가온다.
- 전주곡은 호른이 느리고 엄숙한 선율로 문을 연 뒤, 곧 폴란드 춤곡인 마주르카의 힘찬 리듬으로 바뀐다. 셋째 박이 아니라 둘째 박에 무게가 실리는 독특한 강세를 따라가 보자.
- 1막의 차르다시(헝가리 춤)는 느리고 무겁게 시작해 점점 빨라지며 몰아친다. 속도가 바뀌는 순간마다 무대의 분위기도 달라진다.
- 2막에서 스와닐다가 인형 코펠리아인 척 춤추는 장면의 음악은 뚝뚝 끊기는 리듬이 태엽 감긴 인형의 몸짓처럼 들린다. 그러다 점점 사람의 춤으로 풀려 가는 대목이 이 발레의 재치다.
- 3막의 '시간의 왈츠'와 '기도'는 축제 장면으로 이어지는 모음곡이다. 앞의 희극과 달리 서정적인 선율이 길게 펼쳐진다.
IV. 실비아 · 1871–1880 (35–44세)
(희가극) 1873년 그는 첫 본격 오페라 코미크(노래 사이에 대사가 들어가는 프랑스 오페라) 〈왕이 그렇게 말했다〉를 올렸다. 17세기 궁정을 배경으로 한 가벼운 희극으로, 프랑스 밖에서도 공연되었다. 오페레타 작곡가에서 극장 작곡가로 넘어가는 다리가 된 작품이었다. (카디스) 이듬해에는 알프레드 드 뮈세의 시에 곡을 붙인 가곡 〈카디스의 처녀들〉을 썼다. 에스파냐풍 리듬이 춤추듯 흐르는 이 노래는 곧 소프라노들의 애창곡이 되었다. 당시 파리에 번지던 에스파냐 취향을 그는 가볍고 산뜻한 선율로 받아 냈다. (실비아) 1875년 새로 문을 연 오페라 극장(팔레 가르니에)은 그에게 대작 발레를 맡겼다. 1876년 6월 14일 초연된 〈실비아〉는 이탈리아 시인 타소의 목가극 〈아민타〉에서 이야기를 빌렸다. 여신 디아나를 섬기는 사냥꾼 요정 실비아와 양치기 아민타의 사랑이 줄거리다. 음악은 높이 평가받았지만 신화 이야기를 엮은 대본에 대해서는 평이 엇갈렸고, 초기의 인기는 〈코펠리아〉에 미치지 못했다. (차이콥스키) 음악가들의 반응은 달랐다. 1877년 빈에서 〈실비아〉를 들은 차이콥스키는 친구이자 제자인 세르게이 타네예프에게 보낸 편지에, 이 음악을 먼저 알았더라면 〈백조의 호수〉를 쓰지 않았을 것이라는 뜻을 적었다. 차이콥스키는 들리브의 관현악이 지닌 우아함과 리듬의 생기를 높이 샀고, 그가 뒤에 쓴 발레들을 두고 들리브의 영향이 자주 거론된다. (명예) 1877년 그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1880년에는 중세 프랑스 전설을 소재로 한 오페라 〈장 드 니벨〉을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 올려 꾸준한 공연 횟수를 기록했다. 성당 반주자로 출발한 그는 이제 파리 음악계가 인정하는 중견 작곡가였다.
결혼 뒤 안정된 시기, 오페라 코미크로 영역을 넓히던 무렵에 쓴 노래다. 파리의 에스파냐 취향을 가볍고 재치 있는 선율로 담았다.
- 피아노 반주가 에스파냐 춤 볼레로의 리듬(한 마디 세 박에 잘게 쪼갠 첫 박)을 끝까지 이어 간다. 노래보다 먼저 반주의 리듬에 귀를 기울여 보자.
- 뮈세의 시는 투우를 보고 돌아오던 카디스의 처녀들이 돈으로 마음을 사려는 남자를 웃어넘기는 이야기다. 후렴의 '아 라 라'는 그 웃음처럼 들린다.
- 후렴에서 목소리가 빠르게 굴리는 꾸밈 음형은 소프라노의 기교(콜로라투라)를 보여 주는 대목이라, 가수마다 속도와 장식을 다르게 처리한다.
새 오페라 극장을 위해 쓴 대작으로, 대본은 엇갈린 평을 받았지만 음악은 차이콥스키를 감탄하게 했다.
- 1막 '사냥꾼 여신들'은 호른의 사냥 신호로 시작한다. 숲에서 여신 디아나를 섬기는 사냥꾼 요정들이 등장하는 장면을 금관이 그린다.
- 3막의 '피치카티'는 현악기가 활 대신 손가락으로 줄을 튕기는 주법(피치카토)으로 연주된다. 짧게 끊어지는 음들이 실비아의 경쾌한 발끝처럼 들려, 발레 음악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대목의 하나가 되었다.
- 3막 '바쿠스의 행렬'은 금관과 타악기가 이끄는 위풍당당한 행진곡이다. 큰 극장의 무대를 가득 채우는 관현악의 무게를 느껴 보자.
- 차이콥스키가 감탄한 것은 이런 관현악의 빛깔이었다. 그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 왈츠와 이 발레의 왈츠를 이어 들어 보면 두 사람의 거리를 가늠해 볼 수 있다.
V. 라크메 · 1880–1884 (44–48세)
(교수) 1881년 그는 파리 음악원 작곡 교수로 임명되었다. 오페레타와 극장 연습실에서 경력을 쌓은 그가 음악원의 작곡 교단에 선 것이다. 그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 자리를 지켰다. (옛춤) 1882년 코메디프랑세즈가 빅토르 위고의 희곡 〈왕은 즐긴다〉를 다시 무대에 올렸다. 1832년 초연 직후 상연이 금지되었던 작품으로, 베르디의 〈리골레토〉가 바로 이 희곡에서 나왔다. 50년 만의 재상연에서 극음악을 맡은 들리브는 16세기 궁정 춤곡을 본뜬 '옛 양식의 춤곡'을 썼다. 옛 형식을 19세기 관현악으로 새로 짜는 작업이었다. (라크메) 1883년 4월 14일,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서 〈라크메〉가 초연되었다. 대본은 에드몽 공디네와 필리프 질이 피에르 로티의 소설 『로티의 결혼』에서 착상해 썼다. 영국 지배하의 인도에서 브라만 사제의 딸 라크메와 영국 장교 제럴드가 사랑에 빠지고, 끝내 라크메가 독이 든 꽃잎을 먹고 죽는 이야기다. 타이틀 롤은 미국 출신의 젊은 소프라노 마리 반 잔트가 맡았다. (이국) 당시 파리는 동방과 식민지에 대한 관심이 짙었다. 8년 전 같은 극장에서 비제의 〈카르멘〉이 초연되었듯, 〈라크메〉도 낯선 땅의 여인과 이방인 남자의 사랑을 그렸다. 들리브가 그린 인도는 실제 인도 음악이라기보다 프랑스 관객이 상상하던 동방의 빛깔이었다. 1막 〈꽃의 이중창〉의 잔잔한 물결과 2막 〈종의 노래〉의 화려한 기교는 곧 작품을 대표하는 장면이 되었다. (학사원) 〈라크메〉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듬해인 1884년 그는 빅토르 마세의 뒤를 이어 프랑스 학사원 예술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프랑스 음악가에게 주어지는 가장 높은 명예 가운데 하나였다.
베르디 〈리골레토〉의 원작인 위고의 희곡을 다시 올릴 때 쓴 극음악으로, 16세기 궁정 춤을 19세기 관현악으로 되살렸다.
- 가야르드는 힘차게 뛰어오르는 3박의 궁정 춤이다. 도약하는 듯한 리듬이 옛 궁정 무도회를 떠올리게 한다.
- 파반은 느리고 위엄 있는 2박의 행렬 춤이다. 옛 교회 선법을 흉내 낸 듯한 낯선 화음이 오래된 시대의 빛깔을 낸다.
- 빠른 3박의 파스피에에서는 목관악기들이 가볍게 주고받는 대화에 귀를 기울여 보자.
- 옛 춤곡을 새 관현악으로 다시 짜는 이런 시도는 뒤 세대 프랑스 작곡가들의 작업과 견주어 들어 볼 만하다.
1막에서 라크메가 하녀 말리카와 함께 꽃을 따러 강으로 나서며 부르는 노래로, 비극이 시작되기 전의 고요함을 담았다.
- 가사 '울창한 숲의 둥근 지붕 아래'처럼, 두 여인이 배를 타고 꽃이 핀 강가로 미끄러져 가는 장면이다. 하프와 현악기의 반주가 잔물결처럼 흔들린다.
- 두 목소리가 3도·6도 간격(서로 잘 어울리는 음 거리)으로 나란히 겹쳐 흐르다, 서로 엇갈리며 주고받는 대목이 이 노래의 아름다움이다.
- 20세기 후반 항공사 광고와 영화에 쓰이며 오페라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익숙해진 선율이다. 오페라 안에서 이어 들으면 그 뒤에 오는 비극과의 대비가 선명해진다.
2막에서 아버지가 딸을 시장에서 노래하게 해 그 목소리로 영국 장교를 꾀어내려는 장면이다. 사랑이 덫이 되는 순간에 가장 화려한 노래가 놓였다.
- 첫머리에서 소프라노는 반주 없이 가사 없는 모음 '아—'로 길게 노래한다. 극장 전체가 숨을 죽이는 순간이다.
- 노래가 들려주는 것은 숲에서 길 잃은 나그네를 방울 소리로 구한 천민 소녀의 전설이다. 목소리가 짧게 끊어 튀는 음(스타카토)으로 방울 소리를 흉내 내는 대목에 귀를 기울여 보자.
- 마지막에 치솟는 높은 미(E) 음은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의 시금석으로 꼽힌다. 릴리 퐁스, 조앤 서덜랜드, 나탈리 드세 등의 녹음을 비교해 들으면 같은 악보가 얼마나 다르게 해석되는지 알 수 있다.
VI. 미완의 카시아 · 1884–1891 (48–55세)
(카시아) 〈라크메〉 이후 그는 새 오페라 〈카시아〉에 매달렸다. 오스트리아 작가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동유럽 갈리치아 지방을 무대로 한 작품이었다. 그는 공들여 고치기를 거듭했고, 작업은 몇 해가 지나도 끝나지 않았다. 그사이에도 음악원 교단은 지켰다. (성품) 동시대인들은 그를 온화하고 붙임성 있는 사람으로 기억했다. 그의 음악이 지닌 맑고 단정한 성격, 과장 없이 선율과 관현악의 빛깔로 장면을 그리는 방식도 그런 인상과 잘 어울린다. (죽음) 1891년 1월 16일, 그는 파리에서 쉰네 살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카시아〉는 미완으로 남았다. 그는 몽마르트르 묘지에 묻혔다. (마스네) 남은 악보는 동료 작곡가 쥘 마스네가 맡아 정리하고 관현악 편곡을 마무리했다. 〈카시아〉는 1893년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서 초연되었지만 오래 무대에 남지 못했다. 대신 두 편의 발레 〈코펠리아〉와 〈실비아〉, 그리고 오페라 〈라크메〉는 지금까지 세계의 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다. (유산) 그가 등장하기 전 프랑스 발레 음악은 무용수를 받쳐 주는 반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발레에 교향악 수준의 관현악과 유도동기를 통한 극적 짜임을 들여왔고, 그 흐름은 차이콥스키를 거쳐 이후의 발레 음악으로 이어졌다. 성당 오르간 앞의 소년, 극장 연습실의 반주자로 보낸 시간이 그 작품들의 바탕이었다.
덜 알려진 이야기
(남장) 1870년 〈코펠리아〉 초연에서 청년 프란츠는 남자 무용수가 아니라 여성 무용수 외제니 피오크르가 남장으로 춤추었다. 19세기 중반 파리 오페라 극장은 발레리나 중심의 무대였고 남성 무용수의 입지가 좁아, 이런 배역이 드물지 않았다.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는 프란츠를 여성이 추는 관습이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졌다. 오늘날 프란츠는 당연히 남성 무용수의 배역이어서, 이 사실은 공연 해설에서나 가끔 언급된다. (나일라) 흔히 '나일라 왈츠'로 불리는 곡은 사실 〈샘〉이 아니라 1867년 아당의 〈해적〉 재상연을 위해 쓴 〈꽃의 춤〉이다. 나일라는 〈샘〉의 여주인공 이름인데, 두 작품의 음악이 어떤 경위로 한 이름 아래 묶였는지는 분명히 정리되어 있지 않다. 도흐나니의 피아노 편곡이 이 이름으로 널리 퍼지면서 오늘날까지 굳어졌다. 한 발레를 위해 쓴 음악이 다른 발레의 이름으로 불리는 일은, 장면을 덧붙이고 빼는 일이 잦던 19세기 극장 관행의 흔적이다. (천 번) 〈라크메〉는 초연 뒤 반세기 가까이 오페라 코미크 극장의 대표 레퍼토리였고, 1931년에 이 극장에서 천 번째 공연을 맞았다. 그 뒤 한동안 공연이 줄었지만, 20세기 후반 〈꽃의 이중창〉이 광고와 영화에 잇달아 쓰이면서 작품 전체가 다시 관심을 받게 되었다. 오늘날 이 선율을 아는 사람 가운데 상당수는 그것이 비극 오페라의 한 장면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듣는다.
용어 노트 📚🔎
발레
(말뜻) 이탈리아어 ballare(춤추다)에서 나온 balletto(작은 춤)가 프랑스로 건너가 ballet가 되었다. (음악에서) 대사나 노래 없이 춤과 음악, 무대만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공연이다. 음악은 무용수의 동작에 박자를 주는 동시에 인물의 감정과 장면의 분위기를 대신 말해 준다. 소리를 끄고 만화 영화를 보면 줄거리는 알아도 긴장감이 사라지는데, 발레 음악은 그 배경 음악과 대사를 한꺼번에 맡는 셈이다. 들리브는 이 음악이 반주를 넘어 이야기를 이끌 수 있게 만든 작곡가로 꼽힌다.
오페레타
(말뜻) 이탈리아어 opera(오페라)에 작다는 뜻의 꼬리 -etta가 붙어 작은 오페라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노래와 대사가 섞이고, 줄거리가 가볍고 우스운 짧은 오페라를 말한다. 19세기 중반 파리에서 오펜바흐와 에르베가 유행시켰다. 학교 축제에서 반 친구들이 짧은 콩트에 노래를 섞어 공연하는 것을 떠올리면 비슷하다. 들리브는 젊은 시절 이런 작품을 여러 편 쓰며 무대 음악을 익혔다.
오페라 코미크
(말뜻) 프랑스어로 희극 오페라라는 뜻이지만, 이름과 달리 내용이 꼭 우스운 것은 아니다. (음악에서) 노래와 노래 사이에 말로 하는 대사가 들어가는 프랑스식 오페라를 가리킨다.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로만 이어지는 대작 오페라와 구별하려고 생긴 이름이라, 주인공이 죽는 비극인 〈카르멘〉과 〈라크메〉도 오페라 코미크로 분류된다. 뮤지컬에서 배우가 대사를 주고받다가 노래로 넘어가는 방식과 닮았다. 같은 이름의 파리 극장(오페라 코미크 극장)을 가리킬 때도 쓴다.
유도동기(라이트모티프)
(말뜻) 독일어 Leitmotiv는 이끄는(leit) 동기(Motiv)라는 뜻이다. 이야기를 이끄는 짧은 음악 조각이라는 말이다. (음악에서) 특정 인물이나 사물, 생각에 짧은 선율을 하나씩 붙여 두고, 그것이 나올 때마다 그 선율을 다시 들려주는 기법이다. 바그너의 오페라로 유명해졌고, 들리브는 이를 발레에 들여왔다. 영화에서 악당이 나타나기 직전 늘 같은 음악이 깔려, 화면을 보기 전에 누가 올지 알게 되는 것과 같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는 어떤 작품이나 사람의 삶에 되풀이되는 주된 주제를 가리키는 말로도 쓴다.
마주르카
(말뜻) 폴란드 마조프셰(마조비아) 지방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에서 나온 이름이다. (음악에서) 폴란드의 민속 춤곡으로, 한 마디가 세 박이지만 왈츠처럼 첫 박이 아니라 둘째나 셋째 박에 힘을 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발을 구르는 듯 독특하게 출렁인다. 줄넘기를 할 때 일부러 박자를 한 칸 늦춰 힘을 주면 리듬이 달라지는 것과 비슷하다. 〈코펠리아〉 전주곡과 1막에 나오며, 쇼팽의 피아노 곡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피치카토
(말뜻) 이탈리아어 pizzicare(꼬집다)에서 왔다. 줄을 꼬집듯 튕긴다는 뜻이다. (음악에서) 바이올린이나 첼로 같은 현악기를 활로 긋지 않고 손가락으로 줄을 튕겨 소리 내는 연주법이다. 소리가 짧고 톡톡 끊어지며, 오래 울리지 않는다. 고무줄을 손가락으로 튕길 때 나는 짧은 소리를 떠올리면 된다. 〈실비아〉 3막의 '피치카티'는 이 주법으로 한 곡을 통째로 꾸민 유명한 예다.
콜로라투라
(말뜻) 이탈리아어 colorare(색칠하다)에서 나온 말로, 선율에 색을 입힌다는 뜻이다. (음악에서) 빠르게 굴리는 음, 높이 치솟는 음, 짧게 튀는 음처럼 화려한 꾸밈이 많은 노래 기교를 말한다. 이런 노래를 잘 부르는 높은 소프라노를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라고 부른다. 리듬 게임에서 가장 어려운 단계의 빠른 연타 구간을 실수 없이 통과하는 것처럼, 정확함과 화려함을 함께 갖춰야 한다. 〈라크메〉의 〈종의 노래〉가 대표적인 시험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