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ward Elgar
“이것이 나의 가장 좋은 부분이다.” — 『제론티어스의 꿈』 자필 악보 끝에 엘가가 옮겨 적은 러스킨의 문장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가족앤 엘가
시와 역사를 사랑한 어머니로, 독학하던 아들의 문학적 감수성을 길러 주었고 1902년 세상을 떠났다.
- 영향안토닌 드보르자크
1884년 우스터 축제에서 그의 지휘 아래 바이올린을 켜며 엘가는 관현악 색채의 매력에 눈떴다.
- 가족캐럴라인 앨리스 엘가
여덟 살 연상의 아내로,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해 31년간 작곡가의 살림과 자신감을 지탱했다.
- 우정아우구스트 예거
노벨로 출판사의 편집자로 엘가를 꾸짖고 북돋운 벗이며, 「수수께끼 변주곡」의 ‘님로드’로 남았다.
- 후원한스 리히터
「수수께끼 변주곡」과 교향곡 제1번을 초연한 지휘자로, 엘가를 유럽 무대에 알린 가장 든든한 지지자였다.
- 우정리하르트 슈트라우스
1902년 뒤셀도르프에서 엘가를 ‘최초의 영국 진보주의자’라 부르며 건배해 그의 국제적 평가를 굳혔다.
I. 우스터의 악기점 · 1857–1879 (0–22세)
(출생) 1857년 6월, 영국 잉글랜드 우스터 근교의 작은 마을 로어브로드히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윌리엄 헨리 엘가는 켄트주 도버 출신의 피아노 조율사로, 우스터 하이 스트리트에서 동생과 함께 악기와 악보를 파는 가게를 꾸렸고 가톨릭 성 조지 성당의 오르가니스트로도 일했다. 어머니 앤은 농장 일꾼의 딸로, 결혼 뒤 가톨릭으로 개종했으며 시와 역사책을 즐겨 읽었다. 에드워드는 일곱 남매 가운데 넷째였다. 가족은 두 해 뒤 우스터 시내로 돌아갔지만, 그는 평생 브로드히스의 시골집을 마음의 고향으로 여겼다. (상실) 어린 시절에는 이른 죽음이 두 번 찾아왔다. 1864년 맏형 해리가 성홍열로, 1866년에는 음악에 남다른 재능을 보이던 동생 조가 일곱 살로 세상을 떠났다. 남은 형제 가운데 프랭크는 오보에를 불며 훗날 가게를 이었고, 막내 누이 도트는 수녀가 되어 수녀원장에 올랐다. (독학) 정규 음악 교육은 거의 받지 못했다. 가게에 쌓인 이론서와 악보를 혼자 읽고 바이올린과 오르간을 익혔다. 열다섯 살에 학교를 마치고 변호사 사무실에서 잠시 일했으나 곧 음악으로 돌아섰다. 라이프치히 유학을 꿈꿨지만 집안 형편이 허락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1878년 무렵 모차르트 교향곡 제40번의 마디 수와 악구 배치를 그대로 따라 자기 교향곡을 써 보며 형식을 배웠다고 훗날 회고했다. 가톨릭 신자이자 장사꾼의 아들이라는 출신은 국교회와 상류층이 주도하던 영국 음악계에서 평생 그를 따라다닌 열등감의 뿌리가 되었다.
II. 정신병원 악단과 소장의 딸 · 1879–1891 (22–34세)
(포윅) 1879년, 스물두 살의 엘가는 우스터 근교 포윅에 있는 주립 정신병원의 악단 지휘자가 되었다. 직원들로 꾸려진 악단을 위해 카드리유와 폴카를 써 주고 곡마다 몇 실링씩을 따로 받았다. 그는 바이올린 교습, 지역 오케스트라 연주, 성당 오르간 반주를 겹쳐 하며 생계를 이었다. 1884년 우스터 세 합창단 축제에서는 드보르자크가 자작곡을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에 바이올린 주자로 앉아, 그 음악이 ‘그저 황홀하다’고 편지에 적었다. 이때 익힌 관현악의 색채는 훗날 그의 가장 큰 무기가 되었다. (파혼) 같은 해, 라이프치히에서 음악을 공부하던 헬렌 위버와의 약혼이 깨졌다. 그녀는 이듬해 뉴질랜드로 떠났고, 엘가는 한동안 깊이 낙담했다. (앨리스) 1886년 그는 캐럴라인 앨리스 로버츠에게 피아노 반주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고(故) 헨리 로버츠 소장의 딸로 엘가보다 여덟 살 위였고, 시와 소설을 쓰는 사람이었다. 신분과 종교가 다른 이 결합을 그녀의 친척들은 못마땅하게 여겼으나, 두 사람은 1889년 5월 런던의 브롬프턴 오라토리 성당에서 결혼했다. 약혼 선물로 쓴 바이올린 소품 「사랑의 인사」는 출판사에 헐값으로 넘어가, 훗날 세계적으로 사랑받았지만 그에게 수입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런던) 신혼부부는 기회를 찾아 런던으로 옮겼다. 1890년 8월 외동딸 캐리스가 태어났다. 이름은 어머니의 이름 캐럴라인 앨리스를 줄여 지은 것이다. 같은 해 서곡 「프루아사르」가 우스터 축제에서 연주되었으나 런던 음악계의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고, 1891년 여름 일가는 맬번으로 물러났다.
앨리스와의 약혼 선물로 쓴 소품이다. 엘가는 독일어로 ‘사랑의 인사(Liebesgruss)’라 이름 붙였지만, 출판사 쇼트가 더 잘 팔리도록 프랑스어 제목 ‘Salut d'Amour’로 바꿨다.
- 피아노가 화음을 한 음씩 펼쳐 흔드는 분산화음(아르페지오) 위로, 바이올린이 물결치듯 내려왔다 다시 오르는 첫 선율이 곡 전체의 얼굴이다.
- 처음 선율, 조금 더 들뜬 가운데 부분, 처음 선율의 귀환으로 이어지는 세도막 형식(A–B–A)이다. 돌아온 주제가 처음보다 얼마나 더 다정하게 들리는지 견주어 들으면 좋다.
-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독주, 관현악 판이 모두 있어 앙코르 단골 곡이다. 같은 선율을 첼로의 낮은 음색으로 들으면 고백이 한층 은근하게 들린다.
- 마지막 화음이 여리게 사라지는 대목을 얼마나 길고 가늘게 끄는지에서 연주자의 개성이 드러난다.
III. 맬번 언덕의 수수께끼 · 1891–1899 (34–42세)
(교습) 맬번 언덕 기슭에 자리 잡은 엘가는 다시 바이올린 교습으로 가계를 꾸렸고, 이 일을 몹시 싫어했다. 앨리스는 남편의 오선지에 줄을 그어 주고 일정과 편지를 챙기며 자신의 문필 활동을 거의 접었다. 부부는 1892년 바이에른으로 휴가를 떠나 바이로이트에서 바그너의 무대를 보았다. 이후 가르미슈에서 보낸 휴가는 앨리스가 바이에른 민요풍으로 쓴 시에 곡을 붙인 합창곡 「바이에른 고원에서」(1895)로 남았다. (칸타타) 1890년대 그는 지방 합창 축제를 위한 칸타타를 잇달아 썼다. 「검은 기사」(1893), 「올라프 왕」(1896), 「카락타쿠스」(1898)가 잉글랜드 중부의 합창단들에서 호평을 받으며 그는 지역의 유망주에서 전국적인 이름으로 올라서기 시작했다. 런던 출판사 노벨로의 편집자 아우구스트 예거는 이 시기 그의 가장 가까운 벗이자 엄한 비평가였다. 독일 태생의 예거는 엘가가 자기 연민에 빠질 때마다 편지로 그를 꾸짖고 북돋웠다. (즉흥) 1898년 10월, 하루 교습을 마친 엘가가 피아노 앞에서 무심히 선율을 짚자 앨리스가 그 가락을 다시 쳐 달라고 했다. 그는 이 친구라면, 저 친구라면 이 선율을 어떻게 칠까 하며 바꿔 보았고, 이것이 열네 개 변주곡의 출발이 되었다. 각 변주에는 아내와 친구들, 그리고 자신을 가리키는 머리글자나 별명이 붙었다. 이듬해 6월 런던에서 한스 리히터의 지휘로 초연된 이 작품은 마흔두 살의 지방 음악가를 단숨에 영국 음악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피아노 앞의 즉흥에서 시작해 아내와 친구들의 초상으로 자란 곡이다. 엘가는 이 곡을 ‘그림 속에 그려진 나의 벗들에게’ 바쳤다.
- 주제는 현악기가 부르는 쓸쓸한 단조 선율로, 두 음씩 끊고 쉬어 가는 리듬이 특징이다. 엘가는 ‘이 곡 전체를 꿰는 더 큰 주제는 연주되지 않는다’고 말해 백 년 넘는 수수께끼를 남겼다.
- 제9변주 ‘님로드’는 예거의 초상이다. 예거(Jäger)가 독일어로 사냥꾼이라 성경의 사냥꾼 니므롯의 이름을 붙였다. 아주 여리게 시작해 장엄하게 부풀어 오르는 이 변주는 영국의 추모식에서 단골로 연주된다.
- 제11변주는 친구 싱클레어의 불도그 댄이 와이강 둑에서 굴러떨어져 헤엄쳐 나와 짖는 장면이라고 엘가가 직접 밝혔다. 저음 현악기가 미끄러지듯 굴러 내리는 음형과 금관의 ‘짖음’을 찾아 들어 보자.
- 제10변주 ‘도라벨라’에서는 도라 페니의 살짝 더듬는 말투를 목관악기가 잘게 끊기는 음형으로 흉내 낸다.
- 제13변주 ‘***’에서는 클라리넷이 멘델스존의 서곡 「고요한 바다와 즐거운 항해」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 팀파니를 작은북 채나 동전으로 굴려 먼 증기선의 엔진 소리를 만든다.
IV. 제론티어스와 기사 작위 · 1900–1907 (43–50세)
(실패) 1900년 10월 버밍엄 축제에서 오라토리오 「제론티어스의 꿈」이 초연되었다. 죽어 가는 노인의 영혼이 심판대에 이르는 여정을 그린 뉴먼 추기경의 시에 곡을 붙인 것으로, 엘가가 가톨릭 신앙을 가장 깊이 드러낸 작품이었다. 그러나 합창 지휘자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 연습이 엉망이 되었고, 초연은 실패로 끝났다. 엘가는 예거에게 ‘신은 예술의 편이 아니라고 늘 말해 왔고, 지금도 그렇게 믿는다’고 써 보냈다. (독일) 반전은 독일에서 왔다. 뒤셀도르프의 지휘자 율리우스 부츠가 독일어 번역으로 이 곡을 다시 무대에 올렸고, 1902년 니더라인 음악 축제의 연주 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최초의 영국 진보주의자, 마이스터 에드워드 엘가’를 위해 잔을 들었다. 독일 음악계의 이런 환대는 영국 안의 평가까지 바꿔 놓았다. (행진곡) 1901년 「위풍당당 행진곡」 제1번이 런던 프롬나드 콘서트에서 연주되자 청중은 두 번이나 앙코르를 청했다. 그 중간부(트리오) 선율에 가사를 붙인 「희망과 영광의 나라」는 1902년 대관식 송가에 쓰이며 사실상 제2의 국가가 되었다. 같은 해 9월 어머니 앤이 세상을 떠났다. (작위) 1904년 3월 런던 코번트가든에서 사흘간 엘가 축제가 열렸고, 7월에는 기사 작위를 받았다. 일가는 헤리퍼드의 큰 집 플라스 귄으로 이사했고, 그는 뜰의 작은 건물에 ‘방주’라 이름 붙인 실험실을 차려 화학 실험에 몰두했다. 1905년부터 버밍엄 대학의 음악 교수를 맡았으나 영국 음악계를 날카롭게 비판한 강연이 논란을 부르자 강의를 괴로워하다 1908년 물러났다. 아버지 윌리엄은 1906년 세상을 떠났다.
가톨릭 신자 엘가의 신앙 고백이자, 처참한 초연과 독일에서의 재평가를 함께 겪은 작품이다. 자필 악보 끝에 그는 러스킨의 ‘이것이 나의 가장 좋은 부분이다’를 옮겨 적었다.
- 제1부 끝에서 사제(베이스)가 라틴어로 ‘떠나라, 그리스도인의 영혼이여(Proficiscere, anima Christiana)’라고 축복하면 합창과 오르간이 이어받아 크게 부풀어 오른다. 가톨릭 임종 기도의 말이다.
- 제2부의 악마들의 합창은 ‘하! 하!’ 하고 비웃는 소리를 날카로운 리듬으로 내뱉는다. 성스러운 곡 한가운데에 냉소를 일부러 거칠게 넣은 대목이다.
- 영혼이 마침내 신을 뵙는 순간, 악보에는 ‘이 한순간 모든 악기가 최대의 힘을 내야 한다’는 지시가 적혀 있다. 단 한 번의 거대한 울림 뒤에 테너가 ‘저를 데려가 주소서’라고 부르짖는다.
- 마지막 천사(메조소프라노)의 작별 노래 ‘부드럽게, 다정하게’는 멀리서 합창이 받쳐 주어 자장가처럼 들린다.
런던 초연에서 두 번의 앙코르를 받은 곡으로, 중간부 선율이 「희망과 영광의 나라」가 되어 엘가를 국민 작곡가로 만들었다.
- 제목은 셰익스피어 『오셀로』 3막의 대사 ‘영광스러운 전쟁의 자랑과 위풍과 성대함’에서 따왔다. 정작 그 대사는 전쟁과 작별하는 오셀로의 탄식이라는 점이 묘하다.
- 도입부는 빠르고 소란스럽게 들썩인다. 장엄한 행렬보다 축제의 북새통에 가깝게 들린다.
- 중간부(트리오)의 선율은 처음엔 현악기와 호른이 여리게 부르다가, 곡 끝에서 전체 오케스트라가 크게 되풀이한다. 같은 선율이 속삭임에서 대합창으로 커지는 대비가 핵심이다.
- 영국 BBC 프롬스 마지막 밤에는 청중이 이 선율을 함께 노래한다. 미국에서는 1905년 예일 대학이 엘가에게 명예 박사 학위를 줄 때 연주된 뒤 졸업식 음악으로 퍼졌다.
V. 교향곡의 해들 · 1908–1913 (51–56세)
(교향곡) 엘가는 오래전부터 교향곡을 구상했으나 쉰이 넘도록 미뤄 왔다. 1908년 12월 맨체스터에서 리히터가 지휘한 교향곡 제1번은 리허설에서 리히터가 ‘이 나라만이 아니라 현대의 가장 위대한 작곡가가 쓴 가장 위대한 교향곡’이라 소개했다고 전해질 만큼 기대를 모았고, 이후 1년 남짓 동안 백 번 가까이 연주되었다. 엘가는 이 곡에 담은 것을 ‘미래에 대한 거대한 희망’이라고 말했고, 곡을 리히터에게 바쳤다. (상실) 이듬해 5월 예거가 결핵으로 마흔여덟 살에 세상을 떠났다. 1910년 5월에는 국왕 에드워드 7세가 서거했다. (헌사) 1910년 11월 프리츠 크라이슬러가 초연한 바이올린 협주곡의 악보 첫머리에 엘가는 스페인어로 ‘여기에 ……의 영혼이 담겨 있다’고 적고 이름 자리를 점으로 비워 두었다. 그가 ‘윈드플라워(바람꽃)’라 부르며 각별한 우정을 나눈 화가 밀레이의 딸 앨리스 스튜어트워틀리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히지만, 엘가는 끝내 답하지 않았다. (냉담) 1911년 5월, 선왕의 추억에 바친 교향곡 제2번이 초연되었을 때 반응은 미지근했다. 엘가는 청중이 ‘박제된 돼지들처럼 앉아 있다’고 친구에게 불평했다. 같은 해 메리트 훈장을 받았고, 1912년 일가는 런던 햄프스테드의 큰 저택 세번 하우스로 옮겼다. 저택의 유지비는 수입에 버거웠고, 엘가는 늘 돈 걱정을 했다. 1913년의 교향적 습작 「폴스타프」는 셰익스피어의 늙은 기사를 통해 웃음과 몰락을 함께 그렸다.
쉰이 넘어 내놓은 첫 교향곡으로, 1년 남짓 사이에 백 번 가까이 연주되며 그를 영국 교향곡의 개척자로 세웠다.
- 1악장은 팀파니의 낮은 두드림 위로 ‘노빌멘테 에 셈플리체(고귀하고 단순하게)’라는 지시가 붙은 모토 주제가 행진하듯 조용히 시작된다.
- 모토가 끝나자마자 음악은 전혀 다른 조성의 거칠고 빠른 부분으로 뛰어든다. 평온한 희망과 불안이 맞부딪히는 이 충돌이 곡 전체의 드라마가 된다.
- 2악장의 빠른 음표 주제가 거의 같은 음으로 느려지면 3악장 아다지오의 노래가 된다. 같은 가락이 속도만 바꿔 전혀 다른 감정이 되는 순간을 찾아 들어 보자.
- 피날레 끝에서 처음의 모토가 오케스트라 전체로 크게 돌아온다. 엘가가 말한 ‘미래에 대한 거대한 희망’이 그대로 소리가 되는 대목이다.
크라이슬러가 초연했고, 악보 첫머리의 이름 없는 헌사로 지금까지 ‘누구의 영혼인가’를 묻게 하는 곡이다.
- 길게 이어지던 오케스트라의 도입 끝에 독주 바이올린이 앞 주제의 꼬리를 이어받듯 조용히 들어온다. 화려한 등장 대신 고백처럼 시작하는 첫 소절에 귀 기울여 보자.
- 3악장의 카덴차는 보통 독주자 혼자 기교를 펼치는 자리지만, 엘가는 오케스트라 현악기에 여러 손가락으로 줄을 떨듯 퉁기는 ‘피치카토 트레몰란도’를 시켜 희미한 배경을 깔았다. 그 위에서 독주가 앞 악장들의 주제를 하나씩 회상한다.
- 연주 시간이 50분 가까이 되는 길고 어려운 곡이라 연주자의 체력과 집중력이 시험대에 오른다.
- 1932년 열여섯 살의 메뉴인이 작곡가의 지휘로 남긴 녹음은 이 곡 해석의 기준점으로 지금도 비교된다.
VI. 전쟁과 숲속 오두막 · 1914–1920 (57–63세)
(전쟁)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엘가는 깊이 침울해졌다. 그는 독일에 많은 벗과 음악적 빚을 지고 있었고, 기계화된 살육을 혐오했다. 쉰일곱의 나이에 햄프스테드 특별 경찰대에 자원했으며, 벨기에를 위한 낭송곡 「카리용」과 로런스 비니언의 시에 붙인 「영국의 정신」을 썼다. 그 마지막 곡 「전몰자를 위하여」는 젊은 죽음을 위한 비가였다. (오두막) 1917년 앨리스는 서식스주 피틀워스 근처 숲속의 오두막 브링크웰스를 빌렸다. 도시의 편의가 없는 그곳에서 엘가는 나무를 베고 장작을 패며 기력을 되찾았다. 1918년 그곳에서 바이올린 소나타, 현악 4중주, 피아노 5중주가 잇달아 나왔다. 앨리스는 이 음악들에서 숲의 마법이 들린다고 적었다. (첼로) 1919년 그는 마지막 대작 첼로 협주곡을 완성했다. 전작들의 화려한 오케스트라 대신 마르고 절제된 울림이 지배하는 이 곡은 전쟁이 지나간 세계를 위한 비가로 흔히 들린다. 그해 10월 런던 초연은 같은 공연을 맡은 다른 지휘자 앨버트 코츠가 연습 시간을 잡아먹은 탓에 준비가 부족한 채 열렸다. 엘가는 독주자 펠릭스 새먼드를 생각해 무대를 포기하지 않았다. (작별) 1920년 4월, 앨리스가 세상을 떠났다. 서른한 해 동안 악보를 정리하고 출판사와 협상하며 남편의 흔들리는 자신감을 지탱해 온 사람이었다. 엘가는 그 뒤로 큰 작품을 거의 완성하지 못했다.
전쟁 말기 숲속 오두막에서 기력을 되찾은 뒤 쓴 마지막 대작으로, 앨리스가 세상을 떠나기 반년 전에 초연되었다.
- 첫머리에서 첼로가 ‘노빌멘테(고귀하게)’라는 지시와 함께 화음을 긁듯 강하게 내뱉는다. 노래라기보다 말하듯 읊는 독백(레치타티보)처럼 들린다.
- 1악장의 중심 선율은 첼로보다 비올라가 먼저 홀로 부른다. 한 마디를 셋씩 세 묶음으로 나눈 흔들리는 리듬(9/8박)이 쓸쓸한 뱃노래처럼 들린다.
- 3악장 아다지오는 오케스트라를 아주 얇게 깔고 첼로가 짧은 노래 하나를 끝까지 이어 부른다. 숨을 고르며 듣기 좋은 대목이다.
- 피날레 끝 직전 음악이 갑자기 느려지며 3악장 선율과 첫머리의 독백이 되돌아오고, 곧 짧고 단호하게 끝난다. 1965년 자클린 뒤 프레와 존 바비롤리의 녹음이 이 곡을 널리 알렸다.
VII. 축음기 앞의 노년 · 1920–1934 (63–77세)
(귀향) 홀로 된 엘가는 세번 하우스를 팔고 런던의 셋집을 거쳐 1923년 고향 우스터셔로 돌아갔다. 1922년 딸 캐리스는 농부 새뮤얼 블레이크와 결혼했고, 훗날 브로드히스 생가를 기념관으로 만드는 일에 힘을 보탰다. 엘가는 1923년 배를 타고 아마존강을 거슬러 마나우스까지 여행했고, 1924년에는 국왕의 음악 사범(Master of the King's Music)이 되었다. 말년에는 개 마르코와 미나를 데리고 산책하고 경마장을 드나들며 지냈다. (녹음) 그는 일찍부터 축음기에 관심을 가져 1914년부터 자작곡을 직접 지휘해 녹음했다. 1932년 7월에는 열여섯 살의 예후디 메뉴인과 바이올린 협주곡을 녹음했다. 이듬해 5월 파리에서 메뉴인과 이 곡을 연주하러 생애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고, 그 길에 그레쉬르루앙에 살던 작곡가 프레더릭 딜리어스를 찾아갔다. (미완) 1932년 오랜 벗 조지 버나드 쇼의 주선으로 BBC가 교향곡 제3번을 위촉했다. 그러나 1933년 가을 수술 중 암이 발견되었다. 병상에서 그는 바이올리니스트 친구 W. H. 리드에게 스케치를 보이며 아무도 손대지 못하게 해 달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1934년 1월에는 침대 곁으로 끌어온 전화선을 통해 런던 스튜디오의 자작곡 녹음을 지켜보았다. 의사에게 사후 세계를 믿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고 전해지는 그는, 1934년 2월 23일 우스터의 집 마른뱅크에서 일흔여섯 살로 세상을 떠났고 리틀맬번의 성 울스탄 성당 묘지에 앨리스와 나란히 묻혔다. 남은 스케치는 1997년 작곡가 앤서니 페인이 엘가 유산 관리 측의 동의를 얻어 연주용 완성본으로 다듬었다.
덜 알려진 이야기
1897년 7월, 엘가는 스물세 살의 친구 도라 페니에게 87개의 작은 반원 기호로 이루어진 쪽지를 보냈다. 이른바 ‘도라벨라 암호’다. 도라 자신도 끝내 읽지 못했고, 이 쪽지는 그녀가 1937년 회고록에 실으면서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그 뒤 수많은 해독 시도가 있었지만 정설로 받아들여진 답은 아직 없다. 엘가는 암호와 퍼즐, 말장난을 즐겼고, ‘수수께끼’라는 변주곡 제목도 그런 취향과 맞닿아 있다. 같은 회고록은 엘가가 축구팀 울버햄프턴 원더러스의 열성 팬이었다는 사실도 전한다. 그는 1898년 신문 경기 기사에 실린 ‘그는 골문을 향해 가죽공을 내질렀다’는 구절에 짧은 선율을 붙이기까지 했다. 엄숙한 제국의 작곡가라는 이미지 뒤에 가려진 면모다. 헤리퍼드 시절의 화학 취미도 장난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실험실 ‘방주’에서 연구를 거듭해 1908년 황화수소 발생 장치로 특허를 받았다. 자연과학에 대한 이 진지한 호기심은 음악 전기에서는 대개 한 줄로 지나가는 대목이다. 「수수께끼 변주곡」 제13변주의 별표 셋은 공식적으로 오스트레일리아로 항해를 떠난 레이디 메리 라이곤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녀의 출항이 작곡 시기보다 늦었다는 점 등을 들어, 1885년 뉴질랜드로 떠난 옛 약혼녀 헬렌 위버를 떠올린 것이라는 견해가 연구자들 사이에서 오래 거론되어 왔다. 엘가는 이에 대해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아 확증은 없다.
용어 노트 📚🔎
변주곡
(말뜻) 변주곡(變奏曲)은 바꾸어(變) 연주하는(奏) 곡이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처음에 주제 선율 하나를 들려준 뒤, 그 선율의 빠르기·리듬·화음·악기·분위기를 바꿔 가며 여러 번 다시 들려주는 형식이다. 듣는 사람은 모습이 달라져도 그 안에 숨은 원래 선율을 알아채는 재미를 느낀다. 생일 축하 노래를 한 번은 느리고 슬프게, 한 번은 랩처럼 빠르게, 한 번은 행진곡처럼 불러 본다고 생각하면 된다. 엘가는 같은 주제를 친구마다 다른 성격으로 바꿔 그들의 초상을 그렸다.
오라토리오
(말뜻) 라틴어 oratorium(기도실)에서 온 말이다. 16세기 로마의 한 기도 모임(오라토리오회) 강당에서 성경 이야기를 노래로 들려주던 데서 이름이 굳었다. 엘가가 결혼식을 올린 런던의 브롬프턴 오라토리 성당도 같은 수도회의 이름을 딴 곳이다. (음악에서) 독창자, 합창, 오케스트라가 종교적인 이야기를 노래로 들려주는 큰 음악이다. 오페라처럼 줄거리와 등장인물이 있지만 무대 장치나 의상, 연기 없이 서서 노래만 한다. 학교 강당에서 연극 대본을 의상 없이 목소리로만 실감 나게 읽는 낭독극을 떠올리면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영어 oratory 는 기도실이라는 뜻 말고도 ‘웅변술’이라는 뜻으로 흔히 쓰인다.
트리오
(말뜻) 이탈리아어로 ‘셋’을 뜻한다. 옛날 춤곡인 미뉴에트에서 가운데 부분을 악기 셋만으로 조촐하게 연주하던 관습에서 이름이 남았다. (음악에서) 지금은 연주자 수와 상관없이 행진곡이나 춤곡의 앞뒤 부분 사이에 끼인, 성격이 다른 가운데 부분을 가리킨다. 대개 앞부분보다 부드럽고 노래하듯 흐르다가, 끝나면 다시 앞부분이 돌아온다. 체육 시간에 힘차게 달리다가 중간에 천천히 걸으며 숨을 고르고 다시 달리는 것과 비슷하다. 「위풍당당 행진곡」 제1번의 유명한 선율이 바로 이 트리오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는 그냥 3인조, 세 사람이 한 팀을 이룬 것을 트리오라고 부른다.
협주곡
(말뜻) 협주곡(協奏曲)은 함께(協) 연주하는(奏) 곡이라는 뜻이다. 서양 이름 콘체르토의 라틴어 뿌리 concertare 에는 ‘겨루다’라는 뜻도 있어, 독주자와 오케스트라가 겨루듯 주고받는 성격이 이름에 담겨 있다. (음악에서) 바이올린이나 첼로 같은 독주 악기 하나가 오케스트라 앞에 나서서, 때로는 함께 어울리고 때로는 맞서며 연주하는 곡이다. 보통 세 개의 큰 덩어리(악장)로 이루어진다. 축구 경기에서 주장 한 명이 팀 전체와 호흡을 맞추면서도 혼자 돌파해 골을 넣는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카덴차
(말뜻) 이탈리아어 cadenza 는 라틴어 cadere(떨어지다)에서 왔다. 음악이 끝을 향해 ‘내려앉는’ 마침 부분(종지) 바로 앞에 붙던 장식에서 이름이 생겼다. (음악에서) 협주곡에서 오케스트라가 잠시 멈추고 독주자 혼자 실력을 마음껏 뽐내는 부분이다. 원래는 연주자가 즉흥으로 만들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작곡가가 직접 써 넣는 경우가 많아졌다. 장기자랑에서 반 친구들이 반주를 멈추고 한 명이 무대 한가운데서 혼자 솜씨를 보여 주는 순간과 같다. 엘가는 이 자리에 오케스트라의 희미한 반주를 일부러 남겨 두어 기교보다 회상의 시간으로 만들었다. (다른 데서는) 영어 cadence 는 말의 억양이나 리듬을 뜻하고, 자전거 운동에서는 1분 동안 페달을 돌리는 횟수(케이던스)를 가리킨다.
노빌멘테
(말뜻) 이탈리아어로 ‘고귀하게, 품위 있게’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악보에 적어 연주자에게 어떤 마음과 모양새로 연주할지 알려 주는 말(나타냄말)이다. 엘가가 특히 즐겨 써서 그의 서명처럼 여겨진다. 너무 빠르지 않게, 소리를 넉넉하게 펴서, 허리를 곧게 세운 듯 당당하면서도 뽐내지 않게 연주하라는 뜻이다. 졸업식에서 이름이 불려 단상으로 걸어 나갈 때의 차분하고 꼿꼿한 걸음걸이를 소리로 옮긴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모토
(말뜻) 이탈리아어 motto 는 ‘표어, 짧은 말’이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곡의 맨 처음에 나와 곡 전체의 성격을 알려 주고, 여러 악장에 걸쳐 되풀이해 돌아오는 짧고 뚜렷한 주제를 말한다. 듣는 사람은 그 주제가 다시 나올 때마다 긴 곡이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느낀다. 게임을 시작할 때 나오는 테마곡이 중요한 장면마다 조금씩 바뀌어 다시 흘러나오고, 마지막 보스를 물리치면 가장 크게 울리는 것과 같다. 엘가의 교향곡 제1번은 처음의 모토가 마지막에 크게 돌아오며 끝난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는 학교 교훈이나 개인의 좌우명처럼 늘 마음에 새기는 짧은 말을 모토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