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y Orbison
‘밥 딜런 같은 가사에 필 스펙터 같은 소리를 내는 음반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로이 오비슨처럼 노래하고 싶었다.’ — 브루스 스프링스틴, 1987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정 연설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멤버와 동료들 ⏳🌊
- 프로듀서샘 필립스
선 레코드에서 「우비 두비」를 냈지만 로커빌리를 원해 오비슨의 발라드 지향과 엇갈렸다.
- 가족클로데트 오비슨
첫 아내로 「클로데트」와 「오 프리티 우먼」의 착상이 되었고, 1966년 오토바이 사고로 숨졌다.
- 프로듀서프레드 포스터
모뉴먼트 레코드에서 현악과 발라드를 허락해 오비슨의 전성기 소리를 함께 만들었다.
- 가족바버라 오비슨
1969년 결혼한 두 번째 아내로, 그의 활동을 관리하며 1980년대의 재기를 함께했다.
- 영향브루스 스프링스틴
오비슨처럼 노래하고 싶었다고 밝혔고, 명예의 전당 헌정 연설과 「흑백의 밤」 무대를 함께했다.
- 프로듀서제프 린
트래블링 윌버리스의 동료이자 「미스터리 걸」의 프로듀서로 「유 갓 잇」을 함께 썼다.
I. 석유 마을의 소년 · 1936–1954
(출생) 1936년 4월, 미국 텍사스주 버넌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로이 켈턴 오비슨이었다. 아버지 오비 리 오비슨은 유정 굴착공이자 자동차 정비공이었고, 어머니 나딘 베스타 슐츠는 간호사였다. 형 그레이디 리와 동생 새미 키스 사이의 둘째였다. (기타) 여섯 살 생일에 아버지에게서 기타를 선물받았다. 아버지와 삼촌들이 부르던 컨트리,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행크 윌리엄스와 레프티 프리젤, 국경 너머 멕시코 방송의 노래를 귀로 익혔다. 1943년 가족은 전시 군수 공장 일자리를 따라 포트워스로 옮겼으나, 소아마비가 번지자 소년은 한동안 버넌의 할머니 집으로 보내졌다. (윙크) 1946년 가족은 서부 텍사스의 석유 마을 윙크에 정착했다. 모래바람과 유정탑이 풍경의 전부인 곳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시력이 몹시 나빠 두꺼운 안경을 썼고, 창백한 피부와 옅은 머리색 때문에 외모에 자신이 없었다. 훗날 그는 윙크를 미식축구와 석유와 모래뿐인 마을로 회고했다. 여름이면 유전에서 일했다. (밴드) 고등학교에서 친구들과 윙크 웨스터너스를 만들어 컨트리와 서부 스윙을 연주했다. 지역 방송 출연과 댄스홀 공연이 이어졌다. 운동도 외모도 내세울 것 없던 수줍은 소년에게 노래는 자신을 드러내는 거의 유일한 길이었다. 몸짓 대신 목소리만으로 인정받던 이 경험이, 훗날 무대에서 꼼짝 않고 서서 목소리 하나로 청중을 붙잡는 그의 방식의 뿌리가 되었다고 전기 작가들은 본다.
II. 선 레코드의 어색한 옷 · 1954–1959
(대학) 1954년 노스텍사스 주립대에 진학해 지질학을 공부하려 했다. 같은 학교의 팻 분이 음반을 내고 성공하는 것을 보며 음악을 직업으로 삼을 생각을 굳혔다고 전해진다. 이듬해 오데사 전문대로 옮긴 그는 밴드 이름을 틴 킹스로 바꾸고 오데사 방송에서 자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텍사스를 휩쓸던 무렵이었다. (우비 두비) 1956년 대학 친구들이 쓴 「우비 두비」를 뉴멕시코주 클로비스의 노먼 페티 스튜디오에서 녹음해 작은 레이블로 냈다. 이 음반이 멤피스의 샘 필립스에게 전해졌고, 선 레코드에서 다시 녹음한 「우비 두비」는 빌보드 차트 59위에 올랐다. 그는 멤피스로 거처를 옮겨 조니 캐시, 칼 퍼킨스, 제리 리 루이스와 남부를 순회했다. (갈등) 그러나 필립스가 원한 것은 컨트리와 리듬앤드블루스가 섞인 빠른 초기 로큰롤(로커빌리)이었고, 그가 쓰고 싶은 것은 느리고 극적인 사랑 노래(발라드)였다. 후속곡들은 실패했고 틴 킹스도 흩어졌다. 훗날 그는 선 시절의 자신을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사람처럼 회고했다. (클로데트) 1957년 그는 오데사에서 만난 클로데트 프레이디와 결혼했다. 이듬해 첫아들 로이 드웨인이 태어났다. 아내를 위해 쓴 「클로데트」를 에벌리 브라더스가 1958년 히트곡 「올 아이 해브 투 두 이즈 드림」의 B면에 실었고, 그 저작권료는 무명의 그에게 처음으로 생활을 받쳐 줄 돈이 되었다. 그는 내슈빌의 음악 출판사 어커프로즈에 전속 작곡가로 들어갔고, RCA에서 잠시 녹음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자신의 목소리에 맞는 소리를 아직 찾지 못한 채였다.
선 레코드가 원한 로커빌리 가수 오비슨의 모습이 담긴 첫 히트곡이다. 훗날의 발라드와 나란히 들으면 그가 무엇을 벗어나려 했는지 들린다.
- 보컬 전체에 짧게 한 번 되울리는 메아리(슬랩백 에코)가 걸려 있다 — 선 스튜디오 특유의 소리로, 엘비스의 선 시절 녹음과 같은 질감이다.
- 간주의 리드 기타는 오비슨 자신이 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컨트리풍으로 짧게 튕기는 음을 들어 보면 그가 노래 이전에 기타리스트였음을 알 수 있다.
- 보컬은 음을 끊어 튀기듯 부르는 로커빌리 창법이다. 몇 년 뒤 길게 끌어 올리는 발라드 창법과 비교해 들으면 같은 목소리의 다른 얼굴이 보인다.
- 2분 남짓한 길이에 절과 간주가 빠르게 반복된다 — 춤추기 위한 곡이라는 점이 형식에서 드러난다.
III. 모뉴먼트의 고독한 목소리 · 1959–1962
(포스터) 1959년 내슈빌의 작은 레이블 모뉴먼트의 프레드 포스터가 그와 계약했다. 포스터는 로커빌리를 강요하지 않았고, 현악과 주 가수를 받쳐 주는 코러스(백킹 보컬)를 쓰고 싶다는 그의 바람을 받아들였다. 녹음은 RCA 스튜디오 B에서 기술자 빌 포터, 녹음 때마다 불려 오는 내슈빌의 일급 전문 연주자들(세션 연주자)과 함께 했다. 텍사스 출신 작곡가 조 멜슨이 작곡 동료가 되었다. (온리 더 론리) 1960년 멜슨과 쓴 「온리 더 론리」는 처음에 엘비스와 에벌리 브라더스에게 건네려던 곡이었다고 전해진다. 직접 부른 이 곡은 미국 2위, 영국 1위에 올랐다. 포터는 리듬부터 쌓는 관례와 달리 목소리와 코러스, 현악을 먼저 세우고 드럼을 뒤로 물리는 방식으로 소리를 섞었다고 회고했다. 목소리가 공중에 떠 있는 듯한 그의 소리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러닝 스케어드) 1961년 「러닝 스케어드」는 같은 리듬을 끝까지 반복하는 스페인 춤곡(볼레로)의 박자 위에서 점점 커지다가(크레셴도) 마지막 고음에서 터지는 곡으로, 그의 첫 미국 1위가 되었다. 같은 해 「크라잉」이 2위에 올랐다. 그는 가슴에서 울리는 목소리와 높고 가는 가성(팔세토) 사이를 이음매 없이 오갔다. (화자) 그의 노래 속 남자는 대개 버림받거나, 질투에 떨거나, 꿈속에서만 사랑을 얻었다. 무대 밖의 그는 막 성공을 거둔 젊은 가장이었지만, 노래는 윙크 시절의 외로움과 불안을 놓지 않았다. 그는 검은 옷을 입고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채 노래했고, 그 정적이 노래의 극적인 고조를 더 두드러지게 했다.
모뉴먼트와 스튜디오 B에서 마침내 자기 소리를 찾은 순간이다. 외로운 사람만이 아는 마음을 털어놓는 화자는 이후 그의 노래 대부분의 원형이 되었다.
- 도입부의 남성 코러스는 낮은 음절을 반복하며 사실상 리듬 악기 역할을 한다 — 드럼보다 코러스가 곡을 끌고 가는 구조다.
- 빌 포터가 회고한 대로 목소리와 코러스가 앞에, 드럼이 뒤에 놓여 있다. 이어폰으로 들으면 드럼이 얼마나 멀리 물러나 있는지 느껴진다.
- 후반부에서 가슴 목소리가 가성(팔세토)으로 넘어가는 지점을 들어 보라 — 이음매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 길이는 2분 반이 채 되지 않는다. 짧은 시간 안에 고백에서 절정까지 올라가는 압축이 이 곡의 힘이다.
질투와 불안에 떠는 화자가 옛 연인의 등장을 두려워하는 이야기를 볼레로의 리듬에 실었다. 그의 첫 미국 1위곡이다.
- 처음부터 끝까지 스네어 드럼이 같은 행진 같은 리듬(볼레로)을 반복한다 — 라벨의 「볼레로」처럼 반복이 긴장을 쌓는다.
- 후렴이 없다. 작게 시작한 노래가 2분 남짓 동안 한 방향으로만 커지는(크레셴도) 구조를 따라가 보라.
- 마지막 고음은 가성이 아니라 가슴에서 울리는 목소리로 부른다. 녹음 때 가성이 오케스트라에 묻히자 온 목소리로 바꿔 불렀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 결말은 맨 마지막 순간에야 뒤집힌다 — 이야기의 반전이 음악의 절정과 정확히 겹치도록 짜여 있다.
우연히 옛 연인과 마주친 뒤 홀로 무너지는 남자의 고백이다. 조 멜슨과 함께 쓴 곡으로, 그의 고독한 화자가 가장 극단까지 간 노래다.
- 도입은 기타와 현악이 조용히 깔리고 목소리가 낮게 시작한다 — 감정을 억누르는 화자의 태도가 편곡에 그대로 담겼다.
- 곡이 진행될수록 현악과 코러스가 하나씩 더해진다. 마지막 절정의 고음 직전, 반주가 순간 비워지는 자리를 들어 보라.
- 흐느낌처럼 음을 떨며 끄는 창법이 반복되지만, 음정은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다 — 감정과 통제가 동시에 들린다.
- 1987년 k.d. 랭과 다시 녹음한 이중창 판은 1989년 그래미상을 받았다. 원곡과 비교하면 남녀 두 목소리가 고음을 주고받는 방식이 새롭다.
IV. 검은 안경 · 1963–1965
(인 드림스) 1963년의 「인 드림스」는 꿈에서 착상을 얻어 깨어난 뒤 20분 남짓 만에 썼다고 그는 말했다. 후렴을 되풀이하지 않고 서로 다른 일곱 부분이 차례로 이어지는, 대중가요로서는 드문 형식이었다. (안경) 그해 그는 비행기에 평소 쓰던 안경을 두고 내리는 바람에 도수 있는 선글라스를 쓰고 무대에 섰고, 이것이 평생의 상징이 되었다. 수줍은 그에게 검은 안경은 청중의 시선을 막아 주는 가면이기도 했다. (비틀스) 1963년 5월 영국 순회에서 그는 원래 주연이었으나, 폭발적으로 떠오르던 비틀스가 공연의 마지막 자리를 넘겨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매일 밤 거듭 앙코르를 받았고, 뒤이어 나서야 하는 비틀스가 무대에 오르기 힘들어했다고 전해진다. 레넌은 「플리즈 플리즈 미」를 처음에 로이 오비슨풍의 느린 곡으로 썼다고 밝혔다. 1965년 초에는 롤링 스톤스와 함께 오스트레일리아를 순회했다. (프리티 우먼) 1964년 빌 디스와 함께 쓴 「오 프리티 우먼」은 클로데트가 쇼핑하러 나서던 순간에서 착상을 얻었다고 전해지며, 미국과 영국에서 모두 1위에 올랐다. 늘 실연의 화자였던 그가 처음으로 활기차고 짓궂은 남자를 노래했다. (균열) 그러나 집안은 흔들렸다. 그가 순회로 집을 비우는 동안 클로데트의 외도가 이어졌고, 둘은 1964년 이혼했다가 이듬해 다시 결혼했다. 1965년 그는 모뉴먼트를 떠나 100만 달러 규모로 알려진 조건으로 MGM과 계약했다. 큰돈과 영화 출연의 약속이었지만, 포스터와 포터의 스튜디오를 떠난 그의 음악은 다시는 같은 높이에 이르지 못했다.
꿈속에서만 연인을 만나는 남자의 노래로, 그가 꿈에서 착상을 얻었다고 한 곡이다. 23년 뒤 「블루 벨벳」이 이 곡에 전혀 다른 그림자를 드리웠다.
- 도입부는 말하듯 낮은 음역에서 시작한다 — 잠들기 직전 혼잣말 같은 화법이다.
- 서로 다른 일곱 부분이 차례로 이어지고 한 번도 되돌아가지 않는다. 후렴을 기다리며 듣다 보면 곡이 계속 새 장면으로 넘어가는 것을 알게 된다.
- 마지막 부분에서 목소리가 한 옥타브 가까이 치솟는다.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의 상실감이 음높이로 그려진다.
- 「블루 벨벳」에서 배우 딘 스톡웰이 이 곡에 입을 맞추는 장면과 함께 들으면, 같은 노래가 얼마나 불길하게 들릴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늘 실연을 노래하던 그가 지나가는 여인에게 말을 거는 짓궂은 남자가 되었다. 클로데트에게서 착상을 얻었다고 전해지는 곡이 미국과 영국 정상에 올랐다.
- 도입의 드럼 박에 이어 나오는 기타 리프는 여러 대의 기타가 같은 선율을 함께 쳐서 두껍게 만든 소리로 알려져 있다.
- 중간에 그가 낮게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는 대목이 있다 — 즉흥적으로 넣었다고 전해지며, 고음의 가수가 보여 준 의외의 장난기다.
- 후반부에 템포가 느려지며 화자가 망설이는 브리지가 나온다. 빠른 리프로 돌아오기 직전의 정적을 놓치지 말 것.
- 엔딩에서 이야기가 반전된다 — 음악이 다시 리프로 돌아오며 화자의 기분이 바뀌는 순간을 들어 보라.
- 1982년 밴 헤일런의 리메이크와 비교하면, 같은 리프가 디스토션 걸린 기타로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 수 있다.
V. 상실 · 1966–1977
(사고) 1966년 6월, 테네시주 갤러틴 근처에서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던 클로데트가 트럭과 부딪혀 숨졌다. 다시 결혼한 지 반년 남짓 지난 때였다. (화재) 1968년 9월, 그가 영국 순회 중일 때 테네시주 헨더슨빌 올드히코리 호숫가의 집에 불이 나 열 살 로이 드웨인과 여섯 살 앤서니가 숨졌다. 막내아들은 집에 있던 그의 부모가 구해 냈다. 이웃이자 오랜 동료였던 조니 캐시가 그 땅을 사들였고, 집터에는 과수원이 들어섰다. (바버라) 그해 영국 리즈에서 독일 출신의 바버라 야콥스를 만나 1969년 결혼했다. 둘 사이에서 두 아들이 태어났다. 바버라는 훗날 그의 일을 관리하는 동반자가 되었다. (침체) MGM 시절의 음반은 미국에서 거의 팔리지 않았고, 주연 영화 「패스티스트 기타 얼라이브」(1967)도 주목받지 못했다. 그는 상실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하는 일이 드물었고, 슬픔을 노래로 직접 옮기기보다 쉼 없는 순회공연 속에 묻었다고 전기 작가들은 본다. 오히려 상실 이전에 부른 실연과 고독의 노래들이, 이 시기 이후 청중에게 그의 삶을 미리 말한 것처럼 들리게 되었다. (유럽) 영국과 유럽의 청중은 그를 잊지 않았고, 그는 1970년대 내내 그곳 무대에서 생계를 이었다. 미국에서는 추억의 가수가 되어 가고 있었다. 1977년 린다 론스태드가 그의 「블루 바유」를 다시 불러 큰 히트를 기록하면서, 젊은 세대가 원작자의 이름을 다시 찾아보기 시작했다.
VI. 다시 불려 나온 목소리 · 1978–1987
(수술) 1978년 1월 그는 심장 관상동맥 세 곳의 우회 수술을 받았다. 회복한 그는 1980년 에밀루 해리스와 함께 부른 「댓 러빙 유 필링 어게인」으로 이듬해 그래미상을 받았다. 같은 해 돈 매클레인이 「크라잉」을, 1982년에는 밴 헤일런이 「오 프리티 우먼」을 다시 불러 히트시켰다. 후배들의 리메이크가 원곡의 목소리를 되불러 냈다. (블루 벨벳) 1986년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 「블루 벨벳」에서 「인 드림스」가 기괴하고 폭력적인 장면에 쓰였다. 처음 영화를 본 그는 당혹스러워했으나 이후 받아들였다고 전해진다. 꿈결 같으면서도 불길한 노래로 다시 들리면서, 그의 음악은 젊은 관객에게 새롭게 다가갔다. 그는 버진 레코드와 계약하고 옛 히트곡들을 다시 녹음했다. (명예의 전당) 1987년 1월 그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헌정 연설을 맡은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본 투 런」을 만들던 시절 무엇보다 로이 오비슨처럼 노래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청년 스프링스틴에게 그의 노래는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음악이었다. (흑백의 밤) 같은 해 9월 로스앤젤레스의 클럽 코코넛 그로브에서 열린 공연은 흑백으로 촬영되어 이듬해 「흑백의 밤」이라는 이름으로 방송되었다. 음악감독 티 본 버넷 아래 스프링스틴, 엘비스 코스텔로, 톰 웨이츠, 잭슨 브라운, k.d. 랭, 보니 레이트가 기타와 건반, 코러스를 맡아 그를 받쳤다. 한 세대 후배들이 스스로 그의 반주자를 자청한 그 밤은, 오랜 침체를 지나온 그에게 공적인 복권과도 같았다.
VII. 레프티 윌버리 · 1988
(윌버리스) 1988년 봄, 조지 해리슨이 싱글의 B면을 녹음하려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밥 딜런의 집 스튜디오에서 해리슨, 제프 린, 톰 페티, 딜런, 그리고 오비슨이 「핸들 위드 케어」를 함께 만들었다. 곡이 B면으로 쓰기에는 아깝다는 판단에 작업은 앨범으로 커졌고, 다섯은 가상의 이복형제로 꾸민 트래블링 윌버리스가 되었다. 이미 유명한 음악가들이 모인 이 밴드(슈퍼그룹)에서 그의 이름은 어린 시절의 우상 레프티 프리젤에게서 딴 레프티 윌버리였다. 10월에 나온 첫 앨범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미스터리 걸) 같은 해 그는 솔로 앨범 「미스터리 걸」을 녹음했다. 제프 린, 톰 페티와 함께 「유 갓 잇」을 썼고, U2의 보노와 디 엣지가 「쉬즈 어 미스터리 투 미」를 써 주었다. 20여 년 만에 그는 자신의 새 노래로 차트에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함께 작업한 동료들은 이 시기의 그를 온화한 사람으로 기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죽음) 12월 4일 오하이오에서 공연을 마친 그는 테네시주 헨더슨빌의 어머니 집에 머물렀다. 12월 6일 아들들과 모형 비행기를 날리며 하루를 보낸 뒤 심장마비로 쓰러져, 52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로스앤젤레스 웨스트우드 빌리지 메모리얼 파크에 묻혔다. (사후) 1989년 초 「유 갓 잇」은 미국 9위에 올랐고, 「미스터리 걸」과 윌버리스 앨범이 나란히 차트 상위권에 머물렀다. 윌버리스의 다음 싱글 「엔드 오브 더 라인」 뮤직비디오에서 그의 자리는 흔들의자 위에 놓인 기타 한 대로 대신했다.
제프 린, 톰 페티와 함께 쓴 마지막 해의 노래로, 그의 사후에 미국 9위에 올랐다. 모든 것을 주겠다고 약속하는 밝은 화자는 오랜 고독의 노래들과 대조를 이룬다.
- 제프 린의 프로듀싱답게 통기타 스트로크가 여러 겹 겹쳐 있고 드럼이 단단하게 앞에 나와 있다 — 1960년대 모뉴먼트 녹음과 정반대의 배치다.
- 후렴 끝의 고음을 들어 보라. 52세의 목소리가 20대 때의 음역을 거의 그대로 지키고 있다.
- 코러스는 린 특유의 촘촘하게 겹친 화음이다 — 트래블링 윌버리스 녹음과 같은 질감이다.
- 1988년 11월 벨기에 앤트워프의 시상식 무대에서 부른 영상이 그의 마지막 방송 무대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덜 알려진 이야기
(우비 두비) 오비슨의 첫 히트곡은 그가 쓴 곡이 아니었다. 「우비 두비」는 노스텍사스 주립대 시절의 친구 웨이드 무어와 딕 페너가 쓴 곡이었다. 훗날 그가 스스로 쓴 발라드들로 기억되면서, 그의 출발점이 남의 노래였다는 사실은 전기의 앞부분에서만 짧게 다뤄지게 되었다. (엘비스) 엘비스 프레슬리가 오비슨을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가수라고 불렀다는 말은 오늘날까지 널리 인용된다. 그러나 이 말이 언제 어디서 나왔는지를 보여 주는 녹음이나 동시대 기사는 분명하지 않고, 주로 오비슨 주변 사람들의 회고를 통해 전해진다. 홍보 문구로 반복되면서 출처를 묻지 않는 신화가 된 대목이다. (온리 더 론리) 그의 출세작 「온리 더 론리」는 원래 엘비스와 에벌리 브라더스에게 건네려던 곡이었다고 전해진다. 작곡가로 먼저 생계를 꾸리던 그는 좋은 곡을 유명 가수에게 파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겼다. 이 곡이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나왔다면, 그의 가수 경력은 전혀 다르게 흘렀을 것이다. (안경) 그를 상징하는 검은 선글라스는 연출이 아니라 우연이었다. 1963년 평소 쓰던 안경을 비행기에 두고 내린 뒤 도수 있는 선글라스로 무대에 섰고, 비틀스와의 영국 순회 사진이 그 모습을 퍼뜨리면서 이미지로 굳었다. 시력이 몹시 나빴던 그에게 그것은 멋이기 전에 필요였다. (레프티) 트래블링 윌버리스에서 쓴 이름 레프티 윌버리는 컨트리 가수 레프티 프리젤에게서 왔다. 윙크의 소년이 라디오로 듣던 우상의 이름을, 생애 마지막 해에 비틀스와 밥 딜런 곁에서 다시 꺼내 쓴 셈이다. 농담처럼 지은 가명이어서 대개 그냥 지나치는 대목이다.
용어 노트 📚🔎
로커빌리
(말뜻) 로큰롤(rock)과 힐빌리(hillbilly)를 합친 말이다. 힐빌리는 미국 남부 산골 사람을 낮춰 부르던 말이자, 그들이 즐기던 컨트리 음악을 가리키던 옛 이름이다. (록에서) 1950년대 중반 미국 남부에서 백인의 컨트리 음악과 흑인의 리듬앤드블루스가 섞여 생긴 초기 로큰롤이다. 빠른 박자, 손가락으로 줄을 튕기는 큰 베이스, 짧게 되울리는 메아리 효과가 특징이다. 엘비스 프레슬리와 오비슨의 선 레코드 시절 녹음이 대표적이다. 집에서 먹던 반찬 두 가지를 한 그릇에 넣고 비볐더니 전혀 새로운 맛이 난 것과 비슷하다.
발라드
(말뜻) 춤추다라는 뜻의 라틴어 ballare 에서 나온 말로, 원래 중세 유럽에서 춤에 맞춰 부르던 이야기 노래를 가리켰다. (록에서) 느린 박자로 사랑과 이별 같은 감정을 노래하는 곡을 말한다. 오비슨의 발라드는 조용히 시작해 마지막에 높은 음으로 터지는 극적인 이야기처럼 짜여 있었다. 운동회 응원가가 빠른 록이라면, 졸업식에서 부르는 느린 노래가 발라드에 가깝다. (다른 데서는) 문학에서는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시, 곧 담시(譚詩)를 뜻한다.
세션 연주자
(말뜻) 세션(session)은 앉다라는 뜻의 라틴어 sedere 에서 온 말로, 사람들이 모여 앉아 일하는 한 차례의 시간을 뜻한다. (록에서) 밴드의 정식 멤버가 아니라, 녹음이 있을 때마다 불려 와 연주해 주는 전문 연주자다. 1960년대 내슈빌에는 수많은 히트곡을 녹음한 일급 세션 연주자들이 모여 있었고, 오비슨의 전성기 곡들도 그들의 손에서 나왔다. 학교 연극에서 주인공은 아니지만 매번 무대 뒤에서 조명과 음향을 완벽하게 맡아 주는 선배를 떠올리면 된다. (다른 데서는) 국회의 회기나, 컴퓨터에 한 번 접속해 있는 동안을 가리키는 말로도 쓴다.
백킹 보컬
(록에서) 주 가수 뒤에서 화음을 쌓거나 짧은 소리를 반복해 노래를 받쳐 주는 목소리다. 「온리 더 론리」의 도입부처럼 백킹 보컬이 드럼 대신 리듬을 만들기도 한다. 합창 대회에서 한 친구가 독창을 할 때 나머지 반 친구들이 뒤에서 화음을 깔아 주는 것이 바로 백킹 보컬이다.
볼레로
(록에서) 스페인에서 생긴 3박자 춤곡으로, 작은북이 독특한 리듬을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하는 것이 특징이다. 프랑스 작곡가 라벨의 관현악곡 「볼레로」가 가장 유명하고, 오비슨의 「러닝 스케어드」도 이 리듬을 썼다. 줄넘기를 할 때 같은 박자가 계속 이어지는 것처럼, 리듬은 그대로인데 그 위의 음악만 점점 커진다. (다른 데서는) 옷에서는 허리 위까지 오는 짧은 여성용 웃옷(볼레로 재킷)을 가리킨다.
크레셴도
(말뜻) 자라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crescere 에서 왔다. 소리가 점점 자라난다는 뜻이다. (록에서) 음악이 점점 세지고 커지는 흐름을 말한다. 「러닝 스케어드」는 곡 전체가 하나의 크레셴도로 짜여 있어, 작게 시작해 마지막 고음에서 가장 커진다. 운동회 이어달리기에서 결승선이 가까워질수록 응원 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과 같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는 사건이나 감정이 최고조로 치닫는 것을 비유적으로 가리킬 때 쓴다.
팔세토
(말뜻) 거짓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falso 에서 왔다. 우리말로는 가짜 목소리라는 뜻의 가성(假聲)이라고 한다. (록에서) 목소리를 내는 성대의 일부만 떨게 해서 내는 높고 가는 소리다. 많은 가수는 가슴 목소리에서 가성으로 넘어갈 때 목소리가 툭 끊기는데, 오비슨은 그 경계를 거의 느낄 수 없게 넘나들었다. 친구들 앞에서 만화 캐릭터를 흉내 내다 갑자기 목소리가 가늘고 높아지는 순간, 그것이 가성이다.
슈퍼그룹
(록에서) 이미 각자 유명한 음악가들이 모여 만든 밴드를 말한다. 트래블링 윌버리스에는 조지 해리슨, 밥 딜런, 톰 페티, 제프 린, 오비슨이 함께했다. 여러 학교 축구부의 에이스들만 모아 만든 올스타 팀을 생각하면 된다. 다만 올스타 팀이 그렇듯, 실력자들이 모였다고 늘 잘 어울리는 것은 아니어서, 윌버리스처럼 서로를 존중하며 오래 기억될 음반을 남긴 경우는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