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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nard Bernstein

레너드 번스타인 (1918–1990)

“이것이 폭력에 대한 우리의 대답이 될 것이다. 음악을 그 어느 때보다 더 강렬하게, 더 아름답게, 더 헌신적으로 만드는 것.”

한눈에 보기 🔭💭

1. 뿌리미국 로렌스 출생유대인 이민자 부모열 살의 피아노2. 수련하버드·커티스스승 쿠세비츠키코플런드와 우정3. 도약1943년 대타 데뷔예레미야 교향곡온 더 타운4. 무대펠리시아와 결혼캔디드웨스트사이드 스토리5. 교사뉴욕 필 음악감독청소년 음악회말러 부흥6. 말년미사아내의 죽음베를린 환희의 송가번스타인1918–1990지휘·작곡·교육을 넘나들며 클래식을 대중 곁으…
삶의 여정 🧭🗺️
N미국영국로렌스1918보스턴1918–1935케임브리지1935–1939필라델피아1939–1941뉴욕1942–1990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가족새뮤얼 번스타인

    음악가의 길을 반대했으나 훗날 아들의 성공을 자랑스러워한 아버지로, 교향곡 1번 『예레미야』를 헌정받았다.

  • 영향디미트리 미트로풀로스

    1937년 하버드에서 만난 그리스 출신 지휘자로, 대학생 번스타인에게 지휘자의 길을 처음 꿈꾸게 했다.

  • 우정에런 코플런드

    1937년 생일 파티에서 만나 평생 그의 작곡을 비평하고 격려한 친구이자 미국 음악의 동지였다.

  • 스승세르게이 쿠세비츠키

    탱글우드에서 그를 아들처럼 아낀 스승으로, 『불안의 시대』를 초연하고 지휘의 태도를 물려주었다.

  • 우정제롬 로빈스

    『팬시 프리』부터 『웨스트사이드 스토리』까지 함께한 안무가로, 그의 무대 음악을 춤으로 완성했다.

  • 가족펠리시아 몬테알레그레

    1951년 결혼한 배우로, 『카디시』의 낭독을 맡았고 그의 삶과 음악에 가장 깊은 흔적을 남긴 동반자였다.

YouTube에서 5곡 이어 듣기 ↗

I. 로렌스의 소년 · 1918–1935 (0–17세)

(출생) 1918년 8월, 미국 매사추세츠주 로렌스에서 태어났다. 출생 신고서의 이름은 루이스였지만 가족은 처음부터 레너드라고 불렀고, 그는 열여섯 살에 법적으로 이름을 바꿨다. 부모는 모두 오늘날 우크라이나 땅에서 건너온 유대인 이민자였다. 아버지 새뮤얼은 열여섯 살에 홀로 미국에 와 뉴욕 어시장에서 생선을 손질하는 일로 시작해 보스턴에서 미용용품 회사를 일궜고, 어머니 제니는 어린 시절 로렌스의 방직 공장에서 일했다. 아래로 여동생 셜리와 열네 살 터울의 남동생 버턴이 있었다. (회당) 어린 레너드는 천식을 앓는 병약하고 수줍은 아이였다. 랍비 집안 출신으로 탈무드를 공부한 아버지는 아들을 보스턴의 회당에 데리고 다녔다. 그곳의 오르간과 합창, 선창자(칸토르)의 노래는 그가 처음 깊이 빠져든 음악이었고, 훗날 그의 작품에 히브리어 기도문과 성경 구절이 거듭 돌아오는 뿌리가 되었다. (피아노) 1928년, 이사하던 고모 클라라가 낡은 업라이트 피아노를 집에 맡겼다. 열 살 소년은 그날부터 건반 앞을 떠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음악가를 결혼식에서 연주하는 거리 악사(클레즈머) 정도로 여겨 반대했고 비싼 레슨비도 내주지 않았다. 레너드는 동네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번 돈으로 수업료를 댔다. 열네 살 무렵부터 그를 가르친 헬렌 코츠는 훗날 40여 년 동안 비서로 그의 곁을 지켰다. (부자) 그는 명문 보스턴 라틴 스쿨에서도 성적이 좋았다. 아버지는 아들이 가업을 잇기를 바랐지만 결국 하버드 진학을 허락했다. 새뮤얼이 훗날 아들을 말렸던 일을 두고 “그 애가 커서 레너드 번스타인이 될 줄 내가 어찌 알았겠소”라고 했다는 말은 두 사람의 애증을 압축해 보여 준다. 반대와 자부심이 뒤섞인 이 관계는 첫 교향곡을 아버지에게 바치는 데까지 이어졌다.

II. 하버드에서 탱글우드로 · 1935–1943 (17–25세)

(하버드) 1935년 하버드에 입학해 월터 피스턴 등에게 작곡을 배웠다. 그는 철학과 문학 강의, 무성 영화 반주, 학내 공연 사이를 바쁘게 오갔고, 졸업반 때는 마크 블리츠스타인의 노동 뮤지컬 『요람은 흔들리리』를 학내 무대에 올려 작곡가 본인의 인정을 받았다. (만남) 대학 시절 만난 두 사람이 그의 길을 정했다. 1937년 1월 그리스 출신 지휘자 디미트리 미트로풀로스를 만나 지휘자의 꿈을 처음 품었고, 그해 11월 뉴욕의 무용 공연장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에런 코플런드의 생일 파티에 따라가 그의 『피아노 변주곡』을 쳐 보였다. 두 사람은 평생의 친구가 되었고, 코플런드는 그의 습작을 꼼꼼히 비평했다. 그해 7월 조지 거슈윈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자신의 회상에 따르면 일하던 여름 캠프 식당에서 침묵을 청한 뒤 거슈윈의 전주곡을 연주했다. (스승) 졸업 뒤 필라델피아 커티스 음악원에서 프리츠 라이너에게 지휘를, 이자벨라 벤게로바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1940년 여름에는 보스턴 교향악단이 탱글우드에 연 음악 학교의 첫 학생으로 세르게이 쿠세비츠키를 만났다. 러시아 출신 노지휘자는 그를 아들처럼 아꼈고, 무대 위 몸짓과 음악을 대하는 열정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쿠세비츠키가 성공하려면 유대식 성을 바꾸라고 권했을 때 그는 거절했다. (궁핍) 1942년 뉴욕에서는 일거리를 찾아 헤맸다. 음악 출판사에서 대중가요를 편곡하고 채보하며 생계를 이었는데, 그때의 필명 ‘레니 앰버’는 독일어 베른슈타인(Bernstein)이 호박(琥珀, amber)을 뜻하는 데서 딴 것이었다. 천식 때문에 징집에서도 제외되었다. 이 무렵 공모전에 내려고 쓴 교향곡 1번 『예레미야』는 상을 받지 못했지만, 예루살렘의 멸망을 슬퍼하는 이 곡에는 유럽 유대인의 운명이 어두워지던 시대의 그늘이 드리워 있었다. 1943년 8월, 그는 뉴욕 필하모닉 부지휘자로 임명되었다.

♪교향곡 1번 『예레미야』1942 (24세)지휘 Leonard Bernstein · Israel Philharmonic · Christa Ludwig

일거리를 찾아 헤매던 1942년 뉴욕에서 공모전용으로 쓰고 아버지에게 바친 곡으로, 회당에서 자란 소년의 기억과 유럽 유대인의 비극이 겹쳐 있다.

  • 1악장 「예언」은 느리고 무겁게 시작해, 호른이 길게 부르는 주제가 예언자의 경고처럼 울린다. 그 아래에서 현악기가 어둡게 받쳐 주는 소리를 함께 들어 보자.
  • 2악장 「신성모독」은 박자가 수시로 바뀌는(변박) 빠른 춤곡이다. 작곡가는 타락한 사제와 백성이 불러온 파괴와 혼돈을 그렸다고 설명했고, 금관과 타악기의 엇갈리는 리듬이 그 소란을 만든다.
  • 곡 곳곳의 선율에는 회당에서 성경을 가락에 실어 읊는 낭송(칸틸레이션)의 어법이 녹아 있다. 작곡가는 그대로 옮긴 인용이 아니라 정서를 빌린 것이라고 밝혔다.
  • 3악장 「애가」에서는 메조소프라노(중간 높이의 여성 목소리)가 구약의 예레미야 애가를 히브리어로 노래한다. 무너진 예루살렘을 두고 우는 이 노래는 1942년이라는 작곡 시점과 겹쳐 더 무겁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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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하룻밤의 데뷔 · 1943–1951 (25–33세)

(대타) 1943년 11월 14일 일요일, 객원 지휘자 브루노 발터가 독감으로 쓰러졌다. 연락을 받은 것은 그날 아침이었고 리허설은 없었다. 스물다섯 살 부지휘자는 슈만,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바그너의 곡이 든 프로그램을 끝까지 이끌었다. 연주는 CBS 라디오로 전국에 중계되었고 이튿날 『뉴욕 타임스』 1면에 실렸다. 마침 뉴욕에 와 있던 부모도 객석에서 아들을 지켜보았다. (질주) 이후 1년은 숨 가쁘게 흘렀다. 1944년 1월 피츠버그에서 『예레미야』를 직접 지휘해 초연했고, 4월에는 안무가 제롬 로빈스와 만든 발레 『팬시 프리』가, 12월에는 이를 키운 뮤지컬 『온 더 타운』이 무대에 올랐다. 휴가 나온 세 수병의 하루를 그린 이 작품의 대본과 가사는 친구 베티 콤든과 아돌프 그린이 맡았다. 전쟁 중 뉴욕 젊은이들의 들뜬 기운과 쓸쓸함이 음악에 그대로 담겼다. (이스라엘) 1945년부터는 살림이 넉넉지 않은 뉴욕 시티 교향악단을 맡아 현대 음악을 적극적으로 소개했다. 1946년에는 쿠세비츠키가 위촉한 벤저민 브리튼의 오페라 『피터 그라임스』의 미국 초연을 탱글우드에서 지휘했다. 1947년 팔레스타인 필하모닉(지금의 이스라엘 필하모닉)을 처음 지휘했고, 이듬해 전쟁 중에는 베르셰바의 야외에서 병사들을 위해 연주했다. 유대인으로서의 자의식은 이 경험으로 더 단단해졌다. (갈등) 사생활은 흔들렸다. 1946년 피아니스트 클라우디오 아라우의 집에서 칠레에서 자란 배우 펠리시아 몬테알레그레를 만나 이듬해 약혼했지만 곧 파혼했다. 그는 남성과도 사랑을 나눴고, 그 사이에서의 갈등은 오래 이어졌다. 1949년 W. H. 오든의 시에서 제목을 딴 교향곡 2번 『불안의 시대』는 고독한 현대인의 자기 찾기를 그렸고, 쿠세비츠키의 지휘와 그의 피아노로 초연되었다. 1951년 6월 쿠세비츠키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탱글우드의 지휘 교육을 이어받았고, 같은 해 9월 펠리시아와 결혼했다.

♪교향곡 2번 『불안의 시대』1949 (1965 개정) (31–47세)실황 Krystian Zimerman (피아노)

흔들리던 사생활과 정체성의 고민 속에서 오든의 시를 붙잡고 쓴 곡으로, 스승 쿠세비츠키에게 헌정되어 그의 지휘와 번스타인의 피아노로 초연되었다.

  • 「프롤로그」는 두 대의 클라리넷이 메아리처럼 주고받는 쓸쓸한 이중창으로 시작한다. 오든의 시에서 전쟁 중 뉴욕의 바에 모인 낯선 네 사람이 각자의 고독을 꺼내는 장면이다.
  • 「일곱 시대」와 「일곱 단계」는 변주곡이지만, 하나의 주제를 계속 바꾸는 대신 앞 변주의 특징 하나를 이어받아 다음 변주가 생겨난다고 작곡가가 설명했다. 끝말잇기처럼 무엇이 다음으로 넘어가는지 따라가 보자.
  • 「만가(죽은 이를 애도하는 노래)」는 피아노가 열두 음을 하나씩 모두 쓰는 음의 줄(12음 음렬)로 시작하지만, 곧 낭만적인 선율로 녹아든다.
  • 「가면극」은 피아노와 타악기가 이끄는 재즈풍의 빠르고 익살스러운 곡(스케르초)이다. 밤새 이어지는 파티의 들뜬 소란과 그 뒤의 공허함이 함께 들린다.
  • 「에필로그」의 피아노 비중은 판본마다 다르다. 1965년 개정판에서 피아노 독주 부분이 늘었으니, 어느 판으로 연주되는지 확인하며 비교해 들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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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브로드웨이의 정점 · 1951–1958 (33–40세)

(신혼) 신혼여행지인 멕시코 쿠에르나바카에서 그는 단막 오페라 『타히티의 소동』을 썼다. 교외의 풍요 속에서 서로에게 닿지 못하는 부부의 이야기로, 남편의 이름은 아버지와 같은 샘이었고 전기 작가들은 여기에 그의 부모의 결혼 생활이 투영되었다고 본다. 부부는 1남 2녀를 두었고, 맏딸 제이미는 훗날 회고록에서 아버지와의 삶을 직접 기록했다. (아이브스) 1951년 2월에는 찰스 아이브스의 교향곡 2번을 뉴욕 필하모닉과 초연했다. 곡이 쓰인 지 반세기 만이었다. 노년의 아이브스는 공연장에 나오지 않았지만, 번스타인은 이후로도 그를 미국 음악의 개척자로 꾸준히 소개했다. (여권) 1953년 뮤지컬 『원더풀 타운』이 성공했다. 같은 해 그는 좌파 단체에 이름을 올린 이력 때문에 여권 발급을 거부당했고,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는 진술서를 내고서야 여권을 받았다. 매카시즘 시대의 굴욕이었다. 1954년에는 그가 쓴 유일한 영화 음악인 『워터프런트』를 작곡했고, 텔레비전 프로그램 『옴니버스』에서 스튜디오 바닥에 베토벤 교향곡 5번의 악보를 크게 그려 놓고 음악을 설명해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캔디드) 1956년 극작가 릴리언 헬먼과 만든 오페레타 『캔디드』는 볼테르의 풍자 소설을 빌려 시대의 위선을 꼬집었지만 73회 만에 막을 내렸다. 이듬해 9월 로빈스, 아서 로런츠, 젊은 작사가 스티븐 손드하임과 만든 『웨스트사이드 스토리』가 개막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뉴욕 서쪽 빈민가의 두 갱단 이야기로 옮긴 이 작품에서 그는 라틴 리듬과 재즈, 박자가 쉴 새 없이 바뀌는 변박, 고전 기법인 푸가까지 하나로 엮었다. 인종 갈등과 청춘의 죽음을 다룬 이 뮤지컬은 732회 공연되었고 그에게 큰 부를 안겼다.

♪『캔디드』 서곡1956 (38세)지휘 Andrés Orozco-Estrada · hr-Sinfonieorchester

매카시즘 시대의 위선을 풍자했으나 무대에서는 73회 만에 실패한 작품이지만, 서곡만은 그의 관현악곡 가운데 가장 자주 연주되는 곡이 되었다.

  • 금관의 짧고 힘찬 팡파르로 문을 연 뒤 4분 남짓 쉬지 않고 질주한다. 빠른 템포 속에서 오케스트라가 한 몸처럼 맞아떨어지는지가 연주의 완성도를 가르는 지점이다.
  • 중간의 넓게 노래하는 선율은 연인의 이중창 「오, 행복한 우리」에서 왔고, 반짝이며 튀는 음형은 높고 화려한 기교를 뽐내는 소프라노 창법(콜로라투라)의 아리아 「반짝이고 화려하게」에서 따왔다.
  • 강세가 예상 밖의 자리로 옮겨 다니는 리듬이 많아, 단원들 사이에서는 짧지만 방심할 수 없는 곡으로 통한다. 작은북과 심벌즈가 리듬을 찌르는 순간에 귀를 기울여 보자.
  • 번스타인이 세상을 떠난 직후 뉴욕 필하모닉은 추모의 뜻으로 지휘대를 비워 둔 채 이 서곡을 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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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중 교향적 무곡1957 (관현악 모음 1961) (39–43세)지휘 Gustavo Dudamel · Simón Bolívar SO

그에게 부와 명성을 안긴 뮤지컬의 음악을 연주회용으로 엮은 곡으로, 인종 갈등과 청춘의 비극이 춤의 리듬 속에 담겨 있다.

  • 「프롤로그」에서 단원들이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핑거 스냅)는 두 갱단이 거리에서 서로를 노려보는 긴장을 그린다.
  • 작품 전체를 꿰는 소리는 ‘도’와 ‘파#’처럼 반음 여섯 개만큼 떨어진 불안한 음정, 증4도(트라이톤)다. 「마리아」의 첫 두 음 ‘마-리’에도 숨어 있어, 사랑의 노래 안에 불길함이 깃든 셈이다.
  • 「맘보」에서는 단원들이 직접 “맘보!”라고 외친다. 라틴 타악기와 금관이 폭발하는, 이 곡에서 가장 신나는 대목이다.
  • 「쿨 푸가」는 재즈 리듬 위에서 같은 가락을 악기들이 차례로 뒤따라 들어오는 푸가(돌림노래처럼 쫓아가는 형식)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애써 누르는 젊은이들의 모습이다.
  • 피날레에서는 「섬웨어」의 선율이 돌아와 조용히 사그라든다. 화해를 꿈꾸는 노래가 끝까지 불안한 그림자를 떨치지 못하는 듯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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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뉴욕 필하모닉의 시대 · 1958–1969 (40–51세)

(감독) 1958년 미국 태생으로는 처음으로 뉴욕 필하모닉 음악감독에 올랐다. 같은 해 시작한 텔레비전 『청소년 음악회』에서 그는 “음악은 무엇을 뜻하는가” 같은 질문을 던지며 소나타 형식과 악기, 재즈와 교향곡을 아이들 눈높이로 풀었다. 1972년까지 50여 회 이어진 이 방송은 수많은 미국인에게 클래식 음악의 첫 교실이 되었다. (말러) 그는 당시 자주 연주되지 않던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을 집요하게 무대에 올렸고, 1960년대에 최초의 말러 교향곡 전곡 음반 가운데 하나를 완성했다. 유대계이자 작곡과 지휘를 함께 했던 말러에게서 그는 자신을 보았다. 1959년 소련 순회공연에서는 모스크바에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을 연주했고, 객석에 있던 작곡가가 무대에 올라와 그의 손을 잡았다. 같은 순회에서 소련에서 오래 연주되지 않던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청중에게 직접 소개하기도 했다. (카디시) 1963년 11월 존 F. 케네디가 암살되자 그는 추모 방송에서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을 지휘했고, “이것이 폭력에 대한 우리의 대답이 될 것이다”라는 연설을 남겼다. 그해 12월 텔아비브에서 초연된 교향곡 3번 『카디시』는 케네디에게 헌정되었다. 화자가 신에게 따지고 항의하는 이 곡에서 그의 신앙은 순종보다 논쟁에 가까웠다. 미국 초연의 낭독은 아내 펠리시아가 맡았다. (시편) 1964~65년 지휘를 쉬며 작곡에 전념한 그는 당시 유행하던 12음 기법으로 곡을 쓰다가 모두 버리고, 조성이 뚜렷한 『치체스터 시편』을 완성했다. 그는 그 경위를 『뉴욕 타임스』에 시 형식의 글로 털어놓았다. 1969년 작곡할 시간을 얻으려 음악감독에서 물러났고, 악단은 그에게 계관 지휘자라는 칭호를 주었다.

♪『치체스터 시편』1965 (47세)Radio France 합창단

12음 기법의 습작을 버린 안식년 끝에 완성한 곡으로, 조성과 선율을 믿기로 한 결심과 평화를 향한 기도가 히브리어 시편에 담겼다.

  • 1악장은 시편 108편 ‘비파야, 수금아, 깨어라’를 외치는 합창으로 시작하는데, 크게 뛰어오르는 7도 도약 음형이 곡 전체의 씨앗이 된다. 이어지는 시편 100편은 한 마디를 일곱 박으로 세는 7/4 박자로, 절뚝이는 듯 들뜬 춤처럼 들린다.
  • 2악장에서는 소년 독창자(또는 남성의 높은 가성인 카운터테너)가 하프 반주로 시편 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를 부른다. 목동 다윗이 하프를 타며 노래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 그 평화 위로 남성 합창이 시편 2편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로 거칠게 끼어든다. 이 음악은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에서 쓰지 않은 대목에서 가져온 것이다.
  • 3악장은 서로 부딪치는 화음(불협화음)의 쓰라린 현악 전주 뒤에, 시편 133편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를 부르는 고요한 합창으로 끝난다. 마지막 ‘아멘’의 여린 울림을 놓치지 말자.
  • 작곡가는 이 곡을 번역 없이 히브리어로만 부르라고 지시했다. 영국 성공회 대성당이 위촉한 곡이 히브리어로 불린다는 점이 이 곡의 성격을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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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미사와 이별 · 1969–1978 (51–60세)

(급진) 1970년 1월 펠리시아가 뉴욕 아파트에서 블랙 팬서당 단원들의 재판 비용을 돕는 모임을 열었다. 작가 톰 울프가 이를 ‘래디컬 시크(급진 멋 부리기)’라고 조롱하는 글을 쓰면서 부부는 좌우 양쪽에서 비난을 받았다. 그는 베트남전 반대와 민권 운동에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냈고, FBI는 오래전부터 그를 감시하고 있었다. (미사) 1971년 9월 재클린 케네디의 위촉으로 워싱턴 케네디 센터 개관 무대에 『미사』를 올렸다. 가톨릭 미사 전례문에 록 밴드와 블루스, 거리의 합창, 무용을 섞은 ‘연극 작품’이었다. 신앙의 위기에 빠진 사제가 성배를 바닥에 내던지는 장면은 시대의 분열과 그 자신의 의심을 함께 드러냈다. 일부 비평가는 혹평했고 닉슨 대통령은 개막 공연에 오지 않았다. (빈) 1973년 모교 하버드의 노턴 강좌에서 그는 언어학 이론을 빌려 음악의 문법을 설명했고, 강좌 제목 『답 없는 질문』은 아이브스의 곡에서 따왔다. 이 무렵 그의 활동 중심은 유럽으로 옮겨 갔다. 1966년 빈 국립 오페라에서 베르디의 『팔스타프』로 데뷔한 이래 빈 필하모닉과 깊이 맺어졌고, 나치 시대의 기억이 남은 도시에서 유대인 지휘자로서 베토벤과 말러를 지휘하는 일에 그는 각별한 의미를 두었다. (이별) 1976년 그는 남성 연인과 살기 위해 집을 나왔다. 이듬해 펠리시아가 폐암 진단을 받자 그는 돌아와 곁을 지켰고, 그녀는 1978년 6월 쉰여섯 살로 세상을 떠났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아내를 떠났던 일에 대한 죄책감을 오래 안고 살았다고 증언했다.

♪『미사』 — 가수·연주자·무용수를 위한 연극 작품1971 (53세)

베트남전과 정치 갈등으로 갈라진 시대에 재클린 케네디의 위촉으로 쓴 곡으로, 신앙을 의심하면서도 놓지 못한 그의 내면이 사제의 붕괴로 드러난다.

  • 시작 부분에서는 녹음된 목소리들이 사방의 스피커에서 ‘키리에(주여, 자비를)’를 겹겹이 부르다가, 사제가 기타를 들고 나와 「단순한 노래」를 부르며 소란을 멈춘다. 이 노래는 따로 떼어 자주 불린다.
  • 거리의 합창단이 블루스와 록으로 기도문 사이사이에 끼어들어 의심과 불만을 쏟아낸다. 라틴어 전례문과 영어 가사가 부딪치는 방식을 들어 보자.
  • 갈등이 극에 달하면 사제는 성배를 내던지고 「사물은 깨진다」라는 긴 독백을 부른다. 광기와 침묵을 오가는 이 장면은 사제 역 가수에게 가장 큰 부담이 되는 대목이다.
  • 끝에서는 소년 독창자의 노래로 시작된 ‘평화가 함께하기를’이 무대 위 사람들에게 번져 나가며 조용한 화해로 마무리된다.

VII. 마지막 지휘봉 · 1978–1990 (60–72세)

(애도) 상실은 이 시기 작품 깊숙이 스며들었다. 1981년의 『할릴』은 1973년 전쟁에서 전사한 열아홉 살 이스라엘 플루트 연주자를 기리는 플루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야상곡이었다. 1983년의 오페라 『조용한 곳』은 30년 전 『타히티의 소동』 속 부부의 이야기를 이어, 어머니의 장례식에 모인 가족이 오래 묵은 상처와 마주하는 내용이었다. (재녹음) 1980년대에 그는 도이체 그라모폰에서 빈 필하모닉,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바우, 뉴욕 필하모닉과 함께 말러와 베토벤, 브람스를 다시 녹음했다. 템포는 젊은 날보다 느려지고 표현은 더 짙어졌다. 그는 평생 끊지 못한 담배와 밤샘 습관을 끝내 버리지 않았다. (행동) 에이즈가 번지자 그는 자선 공연을 열었고, 1989년에는 에이즈를 다룬 전시에 대한 국립예술기금의 지원 철회에 항의해 국가예술훈장을 거부했다. 같은 해 12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동서독과 옛 연합국 네 나라 연주자들로 꾸린 오케스트라로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지휘하며 ‘환희(Freude)’를 ‘자유(Freiheit)’로 바꿔 부르게 했다. (작별) 1990년 여름 일본 삿포로에 젊은 음악가들을 위한 퍼시픽 뮤직 페스티벌을 세웠고, 8월 19일 탱글우드에서 보스턴 교향악단을 지휘한 것이 마지막 무대가 되었다. 첫 곡은 44년 전 이곳에서 미국 초연을 맡았던 브리튼의 『피터 그라임스』 중 「바다의 네 간주곡」이었고, 이어진 베토벤 교향곡 7번에서는 기침 발작으로 지휘가 멈출 뻔했다. 10월 9일 은퇴를 발표했고, 닷새 뒤 뉴욕 자택에서 폐 질환이 악화된 끝에 심장마비로 숨졌다. 일흔두 살이었다. 운구 행렬이 지날 때 공사장 인부들이 모자를 벗고 “잘 가요, 레니”라고 외쳤다고 전한다. 그는 브루클린 그린우드 묘지, 펠리시아 곁에 묻혔다.

덜 알려진 이야기

1939년 하버드 졸업 논문 「미국 음악에 흡수된 인종적 요소」에서 그는 흑인 음악, 특히 재즈가 미국 음악의 공통 언어가 되어 가고 있다고 보았다. 훗날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와 『미사』로 이어질 생각의 씨앗이었지만, 학부 논문이었던 탓에 1982년 그의 글 모음집 『발견』에 실리기 전까지 거의 읽히지 않았다.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처음부터 푸에르토리코 이민자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1949년 로빈스가 처음 제안한 구상은 뉴욕 동쪽 빈민가의 유대인 소녀와 가톨릭 소년의 사랑, 이른바 ‘이스트사이드 스토리’였다. 구상은 6년 가까이 묻혀 있다가, 1955년 번스타인과 로런츠가 로스앤젤레스에서 멕시코계 청소년 갱단의 충돌 기사를 접하면서 지금의 방향으로 바뀌었다. 이 경위는 번스타인 자신이 남긴 작업 일지에 적혀 있다. 같은 작품의 가사는 원래 번스타인과 손드하임이 함께 쓴 것으로 표기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번스타인은 자신이 쓴 구절이 대부분 다듬어져 사라졌다며 개막 무렵 이름을 빼고 손드하임 혼자 작사가로 올리게 했다. 오늘날 이 가사가 손드하임의 것으로만 기억되는 이유다. 그는 오랫동안 미국 정부의 감시 대상이었다. 연방수사국(FBI)은 1940년대부터 수십 년에 걸쳐 그의 정치 활동을 기록했고, 그 분량은 수백 쪽에 이르렀다. 1953년의 여권 거부도 이 기록과 맞닿아 있었다. 이 파일은 그가 죽은 뒤 정보공개 청구로 공개되면서 비로소 자세히 알려졌다.

용어 노트 📚🔎

지휘

(말뜻) 지휘(指揮)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指) 휘두른다(揮)는 뜻이다. 손짓 하나로 많은 사람을 움직이는 모습이 이름에 담겨 있다. (음악에서) 오케스트라나 합창단 앞에서 빠르기와 셈여림(소리의 크고 작음), 악기들 사이의 균형을 정해 수십 명의 소리를 하나로 묶는 일이다. 지휘자는 직접 소리를 내지 않지만, 같은 악보라도 지휘자에 따라 전혀 다른 음악이 된다. 반 대항 합창 대회에서 앞에 선 친구가 손을 들면 모두 숨을 들이쉬고, 손을 내리면 함께 첫 음을 내는 것 — 그게 지휘의 시작이다. (다른 데서는) 군대나 공사 현장에서 사람들을 이끌고 명령하는 일도 지휘라고 한다.

교향곡

(말뜻) 교향곡(交響曲)은 여러 소리가 서로 어울려(交) 울리는(響) 곡이라는 뜻이다. 서양 이름 심포니도 그리스어로 ‘함께(syn) 소리 남(phone)’에서 왔다. (음악에서) 오케스트라를 위해 쓴, 보통 서너 개의 악장(큰 덩어리)으로 이루어진 큰 곡이다. 하이든과 베토벤 시대에 틀이 잡혔고, 번스타인은 여기에 노래와 낭독, 피아노 독주를 넣어 이야기를 담았다. 축구 경기가 전반과 후반으로 나뉘어도 한 경기이듯, 악장들은 성격이 달라도 하나의 작품을 이룬다. (다른 데서는) 여러 요소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것을 비유해 ‘맛의 교향곡’처럼 쓰기도 한다.

뮤지컬

(말뜻) 영어 뮤지컬 코미디(musical comedy)를 줄인 말로, ‘음악이 있는 연극’이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대사와 노래, 춤으로 이야기를 펼치는 무대 작품이다. 오페라가 대부분을 노래로 하는 데 비해 뮤지컬은 말로 하는 대사가 많고 대중음악의 리듬을 자유롭게 쓴다. 뉴욕 브로드웨이 극장가에서 크게 발전했다. 학예회 연극에서 대사를 주고받다가 주인공이 노래를 부르고 친구들이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변박

(말뜻) 변박(變拍)은 박자가 바뀐다(變)는 뜻이다. (음악에서) 한 곡 안에서 박자가 수시로 바뀌거나, 둘씩 묶는 박과 셋씩 묶는 박이 번갈아 나오는 것을 말한다. 듣는 사람이 발로 박자를 맞추다 놓치기 쉬워 긴장감과 생동감이 생긴다.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의 「아메리카」는 ‘하나둘셋 하나둘셋 / 하나둘 하나둘 하나둘’을 번갈아 센다. 긴 줄넘기에서 돌리는 친구가 갑자기 박자를 바꾸면 뛰어드는 타이밍을 다시 맞춰야 하는 것과 비슷하다.

12음 기법

(음악에서) 피아노 건반에서 한 옥타브 안에 있는 열두 개의 음(흰 건반 일곱, 검은 건반 다섯)을 모두 한 번씩 쓰는 순서, 곧 음렬을 먼저 정해 놓고 그 순서를 바탕으로 곡을 짓는 방법이다. 중심이 되는 으뜸음이 없어서 익숙한 음악과 달리 낯설고 긴장된 소리가 난다. 아르놀트 쇤베르크가 1920년대에 만들었고, 20세기 중반 작곡가들 사이에 크게 유행했다. 반 친구 열두 명이 발표 순서를 정할 때, 모두 한 번씩 발표하기 전에는 누구도 다시 나설 수 없다는 규칙을 세우는 것과 비슷하다.

미사

(말뜻) 가톨릭 예배 맨 끝에 사제가 말하는 라틴어 ‘이테, 미사 에스트(가십시오, 파견되었습니다)’에서 ‘미사’라는 이름이 나왔다고 본다. (음악에서) 가톨릭 미사에서 늘 쓰는 기도문 — 키리에(주여, 자비를), 글로리아(대영광송), 크레도(신앙 고백), 상투스(거룩하시도다), 아뉴스 데이(하느님의 어린양) — 에 곡을 붙인 음악이다. 바흐와 모차르트, 베토벤도 미사곡을 남겼다. 번스타인의 『미사』는 이 순서를 무대 위 연극으로 펼친 특별한 경우다. 졸업식이 국민의례, 식사, 졸업장 수여처럼 정해진 순서로 진행되듯, 미사곡도 정해진 순서를 따른다.

푸가

(말뜻) 푸가(fuga)는 라틴어와 이탈리아어로 ‘도망’이라는 뜻이다. 뒤따르는 목소리가 앞선 목소리를 쫓아가는 모습에서 붙은 이름이다. (음악에서) 하나의 짧은 주제를 여러 성부(목소리나 악기의 줄기)가 차례로 이어받아 겹쳐 가는 작곡 형식이다. 돌림노래에서 뒷사람이 같은 가락을 몇 박 늦게 따라 부르는 것 — 푸가가 꼭 그렇게 시작한다. 다만 푸가는 따라 부르는 쪽이 음높이를 옮겨 부르고, 이후 주제를 쪼개고 겹치며 훨씬 복잡하게 발전한다. 바흐가 이 형식의 대가였고, 번스타인은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의 「쿨」에서 이를 재즈와 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