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lash
「미래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 — 조 스트러머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멤버와 동료들 ⏳🌊
- 멤버조 스트러머
보컬과 기타를 맡아 밴드의 목소리이자 상징이 됐다.
- 멤버믹 존스
기타와 공동 작곡을 맡아 스트러머와 짝을 이뤄 곡을 썼다.
- 멤버폴 시몬
베이스와 밴드의 시각적 이미지를 함께 빚어냈다.
- 멤버토퍼 헤든
재즈 훈련을 받은 드러머로 밴드에 리듬의 깊이를 더했다.
- 매니저버니 로즈
밴드를 결성시키고 정치적 이미지를 설계한 인물이다.
- 영향보노
더블린에서 본 더 클래시의 무대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I. 웨스트 런던의 소집 · 1952–1976
(결성) 1976년, 영국 런던에서 결성됐다. 매니저 버니 로즈의 중개로 모인 조 스트러머(보컬과 기타), 믹 존스(기타와 보컬), 폴 시몬(베이스), 테리 차임스(드럼)가 그해 여름 처음 함께 연습했다. 밴드 이름은 지역 신문 머리기사에 거듭 등장하던 '충돌'이라는 낱말에서 따왔다고 전해진다. (빈민가) 밴드가 태어난 런던 서부는 가난과 인종 갈등이 겹친 동네였다. 빈 건물에 무단으로 들어가 사는 스쾃 생활이 흔했고, 실업과 주거 불안이 젊은이들의 분노를 키웠다. 몇 달 뒤 노팅힐 카니발에서 벌어진 경찰과 시민의 충돌은 밴드의 초기 노래에 직접적인 소재가 됐다. (스트러머) 조 스트러머는 1952년 8월 터키 앙카라에서 영국 외교관의 아들로 태어났다(본명 존 그레이엄 멜러).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다 영국의 기숙학교에 보내졌고, 그곳에서 겪은 고립감을 훗날 인터뷰에서 종종 언급했다. 형 데이비드를 1970년에 자살로 잃은 일은 그의 삶에 오래 그림자를 남겼다. 밴드 이전에는 런던 서부의 스쾃촌에서 펍 록 밴드 더 101스를 이끌었다. (존스와시몬) 믹 존스는 1955년 6월 런던에서 태어나 조부모 손에 자라며 브릭스턴의 공영 임대 아파트에서 성장했다. 해머스미스 미술학교에 다니며 모트 더 후플 같은 밴드에 심취했다. 폴 시몬은 1955년 12월 런던 출생으로 역시 미술을 공부했고, 처음에는 레게에 가까운 밴드를 꿈꿨으며 베이스는 존스에게 배우며 독학했다. (로즈) 매니저 버니 로즈는 섹스 피스톨스가 전주 밴드로 선 101스의 공연을 보고 스트러머에게 다가가 펑크가 미래라고 설득했다. 그는 네 사람을 한데 묶고 밴드의 정치적 이미지를 설계한 인물로, 이후 수년간 계약과 수익 배분을 둘러싸고 멤버들과 반복해 부딪혔다.
II. 하얀 폭동 · 1976–1977
(첫무대) 1976년 여름부터 런던의 클럽을 돌며 거친 라이브로 입소문을 얻었다. 드러머 테리 차임스는 데뷔 음반 녹음 뒤 밴드를 떠났고, 1977년 재즈 훈련을 받은 니키 토퍼 헤든이 새 드러머로 합류하며 이후 수년을 함께할 라인업이 완성됐다. (데뷔음반) 1977년 초 발매한 데뷔작은 프로듀서 미키 푸트와 세 번의 주말 세션 만에 4,000파운드 남짓으로 값싸게 녹음됐다. 실업과 지루함, 인종 문제를 다룬 가사가 거친 음질 그대로 담겼다. 동시에 대형 음반사 CBS와 맺은 계약금은 펑크 씬 안에서 상업성에 투항했다는 비판을 불렀지만, 밴드는 이 돈으로 공연 장비를 마련했다고 해명했다. (화이트라이엇) 싱글 「화이트 라이엇」은 그해 여름 노팅힐 카니발에서 목격한 경찰과 흑인 청년들의 충돌에서 비롯됐다. 스트러머는 백인 노동계급 청년들도 분노할 자격이 있다고 노래했고, 일부 평론가는 이를 인종 연대의 시도로, 일부는 오해의 여지가 있는 구호로 읽었다. (아일랜드) 1977년 10월 더블린 공연은 훗날 결성될 U2의 보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보노는 당시 10대 소년으로 그 무대를 보고 음악으로 세상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밝혔으며, 이는 훗날 U2의 초기 사운드와 사회적 발언에 흔적을 남겼다.
노팅힐 카니발의 충돌을 목격한 뒤 쓴 첫 싱글로, 밴드가 세상에 처음 던진 구호였다.
- 곡 길이가 2분 남짓으로 짧아, 군더더기 없이 질러 대는 초기 펑크의 태도를 그대로 담았다.
- 도입부의 경보음 같은 기타 소리가 경찰차 사이렌을 연상시킨다.
- 조 스트러머의 보컬은 노래라기보다 구호를 외치는 쪽에 가깝다.
- 두 음만 눌러 굵게 울리는 화음(파워 코드)을 단순하게 반복하는 구조라 기타를 처음 배우는 사람도 따라 치기 쉬운 곡으로 꼽힌다.
- 라이브에서는 스튜디오 버전보다 한층 빠르게 연주되며 초기 공연의 오프닝 곡으로 자주 쓰였다.
세 번의 주말 세션으로 값싸게 완성한 데뷔작으로, 거친 음질 그대로 당시 런던 거리의 지루함과 분노를 담았다.
- 프로듀서 미키 푸트와의 작업은 다듬기보다 속도를 우선했고, 그 거친 질감이 음반 전체의 개성이 됐다.
- 수록곡 「제이니 존스」는 따분한 직장 생활을 다루면서도 경쾌한 템포와 주고받는 코러스로 묘하게 신나게 들린다.
- 자메이카 곡 「폴리스 앤드 시브스」의 레게 커버가 끼어 있어, 훗날 레게로 확장될 사운드의 씨앗을 미리 보여 준다.
- 영국반과 미국반의 수록곡 구성이 달라, 당시 음반사가 펑크를 어떻게 포장해 팔려 했는지 엿볼 수 있다.
- 흑백으로 찍은 표지 사진과 거리 전단지 같은 글자체는 저예산 펑크 미학을 그대로 드러낸다.
III. 런던이 부른다 · 1979–1980
(변화) 1979년 들어 사운드가 펑크의 틀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레게와 로커빌리, 재즈의 흔적이 섞여 들었고, 프로듀서 가이 스티븐스는 녹음실에서 의자를 던지고 소리를 지르며 연주자들의 즉흥적인 에너지를 끌어냈다고 전해진다. (런던콜링) 같은 해 발매한 더블 앨범 《런던 콜링》은 핵발전소 사고와 템스강 범람 같은 종말의 상상을 뒤섞어 당대의 불안을 그렸다. 표지에는 폴 시몬이 무대에서 베이스를 내려치는 순간이 담겼는데, 사진가 페니 스미스가 찍은 이 장면과 엘비스 프레슬리의 1956년 데뷔 앨범을 본뜬 글자체가 만나 록 역사상 가장 유명한 앨범 표지 가운데 하나가 됐다. (산디니스타) 1980년에는 세 장짜리 앨범 《산디니스타!》를 내놓았다. 니카라과의 혁명 세력 이름을 제목에 썼을 만큼 정치적 관심이 뚜렷했고, 덥과 가스펠, 초기 랩에 가까운 리듬까지 아우르는 실험이었다. 멤버들은 로열티를 줄여서까지 세 장짜리 음반을 한 장 가격에 가깝게 내놓자고 음반사를 설득했다. (알이엠) 이 무렵 확장된 사운드는 대서양 건너 미국 음악가들에게도 가닿았다. R.E.M.은 더 클래시의 장르를 넘나드는 태도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핵 사고와 홍수 같은 종말의 이미지로 시작해, 펑크를 넘어 레게와 로커빌리까지 아우른 더블 앨범이다.
- 표제곡 도입부에서 폴 시몬의 하강하는 베이스 선율이 불길한 분위기를 먼저 깔아 놓는다.
- 믹 존스의 기타는 잔향을 길게 끌며(에코) 공간이 텅 빈 듯한 느낌을 더한다.
- 조 스트러머의 낮고 절박한 목소리는 노래한다기보다 경고를 외치는 투에 가깝다.
- 표지 사진은 공연 중 폴 시몬이 베이스를 무대에 내려치는 순간으로, 1956년 엘비스 프레슬리 데뷔 음반의 글자체를 그대로 빌려와 패러디했다.
- 앨범 전체는 재즈풍 발라드부터 로커빌리, 레게까지 넘나들어 한 밴드의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폭이 넓다.
세 장짜리 음반으로, 로열티를 줄여서까지 한 장 값에 가깝게 내놓은 정치적이고 실험적인 모험이었다.
- 수록곡 「더 매그니피션트 세븐」에서 스트러머는 노래보다 말하듯 읊조리는 창법을 선보이는데, 당시 미국에서 막 떠오르던 랩에 영향받은 시도로 꼽힌다.
- 폴 시몬의 반복적인 펑크(funk) 베이스 라인이 곡 전체를 끌고 간다.
- 여러 트랙에 자메이카식 리믹스 기법(더브)이 쓰여, 보컬을 지우고 메아리와 울림만 남긴 변주가 이어진다.
- 어린이 합창이나 가스펠풍 코러스가 끼어드는 곡도 있어, 장르를 가리지 않는 밴드의 태도를 보여 준다.
- 36곡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라, 한 번에 다 듣기보다 디스크별로 나눠 들으면 흐름을 따라가기 쉽다.
IV. 컴뱃 록 · 1981–1982
(미국) 1982년 더 후의 고별 투어에 전주로 서는 등 미국 투어를 늘리며 현지 팬을 넓혀갔다. 1982년 앨범 《컴뱃 록》은 밴드 최고의 상업적 성공을 거두며 빌보드 상위권에 올랐다. (카스바) 앨범에 실린 「락 더 카스바」는 드러머 토퍼 헤든이 스튜디오에서 혼자 피아노와 베이스, 드럼을 차례로 녹음해 뼈대를 완성한 곡이었다. 스트러머는 중동의 서양 음악 금지 소식을 신문에서 읽고 가사를 얹었고, 이 곡은 미국 라디오에서 뜻밖의 히트를 기록했다. (퇴출) 성공의 이면에서 균열도 커졌다. 토퍼 헤든은 헤로인 중독 문제로 1982년 5월 밴드를 떠났다고 훗날 직접 밝혔다. 테리 차임스가 잠시 돌아와 그 자리를 메웠다. (스트레이트투헬) 같은 앨범의 「스트레이트 투 헬」은 베트남전이 남긴 혼혈 아동과 쇠락한 영국 공업도시 이야기를 나란히 놓은 곡으로, 성공의 열기 속에서도 밴드가 여전히 사회의 그늘을 주시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드러머 토퍼 헤든이 혼자 뼈대를 완성한 곡으로, 밴드에게 가장 큰 미국 라디오 히트를 안겼다.
- 곡을 여는 피아노 리프는 토퍼 헤든이 드럼이 아닌 건반 앞에 앉아 즉흥으로 만든 것이다.
- 베이스 역시 헤든이 직접 연주해 녹음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 위에 스트러머와 존스가 가사와 기타를 얹었다.
- 사박자 댄스 비트는 밴드의 다른 곡들보다 훨씬 춤추기 좋게 설계돼, 펑크 밴드답지 않은 대중성을 보여 준다.
- 뮤직비디오는 미국 텍사스 사막에서 촬영됐고, 풍자적인 이미지로 화제를 모았다.
- 훗날 걸프전 당시 미군 라디오에서도 흘러나왔다는 일화가 전해질 만큼 뜻밖의 맥락에서 소비된 곡이다.
밴드에서 가장 대중적인 곡으로, 훗날 영화와 광고에 쓰이며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차트에 올랐다.
- 두 음만 눌러 굵게 울리는 화음(파워 코드)을 반복하는 단순한 리프가 곡 전체를 이끈다.
- 절마다 영어 가사와 스페인어 가사를 번갈아 주고받는 구성이 독특한 긴장감을 만든다.
- 브리지 없이 절과 후렴만 반복하는 경제적인 구조라, 라디오에서 틀기 좋게 다듬어진 곡이다.
- 1991년 청바지 광고에 쓰인 뒤 영국 싱글 차트 1위에 올라, 발표 9년 만에 거둔 뒤늦은 성공으로 유명하다.
성공의 정점에서도 베트남전의 그늘과 쇠락한 공업도시를 나란히 응시한 조용한 곡이다.
- 토퍼 헤든의 드럼은 밴드답지 않게 느리고 춤곡(보사노바)풍 리듬을 친다.
- 요란한 리프 대신 분위기를 그리는 기타 선율이 공간을 채운다.
- 두 이야기 — 베트남전이 남긴 혼혈 아동과 영국 공업도시의 몰락 — 가 하나로 합쳐지지 않은 채 보도하듯 담담하게 이어진다.
- 스트러머의 목소리는 이전 곡들의 절박한 외침과 달리 지친 듯 가라앉아 있다.
- 2007년 엠아이에이(M.I.A.)의 「페이퍼 플레인스」에 샘플링되며 새로운 세대에게 다시 알려졌다.
V. 갈라서다 · 1983–1986
(해고) 1983년 9월, 스트러머와 폴 시몬은 창작 방향을 둘러싼 갈등 끝에 믹 존스를 밴드에서 내보냈다. 두 사람이 함께 써 온 노래들의 중심축이 사라지면서 밴드의 음악적 동력도 크게 흔들렸다. (컷더크랩) 1985년 새 멤버들과 함께 낸 《컷 더 크랩》은 로즈가 제작을 주도했으나 평단과 팬 모두에게 외면받았다. 스트러머는 훗날 이 음반을 자신의 작품 목록에서 사실상 지우다시피 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후) 밴드를 떠난 믹 존스는 곧바로 새 그룹 빅 오디오 다이너마이트를 결성해 힙합과 전자음악을 접목한 음악을 이어갔다. 한때 같은 무대에 섰던 두 사람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각자의 길을 걸었다. (종언) 1986년 1월, 밴드는 공식적으로 해체를 발표했다. 10년 전 런던 서부의 가난과 분노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VI. 다 쓰이지 않은 미래 · 1986–2002
(스트러머그후) 해체 후 조 스트러머는 영화배우 알렉스 콕스의 작품에 출연하고 BBC 월드서비스에서 라디오 진행자로 일하며 음악 밖의 삶을 넓혔다. 1999년에는 새 밴드 더 메스칼레로스를 꾸려 다시 무대에 올랐다. (죽음) 2002년 12월, 스트러머는 자택에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선천성 심장 결함이 뒤늦게 발견되지 않은 채로 있었던 탓이었다. 향년 50세였다. (명예) 이듬해인 2003년 밴드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헌액에 맞춰 재결합 공연이 거론됐으나 스트러머의 죽음으로 무산됐고, 밴드는 끝내 한 무대에 다시 서지 못했다. (영향) 더 클래시가 남긴 정치적 발언과 장르를 넘나드는 태도는 이후 세대에 오래 흔적을 남겼다. 보노는 더블린에서 본 그들의 무대를 자신이 음악을 대하는 태도의 출발점으로 꼽았고,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톰 모렐로 역시 이들을 저항의 음악을 만든 선배로 자주 언급했다.
덜 알려진 이야기
1981년 뉴욕의 공연장 본즈 카지노에서는 소방 안전 규정 때문에 당국이 판매된 입장권 수만큼 공연장에 들여보낼 수 없다고 통보했다. 밴드는 이미 표를 산 팬들을 돌려보낼 수 없다며 같은 가격으로 공연 횟수를 늘리기로 했고, 결국 17일 연속으로 매일 밤 무대에 섰다. 수익보다 팬과의 약속을 앞세운 이 선택은 당시 크게 보도되지 않았지만 멤버들의 회고와 공연 기록으로 확인된다. 밴드는 한때 수입을 비교적 고르게 나누려 했다고 전해진다. 작곡 크레디트와 상관없이 수입을 고르게 나누자는 이 원칙은 평등을 내세운 밴드의 태도를 보여 주는 사례로 전기 작가들에 의해 기록됐지만, 화려한 히트곡 서사에 가려 잘 언급되지 않는다. 밴드의 가장 큰 미국 히트곡으로 꼽히는 「락 더 카스바」는 사실 드러머 토퍼 헤든이 스튜디오에서 혼자 오후 한나절 만에 드럼과 베이스, 피아노를 차례로 쌓아 올려 완성한 곡이었다. 다른 멤버들은 그 뒤에 가사와 기타를 얹었을 뿐이다. 헤든 자신이 여러 인터뷰에서 이 과정을 밝혔지만, 밴드 전체의 합작으로 알려진 통념 때문에 이 사실은 열성 팬들 사이에서만 자주 오간다.
용어 노트 📚🔎
펑크록
(록에서) 1970년대 중반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터져 나온 음악 흐름으로, 복잡한 연주 기술 대신 짧고 거친 노래로 분노와 지루함을 그대로 쏟아내는 태도를 가리킨다. 학교 밴드부에서 어려운 곡을 완벽하게 연습하는 대신, 세 개의 화음만으로 친구들과 당장 하고 싶은 말을 소리치며 노래를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펑크라는 말은 음악 밖에서는 불량하다, 하찮다는 뜻의 속어로도 쓰인다.
파워 코드
(록에서) 기타에서 세 음으로 이뤄진 화음 대신 두 음만 눌러 굵고 단순하게 울리는 화음이다. 장조와 단조의 구별이 없어서 어떤 멜로디 위에도 걸치기 쉽고, 소리를 일부러 찢어지게 왜곡한 기타 음색(디스토션)과 함께 쓰면 더 두껍게 들린다. 피아노로 치면 복잡한 코드를 다 외우지 않고도 두 건반만 눌러 힘있는 소리를 내는 것과 비슷하다.
더브
(말뜻) 더빙이라는 말에서 줄어든 표현으로, 원곡을 다시 입혀 만든다는 뜻을 담고 있다. (록에서) 자메이카에서 생겨난 리믹스 기법으로, 원곡에서 보컬과 악기 일부를 지우고 베이스와 드럼만 두드러지게 남긴 뒤 메아리와 울림(에코와 리버브) 효과를 더해 새로운 느낌을 만든다. 합창 시간에 부르던 노래에서 가사를 빼고 손뼉 치는 리듬만 남겨 메아리방에서 울리게 한다고 상상하면 비슷하다.
그루브
(록에서) 베이스와 드럼이 서로 맞물려 만들어 내는 반복적인 리듬의 느낌을 가리킨다. 멜로디가 아니라 몸이 저절로 움직이게 만드는 바탕이 되는 박자감이다. 줄넘기할 때 두 사람이 줄을 돌리는 손발의 합이 척척 맞아야 뛰는 사람이 편하게 뛸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그루브는 일상에서 흐름을 탄다, 리듬을 찾았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오버더빙
(말뜻) 영어로 위에(over) 덧입힌다(dub)는 뜻을 그대로 합친 말이다. (록에서) 한 번에 다 같이 연주해 녹음하지 않고, 기본 연주를 먼저 녹음한 뒤 그 위에 다른 악기나 목소리를 따로 녹음해 겹쳐 쌓는 방식이다. 그림을 그릴 때 밑그림을 먼저 그리고 그 위에 색을 한 겹씩 덧칠해 완성하는 것과 비슷하다.
리프
(록에서) 곡 전체에서 반복되며 그 곡의 정체성을 만드는 짧은 기타나 베이스 선율을 가리킨다. 노래의 후렴구가 목소리로 기억에 남는다면, 리프는 악기로 기억에 남는 부분이다. 체육 시간에 반복해서 외치는 구호처럼, 한 번 들으면 곡 전체를 떠올리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