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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xander Borodin

알렉산드르 보로딘 (1833–1887)

“나는 일요일의 작곡가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생조지아 공작의 서자어머니의 헌신2. 화학스승 지닌알돌 반응 보고여성 의학 강좌3. 사랑하이델베르크 만남아내 예카테리나피사 피아노 오중주4. 5인조발라키레프의 지도무소륵스키와 우정교향곡 1번 초연5. 정점교향곡 2번〈이고리 공〉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6. 말년현악 사중주 2번리스트의 후원무도회에서 급사보로딘1833–1887화학 교수로 살며 여가에 교향곡과 〈이고리 공…
삶의 여정 🧭🗺️
N러시아이탈리아독일상트페테르부르크1833–1859, 1862–1887하이델베르크1859–1861피사1861–1862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가족아브도티야 안토노바

    혼외자인 아들을 위해 가정교사를 들이고 상인 조합 등록까지 주선해 대학의 문을 열어 준 어머니다.

  • 스승니콜라이 지닌

    그를 화학 실험실로 이끌어 후계자로 키웠고, 음악에 쏟는 시간을 줄이라고 타일렀다.

  • 우정모데스트 무소륵스키

    1856년 군병원에서 처음 만나 1881년 그가 죽을 때까지 벗으로 지냈고, 두 사람은 같은 묘지에 잠들어 있다.

  • 가족예카테리나 프로토포포바

    하이델베르크에서 만난 피아니스트 아내로, 그에게 쇼팽과 슈만의 세계를 열어 주었고 현악 사중주 2번을 헌정받았다.

  • 스승밀리 발라키레프

    스스로를 아마추어로 여기던 그를 교향곡의 길로 이끌었고, 교향곡 1번의 초연을 지휘했다.

  • 후원프란츠 리스트

    바이마르에서 그를 격려하고 교향곡 1번을 독일에 소개했으며,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를 헌정받았다.

YouTube에서 5곡 이어 듣기 ↗

I. 공작의 아들 · 1833–1850 (0–17세)

(출생) 1833년 11월, 러시아 제국(오늘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알렉산드르 보로딘이 태어났다. 생부는 조지아 귀족 가문 출신으로 이미 예순을 넘긴 공작 루카 게데바니시빌리였다. 어머니 아브도티야 안토노바는 스물네 살의 평민 여성이었다. 아이는 혼외자였으므로 당시 관례대로 공작의 농노 포르피리 보로딘의 아들로 호적에 올랐다. 그의 성은 생부가 아니라 하인에게서 온 것이었다. (해방) 공작은 아이가 일곱 살이던 1840년에 그를 농노 신분에서 풀어 주었다. 모자가 살 집을 마련해 준 뒤 그는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훗날 퇴역 군의관 클라이네케와 결혼했다. 체면 때문에 보로딘은 남들 앞에서 어머니를 ‘이모’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어머니는 아들의 출신이 앞길을 막지 않도록 평생 애썼다. (재능) 혼외자는 김나지움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가정교사를 들여 외국어와 음악을 가르쳤다. 소년은 피아노와 플루트, 첼로를 익혔다. 아홉 살에 폴카를 지었고, 열세 살 무렵에는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을 썼다. 같은 무렵 그는 방을 약병과 실험 도구로 채우고 불꽃놀이용 화약을 직접 만들었다. 음악과 화학이라는 평생의 두 갈래가 이때 이미 나란히 놓여 있었다. (상인) 대학 진학에도 신분이 걸림돌이었다. 어머니는 관리에게 돈을 써서 아들을 탐보프 상인 조합에 등록시켰다. 그 덕에 보로딘은 1850년 의학·외과 아카데미에 청강생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II. 실험실의 청년 · 1850–1859 (17–26세)

(지닌) 아카데미에서 보로딘을 알아본 사람은 화학자 니콜라이 지닌이었다. 지닌은 그를 자기 실험실에 들여 사실상 후계자로 키웠다. 그러면서도 음악에 빠진 제자에게 “노래 생각은 좀 줄이게. 나는 자네를 내 후계자로 여기고 있네”라고 타일렀다고 전해진다. 보로딘은 스승의 말을 듣는 한편으로 아마추어 실내악 모임에 나가 첼로를 켰다. (군병원) 1856년 우등으로 졸업한 그는 제2육군 병원의 수련의가 되었다. 그해 가을 그는 그곳에서 당직을 서던 열일곱 살의 근위대 장교 모데스트 무소륵스키를 처음 만났다. 보로딘의 회상에 따르면, 멋을 부린 이 청년 장교는 병원장 집의 저녁 모임에서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와 〈라 트라비아타〉의 대목을 우아하게 쳐 보였다. 3년 뒤 다시 만난 무소륵스키는 슈만을 연주하며 발라키레프라는 이름을 들려주었다. 보로딘은 그때 처음으로 러시아 음악의 새 흐름을 실감했다. (박사) 그는 환자 곁보다 실험실에 맞는 사람이었다. 1858년 비소산과 인산의 화학적 유사성을 다룬 논문으로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여가) 이 시기 그의 작곡은 멘델스존풍의 실내악과 가곡 몇 편에 머물렀다. 그는 음악을 어디까지나 본업 밖의 즐거움으로 여겼다. 이런 자의식은 평생 이어졌고, 훗날 스스로를 ‘일요일의 작곡가’라고 부르게 된다.

III. 하이델베르크의 봄 · 1859–1862 (26–29세)

(유학) 1859년 아카데미는 그를 서유럽으로 보냈다. 보로딘은 하이델베르크에 자리 잡고 에를렌마이어의 실험실에서 일했다. 그곳에서 드미트리 멘델레예프, 생리학자 이반 세체노프 같은 러시아의 젊은 과학자들과 어울렸다. 1860년에는 멘델레예프와 함께 카를스루에 국제 화학자 회의에 참석했다. 은염에 브로민을 작용시키는 반응을 연구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예카테리나) 1861년 봄, 그는 폐결핵을 치료하러 하이델베르크에 와 있던 모스크바 출신 피아니스트 예카테리나 프로토포포바를 만났다. 그녀는 쇼팽과 슈만을 즐겨 쳤다. 멘델스존의 단정한 세계에 머물러 있던 보로딘에게 그녀의 연주는 낭만주의 음악으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두 사람은 함께 음악을 들으며 빠르게 가까워졌다. (피사) 가을이 되자 의사들은 그녀에게 따뜻한 이탈리아로 가라고 권했다. 보로딘은 피사까지 따라가 그곳 대학 실험실에서 플루오린 화합물을 연구했다. 이 피사 체류 중에 다단조 피아노 오중주를 썼고, 두 사람은 약혼했다. 연구와 연애와 작곡이 한 도시에서 함께 진행된 드문 시기였다. (귀국) 1862년 가을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왔다. 이때까지 그가 쓴 곡은 아직 아마추어의 실내악이었다. 그러나 예카테리나를 통해 깊이 알게 된 슈만의 음악은 그에게 더 큰 형식을 꿈꾸게 했다.

IV. 발라키레프의 서클 · 1862–1869 (29–36세)

(발라키레프) 귀국한 보로딘은 곧 아카데미의 조교수가 되었다. 그해 말 의사 세르게이 보트킨의 집에서 밀리 발라키레프를 만났는데, 발라키레프는 그가 아마추어 이상이라는 것을 금세 알아보았다. 보로딘은 그의 지도를 받으며 첫 교향곡을 쓰기 시작했다. 훗날 그는 발라키레프를 만나기 전까지는 자신을 딜레탕트로만 여겼다고 털어놓았다. (관사) 1863년 봄, 그는 모스크바에서 예카테리나와 결혼했다. 부부는 아카데미 건물 안의 관사에 살았다. 친구들의 회상에 따르면 그 집은 늘 친척과 학생과 갈 곳 없는 손님으로 북적였고, 고양이들이 식탁 위를 걸어 다녔다. 천식에 시달린 예카테리나는 밤늦게 잠들어 낮에 일어났고, 건강 때문에 오랫동안 모스크바에 가 있곤 했다. 부부는 떨어져 지내는 시간을 편지로 메웠다. 둘 사이에 자녀는 없었고, 형편이 어려운 집안의 소녀들을 데려와 딸처럼 길렀다. (급여) 교수 봉급은 넉넉하지 않았다. 그는 삼림 아카데미에서 강의를 더 맡았지만, 친척과 학생에게 돈을 아끼지 않아 살림은 늘 빠듯했다. (초연) 실험실 일에 쫓겨 첫 교향곡을 완성하는 데 5년이 걸렸다. 내림마장조 교향곡은 1869년 1월 발라키레프의 지휘로 초연되어 호평을 받았다. 그보다 앞선 1867년, 비평가 스타소프는 발라키레프를 중심으로 모인 이들을 ‘힘센 무리’라고 불렀다. 이 무리가 훗날 보로딘, 무소륵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 퀴, 발라키레프의 ‘5인조’로 기억된다. 같은 해 그는 가곡 〈잠자는 공주〉를 썼다.

♪로망스 〈잠자는 공주〉1867 (34세)노래 Sasha Gutiérrez (소프라노) · Daniel Muñoz (피아노)

발라키레프 서클에 들어간 뒤 보로딘이 가사까지 직접 써서 지은 가곡이다. 교향곡 1번과 같은 시기에 나온 이 곡에서 그의 대담한 화성 감각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 피아노 반주는 처음부터 바로 옆에 붙은 두 음(2도 음정)을 함께 누르는 화음을 되풀이하고, 이 어긋난 울림은 끝내 풀리지 않는다. 마법에 걸려 깨어나지 못하는 잠을 소리로 그린 대목이다.
  • 가사는 어두운 숲속에 잠든 공주와, 언젠가 그녀를 깨우러 올지 모를 용사(보가티르)에 관한 이야기다. 노래 선율은 좁은 음역에서 낮게 맴돌아 노래라기보다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말투처럼 들린다.
  • 풀리지 않는 불협화음(서로 부딪치는 화음)을 색채처럼 쓰는 이 방식은 드뷔시보다 앞선 선구적 화성으로 자주 거론된다. 피아노의 두 손이 만들어 내는 흐릿한 울림에 귀를 기울여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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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곡 제1번 내림마장조1862–1867 (29–34세)

발라키레프의 지도를 받으며 실험실 틈틈이 5년에 걸쳐 쓴 첫 교향곡이다. 1869년 초연의 성공으로 그는 스스로를 아마추어로만 여기던 데서 벗어났다.

  • 1악장의 느린 도입부(서주)에서 낮은 현악기가 꺼내는 주제는 빠른 본론에서 모습을 바꿔 다시 나타난다. 처음 몇 마디를 기억해 두고, 그 씨앗이 어떻게 자라는지 따라가 보라.
  • 2악장 스케르초는 아주 빠르게(프레스티시모) 몰아친다. 가운데 부분(트리오)에서 느긋한 가락으로 바뀌는데, 그 대비가 이 악장을 듣는 재미다.
  • 3악장 안단테는 현악기와 목관악기가 주고받는 느린 노래다. 젊은 보로딘의 서정이 가장 솔직하게 드러나는 악장으로 꼽힌다.
  • 리스트는 이 곡을 높이 평가해 1880년 독일 바덴바덴 음악제에서 연주되도록 주선했다. 이 연주로 보로딘의 이름이 서유럽에 처음 알려졌다.

V. 이고리 공 · 1869–1880 (36–47세)

(스타소프) 1869년 스타소프가 12세기 서사시 『이고리 원정기』를 오페라로 만들자며 줄거리 초안을 건넸다. 보로딘은 연대기와 민요 자료를 뒤지며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곧 자신을 잃고 작업을 접었고, 그때 써 둔 악상 상당수를 교향곡 2번으로 옮겼다. 〈이고리 공〉은 몇 해 뒤 다시 펼쳐졌지만 끝내 그의 평생 숙제로 남았다. (실험실) 본업은 갈수록 무거워졌다. 그는 1868년 러시아 화학회 창립에 참여했고, 1872년에는 알데하이드 축합 반응(알돌 반응)을 보고했다. 같은 해 문을 연 여성 의학 강좌에서는 화학을 가르치며 여성 교육을 적극 옹호했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회고록에서 보로딘이 실험실과 피아노 사이를 오가며 지냈다고 적었다. 그가 몸이 아파 강의를 쉴 때에야 작곡을 할 수 있어서 음악가 친구들이 그의 감기를 바랐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재기) 교향곡 2번은 1877년 나프라브니크의 지휘로 초연되었으나 반응이 냉담했다. 보로딘은 관현악을 고쳐 1879년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지휘로 다시 무대에 올렸다. 같은 해 〈이고리 공〉의 폴로베츠인의 춤도 처음 연주되었다. 차이콥스키는 1877년 말 후원자 폰 메크 부인에게 편지를 보내, 보로딘이 재능은 강하지만 교육이 모자라 그것을 다 살리지 못한다고 평했다. (리스트) 1877년 독일을 찾은 보로딘은 바이마르에서 리스트를 만났다. 리스트는 교향곡 1번을 칭찬하며 남의 충고에 휘둘리지 말라고 격려했다. 1880년 보로딘은 알렉산드르 2세 즉위 25주년 행사를 위해 관현악곡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를 쓰고, 이 곡을 리스트에게 바쳤다.

♪교향곡 제2번 나단조1869–1876 (36–43세)실황 Concertgebouworkest · Chichon 지휘

접어 둔 〈이고리 공〉의 악상을 옮겨 담은 교향곡이다. 1877년 초연에서 냉담한 반응을 얻었고, 보로딘이 관현악을 고친 뒤인 1879년에야 제대로 인정받았다.

  • 1악장 첫머리에서 현악기들이 한 목소리(유니슨)로 무겁게 내리찍는 주제가 나온다. 보로딘이 스타소프에게 전한 구상에 따르면 이 악장은 옛 러시아 용사들의 모임을 그렸다. 그래서 이 곡은 ‘용사(보가티르)’ 교향곡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 2악장 스케르초는 아주 빠르게(프레스티시모) 한 마디를 한 박처럼 몰아 달린다. 호른이 같은 음을 빠르게 두드리는 대목과, 목관이 이끄는 느긋한 가운데 부분(트리오)의 대비를 들어 보라.
  • 3악장은 클라리넷과 하프가 옛 러시아 현악기 구슬리를 흉내 내는 소리로 시작하고, 이어 호른 독주가 길고 아련한 선율을 부른다. 스타소프는 이 대목을 음유시인 바얀의 노래로 풀이했다. 이 호른 독주는 오케스트라 호른 주자들의 시험대로 꼽힌다.
  • 4악장은 쉬지 않고 이어지는 잔치 장면이다. 오늘날 연주되는 것은 초연 실패 뒤 보로딘이 손질한 판본이며, 금관과 타악기가 쌓아 올리는 활기가 특히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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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이고리 공〉 중 ‘폴로베츠인의 춤’1869–1879 (36–46세)실황 Concertgebouworkest 금관 앙상블

끝내 완성하지 못한 오페라 가운데 가장 먼저 세상에 나온 대목이다. 1879년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 오페라 2막에서 폴로베츠의 칸 콘차크가 포로로 잡힌 이고리 공을 위해 여흥을 베푸는 장면이다. 원래는 합창이 함께하지만 연주회에서는 오케스트라만으로도 자주 연주되니, 두 판을 비교해 들어 보라.
  • 도입부에 이어 오보에와 잉글리시호른(오보에보다 낮고 그윽한 목관악기)이 부르는, 느리게 휘감기는 선율이 ‘처녀들의 미끄러지는 춤’이다. 이 가락은 1953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키스멧〉의 노래 ‘Stranger in Paradise’로 다시 태어났다.
  • 곧이어 클라리넷이 빠른 음표로 휘몰아치는 ‘남자들의 거친 춤’이 나온다. 클라리넷 주자의 손가락 기술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 끝으로 갈수록 팀파니와 큰북, 심벌즈가 박자를 몰아붙이고 여러 춤이 한꺼번에 겹친다. 림스키코르사코프의 회고록에 따르면, 1879년 초연을 앞두고 시간이 모자라자 그와 랴도프가 악보 정리를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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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현악곡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1880 (47세)연주 Main Line Symphony Orchestra

알렉산드르 2세 즉위 25주년 행사를 위해 쓰고 리스트에게 바친 곡이다. 화학자다운 정밀함으로 두 가락을 하나로 엮어 냈다.

  • 보로딘이 직접 붙인 해설에 따르면, 끝없는 초원의 정적 속에서 러시아 노래가 들려온다. 이어 다가오는 말과 낙타의 발소리와 함께 동방의 애잔한 가락이 들리고, 러시아 병사들의 호위를 받는 대상(隊商)이 초원을 건너 멀어져 간다.
  • 곡이 시작되면 바이올린이 아주 높은 음 하나를 길게 끌며 유지한다. 지평선까지 텅 빈 초원의 하늘처럼 들린다.
  • 러시아 가락은 클라리넷이, 동방풍 가락은 잉글리시호른(오보에보다 낮고 그윽한 목관악기)이 맡는다. 낮은 현악기가 손가락으로 줄을 튕기는(피치카토) 일정한 걸음은 대상의 행렬을 나타낸다.
  • 후반부에서는 두 가락이 동시에 겹쳐 울린다(대위법). 서로 다른 두 노래가 한데 어울리는 이 대목이 곡의 정점이며, 마지막에는 행렬이 멀어지듯 소리가 잦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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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마지막 무도회 · 1881–1887 (48–54세)

(상실) 1881년 3월, 무소륵스키가 마흔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스물다섯 해를 이어 온 벗의 죽음은 보로딘에게 깊은 상처였다. 그해 여름 그는 예카테리나와 처음 만난 지 스무 해가 된 것을 기념해 현악 사중주 2번을 썼고, 이 곡을 아내에게 바쳤다. 사중주에 흐르는 서정은 슬픔보다 하이델베르크 시절의 회상에 가깝다. (벨기에) 1880년 리스트가 바덴바덴 음악제에서 교향곡 1번을 소개한 뒤, 그의 이름은 서유럽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벨기에에서는 메르시아르장토 백작부인이 그의 작품을 열성적으로 소개했다. 보로딘은 1885년 리에주와 안트베르펜에서 자기 음악이 연주되는 것을 지켜보았고, 피아노곡 〈작은 모음곡〉을 그녀에게 바쳤다. 같은 해 그는 바이마르에서 리스트를 마지막으로 만났다. (쇠약) 그러나 일상은 고단했다. 정부가 여성 의학 강좌의 신입생 모집을 막았고, 아내의 병은 깊어졌다. 그 자신도 1885년 콜레라를 앓았다. 〈이고리 공〉은 여전히 완성되지 않았고, 1886년에는 교향곡 3번을 쓰기 시작했다. (무도회) 1887년 2월 27일, 사육제(마슬레니차) 무렵 아카데미에서 열린 가장무도회에 보로딘은 붉은 러시아 전통 셔츠를 입고 나왔다. 그는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쓰러져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쉰세 살이었다. 그는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수도원의 티흐빈 묘지에, 무소륵스키와 가까운 자리에 묻혔다. 예카테리나도 그해 6월 세상을 떠났다. 림스키코르사코프와 젊은 글라주노프가 남은 원고를 정리해 〈이고리 공〉을 완성했고, 이 오페라는 1890년 마린스키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현악 사중주 제2번 라장조1881 (48세)실황 CMS of Lincoln Center · 2015

무소륵스키를 잃은 해 여름, 예카테리나와 처음 만난 지 스무 해가 된 것을 기념해 아내에게 바친 곡이다.

  • 3악장 노투르노(야상곡)에서는 첼로가 높은 음역에서 먼저 선율을 노래하고, 제1바이올린이 그것을 이어받는다. 첼로를 직접 연주했던 보로딘이 아내에게 바친 곡이어서, 두 악기가 주고받는 노래를 부부의 대화로 듣는 해석이 널리 퍼져 있다.
  • 노투르노 후반부에서는 바이올린과 첼로가 같은 선율을 시차를 두고 따라 부른다(카논). 앞사람을 뒤에서 따라 부르는 돌림노래와 같은 방식이다.
  • 1악장은 첼로가 따뜻한 첫 주제를 꺼내고 바이올린이 응답하며 시작한다. 2악장 스케르초는 왈츠처럼 부드럽게 흔들리는 춤곡이다.
  • 노투르노의 선율은 1953년 뮤지컬 〈키스멧〉의 노래 ‘And This Is My Beloved’에 쓰였다. 현악 오케스트라용 편곡으로도 자주 연주되니, 네 대의 악기로 연주한 원곡과 비교해 들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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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알려진 이야기

화학사에서 보로딘의 이름은 생각보다 깊이 남아 있다. 그는 1861년 카복실산의 은염에 브로민을 작용시켜 브로민화 알킬을 얻는 반응을 보고했다. 이 반응은 1939년 독일의 훈스디커 부부가 다듬어 발표한 뒤 서양 교과서에 ‘훈스디커 반응’으로 실렸고, 오늘날에는 ‘보로딘–훈스디커 반응’으로 함께 부르기도 한다. 1872년의 알돌 반응도 프랑스의 뷔르츠와 거의 같은 시기에 독립적으로 찾아낸 것이다. 그러나 이름이 붙은 쪽은 주로 뷔르츠였다. 작곡가 보로딘의 이미지가 커지면서 가려진 일도 있다. 그는 1872년 문을 연 여성 의학 강좌에서 화학을 가르쳤고, 정부가 강좌를 줄이려 할 때 존속을 위해 애쓴 인물이었다. 음악사 전기에서는 이런 활동이 대개 한두 줄로 지나간다. 1953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키스멧〉은 거의 모든 노래를 보로딘의 선율로 만들었다. 폴로베츠인의 춤은 ‘Stranger in Paradise’가 되었고, 현악 사중주 2번의 노투르노는 ‘And This Is My Beloved’가 되었다. 이 작품이 1954년 토니상을 받으면서, 세상을 떠난 지 67년이 지난 보로딘이 토니상 수상자 명단에 오르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듣는 〈이고리 공〉에는 다른 사람의 손이 적지 않게 들어가 있다. 특히 서곡은 글라주노프가 생전에 보로딘이 피아노로 쳐 보이던 것을 기억해 되살려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로딘이 장면 순서를 정하지 않고 떠났기 때문에, 근래에는 장면을 다시 배열하거나 림스키코르사코프판에서 빠진 대목을 되살린 무대도 나오고 있다.

용어 노트 📚🔎

교향곡

(말뜻) 교향곡(交響曲)은 여러 소리가 서로 어울려(交) 울리는(響) 곡이라는 뜻이다. 서양 이름 심포니의 그리스어 뿌리 symphonia 도 ‘함께 울림’이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큰 규모의 곡으로, 보통 성격이 다른 네 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다. 힘찬 첫 악장, 노래하는 느린 악장, 가볍고 빠른 춤곡 악장, 화려한 끝 악장이 이어지는 식이다. 체육대회에서 달리기, 줄다리기, 계주처럼 성격이 다른 종목이 차례로 이어져 하루가 완성되는 것과 비슷하다.

스케르초

(말뜻) 스케르초(scherzo)는 이탈리아어로 ‘농담’, ‘장난’이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교향곡이나 현악 사중주 안에서 빠르고 경쾌하게 움직이는 악장을 말한다. 대개 3박자이고, 가운데에 분위기가 다른 부분(트리오)을 끼웠다가 처음 부분으로 돌아온다. 무거운 수업 사이의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장난치는 몇 분처럼, 큰 곡 안에서 숨을 돌리고 웃음을 주는 자리다. 보로딘의 교향곡 1번과 2번의 스케르초는 특히 빠르기로 유명하다.

야상곡

(말뜻) 야상곡(夜想曲)은 밤(夜)에 떠올리는 생각(想)의 곡이라는 뜻이다. 프랑스어 녹턴(nocturne)과 이탈리아어 노투르노(notturno)도 모두 ‘밤의’라는 말에서 왔다. (음악에서) 조용하고 꿈꾸는 듯한 서정적인 곡이나 악장을 가리킨다. 쇼팽의 피아노 야상곡이 가장 유명하고, 보로딘은 현악 사중주 2번의 셋째 악장에 이 이름을 붙였다. 불 끈 방에서 이불을 덮고 하루를 떠올릴 때의 차분하고 조금 그리운 기분을 소리로 옮긴 음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대위법

(말뜻) 대위법(對位法)은 음과 음을 마주(對) 세우는(位) 방법이라는 뜻이다. 영어 counterpoint 의 라틴어 뿌리 punctus contra punctum 도 ‘점 대 점’, 곧 ‘음표 대 음표’라는 말이다. (음악에서) 각자 독립된 선율 둘 이상을 동시에 울리면서도 서로 잘 어울리도록 짜는 기술이다. 돌림노래가 가장 쉬운 예다. 한 사람이 먼저 부르고 다른 사람이 조금 늦게 같은 노래를 따라 불러도, 두 가락이 겹치면서 어울린다. 보로딘은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에서 전혀 다른 러시아 가락과 동방 가락을 동시에 울리게 해 이 기술을 보여 주었다.

관현악법

(말뜻) 관현악(管絃樂)은 관(管)악기와 현(絃)악기가 함께 연주하는 음악, 곧 오케스트라 음악이라는 뜻이다. 관현악법은 그런 음악을 짜는 방법을 말한다. (음악에서) 같은 선율을 바이올린에 줄지, 플루트에 줄지, 호른에 줄지 정하고, 여러 악기를 어떻게 겹칠지 결정하는 기술이다. 영어로는 오케스트레이션이라고 한다. 같은 볶음밥이라도 어떤 재료를 넣고 어떤 불에 볶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듯, 같은 곡도 악기를 어떻게 나누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색을 낸다. 보로딘이 교향곡 2번의 초연이 실패한 뒤 주로 고친 것도 이 부분이었다. (다른 데서는) 컴퓨터 분야에서 오케스트레이션은 여러 서버와 프로그램이 순서에 맞게 함께 돌아가도록 자동으로 조율하는 일을 뜻한다.

피치카토

(말뜻) 피치카토(pizzicato)는 ‘꼬집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pizzicare 에서 온 말로, ‘꼬집어서’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바이올린이나 첼로 같은 현악기를 활로 긋지 않고 손가락으로 줄을 튕겨 소리 내는 연주법이다. 짧고 톡톡 끊어지는 소리가 난다. 책상 모서리에 걸친 고무줄을 손가락으로 튕길 때 나는 소리를 떠올리면 된다.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에서 낮은 현악기가 내는 피치카토는 터벅터벅 걷는 낙타와 말의 발걸음처럼 들린다.

로망스

(말뜻) 로망스(romance)는 본래 학자들이 쓰던 라틴어가 아니라 사람들이 일상에서 쓰던 지방 말, 곧 로망스어로 지은 노래나 이야기를 가리키던 말이다. (음악에서) 러시아에서는 피아노 반주가 붙은 서정적인 독창 가곡을 로망스라고 부른다. 독일의 리트(가곡)에 해당하는 장르다. 음악 시간에 교과서 가곡을 피아노 반주에 맞춰 혼자 부르는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보로딘은 로망스를 많이 남기지 않았지만, 〈잠자는 공주〉처럼 가사를 직접 쓴 곡이 여럿 있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 로맨스는 연애나 사랑 이야기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