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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i Hendrix

지미 헨드릭스 (1942–1970)

오른손잡이용 기타를 뒤집어 쥔 왼손으로, 그는 되울림과 잡음까지 음악의 재료로 바꾸었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미국 시애틀 출생어머니의 죽음뒤집어 쥔 기타2. 떠돌이공수부대 입대리틀 리처드 밴드1달러 계약3. 런던챈들러의 발탁익스피리언스 결성헤이 조·퍼플 헤이즈4. 정점몬터레이 기타 화형일렉트릭 레이디랜드워치타워 재해석5. 전환우드스톡 국가 연주밴드 오브 집시스머신 건6. 끝자기 스튜디오 완공27세 런던 사망아버지의 권리 회복헨드릭스1942–1970시애틀의 가난한 소년이 전기 기타의 언어를 다…
무대가 된 도시 🧭🗺️
N미국영국캐나다시애틀1942–1961밴쿠버1940년대–1950년대내슈빌1962–1963뉴욕1964–1970런던1966–1970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멤버와 동료들 ⏳🌊

  • 가족루실 제터

    열일곱에 그를 낳은 어머니로, 1958년 서른두 살에 세상을 떠났고 그 상실은 훗날의 노래에 그림자로 남았다.

  • 가족앨 헨드릭스

    첫 전기 기타를 사 준 아버지로, 1995년 법정 다툼 끝에 아들 음악의 권리를 되찾았다.

  • 멤버빌리 콕스

    공수부대 시절 만난 베이스 연주자로, 밴드 오브 집시스와 마지막 순회공연까지 함께했다.

  • 매니저채스 챈들러

    뉴욕의 무명 기타리스트를 런던으로 데려가 첫 두 앨범을 프로듀스한 발견자였다.

  • 멤버미치 미첼

    익스피리언스의 드러머로, 재즈식 드럼으로 그의 기타와 대화하며 처음부터 마지막 무대까지 곁에 있었다.

  • 우정에릭 클랩턴

    런던 데뷔 무렵 그의 연주에 충격을 받은 뒤 가까운 친구가 됐다.

YouTube에서 6곡 이어 듣기 ↗

I. 시애틀의 소년 · 1942–1961

(출생) 1942년 11월,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태어났다. 처음 이름은 조니 앨런 헨드릭스였다. 어머니 루실 제터는 열일곱 살이었고, 아버지 앨 헨드릭스는 군에 징집돼 남부의 기지에 있었다. 전쟁에서 돌아온 앨은 1946년 아들의 이름을 제임스 마셜 헨드릭스로 바꾸었다. 가족은 그를 지미라고 불렀다. (가난) 집안은 늘 쪼들렸다. 앨은 막노동과 정원 일로 생계를 꾸렸고, 젊은 부부는 술과 다툼 속에 여러 번 갈라섰다가 1951년 이혼했다. 그사이 태어난 동생들 가운데 몇은 형편 때문에 위탁 가정과 입양 가정으로 흩어졌다. 지미는 한동안 캐나다 밴쿠버의 할머니 노라에게 맡겨졌다. 보드빌 무대에서 춤을 추던 노라가 들려준 체로키 혈통 이야기를 그는 평생 즐겨 입에 올렸다. (상실) 1958년 2월, 루실이 서른두 살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열다섯 살 아들을 장례식에 데려가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는 어머니에 대해 좀처럼 말하지 않았지만, 훗날의 노래 「엔젤」은 꿈에 나타난 어머니에게서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기타) 악기는 우연히 왔다. 아버지가 청소하던 집에서 줄 하나 남은 우쿨렐레를 주웠고, 빗자루를 기타처럼 쥐고 흉내를 냈다. 1957년 시애틀 야구장에서 엘비스 프레슬리의 공연을 보았고, 이듬해 5달러짜리 통기타를 샀다. 1959년에는 아버지가 전기 기타를 사 주었다. 왼손잡이였던 그는 오른손잡이용 기타를 뒤집어 줄을 거꾸로 걸었고, 동네 밴드 로킹 킹스에서 연주했다. (입대) 가필드 고등학교는 마치지 못했다. 1961년 훔친 차에 타고 있다가 두 차례 붙잡혔고, 감옥과 군대 중 하나를 고르라는 말에 군대를 택했다.

II. 떠돌이 반주자 · 1961–1966

(공수부대) 1961년 5월 입대해 켄터키주 포트 캠벨의 제101공수사단에 배치됐다. 그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 집에 두고 온 기타를 부쳐 달라고 했고, 받은 기타를 잠자리까지 끼고 다녔다. 부대 클럽에서 그 연주를 우연히 들은 베이스 연주자 빌리 콕스가 말을 걸었고, 둘은 평생의 친구가 됐다. 1962년 군을 떠난 그는 낙하 훈련 중 발목을 다쳐서라고 말하곤 했다. (순회) 제대 뒤 콕스와 테네시주 클락스빌과 내슈빌에서 킹 카수얼스를 꾸렸다. 이후 몇 년 동안 남부와 동부의 흑인 클럽을 잇는 순회 무대(치틀린 서킷)를 떠돌며 남의 밴드 뒤에서 반주했다. 아이슬리 브라더스와 녹음했고, 1965년에는 리틀 리처드의 밴드에 있었다. 주인공보다 튀는 옷차림과 잦은 지각 때문에 쫓겨났다고 전해진다. 무대 앞에 나서지 말라는 요구는 몇 해 동안 그를 묶어 둔 규칙이었다. (계약) 1965년 뉴욕 할렘에 머물며 커티스 나이트의 밴드에서 연주했고, 그해 10월 제작자 에드 챌핀과 선급금 1달러, 로열티 1퍼센트의 녹음 계약에 서명했다. 대수롭지 않게 넘긴 이 종이 한 장은 몇 해 뒤 그를 법정으로 끌고 갔다. (빌리지) 1966년 그는 그리니치빌리지로 옮겨 지미 제임스 앤드 더 블루 플레임스라는 밴드를 꾸렸다. 카페 와?의 작은 무대에서 밥 딜런의 노래를 부르고 이로 줄을 뜯었다. 자기 목소리에 자신이 없던 그는 딜런을 들으며 노래해도 된다는 용기를 얻었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영국에서 온 모델 린다 키스가 그를 눈여겨보고 애니멀스의 베이스 연주자 채스 챈들러를 데려왔다. 챈들러는 그가 연주한 「헤이 조」를 듣고 그를 런던으로 데려가기로 했다.

III. 런던의 이방인 · 1966–1967

(런던) 1966년 9월 말, 그는 기타 한 대를 들고 런던에 내렸다. 챈들러는 자기 베이스 기타들을 팔아 비용을 댔다고 회고했다. 이름 철자를 Jimi로 바꾼 것도 이때였다. 도착한 날 밤 클럽에서 즉석 연주를 했고, 그 자리에서 만난 캐시 에칭엄은 이후 몇 해 동안 런던에서 그와 함께 지냈다고 훗날 회고록에서 밝혔다. (결성) 오디션에 기타리스트로 왔던 노엘 레딩이 베이스를 맡고, 재즈 드럼의 손놀림을 지닌 미치 미첼이 합류해 기타·베이스·드럼 3인조(파워 트리오)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가 됐다. 두 사람 모두 영국인이었다. 매니지먼트는 챈들러와 사업가 마이클 제프리가 나눠 맡았다. (클랩턴) 10월 1일, 그는 크림의 공연에 올라 하울링 울프의 블루스를 쳤다. 에릭 클랩턴은 그 연주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훗날 회고했다. 클랩턴은 이후 그와 가까운 친구가 됐다. (데뷔) 12월 발표한 「헤이 조」가 영국 차트 6위에 올랐고, 이듬해 「퍼플 헤이즈」와 「더 윈드 크라이즈 메리」가 잇따라 히트했다. 그는 마셜 앰프의 음량을 끝까지 올려 기타 줄이 앰프 소리를 받아 스스로 울리게 하는 되울림(피드백)과, 소리를 보풀처럼 일그러뜨리는 장치(퍼즈)를 연주의 일부로 길들였다. 1967년 3월 런던 핀스버리 파크 공연에서는 처음으로 기타에 불을 붙였다가 손에 화상을 입었다. (첫앨범) 5월 데뷔 앨범 《어 유 익스피리언스트》가 영국 차트 2위에 올랐다. 1위는 비틀스의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였다. 6월 4일 그는 사흘 전 나온 그 앨범의 타이틀곡을 공연 첫 곡으로 연주했고, 객석에 있던 폴 매카트니는 이 일을 오래도록 영광스러운 기억으로 회고했다.

♪헤이 조 (Hey Joe)1966실황 Jimi Hendrix · 1967 몬터레이 팝

챈들러가 뉴욕 카페에서 듣고 런던행을 결심한 바로 그 곡이다. 익스피리언스의 첫 싱글로, 반주자였던 그가 처음 무대 한가운데 선 기록이다.

  • 곡 첫머리 기타가 높은 음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오는 짧은 악구에는 R&B 반주자 시절의 손버릇이 묻어나는 것처럼 들린다.
  • 화음은 다섯 개가 차례로 한 단계씩 올라가며 돌고 도는 진행이라, 곡이 끝없이 맴도는 듯한 긴장을 만든다. 미첼의 드럼이 그 위에서 재즈식 꾸밈 장단(필인)을 흩뿌린다.
  • 뒤쪽의 여성 코러스는 챈들러가 라디오용으로 여성 보컬 그룹 브레이크어웨이스를 불러 나중에 덧입힌 것(오버더빙)이다. 거친 연주와 매끈한 코러스의 대비를 들어 볼 만하다.
  • 보컬은 노래라기보다 낮게 말을 건네는 화법이다. 배신당한 남자와 나누는 대화처럼 질문과 대답이 오간다.
  • 1967년 몬터레이 라이브에서는 솔로를 이로 줄을 뜯어 연주했다. 스튜디오판과 영상판을 나란히 들으면 쇼맨십과 연주력이 어떻게 겹치는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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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플 헤이즈 (Purple Haze)1967실황 The Jimi Hendrix Experience · Atlanta Pop Festival

런던에서 퍼즈와 되울림을 길들인 결과가 가장 압축적으로 담긴 싱글이다. 그는 꿈속에서 바닷속을 걸은 이야기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 첫 두 마디에서 기타의 높은 음과 베이스의 낮은 음이 서로 가장 불편하게 부딪히는 간격(증4도, 트라이톤)으로 울린다. 곡 전체의 불안한 기운이 여기서 시작된다.
  • 이어지는 반복 악구(리프) 뒤에 나오는 날카로운 화음은 장조와 단조가 한꺼번에 섞인 듯한 소리로, 훗날 헨드릭스 코드라는 별명을 얻었다.
  • 솔로에서는 엔지니어 로저 메이어가 만든 장치 옥타비아가 한 옥타브 위의 음을 겹쳐, 기타가 금속성 휘파람처럼 들린다.
  • 곡 끝부분은 테이프 속도를 바꾸고 소리를 좌우로 옮겨, 헤드폰으로 들으면 소리가 머리 주위를 소용돌이치는 것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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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몬터레이의 불꽃 · 1967–1968

(귀향) 매카트니의 추천으로 그는 고국 무대에 섰다. 1967년 6월 18일 캘리포니아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에서 롤링 스톤스의 브라이언 존스가 그를 소개했다. 그는 이로 기타를 치고 등 뒤로 돌려 연주한 끝에, 「와일드 싱」의 마지막에 기타에 라이터 기름을 붓고 불을 붙였다. 같은 축제에서 재니스 조플린도 이름을 알렸다. 무명의 반주자로 떠났던 미국에서 그는 하룻밤 사이 화제가 됐다. (어긋남) 제프리는 곧 그를 10대 아이돌 밴드 몽키스의 미국 순회공연 오프닝에 넣었다. 어린 관객들이 몽키스를 연호하는 가운데 그는 며칠 만에 하차했다. (액시스) 12월 둘째 앨범 《액시스: 볼드 애즈 러브》가 나왔다. 런던 올림픽 스튜디오의 엔지니어 에디 크레이머와 함께 소리를 좌우로 옮기고 테이프를 거꾸로 거는 실험을 했다. 한 면의 완성 믹스 테이프를 택시에 두고 내려 하룻밤 새 다시 믹스해야 했다는 일화도 남아 있다. 앨범에는 무대의 굉음 대신 커티스 메이필드를 닮은 부드러운 리듬 기타와, 어린 시절과 상상의 세계를 그린 노래들이 담겼다. (순회) 그해 겨울 그는 영국에서 핑크 플로이드, 더 무브, 더 나이스와 함께 여러 밴드가 한 무대를 나눠 쓰는 순회공연을 돌았다. 동료들은 무대 뒤의 그를 수줍고 예의 바른 사람으로 기억한다. 기타를 부수고 태우는 쇼를 기대하는 관객 앞에서 그는 점점 지쳐 갔다. (사고) 1968년 1월 스웨덴 예테보리의 호텔에서 술에 취해 방을 부수다 체포돼 벌금을 물었다. 이 무렵 그의 무게중심은 이미 영국에서 미국으로 옮겨 가고 있었다.

♪앨범 《액시스: 볼드 애즈 러브》 (Axis: Bold as Love)1967

몬터레이의 불꽃 뒤에 나온 앨범으로, 무대의 굉음 대신 섬세한 리듬 기타와 스튜디오 실험이 중심에 놓였다.

  • 대표곡 「리틀 윙」은 2분 남짓한 짧은 곡으로, 솔로가 한창일 때 소리가 서서히 사라진다(페이드아웃). 더 듣고 싶을 때 끊기는 그 아쉬움이 곡의 일부다.
  • 「리틀 윙」의 기타는 안에서 스피커가 빙글빙글 도는 오르간용 스피커(레슬리 스피커)를 거쳐, 물결처럼 일렁이는 소리가 난다.
  • 화음을 짚은 채 엄지와 다른 손가락으로 장식음을 끼워 넣는 리듬 기타는 커티스 메이필드 같은 R&B 기타리스트에게서 배운 방식이다. 「리틀 윙」의 도입부에서 잘 들린다.
  • 앨범 첫 곡 「EXP」에서는 되울림 소리가 왼쪽과 오른쪽 스피커 사이를 날아다닌다. 크레이머와의 좌우 배치 실험을 헤드폰으로 확인할 수 있다.

V. 뉴욕의 실험실 · 1968–1969

(뉴욕) 1968년 그는 근거지를 뉴욕으로 옮기고 레코드 플랜트 스튜디오에서 셋째 앨범을 만들었다. 한 곡을 수십 번씩 다시 녹음하고 친구들을 불러 밤새 즉흥 연주를 했다. 스티브 윈우드,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잭 캐서디와 새벽에 연주한 15분짜리 블루스가 그대로 앨범에 실렸다. 같은 해 뉴욕 클럽 더 신에서는 술에 취한 도어스의 짐 모리슨이 무대에 올라와 함께한 즉흥 연주가 녹음으로 남았다. (결별) 시간과 예산을 중시한 챈들러는 끝없는 재녹음에 지쳐 프로듀서 자리를 내려놓았고, 이어 매니지먼트 지분도 제프리에게 넘겼다. 레딩은 녹음을 기다리다 자리를 뜨는 일이 잦아졌고, 몇 곡에서는 헨드릭스가 베이스까지 직접 쳤다. (정점) 10월 나온 두 장짜리 《일렉트릭 레이디랜드》는 미국 앨범 차트 1위에 올랐다. 생전 그의 유일한 미국 1위였다. 영국판 표지의 나체 여성 사진은 그가 고른 것이 아니었고 그는 불쾌해했다. 밥 딜런의 「올 얼롱 더 워치타워」를 새로 해석한 싱글이 히트했다. (시대) 마틴 루서 킹이 암살된 다음 날인 1968년 4월 5일, 뉴어크 공연에서 그는 예정된 곡 대신 킹을 위한 긴 즉흥곡을 연주했다고 전해진다. 정치 구호를 내세우지 않았지만, 그 무렵 그의 음악에는 전쟁과 분열을 바라보는 시선이 짙어졌다. (체포) 1969년 5월 캐나다 토론토 공항에서 짐 속에서 헤로인과 해시시가 나와 체포됐다. 그는 팬이 건넨 물건인 줄 모르고 넣었다고 증언했고, 12월 배심원단은 무죄를 평결했다. 그 사이 6월 덴버 공연을 마지막으로 레딩이 밴드를 떠났다.

♪올 얼롱 더 워치타워 (All Along the Watchtower)1968실황 Jimi Hendrix · 1970 애틀랜타 (기타 단독 트랙)

딜런에게서 노래할 용기를 얻었던 그가 딜런의 곡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든 녹음이다. 딜런 자신도 이후 이 편곡을 따라 연주했다고 밝혔다.

  • 딜런의 원곡은 통기타와 하모니카의 수수한 곡이다. 원곡을 먼저 듣고 이 판을 들으면 같은 노래가 어떻게 폭풍 같은 곡으로 바뀌는지 분명해진다.
  • 줄이 열두 개인 통기타(12현 기타)는 트래픽의 데이브 메이슨이 쳤고, 녹음 도중 레딩이 자리를 뜨자 베이스는 헨드릭스가 직접 쳤다.
  • 가운데 솔로는 네 부분으로 나뉜다. 맑은 소리, 라이터를 줄 위로 미끄러뜨린 소리, 발로 음색을 바꾸는 페달(와와 페달) 소리, 그리고 화음을 끊어 치는 부분이다.
  • 그는 이 곡에 몇 달에 걸쳐 기타를 덧입혔다(오버더빙). 겹겹이 쌓인 기타가 각각 어느 쪽 스피커에서 나오는지 따라가 들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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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두 차일드 (슬라이트 리턴) (Voodoo Child (Slight Return))1968실황 The Jimi Hendrix Experience · 1970 Maui

레코드 플랜트에서 밤새 이어진 즉흥 연주의 산물로, 《일렉트릭 레이디랜드》의 마지막 곡이다.

  • 도입부는 줄을 손으로 살짝 눌러 막은 채 긁으면서 와와 페달을 밟아, 사람이 무언가 중얼거리는 듯한 소리를 낸다.
  • 1968년 5월 방송사 촬영팀 앞에서 녹음됐다. 하루 전 윈우드, 캐서디와 연주한 15분짜리 블루스 「부두 칠레」를 짧고 강하게 다시 짠 판이다.
  • 미첼의 드럼은 박자를 지키기보다 기타와 대화하듯 끼어든다. 솔로 구간에서 드럼의 꾸밈 장단이 기타 프레이즈에 대답하는 대목을 들어 보라.
  • 라이브에서는 10분 넘게 늘이는 일이 많았다. 1970년 공연 영상들과 비교하면 같은 뼈대에서 매번 다른 솔로가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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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집시들 · 1969–1970

(우드스톡) 1969년 8월 18일 월요일 아침, 그는 우드스톡 페스티벌의 마지막 순서로 무대에 섰다. 빌리 콕스와 미첼에 타악기 연주자들을 더한 임시 편성 집시 선 앤드 레인보스였다. 관객 대부분이 떠난 진흙밭에서 그는 미국 국가를 연주하며 포탄과 사이렌 소리를 기타로 그려 냈다. 국가 모독이라는 비난에 그는 몇 주 뒤 텔레비전 토크쇼에서, 미국인으로서 아름답다고 여겨 연주했다는 취지로 답했다. (소송) 챌핀과의 1달러 계약은 결국 소송이 됐고, 합의 조건은 새 앨범 하나를 챌핀 쪽 레이블에 넘기는 것이었다. 그는 콕스, 드러머 겸 가수 버디 마일스와 흑인 3인조 밴드 오브 집시스를 꾸렸다. 1969년 마지막 날과 1970년 첫날 뉴욕 필모어 이스트 공연을 녹음한 라이브 앨범이 그 대가로 나갔다. (전쟁) 그 공연의 중심은 베트남과 미국 도시의 거리에서 싸우는 이들에게 바친다고 소개한 12분짜리 「머신 건」이었다. 공수부대 출신인 그는 전쟁을 구호로 규탄하지 않았지만, 이 곡에서 총성과 비명을 기타 하나로 옮겨 놓았다. (붕괴) 1970년 1월 28일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평화 기원 공연에서 그는 두 곡 만에 연주를 멈추고 무대를 내려갔다. 마일스는 훗날 제프리가 밴드를 깨려고 그에게 약을 먹였다고 주장했다. 밴드 오브 집시스는 그날로 끝났다. (스튜디오) 비싼 스튜디오 임대료를 아끼고 마음껏 실험하려고, 그는 그리니치빌리지 웨스트 8번가에 자기 스튜디오를 지었다. 공사는 지하수와 자금 문제로 늘어졌고 비용은 100만 달러 가까이 불어났다. 둥근 창과 부드러운 조명으로 꾸민 일렉트릭 레이디 스튜디오는 1970년 8월 문을 열었다.

♪스타 스팽글드 배너 (The Star-Spangled Banner, 우드스톡 라이브)1969실황 Jimi Hendrix · 1969 우드스톡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때 공수부대 출신 흑인 기타리스트가 연주한 미국 국가로, 이후 그 시대를 상징하는 녹음이 됐다.

  • 흰색 스트라토캐스터와 마셜 앰프에, 소리를 물결처럼 흔드는 장치(유니바이브)와 퍼즈를 걸었다. 선율 자체는 원곡 그대로 또박또박 연주한다.
  • 로켓과 폭탄을 노래하는 대목에서 그는 기타 브리지의 막대(트레몰로 암)를 깊이 눌러 음이 무너져 내리게 하고, 되울림으로 폭격과 사이렌 소리를 그린다.
  • 연주가 끝나면 쉬지 않고 곧장 「퍼플 헤이즈」로 넘어간다. 국가와 자기 노래를 한 흐름으로 이은 구성까지 함께 들어야 한다.
  • 그는 1968년부터 공연에서 이 곡을 자주 연주했다. 우드스톡판은 관객 대부분이 떠난 월요일 아침의 녹음이라 소리 사이의 정적도 또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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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신 건 (Machine Gun)1970실황 Jimi Hendrix · 1970 Isle of Wight

1달러 계약의 대가로 나간 라이브 앨범 《밴드 오브 집시스》의 중심곡이다. 그는 이 곡을 거리와 전장에서 싸우는 이들에게 바쳤다.

  • 버디 마일스의 작은북(스네어)이 짧게 끊어 치는 연타로 기관총 소리를 흉내 낸다. 곡 처음부터 이 리듬을 따라가 보라.
  • 빌리 콕스의 베이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짧은 음형을 되풀이하며(오스티나토) 땅을 다진다. 그 위에서 기타가 마음껏 흔들릴 수 있는 이유다.
  • 솔로 중간, 한 음을 되울림으로 끝없이 늘이다가 무너뜨리는 대목은 폭탄이 떨어지는 소리처럼 들린다. 유니바이브가 소리 전체를 일렁이게 한다.
  • 곡 뒤쪽 마일스의 높은 비명 같은 코러스는 가사 없이 울부짖는 소리로, 곡의 공포를 사람 목소리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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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 마지막 여름 · 1970

(순회) 1970년 봄부터 그는 미첼, 콕스와 함께 미국을 돌았다. 레코드 회사와 매니저는 히트곡을 원했고, 그는 두 장짜리 새 앨범 《퍼스트 레이즈 오브 더 뉴 라이징 선》을 구상하며 일렉트릭 레이디에서 「엔젤」, 「돌리 대거」 등을 다듬었다. 그해 3월에는 로스앤젤레스 시절부터 알던 러브의 아서 리와 런던에서 녹음했고, 그 곡은 러브의 앨범에 실렸다. (유럽) 8월 말 영국 와이트섬 페스티벌에 섰지만 새벽 공연은 음향 사고와 무전 간섭으로 어수선했다. 이어진 유럽 순회도 덴마크 오르후스 공연이 몇 곡 만에 중단되는 등 순탄치 않았고, 9월 6일 독일 페마른섬 공연이 마지막 정식 무대가 됐다. (죽음) 9월 18일, 그는 런던 노팅힐의 사마르칸트 호텔 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함께 있던 모니카 다네만은 그가 수면제를 아홉 알 먹었다고 말했다. 사인은 잠든 채 토사물을 들이마신 질식이었고, 검시관은 사고인지 여부를 확정하지 않는 열린 평결을 내렸다. 스물일곱 살이었다. 그날 밤의 경위에 대한 다네만의 진술은 여러 차례 바뀌어 지금도 논쟁으로 남아 있다. (귀향) 10월 1일 그는 시애틀 근교 렌턴에 묻혔다. 사흘 뒤 재니스 조플린이 같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유산) 남은 테이프는 여러 손을 거쳐 수많은 사후 앨범으로 나왔다. 아버지 앨은 오랜 법정 다툼 끝에 1995년 아들 음악의 권리를 되찾았고, 가족 회사 익스피리언스 헨드릭스는 1997년 미완의 앨범을 그가 구상한 제목으로 내놓았다. 1992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그가 4년 남짓 남긴 녹음은 전기 기타가 낼 수 있는 소리의 범위를 넓혀 놓았다.

덜 알려진 이야기

(이름) 그의 출생 기록상 이름은 조니 앨런 헨드릭스였다. 군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네 살 무렵의 아들을 제임스 마셜로 다시 이름 지었는데, 자신의 이름 제임스와 일찍 세상을 떠난 형 리언 마셜에게서 따왔다고 전해진다. 세상이 아는 지미라는 이름이 처음부터 그의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은 전기의 앞부분에서나 짧게 다뤄진다. (군기록) 그는 생전에 낙하 훈련 중 발목을 다쳐 제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기 작가 찰스 R. 크로스가 살펴본 군 기록에는 그런 부상 기록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수부대 영웅담과 다른 이 기록은 그가 죽고 수십 년 뒤에야 전기에 실렸다. (헨델) 1968년부터 그가 캐시 에칭엄과 살던 런던 브룩 스트리트 23번지의 바로 옆 25번지는 작곡가 헨델이 18세기에 30여 년을 산 집이었다. 이를 알게 된 그는 헨델의 「메시아」 음반을 사서 들었다고 전해진다. 두 집은 오늘날 하나의 박물관으로 묶여 있다. (BBC) 1969년 1월 BBC 생방송 쇼에서 그는 「헤이 조」를 연주하다 멈추고, 막 해체한 크림에게 바친다며 그들의 곡으로 넘어갔다. 방송 시간을 넘긴 이 장면은 영상으로 남아 있어, 무대 위의 반항으로만 기억되던 그가 동료 음악가에게 보낸 존경을 보여 준다.

용어 노트 📚🔎

리프

(록에서) 곡 전체에서 몇 번이고 되풀이되는 짧고 귀에 박히는 악구를 말한다. 노래의 얼굴 노릇을 해서, 첫 몇 음만 들어도 무슨 곡인지 알게 한다. 운동회 응원에서 반 전체가 계속 되풀이하는 짧은 박수 장단을 떠올리면 된다. 그 장단이 들리면 어느 반 응원인지 바로 알 수 있는 것처럼, 리프가 들리면 어느 곡인지 안다. (다른 데서는) 영어 일상어에서는 어떤 주제를 두고 즉흥적으로 말이나 농담을 이어 가는 것을 riff 한다고도 한다.

파워 트리오

(말뜻) 트리오는 라틴어 셋(tres)에서 온 말로 세 사람의 연주단을 뜻하고, 파워는 힘이다. 셋뿐인데도 힘이 세다는 뜻이 이름에 들어 있다. (록에서) 기타·베이스·드럼 세 사람만으로 큰 소리를 내는 록 밴드 편성이다. 키보드나 두 번째 기타가 없으니 기타 한 대가 리듬과 솔로를 오가야 하고, 베이스와 드럼도 빈 공간을 채우려 더 많이 움직인다. 농구 3대3 경기를 생각하면 쉽다. 다섯 명이 할 때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맡는 몫이 훨씬 커서, 누가 잘하는지 바로 드러난다. 크림과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가 대표적이다.

피드백

(말뜻) 영어 feed(먹이다)와 back(되돌려)이 합쳐진 말이다. 내보낸 것이 되돌아와 다시 먹여진다는 뜻이다. (록에서) 앰프에서 나온 큰 소리가 다시 기타 줄과 픽업으로 들어가 또 증폭되면서, 음이 끝없이 길게 울리거나 날카롭게 우는 현상이다. 원래는 피해야 할 사고였지만, 헨드릭스는 앰프와의 거리와 각도를 조절해 원하는 음높이로 울리게 만들어 악기의 일부로 썼다. 강당에서 마이크를 스피커 가까이 대면 삐— 하고 귀가 아픈 소리가 나는 것과 같은 원리다. (다른 데서는) 선생님이 숙제에 의견을 달아 돌려주는 것도 피드백이라 한다. 결과가 되돌아와 다음 것을 바꾼다는 점에서 뿌리가 같다.

퍼즈

(말뜻) 영어 fuzz는 보풀이나 솜털을 뜻한다. 소리의 가장자리가 보풀처럼 일어나 거칠어진다는 데서 붙은 이름이다. (록에서) 기타 소리를 일부러 크게 찌그러뜨려 거칠고 굵게 만드는 장치나 그 소리다. 소리를 일부러 찢어지게 왜곡한 음색(디스토션) 가운데서도 특히 지글거리고 끈적한 쪽을 가리킨다. 헨드릭스는 동그란 모양의 퍼즈 페이스라는 장치를 즐겨 썼다. 휴대폰 스피커 볼륨을 끝까지 올리면 소리가 지직 갈라지는데, 그 갈라짐을 일부러 만들고 보기 좋게 다듬은 것이 퍼즈다.

와와 페달

(말뜻) 밟을 때 나는 소리가 사람이 와— 와— 하고 말하는 것처럼 들려서 붙은 소리 흉내 이름이다. (록에서) 발로 앞뒤로 밟는 장치로, 밟는 깊이에 따라 강조되는 음역이 낮은 쪽에서 높은 쪽으로 옮겨 간다. 그래서 같은 음을 쳐도 소리가 입을 벌렸다 오므리는 것처럼 변한다. 입을 둥글게 오므린 채 아— 소리를 내다가 천천히 입을 크게 벌려 보면 우— 에서 와— 로 바뀌는데, 와와 페달은 기타에게 그 입 모양을 만들어 준다.

트레몰로 암

(말뜻) 트레몰로는 이탈리아어 tremare(떨다)에서 온 말로 떨림을 뜻한다. 다만 기타의 이 장치는 소리 크기가 아니라 음높이를 흔드는 것이라 엄밀히는 비브라토라고 불러야 맞는데, 펜더 회사가 처음 이름을 붙일 때 바꿔 부른 것이 굳어졌다. (록에서) 기타 브리지에 달린 금속 막대로, 누르면 줄이 느슨해져 음이 내려가고 당기면 음이 올라간다. 흔히 훼미 바라고도 부른다. 헨드릭스는 우드스톡에서 이 막대를 깊이 눌러 폭탄이 떨어지는 소리를 냈다. 고무줄을 튕긴 채 손가락으로 늘이면 소리가 높아지고 풀면 낮아지는 것과 같다. (다른 데서는) 바이올린 같은 다른 악기에서 트레몰로는 한 음을 아주 빠르게 되풀이해 떨리듯 연주하는 주법을 가리킨다.

오버더빙

(말뜻) 영어 over(위에)와 dub(소리를 입히다)가 합쳐진 말로, 이미 녹음된 것 위에 소리를 덧입힌다는 뜻이다. (록에서) 먼저 녹음해 둔 연주를 헤드폰으로 들으면서 다른 악기나 목소리를 따로 녹음해 겹치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기타리스트 한 명이 기타를 다섯 대 친 것처럼 만들 수 있다. 혼자 노래를 녹음한 뒤, 그것을 틀어 놓고 화음을 다시 불러 겹치면 혼자서 합창을 만들 수 있는 것과 같다. (다른 데서는)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더빙은 외국어 대사를 우리말 목소리로 바꿔 입히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