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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oges

스투지스 (1967–2016)

세 개 남짓한 화음과 맨몸의 소음으로, 미시간 소도시 청년들의 권태를 펑크의 첫 문장으로 바꾼 밴드.

한눈에 보기 🔭💭

1. 뿌리미국 앤아버 결성트레일러촌 소년쓰리 스투지스 이름2. 데뷔엘렉트라 계약존 케일 프로듀스「노 펀」의 권태3. 펀하우스한 방의 라이브 녹음땅콩버터 무대엘렉트라 결별4. 로 파워보위와 런던윌리엄슨의 기타「기미 데인저」5. 흩어짐미시간 팰리스 고별알렉산더의 죽음펑크의 재발견6. 귀환2003 코첼라론·스콧 별세2016 마침표스투지스1967–2016앤아버의 네 청년이 날것의 소음으로 펑크의 문…
무대가 된 도시 🧭🗺️
N미국영국입실랜티1950년대–1967앤아버1967–1972런던1972로스앤젤레스1972–1974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멤버와 동료들 ⏳🌊

  • 멤버이기 팝

    보컬. 트레일러 단지에서 자란 청년으로, 객석에 몸을 던지는 무대로 록 공연의 문법을 바꿨다.

  • 멤버론 애시턴

    기타와 베이스. 퍼즈와 와와 페달로 스투지스의 원초적 리프를 만든 창립 멤버로, 2009년 세상을 떠났다.

  • 멤버스콧 애시턴

    드럼. 록 액션이라는 별명의 론의 동생으로, 단순하고 묵직한 박자로 밴드의 뼈대를 세웠다.

  • 멤버데이브 알렉산더

    베이스. 론의 친구로 첫 두 앨범을 함께했으나 1970년 밴드를 떠났고 1975년 스물일곱에 숨졌다.

  • 멤버제임스 윌리엄슨

    기타. 《로 파워》의 날 선 사운드를 만들었고, 엔지니어로 일한 뒤 2009년 밴드에 돌아왔다.

  • 우정데이비드 보위

    이기를 메인맨에 이끌고 《로 파워》를 믹스했으며, 훗날 베를린에서 이기의 솔로 앨범을 함께 만들었다.

YouTube에서 6곡 이어 듣기 ↗

I. 앤아버의 소년들 · 1947–1967

(결성) 1967년, 미국 미시간주 앤아버에서 결성됐다. 디트로이트에서 서쪽으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이 대학 도시는 반전 운동과 히피 문화로 들끓었지만, 밴드를 꾸린 네 청년은 캠퍼스보다 변두리에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훗날 펑크의 원형으로 불릴 소리는 그 변두리의 권태에서 나왔다. (이기) 보컬 제임스 오스터버그는 1947년 미시간주 머스키건에서 태어나 앤아버 이웃 도시 입실랜티의 트레일러 주택 단지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고등학교 영어 교사였다. 고교 밴드 이구아나스에서 드럼을 쳤고, 블루스 밴드 프라임 무버스 시절 옛 밴드 이름에서 딴 '이기'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이후 시카고로 건너가 블루스 연주자들 곁에서 드럼을 쳤다. 그는 그곳에서 남의 전통을 흉내 내기보다 자기 동네의 단순하고 원시적인 소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회고했다. (형제) 론과 스콧 애시턴 형제는 워싱턴 D.C.에서 태어나 아버지를 일찍 여읜 뒤 어머니와 함께 앤아버에 자리 잡았다. 형 론은 기타를, 동생 스콧은 드럼을 붙들었다. 론의 친구 데이브 알렉산더는 론과 함께 학교를 떠나 영국으로 건너가 현지 밴드들의 공연을 보고 돌아왔다고 전해질 만큼 록에 빠져 있었다. (시작) 그 무렵 도어스의 공연에서 짐 모리슨이 관객을 도발하는 모습을 본 오스터버그는 자신이 무대 앞에 서기로 마음먹었다. 론이 기타, 스콧이 드럼, 알렉산더가 베이스를 맡았다. 이름은 론이 좋아하던 슬랩스틱 코미디 쓰리 스투지스에서 따와 처음에는 사이키델릭 스투지스라 했고, 오스터버그는 이기 스투지라는 무대 이름을 썼다. 1967년 핼러윈의 첫 공연에는 마이크를 댄 믹서기 소리까지 동원됐다고 전해진다.

II. 엘렉트라와 존 케일 · 1968–1969

(농가) 밴드는 앤아버 외곽의 낡은 농가를 빌려 함께 살며 연습했고, 그 집을 펀 하우스라 불렀다. 매니저 지미 실버가 살림과 공연을 챙겼다. 론은 퍼즈와 와와 페달로 거칠게 울리는 기타를 다듬었고, 이기는 객석으로 몸을 던지거나 바닥을 기는 행동으로 공연 자체를 하나의 사건으로 만들었다. 디트로이트의 그랜드 볼룸 무대가 그들의 학교였다. (계약) 1968년 가을, 엘렉트라 레코드의 대니 필즈가 같은 미시간의 밴드 MC5를 보러 왔다가 스투지스까지 함께 계약하도록 레이블을 설득했다. MC5의 선급금이 2만 달러, 스투지스가 5천 달러였다고 전해진다. MC5가 혁명 구호를 외치는 형님 밴드였다면, 스투지스는 정치보다 무료함을 노래하는 동생 밴드였다. (녹음) 1969년 4월 뉴욕에서 벨벳 언더그라운드 출신 존 케일의 프로듀싱으로 데뷔 앨범을 녹음했다. 레이블이 곡 수가 모자란다고 하자 밴드가 하룻밤 사이에 몇 곡을 새로 만들어 왔다고 이기 팝은 여러 차례 회고했다. 대형 앰프를 최대 음량으로 틀려는 밴드와 케일 사이에 실랑이도 있었다. 케일의 믹스는 레이블이 받아들이지 않아 이기와 엘렉트라 대표 잭 홀즈먼이 다시 믹스했다. (권태) 1969년 8월 나온 《스투지스》는 빌보드 앨범 차트 106위에 그쳤고 평단의 반응도 차가웠다. 그러나 할 일 없는 소도시 청년의 지루함과 욕망, 무력감을 몇 개의 화음에 실어 정면으로 내뱉은 이 앨범은, 사이키델릭의 화려함이 지배하던 1969년에 거의 홀로 정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이 워너 비 유어 도그 (I Wanna Be Your Dog)1969실황 The Stooges · 2010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식

존 케일과 함께 뉴욕에서 녹음한 데뷔 앨범의 대표곡. 미시간 청년의 무력한 욕망을 가장 단순한 형식에 담았다.

  • 도입부의 기타 리프(곡 내내 되풀이되는 짧은 가락)를 들어 보라. 론 애시턴이 소리를 거칠게 뭉갠 음색(퍼즈)으로 세 개의 화음을 계단처럼 내려 짚는데, 이 리프가 곡이 끝날 때까지 거의 변하지 않고 반복된다.
  • 기타 뒤에 묻힌 피아노에 귀를 기울여 보라. 존 케일이 건반 하나를 곡 내내 같은 박자로 두드리며 쇳소리 같은 긴장을 만든다. 헤드폰으로 들으면 훨씬 또렷하다.
  • 스콧 애시턴의 드럼은 기교 없이 같은 무게로 쿵쿵 내려찍고, 데이브 알렉산더의 베이스가 그 아래를 단단히 받친다. 화려함을 덜어 낸 이 반복이 최면처럼 들리는 이유다.
  • 이기 팝의 목소리는 낮고 무심하다. 상대에게 자신을 내맡기겠다고 말하는 1인칭 화법이 애원도 협박도 아닌 묘한 온도로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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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펀 (No Fun)1969실황 Iggy and the Stooges · 2013 시드니

할 일도 갈 곳도 없는 소도시의 지루함을 그대로 제목으로 삼은 곡. 8년 뒤 섹스 피스톨즈가 커버하며 펑크 세대의 송가가 됐다.

  • 느긋한 중간 빠르기 위로 손뼉 소리가 깔린다. 신나는 파티 음악의 장치를 빌려 와 오히려 무료함을 강조하는 역설을 느껴 보라.
  • 곡 후반, 이기가 기타리스트 론의 이름을 부르며 솔로를 재촉하는 대목이 있다. 그 뒤 이어지는 론의 솔로는 정교한 속주 대신 지글거리는 음색 자체로 승부한다.
  • 다섯 분 남짓한 길이 동안 곡의 구조는 거의 변하지 않는다. 같은 자리를 맴도는 형식 자체가 주제인 권태를 닮았다.
  • 1977년 섹스 피스톨즈의 커버와 나란히 들어 보면, 원곡의 늘어진 무기력이 더 빠르고 성난 목소리로 바뀌는 과정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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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펀 하우스 · 1970–1971

(스튜디오) 1970년 5월, 밴드는 로스앤젤레스의 엘렉트라 스튜디오에서 두 번째 앨범을 녹음했다. 킹스멘 출신 프로듀서 돈 갈루치는 처음엔 악기마다 칸막이를 세우려 했지만, 결국 무대처럼 한 방에서 다 함께 큰 소리로 연주하게 하고 이기에게는 손에 드는 마이크를 쥐여 줬다. 앤아버의 프리 재즈 연주자 스티브 매케이가 색소폰으로 가세해 비명 같은 금관 음색을 보탰다. (땅콩버터) 6월 신시내티 팝 페스티벌에서 이기는 관객들의 손 위로 걸어 나가고 건네받은 땅콩버터를 몸에 바르는 장면을 연출했고, 이 장면은 텔레비전으로 전국에 방송됐다. 7월에 나온 《펀 하우스》는 그런 무대의 열기를 거의 그대로 옮긴 음반이었지만 판매는 저조했다. (균열) 8월 구스 레이크 페스티벌에서 데이브 알렉산더가 술에 취해 연주를 제대로 하지 못하자 밴드는 그를 내보냈다. 창립 멤버가 떠난 자리에는 베이스 연주자가 연달아 바뀌었고, 10대 시절부터 론 애시턴과 알고 지낸 기타리스트 제임스 윌리엄슨이 두 번째 기타로 들어왔다. 이기 팝은 훗날 자신이 이 무렵 헤로인에 빠져 있었다고 스스로 밝혔다. (해체) 공연은 점점 불안정해졌고, 새 곡을 들어 본 엘렉트라는 1971년 계약을 끝냈다고 전해진다. 그해 여름 밴드는 사실상 흩어졌다. 《펀 하우스》의 자유분방한 소음은 60년대의 낙관이 무너지던 1970년의 공기와 겹쳐 들렸고, 밴드 자신도 그 무너짐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앨범 《펀 하우스》 (Fun House)1970실황 「Down on the Street」 Iggy & The Stooges

로스앤젤레스 스튜디오에서 공연처럼 한꺼번에 연주해 담은 두 번째 앨범. 무너져 가던 밴드가 남긴 가장 뜨거운 기록이다.

  • 녹음 방식부터 들어 보라. 칸막이 없이 한 방에서 크게 연주했기 때문에 악기 소리가 서로의 마이크로 번져 들어가, 스튜디오 음반인데도 공연장 한가운데 선 듯한 공기가 난다.
  • 이 카드의 영상 곡인 첫 곡 「다운 온 더 스트리트」는 론의 묵직한 리프와 알렉산더의 베이스가 한 몸처럼 맞물린다. 당시 싱글로 나온 판본에는 프로듀서 돈 갈루치가 오르간을 덧녹음(오버더빙)해 앨범 판과 결이 다르다.
  • LP 뒷면으로 갈수록 형식이 풀어진다. 「펀 하우스」와 「1970」에서 스티브 매케이의 색소폰이 비명처럼 끼어들고, 마지막 「L.A. 블루스」는 정해진 형식 없이 소음의 즉흥으로 끝난다.
  • 이기가 손에 든 마이크로 노래했다는 점을 떠올리며 들으면, 목소리가 앞뒤로 움직이며 크기가 출렁이는 순간들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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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아이 (T.V. Eye)1970실황 Iggy & The Stooges · 디트로이트 귀향 공연

《펀 하우스》의 열기가 가장 날카롭게 응축된 곡. 신시내티의 무대처럼 몸으로 부딪치는 음악이다.

  • 곡은 이기의 날카로운 외침으로 시작된다. 노래라기보다 무대 위의 몸짓을 소리로 옮긴 듯한 첫 순간이다.
  • 론 애시턴의 기타 솔로에서는 발로 밟아 음색을 열고 닫는 장치(와와 페달)가 소리를 울부짖듯 비튼다. 같은 음을 짚어도 음색이 출렁이는 것을 따라가 보라.
  • 곡 끝부분에서 밴드가 몇 차례 갑자기 멈췄다가 다시 몰아치는 대목이 있다. 칸막이 없이 함께 연주했기에 가능한, 숨을 맞춘 정지다.
  • 누군가를 탐욕스럽게 지켜보는 시선을 주제로, 이기는 상대를 향해 내뱉듯 거칠게 말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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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로 파워 · 1971–1973

(보위) 1971년 9월 뉴욕의 클럽 맥스 캔자스 시티에서 이기는 데이비드 보위를 만났다. 스투지스의 음반에 매료돼 있던 보위는 자신의 매니저 토니 디프리스에게 이기를 소개했고, 이기는 디프리스의 회사 메인맨과 계약해 컬럼비아 레코드에서 음반을 내게 됐다. 이 만남은 두 사람의 오랜 협업으로 이어졌다. (런던) 1972년 봄 이기와 윌리엄슨은 런던으로 건너갔다. 영국에서 마땅한 리듬 섹션을 찾지 못하자 앤아버의 애시턴 형제를 불러들였는데, 밴드의 기타를 맡아 온 론은 윌리엄슨에게 자리를 내주고 베이스를 잡아야 했다. 론에게는 쓰라린 일이었다고 전해지지만 그는 밴드에 남았다. 7월에는 런던 킹스크로스의 한 극장에서 공연했다. (믹스) 가을 런던 CBS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로 파워》는 윌리엄슨의 날 선 기타가 중심이었다. 테이프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보위가 짧은 기간에 믹스했다. 1973년 2월 이기 앤 더 스투지스 명의로 나온 앨범은 기타와 목소리가 앞으로 튀어나온 대신 베이스와 드럼이 얇게 들리는 독특한 소리를 지녔고, 이 믹스는 오래도록 논쟁거리가 됐다. (위험) 낯선 도시에서 돈도 앞날도 불안하던 처지는 노래에 그대로 묻어났다. 베트남 전쟁의 작전 용어를 제목으로 삼은 「서치 앤 디스트로이」와 위험을 갈망하는 「기미 데인저」는 궁지에 몰린 청춘의 허세와 불안을 함께 담았다. 앨범은 당시 거의 팔리지 않았지만 훗날 펑크와 하드코어의 교과서가 됐다.

♪서치 앤 디스트로이 (Search and Destroy)1973실황 The Stooges · 2010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식

런던에서 녹음한 《로 파워》의 첫 곡. 전쟁의 작전 용어를 빌려 궁지에 몰린 청춘의 허세를 터뜨렸다.

  • 제임스 윌리엄슨의 기타가 곡의 주인공이다. 깁슨 레스폴 커스텀과 복스 앰프로 녹음한 것으로 알려진 그의 음색은 론의 뭉툭한 퍼즈보다 훨씬 날카롭고 금속적이다.
  • 기타는 여러 겹으로 덧녹음돼 있다. 솔로 대목에서 좌우 채널에 서로 다른 기타가 겹쳐 들리는지 헤드폰으로 확인해 보라.
  • 1973년 보위의 믹스(따로 녹음된 소리를 섞어 완성하는 작업)에서는 목소리와 기타가 앞으로 튀어나오고 베이스와 드럼이 얇다. 1997년 이기 팝이 다시 믹스한 판본과 비교하면 같은 녹음이 얼마나 다르게 들릴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 이기는 스스로를 거리의 무법자처럼 내세우는 1인칭으로 노래하지만, 과장된 허세 밑에 외로움이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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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 데인저 (Gimme Danger)1973실황 Iggy and the Stooges · 2013 시드니

《로 파워》에서 가장 어둡고 느린 곡. 2016년 짐 자무시의 다큐멘터리가 이 곡의 제목을 빌렸다.

  • 어쿠스틱 기타가 화음을 한 음씩 펼쳐 치는 주법(아르페지오)으로 곡을 연다. 스투지스 음반에서 드물게 조용한 도입이다.
  • 이기는 낮은 음역에서 속삭이듯 부르는 창법(크루닝)으로 노래한다. 연인에게 위험을 청하는 화법이 달콤함과 위협을 함께 품고 있다.
  • 곡이 진행될수록 전기 기타가 한 겹씩 쌓이며 긴장이 커지고, 후반부에서 윌리엄슨의 리드 기타가 터져 나온다. 고요에서 폭발로 가는 구조를 따라가 보라.
  • 이 앨범에서 베이스를 맡은 사람은 원래 기타리스트였던 론 애시턴이다. 그의 베이스가 멜로디처럼 움직이는 대목에 귀를 기울여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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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미시간 팰리스의 밤 · 1973–1975

(투어) 1973년 밴드는 로스앤젤레스에 머물며 미국 곳곳을 돌았고, 키보드 연주자 스콧 서스턴이 합류해 소리에 피아노를 더했다. 그러나 앨범 판매가 부진하자 메인맨은 그해 밴드와의 관계를 정리했다. 레이블도 매니저도 없이 이어진 투어는 갈수록 고단해졌다. (신곡) 이 시기 밴드는 정식 녹음을 남기지 못한 새 곡들을 무대에서 꾸준히 연주했다. 「오픈 업 앤 블리드」나 「헤드 온」 같은 곡은 관객이 몰래 녹음한 테이프로만 전해지며 해체 뒤에도 오래 회자됐다. 정점의 앨범을 낸 직후에도 그들의 창작은 멈추지 않았지만, 그것을 담을 그릇이 없었다. (고별) 1974년 2월 9일, 디트로이트의 미시간 팰리스 공연이 그들의 마지막 무대가 됐다. 지역 오토바이 폭주족과의 신경전 속에 객석에서 병과 달걀이 날아들었고, 밴드는 마지막 곡으로 「루이 루이」를 연주하고 무대를 내려왔다. 이 밤의 녹음은 1976년 프랑스의 작은 레이블에서 《메탈릭 K.O.》로 나와 전설적인 라이브 음반이 됐다. (상실) 1975년 2월, 첫 베이스 연주자 데이브 알렉산더가 스물일곱 살에 폐부종으로 세상을 떠났다. 오랜 음주가 몸을 상하게 했다고 전해진다. 밴드를 함께 꾸린 네 사람 가운데 첫 번째 상실이었고, 스투지스라는 이름은 이후 거의 30년 동안 무대에 오르지 않았다.

VI. 흩어진 길 · 1975–2002

(홀로서기) 이기 팝은 솔로의 길을 택했다. 1977년 보위와 함께 베를린에 머물며 《디 이디엇》과 《러스트 포 라이프》를 만들었고, 같은 해 윌리엄슨과 1975년에 녹음해 둔 《킬 시티》도 나왔다. 윌리엄슨은 이기의 1979년 앨범 《뉴 밸류스》를 프로듀싱한 뒤 음악을 떠나 전자공학을 공부했고, 훗날 소니에서 기술 표준을 다루는 임원으로 일했다. (형제) 론 애시턴은 앤아버에 머물며 뉴 오더, 디스트로이 올 몬스터스 같은 밴드에서 기타를 쳤고 저예산 공포 영화에 배우로 출연하기도 했다. 스콧은 MC5의 기타리스트 프레드 '소닉' 스미스가 이끈 소닉스 랑데부 밴드에서 드럼을 쳤다. 프레드 스미스는 1980년 패티 스미스와 결혼해 디트로이트 근교에 정착한 인물이다. (유산) 그사이 스투지스는 펑크의 조상이 됐다. 섹스 피스톨즈는 1977년 「노 펀」을 커버해 싱글 뒷면에 실었고, 소닉 유스는 1983년 첫 정규 앨범 《컨퓨전 이즈 섹스》에서 「아이 워너 비 유어 도그」를 연주했다.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은 일기에 적은 애청 음반 목록 맨 위에 《로 파워》를 올렸고, 건즈 앤 로지스는 1993년 「로 파워」를 녹음했다. (재회) 1998년 토드 헤인스의 영화 《벨벳 골드마인》을 위해 론은 소닉 유스의 서스턴 무어, 스티브 셸리, 미니트멘 출신 베이스 연주자 마이크 와트 등과 임시 밴드를 꾸려 스투지스의 곡을 녹음했다. 이 만남은 론과 와트가 함께 무대에 서는 계기가 됐고, 흩어졌던 이름을 다시 불러내는 첫걸음이 됐다.

VII. 귀환과 마침표 · 2003–2016

(재결합) 2000년대 초 론 애시턴은 J 마스시스, 마이크 와트와 함께 스투지스의 곡을 연주하며 무대 감각을 되살렸고, 이기 팝은 2003년 솔로 앨범 《스컬 링》에 애시턴 형제를 불러 몇 곡을 함께 녹음했다. 그해 4월 캘리포니아 코첼라 페스티벌에서 이기와 애시턴 형제, 베이스의 마이크 와트가 무대에 올라 스투지스가 약 30년 만에 돌아왔다. 이후 색소폰의 스티브 매케이도 다시 합류했다. (보상) 재결합 밴드는 세계 각지의 대형 페스티벌을 돌았고, 2007년 스티브 앨비니가 녹음을 맡은 《더 위어드니스》를 냈다. 평단의 반응은 엇갈렸지만, 젊은 날 외면당했던 노래를 수만 명이 따라 부르는 광경은 그 자체로 늦게 도착한 보상이었다. (론) 2009년 1월 론 애시턴이 앤아버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예순 살이었다. 밴드는 소니를 떠난 윌리엄슨을 다시 불러들여 《로 파워》의 곡들을 중심으로 무대를 이어 갔고, 2010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2013년에는 윌리엄슨과 함께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 《레디 투 다이》를 냈다. (끝) 건강 문제로 무대를 떠나 있던 스콧 애시턴이 2014년 3월 세상을 떠났고, 2015년 10월에는 스티브 매케이도 숨졌다. 2016년 제임스 윌리엄슨은 인터뷰에서 이기와 자신을 빼고는 모두 세상을 떠났다며 스투지스는 끝났다고 말했다. 같은 해 짐 자무시가 밴드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기미 데인저》를 내놓으며, 반세기에 걸친 기록은 마침표를 찍었다.

덜 알려진 이야기

1999년 라이노 레코드의 한정판 전문 부서 라이노 핸드메이드는 일곱 장짜리 상자 《1970: 더 컴플리트 펀 하우스 세션스》를 내놓았다. 로스앤젤레스 녹음 기간에 남은 거의 모든 테이크가 순서대로 담겼는데, 같은 곡을 여러 차례 되풀이한 기록을 들으면 즉흥의 폭발처럼 들리던 앨범이 실은 매번 거의 같은 구조로 다듬어진 연주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소량 한정판에 값도 비싸 일반 청자에게는 거의 닿지 못했다. 데뷔 앨범에서 레이블이 거부한 존 케일의 원래 믹스는 40년 가까이 창고에 묻혀 있다가 2010년 나온 확장판에 실렸다. 오랫동안 녹음 과정의 일화로만 전해지던 판본이 실제 소리로 공개되면서, 같은 연주를 두고 프로듀서와 밴드가 서로 다른 앨범을 그리고 있었다는 점을 직접 비교할 수 있게 됐다. 1973~74년 무대에서만 연주되고 정식 녹음 없이 사라진 곡들은 관객의 녹음 테이프와 해적판으로만 떠돌았다. 2014년 제임스 윌리엄슨은 객원 가수들을 불러 이 곡들을 처음으로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앨범 《리-릭드》를 냈다.

용어 노트 📚🔎

리프

(록에서) 곡 전체에서 여러 번 되풀이되는 짧은 기타나 베이스 가락 토막을 말한다. 노래를 몰라도 리프 몇 마디만 들으면 무슨 곡인지 알아챌 수 있을 만큼, 리프는 곡의 얼굴 노릇을 한다. 운동회 응원에서 우리 반만의 박수 박자를 정해 두고 계속 반복하면, 멀리서 들어도 어느 반 응원인지 알 수 있는 것과 같다. 스투지스의 「아이 워너 비 유어 도그」는 세 개의 화음으로 된 리프 하나로 곡 전체를 끌고 간다.

퍼즈

(말뜻) 영어 fuzz는 보풀이나 솜털을 뜻한다. 소리 가장자리에 보풀이 일어난 것처럼 거칠고 뭉개진 느낌이 난다는 데서 붙은 이름이다. (록에서) 기타 소리를 일부러 찌그러뜨려 굵고 지글거리게 만드는 음색, 또는 그런 소리를 내는 장치를 말한다. 스피커 볼륨을 너무 크게 올리면 소리가 지직거리며 갈라지는데, 그 갈라짐을 일부러 만들어 멋으로 쓰는 것이다. 론 애시턴은 이 음색으로 스투지스 초기의 뭉툭하고 원시적인 기타 소리를 만들었다. (다른 데서는) 미국 속어로는 경찰을 가리키는 말로도 쓴다.

와와 페달

(말뜻) 밟았다 뗐다 하면 소리가 사람이 와와 하고 말하는 것처럼 들려서 소리를 흉내 낸 이름이 붙었다. (록에서) 기타리스트가 발로 앞뒤로 밟아 기타 음색을 밝게 했다 어둡게 했다 바꾸는 장치다. 입을 오므렸다가 크게 벌리면서 우와 하고 소리 내 보면 목소리 빛깔이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와와 페달은 기타에게 그 입 모양을 만들어 준다. 론 애시턴은 「T.V. 아이」 같은 곡의 솔로에서 이 장치로 기타가 울부짖는 듯한 소리를 냈다.

믹싱

(말뜻) 영어 mix는 섞는다는 뜻이다. (록에서) 따로따로 녹음된 목소리, 기타, 베이스, 드럼 소리의 크기와 좌우 위치를 조절해 하나의 완성된 소리로 섞는 작업이다. 같은 재료로 떡볶이를 만들어도 고추장과 설탕의 비율에 따라 맛이 완전히 달라지듯, 같은 녹음도 누가 믹싱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들린다. 《로 파워》는 1973년 보위의 믹스와 1997년 이기 팝의 믹스가 서로 달라 지금도 어느 쪽이 좋은지 의견이 갈린다.

오버더빙

(말뜻) over는 위에, dub는 소리를 입힌다는 뜻이다. 이미 있는 소리 위에 새 소리를 덧입힌다는 말이다. (록에서) 먼저 녹음해 둔 연주를 들으면서 그 위에 다른 악기나 목소리를 따로 덧녹음하는 방법이다. 기타리스트 한 명이 여러 대의 기타를 동시에 친 것처럼 들리게 만들 수 있다. 미술 시간에 밑그림 위에 투명 필름을 겹쳐 놓고 색을 한 겹씩 더 칠하는 것과 비슷하다. 《펀 하우스》는 오버더빙을 최소화하고 한꺼번에 연주한 반면, 《로 파워》는 기타를 여러 겹 덧녹음했다.

스테이지 다이빙

(록에서) 공연 중 가수나 연주자가 무대에서 관객 쪽으로 몸을 던지고, 관객들이 손을 뻗어 그 몸을 받쳐 띄워 주는 행동이다. 이기 팝은 이런 행동을 가장 먼저 무대의 일부로 만든 사람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수련회에서 하는 신뢰 게임, 그러니까 눈을 감고 뒤로 넘어지면 친구들이 받아 주는 놀이를 떠올리면 된다. 무대와 객석 사이의 벽을 허물고 관객을 공연의 일부로 끌어들이는 몸짓이다.

프로토펑크

(말뜻) 프로토(proto)는 그리스어에서 온 말로 첫째, 맨 처음이라는 뜻이다. 프로토펑크는 펑크보다 먼저 온 펑크라는 뜻이 된다. (록에서) 1970년대 중반 펑크 록이 이름을 얻기 전에 이미 펑크의 거칠고 단순하며 반항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던 밴드와 음악을 가리킨다. 스투지스, MC5, 벨벳 언더그라운드가 대표적이다. 게임이 정식으로 나오기 전에 먼저 공개되는 베타 버전을 떠올리면 쉽다. 아직 이름은 없었지만 훗날 펑크가 될 것의 뼈대가 이미 거기 다 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