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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vard Grieg

에드바르 그리그 (1843–1907)

“바흐와 베토벤 같은 예술가들은 높은 곳에 교회와 신전을 세웠다. 나는 사람들이 집처럼 편안하고 행복하게 느낄 거처를 짓고 싶었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노르웨이 베르겐 출생피아니스트 어머니올레 불의 권유2. 배움라이프치히 음악원슈만·바그너 체험망가진 한쪽 폐3. 각성노르드로크와 민족음악니나와 결혼딸 알렉산드라의 죽음4. 도약피아노 협주곡 A단조리스트의 격려입센의 페르 귄트5. 안식하르당에르 오두막트롤하우겐 정착차이콥스키·브람스6. 말년드레퓌스 항의네 개의 시편1907 베르겐 영면그리그1843–1907노르웨이의 민요와 풍경을 서정적인 피아노와 노…
삶의 여정 🧭🗺️
N노르웨이독일베르겐1843–1858라이프치히1858–1862코펜하겐1863–1866크리스티아니아(오늘날 오슬로)1866–1876베르겐 트롤하우겐1885–1907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가족게지네 하게루프 그리그

    함부르크에서 공부한 피아니스트로, 여섯 살 아들에게 처음 피아노를 가르친 어머니다.

  • 영향올레 불

    노르웨이 민속 음악을 세계에 알린 바이올리니스트로, 열다섯 살 그리그를 라이프치히로 보내도록 부모를 설득했다.

  • 우정리카르 노르드로크

    노르웨이만의 음악을 찾자며 그리그의 눈을 뜨게 한 친구로, 스물세 살에 요절했다.

  • 가족니나 그리그

    외사촌이자 아내였던 소프라노로, 위기를 넘어 평생 그의 가곡을 가장 깊이 노래했다.

  • 영향프란츠 리스트

    1870년 로마에서 협주곡 원고를 처음 보고 쳐 내려가며 젊은 그리그를 격려했다.

  • 우정표트르 차이콥스키

    1888년 라이프치히에서 만나 서로를 아꼈고, 서곡 '햄릿'을 그리그에게 헌정했다.

YouTube에서 7곡 이어 듣기 ↗

I. 베르겐의 소년 · 1843–1858 (0–15세)

(출생) 1843년 6월,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태어났다. 당시 노르웨이는 스웨덴 국왕을 함께 섬기는 연합 왕국에 속했지만 자체 헌법과 의회를 가진 나라였다. 아버지 알렉산데르 그리그는 상인이자 베르겐 주재 영국 부영사였고, 집안의 뿌리는 18세기 후반 스코틀랜드에서 건너온 증조부에게 닿았다. 그는 다섯 남매 가운데 넷째였고, 형 욘은 훗날 첼로를 연주했다. (어머니) 첫 스승은 어머니 게지네 하게루프였다. 함부르크에서 피아노와 노래를 배운 그녀는 베르겐에서 손꼽히는 연주자였고, 여섯 살 아들을 피아노 앞에 앉혔다. 연습은 엄격했지만, 아들은 손가락 훈련보다 화음을 이리저리 눌러 소리가 겹쳐 울리는 신비에 더 끌렸다고 훗날 회상했다. (학교) 학교는 그에게 즐거운 곳이 아니었다. 그는 공상에 잠기는 아이였고 교사들에게 자주 꾸지람을 들었다. 열두 살 무렵 공책에 적은 첫 작품 '독일 선율에 의한 변주곡'을 학교에 가져갔다가 교사에게 핀잔만 들은 일, 비 오는 날 일부러 흠뻑 젖어 등교해 집으로 돌려보내지기를 노린 일을 그는 직접 글로 남겼다. (올레 불) 1858년 여름, 바이올리니스트 올레 불이 그리그의 집을 찾았다. 노르웨이 민속 음악을 유럽 무대에 알린 이 명인은 열다섯 살 소년의 연주와 습작을 듣고, 이 아이를 라이프치히로 보내 음악가로 키워야 한다며 부모를 설득했다. 그해 가을 소년은 독일로 떠났다. 고향의 바다와 산을 떠난 이 길이 평생 그를 다시 고향으로 이끄는 출발이 되었다.

II. 라이프치히 · 1858–1862 (15–19세)

(음악원) 라이프치히 음악원은 그가 태어난 1843년에 멘델스존이 세운 학교였다. 그는 이그나츠 모셸레스, 카를 라이네케 등에게 피아노와 작곡을 배웠지만, 훗날 '들어갈 때만큼이나 어리석은 채로 나왔다'고 이 시절을 깎아내렸다. 화성과 대위법의 규칙을 되풀이하는 수업은 그에게 지루한 숙제였다. (교실밖) 정작 그를 키운 것은 교실 밖이었다. 게반트하우스 연주회장에서 클라라 슈만이 연주하는 로베르트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을 들었고,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는 열네 번이나 보러 갔다고 전해진다. 짧고 서정적인 슈만의 피아노 소품은 그의 평생의 말투가 되었고, 바그너의 대담한 화음은 그의 귀를 넓혀 주었다. (폐) 1860년 봄, 그는 늑막염(폐를 감싼 막에 생기는 염증)에 결핵 증세까지 겹쳐 쓰러졌고, 어머니가 라이프치히까지 와서 그를 데려갔다. 회복은 했지만 왼쪽 폐가 제 기능을 잃었다. 이후 평생 숨이 차고 쉽게 지쳤으며, 키가 150센티미터를 조금 넘는 작은 몸으로 늘 건강을 살피며 살아야 했다. (졸업) 다시 학교로 돌아간 그는 1862년 졸업 연주회에서 자작 피아노 소품을 연주해 좋은 평을 들었다. 그해 고향 베르겐에서 첫 공개 연주회도 열었다. 독일 낭만주의의 문법을 익힌 열아홉 살 청년은 이제 그 언어로 무엇을, 누구의 목소리로 말할지를 찾아야 했다.

III. 코펜하겐의 각성 · 1863–1869 (20–26세)

(가데) 1863년 그는 북유럽 음악의 중심지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옮겨, 멘델스존의 후계자로 불리던 닐스 가데에게 조언을 구했다. 가데의 권유로 1864년 교향곡 C단조를 완성했지만, 곧 그것이 자기 목소리가 아니라고 여겨 거두어들였다. (노르드로크) 방향을 바꾼 사람은 한 살 위의 노르웨이 작곡가 리카르 노르드로크였다. 훗날 노르웨이 국가가 된 노래의 선율을 쓴 그는 민요와 시골 춤에서 노르웨이만의 음악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그는 '눈에서 비늘이 떨어졌다'고 회고했다. 두 사람은 1864년 북유럽 음악을 소개하는 모임 '에우테르페'를 세웠으나, 노르드로크는 1866년 베를린에서 결핵으로 스물세 살에 숨졌다. 로마에서 부고를 받은 그리그는 그날 장송 행진곡을 썼다. (니나) 같은 무렵 그는 외사촌 니나 하게루프와 사랑에 빠졌다. 베르겐에서 태어나 코펜하겐에서 자란 소프라노였다. 1864년 크리스마스에 약혼하며 안데르센의 시에 곡을 붙인 '나는 너를 사랑해'를 바쳤다. 니나의 어머니는 그가 가진 것도 없고 아무도 듣지 않는 음악을 쓴다며 반대했다고 전해진다. 두 사람은 1867년 6월 결혼했다. (알렉산드라) 부부는 노르웨이의 수도 크리스티아니아(오늘날 오슬로)에 자리를 잡았다. 1868년 4월 외동딸 알렉산드라가 태어났고, 그해 여름 그리그는 덴마크의 시골집에서 슈만의 같은 조성 협주곡을 본보기 삼아 피아노 협주곡 A단조를 썼다. 1869년 4월 코펜하겐 초연은 그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그러나 다음 달 딸은 뇌수막염으로 13개월 만에 숨졌고, 부부는 다시 아이를 갖지 못했다.

♪가곡 '나는 너를 사랑해' (Op. 5 No. 3)1864 (21세)노래 Hendrickje Van Kerckhove (소프라노) · Nicolas Callot (피아노)

니나와 약혼하던 해, 안데르센의 시에 곡을 붙여 그녀에게 바친 노래다. 니나는 평생 이 곡을 비롯한 남편의 가곡을 무대에서 불렀다.

  • 원래 가사는 안데르센이 쓴 덴마크어 'Jeg elsker dig'이지만 독일어 번역 'Ich liebe dich'로 더 자주 불린다. 두 언어의 녹음을 견주면 말의 울림에 따라 선율의 숨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들린다.
  • 피아노는 화음을 고르게 반복해 짚으며 두근거리는 맥박처럼 노래를 받친다. 노래 선율보다 이 반주의 꾸준한 박동에 귀를 기울여 보면 곡의 긴장이 잘 느껴진다.
  • 1분 남짓한 짧은 곡이지만 마지막 '나는 너를 사랑해'에서 선율이 높은 음으로 솟구쳐 절정에 이른다. 가수마다 이 마지막 고음을 크게 터뜨릴지, 여리게 감쌀지 해석이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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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협주곡 A단조 (Op. 16)1868 (마지막 개정 1907) (25–64세)연주 Jan Lisiecki (피아노) · Altinoglu 지휘

딸이 태어난 여름에 쓰고 딸을 잃기 직전 초연된 곡으로, 슈만의 같은 조성 협주곡을 본보기 삼았다. 리스트가 원고를 보고 격려한 바로 그 곡이다.

  • 첫머리, 팀파니(큰 북)가 점점 세게 울린 뒤 피아노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쏟아지듯 화음을 내리꽂는다. 이때 들리는 '라-솔샵-미'로 꺾여 내려오는 세 음은 노르웨이 민요에 흔한 음형으로, 곡 곳곳에 다시 나타난다.
  • 1악장 후반, 오케스트라가 멈추고 피아니스트 혼자 기교를 펼치는 대목(카덴차)은 그리그가 직접 악보에 적어 넣었다. 낮은 음역에서 거대한 화음이 종소리처럼 울리는 부분이 연주자마다 힘과 속도에서 차이가 크다.
  • 2악장은 소리를 줄이는 장치(약음기)를 단 현악기들이 조용히 시작하고, 피아노는 한참 뒤에야 들어온다. 오케스트라만의 서주에서 이미 곡의 분위기가 다 정해진다는 점을 느껴 보면 좋다.
  • 3악장은 노르웨이 남성들이 높이 뛰어오르며 추는 춤 '할링'의 힘찬 두 박자 리듬으로 달린다. 중간에 플루트가 부르던 고요한 선율이 마지막에 오케스트라 전체로 크게 돌아와 밝은 A장조로 끝난다.
  • 디누 리파티(1947)와 스뱌토슬라프 리히터(1974)의 녹음이 자주 비교된다. 앞쪽은 맑고 단정하며, 뒤쪽은 느리고 장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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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크리스티아니아와 페르 귄트 · 1870–1876 (27–33세)

(리스트) 1870년 정부의 여행 장학금으로 로마에 간 그는 프란츠 리스트를 찾았다. 리스트는 협주곡 원고를 처음 보면서 피아노로 끝까지 쳐 내려갔고, '계속하시오, 당신에겐 그럴 재능이 있소, 겁먹지 마시오'라고 말했다. 그리그는 부모에게 보낸 편지에 이 장면을 자세히 적었고, 이 격려를 오래 마음에 품었다. (생계) 크리스티아니아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관현악단은 아마추어가 많았고 청중은 적었으며, 그는 지휘와 피아노 교습으로 시간을 쪼개야 했다. 1874년 노르웨이 의회가 그에게 종신 예술가 연금을 의결하면서 비로소 작곡에 몰두할 여유가 생겼다. 1876년 여름에는 베르겐 신문의 특파원으로 바이로이트에 가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초연을 보고 기사를 보냈다. (페르 귄트) 1874년 극작가 헨리크 입센이 극시 '페르 귄트'의 상연을 위한 부수음악을 청했다. 그는 이 일을 버거워했다. 친구 프란츠 바이에르에게 '산속 마왕의 궁전에서'를 두고 쇠똥 냄새와 지나친 노르웨이 자부심이 풍겨 차마 들을 수 없다고 투덜거렸다. 그러나 1876년 2월 초연은 성공했고, 이 음악은 훗날 두 개의 모음곡으로 묶여 그의 이름을 세계에 새겼다. (상실) 1875년 가을, 부모가 잇따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노르웨이 민요 한 곡을 주제로 삼아 피아노 '발라드' G단조를 썼다. 어두운 주제가 열네 번 모습을 바꾸는 변주곡이었다. 그는 이 가장 사적인 작품을 평생 공개 무대에서 연주하지 않았다.

♪페르 귄트 모음곡 1번 (Op. 46)1874–75 (모음곡 편성 1888) (31–45세)실황 Kristiansand Symphony Orchestra · Bjarte Engeset 지휘

입센의 연극을 위해 마지못해 쓴 부수음악에서 네 곡을 뽑아 엮었다. 그리그가 투덜댔던 '마왕의 궁전'은 오히려 그의 가장 유명한 선율이 되었다.

  • '아침'은 플루트와 오보에가 같은 선율을 주고받으며 해가 떠오르는 장면을 그린다. 흔히 노르웨이 피오르의 새벽으로 여기지만, 극에서는 페르가 떠돌던 모로코 사막의 아침이다.
  • '오세의 죽음'은 약음기를 단 현악기만으로 연주된다. 페르의 어머니 오세가 숨을 거두는 장면으로, 선율이 차츰 낮아지고 여려지는 흐름을 따라가 보면 좋다.
  • '아니트라의 춤'에서는 트라이앵글의 가벼운 울림과 현악기의 튕기는 소리가 사막 족장의 딸이 추는 유혹의 춤을 그린다.
  • '산속 마왕의 궁전에서'는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현을 손가락으로 튕기는 주법(피치카토)과 바순으로 낮게 살금살금 시작한다. 같은 짧은 선율이 쉼 없이 되풀이되며 점점 빨라지고(아첼레란도) 커지는데, 극에서는 트롤들이 페르를 쫓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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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발라드 G단조 (Op. 24)1875–76 (32세)연주 Nathanaël Gouin (피아노)

부모를 잇따라 잃은 해에 쓴 곡이다. 그리그는 이 곡을 끝내 공개 무대에서 연주하지 않았다.

  • 주제는 루드비 린데만이 모은 민요집의 '북쪽 지방의 농민'이라는 노래다. 처음 나오는 느리고 어두운 화음의 주제를 잘 기억해 두면 뒤의 변화가 또렷이 들린다.
  • 주제가 열네 번 모양을 바꾼다. 중간 변주들에서 화음이 반음씩 미끄러지듯 움직이는(반음계적) 대목에는 리스트와 바그너의 영향이 느껴진다.
  • 격렬하게 치솟는 마지막 변주가 지나면, 주제가 꾸밈없이 처음 모습 그대로 돌아와 위로 없이 조용히 끝난다. 이 끝맺음에서 곡의 무게가 가장 크게 다가온다.
  • 피아니스트들 사이에서 그리그의 가장 깊은 피아노 작품으로 꼽히지만, 연주회에서는 드물게 연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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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피오르와 트롤의 언덕 · 1877–1888 (34–45세)

(하르당에르) 1877년 그는 도시를 떠나 서부 하르당에르 피오르 가의 로프투스로 들어갔다. 과수원 언덕에 작은 작업 오두막을 짓고 물을 내다보며 현악 사중주 G단조를 썼다. 시골 연주자들이 켜는 하르당에르 피들의 겹겹이 울리는 소리가 이 시기 그의 귀에 깊이 배었고, 사중주의 두텁고 거친 화음에도 그 흔적이 들린다. (위기) 1880년부터 2년간 베르겐 하르모니엔 관현악단을 지휘했지만 일과 건강에 지쳤다. 결혼도 흔들렸다. 1883년 여름 그는 젊은 화가 엘리세 셸데루프에게 마음이 기울어 니나를 두고 홀로 독일로 떠났다. 친구 프란츠 바이에르가 다리를 놓았고, 이듬해 초 로마에서 부부는 화해했다. 이후 두 사람은 끝까지 함께였다. (홀베르) 1884년 베르겐 출신 극작가 루드비 홀베르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모음곡 '홀베르 시대에서'를 썼다. 바로크 시대의 춤곡 형식을 빌린 이 곡에서 그는 '민족주의 작곡가'라는 꼬리표 바깥으로 한 걸음 나섰다. (트롤하우겐) 1885년 베르겐 교외 언덕에 집을 짓고 '트롤하우겐(트롤의 언덕)'이라 불렀다. 라이프치히의 출판사 C. F. 페터스가 그의 작품을 꾸준히 사들이면서 살림은 넉넉해졌다. (라이프치히) 1887년 말 라이프치히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아돌프 브로드스키와 함께 바이올린 소나타 3번을 초연했다. 이듬해 1월 1일 브로드스키의 집 점심 자리에서 그리그 부부는 브람스, 차이콥스키와 한 식탁에 앉았다. 차이콥스키는 작고 병약해 보이는 그의 매혹적인 푸른 눈을 회고록에 적었고, 그해 서곡 '햄릿'을 그에게 헌정했다.

♪모음곡 '홀베르 시대에서' (홀베르 모음곡, Op. 40)1884 (현악 합주판 1885) (41–42세)연주 Norwegian Chamber Orchestra · Terje Tønnesen 리더

베르겐 출신 극작가 홀베르의 200주년을 위해 쓴 곡이다. 처음엔 피아노곡이었고 이듬해 현악 합주로 옮겨졌다.

  • '전주곡'은 현악기들이 쉼 없이 튕기듯 맥박을 새기는 리듬 위로 낮은 현이 넓은 선율을 펼친다. 이 바쁜 반주가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는지가 합주단의 실력을 가른다.
  • '가보트와 뮈제트'의 뮈제트에서는 낮은 음 하나가 백파이프처럼 길게 깔려 지속되고(드론), 그 위에서 선율이 춤춘다.
  • '아리아'는 악보에 '종교적으로 느리게'라고 적힌 G단조 악장으로, 첼로의 깊은 노래가 곡 전체의 무게 중심이다.
  • 마지막 '리고동'에서는 독주 바이올린과 독주 비올라가 빠르게 말을 주고받는다. 두 악기의 대화를 따로 귀로 좇아 보면 재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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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소나타 3번 C단조 (Op. 45)1886–87 (43세)연주 김동현 (바이올린) · 박영성 (피아노)

트롤하우겐에 정착한 뒤 쓴 곡으로, 라이프치히에서 브로드스키와 함께 초연했다. 그리그는 세 바이올린 소나타를 각각 소박함, 민족적 색채, 더 넓은 지평의 작품이라고 했다.

  • 1악장은 피아노의 거센 화음 위로 바이올린이 낮은 현에서 격정적으로 솟아오르는 첫 주제로 시작한다. 그리그 작품 가운데 가장 극적인 출발로 꼽힌다.
  • 2악장은 노래하듯 부드러운 E장조 악장인데, 중간에 갑자기 빠른 민속 춤 같은 부분이 끼어든다. 고요함과 춤이 맞부딪히는 순간을 놓치지 말 것.
  • 3악장은 어두운 C단조로 달리다가 끝에서 밝은 C장조로 돌아서며 끝난다.
  • 1928년 바이올리니스트 프리츠 크라이슬러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가 피아노를 맡은 녹음이 명연으로 전해진다. 두 거장이 이 곡을 함께 골랐다는 사실 자체가 이 작품의 위상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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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유럽을 도는 서정 시인 · 1889–1902 (46–59세)

(순회) 1890년대의 그는 겨울마다 유럽 도시를 돌며 지휘하고 피아노를 쳤고, 니나가 그의 가곡을 불렀다. 런던에서는 빅토리아 여왕 앞에서 연주했고, 1894년 케임브리지 대학이 명예 박사 학위를 주었다. 그러나 여행마다 호흡 곤란과 불면이 따랐고, 그는 편지에서 무대 앞의 긴장과 피로를 자주 털어놓았다. (은혼) 1892년 결혼 25주년에 트롤하우겐에는 축하객이 몰려들었다. 그 기억은 몇 해 뒤 '서정 소품집' 제8권의 '트롤하우겐의 결혼식 날'에 담겼다. 1867년부터 1901년까지 열 권으로 이어진 이 피아노 소품집은 그의 일기장과 같았다. 그러나 1901년 첼리스트였던 형 욘이 세상을 떠났다. 그리그는 1883년 첼로 소나타 A단조를 이 형에게 바친 바 있었다. (하우그투사) 1895년 무렵부터 그는 아르네 가르보르의 시집에 곡을 붙인 연가곡 '하우그투사'를 썼다. 산골 소녀의 사랑과 이별을 노르웨이 시골말로 노래하는 이 곡을, 그는 자신의 가곡 가운데 손꼽는 작품으로 여겼다. (양심) 그는 교회의 교리보다 이성과 양심을 믿었다. 영국 여행에서 접한 유니테리언(삼위일체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유주의 개신교) 사상에 공감했고, 정치적으로는 자유주의자였다. 1899년 프랑스에서 드레퓌스 대위가 재심에서 다시 유죄 판결을 받자, 그는 파리 콜론 관현악단의 초청을 거절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가 신문에 실리자 프랑스에서는 격한 비난이 쏟아졌다.

♪서정 소품집 제8권 중 '트롤하우겐의 결혼식 날' (Op. 65 No. 6)1896 (53세)연주 Sek Thongsuwan (피아노)

1892년 은혼식 날 트롤하우겐에 몰려든 축하객의 기억을 담은 곡이다. 일기장 같은 서정 소품집 가운데 가장 사랑받는 한 장이다.

  • 원래 제목은 '축하객들이 온다'였다. 첫머리의 행진은 멀리서 사람들이 다가오듯 여리게 시작해 점점 커진다.
  • 같은 화음을 힘차게 거듭 두드리는 부분은 잔칫집의 들뜬 분위기와 종소리처럼 들린다.
  • 중간부는 느리고 조용한 선율로 바뀐다. 손님들 틈에서 부부 둘만의 지난 세월을 돌아보는 순간처럼 들리는 대목이다.
  • 그리그 자신이 1903년 파리에서 남긴 음반(축음기 녹음, 일부 축약) 연주가 전해져, 작곡가 본인의 템포와 비교해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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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 마지막 시편 · 1903–1907 (60–64세)

(드뷔시) 1903년 4월 마침내 파리 무대에 섰을 때, 객석에는 드레퓌스 사건 때의 발언을 잊지 않은 이들이 있었다. 비평가로도 활동하던 클로드 드뷔시는 그의 음악을 '눈을 채운 분홍빛 사탕'의 묘하고 매혹적인 맛에 빗대며 비꼬았다. 그래도 그해 6월 60회 생일에 베르겐은 온 도시가 축제를 열었다. (슬로터) 같은 무렵 그는 하르당에르 피들의 명인 크누트 달레가 연주한 춤곡을 바이올리니스트 요한 할보르센이 받아 적은 악보로 피아노곡집 '슬로터'를 냈다. 시골 춤의 거친 불협화음을 매끈하게 다듬지 않고 옮긴 이 곡집은 말년의 그가 여전히 새로운 소리를 찾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1905년 노르웨이가 스웨덴과의 연합을 끝내고 완전히 독립하자 그는 크게 기뻐했다. (그레인저) 말년의 그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젊은 피아니스트 퍼시 그레인저를 아꼈다. 1907년 여름 트롤하우겐에 머문 그레인저와 협주곡을 함께 연습했고, 40년 가까이 손보아 온 그 곡의 마지막 수정도 이 무렵 마쳤다. (시편) 마지막 작품은 1906년의 '네 개의 시편'이었다. 노르웨이 시골 교회에서 불리던 옛 찬송 선율을 혼성 합창과 바리톤 독창으로 다시 엮은 곡으로, 교리를 멀리했던 그가 고향의 신앙 노래로 돌아간 셈이었다. (죽음) 1907년 9월, 영국 리즈 음악제에 지휘하러 떠나려던 그는 베르겐의 호텔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고, 9월 4일 64세로 숨졌다. 장례식에는 수많은 시민이 거리를 메웠고, 노르드로크를 위해 썼던 장송 행진곡이 연주되었다. 유해는 트롤하우겐 호숫가 바위벽에 안치되었고, 1935년 세상을 떠난 니나도 그 곁에 잠들었다.

덜 알려진 이야기

그리그에게도 교향곡이 있다. 1863~64년 코펜하겐에서 쓴 C단조 교향곡은 몇 차례 연주된 뒤 그 스스로 거두어들였고, 악보에는 '절대 연주해서는 안 된다'는 뜻의 글귀가 적혔다. 노르드로크를 만난 뒤 독일식 교향곡이 자기 길이 아니라고 여긴 것이다. 원고는 베르겐 공공도서관에 보관되었고, 작곡가의 뜻을 존중해 오래 묻혀 있다가 1980년대 초에야 베르겐에서 정식으로 다시 연주되었다. 그래서 '그리그는 교향곡을 쓰지 않았다'는 말이 지금도 흔하다. 가장 유명한 피아노 협주곡도 하나의 고정된 작품이 아니었다. 1868년 완성 뒤 그는 40년 가까이 관현악 편성과 세부를 거듭 고쳤고, 마지막 손질은 세상을 떠난 해인 1907년 무렵에야 끝났다. 오늘 우리가 듣는 협주곡은 젊은 날의 초고라기보다 노년의 그리그가 다듬은 결과물에 가깝다. '노르웨이의 목소리'로 불린 그였지만, 집안의 뿌리는 스코틀랜드였다. 증조부 알렉산더 그레이그(Greig)가 18세기 후반 베르겐으로 건너와 상인으로 자리 잡았고, 철자가 노르웨이식으로 바뀌어 그리그(Grieg)가 되었다. 증조부가 1746년 컬로든 전투 뒤 스코틀랜드를 떠났다는 이야기는 가문의 전승으로 전해진다. 무대 공포가 컸던 그는 작은 개구리 인형을 늘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연주 전에 만지작거렸다고 전해진다. 위대한 작곡가의 일화로는 사소해 보여 전기의 본문보다 박물관 안내문에 더 자주 남은 이야기지만, 평생 약한 폐와 긴장을 안고 무대에 섰던 사람의 모습을 잘 보여 준다.

용어 노트 📚🔎

대위법

(말뜻) 대위(對位)는 마주(對) 놓인 자리(位)라는 뜻이다. 서양 이름 카운터포인트(counterpoint)는 라틴어 punctus contra punctum, 곧 '점 대 점', 음표 하나에 음표 하나를 맞세운다는 말에서 왔다. (음악에서) 여러 개의 독립된 선율을 동시에 울리면서도 서로 잘 어울리게 엮는 기술이다. 각 선율이 제 갈 길을 가면서도 함께 들으면 하나의 음악이 되어야 한다. 돌림노래에서 한 사람은 앞 소절을, 다른 사람은 같은 노래를 늦게 시작해 부르는데도 소리가 엉키지 않는 것 — 그것이 대위법이 만들어 내는 효과다. 바흐가 이 기술의 대가였고, 그리그가 라이프치히에서 지루해한 수업도 바로 이것이었다.

협주곡

(말뜻) 협주곡(協奏曲)은 함께(協) 연주하는(奏) 곡이라는 뜻이다. 서양 이름 콘체르토의 라틴어 뿌리 concertare 에는 겨루다라는 뜻도 있어, 독주자와 오케스트라가 주고받는 이 음악의 성격이 이름에 담겨 있다. (음악에서) 피아노나 바이올린 같은 독주 악기 하나가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하는 큰 곡으로, 보통 빠르게-느리게-빠르게의 세 악장으로 되어 있다. 독주자는 주인공처럼 앞에 나서고 오케스트라는 받쳐 주기도, 맞서기도 한다. 학급 합창 대회에서 독창자 한 명이 한 소절을 부르면 반 전체가 이어받아 함께 부르는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부수음악

(말뜻) 부수(附隨)는 딸려(附) 따라간다(隨)는 뜻이다. 연극에 딸려 붙는 음악이라는 말이다. (음악에서) 연극을 무대에 올릴 때 막과 막 사이, 장면의 배경, 등장인물의 노래나 춤에 쓰도록 쓴 음악이다. 연극이 주인공이고 음악은 그것을 돕는다. 학예회 연극에서 장면이 바뀔 때 흐르는 음악이나, 게임에서 마을·전투 장면마다 바뀌는 배경음악과 비슷하다. 그리그의 '페르 귄트'는 원래 입센의 연극을 위한 부수음악이었다.

모음곡

(말뜻) 여러 곡을 모아 엮은 곡이라는 뜻이다. 서양 이름 스위트(suite)는 '한 벌로 이어진 것'이라는 뜻의 프랑스어에서 왔다. (음악에서) 짧은 곡 여러 개를 한 묶음으로 이어 연주하는 형식이다. 바로크 시대에는 여러 춤곡을 모은 것을 가리켰고, 낭만주의 시대에는 오페라나 연극 음악에서 좋은 곡만 뽑아 연주회용으로 엮은 것도 모음곡이라 불렀다.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 가운데 인기곡만 골라 담은 '베스트 앨범'을 떠올리면 페르 귄트 모음곡이 이해된다. 반면 홀베르 모음곡은 처음부터 옛 춤곡 형식으로 한 벌을 지은 쪽이다. (다른 데서는) 호텔의 '스위트룸'은 방 여러 개가 한 벌로 이어진 객실을 말하고, 컴퓨터에서는 여러 프로그램을 한 묶음으로 판매하는 것을 '스위트'라 부른다.

변주곡

(말뜻) 변주(變奏)는 바꾸어(變) 연주한다(奏)는 뜻이다. (음악에서) 먼저 하나의 주제 선율을 들려준 뒤, 그 주제를 빠르게, 느리게, 슬프게, 화려하게 모양을 바꿔 가며 여러 번 되풀이하는 곡이다. 듣는 사람은 모습이 달라져도 그 안에 숨은 원래 주제를 알아채는 재미를 느낀다. '반짝반짝 작은 별'을 행진곡처럼, 자장가처럼, 신나는 춤곡처럼 바꿔 불러 보는 놀이가 바로 변주다. 모차르트도 이 노래로 변주곡을 썼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 '같은 이야기의 변주'라고 하면, 뼈대는 같은데 겉모습만 조금씩 바꾼 것을 가리킨다.

현악 사중주

(음악에서) 바이올린 두 대, 비올라 한 대, 첼로 한 대, 이렇게 현악기 넷이 함께 연주하는 편성이자 그 곡을 말한다. 지휘자 없이 네 사람이 서로 눈짓과 숨소리로 맞춰야 해서 '네 사람의 대화'라고도 부른다. 네 명이 한 조가 되어 하는 모둠 과제와 비슷하다 — 각자 맡은 역할이 다르지만 한 사람이라도 어긋나면 결과물이 흔들린다. 하이든이 이 형식을 다듬었고, 작곡가들은 가장 진지한 생각을 담는 장르로 여겼다.

하르당에르 피들

(음악에서) 노르웨이 서부 하르당에르 지방에서 비롯된 전통 바이올린이다. 겉보기엔 바이올린과 비슷하지만, 활로 켜는 줄 네 개 아래에 손대지 않는 줄이 네다섯 개 더 숨어 있다. 위의 줄을 켜면 아래 줄이 저절로 따라 떨면서 은은한 울림이 겹겹이 퍼진다. 기타 줄 하나를 세게 튕겼을 때 손대지 않은 옆 줄이 함께 떨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면, 바로 그 원리(공명)다. 노르웨이 시골의 결혼식과 춤에 빠지지 않는 악기로, 그리그는 이 소리를 피아노와 관현악으로 옮기려 애썼다.

연가곡

(말뜻) 연가곡(連歌曲)은 이어진(連) 노래(歌曲)들이라는 뜻이다. 독일어로는 '노래의 고리(Liederkreis)'라고도 부른다. (음악에서) 여러 편의 가곡을 하나의 이야기나 주제로 이어 묶은 작품이다. 한 곡씩 따로 불러도 되지만, 차례대로 들어야 이야기 전체가 완성된다. 웹툰이 한 화씩 연재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 보면 한 편의 이야기가 되는 것과 같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가 대표적이고, 그리그의 '하우그투사'는 산골 소녀의 사랑과 이별을 이렇게 이어서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