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adeus
영화 전체가 한 사람의 고백으로 짜여 있고, 그 고백의 증거물로 남은 것이 모차르트의 음악이다.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만든 사람들 ⏳🌊
- 작곡가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영화의 모든 음악이 그의 원곡이고, 그 자신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 지휘네빌 마리너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를 이끌고 음악 전체를 지휘·감독했다.
- 감독밀로시 포르만
체코 출신 감독으로 프라하에서 영화를 찍어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다.
- 각본피터 셰퍼
원작 희곡을 쓰고 이를 직접 영화 각본으로 옮겨 아카데미 각색상을 받았다.
- 주연F. 머리 에이브러햄
살리에리를 연기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 주연톰 헐스
모차르트를 연기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I. 무대에서 스크린으로
(원작) 「아마데우스」는 피터 셰퍼가 런던 국립극장에 올린 희곡에서 시작했다. 늙은 궁정 작곡가 안토니오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질투한 끝에 그를 죽음으로 몰았다는 소문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사실을 기록한 극이 아니라 상상을 덧붙인 극이었고, 셰퍼는 직접 영화 각본까지 썼다. 감독은 체코 출신의 밀로시 포르만이 맡았다. (프라하) 포르만은 당시 공산권이던 프라하에서 약 일곱 달 동안 촬영했다. 18세기 거리가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1787년 「돈 조반니」가 초연된 에스타테스 극장에서 오페라 장면을 찍어, 모차르트가 실제로 지휘대에 섰던 공간이 화면에 그대로 담겼다. (마리너) 음악은 런던의 실내 관현악단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를 이끌던 지휘자 네빌 마리너가 맡았다. 그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한 음도 바꾸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수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새로 작곡한 영화음악이 없다. 화면이 음악을 따라가도록 편집했다. 다만 그 원칙이 끝까지 지켜지지는 않았다. 관악 세레나데 한 곡은 장면을 따라 중간에 끊기고, 극 초반 살리에리의 음악에는 마리너가 음 몇 개를 덧붙였다. (음반) 두 장짜리 사운드트랙은 클래식 음반으로는 드물게 대중 차트에 올랐고 그래미상 최우수 클래식 앨범을 받았다. 이 시리즈에서 다룬 「버드」가 재즈 음악가의 삶을 그의 음악으로 들려주었다면, 「아마데우스」는 한 음악가를 질투하던 사람의 눈으로 그 음악을 들려준다.
II. 고해의 밤
(비명) 영화는 눈 내리는 빈의 밤, 한 노인이 모차르트를 부르며 용서를 비는 비명으로 시작한다. 자살을 기도한 늙은 살리에리다. 그가 실려 나가는 순간 G단조 교향곡 제25번의 첫 악장이 터져 나온다. 첫 화음부터 음악은 이 이야기가 평온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린다. (정신병원) 정신병원에 갇힌 살리에리를 젊은 신부가 찾아온다. 고해를 들으러 온 신부에게 살리에리는 자기가 쓴 곡 몇 소절을 피아노로 쳐 보이지만 신부는 알아듣지 못한다. 그런데 살리에리가 다른 선율을 치기 시작하자 신부의 얼굴이 밝아지며 따라 흥얼거린다. 모차르트의 곡이다. 이 짧은 장면이 영화의 질문을 미리 던진다. 누구의 음악이 남고 누구의 음악이 잊히는가. (서원) 살리에리의 회상은 이탈리아 레냐고에서 보낸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그는 신에게 자신을 음악으로 신의 영광을 노래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달라고 빌고, 그 대가로 순결과 근면과 겸손을 바치겠다고 약속한다. 같은 무렵 잘츠부르크의 어린 모차르트는 이미 유럽 궁정을 돌며 연주하고 있었다. 영화는 이 대비를 짧게 보여 주고 지나간다. (화자) 이 영화의 음악은 처음부터 끝까지 살리에리라는 화자를 거쳐 들린다. 관객은 모차르트의 음악을 처음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음악에 무너졌던 사람의 기억 속에서 다시 듣는다. 같은 곡이라도 살리에리에게는 은총이면서 동시에 형벌이었고, 영화의 음악은 그 두 감정을 함께 담는다.
늙은 살리에리의 비명과 함께 터져 나오는 첫 음악이다. 영화가 어떤 어조의 이야기인지 첫 화면에서 알려 준다.
- 시작부터 현악기가 박자의 약한 자리를 세게 끊어 치는 당김음(싱코페이션)으로 몰아쳐, 쫓기는 듯한 긴장을 만든다.
- 모차르트가 단조로 쓴 교향곡은 두 곡뿐이고, 그중 하나가 열일곱 살에 쓴 이 곡이다. 첫 곡으로 이 곡을 고른 것은 영화가 밝은 모차르트가 아닌 어두운 모차르트를 보여 주겠다는 선언처럼 들린다.
- 격렬한 합주 사이로 오보에가 혼자 가락을 내미는 대목이 있다. 혼란 속에서 들리는 개인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 음악이 장면을 따라가지 않고 장면이 음악의 박자에 맞춰 잘려 있다. 음악을 먼저 두고 편집했다는 이 영화의 원칙을 첫 장면부터 확인할 수 있다.
III. 악보 위의 신
(첫 만남) 빈의 궁정 작곡가가 된 살리에리는 대주교의 저택에서 모차르트를 처음 본다. 그가 상상해 온 천재는 바닥을 기어 다니며 약혼녀 콘스탄체와 상스러운 장난을 치는 청년이었다. 그런데 곧이어 그 청년이 쓴 관악 세레나데의 느린 악장이 울린다. 살리에리는 저음 악기들의 단순한 박동 위로 오보에 한 음이 길게 떠오르는 순간을 신의 목소리처럼 묘사한다. 이 장면의 대사는 영화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음악 해설로 꼽힌다. (궁정) 황제 요제프 2세 앞에서 모차르트는 독일어 오페라 「후궁 탈출」을 올린다. 화려한 터키풍 피날레가 끝난 뒤 황제가 음표가 너무 많다고 평하자, 모차르트는 필요한 만큼만 썼다고 받아친다. 이 오만함과 그 음악의 완벽함 사이의 간극이 살리에리를 괴롭힌다. (악보) 전환점은 콘스탄체가 남편 몰래 악보 뭉치를 들고 살리에리를 찾아오는 장면이다. 살리에리가 원본을 넘기는 동안 교향곡 제29번, 다단조 미사의 키리에, 신포니아 콘체르탄테가 차례로 흐른다. 그가 놀란 것은 악보에 고친 자국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었다. 머릿속에서 이미 완성된 음악을 받아 적은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배신) 악보가 바닥에 쏟아지는 순간 살리에리의 신앙도 함께 무너진다. 그는 벽의 십자가를 불 속에 던지고 신과 싸우겠다고 선언한다. 이때부터 그의 싸움은 모차르트 개인이 아니라 모차르트를 통해 말하는 신을 상대로 한 것이 된다.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음악을 처음 듣고 무너지는 장면이다.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음악 묘사 대사가 이 곡 위에 놓인다.
- 바순과 바셋호른(클라리넷보다 낮은 음을 내는 옛 클라리넷 계열 악기)이 같은 음형을 되풀이하며 바닥을 깔아 준다. 살리에리의 말처럼 낡은 손풍금의 숨소리처럼 들린다.
- 그 위로 오보에가 한 음을 길게 끌다 노래로 풀어지고, 곧 클라리넷이 이어받는다. 같은 가락을 악기들이 차례로 넘겨받는 모습이 대화처럼 들리는 것이 이 악장의 핵심이다.
- 열세 대의 관악기를 위한 곡이라 현악기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숨결로 내는 소리의 질감이 그대로 드러난다.
- 영화에서 이 곡은 살리에리가 방을 뛰쳐나가며 갑자기 끊긴다. 모차르트를 한 음도 바꾸지 않겠다던 마리너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대표적인 대목으로 자주 언급된다.
콘스탄체가 가져온 원본 악보를 살리에리가 넘겨보는 장면에 흐른다. 고친 자국 없는 악보 앞에서 그의 신앙이 무너진다.
- 합창이 낮고 무겁게 자비를 구하며 시작한 뒤, 가운데에서 소프라노 독창이 높이 솟아오른다. 모차르트가 아내 콘스탄체가 부를 것을 염두에 두고 쓴 파트로 알려져 있다.
- 콘스탄체가 이 음악을 들고 살리에리를 찾아왔다는 설정 때문에, 장면 속 여인과 곡 속 소프라노의 목소리가 겹쳐 들린다.
- 합창 성부가 차례로 같은 가락을 이어받으며 쌓아 올리는 방식은 바흐와 헨델의 옛 교회음악을 닮았다. 모차르트가 빈에서 이 선배들의 악보를 공부하던 시기의 흔적이다.
- 이 미사곡은 끝내 완성되지 않았다. 영화의 마지막을 이끄는 레퀴엠과 함께, 모차르트가 끝맺지 못한 두 교회음악이 이 영화의 처음과 끝을 받치고 있는 셈이다.
IV. 극장의 모차르트
(피가로) 모차르트는 궁정의 반대를 무릅쓰고 보마르셰의 희곡을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으로 만든다. 귀족을 풍자하는 내용 때문에 상연이 금지된 작품이었다. 궁정 사람들은 3막의 행진곡에 춤이 빠졌다고 트집을 잡고, 살리에리는 뒤에서 일을 꾸민다. 그러나 무대에 오른 4막 피날레 앞에서 살리에리는 다시 넋을 잃는다. 백작이 아내에게 용서를 구하고 아내가 그를 용서하는 대목에서, 그는 이 음악을 절대적인 용서처럼 들었다고 고백한다. (공연 횟수) 영화에서 「피가로의 결혼」은 몇 차례 공연한 뒤 무대에서 내려간다. 살리에리는 모두 아홉 번 상연되었다고 말하며, 이것을 자신이 거둔 작은 승리처럼 회고한다. 영화는 모차르트가 빈의 청중과 궁정에서 점점 멀어지는 과정을 이런 공연 기록으로 보여 준다. (아버지) 잘츠부르크에서 아버지 레오폴트가 세상을 떠난다. 아들의 재능을 길렀고 끝까지 아들을 꾸짖던 아버지였다. 그 뒤 극장에 「돈 조반니」가 오른다. 죽은 기사장의 석상이 저녁 식사에 찾아와 주인공을 지옥으로 끌고 가는 장면에서 무거운 단조 화음이 울릴 때, 살리에리는 그 무대 위에서 죽은 아버지가 아들을 꾸짖는 모습을 본다. (복선) 살리에리는 이 오페라를 들으며 모차르트의 상처를 알아챘다고 확신한다. 여기서 그가 앞으로 쓸 계략의 실마리가 생겨난다. 기사장 장면은 영화 후반을 미리 알리는 장면이 된다. 무대 위의 석상과 극장 밖에서 모차르트를 찾아올 검은 형체가 이 음악으로 이어진다.
모차르트를 방해하던 살리에리가 바로 이 대목에서 용서의 음악을 듣고 넋을 잃는다.
- 소란스러운 오해가 모두 풀린 뒤 백작이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한다. 이때 음악이 갑자기 느려지고 조용해진다. 빠르기의 급격한 변화가 장면의 무게를 바꾼다.
- 백작 부인이 부드럽게 답하면 다른 인물들이 하나씩 그 가락을 이어받아 커다란 합창처럼 부풀어 오른다. 여러 인물이 동시에 노래하는 앙상블 피날레가 오페라의 극적 장치임을 잘 보여 주는 대목이다.
- 살리에리가 이 음악을 절대적인 용서로 묘사하는 대목은 영화 전체의 주제와 이어진다. 용서를 구하는 사람은 정작 살리에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 엄숙한 순간은 길지 않고 곧 빠르고 들뜬 마무리로 넘어간다. 희극 오페라다운 이 전환은 웃음과 슬픔이 함께하는 영화의 모차르트상과도 닮았다.
아버지를 잃은 모차르트의 오페라에서 살리에리는 죽은 아버지의 그림자를 본다. 이 장면은 뒤에 이어질 그의 계략의 출발점이 된다.
- 이 장면의 첫 단조 화음은 오페라 서곡의 첫머리에서도 울린다. 관객은 이 장면이 처음부터 예고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 모차르트는 이 장면에서 트롬본을 쓴다. 당시 트롬본은 교회와 장례 음악에서 주로 쓰던 악기여서, 석상의 목소리가 저승에서 온 것처럼 들린다.
- 현악기가 음계를 오르내리며 불안하게 떠도는 음형은 땅이 흔들리는 듯한 효과를 낸다. 주인공을 삼키는 지옥의 입구가 소리로 열린다.
- 에스타테스 극장은 1787년에 이 오페라가 실제로 초연된 곳이다. 영화의 공연 장면은 바로 그 무대에서 촬영되었다.
V. 레퀴엠
(의뢰) 가면을 쓴 낯선 사람이 모차르트에게 장례 미사곡을 의뢰하고 선금을 놓고 간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몸까지 약해진 모차르트는 이 의뢰를 거절하지 못한다. 동시에 그는 서민 극장을 위한 징슈필 「마술피리」에도 매달린다. 영화는 웃음이 가득한 극장과 어두운 방의 진혼곡 원고를 번갈아 보여 주며 그의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드러낸다. (진혼곡) 레퀴엠의 음악은 이 대목부터 영화를 이끈다. 서주의 낮은 관악은 가면 쓴 사람의 발소리처럼 들리고, 분노의 날을 노래하는 합창은 몰아치는 마차 장면과 겹친다. 영화가 레퀴엠의 여러 악장을 순서대로 거의 끊지 않고 이어 쓰기 때문에, 관객은 미사곡 한 편을 따라가듯 이야기의 끝으로 다가간다. (받아쓰기) 절정은 병상의 모차르트가 불러 주는 음을 살리에리가 받아 적는 밤이다. 베이스, 테너, 트럼펫, �팀파니가 한 줄씩 쌓이고, 관객은 두 사람의 머릿속에서 그 소리가 조립되는 과정을 듣는다. 실제 역사에는 없었던 장면이지만, 작곡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이만큼 알기 쉽게 보여 준 영화 장면은 드물다는 평가를 받는다. (긴장) 이 장면에서 음악은 두 겹으로 작동한다. 경외와 질투로 평생 모차르트를 바라보던 살리에리가 처음으로 그의 음악을 받아 적는 사람이 된다. 이 협업이 어떤 결말로 이어지는지는 여기서 밝히지 않는다. 다만 이 밤의 음악이 이전까지와 다른 무게로 들린다는 점만은 짚어 둔다.
병상의 모차르트가 불러 주고 살리에리가 받아 적는 밤의 음악이다. 두 사람의 머릿속에서 조립되던 소리가 마침내 완성된 합창으로 울린다.
- 남성 합창이 저주받은 자들을 향해 거칠게 몰아치다가, 여성 합창이 아주 여리게 구원을 비는 가락으로 대답한다. 극단적인 대비가 이 악장의 핵심이다.
- 영화는 이 곡을 한꺼번에 들려주지 않는다. 성부를 하나씩 불러 주는 방식으로 쌓아 올리기 때문에, 관객은 합창과 관현악이 어떤 층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귀로 확인하게 된다.
- 받아쓰기 장면은 셰퍼와 포르만이 만들어 낸 허구다. 실제로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이어 완성한 사람은 그의 제자 쥐스마이어였다.
- 현악기가 끊임없이 밀어붙이는 짧은 리듬은 병상에서 쫓기듯 작곡하는 모차르트의 다급함을 겹쳐 놓은 것처럼 들린다.
VI. 비, 그리고 남은 음악
(장례) 비 내리는 빈의 거리로 초라한 장례 행렬이 지나간다. 이때 레퀴엠의 라크리모사가 흐른다. 눈물의 날을 노래하는 이 악장은 모차르트가 처음 여덟 마디만 남긴 곡이다. 그래서 영화의 이 대목은 작곡가가 끝내지 못한 음악으로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장면이 된다. 대사는 거의 없고 화면은 음악에 맡겨진다. (시간) 회상이 끝나면 영화는 다시 노년의 살리에리가 있는 병원으로 돌아온다. 그동안 신부는 그의 긴 이야기를 들었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살리에리가 내리는 결론이 영화의 마지막 반전이자 그가 털어놓은 고백의 결론이다. 여기서는 그 내용을 밝히지 않는다. 다만 이야기 내내 모차르트의 음악을 혼자 들어 온 화자가 마지막에 그 음악 바깥의 사람들을 향해 돌아선다는 점만 말해 둔다. (웃음) 영화는 웃음소리 하나로 끝난다. 모차르트 특유의 높고 경박한 웃음이다. 이야기 내내 살리에리를 괴롭히던 그 웃음이 마지막에 다시 울린다. 그 뒤로 피아노 협주곡 제20번의 느린 악장이 이어진다. 소박한 피아노 선율로 시작하는 곡이어서, 앞선 레퀴엠의 무게와 뚜렷이 대비된다. (여운) 그래서 객석에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살리에리의 고백도 모차르트의 죽음도 아니다. 남는 것은 음악이다. 관객은 영화가 내내 던진 물음, 곧 누구의 음악이 남는가에 대한 답을 화면 밖에서 듣게 된다. 영화가 나온 뒤 이 사운드트랙으로 모차르트를 처음 들은 사람이 많았다는 사실도 이 결말과 무관하지 않다.
비 내리는 장례 행렬 위로 흐르는 곡이다. 모차르트가 여덟 마디만 남기고 끝내지 못한 음악이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한다.
- 현악기가 두 음씩 끊어 쉬며 내려오는 음형은 흐느낌을 흉내 낸 것으로 흔히 설명된다. 곡 제목 자체가 눈물이라는 뜻이다.
- 합창은 낮은 곳에서 출발해 한 음씩 끈질기게 올라가며 커진다. 슬픔이 차오르다 넘치는 모양을 소리로 그린 것처럼 들린다.
- 모차르트의 친필은 이 악장의 첫 여덟 마디에서 멈춘다. 그 뒤를 쥐스마이어가 이어 썼기 때문에, 이 곡을 들으면 작곡가의 손이 멈춘 자리를 짐작하며 듣게 된다.
- 영화는 이 장면에 대사를 거의 넣지 않았다. 음악이 장면의 모든 감정을 맡도록 비워 둔 것이다.
모차르트의 웃음소리 뒤에 이어지는 마지막 음악이다. 레퀴엠의 무게를 지나 소박한 피아노 선율로 영화를 닫는다.
- 피아노 혼자 아무 꾸밈 없이 노래하듯 가락을 내놓고 관현악이 그것을 받아 준다. 독주자와 관현악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협주곡의 기본 성격이 잘 드러난다.
- 평온하게 흐르던 곡이 가운데에서 갑자기 단조로 바뀌며 피아노가 빠르게 휘몰아친다. 같은 곡 안에서 밝음과 어둠이 뒤바뀌는 이 구성은 영화 속 모차르트의 두 얼굴과 닮았다.
- 사운드트랙에서 이 곡의 독주는 영국 피아니스트 이모겐 쿠퍼가 맡았다.
- 베토벤이 아낀 협주곡으로 알려져 있고, 그는 이 곡의 첫 악장에 들어갈 즉흥 연주 부분(카덴차)을 직접 써 남겼다.
덜 알려진 이야기
영화는 두 사람을 원수로 그렸지만,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는 한 곡을 함께 쓴 적이 있다. 1785년 가수 낸시 스토라체가 목소리를 되찾은 것을 축하하는 칸타타 「오펠리아의 회복을 위하여」다. 이 곡은 오랫동안 악보가 사라진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다 2015년 음악학자 티모 유코 헤르만이 프라하 체코 음악박물관 소장품에서 인쇄본을 찾아냈다. 기록이 너무 늦게 나온 탓에, 그 전까지 두 사람의 관계는 소문과 문학을 통해서만 알려져 있었다.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인 1791년 10월에 아내에게 쓴 편지도 남아 있다. 그는 살리에리와 가수 카테리나 카발리에리를 마차로 데려가 「마술피리」를 함께 봤다고 적었다. 살리에리가 서곡부터 마지막 합창까지 집중해서 들었고, 곡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1차 사료인 이 편지는 질투에 사로잡힌 살리에리라는 익숙한 이미지와 잘 맞지 않아 대중적으로는 거의 이야기되지 않는다. 살리에리 독살설은 모차르트가 죽은 뒤 빈에 퍼진 소문에서 나왔다. 이 소문이 굳어진 데에는 문학의 역할이 컸다. 푸시킨이 1830년에 쓴 짧은 극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를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오페라로 만들었고, 셰퍼의 희곡은 그 계보 끝에 있다. 정작 살리에리는 베토벤, 슈베르트, 리스트를 가르친 존경받는 교사였다. 그 사실은 오래도록 전설에 가려 있었다. 영화 속 가면 쓴 의뢰인에게도 실제 모델이 있다. 레퀴엠을 익명으로 주문한 사람은 프란츠 폰 발제크 백작이었다. 그는 세상을 떠난 아내를 추모하는 곡이 필요했고, 남의 곡을 사서 자기 이름으로 연주하곤 했다. 실제로 1793년에 이 곡을 자기 지휘로 올렸다. 셰퍼는 실제 의뢰인의 정체를 영화에서 바꿔 놓았다. 실제 사연은 영화보다 소박하지만, 그만큼 덜 알려졌다.
용어 노트 📚🔎
진혼곡(레퀴엠)
(말뜻) 진혼(鎭魂)은 죽은 이의 넋(魂)을 달래 가라앉힌다(鎭)는 뜻이다. 서양 이름 레퀴엠은 라틴어로 안식이라는 뜻인데, 이 미사가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라는 기도로 시작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죽은 사람을 위한 가톨릭 미사의 기도문에 곡을 붙인 음악이다. 입당송, 분노의 날, 눈물의 날처럼 정해진 순서의 여러 곡으로 이루어진다. 모차르트는 이 곡을 끝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고, 영화는 이 미완성의 사연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았다. 졸업식에서 정해진 순서대로 국민의례, 식사, 송사, 답사가 이어지듯, 레퀴엠도 기도문의 순서를 따라 곡이 차례로 이어진다.
교향곡
(말뜻) 교향(交響)은 소리가 서로 어울려(交) 울린다(響)는 뜻이다. 서양 이름 심포니도 그리스어로 함께 울린다는 말에서 왔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관현악단이 연주하도록 쓴, 보통 서너 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 큰 기악곡이다. 노래나 독주자 없이 악기들만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아마데우스」는 교향곡 제25번의 첫 악장으로 시작한다. 체육대회에서 반 전체가 하나의 응원을 만들 때 북, 박수, 구호가 각자 다른 일을 하면서도 한 덩어리로 들리는 것처럼, 교향곡도 여러 악기가 맡은 일을 모아 하나의 큰 소리를 만든다.
협주곡
(말뜻) 협주곡(協奏曲)은 함께(協) 연주하는(奏) 곡이라는 뜻이다. 서양 이름 콘체르토의 라틴어 뿌리 concertare 에는 겨루다라는 뜻도 있다. 독주자와 오케스트라가 겨루듯 주고받는 이 음악의 성격이 이름에 이미 들어 있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피아노나 바이올린 같은 독주 악기 하나 또는 몇 개가 관현악단과 짝을 이뤄 연주하는 곡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흐르는 피아노 협주곡 제20번처럼, 독주자가 가락을 내놓으면 관현악이 받아 주고 다시 돌려준다. 수업 시간에 한 학생이 발표하면 반 전체가 호응하고, 그 반응을 받아 발표가 다시 이어지는 모습과 비슷하다.
단조
(말뜻) 단(短)은 짧다는 뜻이다. 음계의 셋째 음이 장조보다 반음 낮아 음 사이의 간격이 짧아진 데서 붙은 이름이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음악을 이루는 음계의 한 종류로, 대개 어둡고 슬프거나 긴장된 느낌을 준다. 밝은 느낌의 장조와 짝을 이룬다. 「아마데우스」는 G단조 교향곡으로 시작해 D단조 레퀴엠으로 절정에 이르는데, 두 곡 모두 모차르트 음악의 어두운 얼굴을 보여 준다. 생일 축하 노래를 단조로 바꿔 부르면 갑자기 쓸쓸한 노래처럼 들리는데, 바로 그 차이가 장조와 단조의 차이다.
앙상블 피날레
(말뜻) 앙상블은 프랑스어로 함께, 피날레는 이탈리아어로 마지막이라는 뜻이다. 둘을 합치면 함께 부르는 마지막 장면이 된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오페라의 한 막이 끝날 때 여러 인물이 무대에 모여 각자의 감정을 동시에 노래하는 큰 장면이다. 사건이 얽히고 풀리는 과정을 노래로 한꺼번에 처리한다. 「피가로의 결혼」 4막의 끝이 대표적인 예다. 학급 회의가 끝날 때 모두가 각자 한마디씩 하다가 결국 한목소리로 박수를 치는 것처럼, 서로 다른 목소리가 마지막에 하나로 모인다. (다른 데서는) 피날레는 운동 경기나 축제의 마지막 순서를 가리킬 때도 흔히 쓴다.
징슈필
(말뜻) 독일어 징슈필(Singspiel)은 노래하다(singen)와 놀이·연극(Spiel)을 합친 말로, 노래가 있는 연극이라는 뜻이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노래 사이사이에 대사를 말로 주고받는 독일어 오페라다.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로만 이어지는 이탈리아 오페라와 달리 서민도 쉽게 즐길 수 있었다. 영화 속 「후궁 탈출」과 「마술피리」가 여기에 속한다. 오늘날 뮤지컬이 노래와 대사를 번갈아 쓰는 것과 같은 방식이어서, 학예회 연극에서 대사를 하다가 노래를 부르고 다시 대사로 돌아오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당김음(싱코페이션)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원래 약하게 연주해야 할 박을 일부러 세게 연주해 리듬의 무게 중심을 옮기는 기법이다. 듣는 사람은 박자가 앞으로 쏠리는 듯한 긴장을 느낀다. 「아마데우스」 첫 장면의 교향곡 제25번이 바로 이 기법으로 시작해 쫓기는 듯한 느낌을 준다. 줄넘기를 할 때 박자를 일부러 반 박 당겨 뛰면 몸이 앞으로 쏠리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당김음이 음악에서 그런 효과를 낸다. (다른 데서는) 언어학에서 싱코페이션은 단어 가운데 소리가 빠져 줄어드는 현상을 가리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