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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tle Richard

리틀 리처드 (1932–2020)

'나는 로큰롤의 설계자다.' — 1988년 그래미 시상식 무대에서

한눈에 보기 🔭💭

1. 뿌리미국 조지아주 메이컨 출생오순절 교회의 고함쫓겨난 10대2. 폭발투티 프루티롱 톨 샐리밧줄을 넘은 관객3. 개종호주의 불덩이오크우드 신학교가스펠 음반4. 귀환비틀스·스톤스와 무대헨드릭스의 기타거울 옷의 쇼맨5. 흔들림형의 죽음과 회심1984년 고백 전기1985년 교통사고6. 유산명예의 전당 첫 헌액로큰롤의 설계자2020년 테네시 별세리처드1932–2020가스펠의 외침과 두드리는 피아노로 로큰롤의 문…
무대가 된 도시 🧭🗺️
N미국로스앤젤레스1956–2000년대내슈빌만년–2020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멤버와 동료들 ⏳🌊

  • 가족레바 메이 페니먼

    열두 남매를 키운 어머니로, 1984년 그가 신앙을 지키겠다고 약속한 사람이다.

  • 영향시스터 로제타 사프

    1947년 메이컨에서 열네 살의 그를 처음 무대에 세우고 출연료를 쥐여 준 가스펠 가수다.

  • 프로듀서범프스 블랙웰

    뉴올리언스 J&M 스튜디오에서 「투티 프루티」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그의 전성기 녹음을 이끌었다.

  • 경쟁팻 분

    그의 곡을 부드럽게 다듬은 커버로 팝 차트에서 원곡을 앞질러, 흑백 차트의 불균형을 상징하게 됐다.

  • 영향폴 매카트니

    1962년 비틀스가 그의 앞 무대를 맡았을 때 그에게서 가성 외침을 익혔고, 평생 그를 우상으로 꼽았다.

  • 멤버지미 헨드릭스

    1964~65년 그의 밴드에서 기타를 쳤으며, 녹음에 참여한 뒤 갈등 끝에 밴드를 떠났다.

YouTube에서 7곡 이어 듣기 ↗

I. 메이컨의 소년 · 1932–1951

(출생) 1932년 12월, 미국 조지아주 메이컨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리처드 웨인 페니먼으로, 어머니 레바 메이와 아버지 찰스 '버드' 페니먼 사이에서 난 열두 남매 가운데 셋째였다. 아버지는 교회 집사이자 벽돌공이었고, 밀주를 팔아 생계를 보탰다. 몸집이 작아 어려서부터 '리틀 리처드'로 불렸고, 한쪽 다리가 조금 짧아 걸음걸이가 남달랐다. 또래들은 그 걸음과 여성스러운 몸짓을 놀렸다. (교회) 그의 소리는 교회에서 왔다. 가족은 아프리카 감리교회와 침례교회, 오순절교회를 오갔는데, 그는 손뼉과 고함이 뒤섞이는 오순절 예배의 열기에 가장 끌렸다. 동네에서 냄비와 계단을 두드리며 큰 소리로 노래해 이웃의 핀잔을 들었다는 이야기는 그 자신이 여러 번 했다. 1947년, 메이컨 시립 강당 공연을 앞둔 가스펠 가수 시스터 로제타 사프가 그의 노래를 듣고 무대에 세워 준 뒤 돈을 쥐여 주었다. 그가 처음 받아 본 출연료였다. (가출) 아버지는 아들의 몸짓과 성향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10대 중반에 그는 집에서 쫓겨났고, 메이컨에서 클럽을 운영하던 백인 부부 앤과 조니 존슨이 그를 거두었다. 이후 약장수 쇼(약을 팔려고 노래와 춤을 곁들이던 순회 공연)와 유랑 극단을 따라 남부를 떠돌았고, 때로는 여장을 하고 무대에 섰다. 천막 무대와 거리에서 그는 노래보다 먼저 관객을 붙잡아 두는 법을 배웠다.

II. 떠돌이 가수 · 1951–1955

(데뷔) 첫 계기는 애틀랜타에서 활동하던 블루스 가수 빌리 라이트와의 만남이었다. 라이트의 높게 빗어 올린 머리와 짙은 화장은 거의 그대로 리처드의 무대 차림이 됐다. 1951년, 라이트의 소개로 애틀랜타 라디오 진행자 제나스 시어스가 그를 RCA 빅터와 이어 주었다. 그해 녹음한 리듬 앤 블루스 곡들은 지역 방송을 탔지만 전국적인 반응은 없었다. 이때의 목소리는 아직 점잖은 블루스 가수의 것이었다. (아버지) 1952년 초, 아버지가 자신이 운영하던 가게 앞에서 총에 맞아 숨졌다. 가장을 잃은 집안을 돕기 위해 그는 메이컨의 그레이하운드 버스 터미널에서 접시를 닦았다. 그는 훗날, 설거지 더미 앞에서 상사에게 대놓고 할 수 없던 말을 뜻 모를 외침으로 내뱉곤 했는데 그것이 「투티 프루티」의 첫 소리가 됐다고 말했다. (휴스턴) 1953년에는 휴스턴의 피콕 레코드와 계약해 보컬 그룹 템포 토퍼스와 녹음했으나 성과는 미미했다. 사장 돈 로비와는 돈 문제로 크게 다퉜고, 리처드는 로비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메이컨으로 돌아온 그는 드러머 찰스 코너 등과 밴드 업세터스를 꾸려 남부 클럽을 돌았고, 피아노를 두드리며 소리치는 그만의 방식을 이 무대에서 다듬었다. 1955년 초, 가수 로이드 프라이스의 권유로 로스앤젤레스의 스페셜티 레코드에 데모 테이프를 보냈다. 사장 아트 루프는 몇 달을 미룬 끝에 그를 녹음실로 불렀다.

III. 뉴올리언스의 폭발 · 1955–1957

(녹음) 1955년 9월, 스페셜티의 프로듀서 범프스 블랙웰은 그를 뉴올리언스에 있는 코지모 마타사의 J&M 스튜디오로 데려갔다. 첫 세션은 무난했지만 밋밋했다. 쉬는 시간에 근처 클럽 듀 드롭 인에서 그가 피아노를 치며 외설스러운 가사의 「투티 프루티」를 불러젖히자, 블랙웰은 이것이 찾던 소리라고 직감했다. 작사가 도로시 라보스트리가 가사를 방송할 수 있게 고쳐 썼고, 곡은 세션 막바지에 몇 차례 만에 녹음됐다. 그해 가을 나온 싱글은 R&B 차트 2위에 올랐다. (커버) 성공에는 그림자가 따랐다. 백인 가수 팻 분의 커버(다른 가수가 원곡을 다시 녹음한 것)가 팝 차트에서 원곡보다 높이 오르자, 리처드와 블랙웰은 다음 곡 「롱 톨 샐리」를 일부러 숨 가쁘게 빨리 불러 흉내 내기 어렵게 했다고 회고했다. 엘비스 프레슬리도 1956년 「투티 프루티」, 「롱 톨 샐리」, 「립 잇 업」, 「레디 테디」를 잇달아 녹음했다. 정작 리처드가 받는 로열티는 음반 한 장에 1센트도 되지 않았고, 그는 「투티 프루티」의 출판권(곡의 저작권 수익을 관리하는 권리)을 50달러에 넘겼다고 훗날 말했다. (무대) 1958년 초까지 「루실」, 「제니, 제니」, 「굿 골리, 미스 몰리」로 히트가 이어졌고, 영화 「더 걸 캔트 헬프 잇」 등에 출연했다. 인종 분리가 법이던 남부의 공연장에는 흑인과 백인 관객을 가르는 밧줄이 쳐졌는데, 그는 흥분한 관객들이 밧줄을 넘어 한데 섞여 춤췄다고 회고했다. 영국의 어린 데이비드 보위는 그의 밴드에서 색소폰을 불고 싶어 색소폰을 샀고, 미네소타의 소년 밥 딜런은 고교 졸업 앨범에 그의 밴드에 들어가는 것을 꿈으로 적었다.

♪투티 프루티 (Tutti Frutti)1955실황 Little Richard · 1995 로큰롤 명예의 전당 콘서트

듀 드롭 인의 외설스러운 즉흥곡이 라보스트리의 손을 거쳐 방송용 노래가 된 곡이다. 메이컨 버스 터미널의 설거지대에서 시작된 외침이 J&M 스튜디오에서 로큰롤의 첫 구호가 됐다.

  • 곡은 악기 없이 그의 목소리 하나로 열린다. 뜻 없는 음절을 드럼 치듯 쏟아낸 뒤 밴드가 한꺼번에 덮쳐 오는 첫 2초가 이 곡의 문이다.
  • 그의 오른손 피아노를 따라가 보라. 블루스 피아노의 흔들리듯 길고 짧은 리듬(셔플) 대신, 박을 고르게 쪼개 망치처럼 화음을 내리쳐 곡 전체에 쉼 없는 추진력을 준다.
  • 드럼의 얼 파머와 베이스의 프랭크 필즈는 뉴올리언스 세션 연주자들로, 화려한 장식 없이 바닥을 단단히 깐다. 간주에서는 리 앨런의 테너 색소폰이 거칠고 짧은 독주를 터뜨린다.
  • 절이 끝날 무렵마다 가성으로 치솟는 날카로운 외침이 들어간다. 오순절 교회의 고함에서 온 이 소리를 훗날 폴 매카트니가 그대로 익혔다.
  • 전체 길이는 2분 반이 채 되지 않는다. 같은 틀의 절을 짧게 반복하다 끝나는 단순한 형식이라, 녹음이 거의 라이브처럼 한 번에 몰아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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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 톨 샐리 (Long Tall Sally)1956영화 장면 — Little Richard · 「Don't Knock the Rock」(1956)

팻 분의 커버가 원곡을 앞지른 뒤, 따라 부르기 어렵게 일부러 빠르게 만들었다고 그와 블랙웰이 회고한 곡이다. R&B 차트 1위에 올라 그의 첫 정상곡이 됐다.

  • 가사를 쏟아내는 속도에 주목하라. 이웃의 소동을 친구에게 일러바치듯 숨 쉴 틈 없이 몰아붙이는 화법이다. 같은 해 나온 팻 분의 차분한 커버와 나란히 들으면 차이가 선명하다.
  • 곡의 뼈대는 열두 마디짜리 화음 진행을 되풀이하는 블루스 형식(12마디 블루스)이다. 익숙한 틀을 극단적인 템포와 목소리로 밀어붙인 것이 새로움이었다.
  • 중간 간주에서 색소폰이 낮고 거친 음으로 짧게 울부짖는다. 기타보다 색소폰이 독주를 맡는 것이 이 시기 뉴올리언스 녹음의 특징이다.
  • 1964년 비틀스의 녹음에서 폴 매카트니가 부른 판본과 비교해 보라. 매카트니는 리처드에게서 배운 가성 외침을 거의 그대로 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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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히어스 리틀 리처드》 (Here's Little Richard)1957노래 「Rip It Up」 Little Richard

1955년부터 쌓인 스페셜티 싱글들을 모은 그의 첫 정규 음반이다. 무대의 열기가 녹음실에서 어떻게 보존됐는지 한자리에서 들을 수 있다.

  • 카드의 영상은 수록곡 「립 잇 업」이다. 주급을 받은 토요일 밤의 해방감을 노래하는 곡으로, 엘비스 프레슬리가 같은 해 커버한 판본과 비교하면 원곡의 피아노와 고함이 얼마나 앞에 나와 있는지 들린다.
  • 「슬리핀 앤 슬라이딘」은 상대적으로 느린 템포의 셔플 리듬으로, 그가 뉴올리언스 리듬 앤 블루스의 전통 위에 서 있음을 보여 준다.
  • 「캔트 빌리브 유 워너 리브」 같은 느린 곡에서는 외침 대신 길게 끄는 음과 떨림이 두드러진다. 가스펠 가수로서의 바탕이 가장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 수록곡 대부분이 2분 남짓이다. 라디오와 주크박스에 맞춘 싱글들의 모음이라 한 곡 한 곡이 짧고 응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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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실 (Lucille)1957실황 Little Richard · 1973

떠나간 여인을 애타게 부르는 곡으로, 정점의 시기에 나왔다. 드러머 얼 파머가 로큰롤 드럼의 변화를 이야기할 때 그의 녹음들과 함께 자주 거론되는 시기의 작품이다.

  • 도입부부터 베이스와 색소폰이 같은 음형을 한 몸처럼 반복한다. 이 되풀이되는 짧은 악구(리프)가 곡 전체를 끌고 간다.
  • 드럼의 둘째·넷째 박에 실린 강한 타격(백비트)을 들어 보라. 얼 파머는 리처드의 피아노가 박을 고르게 쪼개 두드리는 바람에 자신도 흔들리는 셔플 대신 곧은 리듬으로 맞추게 됐다고 회고했다.
  • 보컬은 애원과 호통 사이를 오간다. 같은 이름을 반복해 부를 때마다 음높이와 거칠기가 달라지는 것에 귀를 기울여 보라.
  • 매 절의 끝에서 밴드가 짧게 숨을 고르고 다시 밀고 들어가는 대목이 있어, 단순한 구성 안에서도 긴장과 해소가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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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불덩이와 신학교 · 1957–1962

(호주) 1957년 10월, 그는 에디 코크런, 진 빈센트와 함께 호주 순회공연에 나섰다. 공연 도중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불덩이를 보았고, 그것을 신의 경고로 받아들였다. 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린 직후였다. 그는 남은 일정을 접고 로큰롤을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결심의 표시로 값비싼 반지를 강물에 던졌다는 일화는 그 자신이 전한 것으로, 다른 이들이 확인해 준 사실은 아니다. (신학교) 귀국한 그는 앨라배마주 헌츠빌에 있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계열의 오크우드 칼리지에 들어가 목회를 공부했다. 그사이 스페셜티는 그가 남긴 녹음을 계속 내놓았고, 그의 이름은 차트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메이컨의 매니저 클린트 브랜틀리는 비어 버린 공연 일정을 신인 제임스 브라운에게 넘겼고, 같은 메이컨 출신의 오티스 레딩은 잠시 업세터스와 함께 노래하며 그의 창법을 따랐다. 그가 떠난 자리가 다음 세대 소울 가수들의 출발점이 된 셈이다. (가스펠) 1959년에는 교회 행사에서 만난 어니스틴 하빈과 결혼했고, 결혼 생활은 1964년에 끝났다. 이 시기 그는 가스펠(흑인 교회의 복음 성가)만 녹음했다. 1961년 퀸시 존스가 편곡과 제작을 맡은 머큐리 음반은 그의 거친 외침이 원래 교회의 것이었음을 또렷이 들려주었다. 그러나 대중은 그 목소리가 다시 로큰롤을 부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굿 골리, 미스 몰리 (Good Golly, Miss Molly)1958실황 Little Richard · 1995 Music City Tonight

그가 이미 로큰롤을 떠나 신학교로 간 뒤 스페셜티가 내놓은 싱글이다. 무대를 버린 가수의 노래가 여전히 차트를 달리던 기묘한 시기를 상징한다.

  • 피아노 도입부는 리처드 자신이 재키 브렌스턴과 아이크 터너의 1951년 곡 「로켓 88」에서 빌려 왔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 리듬 앤 블루스와 로큰롤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보여 주는 대목이다.
  • 춤추기 좋아하는 아가씨를 두고 들뜬 목소리로 떠드는 화법이다. 다른 곡보다 외침이 덜하고 리듬을 타는 맛이 앞선다.
  • 색소폰 독주가 나오는 간주에서는 피아노가 뒤로 물러나 화음을 계속 두드리며 바닥을 깐다. 두 악기가 앞뒤를 바꾸는 배치를 들어 보라.
  • 1969년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이 앨범 「바이유 컨트리」에서 이 곡을 커버했다. 피아노 대신 기타가 같은 추진력을 내는 방식과 비교하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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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돌아온 왕 · 1962–1976

(영국) 1962년 가을, 프로모터 돈 아든의 초청으로 영국 순회공연에 나섰다. 가스펠만 부르겠다던 계획은 객석의 미지근한 반응 앞에서 무너졌고, 그는 다시 옛 히트곡을 터뜨렸다. 리버풀 근교 뉴브라이턴과 서독(오늘날 독일) 함부르크의 스타 클럽에서는 아직 무명이던 비틀스가 그의 앞 무대를 맡았다. 폴 매카트니는 그에게서 가성(목을 조여 본래 음역보다 높게 내는 소리)으로 치솟는 외침을 익혔고, 리처드는 그것을 자신이 가르쳤다며 즐겨 자랑했다. 그의 밴드에서 오르간을 치던 열여섯 살의 빌리 프레스턴도 이때 비틀스와 처음 만났다. 1963년 영국 순회에서는 롤링 스톤스가 같은 무대에 섰다. (헨드릭스) 1964년 무렵부터 이듬해까지 그의 밴드에는 젊은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가 있었다. 헨드릭스는 1965년 녹음 「아이 돈 노 왓 유브 갓」에 참여했으나, 지각과 무대 차림 문제로 리처드 측과 부딪혀 밴드를 떠났다. 리처드는 헨드릭스가 주인공보다 눈에 띄려 했다고 말했고, 헨드릭스는 급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불평한 것으로 전해진다. (방황) 바이제이, 오케이, 리프라이즈로 레이블을 옮기며 낸 음반들은 소울과 펑크(funk)를 받아들였지만 옛 차트 성적을 되찾지는 못했다. 대신 그는 라스베이거스와 록 페스티벌 무대에서 거울 조각을 붙인 옷을 입고 피아노 위에 올라서는 쇼맨으로 되살아났다. 1969년 토론토 록 앤 롤 리바이벌에서는 존 레논과 같은 무대에 섰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에는 코카인과 헤로인에 깊이 빠져 있었다고 그 자신이 털어놓았다.

♪아이 돈 노 왓 유브 갓 (I Don't Know What You've Got (But It's Got Me))1965

돈 코비가 쓴 느린 소울 발라드로, 지미 헨드릭스가 기타를 친 녹음이다. 로큰롤의 왕이 소울의 시대에 자신을 다시 증명하려 한 시도였다.

  • 싱글은 길이가 길어 앞면과 뒷면에 1부와 2부로 나뉘어 실렸다. 3분을 넘기기 어렵던 당시 싱글 형식에서 드문 파격이다.
  • 헨드릭스의 기타는 화려한 독주 없이 화음을 잘게 끊어 치며 뒤에서 받친다. 훗날의 폭발적인 소리를 기대하면 놀랄 만큼 절제돼 있다.
  • 보컬은 설교하듯 말하다가 점점 고조돼 외침으로 터진다. 사랑에 사로잡힌 남자가 상대에게 하소연하는 화법인데, 교회 설교단의 흐름을 그대로 닮았다.
  • 오르간이 길게 깔리는 소리 위로 관악이 천천히 부풀어 오른다. 그의 초기 히트곡과 달리 공간이 넉넉한 녹음이다.
♪프리덤 블루스 (Freedom Blues)1970실황 Little Richard · 1985 Volunteer Jam XI

리프라이즈에서 낸 음반 「더 릴 싱」의 곡으로, 앨라배마주 머슬숄스에서 녹음됐다. 민권 운동과 반전의 시대 분위기 속에서 자유와 화합을 외친, 1970년대 그의 가장 큰 히트였다.

  • 1950년대의 질주하는 박 대신, 무겁게 끊어 치는 펑크(funk) 리듬이 깔린다. 그가 새 시대의 흑인 음악을 받아들이려 한 흔적이다.
  • 관악 세션이 짧고 날카로운 음을 끊어 불며 리듬을 조인다. 머슬숄스 녹음 특유의 단단하고 건조한 소리로 들린다.
  • 노래는 연인이 아니라 듣는 사람 모두에게 말을 건다. 사랑 노래가 대부분이던 그의 목록에서 드물게 사회를 향한 어조다.
  • 후반으로 갈수록 외침이 늘어나며 가스펠 집회의 고조처럼 끝을 향해 쌓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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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설교단과 무대 사이 · 1977–1994

(회심) 1977년, 형 토니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같은 무렵 그는 오랜 동료 래리 윌리엄스가 약값 문제로 총을 들이댔다고 주장했다. 그는 로큰롤을 악마의 음악이라 부르며 다시 무대를 떠났고, 흑인 역사를 함께 실은 성경을 팔러 다니며 설교했다. 1979년에는 가스펠 음반 「갓스 뷰티풀 시티」를 냈다. (고백) 1984년, 찰스 화이트가 쓴 공인 전기 『리틀 리처드의 삶과 시대』가 나왔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과 약물 경험, 무대 뒤의 생활을 놀랄 만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같은 해 어머니 레바 메이가 세상을 떠났고, 그는 어머니 앞에서 신앙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또 미지급 로열티를 돌려받겠다며 스페셜티 등을 상대로 거액의 소송을 냈지만 바라던 결과는 얻지 못했다. (재기) 1985년 10월, 로스앤젤레스에서 몰던 차가 전신주를 들이받아 크게 다쳤다. 몸을 추스르던 이듬해 1월, 그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이 처음 헌액한 열 명 가운데 하나가 됐다. 같은 해 영화 「다운 앤 아웃 인 베벌리 힐스」에 출연했고, 빌리 프레스턴과 함께 쓴 「그레이트 고시 어마이티」가 팝 차트 42위에 오르며 오랜만의 히트가 됐다. 그는 이제 신앙과 로큰롤이 함께 갈 수 있다고 말했다. 1988년 그래미 시상식에서는 시상자로 나와 스스로를 로큰롤의 설계자라 외쳐 객석을 뒤집었고, 1993년에는 그래미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그레이트 고시 어마이티 (Great Gosh A'Mighty)1986실황 Little Richard · 「Legends of Rock 'n' Roll」

교통사고에서 회복하던 시기에 빌리 프레스턴과 함께 쓴 곡으로, 영화 「다운 앤 아웃 인 베벌리 힐스」에 실렸다. 신앙과 로큰롤을 화해시키겠다는 그의 새 결심이 담겼다.

  • 주제는 신을 향한 찬양이지만 형식은 영락없는 로큰롤이다. 가스펠의 감사와 1950년대식 피아노의 질주가 한 곡에 겹쳐 있다.
  • 1980년대식의 번쩍이는 드럼 소리와 전자 건반이 곳곳에 깔린다. 1950년대 녹음과 견주면 시대의 소리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뚜렷이 들린다.
  • 50대 중반의 목소리지만 가성 외침과 거친 고함은 그대로다. 절이 끝날 때마다 터지는 외침을 초기 곡의 그것과 비교해 보라.
  • 영화 속에서는 그가 직접 피아노 앞에서 노래하는 장면과 함께 쓰였다. 영상으로 보면 무대 위 몸짓이 노래의 일부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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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 마지막 외침 · 1995–2020

(원로) 1990년대 이후 그는 토크쇼와 광고, 어린이 음반에까지 등장하며 유쾌한 원로로 받아들여졌다. 목사 자격으로 동료 연예인들의 결혼식 주례를 서기도 했다. 엘튼 존은 10대 시절 그의 공연을 보고 서서 피아노를 내리치는 무대를 꿈꾸게 됐다고 회고했다. 비틀스와 롤링 스톤스,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이 그의 곡을 다시 불렀던 일은 이제 록의 족보처럼 이야기됐다. (쇠약) 2000년대 후반 고관절 수술을 받은 뒤로는 앉아서 노래하는 날이 많아졌다. 2013년에는 무대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만년에는 신앙에 더욱 기대어, 젊은 날의 삶과 성적 지향을 신앙의 언어로 부정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 말에 실망한 이들도 있었지만, 그의 생은 처음부터 교회와 무대 사이를 오갔고 그는 끝내 어느 한쪽도 온전히 버리지 못했다. (영면) 2020년 5월 9일, 테네시주 털러호마에서 골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87세였다. 그는 젊은 날 목회를 공부했던 헌츠빌 오크우드 대학교의 묘지에 묻혔다. 폴 매카트니와 믹 재거, 엘튼 존이 잇따라 추모의 글을 남겼고, 밥 딜런은 그가 어린 시절 자신을 이끈 별이었다고 썼다. 메이컨의 버스 터미널에서 접시를 닦던 청년의 외침은 그렇게 한 세대의 출발 신호로 기억됐다.

덜 알려진 이야기

그의 무대 차림과 피아노에는 잊힌 선배들이 있었다. 높이 빗어 올린 머리와 짙은 화장은 애틀랜타의 블루스 가수 빌리 라이트에게서 왔고, 그는 이를 숨기지 않았다. 또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의 가수 에스커리타에게서 피아노 고음부를 휘몰아치는 주법을 배웠다고 찰스 화이트의 전기에서 밝혔다. 그러나 에스커리타가 1958년에야 음반을 냈을 때 세상은 그를 리처드의 아류로 여겼다. 영향의 방향이 거꾸로 기억된 셈이다. 「투티 프루티」의 원래 가사는 방송할 수 없을 만큼 노골적인 성적 내용이었다고 범프스 블랙웰은 회고했다. 작사가 도로시 라보스트리가 짧은 시간 안에 이를 아이스크림 맛 이름 같은 무해한 말로 바꿔 놓았다. 곡이 명랑한 어린이 노래처럼 받아들여지면서 원래의 모습은 오랫동안 전기의 각주에만 남았다. 신앙으로 돌아간 시기마다 그는 젊은 날의 여장 무대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10대 시절 유랑 극단에서 그는 여장을 하고 다른 이름으로 무대에 섰다고 1984년 전기에서 스스로 밝혔다. 훗날 그의 과장된 화장과 몸짓이 단순한 기행이 아니라 그 무대들에서 몸에 익힌 연기의 연장이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그가 1957년 무대를 떠나자 매니저 클린트 브랜틀리는 남은 공연 일정을 무명의 제임스 브라운 일행에게 넘겼다. 같은 메이컨 출신의 오티스 레딩도 그의 창법을 따르며 출발했다. 소울 음악의 두 거인이 그의 빈자리에서 시작했다는 사실은 그의 은퇴가 남긴 뜻밖의 유산으로, 그의 이야기에서는 대개 짧게 지나간다.

용어 노트 📚🔎

리듬 앤 블루스

(말뜻) 영어 Rhythm and Blues 를 그대로 읽은 말로, 줄여서 R&B 라고 쓴다. 1949년 미국 음악 잡지 빌보드가 흑인 음악 차트의 이름을 인종 음반에서 이것으로 바꾸면서 널리 퍼졌다. (록에서) 1940~50년대 흑인 음악가들이 블루스에 강한 리듬과 관악기를 더해 춤추기 좋게 만든 음악이다. 로큰롤은 거의 이 음악에서 태어났고, 리틀 리처드의 초기 녹음도 이 차트에서 먼저 성공했다. 체육 시간에 그냥 걷던 걸음에 박자를 맞춰 뛰기 시작하면 같은 운동장이 갑자기 신나는 것처럼, 블루스에 리듬을 세게 입힌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가스펠

(말뜻) 영어 gospel 은 옛 영어에서 좋은 소식이라는 뜻의 말에서 왔고, 기독교의 복음(福音, 복된 소식)을 가리킨다. (록에서) 미국 흑인 교회에서 부르던 찬양 음악이다. 손뼉과 외침, 앞사람이 부르면 회중이 받아 부르는 주고받기가 특징이다. 리틀 리처드의 높은 외침과 설교하듯 고조되는 창법은 모두 이 음악에서 왔다. 응원단장이 선창하면 관중석이 한목소리로 받아치는 경기장 응원을 떠올리면 그 주고받기의 느낌을 알 수 있다. (다른 데서는) 영어에서 gospel truth 라고 하면 틀림없는 진실이라는 뜻으로 쓴다.

셔플

(말뜻) 영어 shuffle 은 발을 질질 끌며 걷는다는 뜻으로, 걸음이 길고 짧게 엇갈리는 모양이 이 리듬의 이름이 됐다. (록에서) 한 박을 똑같이 둘로 나누지 않고 길게-짧게로 나누어 출렁이게 연주하는 리듬이다. 블루스와 초기 리듬 앤 블루스는 대부분 이 리듬이었는데, 리틀 리처드는 피아노를 고르게 쪼개 두드려 더 곧고 딱딱한 리듬을 밀어붙였다. 말이 달릴 때의 다그닥 다그닥 소리가 셔플이라면, 시계의 똑딱 똑딱처럼 고른 소리가 곧은 리듬이다. (다른 데서는) 카드를 섞는 일, 또는 음악 앱에서 곡을 무작위 순서로 재생하는 기능도 셔플이라고 부른다.

백비트

(말뜻) 영어 backbeat 로, 마디 안에서 뒤쪽(back)에 오는 박이라는 뜻이다. (록에서) 네 박자 음악에서 첫째·셋째 박이 아니라 둘째·넷째 박을 드럼의 스네어(딱 하고 울리는 작은북)로 세게 치는 방식이다. 로큰롤의 몸이 들썩이는 느낌은 대부분 여기서 나온다. 하나, 둘, 셋, 넷을 세며 손뼉을 칠 때 둘과 넷에만 크게 손뼉을 쳐 보면, 같은 박자인데도 갑자기 몸이 흔들리고 싶어진다. 그것이 백비트다.

커버

(록에서) 다른 가수가 먼저 발표한 곡을 새로 녹음하거나 부르는 일이다. 1950년대 미국에서는 흑인 가수의 히트곡을 백인 가수가 부드럽게 다듬어 다시 녹음하면, 라디오가 그쪽을 더 많이 틀어 원곡보다 잘 팔리는 일이 잦았다. 리틀 리처드의 곡을 팻 분이 커버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학예회에서 친구들이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자기들 방식으로 다시 부르는 것과 같지만, 음반으로 팔리면 원곡과 경쟁하게 된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는 책의 표지나 물건을 덮는 덮개를 커버라고 부른다.

가성

(말뜻) 가성(假聲)은 거짓(假) 소리(聲)라는 뜻이다. 서양 이름 팔세토(falsetto)도 이탈리아어 falso, 곧 가짜라는 말에서 왔다. 본래의 목소리가 아니라 꾸며 낸 높은 소리라는 뜻이 이름에 들어 있다. (록에서) 성대를 얇게 써서 평소 음역보다 훨씬 높게 내는 소리다. 리틀 리처드는 노래 중간중간 가성으로 날카롭게 치솟는 외침을 넣어 흥분을 끌어올렸고, 이 소리는 폴 매카트니 등 수많은 후배에게 전해졌다. 남자아이가 장난으로 아주 높은 목소리를 흉내 낼 때 목이 바뀌는 느낌, 그것이 가성이다.

출판권

(말뜻) 영어로는 퍼블리싱(publishing)이라고 한다. 음반이 없던 시절 작곡가의 곡을 악보로 찍어 팔던 사업에서 이름이 왔다. (록에서) 곡 자체의 저작권을 관리하며, 그 곡이 음반·방송·공연·다른 가수의 커버에 쓰일 때마다 돈을 걷어 나누는 권리다. 가수가 노래를 불러 받는 돈과는 별개라서, 이 권리를 남에게 넘기면 곡이 아무리 유명해져도 수익의 큰 몫을 잃는다. 친구와 함께 만든 보드게임의 규칙을 다른 사람에게 싼값에 팔았는데, 그 사람이 게임을 계속 팔 때마다 돈을 버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 출판은 책이나 잡지를 펴내는 일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