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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 Gounod

샤를 구노 (1818–1893)

극장의 화려함과 성당의 고요함 사이를 평생 오간 사람

한눈에 보기 🔭💭

1. 뿌리프랑스 파리 출생화가 아버지 일찍 여읨로마 대상 18392. 신앙팔레스트리나 발견아베 구노 시절성 체칠리아 미사3. 인연멘델스존 남매비아르도와 사포비제의 본보기4. 정점파우스트 1859로미오와 줄리엣아베 마리아5. 런던보불전쟁 피란조지나 웰던꼭두각시 행진곡6. 말년속죄·죽음과 삶손자 위한 레퀴엠1893 생클루 별세구노1818–1893《파우스트》로 프랑스 오페라의 얼굴을 바꾸고,…
삶의 여정 🧭🗺️
N영국이탈리아프랑스파리1818–1870, 1874–1893로마1840–1842런던1870–1874생클루1860년대–1893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가족빅투아르 구노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로, 일찍 남편을 잃은 뒤 피아노 교습으로 집안을 지탱하며 아들에게 첫 음악을 가르쳤다.

  • 영향파니 멘델스존 헨젤

    1840년 로마에서 바흐와 베토벤을 들려주어 젊은 구노에게 독일 음악의 세계를 열어 주었다.

  • 영향펠릭스 멘델스존

    1843년 라이프치히에서 그를 맞아 바흐의 오르간 음악과 자신의 교향곡을 들려주고 그의 레퀴엠을 칭찬했다.

  • 후원폴린 비아르도

    첫 오페라 《사포》의 무대를 주선하고 주역을 노래했으나, 구노의 결혼을 전후해 관계가 끊어졌다.

  • 제자조르주 비제

    정식 사제 관계는 아니었지만 구노의 곡을 편곡하며 배웠고, 구노의 교향곡을 본보기로 첫 교향곡을 썼다.

  • 우정조지나 웰던

    런던 시절 그를 집에 머물게 하고 일을 도맡았으나, 결별 뒤 원고 반환을 거부하고 명예훼손 소송을 냈다.

YouTube에서 6곡 이어 듣기 ↗

I. 화가의 아들 · 1818–1839 (0–21세)

(출생) 1818년 6월,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프랑수아루이 구노는 화가이자 판화가였고, 아들이 태어났을 때 이미 예순 살이었다. 열한 살 위의 형 위르뱅은 훗날 건축가가 되었다. (어머니) 1823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집안은 어머니 빅투아르가 지탱했다. 피아니스트였던 그녀는 피아노 교습으로 생계를 꾸리며 아들에게 첫 음악을 가르쳤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었지만 어머니는 두 아들의 교육을 포기하지 않았다. 구노는 평생 어머니를 깊이 따랐고, 그녀가 1858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곁을 지켰다. (극장) 생루이 학교에 다니던 소년의 귀를 연 것은 이탈리아 극장이었다. 그곳에서 본 로시니의 《오텔로》와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는 그에게 계시와 같았다. 특히 모차르트는 평생의 기준이 되었고, 그는 말년에 《돈 조반니》를 해설하는 책까지 썼다. (시험) 어머니는 음악가라는 불안한 길을 걱정했다. 회고록에 따르면 학교 교장 푸아르송이 그를 단념시키려고 메윌의 오페라 《요셉》의 가사를 주며 곡을 붙여 보라 했다. 소년이 써 온 노래를 들은 교장은 눈물을 흘리며 그의 재능을 인정했다고 한다. 이후 그는 안톤 라이하에게 화성을 배웠고, 1836년 파리 음악원에 들어가 알레비, 르쉬외르, 파에르에게 배웠다. (로마 대상) 1837년 칸타타로 로마 대상 2등을 받았고, 1839년 칸타타 《페르낭》으로 마침내 1등을 차지했다. 로마 대상은 국비로 로마 유학을 보내 주는 프랑스 최고의 신인 작곡상이었다. 아버지 없이 자란 청년에게 그것은 명예이자 몇 년간의 생계 보장이기도 했다.

II. 로마의 성당에서 · 1840–1848 (22–30세)

(앵그르) 1840년 1월 로마의 프랑스 아카데미에 도착했다. 원장은 화가 앵그르였다. 바이올린을 즐겨 켜던 앵그르는 젊은 작곡가를 아꼈고, 1841년 피아노 앞에 앉은 구노의 초상을 소묘로 남겼다. 보면대에는 《돈 조반니》 악보가 놓여 있다. (팔레스트리나) 로마에서 그를 사로잡은 것은 오페라가 아니라 시스티나 성당에서 들은 팔레스트리나의 무반주 다성음악이었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거듭 들으며 장식 없는 목소리들이 겹쳐 만드는 고요함에 빠져들었다. 같은 시기 도미니코회 설교자 라코르데르의 영향으로 신앙도 깊어졌다. (헨젤) 1840년 로마에 머물던 파니 멘델스존 헨젤은 그에게 바흐와 베토벤을 피아노로 들려주었다. 그녀의 일기에는 열정적이고 감수성이 넘치는 프랑스 청년이 기록되어 있다. 이탈리아에서 그는 오히려 독일 음악을 배웠다. (라이프치히) 1842년 로마를 떠나 빈에서 미사와 레퀴엠을 연주한 뒤, 1843년 라이프치히로 펠릭스 멘델스존을 찾아갔다. 멘델스존은 토마스 교회의 오르간으로 바흐를 연주해 주었고,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에게 자신의 〈스코틀랜드〉 교향곡을 연주하게 해 들려주었다. 구노의 레퀴엠 한 대목을 보고는 케루비니가 서명했어도 될 만하다고 말했는데, 구노는 이 말을 오래 자랑스럽게 회상했다. (신부) 1843년 파리로 돌아와 외방전교회 성당의 오르가니스트 겸 성가대장이 되었다. 신도들의 불평에도 팔레스트리나와 바흐를 고집했다. 1846년 무렵에는 생쉴피스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사제의 길을 진지하게 고민했고, 한동안 '아베(신부) 구노'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1848년 무렵 끝내 사제의 길을 접었다. 신앙과 세속의 성공 사이에서 망설이는 이 기질은 이후 그의 음악 전체에 남았다.

III. 무대와 가정 · 1849–1858 (31–40세)

(비아르도) 그를 극장으로 이끈 사람은 당대 최고의 메조소프라노 폴린 비아르도였다. 그녀의 주선으로 첫 오페라 《사포》가 1851년 파리 오페라 극장에 올랐고, 그녀가 주역을 노래했다. 공연은 오래가지 못했지만 베를리오즈는 신문 평에서 마지막 막을 높이 평가했다. (결혼) 1852년 음악원 피아노 교수 피에르 지메르만의 딸 안나와 결혼했다. 이 결혼을 전후해 양쪽 집안 사이에 오해와 반감이 쌓였고, 비아르도와의 관계는 끊어졌다. 대신 처가는 안정된 기반을 주었다. 같은 해 그는 파리시 합창 연합 '오르페옹'의 지휘자가 되어 1860년까지 노동자와 학생 합창단을 이끌며 고정 수입을 얻었다. (명상곡) 1853년, 장인 지메르만이 사위의 즉흥 연주를 받아 적은 곡이 출판되었다.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제1권 첫 전주곡 위에 새 선율을 얹은 〈명상곡〉으로, 1859년 라틴어 기도문이 붙어 〈아베 마리아〉가 되었다. 로마에서 다진 신앙과 라이프치히에서 얻은 바흐 숭배가 한 곡에 녹아 있었다. (체칠리아) 1855년 11월, 음악의 수호성인 체칠리아의 축일에 생퇴스타슈 성당에서 〈성 체칠리아 장엄 미사〉가 초연되었다. 팔레스트리나의 경건함 대신 극장의 화려한 관현악으로 신앙을 노래한 이 곡에 대해, 생상스는 훗날 청중이 놀라움 끝에 매혹되었다고 회고했다. 같은 해 쓴 교향곡 제1번은 열일곱 살 비제의 본보기가 되었다. 구노의 곡을 피아노용으로 편곡하며 배우던 비제는 그해 자신의 교향곡 다장조를 썼다. (쇠약) 1856년 아들 장이 태어났다. 그러나 1854년 오페라 《피의 수녀》가 짧게 막을 내린 뒤의 좌절과 과로가 겹쳐, 1857년 그는 심한 신경 쇠약으로 의사 블랑슈의 요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회복 후 1858년 몰리에르 원작의 희극 오페라(오페라 코미크) 《억지 의사》를 무대에 올렸다. 그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아베 마리아 — 바흐 전주곡 BWV 846에 의한 명상곡1853 (라틴어 가사 1859) (35–41세)연주 Yo-Yo Ma (첼로) · Kathryn Stott (피아노)

라이프치히에서 바흐를 발견하고 결혼으로 새 가정을 꾸린 시기, 장인이 받아 적은 사위의 즉흥 연주가 이 곡의 시작이었다.

  • 피아노(또는 하프)가 처음부터 끝까지 치는 반주는 바흐의 전주곡 그대로다. 화음을 한 음씩 펼쳐 흐르게 하는 분산화음(아르페지오) 위에 새 선율이 얹히는 구조를 의식하며 들으면 두 작곡가가 겹쳐 들린다.
  • 바흐의 원곡에는 선율이 따로 없다. 구노는 화음이 바뀔 때마다 그에 맞는 선율을 붙였는데, 원곡의 화음이 가장 긴장되는 후반부에서 노래도 가장 높이 올라간다.
  • '산크타 마리아(거룩한 마리아)'를 부르며 선율이 솟구치는 대목이 곡의 정점이다. 성악가마다 이 고음을 얼마나 오래, 얼마나 여리게 끄는지가 달라 비교해 듣기 좋다.
  • 원래 바이올린 같은 악기를 위한 명상곡으로 나왔기 때문에 첼로·바이올린 연주도 많다. 가사가 없는 판과 노래판을 번갈아 들으면 선율 자체의 힘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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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체칠리아 장엄 미사 (1855)1855 (37세)연주 hr-Sinfonieorchester · Altinoglu 지휘

신학교를 떠나 극장으로 간 그가 다시 성당으로 돌아와, 극장에서 배운 화려한 관현악으로 신앙을 노래한 곡이다.

  • 글로리아(대영광송)는 소프라노 독창이 고요하게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을 노래하며 시작해, 합창이 이어받아 점점 커진다.
  • 가장 사랑받는 대목은 상투스(거룩하시도다)다. 테너 독창이 부드럽게 선율을 펼치고 합창이 뒤따르다가 '호산나'에서 크게 부풀어 오른다. 테너의 숨 긴 레가토(음을 끊지 않고 잇는 연주)가 명연의 기준이 된다.
  • 관현악에 여러 대의 하프가 들어가 반짝이는 소리를 더한다. 하프의 펼친 화음이 들릴 때마다 성당 안에 오페라 극장의 빛이 비치는 것처럼 들린다.
  • 크레도(신앙 고백)는 힘찬 리듬으로 '믿나이다'를 거듭 외치는데, 행진곡처럼 들릴 만큼 극적이다. 팔레스트리나식 고요함과는 정반대의 신앙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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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파우스트》의 시대 · 1859–1869 (41–51세)

(파우스트) 괴테의 《파우스트》를 오페라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로마 시절부터 품어 온 것이었다. 쥘 바르비에와 미셸 카레의 대본으로 1859년 3월 서정 극장(테아트르 리리크)에서 초연되었고, 극장주 레옹 카르발로의 아내 카롤린 미올랑카르발로가 마르그리트를 노래했다. 첫 반응은 엇갈렸지만 공연을 거듭하며 인기가 쌓였다. 원래 대사가 있던 부분은 1860년 노래하듯 말하는 레치타티보로 바뀌었고, 1869년 파리 오페라 극장으로 옮기며 발레가 더해졌다. 이 작품은 훗날 그 극장에서 가장 많이 공연된 오페라가 되었다. (판권) 큰돈은 작곡가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출판업자 앙투안 드 슈당은 1만 프랑으로 알려진 값에 판권을 사들여 그 수익으로 출판사를 키웠다. 한편 리스트는 1861년 이 오페라의 왈츠를 화려한 피아노 독주곡으로 편곡해 유럽의 연주회장에 퍼뜨렸다. (탄호이저) 1861년 바그너의 《탄호이저》가 파리에서 소동 끝에 실패했을 때, 구노는 신이 자신에게도 그런 실패를 허락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프랑스 음악계의 냉소 속에서 드문 옹호였다. (프로방스) 《필레몽과 보시스》(1860)와 《시바의 여왕》(1862)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1863년 딸 잔이 태어났다. 그해 그는 시인 미스트랄의 서사시를 오페라로 만들기 위해 프로방스의 생레미에 머물며 그 땅의 빛과 풍경을 익혔고, 1864년 《미레유》가 초연되었다. (줄리엣) 1865년 지중해 연안 생라파엘에 머물며 《로미오와 줄리엣》을 썼다. 만국박람회로 파리가 붐비던 1867년 4월에 초연된 이 작품은 《파우스트》 이후 가장 큰 성공이었다. 1866년에는 예술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고, 1869년 교황 비오 9세의 사제 서품 50주년을 기려 〈교황 행진곡〉을 썼다. 무대의 명성과 신앙이 나란히 정점에 이른 시기였다.

♪오페라 《파우스트》 (1859)1859 (개정 1860, 1869) (41–51세)노래 「보석의 노래」 Angela Gheorghiu (소프라노)

로마 시절부터 품은 소재가 신경 쇠약을 딛고 완성되어 그의 이름을 세계에 알렸지만, 판권 수익은 대부분 출판업자에게 돌아갔다.

  • 마르그리트의 '보석의 노래'(Ah! je ris de me voir si belle)는 거울 앞에서 보석으로 치장한 시골 처녀의 들뜬 기쁨을 그린다. 두 음을 재빨리 떠는 꾸밈음(트릴)과 빠른 장식이 소프라노의 기량을 시험한다.
  • 메피스토펠레스의 '황금 송아지의 노래'(Le veau d'or)는 돈을 숭배하는 군중을 비웃는 악마의 노래다. 흥겨운 리듬 속에 베이스의 거친 웃음 같은 소리가 섬뜩함을 남긴다.
  • 발랑탱의 아리아 'Avant de quitter ces lieux'(이곳을 떠나기 전에)는 1864년 런던 공연 때 바리톤 찰스 샌틀리를 위해 덧붙인 곡이다. 초연에는 없던 노래가 지금은 이 오페라의 대표곡이 되었다.
  • '병사들의 합창'(Gloire immortelle)은 전쟁에서 돌아온 병사들의 행진으로, 오페라 밖에서도 널리 불렸다.
  • 마지막 3중창 '순결한 천사들이여'(Anges purs, anges radieux)에서 마르그리트의 같은 선율이 매번 한 단계씩 높아지며 되풀이된다. 구원을 향해 오르는 상승을 소리로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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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 (1867)1867 (49세)무대 Teatro dell'Opera di Roma

지중해 연안에서 쓴 이 작품은 《파우스트》 이후 가장 큰 성공을 거두며 구노의 극장 경력에 마지막 정점을 찍었다.

  • 막이 오르기 전 서막에서 합창이 짧게 비극의 줄거리를 미리 들려준다. 셰익스피어 원작의 프롤로그를 음악으로 옮긴 대목이다.
  • 줄리엣의 왈츠 아리아 'Je veux vivre'(나는 살고 싶어)는 무도회에서 사랑을 모른 채 젊음을 즐기는 소녀의 노래다. 셋씩 끊어 흔드는 3박자 춤곡 리듬과 높은 음의 장식에 귀 기울여 보자.
  • 로미오의 'Ah! lève-toi, soleil!'(아, 떠올라라 태양이여)는 발코니 아래에서 줄리엣을 태양에 빗대 부르는 테너 아리아다. 마지막 고음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처리하는지가 명연을 가르는 지점이다.
  • 이 오페라에는 두 연인의 이중창이 네 개나 있다. 무도회, 발코니, 첫날밤, 무덤 순으로 이어 들으며 사랑이 설렘에서 죽음까지 어떻게 깊어지는지 따라가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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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런던의 망명객 · 1870–1874 (52–56세)

(피란) 1870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이 터지자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건너갔다. 그가 살던 파리 근교 생클루 일대는 전쟁 중 큰 피해를 입었다. 낯선 땅에서 그는 영국의 합창 문화에 깊이 들어갔고, 1871년 새로 문을 연 로열 앨버트 홀 합창단의 첫 지휘자가 되었다. 이 합창단은 오늘날의 로열 코럴 소사이어티로 이어진다. (갈리아) 1871년 5월 앨버트 홀에서 초연한 〈갈리아〉는 무너진 예루살렘을 슬퍼하는 구약의 예레미야 애가를 빌려 패전한 조국을 애도한 곡이었다. 고국을 떠나 있는 사람의 상실감이 성서의 언어로 표현되었다. (웰던) 런던에서 그는 가수 조지나 웰던과 그 남편이 살던 태비스톡 하우스에 머물렀다. 가족은 1871년 프랑스로 돌아갔지만 구노는 남았다. 웰던은 그의 계약과 출판을 도맡아 영국 출판사들과의 인세 분쟁에 앞장섰다. 두 사람의 관계를 두고 당시 말이 많았고, 구노 자신은 순수한 우정이었다고 주장했다. (생계) 출판업자들과 다투는 한편, 그는 수입을 위해 많은 영어 가곡과 피아노 소품을 썼다. 1872년의 피아노곡 〈꼭두각시의 장송 행진곡〉도 그중 하나였다. 결투 끝에 부서진 꼭두각시의 장례 행렬을 그린 익살스러운 소품으로, 1879년 관현악으로 편곡되었다. 전쟁과 망명의 시기에 나온 곡이 이토록 가볍다는 것은 역설적이지만, 그는 늘 무거운 신앙과 가벼운 유머를 함께 지닌 사람이었다. (귀국) 1874년 신경 쇠약이 다시 깊어졌을 때, 친구 가스통 드 보쿠르가 런던으로 와서 그를 프랑스로 데려갔다. 웰던은 그가 남긴 원고, 특히 작업 중이던 오페라 《폴리왹트》의 악보를 돌려주지 않았고, 구노는 그 상당 부분을 다시 써야 했다고 전해진다.

♪꼭두각시의 장송 행진곡 (1872, 관현악 1879)1872 (54세)실황 Taipei Symphony Orchestra · İbrahim Yazıcı 지휘

전쟁을 피해 런던에서 생계를 위해 소품을 쓰던 시기에 나온 곡으로, 무거운 시절에 쓴 가장 가벼운 음악이다.

  • 첫머리의 짧은 화음은 꼭두각시가 결투 끝에 부서지는 순간을 나타낸다고 구노가 붙인 설명에 나온다. 이어지는 단조의 '쿵, 쿵' 걸음은 장례 행렬을 흉내 낸다.
  • 가운데의 밝은 장조 부분은 조문객들이 잠시 쉬며 다과를 드는 장면이라고 표제가 설명한다. 엄숙한 척하던 행렬이 금세 풀어지는 유머다.
  • 관현악판에서는 바순과 클라리넷 같은 목관 악기가 익살스러운 음색을 낸다. 1950년대 미국 텔레비전 시리즈 〈앨프리드 히치콕 극장〉의 주제곡으로 쓰여 귀에 익은 사람이 많다.
  • 원래는 피아노곡이다. 피아노판과 1879년 관현악판을 비교하면 같은 농담이 악기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들리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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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제단으로 돌아가다 · 1875–1893 (57–75세)

(비제) 1875년 6월 비제가 서른여섯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맡은 구노는 감정이 북받쳐 말을 끝맺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젊은 시절 자신의 교향곡을 본보기로 삼던 후배였다. (퇴조) 《생마르스》(1877), 다시 쓴 《폴리왹트》(1878), 《자모라의 공물》(1881)이 잇따라 냉담한 반응을 얻었다. 젊은 세대가 바그너에 열광하는 동안 그의 극장 어법은 낡은 것으로 여겨졌다. (오라토리오) 그는 다시 종교 음악으로 돌아갔다. 영국 버밍엄 음악제를 위해 쓴 오라토리오 《속죄》(1882)와 《죽음과 삶》(1885)은 영국에서 크게 성공했다. 그러나 1885년 웰던이 낸 명예훼손 소송에서 거액의 배상 판결이 나오면서 그는 영국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고, 《죽음과 삶》 초연에도 가지 못했다. (관악) 같은 1885년, 플루트 연주자 폴 타파넬이 이끄는 관악 실내악 협회를 위해 〈소교향곡〉을 썼다. 노년의 여유가 아홉 대의 관악기에 담긴 맑은 곡이었다. 1887년 랭스 대성당에서 잔 다르크를 기리는 미사를 초연했고, 1890년에는 평생 숭배한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에 관한 책을 펴냈다. (레퀴엠) 마지막 작업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손자 모리스를 위한 레퀴엠이었다. 1893년 10월 생클루의 자택에서 이 곡을 살피던 중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사흘 뒤인 18일 세상을 떠났다. 마들렌 성당의 국장에서 포레가 음악을 지휘하고 생상스가 오르간을 연주했다. 그는 파리 오퇴유 묘지에 묻혔다. (유산) 오페라 무대에서 그의 이름은 점차 《파우스트》와 《로미오와 줄리엣》 두 편으로 좁혀졌지만, 후배들은 다른 쪽을 기억했다. 라벨은 프랑스 가곡의 진정한 창시자가 구노라고 말했고, 드뷔시도 평론에서 그를 프랑스적 감수성의 한 원천으로 옹호했다.

♪아홉 관악기를 위한 소교향곡 (1885)1885 (67세)실황 Philharmonique de Radio France

오페라 무대에서 밀려나고 영국 소송에 시달리던 해에 쓴 곡이지만, 그 안에는 오랜 경험에서 나온 맑고 여유로운 솜씨만 남아 있다.

  • 플루트 1, 오보에 2, 클라리넷 2, 호른 2, 바순 2의 아홉 대로 연주한다. 플루트만 한 대인 것은 플루트 연주자 타파넬의 단체를 위해 쓴 곡이기 때문이다.
  • 1악장은 느린 도입부 뒤에 경쾌한 부분이 이어진다. 모차르트의 관악 세레나데(저녁에 야외에서 연주하던 가벼운 곡)처럼 투명하게 들린다.
  • 2악장 안단테 칸타빌레(노래하듯 느리게)에서는 플루트가 오페라 아리아처럼 선율을 이끈다. 타파넬을 위한 독무대라 할 만한 대목이다.
  • 3악장 스케르초(빠르고 장난스러운 악장)에서는 호른이 사냥 나팔처럼 울리는 듯한 대목이 있다. 악기들이 서로 말을 주고받듯 짧은 동기를 넘기는 모습을 따라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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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알려진 이야기

바티칸 시국의 공식 국가는 구노의 곡이다. 1869년 교황 비오 9세의 사제 서품 50주년을 위해 쓴 〈교황 행진곡〉이 1949년 교황청의 공식 국가로 채택되었고, 지금도 교황 행사에서 연주된다. 원래 가사 없는 행진곡이라 작곡가의 이름이 함께 불리는 일이 드물어, 매년 수많은 사람이 듣고도 구노의 곡인 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앵그르가 1841년 로마에서 그린 구노의 초상 소묘에는 피아노 위에 《돈 조반니》 악보가 놓여 있다. 오페라 작곡가 구노의 이미지는 대개 《파우스트》와 함께 기억되지만, 그가 평생 기준으로 삼은 것은 모차르트였다. 1890년에는 이 오페라만을 다룬 해설서를 썼는데, 프랑스어권 밖에서는 거의 읽히지 않아 그의 모차르트 숭배는 전기의 각주로만 남는 일이 많다. 오늘날 구노의 모습을 만든 회고록 《한 예술가의 회상》은 그가 죽은 뒤인 1896년에 나왔고, 청년기를 중심으로 쓰여 있다. 런던 시절과 웰던과의 관계는 그 안에 거의 담기지 않았다. 이 시기의 사정은 오히려 웰던이 직접 펴낸 글과 영국 법정 기록, 당시 신문을 통해 전해지는데, 이 자료들은 영어권 연구에서 주로 다뤄져 프랑스 쪽 전기에서는 짧게 처리되곤 했다.

용어 노트 📚🔎

미사

(말뜻) 가톨릭 예배를 마칠 때 사제가 하는 라틴어 인사 'Ite, missa est(가십시오, 파견되었습니다)'의 missa에서 이름이 나왔다. (음악에서) 가톨릭 예배에서 늘 쓰는 정해진 기도문 — 키리에(자비송), 글로리아(대영광송), 크레도(신앙 고백), 상투스(거룩하시도다), 아뉴스 데이(하느님의 어린 양) — 에 곡을 붙인 음악이다. 가사는 몇백 년 동안 똑같지만, 작곡가마다 전혀 다른 음악을 붙인다. 생일 축하 노래의 가사는 같아도 집집마다 부르는 분위기가 다르듯, 같은 기도문이 팔레스트리나에게선 고요하게, 구노에게선 극장처럼 화려하게 울린다.

다성음악

(말뜻) 다성(多聲)은 여러(多) 소리(聲)라는 뜻이다. 서양 이름 폴리포니(polyphony)도 그리스어로 '많은(poly) 소리(phonia)'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하나의 선율에 반주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각자 독립된 선율 여러 개가 동시에 흘러가며 어우러지는 음악이다. 어느 한 성부가 주인공이 아니고 모두가 주인공이다. 돌림노래에서 여러 사람이 같은 가락을 시간 차를 두고 부르면 서로 다른 부분이 동시에 겹쳐 들리는데, 다성음악이 바로 그렇게 여러 선율이 동시에 살아 움직이는 음악이다. 팔레스트리나는 이런 음악을 악기 없이 목소리만으로 쓴 대가였다.

칸타타

(말뜻) 이탈리아어 cantare(노래하다)에서 나온 말로 '노래하는 곡'이라는 뜻이다. 악기로 '울리는 곡'이라는 뜻의 소나타와 짝을 이루는 이름이다. (음악에서) 독창, 합창, 관현악이 함께하는 성악곡으로, 오페라보다 짧고 무대 연기 없이 연주된다. 종교적인 것도 있고 세속적인 것도 있다. 로마 대상 시험에서는 주어진 시에 칸타타를 써내야 했는데, 학교 백일장에서 같은 주제로 모두가 글을 써서 겨루는 것과 비슷하다.

레치타티보

(말뜻) 이탈리아어 recitare(낭송하다)에서 나왔다. 우리말로는 서창(敍唱), 곧 이야기하듯(敍) 노래한다(唱)고 옮긴다. 발표회를 뜻하는 리사이틀(recital)도 같은 뿌리다. (음악에서) 오페라에서 줄거리를 진행시키는 대화를 말하는 리듬에 가깝게 노래하는 부분이다. 선율이 단순하고, 감정을 길게 펼치는 아리아와 번갈아 나온다. 친구에게 있었던 일을 빠르게 이야기하다가, 정말 속상한 대목에서 목소리가 길어지고 높아지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앞의 빠른 이야기가 레치타티보, 감정이 터지는 부분이 아리아다. 《파우스트》는 처음엔 이 자리에 그냥 말하는 대사가 있었다가 1860년에 레치타티보로 바뀌었다.

아리아

(말뜻) 이탈리아어 aria는 원래 '공기', '분위기'라는 뜻인데, 거기서 '노래의 가락'이라는 뜻이 생겼다. (음악에서) 오페라나 오라토리오에서 한 인물이 자기 감정을 길게 노래하는 독창곡이다. 줄거리는 잠시 멈추고, 그 순간의 기쁨이나 슬픔이 확대된다.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혼자 남아 속마음을 털어놓는 장면과 비슷하다. 마르그리트의 '보석의 노래', 줄리엣의 왈츠가 대표적인 아리아다. (다른 데서는) 이탈리아에서 aria는 지금도 일상에서 '공기'라는 뜻으로 쓰인다.

분산화음(아르페지오)

(말뜻) 아르페지오(arpeggio)는 이탈리아어로 하프(arpa)를 타듯 연주한다는 뜻이다. 하프는 화음을 한꺼번에 치기보다 줄을 하나씩 튕기는 악기이기 때문이다. (음악에서) 여러 음을 동시에 누르는 화음을 아래에서 위로, 혹은 위에서 아래로 한 음씩 차례로 펼쳐 연주하는 방법이다. 기타로 반주할 때 줄을 한꺼번에 긁지 않고 한 줄씩 뜯으며 치면 그것이 분산화음이다. 구노의 〈아베 마리아〉에서 끝까지 흐르는 바흐의 반주가 대표적인 분산화음이다.

오라토리오

(말뜻) 이탈리아어 oratorio는 '기도실'이라는 뜻이다. 16세기 로마의 한 기도실에서 신자들이 모여 성경 이야기를 노래하던 데서 이름이 붙었다. (음악에서) 성경 이야기나 종교적 주제를 독창, 합창, 관현악으로 펼치는 큰 음악이다. 오페라처럼 이야기와 등장인물이 있지만 무대, 의상, 연기 없이 연주회장이나 성당에서 노래만으로 전한다. 연극을 무대에 올리지 않고 배우들이 앉아서 대본을 소리 내어 읽는 낭독극과 비슷하다. 구노의 《속죄》와 《죽음과 삶》이 오라토리오다. (다른 데서는) 가톨릭에서 오라토리오는 지금도 작은 기도실이나 같은 이름의 수도 공동체를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