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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lfgang Amadeus Mozart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1756–1791)

서른다섯 해 동안 신동에서 거장으로, 궁정의 하인에서 자유음악가로 살다 간 사람.

한눈에 보기 🔭💭

1. 뿌리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출생아버지의 조기교육누나 난네를2. 신동유럽 순회공연요한 크리스티안 바흐죽을 고비 병치레3. 상실파리서 모친 별세알로이지아 실연소나타 K.3104. 독립콜로레도와 결별콘스탄체와 결혼하이든과 우정5. 정점피가로의 결혼돈 조반니마술피리6. 말년빚과 궁핍레퀴엠 미완성서른다섯 죽음모차르트1756–1791잘츠부르크의 신동에서 빈의 자유음악가로 살다 …
삶의 여정 🧭🗺️
N영국프랑스체코오스트리아잘츠부르크1756–1781런던1764–1765파리17781781–1791프라하1786–1791

곁의 사람들 ⏳🌊

  • 스승
    레오폴트 모차르트
    아버지이자 첫 스승으로 그의 재능을 발견하고 유럽에 알렸다.
  • 가족
    안나 마리아 모차르트
    어머니로서 유럽 순회와 파리 여행에 동행했고,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 영향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
    런던에서 만난 벗으로, 밝고 노래하는 갈랑 양식을 어린 모차르트에게 물려주었다.
  • 우정
    요제프 하이든
    빈에서 깊은 우정을 나눈 동료로, 서로의 재능을 진심으로 존경했다.
  • 가족
    콘스탄체 베버
    아내로서 여섯 자녀를 낳았고, 그의 사후 유고와 명성을 지켜냈다.
  • 경쟁
    안토니오 살리에리
    궁정악장 자리를 두고 경쟁했다고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서로의 음악을 인정한 사이였다.

I. 잘츠부르크의 신동 · 1756–1763 (0–7세)

(출생) 1756년 1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 대주교 궁정의 부악장이자 바이올린 교본을 쓴 음악 이론가였고, 어머니 안나 마리아는 잘츠부르크 인근 상트길겐 출신이었다. 부부는 일곱 자녀를 낳았으나 다섯을 잃고 누나 마리아 안나(애칭 난네를)와 막내 볼프강만 살아남았다. (교육) 레오폴트는 딸의 재능을 먼저 알아보고 건반을 가르치다가, 서너 살 무렵 누나의 연습을 지켜보며 스스로 음을 짚어내는 아들에게서 더 큰 재능을 발견했다. 그는 궁정 일을 줄여가며 아들 교육에 매달렸고, 다섯 살에 미뉴에트를 작곡한 아이를 데리고 유럽 순회를 계획했다. (기록) 어린 볼프강은 절대음감과 즉흥연주 능력으로 궁정마다 화제를 모았다. 눈을 가리고 건반을 치거나 낯선 곡을 한 번 듣고 재현하는 모습은 당대인들에게 기적처럼 받아들여졌지만, 동시에 아버지가 자식을 서커스처럼 전시한다는 뒷말도 따라다녔다.

II. 유럽 순회와 신동의 대가 · 1763–1769 (7–13세)

(순회) 1763년부터 레오폴트는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뮌헨, 파리, 런던, 헤이그를 도는 대장정에 나섰다. 마차 여행은 몇 해에 걸쳐 이어졌고, 프랑스와 영국 궁정에서 연주하며 가족의 명성과 수입을 동시에 쌓았다. (바흐) 런던에서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막내아들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를 만났다. 그는 어린 볼프강을 무릎에 앉히고 함께 건반을 치며 우정을 나누었고, 밝고 노래하는 갈랑 양식의 선율은 이후 볼프강의 교향곡과 협주곡에 깊이 스며들었다. (대가) 순회의 대가는 혹독했다. 네덜란드에서 볼프강은 장티푸스로 추정되는 병으로 몇 주간 사경을 헤맸고, 빈에서는 남매가 나란히 천연두를 앓아 한동안 시력마저 흐려졌다. 자식을 앞세워 명성을 좇던 아버지에 대한 평가는 지금도 엇갈린다.

III. 이탈리아와 잘츠부르크의 굴레 · 1769–1777 (13–21세)

(이탈리아) 1769년부터 세 차례, 이번에는 아버지와 단둘이 이탈리아를 여행했다. 볼로냐에서는 대위법의 권위자 파드레 마르티니에게 배우고 필하모니 아카데미 회원으로 인정받았으며, 로마 시스티나 성당에서는 외부 유출이 금지된 알레그리의 '미제레레'를 단 두 번 듣고 악보로 옮겨 적어 화제가 되었다. (콜로레도) 1772년 잘츠부르크의 새 대주교 콜로레도가 부임하며 상황이 바뀌었다. 전임자와 달리 콜로레도는 음악가를 하인처럼 대했고, 볼프강은 궁정 악장으로 급여를 받으면서도 늘 자신을 예속된 존재로 느꼈다. 이 무렵 쓴 교향곡 25번 사단조는 소년다운 명랑함 대신 격정과 반항의 기운을 처음으로 드러낸다. (반항) 편지에서 그는 대주교를 향한 분노를 감추지 않았고, 스스로를 예술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처지에 자주 좌절했다. 이 억눌린 시기의 경험은 훗날 빈에서 후원자 없이 홀로 서겠다는 결심의 밑거름이 되었다.

교향곡 25번 사단조 (K.183)1773 (17세)

콜로레도 치하의 억눌린 잘츠부르크 시절, 소년다운 명랑함 대신 처음으로 격정을 드러낸 곡이다.

  • 1악장 도입부, 여덟 개의 프렌치 호른이 만드는 다급한 당김음(싱코페이션) 리듬은 이전 교향곡에서 볼 수 없던 긴장감을 만든다.
  • 격정과 갈등을 앞세우는 이런 사단조 계열 곡들은 훗날 '질풍노도(슈투름 운트 드랑)' 양식이라 불렸고, 이 곡은 그 대표작으로 꼽힌다.
  • 영화 '아마데우스' 오프닝에 쓰이며 널리 알려졌는데, 실제로는 열일곱 살 소년의 곡이라는 점이 연주자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된다.
  • 2악장은 약음기를 낀 현악기가 속삭이듯 이어지는데, 격정 다음의 정적을 대비시키는 지점으로 들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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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어머니의 죽음과 실연 · 1777–1779 (21–23세)

(출발) 1777년 레오폴트는 자신은 잘츠부르크에 남고, 어머니 안나 마리아가 아들과 동행해 새 일자리를 구하러 떠나게 했다. 만하임에서 모자는 유럽에서 손꼽히던 관현악단을 만났고, 볼프강은 그곳 소프라노 알로이지아 베버와 사랑에 빠져 그를 위한 아리아를 쓰며 이탈리아로 데려가겠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질책) 소식을 들은 레오폴트는 격노한 편지를 보내 파리로 갈 것을 명령했다. 아들은 마지못해 따랐고, 결과적으로 이 결정이 비극을 불렀다. (죽음) 1778년 7월, 파리에서 어머니가 갑작스러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볼프강은 아버지에게 충격을 완화하려 친구의 편지를 앞세운 뒤에야 부고를 알렸다. 그해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8번 가단조는 그의 몇 안 되는 단조 소나타 중 하나로, 격렬한 1악장과 애도하듯 가라앉은 종악장에 상실의 감정이 짙게 배어 있다. (실연) 돌아오는 길에 다시 만난 알로이지아는 이미 마음이 식어 있었다. 사랑과 어머니를 한꺼번에 잃은 스물두 살의 청년은 무거운 마음으로 잘츠부르크의 굴레 안으로 돌아가야 했다.

피아노 소나타 8번 가단조 (K.310)1778 (22세)

파리에서 어머니를 잃은 해에 쓴 곡으로, 그의 몇 안 되는 단조 피아노 소나타 중 하나다.

  • 1악장 첫 마디부터 왼손이 두드리듯 반복하는 화음은 심장 박동처럼 불안하게 들린다는 평이 많다.
  • 발전부에서 오른손이 빠르게 오르내리는 대목은 손가락이 꼬이기 쉬운 난코스로, 연주자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다.
  • 2악장은 노래하듯 잔잔하다가 중간에 갑자기 격렬한 단조로 돌변하는데, 이 급변을 슬픔이 북받치는 순간으로 해석하는 연주가 많다.
  • 3악장 종결부는 몰아치듯 빠르게 끝나, 애도보다는 체념에 가까운 인상을 남긴다는 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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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결별과 결혼 · 1780–1783 (24–27세)

(이도메네오) 1781년 뮌헨에서 오페라 '이도메네오'가 성공을 거두며 그의 극음악적 재능이 만개했다. 그러나 대주교는 그를 빈으로 소환해 하인, 요리사와 같은 자리에 앉혔고, 참다못한 볼프강은 사임을 요구하다 시종장 아르코 백작에게 발길질을 당하며 쫓겨나듯 궁정을 떠났다. (자립) 스물다섯의 나이에 처음으로 아버지도 대주교도 없이 빈에서 홀로 생계를 꾸리게 되었다. 그는 옛 연인 알로이지아의 집, 즉 베버 가족의 하숙집에 머물렀는데 알로이지아는 이미 결혼한 뒤였고, 대신 그 동생 콘스탄체와 가까워졌다. (결혼) 레오폴트는 베버 집안과의 결혼을 극구 반대했지만, 볼프강은 1782년 8월 슈테판 대성당에서 콘스탄체와 결혼했다. 같은 해 초연한 '후궁으로부터의 유괴'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황제 요제프 2세가 「음표가 너무 많다」고 평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오페라 속 유괴와 구출의 줄거리에는 그가 속박에서 콘스탄체를, 그리고 자기 자신을 구해냈다는 감정이 은근히 겹쳐 읽힌다. (하이든) 이 무렵 빈에서 요제프 하이든과 깊은 우정을 쌓았다. 두 사람은 함께 현악사중주를 연주했고, 하이든은 레오폴트에게 「당신 아들은 내가 아는 가장 위대한 작곡가」라고 말했다. 볼프강은 감사의 뜻으로 여섯 곡의 사중주를 하이든에게 헌정했다. 오페라 개혁가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루크 역시 빈 악단의 원로로서 그의 무대를 지켜보며 지지를 보냈다.

후궁으로부터의 유괴 (K.384)1782 (26세)

콘스탄체와 결혼하던 해에 초연한 오페라로, 속박에서 연인을 구해낸다는 줄거리가 그의 처지와 겹쳐 읽힌다.

  • 오스민의 저음 아리아는 당시로선 파격적으로 낮은 음역까지 내려가, 베이스 가수의 성량을 시험하는 대목으로 유명하다.
  • 콘스탄체(등장인물 이름도 실제 아내와 같다)의 아리아 '마르테른 알러 아르텐'은 화려한 기교로 가득해 소프라노들에게 손꼽히는 난곡이다.
  • 터키풍 타악기와 관악기를 동원한 서곡은 당대 빈에서 유행하던 이국 취향(터키 취향)을 그대로 살린 대목으로 들어볼 만하다.
  • 황제가 「음표가 너무 많다」고 말했다는 일화가 전해지는데, 실제로 관악과 성악 선율이 촘촘하게 겹치는 대목을 찾아 들어보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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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정점과 빚 · 1784–1789 (28–33세)

(번영) 1784년에서 1786년 사이는 그의 삶에서 가장 화려한 시절이었다. 예약 연주회를 열어 스스로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들을 초연했고, 큰 저택에 살며 하인을 두고 당구를 즐겼다. 같은 해 프리메이슨 지부에 가입해 형제애와 계몽의 이상에 깊이 공감했으며, 이듬해에는 레오폴트도 아들의 권유로 입회했다. (자녀) 콘스탄체는 여섯 아이를 낳았지만 넷을 잃었다. 살아남은 것은 1784년생 카를 토마스와, 아버지가 죽은 해인 1791년에 태어난 프란츠 크사버 볼프강뿐이었다. 후자는 훗날 스스로 음악가가 되어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활동했다. (다폰테) 대본가 로렌초 다 폰테와 손잡고 '피가로의 결혼'(1786)과 '돈 조반니'(1787)를 잇달아 내놓았다. 빈의 반응은 미지근했지만 프라하 청중은 열광했고, 그는 「내 프라하 사람들은 나를 이해한다」는 말을 남겼다. (궁핍) 1787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며 오래 이어진 애증의 관계도 끝났다. 이후 오스트리아가 튀르크와 전쟁을 벌이며 귀족들의 후원이 급격히 줄었고, 그는 같은 프리메이슨 형제 미하엘 푸흐베르크에게 돈을 빌려 달라는 편지를 거듭 써야 했다. 1788년 여름 단 몇 주 만에 완성한 교향곡 39, 40, 41번은 생전에 연주되었는지조차 불확실한 채로, 궁핍 속에서 태어난 걸작으로 남았다.

피가로의 결혼 (K.492)1786 (30세)

대본가 로렌초 다 폰테와 함께 만든 첫 결실로, 신분과 억압을 풍자하는 줄거리가 궁정 하인 취급을 받았던 그의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 서곡은 쉼 없이 몰아치는 빠른 템포로 극 전체의 소동을 예고하는데, 지휘자마다 속도 차이가 두드러져 비교해 듣는 재미가 있다.
  • 케루비노의 아리아 '더는 알 수 없어요'는 사춘기 소년의 설렘과 불안을 짧은 숨결의 선율로 표현한 대목으로 꼽힌다.
  • 3막의 편지 이중창은 백작부인과 수잔나의 목소리가 짧은 간격으로 서로를 따라가며 겹치는데, 그 정교한 어긋남이 연주자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 피날레는 여러 인물의 갈등이 한 무대에서 동시에 풀려나가는 대규모 앙상블로, 오페라 부파 기법의 정점으로 자주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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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조반니 (K.527)1787 (31세)

빈에서 미지근한 반응을 얻은 '피가로'와 달리 프라하에서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진 작품으로, 그를 사로잡았던 도시에 바친 오페라다.

  • 서곡 첫 화음은 극 후반 석상의 등장을 예고하는 무거운 화성으로, 오페라 전체의 운명적 분위기를 미리 들려준다.
  • 마지막 장면에서 석상이 돈 조반니를 지옥으로 끌고 가는 대목의 트롬본 화음은 당대 오페라에서 드물게 쓰인 음색으로, 공포를 표현하는 지점으로 유명하다.
  • '라 치 다렘 라 마노'는 유혹하는 이중창으로, 두 목소리가 화답하듯 주고받는 대목이 널리 사랑받는다.
  • 샴페인 아리아는 숨 돌릴 틈 없이 빠른 가사 전달을 요구해, 바리톤 가수들 사이에서 손꼽히는 난곡으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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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곡 40번 사단조 (K.550)1788 (32세)

후원이 끊기고 빚에 시달리던 1788년 여름, 단 몇 주 사이 마지막 세 교향곡과 함께 완성한 곡이다.

  • 1악장 첫 주제는 비올라의 나지막한 반주 위로 바이올린이 숨 가쁘게 속삭이듯 시작하는데, 이 불안한 도입은 클래식 음악을 통틀어 가장 널리 알려진 선율 중 하나로 꼽힌다.
  • 발전부에서 짧은 동기가 여러 성부를 옮겨 다니며 서로 부딪히는 대목은 대위법적 긴장을 즐길 수 있는 지점이다.
  • 느린 2악장은 표면적 평온함 아래 반음씩 어긋나는 화성이 깔려 있어, 단순히 밝다고만 듣기 어렵다는 평이 있다.
  • 말러를 비롯한 후대 작곡가들이 이 교향곡을 낭만적 고뇌의 원형으로 재해석하며 즐겨 지휘한 사실도 자주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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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 마지막 해 · 1791 (35세)

(다작) 1791년은 역설적으로 가장 왕성한 해였다. 프리메이슨 동지이자 극장장 에마누엘 시카네더와 함께 독일어 징슈필 '마술피리'를 준비했고, 친구인 클라리넷 연주자 안톤 슈타틀러를 위해 클라리넷 협주곡을 썼으며, 프라하 대관식을 위한 오페라 '티토 황제의 자비'도 작곡했다. (살리에리) 이해 10월, 그는 '마술피리' 공연에 궁정악장 안토니오 살리에리를 초대했는데, 살리에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진심으로 찬탄하며 박수를 보냈다고 아내에게 쓴 편지가 남아 있다. 두 사람이 평생 라이벌이었다는 이야기, 살리에리가 그를 독살했다는 소문은 후대에 부풀려진 것으로, 이 편지가 오히려 그 반증이다. (레퀴엠) 같은 해 정체를 밝히지 않은 인물이 죽은 아내를 위한 레퀴엠을 의뢰했다. 실제로는 발제크 백작이 곡을 자기 작품처럼 발표하려 한 것이었지만, 병약해진 그는 이 곡을 자신을 위한 진혼곡처럼 여겼다고 훗날 콘스탄체는 회고했다. (죽음) 11월 말 갑자기 몸져누운 그는 12월 5일 빈에서 숨을 거두었다. 서른다섯이었다. 사인은 류머티즘열 등 여러 추정이 있을 뿐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고, 독살설은 학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당시 관행에 따라 여러 유해를 함께 묻는 공동묘지에 묻혔고, 정확한 위치는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는다. 레퀴엠은 제자 프란츠 크사버 쥐스마이어가 콘스탄체의 부탁으로 완성했다.

마술피리 (K.620)1791 (35세)

프리메이슨 동지 시카네더와 함께 만든 독일어 오페라로, 죽음을 앞둔 해에 형제애와 계몽의 이상을 무대에 담았다.

  • 밤의 여왕 아리아 '지옥의 복수심이 내 마음에 끓어오른다'는 소프라노가 극히 높은 음역을 빠르게 오르내려야 하는, 오페라 역사상 손꼽히는 난곡이다.
  • 파파게노의 등장 아리아는 판피리 소리를 흉내 낸 오케스트라 반주 위에 소박한 선율이 얹혀, 서민적 인물의 성격을 그대로 그려낸다.
  • 서곡과 신전 장면에 반복되는 세 번의 화음은 프리메이슨 의식에서 쓰이던 상징으로 널리 해석된다.
  • 타미노가 시련을 통과하는 2막 장면은 불과 물을 상징하는 관악과 타악의 색채 변화로 시련의 진행을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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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퀴엠 라단조 (K.626)1791 (35세)

정체 모를 후원자의 의뢰로 시작해 끝내 미완성으로 남은 곡으로, 병상의 그가 자신을 위한 진혼곡처럼 여겼다고 전해진다.

  • 도입곡 '레퀴엠 에테르남'은 낮게 가라앉은 현과 바순이 무겁게 짓누르듯 시작해, 곡 전체의 어두운 색조를 예고한다.
  • '라크리모사'는 그가 여덟 마디만 쓰고 세상을 떠난 대목으로, 제자 쥐스마이어가 이어 완성한 뒷부분과의 경계가 어디인지 학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논쟁거리다.
  • '디에스 이레'는 합창이 몰아치듯 빠르게 쏟아지는 대목으로, 최후의 심판이 닥치는 공포를 음형으로 그린 부분이다.
  • 투바 미룸의 트롬본 독주는 심판을 알리는 나팔을 상징하며, 낮고 굵은 음색이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을 연상시킨다는 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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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 노트 📚🔎

징슈필

대사와 노래가 섞인 독일어 노래극이다. '마술피리'가 대표적이며, 귀족 취향의 이탈리아 오페라와 달리 대중적인 독일어 대사를 사용했다.

오페라 부파

일상적 인물과 소동을 다루는 이탈리아어 희극 오페라다. '피가로의 결혼'과 '돈 조반니'가 이 전통 위에 서 있다.

카덴차

협주곡에서 오케스트라가 멈추고 독주자가 화려한 기교를 자유롭게 펼치는 대목이다. 즉흥으로 연주되기도 하고 미리 작곡되기도 한다.

프리메이슨

18세기 유럽에서 퍼진 우애 결사로, 이성과 형제애, 계몽사상을 이상으로 삼았다. 모차르트는 1784년 빈 지부에 가입했다.

레퀴엠

죽은 이의 영혼을 위해 부르는 미사곡이다. 모차르트는 이 곡을 미완성으로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질풍노도

18세기 후반 독일어권에서 유행한 예술 사조로, 격정과 갈등을 강조했다. 교향곡 25번에 이런 경향이 처음 뚜렷이 나타난다.

소나타 형식

제시-발전-재현의 세 단계로 주제를 전개하는 기악곡의 기본 구조다. 모차르트 시대 교향곡과 협주곡 1악장 대부분이 이 형식을 따른다.

이 음악가를 좋아할 사람이 떠오르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