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Gershwin
틴 팬 앨리의 노래와 콘서트홀의 교향악 사이에 다리를 놓은 브루클린의 피아니스트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가족아이라 거슈윈
두 살 위의 형으로,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 노래 대부분의 가사를 쓴 평생의 동업자였다.
- 스승찰스 햄비처
열네 살 소년에게 쇼팽·리스트·드뷔시를 가르치며 그의 재능을 처음 알아본 피아노 선생이었다.
- 후원폴 화이트먼
'블루 먼데이'를 기억해 두었다가 '랩소디 인 블루'를 위촉하고 초연을 지휘했다.
- 우정케이 스위프트
십 년 가까이 연인이자 음악적 동반자로 지내며 그의 악보를 받아 적고 정리해 주었다.
- 영향모리스 라벨
1928년 뉴욕에서 만나 그의 재능을 높이 사고 불랑제에게 소개 편지를 써 주었다.
- 우정아르놀트 쇤베르크
할리우드 시절 테니스 친구로, 그의 사후 '음악은 그에게 숨 쉬는 공기였다'는 추도문을 썼다.
I. 브루클린의 소년 · 1898–1913 (0–15세)
(출생) 1898년 9월,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모리스와 어머니 로즈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건너온 유대인 이민자였고, 집안의 성은 본래 게르쇼비츠였다. 두 살 위에 형 아이라가 있었고, 아래로 남동생 아서와 막내 여동생 프랜시스가 태어났다. 아버지는 식당, 빵집, 터키식 목욕탕, 당구장으로 사업을 자주 바꾸었고, 그때마다 가족은 맨해튼과 브루클린 사이를 옮겨 다녔다. (거리) 어린 조지는 책보다 거리를 좋아했다.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동네 아이들과 싸움질을 하던 소년이었다. 그러나 귀는 열려 있었다. 그는 여섯 살 무렵 오락실 자동 피아노에서 흘러나온 루빈시테인의 '멜로디 F장조'에 발이 묶였고, 열 살 무렵 학교 강당에서 또래 바이올리니스트 맥시 로젠츠바이크가 연주한 드보르자크의 '유머레스크'를 듣고 음악에 처음 눈떴다고 훗날 회고했다. (피아노) 1910년, 어머니는 형 아이라에게 가르치려고 중고 피아노를 들였다. 그런데 피아노가 집에 들어오자 뚜껑을 열고 유행가를 쳐 보인 쪽은 조지였다. 친구 집 자동 피아노의 건반 움직임을 따라 하며 몰래 익혀 둔 솜씨였다. 동네 선생 몇 명을 거친 뒤, 열네 살 무렵 피아니스트 찰스 햄비처를 만났다. (기초) 햄비처는 그에게 쇼팽과 리스트, 드뷔시를 가르치고 연주회에 데려갔다. 그는 누이에게 보낸 편지에 이 소년은 틀림없는 천재이며, 재즈 같은 새 음악에 빠지고 싶어 하지만 당분간은 먼저 정통 음악의 기초를 단단히 다지게 하겠다고 썼다. 어머니 로즈는 아들이 안정된 직업을 갖기를 바랐다. 고전의 기초와 거리의 유행가, 훗날 거슈윈 음악을 떠받칠 두 기둥이 이 시기에 함께 세워졌다.
II. 틴 팬 앨리 · 1914–1923 (16–25세)
(송 플러거) 1914년, 열다섯 살의 거슈윈은 상업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맨해튼의 악보 출판 거리 '틴 팬 앨리'에 있는 레믹 출판사에 들어갔다. 가게 피아노 앞에 앉아 손님에게 신곡을 쳐 들려주고 악보를 파는 '송 플러거'였다. 주급은 15달러였다. 종일 남의 노래를 치며 그는 유행가의 문법을 손에 익혔고, 자동 피아노용 피아노 롤을 녹음해 부수입을 벌었다. (스와니) 그는 자기 노래를 팔고 싶었지만 회사는 관심이 없었다. 1917년 레믹을 나와 브로드웨이 리허설 피아니스트로 일하며 기회를 기다렸다. 1919년 작사가 어빙 시저와 함께 쓴 '스와니'를 당대 최고의 인기 가수 알 졸슨이 불러 크게 히트시켰다. 첫해 저작권료가 1만 달러쯤이었다고 전한다. 주급 15달러를 받던 이민 가정의 둘째 아들이 처음 손에 쥔 큰돈이었다. (배움) 같은 해 첫 브로드웨이 뮤지컬 '라 라 루실'을 올렸고, 1920년부터 다섯 해 동안 레뷔 '조지 화이트 스캔들스'의 곡을 썼다. 돈을 벌면서도 배움을 놓지 않았다. 1918년 스승 햄비처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뒤에는 에드워드 킬레니에게 화성학과 관현악법을 배웠다. 1922년 할렘을 배경으로 한 단막 오페라 '블루 먼데이'를 '스캔들스'에 넣었으나 첫날 공연 뒤 빠졌다. 실패였지만, 그날 악단을 이끈 폴 화이트먼이 이 작품을 기억해 두었다. (형제) 형 아이라는 이 무렵 '아서 프랜시스'라는 필명으로 가사를 쓰고 있었다. 두 동생의 이름을 이어 붙인 것이었다. 이미 이름이 난 동생의 덕을 보지 않으려는 뜻이었다고 전한다. 내성적이고 책을 좋아한 형과 사교적이고 쉴 새 없이 피아노를 치는 동생은 성격이 달랐지만, 곧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유명한 형제 콤비가 된다.
송 플러거 생활을 끝낸 스물한 살의 거슈윈에게 처음으로 큰돈과 이름을 안긴 노래다. 틴 팬 앨리에서 익힌 유행가 감각이 그대로 담겨 있다.
- 곡 전체를 끌고 가는 행진곡풍 리듬은 당시 유행하던 원스텝(빠르게 걷듯 추는 사교춤)을 겨냥한 것이었다고 작사가 어빙 시저가 회고했다. 발로 박자를 짚으며 들어 보면 춤곡의 성격이 분명히 느껴진다.
- 후렴 'Swanee, how I love ya'는 미국 남부의 강과 고향을 그리는 노래인데, 정작 두 작곡가는 남부에 가 본 적이 없었다. 뉴욕 사람이 상상한 남부의 정서로 들으면 흥미롭다.
- 1920년 알 졸슨의 녹음에서는 음을 끌어 늘이고 살짝 꺾는 그의 창법이 곡을 얼마나 극적으로 만드는지 들을 수 있다. 같은 곡을 담백하게 부른 후대 녹음과 비교해 보라.
III. 랩소디 · 1924–1925 (26–27세)
(기사) 1924년 1월, 거슈윈은 신문을 펼쳤다가 놀랐다. 폴 화이트먼이 2월 연주회에서 거슈윈의 '재즈 협주곡'을 초연한다는 기사였다. 이야기가 오간 적은 있지만 확답한 적은 없었다. 남은 시간은 다섯 주 남짓이었다. 보스턴행 기차 안에서 곡의 뼈대가 떠올랐다. 그는 훗날 철로의 덜컹거림 속에서 '미국이라는 거대한 용광로의 음악적 만화경'을 들었다고 회고했다. (초연) 거슈윈이 두 대의 피아노용으로 쓴 악보를 화이트먼 악단의 편곡자 퍼디 그로페가 악단 편성에 맞게 옮겼다. 2월 12일 뉴욕 에올리언 홀, '현대 음악의 실험'이라는 긴 연주회의 끝 무렵에 '랩소디 인 블루'가 울렸다. 객석에는 라흐마니노프와 바이올리니스트 하이페츠, 크라이슬러가 앉아 있었다. 거슈윈은 피아노 독주 일부를 악보에 다 적지 않은 채 즉흥으로 쳤다. 평론은 엇갈렸지만 청중은 열광했고, 이 곡은 그의 이름을 처음 콘서트홀에 올려놓았다. (콤비) 그해 말, 아이라와 처음으로 함께 이름을 건 뮤지컬 '레이디, 비 굿!'이 막을 올렸다. 주연은 프레드와 아델 아스테어 남매였다. 이후 형제는 '오, 케이!', '퍼니 페이스'로 이어지는 히트작을 함께 만들었다. 아이라는 말장난이 살아 있는 가사를, 조지는 리듬이 튀는 선율을 맡았다. (협주곡) 에올리언 홀 객석에 있던 지휘자 월터 담로시는 뉴욕 심포니를 위해 피아노 협주곡을 위촉했다. 이번에는 관현악 편곡(오케스트레이션)도 거슈윈이 직접 했다. 완성된 악보를 확인하려고 자기 돈으로 연주자 수십 명을 극장에 불러 시험 연주를 했다. 1925년 12월 카네기 홀에서 초연된 'F조 협주곡'은 찰스턴과 블루스를 고전적인 세 악장의 틀에 담았다. 독학한 피아니스트가 콘서트홀의 문법을 스스로 익히려 한 결과였다.
신문 기사 한 줄에 떠밀려 다섯 주 만에 쓴 곡으로, 보스턴행 기차의 리듬과 뉴욕의 소음이 스며 있다. 이 곡으로 거슈윈은 유행가 작곡가에서 콘서트 작곡가로 넘어갔다.
- 첫머리에서 클라리넷이 낮은 음을 빠르게 떨다가(트릴) 높은 음까지 미끄러져 오르는(글리산도) 대목이 이 곡의 상징이다. 리허설에서 클라리넷 주자 로스 고먼이 장난처럼 소리를 늘인 것을 거슈윈이 마음에 들어 살렸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 중반에 현악기가 느리고 넓게 부르는 선율은 흔히 '사랑의 주제'로 불린다. 앞의 들썩이는 리듬과 대비되어, 도시의 소란 끝에 찾아온 고요처럼 들린다.
- 1924년 초연은 스무 명 남짓한 재즈 밴드 편성이었고, 오늘날 흔히 듣는 대편성 관현악판은 그로페가 나중에 다시 편곡한 것이다. 두 판본을 비교하면 같은 곡이 클럽과 콘서트홀만큼 다르게 들린다.
- 그로페의 악보에는 피아노 독주 부분에 '고개 끄덕임을 기다리라'는 지시가 있다. 초연 때 거슈윈이 즉흥으로 치다가 신호를 주면 악단이 들어왔던 흔적이다. 거슈윈 자신이 남긴 1924년·1927년 축약 녹음에서 그의 연주 속도와 기세를 들어 볼 수 있다.
관현악 편곡을 남에게 맡겼던 '랩소디'와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쓴 곡으로, 자비를 들여 시험 연주까지 하며 다듬었다. 고전 형식을 스스로 익히려 한 노력이 세 악장의 틀에 드러난다.
- 1악장은 팀파니(큰 북처럼 생긴 음정 있는 타악기)의 연타로 열린다. 거슈윈은 초연 해설에서 이 악장이 찰스턴 리듬을 쓴다고 직접 밝혔다. 뒤이어 바순이 내놓는 짧은 리듬 동기에 귀를 기울여 보라.
- 2악장 첫머리에서 약음기(소리를 작게 하고 음색을 바꾸는 마개)를 낀 트럼펫이 느린 블루스 선율을 분다. 거슈윈은 이 악장을 '시적인 밤의 분위기, 흔히 미국의 블루스라 불리는 것'이라 설명했다.
- 3악장은 거슈윈의 말대로 '리듬의 향연'이다. 같은 음을 빠르게 두드리는 반복 음형이 처음부터 끝까지 몰아치며, 앞 악장들의 주제가 다시 등장한다.
- 피아니스트마다 리듬을 재즈처럼 느슨하게 흔드는지, 고전 협주곡처럼 단정하게 치는지가 크게 갈린다. 해석 차이를 비교해 듣기 좋은 곡이다.
IV. 파리의 미국인 · 1926–1929 (28–31세)
(동반자) 1925년 무렵부터 거슈윈은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케이 스위프트와 가까워졌다. 그녀는 은행가 제임스 워버그의 아내였다. 스위프트는 그의 악보를 받아 적고 정리해 주는 음악적 동반자이기도 했고, 1926년 뮤지컬 '오, 케이!'의 제목이 그녀 이름에서 왔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관계는 십 년 가까이 이어졌다. 스위프트는 1934년 이혼했지만 두 사람은 결혼하지 않았고, 거슈윈은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전주곡) 1926년 12월, 거슈윈은 한 리사이틀에서 새로 쓴 짧은 피아노 곡들을 직접 초연했다. 그중 세 곡이 이듬해 '세 개의 전주곡'으로 출판되었다. 쇼팽의 전주곡처럼 짧은 곡 안에 블루 노트와 당김음(싱코페이션)을 담았다. (라벨) 1928년 3월, 미국을 순회하던 모리스 라벨의 쉰세 번째 생일 파티가 뉴욕에서 열렸고, 거슈윈은 그 자리에서 피아노를 쳤다. 거슈윈이 배우고 싶다고 하자 라벨은 파리의 나디아 불랑제에게 소개 편지를 써 주었다. 남아 있는 이 편지에서 라벨은 그를 눈부시고 매혹적인 재능의 음악가라 부르면서도, 기법을 가르치다가 그 재능을 망칠 수 있다며 그 책임을 질 용기가 있느냐고 물었다. 불랑제 역시 그를 제자로 받지 않았다. (여행) 그해 봄 거슈윈은 아이라 부부, 여동생 프랜시스와 함께 유럽을 여행했다. 파리에서는 '파리의 미국인'을 다듬으며 거리에서 택시 경적을 사 모았다. 빈에서는 알반 베르크를 만나 그의 현악 사중주를 들었다. 파리에서 그의 연주를 들은 프로코피예프는 피아노 솜씨는 높이 샀지만 협주곡의 짜임은 엉성하다고 평했다고 전해진다. 12월 뉴욕에서 초연된 '파리의 미국인'에는 낯선 도시의 흥분과 고향을 그리는 블루스가 함께 들어 있었다.
케이 스위프트와 가까워지고 유럽을 동경하던 시기, 거슈윈이 직접 초연한 짧은 피아노 곡들이다. 쇼팽의 전주곡 전통 위에 블루스를 얹었다.
- 1번은 첫 마디에 나오는 짧은 블루 노트(살짝 낮춰 부르는 음) 동기로 시작해, 당김음(박자의 약한 자리에 힘을 주는 리듬)이 곡을 끌고 간다. 악보 지시어는 '빠르게, 리듬을 분명하고 단호하게'다.
- 2번은 거슈윈이 '일종의 블루 자장가'라 부른 곡이다. 왼손이 낮은 음에서 일정한 걸음으로 걷는 반주 위로 오른손이 느린 블루스를 노래한다.
- 3번은 '흥분하여(아지타토)'라는 지시어대로 짧고 격렬하다. 1번의 리듬과 닮은 데가 있어 세 곡이 하나의 고리를 이루는 것처럼 들린다.
- 초연 때는 더 많은 곡이 연주되었으나 출판 때 세 곡으로 추려졌다. 거슈윈이 남긴 녹음으로 그 자신의 템포와 리듬 감각을 확인해 보라.
1928년 유럽 여행에서 직접 겪은 파리의 거리와 향수가 그대로 음악이 되었다. 거슈윈은 파리에서 산 실제 택시 경적을 악보에 넣었다.
- 첫머리의 경쾌하게 걷는 주제는 거슈윈이 해설에서 밝힌 대로 미국인 여행자가 파리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이다. 현악과 목관이 주고받는 발걸음 리듬을 따라가 보라.
- 곧 실제 택시 경적 네 개가 울린다. 거슈윈은 파리에서 경적을 사 와 악보에 A·B·C·D로 표시했는데, 정확히 어떤 음높이로 맞출지는 지금도 연주자와 연구자 사이에서 논의가 이어진다.
- 중간부에서 약음기를 낀 트럼펫이 느린 블루스를 부른다. 거슈윈은 이 대목을 미국인이 갑작스러운 향수에 사로잡히는 순간이라고 설명했다.
- 후반에 찰스턴풍의 빠른 주제가 나오면 기분이 되살아나고, 끝에서 블루스와 걷는 주제가 합쳐진다. 낯선 도시와 고향이 한 소리 안에서 화해하는 것처럼 들린다.
V. 포기와 베스 · 1930–1935 (32–37세)
(풍요) 대공황 속에서도 거슈윈의 일은 끊이지 않았다. 1930년 '걸 크레이지'에서는 신인 에설 머먼이 '아이 갓 리듬'을 불렀고, 1931년 정치 풍자 뮤지컬 '오브 디 아이 싱'은 뮤지컬로는 처음으로 퓰리처 연극상을 받았다. 그는 맨해튼의 펜트하우스에 살며 루오, 샤갈, 피카소의 그림을 사 모았고 직접 유화를 그리기도 했다. (상실) 1932년 아버지 모리스가 세상을 떠났다. 같은 해 쿠바 아바나에서 듣고 온 리듬으로 '쿠바 서곡'을 썼고, 음악 이론가 조지프 실링거에게 작곡 이론을 배우기 시작했다. 늘 소화불량에 시달려 스스로 '작곡가의 위장'이라 불렀으며, 1934년부터는 정신분석가 그레고리 질부르그를 찾아 상담을 받았다. (찰스턴) 그는 1926년 듀보스 헤이워드의 소설 '포기'를 밤새 읽고 오페라로 만들고 싶다는 편지를 보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의 흑인 거리 '캣피시 로'에 사는 장애인 걸인 포기와 베스의 이야기였다. 계약은 1933년에야 성사되었다. 1934년 여름 그는 찰스턴 앞바다의 폴리 비치에 머물며 굴라 사람들의 예배와 노동요를 들었다. 헤이워드는 거슈윈이 예배에서 신도들과 함께 손뼉을 치며 '샤우팅'에 끼어들었다고 적었다. (흥행) 1935년 9월 보스턴 시험 공연을 거쳐 10월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한 '포기와 베스'는 흑인 성악가들로 출연진을 꾸렸다. 거슈윈은 이 작품을 '포크 오페라'라 불렀다. 평단은 오페라인지 뮤지컬인지를 두고 갈렸고, 124회 공연으로 막을 내렸을 때 제작비를 회수하지 못했다. 그가 가장 오래 매달린 작품은 생전에 흥행으로 보답받지 못했다. '서머타임'을 비롯한 노래들이 널리 불리게 된 것은 그의 사후였다.
폴리 비치에서 굴라 사람들의 예배와 노래를 직접 들으며 쓴 '포크 오페라'다. 생전에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지금은 거슈윈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 막이 오르자마자 어부의 아내 클라라가 아기에게 부르는 자장가 '서머타임'이 나온다. 평화로운 가사 아래로 단조의 그늘이 깔려 있어, 캣피시 로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미리 비추는 것처럼 들린다.
- 포기와 베스의 이중창 '베스, 유 이즈 마이 우먼 나우'에서는 두 목소리가 번갈아 부르다 하나로 얽히는 순간을 들어 보라. 이 오페라에서 가장 서정적인 대목으로 꼽힌다.
- 약장수 스포팅 라이프가 부르는 '잇 에인트 네서서릴리 소'는 성경 이야기를 비꼬는 노래로, 아이라의 가사가 특히 재치 있다. 불안하게 미끄러지는 선율이 이 인물의 수상함을 드러낸다.
- 노래와 노래 사이에는 말하듯 노래하는 부분(레치타티보)이 이어져, 이 작품이 뮤지컬이 아니라 오페라로 구상되었음을 보여 준다. 공연에 따라 이 부분을 얼마나 살리는지가 크게 다르니 전곡 녹음과 발췌 녹음을 비교해 보라.
VI. 할리우드의 마지막 해 · 1936–1937 (38–39세)
(서부) 1936년 여름 거슈윈 형제는 영화사 RKO와 계약하고 캘리포니아 비벌리힐스로 옮겼다.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의 영화 '쉘 위 댄스'를 위해 '데이 캔트 테이크 댓 어웨이 프롬 미'와 '렛츠 콜 더 홀 싱 오프'를, 이어 '곤경에 빠진 아가씨'를 위해 '어 포기 데이'를 썼다. 대우는 좋았지만 그는 다시 오페라와 교향곡을 쓰고 싶다고 주변에 말하곤 했다. (테니스) 그곳에는 나치를 피해 망명한 아르놀트 쇤베르크가 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거슈윈 집 테니스 코트에서 정기적으로 공을 주고받았고, 거슈윈은 쇤베르크의 초상화를 그렸다. 조성을 버린 음악의 개척자와 브로드웨이의 작곡가는 음악은 달랐지만 서로를 존중했다. (증상) 1937년 2월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과 'F조 협주곡'을 협연하던 중, 그는 몇 마디를 놓치는 순간적인 의식 공백을 겪고 고무 타는 냄새를 맡았다. 이후 두통과 어지럼증이 잦아졌고 손놀림이 둔해졌다. 6월 병원 검사에서는 원인이 드러나지 않았고, 주변에서는 과로나 신경증으로 여겼다. (죽음) 7월 9일 그는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졌다. 뇌종양이었다. 신경외과의 하워드 나프지거가 수술을 집도했으나, 거슈윈은 1937년 7월 11일 아침 서른여덟의 나이로 숨졌다. 유언장이 없어 재산은 어머니 로즈에게 돌아갔다. 생전 마지막 노래로 꼽히는 '러브 이즈 히어 투 스테이'는 이듬해 영화 '골드윈 폴리스'에 쓰였다. 쇤베르크는 추도문에 '음악은 그에게 숨 쉬는 공기였다'고 썼다.
할리우드로 옮긴 뒤 아스테어 영화 '쉘 위 댄스'를 위해 쓴 노래다. 거슈윈이 받은 유일한 아카데미상 후보 지명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 발표되었다.
- 아이라의 가사는 모자를 쓰는 모습, 차를 마시는 모습처럼 사소한 버릇을 하나씩 늘어놓으며 '그것만은 빼앗을 수 없다'고 말한다. 같은 음을 여러 번 되풀이하다 살짝 올라가는 선율이 담담한 말투를 닮았다.
- 영화에서 아스테어는 안개 낀 페리 갑판에서 진저 로저스에게 이 노래를 부르지만 춤은 추지 않는다. 두 사람은 1949년 영화 '브로드웨이의 바클리 부부'에서야 이 곡에 맞춰 춤을 추었다.
- 1937년 아카데미 주제가상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하지 못했다. 이후 수많은 재즈 가수가 불러 스탠더드(널리 되풀이해 연주되는 고전 곡)가 되었으니, 아스테어의 원곡과 재즈 가수들의 녹음을 비교해 들어 보라.
덜 알려진 이야기
(이름) 출생증명서에 적힌 이름은 '조지'가 아니라 '제이컵 거슈와인(Jacob Gershwine)'이었다. 가족은 처음부터 그를 조지라 불렀고, 집안 성의 철자도 이민 뒤 몇 차례 바뀌었다. 본인이 평생 쓰지 않은 이름이어서 이 사실은 전기의 각주에만 남았다. (퓰리처) 1932년 '오브 디 아이 싱'이 퓰리처 연극상을 받았을 때, 수상자 명단에는 대본 작가 조지 S. 코프먼과 모리 리스킨드, 작사가 아이라만 올랐다. 당시 연극상은 극의 글에 주는 상이어서 음악은 심사 대상이 아니었다. 작품의 중심에 있던 작곡가가 빠진 이 일은 오래 잊혀 있다가, 탄생 100주년인 1998년 퓰리처 위원회가 거슈윈에게 특별 표창을 주면서 다시 조명되었다. (후원) 쇤베르크와의 우정은 흔히 테니스 일화로만 전한다. 그러나 거슈윈은 콜리시 사중주단이 쇤베르크의 현악 사중주들을 녹음하는 데 비용을 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기 작곡가가 망명한 동료의 음악을 기록으로 남기는 데 돈을 쓴 셈이지만, '대중음악의 천재'라는 이미지에 가려 이 대목은 잘 언급되지 않는다. (수색) 1937년 7월, 주변 사람들은 당대 최고의 신경외과의로 꼽히던 월터 댄디에게 수술을 맡기려 했다. 그는 체서피크만에서 요트를 타고 있었고, 정부의 협조로 함정이 그를 찾아 나섰다고 당시 신문들이 전했다. 그러나 환자의 상태가 급해 댄디를 기다리지 않고 수술이 시작되었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워낙 큰 소식이어서, 마지막 며칠의 이 소동은 잘 기억되지 않는다.
용어 노트 📚🔎
랩소디(광시곡)
(말뜻) 그리스어 랍소디아에서 왔다. 고대 음유시인이 여러 시구를 '꿰매어 이어' 부르던 노래라는 뜻이다. 한자 광시곡(狂詩曲)은 자유분방한(狂) 시(詩) 같은 곡(曲)이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정해진 틀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주제를 자유롭게 이어 붙인 한 악장짜리 곡이다.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처럼 민속 선율을 엮는 경우가 많고, 분위기가 갑자기 바뀌는 것이 특징이다. 장기자랑에서 여러 노래를 이어 부르는 메들리를 떠올리면 된다. 다만 랩소디는 그냥 이어 붙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처럼 흐르도록 다듬는다. (다른 데서는) 영어에서 rhapsody는 일상적으로 '열광적인 찬사'라는 뜻으로도 쓴다.
블루 노트
(말뜻) 블루(blue)는 영어로 '우울한'이라는 뜻도 있다. 미국 흑인들의 슬픈 노래 '블루스'에 나오는 음이라 이렇게 부른다. (음악에서) 장음계에서 몇몇 음(주로 세 번째와 일곱 번째 음)을 반음보다 조금 덜, 혹은 반음만큼 낮춰 부르거나 연주하는 음이다. 밝은 장조 안에 쓸쓸한 빛깔이 섞여 들어 블루스와 재즈 특유의 느낌을 낸다. 노래방에서 슬픈 노래를 부를 때 음을 살짝 꺾어 내리면 더 애절하게 들리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뉴욕의 유명한 재즈 클럽과 재즈 음반사의 이름이기도 하다.
싱코페이션(당김음)
(말뜻) 그리스어 쉰코페에서 왔다. '잘라 내다, 줄이다'라는 뜻이다. 우리말 당김음은 강세를 앞으로 '당겨 온' 음이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원래 힘이 실려야 할 강한 박이 아니라 약한 박이나 박 사이에 힘을 주는 리듬이다. 박자가 예상을 벗어나 몸이 들썩이는 느낌이 생기며, 재즈와 거슈윈 음악의 핵심이다. 손뼉으로 '쿵-짝, 쿵-짝'을 치다가 일부러 '짝'을 반 박자 일찍 크게 치면 갑자기 신나는 느낌이 드는 것이 바로 당김음이다. (다른 데서는) 의학에서 영어 syncope는 잠깐 의식을 잃는 '실신'을 뜻한다.
글리산도
(말뜻) 프랑스어 글리세(glisser, 미끄러지다)에 이탈리아어 꼬리를 붙여 만든 말이다. (음악에서) 한 음에서 다른 음까지 사이의 음들을 끊지 않고 미끄러지듯 이어 연주하는 기법이다. 피아노에서는 손가락으로 건반을 쭉 훑고, 트롬본이나 현악기, 클라리넷에서는 음높이를 부드럽게 끌어 올리거나 내린다. 미끄럼틀을 계단처럼 한 칸씩 내려가지 않고 한 번에 쭉 미끄러지는 것과 같다. '랩소디 인 블루' 첫머리의 클라리넷이 가장 유명한 예다.
협주곡
(말뜻) 협주곡(協奏曲)은 함께(協) 연주하는(奏) 곡이라는 뜻이다. 서양 이름 콘체르토의 라틴어 뿌리 concertare에는 '겨루다'라는 뜻도 있어서, 독주자와 오케스트라가 겨루듯 주고받는 이 음악의 성격이 이름에 이미 들어 있다. (음악에서) 피아노나 바이올린 같은 독주 악기 하나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하는 곡으로, 보통 빠르게-느리게-빠르게 세 악장으로 이루어진다. 독주자는 화려한 기교를 보여 주고, 오케스트라는 받쳐 주다가 맞서기도 한다. 축구에서 뛰어난 공격수 한 명과 팀 전체가 공을 주고받으며 경기를 만들어 가는 모습과 닮았다.
관현악 편곡(오케스트레이션)
(말뜻) 오케스트라(orchestra)는 원래 고대 그리스 극장에서 무대 앞 합창단이 춤추던 반원형 공간을 가리켰다. 그리스어 '춤추다'에서 온 말이다. (음악에서) 피아노 등으로 쓴 곡을 오케스트라용으로 옮기면서, 어떤 선율을 어느 악기에 맡기고 누가 언제 반주할지를 정해 악보로 쓰는 일이다. 같은 선율도 바이올린이 부르느냐 트럼펫이 부르느냐에 따라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 조별 과제에서 누가 자료 조사를, 누가 발표를, 누가 그림을 맡을지 나누는 일과 비슷하다. 역할을 잘 나누면 같은 내용도 훨씬 빛난다. (다른 데서는) 정보기술 분야에서는 여러 서버와 프로그램이 함께 돌아가도록 자동으로 조율·관리하는 일을 오케스트레이션이라 부른다.
전주곡(프렐류드)
(말뜻) 전주곡(前奏曲)은 앞(前)에 연주하는(奏) 곡이라는 뜻이다. 서양 이름 프렐류드도 라틴어 '미리 연주하다'에서 왔다. (음악에서) 원래는 본곡이나 푸가, 오페라 앞에 붙여 분위기를 여는 짧은 곡이었다. 쇼팽 이후로는 앞에 붙을 본곡 없이 그 자체로 완결된 짧은 피아노 곡을 가리키기도 한다. 체육 시간에 본 경기 전에 하는 준비운동을 떠올려 보라. 원래 전주곡은 준비운동이었는데, 쇼팽과 거슈윈의 전주곡은 준비운동만으로 하나의 멋진 공연이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