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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aron Copland

에런 코플런드 (1900–1990)

브루클린 상점가의 막내가 대평원과 옛 찬송에서 미국 음악의 목소리를 찾아냈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미국 뉴욕 브루클린 출생유대계 이민자 가정골드마크 문하2. 파리불랑제의 제자스트라빈스키의 리듬오르간 교향곡3. 모더니즘재즈 실험과 결별피아노 변주곡아이브스 소개4. 미국의 소리로데오·팡파르애팔래치아의 봄퓰리처상5. 시련교향곡 3번12음 기법 수용매카시 소위 증언6. 말년지휘자로 순회수도꼭지 같은 침묵탱글우드에 잠들다코플런드1900–1990유대계 이민자의 아들이 미국 음악의 목소리를 …
삶의 여정 🧭🗺️
N미국프랑스브루클린1900–1921파리1921–1924뉴욕(맨해튼)1924–1952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스승루빈 골드마크

    드보르자크의 제자로, 1917–1921년 화성과 대위법의 단단한 기초를 놓아 주었다.

  • 스승나디아 불랑제

    파리에서 3년간 가르치고 오르간 교향곡을 의뢰해 그를 작곡가로 세상에 내보냈다.

  • 영향이고르 스트라빈스키

    파리에서 들은 그의 엇갈리는 리듬과 건조한 울림이 코플런드 음악의 골격이 되었다.

  • 후원세르게이 쿠세비츠키

    보스턴 교향악단에서 그의 곡을 잇따라 초연하고 교향곡 3번을 의뢰했으며 탱글우드 교단을 맡겼다.

  • 우정레너드 번스타인

    1937년 만난 뒤 평생 그의 음악을 지휘하고 알린 후배이자 벗이었다.

  • 우정마사 그레이엄

    「애팔래치아의 봄」을 의뢰하고 안무해 그의 대표작을 함께 만든 무용가였다.

YouTube에서 7곡 이어 듣기 ↗

I. 브루클린의 막내 · 1900–1921 (0–21세)

(출생) 1900년 11월,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해리스 모리스 코플런드와 어머니 세라 미텐탈은 러시아 제국(오늘날 리투아니아) 출신의 유대계 이민자였다. 부부는 브루클린 워싱턴 애비뉴에서 잡화점을 꾸리며 그 위층에서 살았고, 에런은 다섯 남매의 막내로 가게 계산대와 창고 사이에서 자랐다. 그는 훗날 자신이 자란 거리를 음악과는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 상점가로 기억했다. (남매) 음악의 첫 문은 형제들이 열었다. 형 랠프는 바이올린을 켰고, 누나 로린은 피아노 기초를 가르쳐 주었다. 열 살 남짓부터 혼자 곡을 끄적이던 그는, 앞선 자식들의 레슨이 별 열매를 맺지 못했다고 여기던 부모를 스스로 설득해 정식 피아노 수업을 받았다. 가게 일을 거들고 성인식(바르 미츠바)을 치르는 평범한 유대계 소년의 삶 속에서, 음악은 그가 혼자 지켜 낸 영역이었다. (골드마크) 1917년부터 4년 동안 루빈 골드마크에게 화성과 대위법을 배웠다. 골드마크는 뉴욕에 머물던 드보르자크에게 작곡을 배운 사람이었으니, 코플런드는 드보르자크의 손자뻘 제자가 된 셈이다. 스승은 탄탄한 기초를 주었지만 보수적이어서, 제자가 도서관에서 찾아 읽던 드뷔시나 스크랴빈의 새 악보를 탐탁지 않아 했다. 코플런드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1921년 파리 근교 퐁텐블로에 새로 문을 연 미국인 음악원의 여름학교에 등록해, 스무 살에 대서양을 건넜다.

II. 파리의 수업 · 1921–1924 (21–24세)

(불랑제) 퐁텐블로에서 화성학을 가르치던 나디아 불랑제의 수업을 들은 그는 곧 그녀의 분석력에 사로잡혔다. 여성에게 작곡을 배운다는 생각은 해 본 적도 없었다고 훗날 솔직히 털어놓았지만, 그해 가을부터 파리에서 그녀의 개인 제자가 되어 3년을 보냈다. 이후 수많은 미국 작곡가가 불랑제를 찾아가게 되는데, 코플런드는 그 행렬의 첫머리에 선 사람이었다. (파리) 1920년대 초 파리는 새 음악의 한복판이었다. 그는 쿠세비츠키의 연주회에서 스트라빈스키의 작품들을 들었고, 강렬하게 엇갈리는 리듬과 메마르고 단단한 울림은 평생 그의 음악에 남았다. 방은 친구 해럴드 클러먼과 함께 썼다. 훗날 뉴욕에서 그룹 시어터를 세운 이 연극인과 그는 문학과 연극을 두고 밤늦도록 토론하며, 미국의 예술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했다. (귀향) 역설적이게도 그는 파리에서 미국을 새로 보았다. 유럽 음악가들이 재즈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며, 미국적인 소리로도 진지한 음악을 쓸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1924년 귀국을 앞두고 불랑제는 자신이 미국 순회에서 협연할 오르간과 관현악을 위한 곡을 부탁했고, 같은 해 그를 쿠세비츠키에게 소개했다. 보스턴 교향악단을 맡으러 떠나던 지휘자는 그의 곡을 연주하겠다고 약속했다. 오르간 곡을 써 본 적 없던 스물셋의 청년에게 첫 대작이 맡겨진 셈이었다.

♪오르간과 관현악을 위한 교향곡 (1924)1924 (24세)연주 S. Darlington (오르간) · J. Darlington 지휘

불랑제가 미국 순회에서 직접 연주하려고 의뢰한 곡으로, 파리에서 배운 모든 것을 쏟아부은 스물세 살의 첫 대작이다.

  • 조용히 시작하는 1악장 전주곡에서 오르간이 언제, 어떤 음색으로 들어오는지 들어 보라. 오르간을 화려한 독주 악기보다 오케스트라의 색을 넓히는 악기로 쓴 점이 드러난다.
  • 2악장 스케르초(빠르고 익살스러운 악장)는 같은 리듬 무늬를 끈질기게 되풀이하는 반복 음형(오스티나토) 위에 박자를 비트는 엇박이 얹혀, 파리 시절 그가 흡수한 스트라빈스키와 재즈의 리듬감이 함께 들린다.
  • 3악장은 낮은 현에서 시작한 주제가 층층이 쌓여 오르간과 금관이 함께 터지는 절정으로 향한다. 초연 뒤 담로시가 '살인' 농담을 하게 만든 대담함이 이 대목에 몰려 있다.
  • 1928년 그는 오르간 없이도 연주할 수 있게 고쳐 교향곡 1번으로 내놓았다. 두 판을 견주어 들으면 오르간이 빠진 자리를 금관과 현이 어떻게 메우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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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뉴욕의 모더니스트 · 1924–1936 (24–36세)

(초연) 1925년 1월 뉴욕에서 오르간 교향곡이 불랑제의 독주와 월터 담로시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담로시는 청중에게, 스물셋 청년이 이런 교향곡을 쓴다면 5년 뒤엔 살인도 저지를 것이라고 농담했다. 보수적인 청중을 달래려던 말이 젊은 코플런드의 대담함을 상징하는 일화로 남았다. 같은 해 그는 작곡가로는 처음 구겐하임 장학금을 받았고, 이듬해 한 번 더 받아 생계를 버텼다. (재즈) 쿠세비츠키는 약속대로 「극장 음악」(1925)과 피아노 협주곡(1926)을 보스턴에서 초연했다. 그는 재즈의 당김음(싱코페이션)과 블루스 화음을 끌어왔고, 1927년 직접 협연한 협주곡은 비평가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가 나온 지 얼마 안 된 때였지만, 그는 재즈가 담을 수 있는 감정의 폭이 좁다고 보고 곧 이 길을 접었다. (변주) 1930년의 피아노 변주곡은 정반대의 극단이었다. 네 음짜리 짧은 주제를 깎고 두드려 날카로운 불협화음으로 쌓은 이 곡은 청중을 밀어냈지만, 동료들에게는 미국 모더니즘의 이정표가 되었다. 그는 로저 세션스와 함께 '코플런드-세션스 연주회'(1928–1931)를 열어 젊은 작곡가들을 소개했고, 1932년 야도 음악제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찰스 아이브스의 가곡을 무대에 올리고 그에 관한 글을 썼다. (멕시코) 같은 해 친구 카를로스 차베스의 초청으로 멕시코를 찾았다. 동행한 빅터 크래프트는 이 무렵 만나 오래 그의 연인이자 동반자로 지낸 사람이다. 동성애자였던 그는 이를 공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가까운 이들에겐 숨기지 않았다. 멕시코시티 무도장의 인상은 「엘 살롱 멕시코」(1936)가 되었다. 대공황기에는 좌파 사상에 공감해 노동자 합창곡을 쓰기도 했고, 생활은 장학금과 뉴스쿨 강의료로 꾸렸다.

♪피아노 변주곡 (1930)1930 (30세)연주 Sam Hong (피아노)

재즈를 접은 뒤 가장 엄격한 쪽으로 걸어간 결과물로, 청중은 밀어냈지만 번스타인 같은 젊은 음악가들을 사로잡았다.

  • 첫머리에 무겁게 울리는 네 음짜리 주제를 꼭 기억해 두라. 곡 전체가 이 네 음을 늘리고, 뒤집고, 쪼개서 만든 것이라 주제를 귀에 새겨 두면 변주가 어떻게 자라나는지 따라갈 수 있다.
  • 주제와 스무 개의 변주, 마무리 부분(코다)이 끊김 없이 이어진다. 건반을 타악기처럼 세게 내리치는 대목과, 음과 음 사이를 길게 비워 두는 침묵이 번갈아 나오는 긴장을 들어 보라.
  • 1937년 처음 만난 날 번스타인이 외워 쳐 보인 곡이며, 그는 이후에도 모임에서 이 곡을 즐겨 쳤다. 연주자에게는 큰 힘과 정확성을 함께 요구하는 곡으로 꼽힌다.
  • 1957년 코플런드가 직접 편곡한 관현악 변주곡과 견주어 들으면, 피아노 한 대의 날카로운 울림이 오케스트라의 색채로 어떻게 바뀌는지 비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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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평원의 목소리 · 1937–1944 (37–44세)

(번스타인) 1937년 11월 14일, 서른일곱 번째 생일 밤에 한 무용 공연장에서 하버드 학생 레너드 번스타인을 만났다. 그날 그의 작업실에서 열린 생일 모임에서 번스타인은 피아노 변주곡을 외워 쳐 보였고, 두 사람은 평생 스승과 벗을 겸한 사이가 되었다. (단순함) 이 무렵 그는 현대 음악과 청중 사이의 간극에 점점 불만을 품었고, 할 말을 될 수 있는 한 단순하게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링컨 커스틴의 의뢰로 카우보이 민요를 엮은 발레 「빌리 더 키드」(1938)가 그 시작이었다. 할리우드에서 「생쥐와 인간」(1939), 「우리 읍내」(1940)의 영화음악을 맡으며 처음으로 넉넉한 수입을 얻었고, 1940년부터는 쿠세비츠키가 탱글우드에 세운 버크셔 음악센터에서 해마다 여름 젊은 작곡가들을 가르쳤다. (전쟁) 미국이 2차 대전에 뛰어든 1942년, 그의 단순한 언어는 시대의 요청과 맞닿았다. 아그네스 드밀이 안무한 발레 「로데오」, 유진 구센스와 신시내티 교향악단의 의뢰로 금관과 타악기만 쓴 「보통 사람을 위한 팡파르」, 링컨의 연설을 낭독자가 읽는 「링컨의 초상」이 한 해에 나왔다. (봄) 같은 무렵 무용가 마사 그레이엄을 위한 발레 의뢰가 들어왔다. 의회도서관 공연장의 좁은 무대에 맞춰 열세 대의 악기로 쓴 이 곡은 작업 내내 '마사를 위한 발레'로 불렸고, 초연 직전 그레이엄이 하트 크레인의 시에서 따온 「애팔래치아의 봄」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1944년 10월 초연된 이 작품으로 그는 이듬해 퓰리처상을 받았고, 관현악 모음곡으로도 널리 연주되었다.

♪발레 「로데오」 — 네 개의 춤 에피소드 (1942)1942 (42세)지휘 Leonard Bernstein · New York Philharmonic

'할 말을 단순하게' 하겠다는 결심이 전쟁기 미국의 분위기와 맞물려, 카우보이 민요가 무대 위 춤으로 살아난 작품이다.

  • 네 곡은 「목동들의 휴일」, 「목장의 야상곡」, 「토요일 밤의 왈츠」, 「호다운」으로, 말괄량이 카우걸이 짝을 찾는 이야기를 따라간다.
  • 「토요일 밤의 왈츠」 첫머리에서 현악기들이 개방현(손가락으로 누르지 않은 줄)을 그어 시골 악사들이 조율하는 소리를 흉내 낸다. 이어 카우보이 노래 「올드 페인트」의 가락이 느린 왈츠로 흐른다.
  • 「호다운」의 주 선율은 켄터키의 바이올린 연주자 윌리엄 해밀턴 스텝이 연주한 옛 곡 「보니파트」를 의회도서관 현장 녹음에서 옮겨 온 것이다. 현악기의 빠른 활놀림과 나무 블록 같은 타악기가 말발굽처럼 들린다.
  • 「호다운」 중간에 음악이 갑자기 멈칫 섰다가 다시 달려 나가는 순간이 있다. 춤꾼들이 잠시 숨을 고르는 장면처럼 들리며, 지휘자마다 이 쉼을 얼마나 길게 끄는지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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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을 위한 팡파르 (1942)1942 (42세)실황 Radio Filharmonisch Orkest · Antony Hermus 지휘

전쟁 중 연주회를 여는 짧은 신호 음악으로 의뢰받았지만, 영웅이 아니라 이름 없는 시민을 기리는 곡이 되어 그의 이름보다 더 유명해졌다.

  • 팀파니와 큰북, 징처럼 생긴 큰 타악기(탐탐)가 크게 내리치며 시작한다. 그 침묵을 가르고 트럼펫들이 한목소리(유니즌)로 주제를 부른다.
  • 주제는 4도와 5도처럼 텅 빈 듯 넓은 음정으로 뛰어오른다. 화음을 꽉 채우지 않은 이 열린 울림이 넓은 평원 같은 '코플런드다운 소리'의 핵심으로 꼽힌다.
  • 편성은 금관과 타악기뿐이다. 트럼펫에서 호른, 트롬본과 튜바로 선율이 넘어가며 소리가 점점 두꺼워지는 과정을 들어 보라.
  • 그는 이 곡을 교향곡 3번 피날레에 그대로 녹여 넣었고, 1977년에는 록 밴드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가 작곡가의 허락을 받아 록으로 편곡했다. 세 가지 모습을 비교해 들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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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팔래치아의 봄 (1944)1944 (44세)연주 Philharmonia Orchestra

마사 그레이엄과 함께 만든 이 발레는 19세기 초 펜실베이니아 개척지에서 새 농가를 짓고 봄을 맞는 젊은 부부의 이야기로, 그의 '단순함'이 가장 깊은 곳에 닿은 작품이다.

  • 느린 도입부는 작곡가가 직접 쓴 해설대로 '부드러운 빛 속에서 인물들이 하나씩 소개되는' 장면이다. 현악기가 길게 깔아 둔 화음 위로 관악기가 한 음씩 더해지며 새벽빛이 번지듯 소리가 열린다.
  • 후반부에서 클라리넷이 혼자 셰이커 교도의 찬송 「소박한 선물」을 처음 부르고, 이어 같은 가락이 악기와 빠르기를 바꿔 가며 되풀이되는 변주가 펼쳐진다. 마지막에는 오케스트라 전체가 장엄하게 부른다.
  • 끝부분은 작곡가의 해설에 따르면 신부가 이웃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부부가 새 집에서 '조용하고 굳건하게' 남는 장면이다. 약음기를 단 현악기의 기도 같은 화음을 귀 기울여 들어 보라.
  • 원래 열세 대의 악기로 쓴 실내악 판과, 나중에 만든 관현악 모음곡을 비교해 들으면 같은 곡이 얼마나 다른 온도로 들리는지 알 수 있다. 원판은 더 투명하고, 관현악판은 더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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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의심의 시대 · 1945–1959 (45–59세)

(교향곡) 교향곡 3번(1946)은 쿠세비츠키가 1942년 세상을 떠난 아내 나탈리를 기려 의뢰한 곡이었다. 피날레에 팡파르를 녹여 넣은 이 대작은 그의 '미국적 양식'이 다다른 정점이었다. 1950년에는 영화 「상속녀」(The Heiress)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았지만, 제작사가 그의 도입 음악을 빼고 프랑스 옛 노래 「사랑의 기쁨」을 편곡해 붙이자 그 부분은 자기 음악이 아니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실험) 1949–1950년에는 은둔한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시 열두 편에 곡을 붙여, 한 곡씩 동료 작곡가들에게 헌정했다. 같은 시기 피아노 4중주에서 그는 쇤베르크가 체계화한 12음 기법을 처음 받아들였다. 대중적 양식에 머물지 않겠다는 고집이었고, 피아노 판타지(1957) 같은 엄격한 곡이 뒤를 이었다. (냉전) 냉전은 그의 과거를 불러냈다. 1949년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의 세계평화 문화과학회의에 연사로 섰는데, 소련 대표단의 쇼스타코비치도 참석한 자리였다. 1953년 1월에는 한 하원 의원의 항의로 아이젠하워 대통령 취임 축하 연주회에서 「링컨의 초상」이 빠졌다. 그해 5월 매카시 상원 의원의 소위원회에 불려 가 비공개 증언을 하며 공산당원이었던 적이 없다고 밝혔고, 한동안 여권 갱신에도 애를 먹었다. (오페라) 1950년대 초부터 가까웠던 무용가 에릭 존스는 필명으로 오페라 「다정한 땅」(1954)의 대본을 썼지만, 초연 반응은 미지근했다.

♪교향곡 3번 (1944–1946)1946 (46세)연주 NDR Elbphilharmonie Orchester · Alan Gilbert 지휘

쿠세비츠키가 먼저 떠난 아내를 기려 의뢰한 곡으로, 전쟁이 끝나 가던 시기 그의 '미국적 양식'을 교향곡이라는 가장 큰 그릇에 담았다.

  • 1악장은 넓고 느린 선율로 시작한다. 현악기가 길게 노래하는 첫 주제에서 「애팔래치아의 봄」의 열린 울림이 이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 2악장 스케르초(빠르고 활기찬 악장)에서는 금관이 힘차게 주제를 외치고, 중간부에서 목관이 소박한 가락을 들려준다. 대비가 뚜렷해 듣는 재미가 크다.
  • 4악장 첫머리에서 플루트와 클라리넷이 「보통 사람을 위한 팡파르」를 아주 여리게 꺼낸다. 이어 금관과 타악기가 같은 팡파르를 크게 터뜨리는 순간이 이 교향곡의 가장 유명한 대목이다.
  • 초연 뒤 작곡가가 피날레 일부를 줄였고, 지휘자에 따라 원래의 마디를 되살려 연주하기도 한다. 녹음마다 끝맺음의 길이와 무게를 비교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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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디킨슨의 시 12편 (1949–1950)1950 (50세)

냉전의 의심이 그를 조여 오기 직전, 은둔한 시인의 짧고 날카로운 시를 열두 동료 작곡가에게 한 곡씩 바치며 쓴 가곡집이다.

  • 첫 곡 「자연, 가장 다정한 어머니」는 피아노의 잔잔한 울림 위에서 노래가 조용히 열린다. 디킨슨 특유의 자연 묘사를 단순한 선율로 풀어낸 방식을 들어 보라.
  • 「천국에 간다!」는 빠르고 장난기 어린 곡으로, 노래가 높은 음과 낮은 음을 크게 오가며 들뜬 마음을 그린다. 가수에게는 넓은 음역을 가볍게 넘나드는 기술이 필요하다.
  • 마지막 곡 「마차」는 디킨슨의 유명한 시 「죽음을 위해 내가 멈출 수 없었기에」를 노래한다. 피아노의 일정한 리듬이 죽음이 모는 마차의 말발굽처럼 들린다.
  • 피아노가 반주에 머물지 않고 시의 이미지를 직접 그리는 동등한 짝으로 움직인다. 노래와 피아노가 서로 주고받는 대목에 귀를 기울여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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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지휘봉과 침묵 · 1960–1990 (60–90세)

(록힐) 1960년 뉴욕주 코틀랜드의 언덕 위 집 '록 힐'을 사서 남은 30년을 그곳에서 보냈다. 1962년 링컨 센터 필하모닉 홀 개관 연주회를 위해 쓴 12음 관현악곡 「코노테이션스」는 번스타인이 지휘했지만 청중의 반응은 차가웠다. 1964년에는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았다. (지휘) 60대부터 그는 작곡보다 지휘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 세계 여러 오케스트라를 돌며 자기 작품과 동료 미국 작곡가들의 곡을 지휘하고 녹음했다. 1972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를 위해 쓴 피아노곡 「밤의 생각들」에는 '아이브스에게 바치는 경의'라는 부제를 붙여, 40년 전 자신이 무대에 올렸던 선배를 다시 기렸다. (침묵) 1970년대 초 이후 새 곡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는 누군가 수도꼭지를 잠근 것처럼 악상이 멈췄다고 말했다. 1976년 오랜 동반자 빅터 크래프트가 세상을 떠났다. 1980년대에는 음악학자 비비언 펄리스와 함께 두 권의 회고록을 냈지만, 그 무렵부터 기억력이 눈에 띄게 쇠퇴했다. (작별) 1990년 12월 2일, 알츠하이머병과 호흡 부전으로 뉴욕주 노스태리타운에서 아흔 살로 세상을 떠났다. 유해는 그가 스물다섯 해 여름 동안 젊은 작곡가들을 가르친 탱글우드에 뿌려졌다. 재산은 젊은 작곡가와 새 음악을 돕는 코플런드 음악 기금으로 남았고, 록 힐의 집은 오늘날 작곡가들이 머무는 공간이 되었다.

덜 알려진 이야기

(팡파르) 1942년 신시내티 교향악단의 지휘자 유진 구센스는 전쟁 중 연주회의 첫머리를 열 팡파르를 미국 작곡가 열여덟 명에게 의뢰했다. 오늘날까지 연주되는 것은 사실상 코플런드의 곡 하나다. 그는 여러 제목을 저울질하다, 그해 헨리 월리스 부통령이 연설에서 내건 '보통 사람의 세기'라는 표현과 맞닿는 제목을 골랐다. 초연은 1943년 3월 12일, 소득세 신고 기한을 며칠 앞둔 날이었고, 그는 세금 내는 철이야말로 보통 사람을 기리기에 좋은 때라며 반겼다. (샘) 「애팔래치아의 봄」의 '봄'은 계절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레이엄이 제목을 따온 하트 크레인의 시 「춤」에서 이 말은 산속의 샘물로 읽힌다. 코플런드는 초연 직전에야 제목을 알았고, 훗날 사람들이 곡에서 애팔래치아의 풍경이 보인다고 말할 때마다 그 사정을 털어놓곤 했다. 곡 속의 셰이커 찬송 「소박한 선물」도 1940년 에드워드 앤드루스가 펴낸 셰이커 음악 책에서 찾아낸 것으로, 당시엔 공동체 밖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노래였다. (비텝스크) '가장 미국적인 작곡가'라는 이미지에 가려진 뿌리도 있다. 1928년 그는 안스키의 연극 「디부크」에 쓰인 유대 선율을 바탕으로 피아노 3중주 「비텝스크」를 썼다. 유대계 이민자의 아들이 자신의 뿌리를 직접 다룬 드문 작품이지만, 이후의 대평원 이미지가 워낙 강해 좀처럼 언급되지 않는다. (사생활) 생전의 그는 사생활을 거의 말하지 않았고, 비비언 펄리스와 함께 낸 두 권의 회고록도 이 부분은 비켜 갔다. 빅터 크래프트, 에릭 존스 등과의 관계가 편지와 증언으로 정리된 것은 1999년 하워드 폴락의 전기 『에런 코플런드: 비범한 사람의 삶과 작품』에 이르러서였다.

용어 노트 📚🔎

당김음(싱코페이션)

(말뜻) 서양 이름 싱코페이션(syncopation)은 '잘라 내어 줄이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신코페(synkopē)에서 왔다. 박자의 규칙적인 자리를 잘라 내고 엉뚱한 자리에 힘을 주는 성격이 이름에 담겨 있다. (음악에서) 보통은 센 박에 힘이 실리는데, 약한 박이나 박과 박 사이에 힘을 주어 강세를 앞당기거나 미루는 리듬이다. 몸이 저절로 들썩이는 재즈의 느낌이 여기서 나온다. 친구들이 '하나, 둘' 하고 정박에 손뼉을 칠 때 누군가 그 사이사이에 손뼉을 끼워 넣으면 리듬이 갑자기 통통 튀게 느껴지는 것과 같다. (다른 데서는) 의학에서 싱코피(syncope)는 잠깐 정신을 잃는 실신을 뜻한다.

변주곡

(말뜻) 변주곡(變奏曲)은 바꾸어(變) 연주하는(奏) 곡이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처음에 하나의 주제(중심 선율)를 들려준 뒤, 그 주제를 리듬·화음·빠르기·분위기를 바꿔 가며 여러 번 다시 들려주는 형식이다. 아무리 바뀌어도 원래 주제의 뼈대는 남아 있어서, 듣는 사람은 '아까 그 가락이구나' 하고 알아챈다. 같은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를 느린 발라드로, 빠른 랩으로, 장난스러운 휘파람으로 바꿔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불협화음

(말뜻) 불협화음(不協和音)은 서로 잘 어울리지(協和) 않는(不) 소리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두 개 이상의 음을 함께 울렸을 때 귀에 부딪히고 긴장된 느낌을 주는 화음이다. 반대로 편안하게 녹아드는 화음은 협화음이라 한다. 불협화음은 틀린 소리가 아니라 긴장을 만드는 재료이고, 20세기 작곡가들은 이 긴장을 풀지 않고 그대로 두기도 했다. 피아노에서 바로 붙어 있는 두 건반(도와 도#)을 함께 누르면 찌릿한 소리가 나는데, 그것이 대표적인 불협화음이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는 '팀 안의 불협화음'처럼 사람들 사이의 다툼이나 엇박자를 비유하는 말로 흔히 쓴다.

팡파르

(음악에서) 트럼펫 같은 금관악기로 짧고 힘차게 울리는 신호 음악이다. 옛날에는 왕의 입장이나 사냥, 전투의 시작을 알렸고, 지금도 의식이나 시상식에서 '이제 중요한 일이 시작된다'고 알리는 역할을 한다. 운동회 개막식에서 '빰빠빠밤' 하고 울리는 나팔 소리가 바로 팡파르다. 코플런드의 「보통 사람을 위한 팡파르」는 이런 신호 음악을 독립된 연주곡으로 키운 예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는 '팡파르를 울리며 출시했다'처럼 요란한 축하나 선전을 비유하는 말로도 쓴다.

모음곡

(말뜻) 서양 이름 스위트(suite)는 프랑스어로 '뒤따르는 것, 잇따름'이라는 뜻이다. 여러 곡이 차례로 이어진다는 성격이 이름에 담겼다. (음악에서) 여러 개의 짧은 곡을 한 묶음으로 이어 연주하는 작품이다. 발레나 오페라, 영화음악처럼 긴 작품에서 좋은 대목만 골라 연주회용으로 다시 엮은 것도 모음곡이라 부른다. 긴 드라마의 명장면만 모아 만든 하이라이트 영상과 비슷하다. 「애팔래치아의 봄」과 「로데오」도 연주회에서는 대개 모음곡 형태로 연주된다. (다른 데서는) 호텔의 스위트룸도 같은 낱말로, 방 여러 개가 이어진 객실을 뜻한다.

12음 기법

(음악에서) 피아노 건반 한 옥타브 안의 열두 음(흰 건반 일곱, 검은 건반 다섯)을 한 번씩 빠짐없이 쓰는 순서(음렬)를 먼저 정해 두고, 그 순서를 뒤집거나 거꾸로 읽어 가며 곡 전체를 짜는 방법이다. 1920년대 쇤베르크가 체계화했다. 어떤 음도 '중심'이 되지 않게 하려는 장치라서, 익숙한 장조·단조 음악에서 느끼는 '집에 돌아왔다'는 편안함이 잘 들지 않는다. 반 친구 열두 명이 정해진 순서대로 한 번씩만 발표하고, 다음 판에는 그 순서를 거꾸로 돌리는 규칙을 떠올리면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