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と千尋の神隠し
피아노 한 대가 짚는 단순한 선율이 터널 너머의 신들의 세계를 지나 다시 여름날의 자동차 뒷좌석으로 돌아오는 음악이다.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만든 사람들 ⏳🌊
- 작곡가히사이시 조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이후 미야자키의 장편을 줄곧 맡아 왔고, 이 작품에서는 작곡과 지휘, 피아노까지 직접 했다.
- 감독미야자키 하야오
원작과 각본, 감독을 맡았고, 이미지 앨범 일부 곡에 노랫말을 붙였다.
- 제작스즈키 도시오
스튜디오 지브리의 프로듀서로 이 작품의 제작을 이끌었다.
- 작곡가기무라 유미
엔딩곡 「언제나 몇 번이라도」를 작곡하고 라이어를 연주하며 직접 불렀다.
- 작사가쿠 와카코
엔딩곡의 노랫말을 썼고, 훗날 「그 여름으로」에 붙인 노래 「생명의 이름」의 노랫말도 썼다.
- 주연히이라기 루미
일본어판에서 치히로의 목소리를 맡았다.
I. 일곱 번째 협업
(작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2001년 7월 일본에서 개봉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이사 가던 열 살 소녀 치히로가 낡은 터널 너머 신들의 온천장에 들어서고, 돼지로 변한 부모를 되찾으려고 이름을 빼앗긴 채 일하며 돌아갈 길을 찾는다. 이 영화는 2002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이듬해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받았다. (작곡가) 음악은 히사이시 조가 맡았다. 1950년 나가노에서 태어났고 본명은 후지사와 마모루다. 예명은 퀸시 존스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옮겨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젊은 시절에는 짧은 음형을 거듭 되풀이하는 미니멀 음악에 몰두했다. 1984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부터 미야자키의 장편을 줄곧 함께했고, 이 작품이 일곱 번째였다. (방식) 작업은 이번에도 이미지 앨범에서 시작했다. 그림이 완성되기 전에 감독이 건넨 메모와 설정을 바탕으로 곡을 먼저 써서 음반으로 내고, 그 가운데 살아남은 선율을 다듬어 본편 음악을 다시 짓는 방식이다. 이미지 앨범은 2001년 4월에, 사운드트랙은 7월에 나왔다. 녹음은 신일본필하모닉 교향악단이 맡았고, 히사이시는 지휘와 피아노를 직접 맡았다. (같은 해) 같은 해 극장에는 이 시리즈에서 다룬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도 걸렸다. 하워드 쇼어는 대규모 관현악으로 중간계의 지도를 그렸다. 히사이시는 피아노 한 대에서 출발해 한 아이의 눈높이로 낯선 세계를 그렸다. 두 영화는 모두 집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이야기지만, 음악이 재는 거리는 사뭇 다르다.
II. 터널 너머
(여름) 영화는 자동차 뒷좌석에 누운 치히로에서 시작한다. 손에는 전학 전 학교 친구들이 준 꽃다발이 들려 있고 표정은 시무룩하다. 이때 흐르는 「그 여름으로(あの夏へ)」에서는 피아노가 단순한 선율을 천천히 짚고, 그 밑으로 현악이 엷게 깔린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영화는 작품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선율을 이 자리에 미리 꺼내 놓는다. (샛길) 아버지가 샛길로 차를 몰아 낡은 터널 앞에 닿고, 세 식구는 그 너머의 텅 빈 거리로 들어간다. 「지나가는 길(とおり道)」과 「아무도 없는 음식점(誰もいない料理店)」은 한낮인데도 어딘가 비어 있는 공기를 만든다. 선율은 또렷하지만 화음은 끝내 자리를 잡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부모가 주인 없는 음식을 먹는 동안 치히로가 느끼는 불안을 관객은 소리로 먼저 듣는다. (해질녘) 해가 지면 「밤이 온다(夜来る)」와 함께 거리에 등이 켜지고 정체 모를 그림자들이 나타난다. 부모는 이미 돼지가 되어 있고, 치히로는 점점 투명해지는 제 손을 내려다본다. 여기서 음악은 낮과 밤,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의 경계를 긋는다. (소년) 그때 소년 하쿠가 나타나 치히로를 붙잡아 준다. 「용의 소년(竜の少年)」은 다급하게 움직이는 현악으로 이 낯선 구원자를 맞는다. 그가 왜 치히로를 알고 있는지는 이야기 끝까지 열린 질문으로 남는다.
이사 가는 차 안에서 시무룩한 치히로를 비추는 첫 곡이다. 작품 전체를 꿰는 중심 선율이 여기서 처음 나온다.
- 피아노가 서두르지 않고 한 음씩 짚는 선율 밑으로 신시사이저와 현악이 엷게 깔린다. 아이의 지루함과 막연한 불안이 함께 실린 것처럼 들린다.
- 이 선율은 하쿠와 함께하는 장면들과 마지막 귀로에 다시 돌아온다. 특정 인물이나 정서를 가리키는 짧은 선율, 곧 유도동기(라이트모티프)처럼 쓰인다.
- 히사이시는 나중에 이 곡에 가쿠 와카코의 노랫말을 붙여 「생명의 이름(いのちの名前)」이라는 노래로 다시 내놓았다. 2005년 히라하라 아야카의 싱글로 알려졌고, 영화 사운드트랙에는 실리지 않았다.
- 클래식 FM이 꼽은 히사이시 대표곡 열 편에 7위로 이름을 올렸다. 피아노 독주 편곡으로도 널리 연주된다.
해가 진 낯선 거리에서 투명해져 가는 치히로 앞에 하쿠가 나타나는 대목의 음악이다.
- 현악이 빠르게 몰아치며 위급한 상황을 그리다가 소년이 손을 내미는 순간 결이 바뀐다. 공포와 안도가 한 곡 안에 맞붙어 있다.
- 곡명이 이미 소년의 정체 일부를 알려 준다. 영화를 처음 볼 때는 무심히 지나치던 제목이 나중에 다른 뜻으로 읽힌다.
- 2분 남짓한 짧은 곡이지만 관현악의 음색이 계속 바뀐다. 쫓기는 장면을 위한 큐(장면 하나에 맞춰 쓴 음악 토막)의 전형을 보여 준다.
III. 이름을 빼앗긴 아이
(신들) 첫날 밤, 온천장으로 건너가는 다리 위로 일본 곳곳의 신들이 몸을 씻으러 몰려든다. 「신들(神さま達)」은 그 행렬을 따라가는 곡이다. 서양 관현악 위에 일본 축제 음악을 떠올리게 하는 타악과 음계가 얹혀 있는 것처럼 들린다. 일본 민속의 색채와 서양 악기가 한데 섞이는 이 방식이 영화 전체 음향의 바탕이 된다. (보일러실) 하쿠의 말대로 치히로는 보일러실의 가마 할아범을 찾아간다. 「보일러 벌레(ボイラー虫)」는 석탄을 나르는 검댕이들의 장면에 바쁘고 익살스러운 리듬을 붙인다. 이곳에서 치히로는 처음으로 남의 일을 거든다. 겁에 질려 웅크리고만 있던 아이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계약) 온천장 꼭대기에서 마녀 유바바를 만난 치히로는 일자리를 얻는 대가로 이름을 빼앗기고 센이 된다. 「유바바(湯婆婆)」는 묵직한 금관과 과장된 몸짓의 관현악으로 이 주인을 그린다. 위협적이면서도 어딘가 희극적이어서, 무서우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인물의 두 얼굴이 함께 들린다. (일상) 「온천장의 아침(湯屋の朝)」과 「일은 힘들어(仕事はつらいぜ)」에 이르면 음악은 일상의 표정을 띤다. 낯설기만 하던 세계가 일하고 먹고 자는 곳이 되고, 센은 그 리듬에 조금씩 몸을 맞춘다. 이름을 잊지 말라던 하쿠의 당부는 이 평범한 나날 밑에 조용히 깔려 있다.
밤이 되어 온갖 신들이 온천장으로 몰려드는 행렬을 따라가는 곡이다. 치히로가 저쪽 세계의 한복판에 처음 들어서는 순간이다.
- 일정한 걸음걸이 같은 리듬이 곡을 끌고 간다. 행렬이 다리를 건너 끝없이 이어지는 느낌을 준다.
- 서양 관현악 위에 일본 축제 음악을 떠올리게 하는 타악과 음계가 섞여 있는 것처럼 들린다. 일본 민속 신앙의 세계를 서양 악기로 그리는 이 작품 음향의 기본 방식이다.
- 기괴한 신들이 지나가는데도 음악은 무섭기보다 신기하고 흥겹다. 공포보다 경이를 먼저 느끼는 아이의 눈높이를 따른 선택으로 보인다.
IV. 오물신과 가오나시
(손님) 비 오는 밤,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거대한 손님이 온천장에 들어선다. 「오물신(おクサレ神)」은 4분 가까이 이어지는 긴 큐로, 온천장 전체가 뒤흔들리는 소동을 따라간다. 센이 손님의 몸에 박힌 것을 붙잡아 끌어내는 대목에서 음악은 소동의 리듬을 거두고 장엄한 쪽으로 돌아선다. 오물 덩어리로만 보이던 손님이 실은 무엇이었는지가 그 변화 속에 드러난다. (가면) 다리 위에서 스쳤던 가면의 존재 가오나시가 온천장 안으로 들어온다. 그는 손에서 금을 쏟아 내며 직원들을 홀리고, 욕심을 삼킬수록 몸집이 불어난다. 「가오나시(カオナシ)」는 조용한 고독과 걷잡을 수 없는 폭주를 한 곡 안에 담았다. 말 대신 몇 마디 소리만 내는 이 인물에게 음악이 목소리를 대신 내준다. (전환) 그 사이 하쿠는 종이 인형 떼에 쫓기다 상처 입은 용이 되어 돌아온다. 센은 가오나시가 내민 금을 거절하고, 하쿠를 살리려고 유바바의 쌍둥이 언니 제니바를 찾아가기로 한다. 「바닥 없는 구멍(底なし穴)」과 「유바바의 광란(湯婆婆狂乱)」처럼 1분 남짓한 급박한 큐들이 이 대목을 몰아친다. (용기) 사운드트랙의 「센의 용기(千の勇気)」라는 곡명은 이 무렵 치히로의 변화를 정확히 가리킨다. 처음에는 계단 하나도 무서워 엉금엉금 내려가던 아이가 이제는 누구의 지시도 없이 먼 길을 나선다.
금으로 직원들을 홀리며 불어나는 가면의 존재를 그린 곡이다. 말이 없는 인물에게 음악이 목소리를 대신 준다.
- 곡 안에 조용히 맴도는 부분과 거칠게 부풀어 오르는 부분이 함께 있다. 외로움이 탐욕으로 번져 가는 인물의 속을 소리로 보여 주는 것처럼 들린다.
- 앞서 나오던 경쾌한 온천장 음악들과 달리 급박한 대목이 배경을 덮어 버린다. 일상의 리듬이 무너지는 전환점을 알린다.
- 4분 가까운 길이로 사운드트랙에서 긴 편에 속한다. 한 인물의 변화를 한 곡 안에서 차례로 따라가도록 짜였다.
V. 여섯 번째 역
(기차) 센은 가오나시와 함께 물 위를 달리는 기차에 오른다. 그림자처럼 반쯤 투명한 승객들이 타고 내리고, 창밖으로 물에 잠긴 선로와 작은 역들이 지나간다. 대사는 거의 없고 장면은 「6번째 역(6番目の駅)」에 통째로 맡겨진다. 피아노가 짧은 음형을 되풀이하고 그 위로 현악이 천천히 겹쳐 든다. 히사이시가 젊은 시절 몰두했던 미니멀 음악의 어법이 이 작품에서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곡이다. (마) 미야자키는 2002년 미국 평론가 로저 에버트와 인터뷰하면서 일본어 마(間)를 설명하려고 손뼉을 몇 번 쳤다. 손뼉과 손뼉 사이의 시간, 곧 이야기를 멈추고 숨을 고르는 틈이 영화에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기차 장면은 이 작품에서 그 틈이 가장 길게 이어지는 자리다. 쫓고 쫓기던 사건이 멈추고, 센은 혼자 먼 길을 떠난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처음으로 겪는다. (늪) 늪 바닥 역에서 내린 센은 제니바의 오두막에 닿는다. 제니바는 동생과 똑같은 얼굴이지만 전혀 다른 사람이다. 「늪 바닥의 집(沼の底の家)」은 짧고 따뜻한 곡으로, 쫓기던 여정 끝에 처음 마음을 놓는 저녁을 그린다. 센이 실을 잣고 차를 마시는 동안 이야기는 마지막 장면을 향해 숨을 고른다.
물 위를 달리는 기차에서 대사가 거의 사라지고 음악이 장면을 통째로 맡는다. 영화에서 가장 길게 쉬어 가는 순간이다.
- 피아노가 짧은 음형을 거듭 되풀이하고 현악이 그 위로 천천히 쌓인다. 같은 무늬를 반복하며 조금씩 변화를 주는 미니멀 음악의 어법으로, 히사이시의 출발점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곡이다.
- 그리움과 체념 사이 어딘가에 걸린 화음이 끝내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다. 혼자 먼 길을 가는 아이의 마음처럼 들린다.
- 미야자키가 말한 마(間), 곧 사건과 사건 사이에 숨을 쉬는 틈이 음악으로 구현된 자리로 자주 거론된다.
- 이 곡의 동기는 뒤에 「다시」의 끝머리에서 금관으로 바뀌어 돌아온다. 두 곡을 이어 들으면 같은 선율의 뜻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들린다.
VI. 다시, 밤하늘
(비행) 제니바의 집을 나선 센은 용이 된 하쿠의 등에 올라 밤하늘을 난다. 그 비행 도중 센의 마음 깊은 곳에서 아주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오르고, 그 기억이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보는 열쇠가 된다. 영화가 처음부터 품어 온 질문이 여기서 풀린다. 무엇이 기억났는지는 직접 보는 편이 좋다. (되풀이) 이 대목에 흐르는 「다시(ふたたび)」는 제목 그대로 앞서 들은 선율이 되돌아오는 곡이다. 셋씩 묶여 흔들리는 왈츠 리듬 위에 그리움과 새로운 기운이 함께 실린다. 끝머리에서는 기차 장면의 동기가 돌아오는데, 쓸쓸하던 현악 대신 힘찬 금관으로 울린다. 혼자 가던 길의 선율이 둘이 함께 나는 하늘의 선율로 바뀐다. (이름) 이 작품에서 이름은 자기 자신을 붙드는 끈이다. 유바바에게 이름을 내준 이들은 돌아갈 곳을 잊는다. 하쿠가 처음부터 센에게 본래 이름을 잊지 말라고 일렀던 까닭이 이 비행에서 비로소 무게를 얻는다. (복선) 사운드트랙과 이미지 앨범에 모두 실린 「그날의 강(あの日の川)」이라는 곡명은 이 대목을 향한 조용한 복선처럼 읽힌다. 처음 볼 때는 스쳐 지나가지만, 다시 볼 때는 음악이 영화 초반부터 같은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는 것이 들린다.
용의 등에 올라 밤하늘을 나는 동안 잊었던 기억이 돌아오는 대목의 음악이다. 영화의 질문이 풀리는 자리다.
- 셋씩 묶여 흔들리는 왈츠 리듬이 곡을 이끈다. 하늘을 미끄러지듯 나는 몸의 감각과 춤추듯 들뜬 마음이 함께 실린다.
- 끝머리에서 「6번째 역」의 동기가 돌아오는데, 쓸쓸한 현악 대신 힘찬 금관의 팡파르(축하하듯 울리는 금관 신호)로 울린다. 같은 선율이 고독에서 해방으로 뜻을 바꾸는 순간이다.
- 사운드트랙에서 가장 긴 5분 가까운 곡이다. 앞서 흩어져 있던 선율들이 이 자리에서 한데 모인다는 점에서 이 영화 음악의 결산이라 할 만하다.
- 콘서트에서 히사이시는 이 곡을 비롯한 이 작품의 음악을 하나로 엮어 모음곡으로 자주 연주해 왔다.
VII. 돌아가는 날
(시험) 온천장으로 돌아온 센에게는 유바바가 내는 마지막 시험이 남아 있다. 그 문제를 어떻게 푸는지는 영화에 맡겨 둔다. 다만 이때 음악은 크게 부풀지 않는다. 아이가 스스로 답을 고르는 순간을 조용히 비워 두고, 판단의 무게를 오롯이 치히로에게 넘긴다. (귀환) 「돌아가는 날(帰る日)」은 작별과 귀로에 놓인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당부를 지키며 터널 쪽으로 걷는 치히로의 걸음 위로 「그 여름으로」의 선율이 돌아온다. 첫 장면에서 시무룩한 아이를 감싸던 피아노가 같은 음으로 전혀 다른 무게를 실어 나른다. 같은 선율이 이야기 처음과 끝에 놓이면서, 그 사이에 쌓인 시간이 저절로 들린다. (엔딩) 엔딩 크레디트에는 기무라 유미가 라이어(작은 현악기)를 직접 뜯으며 부르는 「언제나 몇 번이라도(いつも何度でも)」가 흐른다. 노랫말은 가쿠 와카코가 썼다. 슬픔과 되풀이되는 나날 속에서도 살아 있다는 것을 조용히 긍정하는 노래로,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혼잣말하듯 담담하게 이어진다. (여운) 영화는 다시 자동차 안에서 끝난다. 터널 너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관객뿐이다. 히사이시의 관현악이 물러난 자리를 악기 하나와 목소리 하나가 채우면서, 거대한 온천장의 소란은 한 아이의 기억 크기로 줄어든다. 이 음악은 2002년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에서 히사이시와 기무라가 함께 음악상을 받았다.
모든 소동이 끝난 뒤 엔딩 크레디트에 흐르는 노래다. 기무라 유미가 라이어를 직접 연주하며 불렀다.
- 관현악이 물러나고 손으로 뜯는 작은 현악기 라이어와 목소리 하나만 남는다. 거대한 이세계의 이야기를 한 사람의 기억 크기로 접어 넣는 마무리다.
- 노랫말은 가쿠 와카코가 썼다. 슬픔과 되풀이되는 나날을 받아들이며 살아 있음을 조용히 긍정하는 내용을, 혼잣말 같은 화법으로 담담하게 노래한다.
- 작곡은 히사이시가 아니라 기무라 유미의 몫이다. 원래는 무산된 다른 미야자키 기획을 위해 쓴 곡이었다.
- 이 곡과 히사이시의 음악은 2002년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 음악상을 함께 받았다.
덜 알려진 이야기
엔딩곡은 이 영화를 위해 쓴 노래가 아니었다. 기무라 유미는 미야자키의 작품에 감명을 받아 그와 인연을 맺었고, 미야자키가 당시 준비하던 「굴뚝 그리는 린」이라는 기획을 위해 노래를 쓰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무라는 작사가 가쿠 와카코와 함께 그 작품을 위한 노래를 썼다. 미야자키는 노래를 마음에 들어 했지만 기획이 무산되었다. 이 노래는 결국 이 영화의 엔딩곡이 되었다. 세상에 나오지 않은 영화의 이야기라 공식 필모그래피에는 흔적이 없다. 이미지 앨범은 본편 사운드트랙에 가려 잘 들리지 않는다. 개봉 석 달 전인 2001년 4월에 나온 이 음반에는 히사이시의 기악곡 외에도 여러 가수의 노래가 실렸다. 그중 「그날의 강으로」는 야마가타 유카가 부르는 노래 버전이다. 일부 곡의 노랫말은 미야자키가 썼다. 그림이 완성되기 전 감독과 작곡가가 무엇을 상상했는지 보여 주는 기록인데, 본편에서 빠지거나 모습을 바꾼 선율도 많다. 오프닝의 기악곡 「그 여름으로」에는 노래로 다시 태어난 버전이 있다. 히사이시가 이 선율에 가쿠 와카코의 노랫말을 붙여 「생명의 이름」으로 만들었고, 2005년 히라하라 아야카의 싱글로 널리 알려졌다. 영화 사운드트랙에는 실리지 않아, 같은 선율인 줄 모르고 듣는 사람도 많다. 2022년 도쿄 제국극장에서 초연한 무대판은 존 케어드가 각색과 연출을 맡았다. 히사이시의 영화 음악은 브래드 해크가 극장의 라이브 오케스트라에 맞게 다시 편곡했다. 치히로 역은 하시모토 칸나와 가미시라이시 모네가 번갈아 맡았다. 이 무대는 2024년 런던 콜리세움에서 일본어 공연에 영어 자막을 곁들여 유럽 초연을 했다.
용어 노트 📚🔎
유도동기(라이트모티프)
(말뜻) 유도동기(誘導動機)는 이끄는(誘導) 작은 악상(動機)이라는 뜻이다. 독일어 라이트모티프(Leitmotiv)를 옮긴 말로, leiten 은 이끌다, Motiv 는 동기를 뜻한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특정 인물이나 장소, 감정이 나올 때마다 되풀이되는 짧은 선율을 말한다. 관객은 그 선율이 들리기만 해도 화면에 누가 없어도 그 인물을 떠올린다. 예를 들어 게임에서 보스가 나오기 직전에 늘 같은 음악이 깔리면, 음악만 듣고도 곧 무슨 일이 생길지 알게 되는 것과 같다. 이 영화에서는 「그 여름으로」의 선율이 치히로의 여정을 따라 여러 번 모습을 바꿔 돌아온다.
이미지 앨범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영화가 완성되기 전에 감독의 구상과 그림 설정을 바탕으로 작곡가가 미리 곡을 써서 내는 음반이다. 이 곡들은 감독과 작곡가가 작품의 분위기를 맞춰 보는 스케치 역할을 하고, 그중 좋은 선율이 다듬어져 실제 영화 음악이 된다. 미술 시간에 큰 그림을 그리기 전에 연필로 밑그림을 여러 장 그려 보고 그중 하나를 골라 색을 칠하는 것과 비슷하다. 히사이시와 지브리는 여러 작품에서 이 방식으로 작업해 왔다.
큐(cue)
(말뜻) 영어 cue 는 원래 연극에서 배우에게 다음 대사나 동작을 시작하라고 주는 신호를 뜻했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영화의 특정 장면 하나에 맞춰 시작하고 끝나도록 쓴 음악 한 토막을 말한다. 몇십 초짜리도 있고 몇 분짜리도 있으며, 화면 속 동작과 시간이 정확히 맞아야 한다. 운동회 이어달리기에서 주자가 바통을 넘겨받는 순간 응원 음악이 바뀌는 것처럼, 장면이 바뀌는 지점에 맞춰 음악도 들어오고 빠진다. (다른 데서는) 방송 현장에서는 진행자나 출연자에게 시작하라고 보내는 신호를 큐라고 부른다.
미니멀 음악
(말뜻) 미니멀(minimal)은 가장 적은, 최소한의라는 뜻이다. 적은 재료로 음악을 만든다는 생각이 이름에 담겨 있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짧은 음형 하나를 오래 되풀이하면서 아주 조금씩 바꿔 가는 음악이다. 1960년대 미국에서 스티브 라이히, 필립 글래스 같은 작곡가들이 발전시켰고, 젊은 시절의 히사이시도 이 음악에 깊이 빠졌다. 줄넘기를 할 때 같은 박자가 계속되다가 어느 순간 이단 뛰기가 한 번 섞이면 그 변화가 크게 느껴지듯, 반복 속의 작은 변화가 듣는 사람의 귀를 붙잡는다. 이 영화의 「6번째 역」에서 그 어법이 잘 들린다. (다른 데서는) 미술이나 인테리어에서 미니멀리즘은 장식을 줄이고 꼭 필요한 것만 남기는 단순한 스타일을 가리킨다.
분산화음(아르페지오)
(말뜻) 아르페지오(arpeggio)는 이탈리아어 arpa, 곧 하프에서 온 말이다. 하프를 뜯듯이 화음을 한 음씩 차례로 소리 낸다는 뜻이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여러 음을 한꺼번에 누르는 화음을 아래에서 위로, 또는 위에서 아래로 한 음씩 펼쳐서 연주하는 방법이다. 소리가 물결처럼 흐르는 느낌을 주어서, 피아노 영화 음악에서 배경을 잔잔하게 채울 때 자주 쓰인다. 리코더 연습 때 도-미-솔을 한꺼번에 낼 수는 없으니 차례로 불어 보는 것이 바로 분산화음이다.
왈츠
(말뜻) 왈츠(waltz)는 독일어 walzen 에서 온 말로, 빙글빙글 돌다라는 뜻이다. 짝을 지어 돌며 추는 춤에서 이름이 나왔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한 마디를 세 박으로 나누어 첫 박을 강하게 짚는 하나-둘-셋 리듬의 음악이다. 몸이 흔들리고 도는 느낌이 있어 영화에서는 설렘, 그리움, 날아오르는 기분을 표현할 때 자주 쓰인다. 그네를 탈 때 앞으로 크게 나갔다가 두 번 살짝 흔들리며 돌아오는 느낌을 떠올리면 왈츠의 셋 박자와 비슷하다. 이 영화의 「다시」가 이 리듬을 탄다.
팡파르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트럼펫 같은 금관악기가 힘차고 짧게 울리는 신호 같은 음악이다. 원래는 왕의 등장이나 행사의 시작을 알리던 소리였고, 영화에서는 승리나 해방,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순간에 쓰인다. 학교 시상식에서 이름이 불리기 직전 빠밤 하고 울리는 짧은 음악을 떠올리면 된다. 이 영화에서는 쓸쓸한 현악으로 나왔던 기차 장면의 선율이 비행 장면에서 팡파르로 바뀌어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