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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s Bizet

조르주 비제 (1838–1875)

서른여섯에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오페라가 실패한 줄로 알고 떠났지만, 그 작품은 훗날 가장 많이 공연되는 오페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프랑스 파리 출생성악 교사 아버지피아니스트 어머니2. 수련열 살 음악원 입학구노의 영향교향곡 다장조3. 로마로마대상 수상메디치 저택벗 에르네스트 기로4. 곤궁어머니의 죽음편곡으로 생계진주잡이5. 가정주느비에브와 결혼보불전쟁 참전아를의 여인6. 카르멘1875년 초연서른여섯의 죽음사후 세계적 성공비제1838–1875「카르멘」의 성공을 보지 못하고 서른여섯에 떠…
삶의 여정 🧭🗺️
N이탈리아프랑스파리1838–1857로마1858–1860파리1860–1875부지발1874–1875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가족에메 델사르트

    피아노를 잘 친 어머니로, 아들에게 처음 음표를 가르쳤고 로마 시절 편지의 주된 상대였다.

  • 스승프로망탈 알레비

    음악원의 작곡 스승이었고, 훗날 비제는 그의 딸과 결혼해 사위가 되었다.

  • 영향샤를 구노

    젊은 비제의 선율 감각을 빚은 선배로, 교향곡 다장조의 본보기가 되었고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읽었다.

  • 우정에르네스트 기로

    로마에서 사귄 평생의 벗으로, 비제 사후 「카르멘」의 레치타티보와 「아를의 여인」 제2모음곡을 만들었다.

  • 가족주느비에브 알레비

    1869년 결혼한 아내로, 비제가 죽은 뒤 재혼해 파리의 이름난 살롱을 이끌었다.

  • 영향표트르 차이콥스키

    「카르멘」에 매료되어 이 작품이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오페라가 되리라고 내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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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파리의 외아들 · 1838–1848 (0–10세)

(출생) 1838년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날짜는 25일이었다. 출생 신고에는 알렉상드르세자르레오폴이라는 이름이 올랐으나, 세례 때 받은 조르주라는 이름이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아버지 아돌프 비제는 가발 만드는 일과 이발 일을 하다가 성악 교사로 직업을 바꾼 사람이었다. 정규 음악 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노래를 가르치며 작은 곡을 쓰기도 했다. (어머니) 어머니 에메 델사르트는 피아노를 잘 쳤고, 집안에 음악가가 여럿 있었다. 그녀의 오빠 프랑수아 델사르트는 파리에서 이름난 성악 교사였다. 비제는 형제 없이 자란 외아들이었고, 어머니는 그에게 글자와 함께 음표를 가르쳤다. 어머니를 향한 애착은 각별했다. 훗날 로마에서 보낸 편지도 대부분 그녀에게 쓴 것이었다. (문틈) 아버지가 거실에서 학생들에게 노래를 가르칠 때, 어린 비제가 문밖에서 그 소리를 듣고 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노래하는 목소리가 늘 집 안에 흐르던 환경이었다. 그가 훗날 무엇보다 성악과 극장을 위한 작곡가가 된 것이 이 환경과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입학) 귀가 남다르다는 점은 일찍 드러났다. 부모는 아들을 파리 음악원에 보내기로 했다. 입학 규정 나이에 조금 모자랐지만 실력을 인정받아, 1848년 10월 열 살 생일을 몇 주 앞두고 입학했다. 그해 파리에서는 2월 혁명으로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섰다. 소년은 격동하는 도시 한가운데서 음악가의 길에 들어섰다.

II. 음악원의 우등생 · 1848–1857 (10–19세)

(스승) 음악원에서 피아노는 앙투안 마르몽텔에게, 오르간은 프랑수아 브누아에게, 작곡은 오페라 「유대 여인」의 작곡가 프로망탈 알레비에게 배웠다. 1852년 피아노 부문 1등상을 받았고, 오르간과 푸가에서도 상을 받았다. 마르몽텔은 그를 손꼽히는 제자로 기억했다. 그러나 비제는 피아니스트로 무대에 서는 길을 끝내 택하지 않았다. (구노) 대위법(여러 선율을 동시에 엮는 기법) 교사 피에르 지메르만이 수업을 비우면 사위 샤를 구노가 대신 들어왔다. 스무 살 위인 구노의 맑고 서정적인 선율은 소년에게 깊이 스며들었다. 비제는 구노의 작품을 피아노용으로 편곡하며 그 어법을 손으로 익혔다. 1855년 가을 한 달 남짓 만에 쓴 「교향곡 다장조」는 구노의 교향곡 제1번을 본보기로 삼은 흔적이 뚜렷했다. 열일곱 살의 비제는 이 곡을 공연하지 않고 서랍에 넣어 두었다. (오펜바흐) 1856년, 자크 오펜바흐가 자신의 극장 부프파리지앵에서 단막 오페레타 공모전을 열었다. 비제의 「미라클 박사」는 샤를 르코크의 작품과 공동 1등을 차지했고, 이듬해 봄 무대에 올랐다. 비제는 오펜바흐가 금요일마다 여는 모임에도 드나들었다. 가볍고 재치 있는 극장 음악의 감각을 이곳에서 익혔다. (로마대상) 1857년, 칸타타 「클로비스와 클로틸드」로 국가가 젊은 작곡가에게 주는 최고 영예인 로마대상을 받았다. 상에는 몇 해 동안의 국비 장학금과 로마 메디치 저택에서의 체류가 따랐다. 열아홉 살 청년은 그해 말 이탈리아로 떠났다.

♪교향곡 다장조1855 (17세)실황 Netherlands Chamber Orchestra · Gordan Nikolić

구노를 본보기로 삼아 열일곱 살에 쓰고 서랍에 넣어 둔 곡이다. 음악원 시절의 재기와 거침없는 기량이 그대로 남아 있다.

  • 2악장(아다지오)에서 현악기가 줄을 손가락으로 튕기는 주법(피치카토)으로 반주를 깔면, 그 위로 오보에가 길고 애수 어린 선율을 노래한다. 이 곡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이고, 오보에 연주자들이 아끼는 독주 대목이다.
  • 같은 2악장 중간에는 현악기들이 한 주제를 차례로 이어받아 쫓아가는 푸가풍 대목(푸가토)이 나온다. 음악원에서 갈고닦은 대위법(여러 선율을 함께 엮는 기법) 솜씨가 드러나는 곳이다.
  • 4악장은 바이올린이 쉼 없이 빠른 음표를 몰아치는 경쾌한 악장이다. 나란히 나아가는 현악기들의 빠른 음이 어긋나지 않는지가 오케스트라의 실력을 가늠하는 지점이다.
  • 1악장 첫머리의 힘찬 화음과 날렵한 주제에서 모차르트와 로시니를 거쳐 온 프랑스 고전풍의 밝음이 느껴진다. 1947년 발란신이 이 곡으로 발레 「수정궁」을 만들면서 널리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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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로마의 날들 · 1858–1860 (20–22세)

(빌라) 1858년 1월, 로마의 메디치 저택에 도착했다. 프랑스 아카데미의 수상자들이 함께 지내는 곳이었다. 비제는 어머니에게 거의 매주 긴 편지를 보냈다. 거리의 풍경, 동료들과의 저녁, 읽고 있는 책 이야기가 가득했다. 편지 속의 그는 쾌활하고 호기심 많은 청년이었고, 자기 재능을 냉정하게 따져 보는 사람이기도 했다. (희가극) 수상자는 해마다 작품을 파리로 보내야 했고, 첫해에는 종교곡을 보내는 것이 관례였다. 비제는 이를 따르지 않고 이탈리아풍 희가극 「돈 프로코피오」를 보냈다. 아카데미는 규정 위반을 지적하면서도 재능만은 인정했다. 그 무렵 상금을 노리고 「테 데움」을 썼지만 입상하지 못했다. 이 경험으로 그는 자신이 교회보다 극장 쪽 사람이라는 것을 더 분명히 알게 된 것으로 보인다. (여행) 그는 나폴리와 폼페이를 비롯해 이탈리아 곳곳을 다녔다. 카니발의 소란, 민요, 오페라 극장의 열기를 몸으로 겪었다. 1859년에는 수상자로 로마에 온 에르네스트 기로와 사귀었다. 이 우정은 평생 이어졌고, 비제가 죽은 뒤 그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 일도 기로가 맡게 된다. (귀국) 1860년 여름, 비제는 로마를 떠나 베네치아를 거쳐 귀국길에 올랐다. 어머니가 병들었다는 소식이 그를 재촉했다. 장학금 기간이 남아 있었지만, 그해 가을 그는 이미 파리에 돌아와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들은 남국의 빛깔은 훗날 그의 이국적인 오페라들 곳곳에 남았다.

IV. 생계의 오선지 · 1860–1868 (22–30세)

(상실) 1861년 9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이듬해 3월에는 스승 알레비도 니스에서 숨졌다. 스물세 살의 비제는 홀로된 아버지와 함께 남았다. 이 시기 아버지 집안일을 돕던 마리 라이터가 1862년 아들 장을 낳았는데, 이 아이를 둘러싼 사정은 오랫동안 집안의 비밀로 남았다. (리스트) 1861년 무렵의 한 만찬에서 프란츠 리스트가 자기 곡의 어려운 대목을 소개하자, 비제가 그 곡을 처음 보는 악보로 막힘없이 쳐 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리스트는 그런 연주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둘뿐인 줄 알았는데 셋이 되었다며 감탄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비제는 연주회 피아니스트의 길을 거절했다. (생계) 대신 그는 출판사를 위해 남의 오페라를 피아노용으로 줄이고, 교정을 보고, 레슨을 했다. 편지에서 이 일을 노역이라 불렀지만 생계는 거기서 나왔다. 오페라 「이반 4세」는 극장을 찾지 못한 채 묻혔다. 연상의 이웃이었던 작가 셀레스트 모가도르와 한동안 가까웠다는 사실도 전기에 남아 있다. (진주잡이) 1863년, 테아트르리리크의 감독 레옹 카르발로가 그에게 「진주잡이」를 맡겼다. 실론 섬을 배경으로 한 이국적 사랑 이야기였다. 공연은 18회로 끝났고 비평은 대체로 박했다. 그러나 엑토르 베를리오즈는 신문 평에서 이 작품이 작곡가에게 큰 영예가 된다고 썼다. 1867년 「퍼스의 아름다운 아가씨」도 18회 공연에 그쳤다. 이 고단한 시기에 카미유 생상스는 그의 재능을 일찍 알아본 오랜 벗이었다.

♪오페라 「진주잡이」1863 (25세)노래 「Je crois entendre encore」 Philippe Talbot (테너)

생계를 위해 편곡 일에 매여 지내던 시절, 처음으로 큰 무대를 얻어 쓴 오페라다. 흥행은 18회로 끝났지만 베를리오즈가 그 가치를 알아보았다.

  • 1막의 테너와 바리톤의 이중창 「신전 깊은 곳에서」는 두 친구가 한 여인을 처음 본 순간을 회상하는 노래다. 플루트와 하프가 신비로운 여신의 선율을 먼저 들려주고, 두 사람이 그것을 함께 노래한다. 유시 비욜링과 로버트 메릴의 녹음이 고전으로 꼽힌다.
  • 그 '여신의 선율'은 이후 사랑과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다시 나타난다. 같은 가락이 다른 자리에 돌아오는 순간을 찾아 들어 보면 좋다.
  • 나디르의 아리아 「귀에 들리는 듯하네」는 아주 높은 음을 숨결처럼 여리게 불러야 하는 노래다. 테너가 힘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가볍고 부드럽게 내는 고음이 감상의 핵심이다.
  • 레일라의 노래들에서는 호른과 목관이 열대의 밤 같은 따뜻한 빛깔을 깐다. 이국적 배경을 거창한 효과가 아니라 악기의 색채로 그려 내는 비제의 솜씨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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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결혼과 전쟁 · 1869–1872 (31–34세)

(결혼) 비제는 스승 알레비의 딸 주느비에브와 사랑에 빠졌다. 그녀의 집안은 수입이 일정치 않은 작곡가를 탐탁잖게 여겼다. 어머니 레오니가 정서적으로 몹시 불안정했던 탓에 집안 사정도 복잡했다. 두 사람은 1869년 6월 3일 결혼했다. 주느비에브는 신경이 예민했고, 처가와의 갈등은 결혼 생활 내내 그림자로 남았다. (전쟁) 1870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이 터지자 비제는 국민방위대에 들어가 포위된 파리를 지켰다. 이듬해 파리코뮌의 내란이 일어나자 부부는 파리 근교로 몸을 피했다. 굶주림과 포성 속에서도 그는 작곡을 놓지 않았다. (아이들) 전쟁이 끝난 1871년, 피아노 연탄곡(두 사람이 한 피아노로 함께 치는 곡) 「어린이의 놀이」를 완성했다. 팽이, 회전목마, 비눗방울 같은 놀이를 그린 열두 곡이었다. 폐허가 된 도시에서 쓴 곡치고는 놀랄 만큼 맑았다. 1872년 7월에는 아들 자크가 태어났다. (실패) 1872년 봄 단막 오페라 「자밀레」는 11회 만에 내려졌다. 그해 가을에는 알퐁스 도데의 연극 「아를의 여인」에 부수음악을 썼다. 극장 사정으로 스물여섯 명뿐인 작은 악단에 색소폰까지 넣어 빛깔을 짜냈다. 연극은 실패했지만, 그가 음악을 추려 엮은 모음곡은 그해 11월 연주회에서 크게 환영받았다. 비제가 생전에 맛본 가장 뚜렷한 성공이었다.

♪어린이의 놀이 (Op. 22)1871 (33세)연주 Ludmila Berlinskaïa·Arthur Ancelle

전쟁과 내란이 막 끝난 파리에서 쓴, 아이들 놀이를 그린 연탄곡 모음이다. 이듬해 아들이 태어났고, 비제는 그중 다섯 곡을 관현악으로 옮겨 「작은 모음곡」을 만들었다.

  • 「팽이」에서는 한 연주자가 쉬지 않고 빠르게 맴도는 음형을 이어 가며 도는 팽이를 그린다. 그 위에 다른 연주자가 선율을 얹는다.
  • 「회전목마」는 같은 리듬이 빙빙 되풀이되면서 목마가 오르내리는 움직임을 닮는다. 관현악판에서는 현악기와 목관이 어떻게 이 회전을 나눠 맡는지 들어 보자.
  • 「꼬마 신랑, 꼬마 신부」는 두 선율이 서로 기대듯 주고받는 다정한 곡이다. 갓 결혼한 작곡가의 집안 분위기가 비치는 듯 들린다.
  • 「무도회」는 빠른 춤곡(갤럽)으로 끝을 맺는다. 두 사람이 한 건반에서 팔과 손을 부딪치지 않고 맞춰 치는 것이 연탄곡 연주의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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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를의 여인」 모음곡 제1번1872 (34세)지휘 Nathalie Stutzmann · Royal Stockholm Phil

연극은 실패했지만 그 부수음악을 추려 만든 이 모음곡은 비제가 생전에 거둔 가장 확실한 성공이었다. 작은 극장 악단의 한계가 오히려 새로운 음색을 낳았다.

  • 「전주곡」은 프로방스의 옛 크리스마스 노래 「왕들의 행진」을 오케스트라가 한목소리(유니즌)로 힘차게 연주하며 시작한다. 이어 같은 주제를 여러 모습으로 바꿔 나가는 변주가 펼쳐진다.
  • 「전주곡」 중간에 알토 색소폰이 부드럽고 서글픈 선율을 노래한다. 연극에서 순진한 동생을 그리는 음악으로, 당시 갓 나온 이 악기를 관현악에 쓴 이른 예로 자주 거론된다.
  • 「아다지에토」는 현악기만으로, 소리를 줄이는 장치(약음기)를 끼우고 연주하는 짧은 곡이다. 극에서 오랜 세월 끝에 다시 만난 노부부의 장면에 붙은 음악이다.
  • 「종소리」에서는 호른이 세 음을 쉼 없이 되풀이해 마을의 종을 울린다. 그 사이로 목관이 목가적인 선율을 끼워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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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카르멘 · 1873–1875 (35–37세)

(착상) 오페라코미크 극장이 새 작품을 의뢰하자, 비제는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소설 「카르멘」을 골랐다. 대본은 앙리 메야크와 아내의 사촌 뤼도비크 알레비가 맡았다. 이 극장은 가족 관객이 맞선을 보는 곳이라 불릴 만큼 점잖은 무대였다. 공동 감독 아돌프 드 뢰방은 무대 위에서 여주인공이 살해되는 결말에 반대했고,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다. 비제는 1874년 여름 파리 근교 부지발에서 관현악 편곡을 마쳤다. (리허설) 연습은 순탄치 않았다. 합창단은 무대 위에서 담배를 피우고 다투며 움직여야 하는 연출을 낯설어했고, 관현악단은 악보가 어렵다고 불평했다. 카르멘 역의 셀레스틴 갈리마리에는 끝까지 그의 편이었다. 「하바네라」는 그녀의 요청으로 여러 차례 고쳐 썼는데, 비제가 민요로 알고 가져온 이 선율은 실은 스페인 작곡가 세바스티안 이라디에르의 노래였다. (초연) 1875년 3월 3일 초연에서 1막은 박수를 받았지만 막이 거듭될수록 객석은 식어 갔다. 여러 비평은 작품을 부도덕하다고 몰아세웠다. 그해에만 마흔여덟 차례 공연되었으나, 비제는 이 작품이 실패했다고 느끼며 깊이 낙담했다. 초연 즈음 그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죽음) 오랫동안 목의 염증에 시달려 온 그는 5월 말 부지발에서 센강에 들어가 수영을 한 뒤 크게 앓았다. 1875년 6월 3일, 결혼 6주년이 되는 날 서른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에서 구노가 추도사를 읽었다. 그해 가을 빈 공연에서 「카르멘」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차이콥스키는 이 작품이 십 년 안에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오페라가 되리라고 썼고, 브람스도 이 작품을 깊이 아꼈다.

♪오페라 「카르멘」1875 (37세)노래 Elina Garanča (메조소프라노) · 2010 Met

점잖은 극장의 반발과 고된 리허설을 뚫고 올린 작품이다. 작곡가는 실패를 확신한 채 석 달 만에 세상을 떠났고, 이 오페라는 그 뒤에야 세계로 퍼졌다.

  • 전주곡 후반에 첼로와 낮은 현악기가 불길하게 꿈틀대는 짧은 가락이 나온다. 흔히 '운명 동기'라 부르는 이 가락은 카르멘과 죽음이 엮일 때마다 되돌아온다. 마지막 장면까지 그 귀환을 따라가 보자.
  • 「하바네라」에서는 첼로가 쿠바 춤곡 하바네라의 '쿵—딱딱딱' 하는 리듬을 깔고, 카르멘이 반음씩 미끄러져 내려가는(반음계 하행) 선율을 부른다. 붙잡힐 듯 빠져나가는 그녀의 성격이 이 선율에 담겨 있다.
  • 3막 「카드의 노래」에서 카르멘은 카드를 펼칠 때마다 죽음이 나오는 것을 본다. 평소의 날렵한 노래와 달리 낮은 음역에서 무겁게 가라앉는 대목이라, 메조소프라노의 깊은 소리를 비교하며 듣기 좋다.
  • 돈 호세의 「꽃노래」는 끝부분 높은 음을 아주 여리게 내라는 지시가 붙어 있다. 테너가 이 고음을 크게 질러 버리는지, 지시대로 여리게 부르는지가 명연을 가르는 지점으로 회자된다.
  • 마지막 장면에서는 무대 밖 투우장의 환호와 「투우사의 노래」가 무대 위의 파국과 겹쳐 울린다. 바깥의 축제와 안쪽의 비극이 맞부딪치는 극적 대비를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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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알려진 이야기

비제 집안에서 일하던 마리 라이터는 1862년 아들 장을 낳았다. 장은 오랫동안 집안 사람들 사이에서 조르주의 '동생'처럼 여겨졌다. 그러다 마리 라이터가 1913년 세상을 떠나기 전, 아이의 아버지가 조르주였다고 밝혔다는 기록이 남았다. 당사자들이 모두 세상을 떠난 뒤에야 드러난 이야기여서 대부분의 짧은 전기에는 실리지 않는다. 장 라이터는 이후 신문사에서 일하며 생을 보냈다. 오늘날 자주 연주되는 「교향곡 다장조」는 작곡된 지 거의 80년 동안 아무도 몰랐다. 비제의 유품은 아내 주느비에브를 거쳐 작곡가 레날도 안에게 넘어갔고, 안이 이를 파리 음악원 도서관에 기증했다. 1933년 그곳에서 악보가 다시 주목받았고, 1935년 스위스 바젤에서 펠릭스 바인가르트너의 지휘로 처음 연주되었다. 비제가 생전에 이 곡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탓에 존재 자체가 잊혔던 것이다. 「카르멘」은 본래 노래 사이에 배우가 대사를 말로 주고받는 오페라 코미크 형식이었다. 그런데 1875년 빈 공연을 위해 기로가 대사를 노래하듯 읊는 레치타티보로 바꾸었고, 거의 한 세기 동안 이 판본이 세계 표준처럼 쓰였다. 1960년대 이후 원래의 대사 판본을 되살리려는 연구와 공연이 이어지면서, 비제가 실제로 의도한 극의 속도와 결이 다시 조명되었다. 아내 주느비에브는 비제가 죽은 뒤 변호사 에밀 스트로스와 재혼해 파리에서 손꼽히는 살롱을 열었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그곳의 단골이었다. 학자들은 그녀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게르망트 공작부인의 모델 가운데 하나로 본다. 비제의 아들 자크는 프루스트와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였다.

용어 노트 📚🔎

오페라 코미크

(말뜻) 프랑스어로 '희극 오페라'라는 뜻이지만, 이름과 달리 꼭 웃기는 이야기를 가리키지는 않는다. (음악에서) 19세기 프랑스에서 노래와 노래 사이에 배우들이 대사를 말로 주고받는 오페라 형식이자, 그런 작품을 올리던 파리 극장의 이름이다. 「카르멘」처럼 주인공이 죽는 비극도 이 형식으로 쓰였다. 학교 연극에서 대사를 주고받다가 중요한 장면에서 다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일상 프랑스어에서 코미크는 그냥 '웃기는', '희극의'라는 뜻으로 쓴다.

레치타티보

(말뜻) 이탈리아어 recitare(낭송하다)에서 온 말로, '읊듯이 노래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오페라에서 이야기를 앞으로 진행시키기 위해 말하는 리듬에 가깝게 부르는 노래다. 화려한 선율로 감정을 펼치는 아리아와 짝을 이룬다. 비제가 죽은 뒤 기로는 「카르멘」의 말 대사를 이 레치타티보로 바꾸어 넣었다. 친구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빠르게 전할 때는 말하듯 하다가, 정말 기쁜 대목에서 목소리가 노래처럼 높아지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하바네라

(말뜻) 쿠바의 수도 아바나(La Habana)에서 이름을 딴 춤곡으로, '아바나풍의 춤'이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느긋한 2박자 위에 '쿵—딱딱딱' 하고 첫 박을 조금 끌다가 잘게 이어지는 독특한 리듬이 특징이다. 쿠바에서 스페인을 거쳐 19세기 유럽에 널리 퍼졌다. 카르멘의 첫 아리아가 이 리듬 위에 놓여 있다. 손뼉을 '짝—짝짝짝' 하고 쳐 보면 그 걸음걸이 같은 리듬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칸타타

(말뜻) 이탈리아어 cantare(노래하다)에서 온 말로, '노래하는 곡'이라는 뜻이다. 악기로 '연주하는 곡'인 소나타와 짝을 이루는 이름이다. (음악에서) 독창, 합창, 관현악이 함께하는 여러 부분으로 된 성악곡이다. 무대 장치나 연기 없이 노래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로마대상 경연에서는 정해진 시에 칸타타를 붙이는 것이 본선 과제였고, 비제는 「클로비스와 클로틸드」로 상을 받았다. 무대 연기 없이 노래와 내레이션만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발표회를 생각하면 비슷하다.

부수음악

(말뜻) 연극에 덧붙는(附隨) 음악이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연극 공연 중 막이 열리기 전, 장면이 바뀔 때, 중요한 순간의 배경으로 연주하도록 쓴 음악이다. 노래가 중심인 오페라와 달리 이야기는 배우의 대사가 이끌고 음악은 분위기를 받쳐 준다. 「아를의 여인」이 그런 음악이었다. 영화나 게임에서 장면에 따라 깔리는 배경 음악과 하는 일이 거의 같다.

모음곡

(말뜻) 여러 곡을 모아(모음) 한 묶음으로 만든 곡이라는 뜻이다. 서양 이름 suite는 '뒤따르는 것들', 곧 차례로 이어지는 것이라는 뜻에서 왔다. (음악에서) 짧은 곡 여러 개를 차례로 이어 한 작품처럼 연주하는 형식이다. 비제 시대에는 오페라, 연극, 발레 음악에서 좋은 대목만 골라 연주회용으로 다시 엮는 경우가 많았다. 「아를의 여인」 모음곡도 그렇게 태어났다. 긴 드라마에서 명장면만 골라 이어 붙인 하이라이트 영상을 생각하면 된다. (다른 데서는) 호텔에서는 침실과 거실이 이어진 객실을 스위트룸이라 부른다. 같은 낱말에서 온 이름이다.

동기 (모티프)

(말뜻) 무엇을 움직이게 하는 처음 계기라는 뜻의 말이다. 음악에서는 곡을 움직여 나가는 가장 작은 씨앗 같은 가락을 가리킨다. (음악에서) 몇 개의 음으로 된 짧고 뚜렷한 가락이나 리듬으로, 곡 안에서 되풀이되거나 모양을 바꾸며 이야기를 엮는다. 오페라에서는 특정 인물이나 운명과 짝지어 그것이 떠오를 때마다 다시 들린다. 「카르멘」의 '운명 동기'가 그렇다. 게임에서 보스가 나타나기 직전 늘 같은 짧은 효과음이 울리면, 그 소리만 들어도 무슨 일이 생길지 알게 되는 것과 같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 동기는 공부를 하는 동기처럼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드는 이유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