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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e

샤인 (1996)

화면 속 손은 배우의 것이고 귀에 들리는 소리는 대개 실제 피아니스트의 녹음이다. 허슈펠더의 음악은 그 둘 사이에서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울리는 소리를 들려준다.

한눈에 보기 🔭💭

1. 출발오스트레일리아 1996 개봉십 년의 준비첫 제목 왕벌의 비행2. 음악허슈펠더 창작곡헬프갓의 녹음34트랙 사운드트랙3. 갈등아버지와 아들막힌 유학최후통첩4. 절정라흐마니노프 3번사라지는 소리전자음 지속음5. 귀환식당의 왕벌의 비행트램펄린 위 비발디다시 무대로6. 유산러시 남우주연상아카데미 음악상 후보20주년 다큐샤인1996라흐마니노프 3번이라는 산을 오른 피아니스트의…
이야기의 무대 🧭🗺️
N영국퍼스런던퍼스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만든 사람들 ⏳🌊

  • 작곡가데이비드 허슈펠더

    대중음악 밴드의 건반 주자 출신으로, 이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아카데미 음악상 후보에 올랐고 「엘리자베스」로 다시 후보가 되었다.

  • 감독스콧 힉스

    1985년 헬프갓의 연주를 본 뒤 십 년 가까이 이 영화를 준비했고,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올랐다.

  • 각본잰 사디

    1990년 합류해 이야기를 새로 짰고, 이 영화로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올랐다.

  • 주연제프리 러시

    어린 시절 그만둔 피아노 레슨을 다시 받아 손 대역 없이 성인 데이비드를 연기했고,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 주연아르민 뮐러슈탈

    사랑과 집착이 한 몸인 아버지 피터를 연기해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 주연노아 테일러

    유학의 꿈과 아버지 사이에서 흔들리는 십대의 데이비드를 연기했다.

YouTube에서 5곡 이어 듣기 ↗

I. 십 년이 걸린 영화

(출발) 「샤인」은 오스트레일리아의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의 삶에서 출발한 영화다. 감독 스콧 힉스는 1985년 애들레이드에서 헬프갓의 연주를 보고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로 했다. 헬프갓과 그의 아내 길리언의 동의를 얻는 데만 한 해쯤이 걸렸다. 자료 조사와 인터뷰를 거친 뒤 1990년에 각본가 잰 사디가 합류했다. 첫 원고의 제목은 「왕벌의 비행」이었다. 영화가 선댄스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것은 1996년 1월로, 그때까지 십 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작곡가) 음악은 데이비드 허슈펠더가 맡았다. 1960년 빅토리아주 밸러랫에서 태어난 그는 리틀 리버 밴드와 존 판햄의 밴드에서 건반을 치던 대중음악인이었다. 영화음악가로 이름을 알린 작품은 바즈 루어만의 「댄싱 히어로(Strictly Ballroom)」다. 루어만은 이 시리즈에서 다룬 「물랑루즈」의 감독이다. 힉스가 허슈펠더를 택한 경위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두 갈래) 허슈펠더의 일은 두 갈래였다. 하나는 쇼팽, 리스트,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명곡에서 장면에 맞는 대목을 골라 다듬고 녹음하는 일이었다. 다른 하나는 그 사이를 잇는 배경음악을 새로 쓰는 일이었다. 사운드트랙 음반은 서른네 트랙으로, 허슈펠더가 새로 쓴 음악과 고전 명곡이 섞여 있다. 명곡 연주의 상당수는 헬프갓 자신이 맡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손) 성인 데이비드를 연기한 제프리 러시는 열네 살에 그만둔 피아노 레슨을 다시 시작해, 손 대역 없이 건반 앞에 앉았다. 화면 속 손은 배우의 것이고 귀에 들리는 소리는 헬프갓의 녹음인 경우가 많다. 이 겹침이 영화 전체의 음악적 질감을 만든다.

♪신의 도움으로, 빛나라 (With the Help of God, Shine)1996

사운드트랙 음반을 여는 허슈펠더의 창작곡이다. 영화 제목이 어디서 왔는지를 곡 제목이 먼저 알려 준다.

  • 허슈펠더의 배경음악은 피아노를 중심에 두고 현악과 하프를 얹는 구성이다. 같은 악기로 연주되는 고전 명곡들 사이에서 튀지 않으려는 선택처럼 들린다.
  • 창작곡은 음반 전체에서 절반에 못 미치는 분량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이 배경음악으로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음악상 후보에 올랐다. 두 상은 모두 「잉글리시 페이션트」의 가브리엘 야레드에게 돌아갔다.
  •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AACTA 음악상과 APRA 영화음악상을 받았다. 대중음악 밴드의 건반 주자가 고전음악 영화로 인정받은 셈이다.
  • 밝고 희망적인 선율은 데이비드의 꿈과 상상을 가리킨다. 이 밝음이 나중에 어떻게 그늘지는지 기억해 두면 뒤의 큐들이 더 잘 들린다.

II. 아버지의 피아노

(빗속) 영화는 비 내리는 밤에 시작한다. 흠뻑 젖은 중년 남자가 식당 문을 두드리고, 그의 입에서는 말이 쉬지 않고 쏟아진다. 영화는 그가 누구인지 바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시간을 거슬러 1950년대 퍼스의 한 소년에게로 간다. (아버지) 소년 데이비드에게 피아노를 처음 가르친 사람은 아버지 피터다. 폴란드에서 건너온 유대인 이민자인 그는 아들에게 이겨야 한다고, 강한 자만 살아남는다고 거듭 말한다. 아르민 뮐러슈탈이 연기한 이 아버지는 사랑과 집착이 한 몸인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아들이 언젠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치게 되리라 꿈꾼다. 이 곡이 영화 전체를 꿰는 실이 된다. (경연) 지역 음악 경연 대회인 아이스테드포드에서 어린 데이비드는 쇼팽을 연주한다. 결과는 아버지의 기대에 못 미친다. 하지만 객석에 있던 피아노 교사 벤 로젠이 아이의 재능을 알아본다. 아버지는 처음에는 아들을 남의 손에 맡기지 않으려 하다가 끝내 물러선다. (음색) 이 대목에서 허슈펠더의 배경음악은 피아노를 가운데 두고 현악과 하프를 가볍게 얹는다. 아이의 상상과 희망을 감싸는 밝은 음색이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지면 음악은 피아노의 낮은 음역으로 내려앉는다. 같은 악기가 높은 음역과 낮은 음역을 오가며 집 안의 공기를 바꾸는 것이다. 이 짧은 대비가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의 축을 미리 세워 둔다.

♪폴로네즈 (The Polonaise)연주 조성진 (피아노) · 2015 쇼팽 콩쿠르 입상자 공연

어린 데이비드가 아이스테드포드 경연에서 쇼팽을 치는 대목이다. 음반에서는 이 곡 바로 뒤에 「Did He Win?」이라는 짧은 큐가 이어져 경연의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을 그린다.

  • 폴로네즈는 폴란드 궁정에서 유래한 3박자의 춤곡이다. 걷듯 위엄 있게 나아가는 리듬이 특징이다.
  • 쇼팽은 조국 폴란드를 떠나 파리에서 살며 폴로네즈에 고향을 향한 마음을 담았다. 폴란드 출신 이민자인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 곡을 치게 한다는 설정이 겹쳐 들린다.
  • 음반 트랙은 1분 20초 남짓으로 짧다. 영화는 곡 전체보다 아이의 손과 아버지의 얼굴에 시선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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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바다 건너에서 온 초대

(초청) 노아 테일러가 연기하는 십대의 데이비드는 주 대회에서 우승한다.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이 그에게 미국 유학을 권하고, 이웃들은 여비를 모으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족이 흩어진다는 이유로 유학을 막는다. 집 안의 폭력과 침묵이 이 무렵 가장 짙어진다. (우정) 데이비드는 작가 캐서린 수재나 프리처드와 가까워진다. 프리처드는 오스트레일리아 공산당 창당에 참여한 실존 소설가로, 구기 위더스가 연기했다. 그녀는 소년에게 책과 이야기를 건네고 아버지 곁을 떠날 용기를 북돋운다. 앨범에 실린 허슈펠더의 큐 「Tell Me a Story, Katherine」과 「Letters to Katherine」은 제목 그대로 두 사람의 대화와 편지를 가리킨다. (장학금) 마침내 데이비드는 런던 왕립음악원 장학생으로 뽑힌다. 아버지는 떠나면 다시는 이 집 아들이 될 수 없다는 최후통첩을 던진다. 아들은 그 말을 등지고 떠난다. 앨범의 「Punished for the Rest of Your Life」 같은 큐 제목에서 이 무렵 오간 말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다. (대비) 이 장에서 음악은 두 세계를 맞세운다. 프리처드의 집에서는 하프와 현이 부드럽게 흐르고, 아버지의 집에서는 낮은 피아노가 무겁게 울린다. 열린 바깥세상과 닫힌 집 안의 대비다. 같은 피아노가 어느 쪽에 서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목소리를 낸다는 점에서, 허슈펠더는 악기 하나로 인물이 놓인 처지를 그려 낸다.

IV. 괴물이라 불린 협주곡

(런던) 런던에서 데이비드는 세실 파크스 교수를 만난다. 존 길구드가 연기한 이 노교수는 제자의 재능을 아끼면서도, 데이비드가 고른 라흐마니노프 3번을 괴물 같은 곡이라 부른다. 손가락만으로는 오를 수 없고 마음까지 내주어야 하는 곡이라는 뜻이다. (작품) 라흐마니노프는 1909년 미국 순회 연주를 위해 이 협주곡을 썼다. 그해 11월 뉴욕에서 직접 독주를 맡아 초연했다. 손을 크게 벌려 짚어야 하는 화음과 쉼 없이 몰아치는 악구 때문에, 지금도 가장 어려운 피아노 협주곡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아버지가 꿈꾸던 그 곡을 아들은 아버지에게서 가장 먼 곳에서 준비한다. (연습) 영화는 연습하는 모습을 오래 보여 준다. 밤늦도록 건반을 두드리는 데이비드, 표시로 빽빽한 악보, 점점 말수가 줄어드는 얼굴이 이어진다. 앨범의 「Night Practice/Parcel from Katherine」은 라흐마니노프 선율의 일부를 허슈펠더의 큐 안으로 끌어들인다. 밤의 연습과 제목이 가리키는 캐서린의 소포가 한 흐름으로 묶인다. (경계) 이 장에서 영화음악과 고전음악의 경계가 흐려진다. 라흐마니노프의 악구가 배경음악처럼 장면 밑에 깔리고, 허슈펠더의 배경음악은 협주곡의 그림자처럼 그 뒤를 따른다. 관객은 어느새 데이비드의 머릿속에서 울리는 소리를 함께 듣게 된다. 다음 장의 절정은 이렇게 조금씩 준비된다.

♪라흐마니노프 3번 1악장 카덴차 (1st Movement Cadenza from the Rach 3)연주 임윤찬 (피아노) · 2022 클라이번 결선

런던에서 데이비드가 괴물이라 불리는 협주곡에 매달리는 대목이다. 음반은 이 협주곡의 한가운데인 1악장 카덴차를 따로 싣는다.

  • 카덴차(독주자 혼자 기교를 펼치는 구간)에서는 오케스트라가 멈추고 피아노 혼자 남는다. 홀로 거대한 곡과 씨름하는 데이비드의 처지가 음악의 형식에 그대로 겹친다.
  • 라흐마니노프는 이 1악장에 두 가지 카덴차를 남겼다. 하나는 화음이 두텁고 무거운 판이고, 다른 하나는 더 가볍고 빠른 판이다. 작곡가 자신은 녹음에서 가벼운 쪽을 택했다. 어느 쪽을 치느냐가 연주자마다 갈리는 대목으로 꼽힌다.
  • 1악장 첫 주제는 몇 음 안 되는 소박한 선율이다. 러시아 성가에서 따온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지만, 라흐마니노프는 어디에서도 빌려 온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 소박한 선율이 카덴차에서 거대하게 부풀어 오르는 과정을 따라가 보면 좋다.
  • 이 협주곡은 피아니스트 요제프 호프만에게 헌정됐지만 호프만은 끝내 이 곡을 공개 무대에서 연주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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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소리가 사라지는 순간

(경연) 데이비드는 왕립음악원의 협주곡 경연에서 라흐마니노프 3번을 연주한다. 영화의 절정이자 가장 많이 회자되는 장면이다. 객석과 지휘자, 땀에 젖은 연주자의 얼굴이 번갈아 비치는 동안 음악은 끝을 향해 내달린다. (정적) 그러다 어느 순간 오케스트라 소리가 멀어진다. 남는 것은 건반을 내리치는 둔탁한 타격과 숨소리, 그리고 웅웅거리는 낮은 울림뿐이다. 화면 속 손은 여전히 움직이지만 음악은 들리지 않는다. 관객은 바깥에서 연주를 듣던 청중의 자리를 떠나 연주자의 몸 안으로 끌려 들어간다. (설계) 허슈펠더는 이 대목에서 라흐마니노프의 악구 밑에 낮게 웅웅거리는 소리를 깔았다고 알려져 있다. 앨범의 「The Rach. 3」가 그 결과물이다. 그러나 영화 안에서는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의 끝을 소리로 보여 준다. 음악을 빼는 것이 가장 강한 음악이 되는 장면이다. (대가) 연주는 갈채 속에 끝나지만 데이비드는 그 자리에서 무너진다. 영화는 그 뒤의 긴 공백을 짧게 건너뛴다. 오스트레일리아로 돌아온 그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지만, 수화기 너머의 대답은 차갑다. 아버지가 꿈꾸고 아들이 이뤄 낸 곡이 두 사람 사이를 끝내 갈라놓은 셈이다.

♪라흐 3번 (The Rach. 3)

왕립음악원 경연의 절정에서 소리가 빠져나가는 장면의 음악이다. 협주곡과 허슈펠더의 전자음이 한 트랙 안에서 섞인다.

  • 협주곡의 장대한 소리 밑으로 전자음으로 만든 지속음(드론)이 깔린다. 낮게 웅웅거리는 이 소리는 연주자의 귀와 몸 안에서 울리는 압박처럼 들린다.
  • 오케스트라 소리가 멀어지면서 타건의 둔탁한 울림과 숨소리만 남는다. 음악을 덜어 내서 긴장을 높이는 장면이라, 영화음악에서 정적의 힘을 이야기할 때 자주 꼽힌다.
  • 영화 장면을 떠올리며 들어야 이 트랙의 뜻이 온전히 살아난다.
  • 아버지가 꿈꾸던 곡이 아들을 무너뜨리는 순간이다. 같은 선율이 앞에서는 희망을, 여기서는 대가를 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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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다시 건반 앞으로

(귀환)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데이비드는 바깥세상으로 나온다. 세상과 서툴게 다시 만나던 그는 첫 장면의 그 식당으로 돌아와 피아노 앞에 앉는다. 그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을 쏟아내자 손님들이 숨을 죽인다. 프롤로그에서 끊겼던 이야기가 여기서 다시 이어진다. (해방) 이 무렵 영화에서 가장 자유로운 장면이 나온다. 외투 차림의 데이비드가 트램펄린 위에서 뛰어오르고, 비발디의 모테트가 소프라노의 목소리로 하늘을 향해 펼쳐진다. 짓눌려 있던 인물이 처음으로 몸을 공중에 띄우는 순간이다. 대사 하나 없이 음악과 몸짓만으로 해방을 그린다. (만남) 데이비드는 식당 일을 하는 실비아를 거쳐 길리언을 만난다. 린 레드그레이브가 연기한 길리언 곁에서 그는 삶의 질서를 조금씩 되찾는다.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도 이 시기에 일어난다. (여운) 영화는 다시 무대로 향한다. 그 무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직접 보는 편이 좋다. 다만 이때 음악이 들려주는 것은 승리의 팡파르가 아니다. 앨범 끝부분의 트랙 제목 「Familiar Faces/Rach. 3 Encore」가 암시하듯, 음악은 객석에서 낯익은 얼굴들을 발견하는 순간의 떨림에 귀를 기울인다. 그 떨림 속으로 오래 잠겨 있던 협주곡의 그림자가 돌아온다. 같은 해 나온 「브래스드 오프」처럼, 이 영화도 음악이 사람을 무너뜨리기도 하고 일으켜 세우기도 한다는 사실을 끝까지 놓지 않는다.

♪왕벌의 비행 (Flight of the Bumble Bee)영화 장면 — Geoffrey Rush

식당으로 돌아온 데이비드가 손님들 앞에서 이 곡을 쏟아내는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대목이다. 연주는 헬프갓의 녹음이고 건반 위의 손은 제프리 러시의 것이다.

  • 원곡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오페라 「술탄 황제 이야기」에 나오는 짧은 관현악 간주곡이다. 왕자가 벌로 변해 날아가는 대목에 쓰였다. 음반에는 라흐마니노프가 피아노용으로 옮긴 편곡(트랜스크립션)으로 실렸다. 이 영화를 꿰는 이름이 다시 라흐마니노프다.
  • 반음씩 촘촘히 오르내리는 반음계(피아노의 흰 건반과 검은 건반을 모두 차례로 짚는 음계)가 쉼 없이 이어지며 벌의 날갯짓을 그린다.
  • 이 영화의 첫 원고 제목이 바로 「왕벌의 비행」이었다. 감독이 처음부터 이 곡을 인물의 상징으로 보았다는 뜻이다.
  • 이 시리즈의 「피아니스트의 전설」에서 주인공이 피아노 대결을 벌이는 장면과 나란히 들어 볼 만하다. 두 영화 모두 빠른 손놀림을 기교 자랑이 아니라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는 장치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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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라 인 문도 팍스 신체라 (Nulla in Mondo Pax Sincera)노래 Zinovia Zafeiriadou Vidovic (소프라노)

외투 차림의 데이비드가 트램펄린 위에서 뛰어오르는 장면에 흐르는 비발디의 모테트다. 음반에서는 소프라노 제인 에드워즈가 불렀고 앨범의 마지막 트랙으로 실렸다.

  • 비발디의 모테트(종교적인 내용을 담은 독창·합창곡) RV 630의 첫 곡이다. 라틴어 제목은 대략 이 세상에 참된 평화는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정작 음악은 고요하고 평온하게 흘러간다. 제목과 소리의 어긋남이 장면에 묘한 깊이를 더한다.
  • 느리게 흔들리는 리듬이 몸이 공중에 떴다 내려오는 움직임과 겹친다. 피아노가 전혀 나오지 않는 몇 안 되는 대목이라 해방감이 더 크게 다가온다.
  • 영국의 고전음악 방송 클래식 FM은 이 영화 이후 한동안 이 곡이 트램펄린 위의 오스트레일리아 남자와 함께 떠올려졌다고 회고했다. 영화 한 편이 잊혀 가던 바로크 성악곡에 새 생명을 준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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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알려진 이야기

이 영화의 첫 원고 제목은 「왕벌의 비행」이었다. 힉스는 1985년 애들레이드에서 연주를 보고 이 작업을 시작했다. 헬프갓 부부를 설득하는 데 한 해쯤, 자료 조사와 인터뷰에 다시 몇 해가 들었다. 1990년 잰 사디가 각본가로 합류했다. 완성된 영화의 제목이 워낙 널리 알려져서, 처음에 한 곡의 이름을 달고 출발했다는 사실은 제작사의 기록 속에 묻혀 있다. 실제로 런던 왕립음악원에서 헬프갓을 가르친 사람은 피아니스트 시릴 스미스였다. 영화 속 스승은 세실 파크스라는 다른 이름으로 등장한다. 스미스는 1956년 소련 순회 연주를 시작하던 무렵 하르키우에서 뇌졸중을 겪어 왼팔이 마비됐다. 그 뒤로는 아내이자 피아니스트인 필리스 셀릭과 함께 세 손으로 치는 이중주를 이어 갔다. 작곡가 말컴 아널드는 두 사람을 위해 세 손을 위한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을 썼고, 1969년 프롬스에서 초연됐다. 영화가 스승의 이름을 바꾸면서 이 이야기는 스크린 밖에 남았다. 허슈펠더가 이 영화의 음악을 만든 과정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다. 개봉 20주년이던 2016년, 영화사학자 앤드루 파이크가 그를 인터뷰한 28분짜리 다큐멘터리가 나왔다. 허슈펠더는 그 안에서 피아노 명곡의 어느 대목을 고르고 어떻게 다듬어 녹음했는지, 그 사이를 잇는 배경음악을 어떻게 썼는지 회고했다. 이 다큐는 배급사 로닌 필름스의 카탈로그와 비메오 주문형 서비스로 나와 있다.

용어 노트 📚🔎

협주곡(콘체르토)

(말뜻) 협주곡(協奏曲)은 함께(協) 연주하는(奏) 곡이라는 뜻이다. 서양 이름 콘체르토의 라틴어 뿌리 concertare 에는 겨루다라는 뜻도 있어서, 독주자와 오케스트라가 겨루듯 주고받는 이 음악의 성격이 이름에 이미 들어 있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독주 악기 하나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하도록 쓴 곡이다. 보통 빠르기가 다른 세 부분(악장)으로 이루어진다. 「샤인」의 라흐마니노프 3번은 피아노 한 대가 오케스트라 전체와 맞서는 곡이라, 혼자 거대한 세상과 씨름하는 주인공의 처지를 그대로 비춘다. 체육 시간에 한 사람이 반 전체와 공을 주고받는 장면을 떠올리면 쉽다. 혼자인 쪽이 지치지 않고 버텨야 경기가 이어진다.

카덴차

(말뜻) 이탈리아어 cadenza 는 라틴어 cadere(떨어지다)에서 왔다. 원래는 곡이 끝을 향해 내려앉는 마무리를 가리키던 말이다. 그 마무리 직전에 독주자가 솜씨를 펼치던 관습에서 지금의 뜻이 굳었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협주곡에서 오케스트라가 잠시 멈추고 독주자 혼자 화려한 기교를 펼치는 구간이다. 옛날에는 연주자가 즉석에서 지어 치기도 했지만, 라흐마니노프는 직접 써 두었다. 3번 협주곡 1악장에는 무거운 판과 가벼운 판, 두 가지 카덴차가 있다. 노래방에서 반주가 잠깐 멈추고 가수 혼자 목소리를 길게 뽑는 순간과 비슷하다. 그 짧은 순간에 실력이 다 드러난다. (다른 데서는) 자전거나 달리기에서 케이던스(cadence)라고 하면 페달을 밟거나 발을 내딛는 리듬을 뜻한다.

언더스코어(배경음악)

(말뜻) 영어 underscore 는 아래(under)에 까는 악보(score)라는 뜻이다. 장면 밑에 깔리는 음악이라는 쓰임이 이름에 그대로 드러난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등장인물에게는 들리지 않고 관객에게만 들리는 배경음악을 말한다. 「샤인」에서 데이비드가 치는 쇼팽이나 라흐마니노프는 인물도 듣는 음악이다. 허슈펠더가 새로 쓴 하프와 현의 음악은 관객만 듣는 언더스코어다. 게임에서 캐릭터는 못 듣지만 플레이어는 듣는 배경음악을 떠올리면 된다. 보스 방에 들어가면 음악이 바뀌어 긴장이 높아지는 것처럼, 언더스코어는 장면의 기분을 몰래 이끈다. (다른 데서는) 컴퓨터에서는 밑줄 문자(_)를 언더스코어라고 부른다.

지속음(드론)

(말뜻) 영어 drone 은 원래 수벌, 그리고 수벌이 내는 웅웅거리는 소리를 가리킨다. 한 음이 끊이지 않고 계속 울리는 소리를 그 소리에 빗댄 이름이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높이가 거의 변하지 않는 음을 길게 끌며 깔아 두는 기법이다. 백파이프의 낮은 웅웅 소리가 대표적이다. 「샤인」의 경연 장면에서 허슈펠더는 전자음으로 만든 지속음을 깔아 연주자의 머릿속을 짓누르는 압박을 표현했다. 시험 시간에 교실 형광등이나 냉장고가 계속 웅 하고 울리면, 처음엔 몰라도 어느 순간 그 소리만 크게 들린다. 지속음은 그렇게 듣는 사람의 신경을 조금씩 조인다. (다른 데서는) 요즘에는 사람이 타지 않고 원격으로 조종하는 비행기를 드론이라고 부른다. 날개 돌아가는 소리가 벌 소리 같아 붙은 이름이다.

편곡(트랜스크립션)

(말뜻) transcription 은 라틴어 transcribere(옮겨 적다)에서 왔다. 한 악기를 위한 음악을 다른 악기용으로 옮겨 적는다는 뜻이 여기서 나왔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원래 다른 악기나 오케스트라를 위해 쓴 곡을 다른 악기로 연주할 수 있게 다시 쓴 것이다. 「샤인」의 「왕벌의 비행」은 원래 오페라 속 관현악곡이다. 영화에서는 라흐마니노프가 피아노 한 대로 칠 수 있게 옮긴 판으로 연주된다. 반 친구가 노래방에서 부른 노래를 리코더로 불어 보려고 계이름을 옮겨 적는 일과 같다. 다만 피아노 한 대에 오케스트라 소리를 다 담으려면 손가락이 훨씬 바빠진다. (다른 데서는) 생물학에서는 DNA의 정보를 RNA로 옮겨 적는 과정을 전사(transcription)라고 하고, 녹음된 말을 글로 받아 적은 것도 트랜스크립션이라고 한다.

폴로네즈

(말뜻) 프랑스어 polonaise 는 폴란드풍의 (춤)이라는 뜻이다. 폴란드의 춤곡이 프랑스어 이름으로 유럽에 퍼졌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3박자의 위엄 있는 춤곡이다. 귀족들이 줄지어 천천히 걸으며 추던 행렬 춤에서 나왔다. 쇼팽은 조국을 떠나 파리에서 살며 폴로네즈를 여러 곡 썼다. 그 곡들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자부심이 담겨 있다. 「샤인」에서는 어린 데이비드가 경연에서 쇼팽의 폴로네즈를 친다. 운동회 입장식에서 반별로 줄 맞춰 당당하게 걸어 들어오는 모습을 떠올리면 그 리듬이 느껴진다.

모테트

(말뜻) 모테트는 프랑스어 mot(낱말, 말)에서 나왔다고 흔히 설명한다. 이미 있는 선율 위에 새로운 가사(말)를 얹어 부르던 중세 관습에서 붙은 이름이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종교적인 내용의 가사를 붙인 성악곡이다. 시대에 따라 합창곡일 때도 있고 독창곡일 때도 있다. 비발디의 모테트는 독창자가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 부르는 형태다. 「샤인」의 트램펄린 장면에 흐르는 곡이 바로 그런 모테트다. 학교 합창 대회에서 반 전체가 부르는 노래와 대표 한 명이 부르는 독창이 따로 있듯, 모테트도 여럿이 부르기도 하고 혼자 부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