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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an Berg

알반 베르크 (1885–1935)

“그의 모습 속에는 나의 한 조각도 들어 있다.” — 보체크에 대해, 1918년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눈에 보기 🔭💭

1. 뿌리오스트리아 빈 출생아버지의 죽음천식과 숫자 232. 사사쇤베르크 문하베베른과 우정헬레네와 결혼3. 추문알텐베르크 가곡1913 소동 연주회전쟁과 군복무4. 보체크알마 말러 후원1925 베를린 초연클라이버 지휘5. 비밀서정 모음곡한나와 숫자 암호거슈윈의 방문6. 말년나치의 배척천사를 위한 협주곡미완의 룰루베르크1885–1935쇤베르크의 제자로 12음 음악에 서정을 입힌 …
삶의 여정 🧭🗺️
N오스트리아빈1885–1935뵈르터 호숫가(벨덴 인근)1932–1935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영향구스타프 말러

    청년 베르크가 빈 궁정 오페라에서 우러러본 지휘자이자 작곡가로, 〈관현악을 위한 세 개의 소품〉에 그 영향이 짙게 남았다.

  • 스승아르놀트 쇤베르크

    1904년부터 그를 가르친 스승으로, 베르크는 평생 그를 경외하면서도 그의 엄격한 질책에 늘 마음을 졸였다.

  • 우정안톤 베베른

    같은 쇤베르크 문하에서 만난 평생의 벗으로, 〈실내협주곡〉의 주제에 세 사람의 이름이 함께 새겨졌다.

  • 가족헬레네 베르크

    아버지의 반대를 넘어 1911년에 결혼한 아내로, 남편이 죽은 뒤 40년 동안 그의 유산을 지켰다.

  • 후원알마 말러

    〈보체크〉 악보의 출판 비용을 댄 후원자였고, 그의 딸 마농의 죽음은 바이올린 협주곡을 낳았다.

  • 제자테오도르 W. 아도르노

    1925년 빈에서 베르크에게 작곡을 배운 철학자로, 훗날 스승에 대한 중요한 연구서를 남겼다.

YouTube에서 7곡 이어 듣기 ↗

I. 빈의 소년 · 1885–1904 (0–19세)

(출생) 1885년 2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오늘날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콘라트 베르크는 바이에른의 뉘른베르크에서 옮겨 와 수출업을 하던 상인이었고, 어머니 요한나 브라운은 빈 사람이었다. 넷 남매 가운데 셋째로, 위로 형 헤르만과 카를(가족은 샤를리라 불렀다), 아래로 누이 스마라크다가 있었다. 집안은 넉넉한 편이었고, 남부 케른텐의 별장 ‘베르크호프’에서 여름을 보냈다. (상실) 1900년 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살림이 기울었다. 같은 해 7월 23일, 열다섯 살 소년은 처음 천식 발작을 겪었다. 이 병은 평생 그를 따라다녔고, 그는 이날의 숫자 23을 자기 운명의 숫자로 여기게 되었다. (알비네) 1902년, 베르크호프에서 일하던 하녀 마리 쇼이흘과의 사이에서 딸 알비네가 태어났다. 열일곱 살 아들의 혼외자 일은 집안이 조용히 수습했고, 알비네는 어머니 쪽에서 자랐다. 그 뒤의 삶에 대해서는 남은 기록이 많지 않다. (좌절) 이듬해 그는 김나지움 졸업시험에 떨어졌고, 그 무렵 자살을 기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04년에야 시험을 통과해 니더외스터라이히 주 관청의 무급 수습 공무원이 되었다. (독학)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었지만 그는 열다섯 무렵부터 노래를 지었다. 가족과 친구들이 집에서 부르도록 쓴 가곡이 수십 곡에 이르렀다. 그는 궁정 오페라를 이끌던 구스타프 말러의 공연을 쫓아다녔고, 말러에 대한 경외는 평생 이어졌다. 상실과 병, 좌절로 채워진 이 몇 해의 기억은 훗날 그가 고른 소재들 — 버림받은 사람, 쫓기는 사람 — 에 그늘처럼 남았다.

II. 쇤베르크의 문하 · 1904–1911 (19–26세)

(광고) 1904년 가을, 형 샤를리가 작곡 강습생을 모집한다는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신문 광고를 보고 동생의 가곡 몇 곡을 몰래 들고 찾아갔다. 쇤베르크는 재능을 알아보았고, 형편이 어려운 집안 사정을 감안해 처음에는 수업료를 받지 않고 가르쳤다. (유산) 1905년 친척의 유산이 들어와 집안 형편이 나아졌다. 이듬해 그는 관청을 그만두고 음악에만 매달렸다. (도제) 쇤베르크는 화성과 대위법(여러 선율을 동시에 엮는 기술)부터 엄격하게 다그쳤다. 같은 문하의 안톤 베베른과는 이때 평생의 우정을 맺었다. 스승은 베르크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였으나 칭찬에 인색하고 요구가 많았다. 베르크는 스승의 이사와 원고 정리, 연주회 준비 같은 잡일까지 도맡으며 늘 그 눈치를 살폈다. (헬레네) 1907년 무렵 그는 성악을 공부하던 헬레네 나호프스키를 만났다. 헬레네의 아버지는 병약하고 벌이가 불확실한 청년을 사윗감으로 탐탁지 않아 했고, 두 사람은 수백 통의 편지로 사랑을 이어 갔다. 1911년 5월 마침내 결혼했다. 둘 사이에 자녀는 없었다. (소나타) 이 시기의 결실이 단악장 피아노 소나타 Op. 1(1907–08)과 현악 사중주 Op. 3(1910)이다. 소나타는 낭만주의의 조성(으뜸음을 중심으로 한 질서)을 붙든 채 그 끝자락까지 밀어붙였고, 결혼을 앞두고 쓴 사중주는 조성을 거의 떠난 채 격정적인 서정을 쏟아냈다. (전환) 1911년은 갈림길이었다. 5월 말러가 세상을 떠났고, 쇤베르크는 베를린으로 떠났다. 베르크는 빈에 남아 스승의 〈구레의 노래〉 피아노 편곡과 해설서를 만들며 스승의 일을 대신 챙겼다.

♪피아노 소나타 Op. 11907–1908 (22–23세)연주 조성진 (피아노) · 2016-17 Gilmore Rising Stars

쇤베르크 문하에서 처음 내놓은 ‘졸업 작품’으로, 스승에게 배운 엄격한 짜임새 위에 청년의 격정을 실었다.

  • 첫머리에 나오는 몇 음짜리 짧은 동기(모티프)가 곡 전체의 재료다. 이 동기가 모양을 바꾸며 되돌아오는 자리를 따라가면, 10여 분의 단악장이 하나로 묶여 들린다.
  • 조성은 b단조지만 반음씩 미끄러지는 화음 때문에 중심이 자꾸 흐려진다. 마지막에 b단조 화음에 닿을 때 비로소 발이 땅에 닿는 느낌이 온다.
  • 베르크는 본래 여러 악장을 구상했으나 다음 악장이 써지지 않자, 쇤베르크가 할 말을 다 했으면 끝난 것이라는 취지로 한 악장으로 마치게 했다고 전해진다.
  • 주제를 처음 보여 주는 제시부를 되풀이하는지가 연주자마다 다르다. 반복을 지키는 연주에서는 소나타 형식의 설계가 더 또렷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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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추문과 전장 · 1911–1918 (26–33세)

(엽서) 1912년 그는 첫 관현악 작품인 〈알텐베르크 가곡〉 Op. 4를 썼다. 빈의 카페에 살다시피 한 시인 페터 알텐베르크가 그림엽서 뒷면에 적은 짧은 글들을 가사로 삼았다. (소동) 1913년 3월 31일, 빈 무지크페라인에서 쇤베르크가 지휘한 연주회에서 이 가운데 두 곡이 처음 연주되었다. 객석에서 웃음과 야유가 터지고 몸싸움까지 벌어져 연주회는 중단되었다. ‘추문 연주회’로 불린 이 사건 뒤, 전곡이 무대에 오른 것은 그가 죽고 한참 지난 1953년이었다. (질책) 더 아프게 다가온 것은 스승의 반응이었다. 쇤베르크는 아주 짧은 곡을 이어 붙인 〈알텐베르크 가곡〉과 클라리넷 소품 Op. 5를 탐탁지 않게 여기며 더 큰 형식을 쓰라고 다그쳤다. 상처받은 베르크는 1914년 스승의 마흔 번째 생일에 바치려고 〈관현악을 위한 세 개의 소품〉 Op. 6을 썼다. 말러의 교향곡을 닮은 거대한 짜임새였다. (보이체크) 1914년 5월 그는 게오르크 뷔히너의 희곡 〈보이체크〉의 빈 공연을 보았다. 상관과 의사에게 짓밟히는 가난한 병사의 이야기에 사로잡혀, 그 자리에서 오페라로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군복) 몇 달 뒤 전쟁이 터졌다. 1915년 천식에도 불구하고 징집된 그는 훈련 중 쓰러졌고, 이듬해 빈의 전쟁부 사무실로 옮겨 서류 일을 했다. 1918년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보체크의 모습 속에 자신의 한 조각이 있다고 적었다. 몇 해째 증오하는 사람들에게 매여, 아프고 갇히고 굴욕을 겪는 처지라는 것이었다. 군대에서 겪은 모욕과 무력감이 오페라의 장면마다 스며들었다.

♪알텐베르크 가곡 (다섯 개의 관현악 가곡) Op. 41912 (27세)실황 Renée Fleming (소프라노) · Claudio Abbado 지휘

엽서 뒷면의 짧은 시로 쓴 첫 관현악곡으로, 1913년 ‘추문 연주회’를 일으켜 베르크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 1곡 첫머리에서는 여러 악기가 저마다 다른 속도로 짧은 음형을 되풀이하며 겹쳐, 반짝이는 소리의 안개를 만든다. 그 안개 속에서 소프라노가 조용히 떠오르는 순간을 기다려 들어 보자.
  • 3곡 〈우주의 경계 너머로〉에서는 열두 음이 모두 들어간 화음이 쌓였다 흩어진다. 12음 기법이 나오기 10년쯤 전의 일이다.
  • 마지막 5곡 〈여기에 평화가〉는 파사칼리아(짧은 선율을 계속 되풀이하고 그 위에 변주를 쌓는 형식)다. 되풀이되는 그 선율을 붙잡고 들으면 구조가 보인다.
  • 초연 때 소동이 났지만, 지금 들으면 대부분 아주 여린 소리(피아니시모)로 속삭이듯 흘러간다. 무엇이 1913년의 청중을 그토록 자극했는지 생각하며 들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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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현악을 위한 세 개의 소품 Op. 61914–1915 (29–30세)실황 Berliner Philharmoniker · Kirill Petrenko 지휘

짧은 곡만 쓴다는 스승의 질책에 답해 쇤베르크의 마흔 번째 생일에 바친 곡으로, 말러의 그림자가 짙다.

  • 1곡 〈전주곡〉은 음높이가 없는 타악기(탐탐·심벌즈·큰북)의 웅성거림에서 시작해 선율이 떠올랐다가, 다시 같은 소음 속으로 사라진다. 처음과 끝이 거울처럼 맞물린다.
  • 2곡 〈윤무〉에서는 빈의 왈츠와 시골 춤(렌틀러)의 조각들이 일그러진 채 스쳐 간다. 말러 교향곡의 춤곡 악장을 떠올리게 한다.
  • 3곡 〈행진곡〉은 거대한 관현악이 무너지듯 몰아치다가 끝무렵 망치가 내리친다. 말러 교향곡 6번의 망치를 의식한 대목으로 널리 해석된다.
  • 전쟁 직전에 쓰기 시작한 곡이라 행진곡의 폭력성을 전쟁의 예감으로 듣는 해석이 많다. 다만 베르크 자신이 그렇게 밝힌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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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보체크 · 1918–1925 (33–40세)

(협회) 전쟁이 끝난 1918년, 빈으로 돌아온 쇤베르크가 ‘사적 음악 연주 협회’를 세웠다. 비평가는 들이지 않고 박수도 금지한 채 새 음악을 충분히 연습해 되풀이 들려주는 모임이었다. 베르크는 연주 준비와 운영을 맡아 몸을 아끼지 않았다. 협회는 전후 인플레이션을 견디지 못하고 1921년 문을 닫았다. (완성) 1922년 〈보체크〉 Op. 7이 완성되었다. 그가 쓴 희곡 판본의 표기 탓에 제목은 ‘보이체크’가 아닌 ‘보체크’가 되었다. 3막 15장의 각 장면은 모음곡·파사칼리아·론도 같은 옛 기악 형식으로 짜였지만, 그는 청중이 그런 형식을 알아챌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후원) 선뜻 출판하겠다는 곳이 없었다. 말러의 미망인 알마 말러가 비용을 대 피아노 반주 악보를 자비로 찍었고, 베르크는 오페라를 알마에게 바쳤다. 그 무렵 그는 개인 교습으로 살림을 꾸렸고, 인플레이션 속에서 생활은 넉넉지 않았다. (실내협주곡) 1923년부터는 스승의 쉰 번째 생일을 기려 피아노·바이올린과 관악기 13대를 위한 〈실내협주곡〉을 썼다. 첫머리에 쇤베르크·베베른·베르크 세 사람의 이름 철자를 음이름으로 바꾼 짧은 주제를 새겨, 스승과 두 제자의 우애를 음악에 담았다. (초연) 베를린 국립 오페라의 음악감독 에리히 클라이버가 〈보체크〉를 맡았다. 백 회가 넘는 연습이 필요했다고 전해진다. 1925년 12월 14일 초연에 일부 비평가는 혼돈이라며 혹평했지만 객석의 반응은 뜨거웠다. 마흔 살의 무명 작곡가는 하룻밤 사이에 유럽에서 이름이 알려진 작곡가가 되었다.

♪오페라 〈보체크〉 Op. 71914–1922 (29–37세)지휘 Claudio Abbado · Wiener Philharmoniker

군복무 중 겪은 모욕과 무력감이 짓밟히는 병사 보체크에게 스며든 작품으로, 1925년 베를린 초연으로 베르크를 세상에 알렸다.

  • 15개 장면이 저마다 옛 기악 형식으로 짜였다. 2막 전체는 다섯 악장짜리 교향곡처럼, 3막은 ‘하나의 음’, ‘하나의 리듬’처럼 한 가지 재료만 파고드는 여섯 개의 인벤션(짧은 연구곡)으로 되어 있다.
  • 3막 2장 연못가 살인 장면에서는 B음(독일식으로 H) 하나가 처음부터 끝까지 깔린다. 장면이 끝나면 오케스트라 전체가 그 B음 하나로 두 번 크게 부풀어 오르는(크레셴도) 순간이 오는데, 이 오페라에서 가장 섬뜩한 대목으로 꼽힌다.
  • 보체크가 물에 빠져 죽은 뒤의 d단조 간주곡은 작품에서 가장 뚜렷한 조성 음악이다. 베르크는 이 대목을 작곡가가 무대 밖으로 나와 청중에게 직접 호소하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 마지막 장면에서 엄마를 잃은 마리의 아이는 그 사실을 모른 채 목마를 타며 ‘호프, 호프’ 하고 논다. 음악은 끝맺지 않은 듯 공중에 멈춘다.
  • 곳곳에서 노래와 말 사이의 창법인 슈프레히슈티메(음높이를 대략 따르며 말하듯 부르기)가 쓰인다. 가수마다 ‘말’과 ‘노래’의 비율이 달라서 음반을 비교해 듣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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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비밀의 사중주 · 1925–1932 (40–47세)

(프라하) 1925년 5월, 국제 현대음악 축제에 참석하러 프라하에 간 베르크는 사업가 헤르베르트 푹스로베틴의 집에 묵었다. 그곳에서 그의 아내 한나와 깊은 사랑에 빠졌다. 한나는 작가 프란츠 베르펠의 누이였고, 베르펠은 알마 말러의 동반자였다. 두 사람 모두 가정이 있었고, 관계는 대부분 편지 속에서 이어졌다. (암호) 이 사랑이 1925–26년의 현악 사중주 〈서정 모음곡〉이 되었다. 겉으로는 여섯 악장의 기악곡이었지만, 그는 두 사람의 머리글자를 음이름으로 바꾼 동기와 한나의 숫자 10, 자신의 숫자 23을 마디 수와 빠르기에 숨겼다. 1927년 1월 콜리시 사중주단이 빈에서 초연했다. (명성) 〈보체크〉는 프라하·레닌그라드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공연되었고, 공연료가 들어오면서 생활도 한결 나아졌다. 1930년 무렵에는 포드 자동차를 사서 손수 몰고 다니는 것을 즐겼다. 1925년부터는 젊은 철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에게 작곡을 가르쳤다. (거슈윈) 1928년 봄 조지 거슈윈이 빈으로 그를 찾아왔다. 콜리시 사중주단이 거슈윈 앞에서 〈서정 모음곡〉을 연주했고, 거슈윈이 그 뒤에 자기 곡을 치기를 망설이자 베르크가 음악은 음악일 뿐이라며 권했다고 전해진다. (룰루) 1929년 그는 연주회용 아리아 〈포도주〉를 쓰며 12음 기법을 노래에 시험한 뒤, 프랑크 베데킨트의 희곡 두 편을 엮은 두 번째 오페라 〈룰루〉에 착수했다. 1905년 빈에서 이 연극의 비공개 공연을 본 뒤 오래 품어 온 소재였다. 남자들을 차례로 파멸로 이끌다가 끝내 자신도 몰락하는 여인의 이야기였다.

♪현악 사중주를 위한 〈서정 모음곡〉 (작품번호 없음)1925–1926 (40–41세)연주 Chamber Music Society of Lincoln Center

겉으로는 기악 사중주지만, 프라하에서 만난 한나 푹스로베틴을 향한 사랑을 음이름과 숫자의 암호로 새긴 비밀 고백이다.

  • 여섯 악장이 번갈아 놓이는데, 빠른 악장은 갈수록 더 빨라지고 느린 악장은 갈수록 더 느리고 어두워진다. 1악장 ‘쾌활하게’에서 마지막 ‘황량한 라르고’까지 가는 흐름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다.
  • 3악장은 약음기(소리를 줄이는 장치)를 끼운 현악기들이 속삭이듯 빠르게 스쳐 가다가, 가운데의 ‘황홀한 트리오’에서 갑자기 크게 터져 나온다.
  • 4악장에는 스승의 동료 체믈린스키의 〈서정 교향곡〉에서 ‘너는 나의 것’이라는 가사가 붙은 선율이 인용된다.
  • 마지막 악장에서는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주곡의 첫 동기가 슬쩍 지나간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상징을 빌려 온 대목이다.
  • 이 악장 선율에는 보들레르의 시 〈심연에서 외치노라〉가 숨어 있었다. 1970년대에 이 사실이 밝혀진 뒤, 소프라노가 그 가사를 함께 부르는 판본으로도 연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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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한 천사를 기억하며 · 1932–1935 (47–50세)

(숲집) 1932년 그는 케른텐 뵈르터 호숫가 숲속에 작은 집 ‘발트하우스’를 마련했다. 빈의 소음과 천식을 피해 해마다 이곳에 머물며 〈룰루〉를 썼다. (배척) 1933년 나치가 독일의 권력을 잡자 그의 음악은 ‘퇴폐’로 몰려 독일 무대에서 사라졌다. 수입의 큰 몫이던 독일의 공연료가 끊기자 살림은 다시 쪼들렸고, 1934년 그는 〈보체크〉의 자필 악보를 미국 의회도서관에 팔았다. 그해 11월 클라이버가 베를린에서 〈룰루〉 모음곡을 초연했지만, 클라이버는 얼마 뒤 국립 오페라를 떠났다. (천사) 1935년 초 미국 바이올리니스트 루이스 크래스너가 협주곡을 의뢰했다. 4월, 알마 말러와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의 딸 마농이 소아마비로 열여덟 살에 세상을 떠났다. 어려서부터 아끼던 소녀였다. 베르크는 〈룰루〉를 미뤄 두고 협주곡을 ‘한 천사를 기억하며’ 그에게 바쳤다. 2악장에는 바흐의 칸타타 BWV 60에 실린 코랄 〈이제 족하다〉를 바흐가 붙인 화음 그대로 들여왔다. 곡은 여름에 완성되었다. (독침) 그해 여름 등에 벌레에 쏘인 자리가 곪았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일을 계속했지만 염증은 거듭 도졌고, 12월에 패혈증으로 번졌다. 병원에서 낯선 빈 청년의 피를 수혈받으며 ‘오페레타 작곡가가 되지 않으면 좋겠다’고 농담했다고 전해진다. 12월 24일 새벽, 쉰 살로 빈에서 숨을 거두었다. (미완) 바이올린 협주곡은 이듬해 4월 바르셀로나에서 크래스너의 독주로 초연되었다. 한 소녀를 위해 쓴 곡은 결과적으로 작곡가 자신을 보내는 음악으로도 들리게 되었다. 〈룰루〉는 3막의 관현악 편곡이 상당 부분 빈 채로 남았다.

♪오페라 〈룰루〉 (작품번호 없음, 미완성)1929–1935 (44–50세)무대 Patricia Petibon · Marc Albrecht 지휘

나치의 배척과 궁핍 속에서 숲속 집에 머물며 써 내려갔으나, 협주곡에 자리를 내준 뒤 끝내 완성하지 못한 마지막 오페라다.

  • 베르크는 기본 음렬(열두 음을 정해진 순서로 늘어놓은 줄) 하나에서 인물마다 다른 음렬을 뽑아냈다. 그런데도 화음은 자주 후기 낭만파처럼 달콤하게 들려서, 12음 음악은 딱딱하다는 선입견을 깨뜨린다.
  • 2막 한가운데의 ‘영화 음악’ 간주곡은 룰루의 체포와 투옥, 탈출을 그린다. 정확히 가운데에서 음악이 거꾸로 돌아가 앞 절반을 끝에서부터 되짚는(팔린드롬) 구조여서, 몰락과 다시 일어섬이 대칭을 이룬다.
  • 2막의 〈룰루의 노래〉는 높은 음을 화려하게 오가는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의 기교가 돋보인다. 남들이 자기를 본 그대로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 보이려 한 적이 없다는 가사가 이 인물의 핵심이다.
  • 마지막 장면에서 룰루의 비명이 울린 뒤, 겔슈비츠 백작 부인이 ‘룰루, 나의 천사’라고 부르며 죽어 간다. 베르크가 완성한 두 막에 모음곡을 덧붙인 판으로 듣느냐, 체르하가 완성한 3막 판으로 듣느냐에 따라 결말의 무게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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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협주곡 〈한 천사를 기억하며〉 (작품번호 없음)1935 (50세)연주 Zimmermann (바이올린) · Altinoglu 지휘

열여덟 살에 세상을 떠난 마농 그로피우스에게 바친 곡으로, 베르크가 완성한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 독주 바이올린이 손가락으로 누르지 않은 네 줄(개방현)을 차례로 짚는 듯한 분산화음(아르페지오)으로 조용히 시작한다. 12음 음렬이지만 장·단조 화음이 들어가도록 짜여 있어 낯설지 않게 들린다.
  • 1악장 뒷부분에는 케른텐 지방의 민요가 나온다. 생기 넘치던 소녀 마농의 모습을 그린 대목으로 널리 받아들여진다.
  • 2악장은 비명 같은 절정 뒤에 바흐의 코랄 〈이제 족하다〉를 꺼낸다. 독주 바이올린이 선율을 내놓으면 클라리넷들이 바흐가 붙인 화음 그대로 오르간처럼 답한다.
  • 음렬의 마지막 네 음은 온음씩 차례로 오르는데, 이것이 바로 코랄 첫머리 선율과 같다. 12음 기법과 바흐가 처음부터 한 몸으로 설계된 셈이다.
  • 곡은 독주 바이올린이 아주 높은 음으로 사라지듯 끝난다. 이 마지막 높은 음을 흔들림 없이 맑게 지탱하는 데서 연주자의 역량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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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알려진 이야기

〈서정 모음곡〉이 한 여인에게 바친 비밀 연서라는 사실은 베르크가 죽고 40년 넘게 알려지지 않았다. 1976년 헬레네가 세상을 떠난 뒤, 미국의 작곡가이자 학자 조지 펄이 한나 푹스로베틴의 유족이 간직하던 악보를 조사했다. 베르크가 손수 주석을 달아 한나에게 건넨 그 악보에는 두 사람의 머리글자에 해당하는 음(A·B와 H·F), 두 사람의 숫자 10과 23으로 정한 마디 수와 빠르기, 그리고 피날레 선율 밑에 적어 넣은 보들레르의 시가 있었다. 그때까지 순수한 기악 실내악으로 분석되던 곡이 하루아침에 고백의 기록으로 바뀌었다. 헬레네는 남편과 영적으로 계속 대화를 나눈다고 믿었고, 〈룰루〉 3막의 완성을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오스트리아 작곡가 프리드리히 체르하는 1960년대부터 출판사와 함께 남은 스케치로 3막을 조용히 보완했고, 이 작업은 헬레네가 세상을 떠난 뒤인 1979년 파리에서 피에르 불레즈의 지휘로 처음 공연되었다. 헬레네가 남편의 편지를 책으로 펴낼 때 일부를 덜어 낸 것도 베르크의 사생활이 오래 가려져 있던 까닭 가운데 하나다. 헬레네가 황제 프란츠 요제프의 딸이라는 소문도 빈에서 오래 돌았다. 어머니 안나 나호프스키가 젊은 시절 황제와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은 훗날 출간된 안나의 일기로 확인되지만, 헬레네가 황제의 딸인지는 끝내 입증되지 않았다.

용어 노트 📚🔎

무조성

(말뜻) 무조(無調)는 조(調)가 없다(無)는 뜻이다. 영어 atonal도 ‘없음’을 뜻하는 그리스어 접두사 a-에 ‘조성의(tonal)’를 붙인 말이다. (음악에서) 보통의 음악은 ‘도’나 ‘라’ 같은 음 하나를 집으로 삼아, 멀리 나갔다가도 결국 그 음으로 돌아와 끝난다. 이 질서를 조성이라 하고, 무조성은 그런 중심 음 없이 열두 음을 대등하게 다루는 음악을 말한다. 술래잡기에 빗대면 돌아와 짚어야 할 ‘집’ 기둥이 없는 놀이와 같다. 어디서 끝나도 이상하지 않으니, 듣는 사람은 소리의 색깔과 긴장 그 자체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12음 기법

(음악에서) 피아노 한 옥타브 안의 열두 음(흰건반 일곱, 검은건반 다섯)을 한 번씩만 써서 정한 순서로 늘어놓고, 그 줄(음렬)을 뒤집거나 거꾸로 읽으며 곡 전체를 짓는 방법이다. 쇤베르크가 1920년대 초에 체계로 다듬었다. 반 친구 열두 명이 미리 정한 순서대로 한 번씩 발표하는 것과 비슷하다. 아무도 두 번 나서지 않으니 누구 한 사람이 주인공이 되지 않는다. 베르크는 음렬을 짤 때 장·단조 화음이 들어가도록 해서, 규칙을 지키면서도 따뜻한 소리를 냈다.

파사칼리아

(말뜻) 스페인어 pasacalle에서 왔다. ‘지나가다(pasar)’와 ‘거리(calle)’가 합쳐진 말로, 원래는 거리를 지나가며 기타로 연주하던 짧은 반주 가락을 가리켰다. (음악에서) 짧은 선율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되풀이하고, 그 위에 다른 성부들이 매번 다른 변주를 쌓아 가는 형식이다. 축구 연습에서 같은 드리블 코스를 계속 돌되 바퀴마다 기술을 바꾸는 것과 같다. 코스는 그대로인데 매번 새롭다. 〈알텐베르크 가곡〉의 마지막 곡과 〈보체크〉 1막의 의사 장면이 파사칼리아다.

슈프레히슈티메

(말뜻) 독일어로 ‘말하다(sprechen)’와 ‘목소리(Stimme)’를 합친 말로, 곧 ‘말하는 목소리’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악보에 적힌 음높이와 리듬을 대략 따르되, 음을 길게 붙들지 않고 말하듯 미끄러지며 내는 창법이다. 쇤베르크의 〈달에 홀린 피에로〉로 널리 알려졌다. 동생에게 동화책을 읽어 줄 때 무서운 대목에서는 목소리를 낮게 깔고 놀라는 대목에서는 확 올리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노래는 아니지만 음높이가 오르내리는, 말과 노래의 중간쯤이다.

코랄

(말뜻) 독일어 Choral은 라틴어 cantus choralis, 곧 ‘합창하는 노래’에서 왔다. (음악에서)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독일 개신교 교회에서 신자들이 다 함께 부르던 찬송가 선율, 그리고 그 선율에 네 성부의 화음을 붙인 곡을 말한다. 바흐는 수백 곡의 코랄에 화음을 붙였다. 졸업식에서 모두 함께 부르는 교가처럼, 누구나 알고 함께 부르는 선율이 코랄이다. 베르크는 바이올린 협주곡에 바흐가 화음을 붙인 코랄을 그대로 옮겨 와, 듣는 이가 익숙한 찬송의 울림 속에서 위로를 느끼게 했다.

팔린드롬

(말뜻) 그리스어 palin(다시)과 dromos(달림)가 합쳐진 말로, ‘거꾸로 다시 달린다’는 뜻이다. (음악에서) 어느 지점을 중심으로 음악이 거꾸로 되돌아가, 앞 절반을 끝에서부터 거울처럼 되짚는 구조를 말한다. 〈룰루〉 2막의 ‘영화 음악’ 간주곡이 대표적이다. 영상을 반쯤 재생한 뒤 되감기 버튼을 누르면 장면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다른 데서는) 말놀이에서는 ‘기러기’, ‘토마토’처럼 앞뒤로 읽어도 같은 낱말이나 문장을 가리킨다.

소나타 형식

(말뜻) 소나타(sonata)는 이탈리아어 sonare(울리다, 연주하다)에서 왔다. ‘노래하다(cantare)’에서 온 칸타타와 짝을 이뤄, 악기로 연주하는 곡을 뜻했다. (음악에서) 주제들을 처음 보여 주는 제시부, 그 주제들을 쪼개고 엮으며 긴장을 키우는 발전부, 주제가 다시 돌아오는 재현부로 이뤄진 악장의 짜임새다. 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 시대에 다듬어졌다. 이야기 짓기에 빗대면 ‘인물 소개, 사건과 갈등, 처음 자리로 돌아오되 달라진 결말’의 흐름이다. 베르크의 피아노 소나타 Op. 1은 한 악장 안에 이 틀을 고스란히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