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rd
수십 년 전 테이프에서 걸러 낸 찰리 파커의 알토 위에 1988년의 연주자들이 반주를 새로 깔았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는 죽은 사람의 즉흥연주와 살아 있는 사람들의 반주가 한 무대에서 함께 울린다.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만든 사람들 ⏳🌊
- 작곡가레니 니하우스
켄턴 악단 출신 알토 주자로, 파커의 솔로에 새 반주와 현악 편곡을 입혔고 휘태커에게 색소폰의 기초를 가르쳤다.
- 작곡가찰리 파커
「코코」·「나우즈 더 타임」·「파커스 무드」를 쓴 비밥의 창시자로, 사운드트랙의 모든 알토 솔로가 그의 실제 연주다.
- 감독클린트 이스트우드
젊은 시절 파커의 공연을 직접 본 재즈 애호가로 영화를 제작·연출했고, 골든글로브 감독상을 받았다.
- 각본조엘 올리안스키
챈 파커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마지막 몇 달을 축으로 여러 시절을 오가는 대본을 썼다.
- 주연포레스트 휘태커
찰리 파커를 연기해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 주연다이앤 비노라
파커의 곁을 지키는 챈 파커를 연기했다.
I. 테이프 속의 알토
(경위) 「버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제작하고 연출한 찰리 파커의 전기 영화다. 각본은 조엘 올리안스키가 썼다. 원래는 컬럼비아 영화사의 기획이었으나 판권이 워너브러더스로 넘어오면서 이스트우드가 맡게 되었다. 재즈 애호가인 이스트우드는 1946년에 파커의 공연을 직접 본 적이 있었다. 대본은 파커의 아내 챈 파커의 회고록에 크게 기댔다. (니하우스) 음악감독 레니 니하우스는 스탠 켄턴 악단에서 알토 색소폰을 불고 편곡을 하던 재즈 연주자였다. 한국전쟁 무렵 캘리포니아의 포트 오드 기지에서 이스트우드와 함께 군 복무를 하며 재즈로 가까워졌다. 그 뒤 제리 필딩이 쓴 이스트우드 영화 음악을 관현악으로 옮겼고, 「타이트로프」부터는 이스트우드 영화의 작곡가가 되었다. 파커와 같은 알토 주자가 파커의 소리를 맡은 셈이다. (녹음) 가장 큰 문제는 소리였다. 파커의 녹음은 모노였고 극장에서 틀기에는 음질이 거칠었다. 스튜디오 녹음은 솔로가 짧아 무대 공연의 느낌을 살리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챈이 금고에 보관해 오던 미발표 녹음을 썼다. 엔지니어가 테이프에서 파커의 알토만 걸러 냈고, 니하우스가 몬티 알렉산더·배리 해리스·월터 데이비스 주니어(피아노), 레이 브라운·론 카터·척 버고퍼(베이스), 존 게린(드럼)을 불러 반주를 새로 녹음했다. (연결) 이 시리즈에서 다룬 「불멸의 연인」은 베토벤의 음악을 오늘날의 오케스트라 연주로 입혔다. 「버드」는 반대로 주인공 자신의 소리를 그대로 살려 두고 그 둘레만 새로 지었다. 영화는 아카데미 음향상을 받았다.
II. 날아가는 심벌
(제사) 영화는 미국인의 삶에는 2막이 없다는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문장으로 시작한다. 한창때가 지나면 다시 오르기 어렵다는 이 말은, 파커가 서른넷에 생을 마쳤다는 것을 아는 관객에게 영화 전체의 그림자가 된다. (크레디트) 크레디트가 흐르는 동안 영화는 파커가 음악가로 자라는 과정을 세 단계로 보여 준다. 캔자스시티의 뒷마당에서 조랑말을 타며 작은 장난감 피리를 부는 아이, 현관을 오가며 알토를 연습하는 소년, 그리고 뉴욕 52번가 클럽에서 「레스터 리프스 인」을 부는 절정기의 재즈맨이다. 평론가 조너선 로젠바움은 마지막 단계로 넘어가는 이 장면 전환을 특히 높이 평가했다. (굴욕) 이야기 속 출발점은 실패다. 캔자스시티 리노 클럽의 잼 세션에서 십대의 파커는 연주 중에 길을 잃는다. 드러머가 그의 발치로 심벌을 던지고, 파커는 웃음거리가 되어 무대에서 내려온다. 드러머 조 존스가 실제로 그랬다고 전해지는 일화를 옮긴 장면이다. 어린 파커는 포레스트 휘태커의 동생 데이먼 휘태커가 연기했다. (구조) 영화는 연대기를 따라가지 않는다. 파커의 마지막 몇 달을 중심에 두고 여러 시절을 오간다. 그 사이로 어두운 허공을 천천히 날아가는 심벌이 느린 화면으로 몇 번이고 끼어든다. 파커가 지난 굴욕을 떠올릴 때마다 돌아오는 이 영상은 재즈 곡에서 되풀이되는 주제처럼 작동한다. 영화가 재즈 한 곡처럼 짜였다는 평이 나오는 까닭이다.
크레디트 장면에서 아이와 소년을 거쳐 52번가의 재즈맨이 된 파커가 처음으로 연주하는 곡이다. 영화가 파커를 소개하는 첫 소리다.
- 레스터 리프스 인은 테너 색소폰 주자 레스터 영의 곡이다. 캔자스시티 시절 파커가 우러러본 선배의 곡으로 그의 전성기를 보여 주는 셈이라, 출발점과 도착점이 한 곡에 겹친다.
- 곡의 뼈대는 거슈윈의 「아이 갓 리듬」 화음 순서(코드 진행)다. 재즈 연주자들이 리듬 체인지라고 부르는, 즉흥연주(미리 적지 않고 그 자리에서 지어 내는 연주)의 단골 바탕이다.
- 피아노 몬티 알렉산더, 베이스 레이 브라운, 드럼 존 게린의 반주는 1988년에 새로 녹음했다. 알토만 옛 테이프에서 걸러 낸 것이라, 반주보다 색소폰의 결이 조금 더 거칠고 오래된 소리처럼 들린다.
- 같은 리듬 체인지 위에서 파커는 아주 짧은 음표들을 빠르게 쏟아 내다가 갑자기 쉼표를 둔다. 이 숨 고르기가 비밥 특유의 말투다.
III. 52번가의 새 음악
(뉴욕) 뉴욕으로 간 파커는 52번가 클럽들에서 연주하며 트럼펫 주자 디지 길레스피를 만난다. 길레스피는 새뮤얼 E. 라이트가 연기했다. 두 사람이 다듬은 빠르고 복잡한 음악은 비밥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길레스피가 순회공연 중이어서, 영화 속 그의 트럼펫은 그를 따르던 존 패디스가 대신 녹음했다. (버스터) 키스 데이비드가 연기한 색소폰 주자 버스터 프랭클린은 지어낸 인물이다. 파커가 따르던 선배 버스터 스미스를 바탕으로 했다. 영화는 이 인물의 눈을 빌려, 파커의 음악이 동료 연주자들에게 얼마나 낯설고 두려운 것이었는지를 보여 준다. (챈) 같은 시기에 파커는 무용수 챈에게 마음을 둔다. 다이앤 비노라가 연기한 챈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고 시카고로 떠난다. 그녀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진 채 돌아오자 파커는 로스앤젤레스로 간다. 영화가 챈의 회고록에 기댄 만큼, 파커의 삶을 그녀의 시선으로 보는 대목이 많다. (서부) 로스앤젤레스에서 길레스피의 공연 계약이 끊기고, 파커는 술과 약물에 더 깊이 빠진다. 결국 여덟 달 동안 병원에 머문다. 실제 파커가 이 무렵 무너지기 직전의 몸으로 녹음한 「러버 맨」은 고통이 그대로 담긴 녹음으로 유명하다. 영화는 이 곡의 일부를 찰스 맥퍼슨의 알토로 바꿔 넣었다. 로젠바움은 그 덕에 듣기는 편해졌지만 원래 녹음의 비극은 옅어졌다고 썼다.
52번가에서 비밥이 태어나는 대목과 이어지는 곡이다. 1945년에 녹음된 파커의 대표작으로, 새 음악이 무엇인지 단번에 들려준다.
- 코코는 스탠더드 「체로키」의 화음 순서 위에 전혀 다른 선율을 얹어 만든 곡이다. 남의 곡 화음을 빌려 새 선율을 쓰는 이런 방식을 콘트라팩트(대체 선율)라 한다.
- 따라 부르기도 어려운 빠른 속도가 이 곡의 핵심이다. 춤을 위한 스윙에서 듣기 위한 재즈로 넘어가는 순간을 보여 준다.
- 사운드트랙에서는 존 패디스의 트럼펫, 월터 데이비스 주니어의 피아노, 론 카터의 베이스가 새로 반주했다. 로젠바움은 원래 녹음에 있던 맥스 로치의 드럼 독주 대목이 이 리믹스에서 다른 연주로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 원래 녹음과 나란히 들어 보면 드럼 소리가 얼마나 다른지 확인할 수 있다. 새 녹음 방식에 대한 찬반이 가장 뚜렷하게 갈리는 곡이다.
IV. 버드랜드와 파리
(회복) 병원에서 나와 약을 끊은 파커는 챈의 주선으로 다시 뉴욕 무대에 선다. 챈의 어린 딸을 만나며 두 사람 사이에도 다시 길이 열린다. 영화에서 가장 밝은 시기다. (버드랜드) 친구 브루스터가 파커의 별명을 딴 클럽 버드랜드를 연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캔자스시티에서 쫓겨나듯 무대를 내려왔던 청년이 이제 클럽의 이름이 되었다. 처음 심벌이 날아가던 장면과 짝을 이루는 대목이다. (파리) 파커는 파리로 건너가 본다. 그곳의 재즈 청중은 그를 밤무대 연주자가 아니라 예술가로 맞는다. 영화는 대서양 건너에서 받은 존경과, 돌아와야 할 미국의 냉랭한 현실을 나란히 놓는다. 파커는 다시 돌아와 버드랜드 무대에 선다. (현악) 실제 파커도 이 무렵 현악 오케스트라와 함께 녹음해 「파커 위드 스트링스」 음반을 냈다. 스트라빈스키를 동경했던 그가 클래식 쪽으로 내민 손이었다. 니하우스는 이 시기의 공연 녹음 가운데 「로라」와 「4월의 파리」에 현악 편곡을 새로 써 넣었다. 로젠바움은 새 편곡이 원래 편곡의 지나친 달콤함은 덜고 파커 연주의 감정은 살렸다고 평했다. 사운드트랙에서 현악이 들어간 곡은 이 둘뿐이라, 영화 속 짧은 평온의 시간을 대표하는 소리가 되었다.
버드랜드와 파리로 이어지는 가장 밝은 시기에 놓인 곡이다. 니하우스가 현악 편곡을 새로 써 넣은 두 곡 가운데 하나다.
- 원곡은 데이비드 락신이 1944년 영화 「로라」를 위해 쓴 주제곡이다. 영화음악에서 태어난 선율을 재즈 연주자가 다시 영화 속으로 들고 온 셈이다.
- 파커는 현악과 함께 연주할 때 선율을 크게 비틀지 않고 노래하듯 분다. 그러다 끝머리에서 장식음을 흩뿌리는데, 빠른 비밥과는 다른 서정적인 얼굴이다.
- 로젠바움은 니하우스의 새 현악 편곡이 원래 편곡의 지나친 달콤함은 덜고 감정은 살렸다고 평했다. 현악이 파커와 같은 화음 순서를 따라 받쳐 주는 방식이다.
- 피아노 배리 해리스와 베이스 척 버고퍼가 리듬을 맡았다. 현악이 들어가도 재즈의 박자감이 사라지지 않는지 귀 기울여 볼 만하다.
파커가 파리에서 예술가로 환대받는 대목과 제목부터 겹치는 곡이다. 「로라」와 함께 현악을 새로 입힌 곡이다.
- 버넌 듀크가 1932년 브로드웨이 무대를 위해 쓴 스탠더드(많은 연주자가 되풀이해 연주해 온 표준 레퍼토리)다. 파리의 봄을 그리워하는 노래다.
- 파커가 현악 오케스트라와 녹음하던 시기의 레퍼토리였다. 클래식에 다가가고 싶었던 그의 바람이 곡 선택에서도 드러난다.
- 현악이 길게 끄는 화음 위로 알토가 짧은 장식 악구를 끼워 넣는다. 그 대비가 두 세계의 만남처럼 들린다.
- 사운드트랙에서 가장 부드러운 곡이라, 전성기의 짧은 평온을 상징하는 소리로 기억된다.
V. 앨비노 레드
(로드니) 로스앤젤레스에서 파커의 팬이라며 다가왔던 유대계 백인 트럼펫 주자 레드 로드니가 다시 등장한다. 마이클 젤니커가 연기했다. 파커는 그를 남부 순회공연에 데려간다. 흑인과 백인이 섞인 악단이 남부에서 겪을 일을 걱정하자, 악단은 로드니를 앨비노 레드라는 블루스 가수로 꾸며 광고한다. 앨비노는 피부색이 흰 흑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영화에서 드물게 웃음이 나는 대목이다. (경고) 웃음은 오래가지 않는다. 파커는 로드니가 헤로인에 손댄 것을 알아채고 그만두라고 다그친다. 자신은 끊지 못한 것을 후배에게는 끊으라고 하는 그 장면에서, 영화는 파커가 쥐고 있던 자기 인식의 무게를 보여 준다. (소리) 실제 레드 로드니는 이 영화의 녹음에 참여했다. 사운드트랙의 「나우즈 더 타임」에서 트럼펫을 분 사람이 바로 그다. 화면 속의 젊은 로드니 곁에서 예순이 넘은 진짜 로드니의 소리가 울린 셈이다. (체포) 버드랜드가 문을 연 뒤 로드니는 마약 소지로 체포된다. 파커도 체포되어 보호관찰을 받고, 뉴욕의 클럽에서 연주하려면 필요한 허가증인 카바레 카드를 잃는다. 연주자에게서 무대를 빼앗는 이 제도가 영화 후반 내내 그늘을 드리운다. (쿨 블루스) 로젠바움의 계산으로는 영화가 시작되고 90분이 넘게 지나서야 파커의 솔로 하나가 처음부터 끝까지 끊기지 않고 흐른다. 그 곡이 「쿨 블루스」였다. 그 전까지는 음악이 줄곧 대사와 장면 전환에 잘려 나가므로, 이 곡은 관객이 처음으로 파커의 연주를 온전히 듣는 순간이 된다.
레드 로드니와의 순회공연 대목과 이어진다. 사운드트랙에서 실제 로드니가 트럼펫을 분 곡이다.
- 로드니는 젊은 시절 파커의 악단에서 활동한 실제 트럼펫 주자다. 영화 속 자신의 젊은 시절 이야기가 흐르는 동안 육십 대의 본인이 그 음악을 연주한 셈이다.
- 곡은 열두 마디마다 같은 화음 순서가 돌아오는 12마디 블루스다. 테마는 짧은 악구를 되풀이하는 리프(반복 악구)로 되어 있어 한 번만 들어도 귀에 남는다.
- 파커 다음 세대의 알토 주자 찰스 맥퍼슨도 이 곡에 참여했다. 맥퍼슨은 영화에서 「러버 맨」의 일부를 대신 불기도 했다.
- 1945년 파커의 첫 리더 녹음 가운데 하나로, 비밥이 블루스라는 뿌리를 버리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곡이다.
로젠바움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끊기지 않고 흐르는 파커의 솔로로 꼽은 곡이다. 순회공연과 체포로 이어지는 영화 중반을 넘어서야 나온다.
- 영화는 그때까지 음악을 대사와 장면 전환으로 자주 잘라 왔다. 그래서 이 곡은 관객이 처음으로 파커의 연주를 온전히 듣는 순간이 된다.
- 활기차고 날카롭게 내지르는 연주로 들린다. 높은 음역에서 터져 나오는 알토가 특히 인상적이다.
- 두 분 남짓의 짧은 곡이지만 12마디 블루스의 틀 안에서 몇 개의 짧은 동기(짧은 음형)를 이리저리 바꿔 가며 쌓아 올린다.
- 피아노 월터 데이비스 주니어, 베이스 론 카터가 새 반주를 맡았다.
VI. 끊어진 소리
(가정) 챈과 그녀의 딸은 파커의 집으로 들어오고, 두 사람 사이에 아이 둘이 태어난다. 그러나 카바레 카드를 잃은 파커는 뉴욕에서 연주할 수 없어 로스앤젤레스로 떠난다. 그곳에서 길레스피는 파커가 다시 약에 손대고 있음을 알아챈다. (상실) 그러던 중 어린 딸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온다. 장례를 치르러 돌아온 파커는 깊은 절망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지만 살아남는다. 영화는 이 대목을 소리 높여 그리지 않는다. 음악이 물러난 자리에 전화선 너머의 침묵과 텅 빈 방이 남는다. (병원) 챈은 그를 병원에 입원시킨다. 의사들이 전기충격 치료를 권하자, 챈은 그것이 파커의 창조력을 망가뜨릴까 두려워한다. 그의 음악을 지키는 일과 그의 목숨을 지키는 일이 같은 길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챈의 망설임으로 보여 준다. 퇴원한 뒤 챈은 가족을 데리고 뉴욕 북부로 옮긴다. (대비) 이 장의 어둠은 앞 장들에서 쌓아 온 음악 덕분에 더 깊어진다. 영화는 시간을 오가는 구조를 쓰기 때문에 관객은 이미 버드랜드 무대의 열기와 현악 위로 흐르던 「로라」를 들었다. 그 소리를 기억하는 귀로 보는 침묵의 장면들은, 연주가 멈춘다는 것이 이 사람에게 무엇을 뜻하는지를 말없이 알려 준다. 날아가는 심벌의 영상이 다시 끼어드는 것도 이런 순간이다.
VII. 스트립 클럽이 된 거리
(귀환) 브루스터가 마련해 준 오디션을 보러 뉴욕으로 돌아온 파커는 52번가를 걷는다. 비밥이 태어났던 재즈 클럽들은 스트립 클럽으로 바뀌어 있다. 한 시대의 음악을 만든 거리가 그 음악을 잊어버린 모습이다. 앞서 길레스피와 함께 연주하던 장면과 겹쳐 보면 피츠제럴드의 문장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프게 드러난다. (마지막) 파커는 오디션에 가지 않고 재즈 후원자 니카 남작부인의 아파트를 찾는다. 그 뒤의 장면들은 여기 적지 않겠다. 다만 영화가 처음부터 이 마지막 몇 달을 중심에 놓고 짜였다는 것, 그래서 앞서 오간 모든 시절이 결국 이 방으로 모여든다는 것만 말해 둔다. 소리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는지 귀를 기울여 볼 만하다. (여운) 영화가 끝나도 남는 것은 이 작품의 녹음 방식이 품은 역설이다. 사람은 떠났어도 그의 즉흥연주는 테이프에 남아, 수십 년 뒤 다른 연주자들과 한 무대에 섰다. 사운드트랙 음반이 느린 블루스 「파커스 무드」로 끝나는 것도 그런 마무리처럼 들린다. (평가) 휘태커는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이스트우드는 골든글로브 감독상을 받았다. 흥행은 미국에서 이백만 달러 남짓에 그쳤다. 하지만 영화가 나온 뒤 파커의 원래 음반이 더 팔렸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영화를 보고 원래 녹음을 찾아 들은 관객이 적지 않았다는 뜻이다.
사운드트랙 음반의 마지막 곡이다. 느린 블루스 하나로 이야기의 여운을 정리한다.
- 곡은 반주 없이 알토가 혼자 부르짖듯 던지는 짧은 악구로 시작한다. 그 첫 소리만으로도 곡의 정서가 정해진다.
- 빠른 비밥과 달리 느린 블루스다. 음과 음 사이의 공백, 음을 살짝 끌어올리거나 내리는 굴림이 감정을 실어 나른다.
- 1948년 원래 녹음은 훗날 재즈 가수 킹 플레저가 즉흥 솔로에 가사를 붙여 노래하는 보컬리즈로 다시 불러 널리 알려졌다. 악기로 한 즉흥연주가 노래로 옮겨질 만큼 말하듯 흘러간다는 뜻이다.
- 이 음반에서는 배리 해리스와 척 버고퍼가 반주했다. 원래 녹음보다 절제된 반주라 알토의 목소리가 더 홀로 남은 것처럼 들린다.
덜 알려진 이야기
판권이 옮겨 간 과정은 크레디트에 남지 않았다. 각본가 올리안스키는 원래 리처드 프라이어를 주인공으로 한 파커 전기 영화를 구상했고, 기획은 컬럼비아 영화사에 있었다. 이스트우드가 이 기획을 맡게 된 것은 워너브러더스가 판권을 컬럼비아의 다른 영화 「리벤지」와 맞바꾸면서였다. 이런 이야기는 업계지 기록에만 남아 있다. 심벌 일화는 재즈계에서 오래 전해져 온 이야기다. 전해지는 내용에서도 심벌은 파커를 겨눈 것이 아니라 발치에 떨어졌고, 무대에서 내려가라는 신호였다. 로젠바움은 실제로는 파커가 조성을 벗어나 길을 잃은 것인데, 영화 속 십대 파커는 오히려 너무 단순하게, 그것도 아직 생겨나지 않은 비밥처럼 연주한다고 지적했다. 영화가 실제와 다르게 그린 대목도 있다. 영화 속 파커는 캔자스시티에 묻히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가 결국 캔자스시티에 묻혔다는 사실은 나오지 않는다. 챈은 파커가 유럽으로 옮겨 가고 싶어 했다고 증언했는데, 영화의 파커는 미국에 남겠다며 그 길을 거절한다. 이런 차이는 전기 연구자들의 각주에서나 다뤄진다. 솔로만 떼어 내 새 반주를 입히는 방식은 개봉 당시 재즈계에서 논쟁거리였다. 평론가 게리 기딘스는 영화 안에서는 훌륭한 착상이라고 했지만, 음반으로 내는 데는 망설였다. 그는 원래 녹음의 잡음은 개의치 않는다고 덧붙였다. 파커와 함께 연주한 적 있는 트럼펫 주자 허브 포머로이는 솔로를 원래 맥락에서 떼어 내는 것 자체가 진실하지 않다고 강하게 반대했다. 그런데도 영화가 나온 뒤 파커의 원래 음반이 더 팔렸다는 보도가 나왔다. 새 반주가 오히려 옛 녹음을 찾게 만든 셈이다.
용어 노트 📚🔎
비밥
(말뜻) 빠른 악구를 입으로 흉내 낼 때 내던 소리 '비-밥'에서 나온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이름부터 이 음악이 얼마나 빠르고 툭툭 끊기는지를 말해 준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1940년대 뉴욕 52번가에서 파커와 길레스피가 다듬은 재즈다. 춤추기 좋은 큰 악단의 스윙과 달리, 작은 악단이 아주 빠른 속도로 복잡한 화음 위에서 즉흥연주를 펼친다. 춤보다 듣기 위한 재즈가 여기서 시작됐다. 줄넘기를 생각해 보면 쉽다. 모두 함께 박자를 맞춰 넘던 긴 줄넘기가 스윙이라면, 혼자 이단뛰기와 엇걸어뛰기를 섞어 기술을 뽐내는 것이 비밥에 가깝다.
즉흥연주(임프로비제이션)
(말뜻) 즉흥(卽興)은 그 자리에서(卽) 일어나는 흥(興)이라는 뜻이다. 영어 improvisation은 라틴어 improvisus에서 왔는데, 미리 보지 않은 것이라는 뜻이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악보에 적힌 대로가 아니라, 정해진 화음 순서를 지키면서 연주자가 그 자리에서 선율을 지어 내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곡도 연주할 때마다 달라진다. 「버드」가 스튜디오 녹음보다 챈의 공연 테이프를 찾은 것도 파커의 긴 즉흥연주를 담기 위해서였다. 친구들과 이어 말하기 놀이를 할 때 주제는 정해져 있어도 문장은 그때그때 지어 내는 것과 같다. (다른 데서는) 연극에서는 대본 없이 즉석에서 장면을 만들어 가는 연기를 말한다.
코드 진행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코드(화음)가 어떤 순서로 바뀌어 가는지를 적은 지도다. 재즈 연주자들은 이 순서를 외워 두고 그 위에서 즉흥연주를 한다. 영어로는 흔히 체인지라고 부르며, 캔자스시티 장면의 십대 파커는 바로 이것을 놓쳐 길을 잃는다. 반 친구들과 돌아가며 이야기를 이어 갈 때 시작·위기·해결이라는 순서만 정해 두는 것과 비슷하다. 순서를 놓치면 이야기가 엉뚱한 데로 흘러간다. (다른 데서는) 코드라는 말은 컴퓨터에서는 프로그램 명령문을 뜻하므로 전혀 다른 말이다.
리듬 섹션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재즈 악단에서 피아노·베이스·드럼처럼 박자와 화음의 바탕을 깔아 주는 악기들을 묶어 부르는 말이다. 「버드」의 사운드트랙은 파커의 알토는 그대로 두고 이 리듬 섹션을 모두 1988년의 연주자들로 바꿨다. 축구로 치면 공격수가 마음껏 달릴 수 있게 뒤에서 받쳐 주는 수비수와 미드필더다. 공격수가 같아도 뒤를 받치는 선수들이 바뀌면 경기의 느낌이 달라진다.
12마디 블루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열두 마디를 한 바퀴로 정해진 화음 순서가 되풀이되는 블루스의 기본 틀이다. 「나우즈 더 타임」과 「쿨 블루스」, 「파커스 무드」가 모두 이 틀을 따른다. 틀은 단순하지만 그 안에서 무엇을 연주하느냐가 연주자의 실력이다. 운동장 트랙을 생각하면 된다. 매번 같은 한 바퀴를 돌아도 어떻게 달리느냐는 달리는 사람마다 다르다.
콘트라팩트(대체 선율)
(말뜻) 라틴어 contrafactum에서 온 말로, 원래는 중세에 이미 있던 노래의 가락에 새 가사를 붙인 곡을 가리켰다. 재즈에서는 거꾸로 남의 곡 화음에 새 선율을 붙이는 뜻으로 쓴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이미 있는 곡의 코드 진행만 빌려 와 그 위에 완전히 새로운 선율을 얹어 만든 곡이다. 비밥 연주자들이 즐겨 썼다. 파커의 「코코」는 「체로키」의 화음을 빌렸고, 「레스터 리프스 인」은 「아이 갓 리듬」의 화음을 바탕으로 한다. 같은 반죽 틀에 다른 재료를 넣어 전혀 다른 쿠키를 굽는 것과 비슷하다.
스탠더드
(말뜻) 영어 standard는 표준·기준이라는 뜻이다. 많은 사람이 기준처럼 익혀 두는 곡이라는 의미가 이름에 들어 있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나 영화 주제곡으로 태어나 수많은 재즈 연주자가 되풀이해 연주해 온 곡을 말한다. 「로라」는 영화 주제곡, 「4월의 파리」는 브로드웨이 곡에서 나와 스탠더드가 되었다. 학교 합창 대회에서 해마다 여러 반이 고르는 단골 곡과 같다. 곡은 같아도 반마다 부르는 맛이 다르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는 표준 규격이나 보통 수준을 가리킬 때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