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is Joplin
텍사스 정유 도시에서 따돌림받던 소녀는 블루스의 목소리를 빌려, 감추지 못한 외로움을 누구보다 큰 소리로 노래했다.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멤버와 동료들 ⏳🌊
- 가족도로시 조플린
딸의 성공을 지켜보면서도 평범한 삶을 바랐던 어머니로, 재니스는 평생 그녀에게 편지로 인정을 구했다.
- 영향베시 스미스
1920년대 블루스의 여왕으로, 재니스는 그녀의 음반을 따라 부르며 노래를 배웠고 1970년 그 무덤에 비석을 세웠다.
- 멤버샘 앤드루
빅 브러더의 기타리스트로 「서머타임」을 편곡했고, 밴드를 떠난 재니스를 따라 코즈믹 블루스 밴드까지 함께했다.
- 매니저앨버트 그로스먼
밥 딜런의 매니저로, 몬터레이 이후 그녀를 맡아 컬럼비아와 계약시키고 솔로 경력을 이끌었다.
- 우정크리스 크리스토퍼슨
「미 앤드 바비 맥기」를 쓴 컨트리 싱어송라이터로, 그녀가 죽은 뒤에야 그 녹음을 처음 들었다.
- 프로듀서폴 로스차일드
도어스를 제작한 프로듀서로, 「펄」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가장 정교하게 담아냈다.
I. 포트아서의 이방인 · 1943–1962
(출생) 1943년 1월, 미국 텍사스주 포트아서에서 태어났다. 멕시코만에 닿은 정유 도시였다. 아버지 세스 조플린은 텍사코의 용기 공장에서 일하는 엔지니어였고, 어머니 도로시는 지역 경영 전문학교에서 학적 업무를 맡았다. 이후 여동생 로라와 남동생 마이클이 태어났다. 어린 재니스는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했고 그림 솜씨가 좋아 부모의 기대를 모았다. (따돌림) 토머스 제퍼슨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체중이 늘고 피부가 거칠어졌으며, 인종 분리를 당연하게 여기던 동네에서 흑인과의 통합에 찬성하는 말을 했다가 급우들의 표적이 됐다. 외모와 행실을 두고 모욕적인 별명이 따라붙었다. 훗날 그녀는 고향이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들어 내쫓았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그 상처는 성공한 뒤에도 아물지 않았다. (레코드) 위안은 몇몇 괴짜 친구들과 레코드였다. 리드 벨리와 오데타, 빅 마마 손턴, 그리고 1920년대 블루스의 여왕 베시 스미스의 음반을 들으며 따라 불렀다. 친구들과 강 건너 루이지애나의 술집까지 차를 몰고 가 블루스와 케이준 음악을 듣기도 했다. 중산층 백인 소녀가 흑인 여성 가수들의 노래에서 자기 목소리를 발견했다는 사실은 그녀 음악의 출발점이 됐다. (진학) 1960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인근 보몬트의 라마 공과대학에 다녔으나 오래 붙어 있지 못했다. 미술을 공부하겠다는 생각과 노래하고 싶은 마음 사이를 오가던 그녀는 1962년 텍사스 대학교가 있는 오스틴으로 떠났다.
II. 길 위의 노래 · 1962–1966
(오스틴) 오스틴에서 재니스는 처음으로 꾸준히 무대에 섰다. 하모니카와 기타를 치는 친구 둘과 트리오를 꾸려, 주유소를 개조한 술집 스레드길스에서 컨트리와 블루스를 불렀다. 주인 케네스 스레드길은 지미 로저스의 노래를 부르던 컨트리 가수로, 그녀를 아끼며 무대에 세웠다. 1962년 여름 학교 신문은 맨발로 다니고 오토하프를 늘 들고 다니는 그녀를 남다른 학생으로 소개했다. 한편 한 남학생 단체가 그녀를 캠퍼스에서 가장 못생긴 남자 후보에 올렸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서부) 1963년 1월, 오스틴 출신 친구 쳇 헬름스와 함께 히치하이크로 샌프란시스코에 갔다. 노스비치의 커피하우스에서 블루스를 부르며 조금씩 이름이 알려졌지만 생활은 늘 불안정했다. (각성제) 이 무렵 메스암페타민 같은 각성제와 술에 깊이 빠졌다. 1965년 몸무게가 40킬로그램 남짓까지 줄자 친구들이 차비를 모아 그녀를 텍사스로 돌려보냈다. (귀향) 포트아서로 돌아온 재니스는 머리를 단정히 묶고 수수한 옷을 입었으며, 라마 대학에서 사회학 수업을 들었다. 서부에서 만난 남자와 약혼해 결혼을 준비했지만 상대가 연락을 끊으면서 약혼은 깨졌다. 부모가 바라는 평범한 딸이 되려는 시도였다. 그래도 노래는 놓지 못해 오스틴 무대에 가끔 섰다. (부름) 1966년 봄, 샌프란시스코에서 공연 기획자가 된 헬름스가 사람을 보내 자신이 돌보는 밴드에서 노래해 보라고 제안했다. 재니스는 망설인 끝에 다시 서부로 향했다. 고향의 착한 딸과 무대 위의 가수 사이에서 갈라진 마음은 이후 내내 그녀를 따라다녔다.
III. 빅 브러더 · 1966–1967
(밴드) 빅 브러더 앤드 더 홀딩 컴퍼니는 하이트애슈버리의 실험적인 밴드였다. 제임스 걸리는 앰프에서 나온 소리가 기타로 되돌아 들어가 끝없이 울부짖게 만드는 피드백을 즐겨 썼고, 샘 앤드루가 또 한 대의 기타를, 피터 앨빈이 베이스를, 데이브 게츠가 드럼을 맡았다. 1966년 6월 아벌론 볼룸에서 재니스와 함께한 첫 무대가 열렸다. (목소리) 포크 클럽에서 맑게 부르던 창법은 이 밴드의 거대한 음량 앞에서 통하지 않았다. 재니스는 목을 긁어 내지르는 소리, 숨을 몰아쉬다 터뜨리는 소리로 사이키델릭 록의 굉음과 맞섰다. 그 과정에서 베시 스미스와 빅 마마 손턴에게 배운 블루스의 어법이 록의 음량과 만났다. (공동체) 그해 여름 멤버들은 마린 카운티 라구니타스의 한 집에서 함께 살았다. 재니스는 밴드의 유일한 여성이었고, 처음에는 자기 자리를 찾으려 애썼다. 술은 여전히 곁에 있었다. (계약) 시카고 공연이 틀어져 돈이 떨어지자 밴드는 작은 레이블 메인스트림 레코드와 계약을 맺었다. 이 계약은 나중에 밴드에 부담이 됐다고 전해진다. 이때의 녹음은 1967년 8월 데뷔 앨범으로 나왔다. (몬터레이) 1967년 6월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에서 빅 마마 손턴의 「볼 앤드 체인」을 부르자 객석이 얼어붙었다. 당시 매니저가 촬영을 거부해 첫 공연은 영상으로 남지 않았고, 주최 측은 이튿날 밴드를 다시 무대에 세워 촬영했다. 같은 축제에서 지미 헨드릭스도 미국 무대에 처음 섰다. 하루 사이에 재니스는 지역의 가수에서 전국이 주목하는 이름이 됐다.
메인스트림에서 낸 데뷔 앨범의 싱글로, 오래된 흑인 영가를 재니스가 새로 다듬은 곡이다. 히피 공동체 밴드의 거칠고 날것인 첫 소리가 담겼다.
- 메인스트림 시절의 녹음은 무대의 음량을 살리지 못한 채 얇고 짧게 처리됐다. 공연에서 길게 펼치던 곡이 3분 남짓으로 압축된 차이를 이후의 라이브와 비교해 들어 보라.
- 피터 앨빈의 베이스와 데이브 게츠의 드럼은 교회의 박수처럼 단순하고 끈질긴 박자를 되풀이한다. 영가의 반복 리듬이 록의 박동으로 바뀌는 지점이다.
- 재니스의 목소리는 이미 끝을 긁어 올리지만, 후기 녹음보다 높고 곧다. 절이 바뀔 때마다 조금씩 힘을 더해 가는 화법을 따라가 보라.
- 두 대의 기타는 화음을 꽉 채우기보다 서로 엇갈리며 짧은 가락을 던진다. 두 기타를 구분해 들으면 이 밴드의 거친 공동 작업 방식이 보인다.
빅 마마 손턴의 블루스를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에서 부른 곡이다. 이 무대가 재니스를 하룻밤 사이에 전국에 알렸다.
- 도입부에서 제임스 걸리의 기타가 길게 끄는 피드백과 찌그러진 음으로 운을 뗀다. 느린 단조 블루스의 무거운 공기가 노래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깔린다.
- 아주 느린 박자로 진행되다 밴드가 갑자기 멈추고, 그 정적 속에서 재니스가 홀로 이어 부르는 대목이 있다. 소리와 침묵의 대비가 이 곡의 핵심이다.
- 중간에 그녀는 노래라기보다 말하듯 호소하는 긴 독백 구간을 넣는다. 원곡의 담담한 블루스가 고통을 털어놓는 고백처럼 바뀐다.
- D.A. 페니베이커의 기록영화 「몬터레이 팝」에는 객석에서 넋을 잃고 지켜보는 마마 캐스 엘리엇의 모습도 잡혔다. 「값싼 스릴」에 실린 1968년 공연판은 9분이 넘는다.
IV. 값싼 스릴 · 1967–1968
(그로스먼) 몬터레이 이후 밥 딜런의 매니저 앨버트 그로스먼이 밴드를 맡았다. 그는 메인스트림과의 계약을 정리하고 컬럼비아 레코드와 새 계약을 성사시켰다. 1968년 3월 밴드는 뉴욕 필모어 이스트의 개관 공연에 올라 동부에서도 이름을 알렸다. (녹음) 두 번째 앨범의 프로듀서는 존 사이먼이었다. 같은 해 그는 더 밴드의 데뷔 앨범 「뮤직 프롬 빅 핑크」도 제작했다. 무대의 열기를 담으려 공연장 녹음을 시도했지만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아, 대부분을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뒤 관객 소리를 덧입히는 오버더빙으로 라이브처럼 꾸몄다. 「볼 앤드 체인」만 실제 공연 녹음이었다. (흥행) 앨범은 1968년 8월 「값싼 스릴」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밴드가 원한 더 노골적인 제목은 회사가 받아들이지 않았고, 표지는 만화가 로버트 크럼이 그렸다.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8주 동안 머물렀다. 어마 프랭클린의 곡을 다시 부른 커버(리메이크) 「피스 오브 마이 하트」는 싱글로도 크게 팔렸다. (쏠림) 성공은 무게중심을 한쪽으로 옮겼다. 언론의 사진과 기사는 재니스 한 사람에게 모였고, 그로스먼은 그녀가 더 크고 정교한 밴드와 노래하기를 바랐다고 전해진다. 재니스 자신도 오티스 레딩 같은 소울 가수들의 관악기 사운드를 꿈꾸고 있었다. (작별) 1968년 12월 1일, 재니스는 빅 브러더와 함께한 시절의 마지막 정규 공연을 마쳤다. 기타의 샘 앤드루만 그녀를 따라갔다. 가족처럼 함께 살던 밴드를 떠나는 결정은 그녀에게도 쉽지 않았고, 이후 그녀는 무대 위에서 점점 더 혼자가 됐다.
빅 브러더와 함께한 마지막 정규 앨범이자 최대 성공작이다. 공동체 밴드의 거친 에너지와 스튜디오의 손질이 한 장에 섞였다.
- 카드 영상의 「서머타임」은 조지 거슈윈의 자장가를 샘 앤드루가 편곡한 곡이다. 도입부에서 두 대의 기타가 바흐의 곡처럼 서로 다른 가락을 겹쳐 짜는 구성을 들어 보라.
- 「서머타임」에서 재니스는 원곡의 고요한 자장가를 울음에 가까운 탄식으로 바꾼다. 마지막 절로 갈수록 숨이 갈라지는 질감이 짙어진다.
- 앨범 곳곳의 박수와 환호는 대부분 스튜디오 녹음에 나중에 덧입힌 오버더빙이다. 실제 공연 녹음인 「볼 앤드 체인」과 공간의 울림을 비교하면 차이가 들린다.
- 기타 톤은 정돈되지 않은 채 날카롭게 찢어진다. 소리를 일부러 찢어지게 왜곡한 음색(디스토션)과 피드백이 그대로 남은 것이 이 앨범의 개성이다.
어마 프랭클린이 1967년 발표한 소울 곡의 커버로, 「값싼 스릴」의 싱글이 되어 재니스를 상징하는 노래가 됐다.
- 곡은 기타가 내려꽂는 짧은 반복 악구(리프)로 시작한다. 관악기와 코러스로 매끈했던 원곡과 달리, 이 판은 두 대의 기타가 거칠게 밀고 들어온다.
- 절에서는 낮게 누르듯 부르던 재니스가 후렴으로 넘어가며 목을 찢는 고음으로 터진다. 상처받은 사람이 오히려 상대를 몰아붙이는 역설적인 화법이 이 대비로 살아난다.
- 후렴 직전 밴드가 짧게 멈췄다 다시 들어오는 순간이 있다. 이 빈자리 덕분에 다음 외침이 훨씬 크게 들린다.
- 중간의 기타 솔로는 샘 앤드루가 맡았다. 다듬지 않은 톤의 짧은 솔로 뒤에 오는 마지막 후렴은 앞선 어느 대목보다 거칠다.
V. 코즈믹 블루스 · 1968–1969
(소울) 새 밴드는 트럼펫과 색소폰 연주자들이 한 묶음으로 움직이는 혼 섹션을 갖춘 소울 편성이었다. 1968년 12월 멤피스의 스택스 레코드 연말 공연에서 첫선을 보였으나, 준비가 덜 된 데다 소울의 본고장 관객의 반응은 차가웠다. (앨범) 1969년 9월, 프로듀서 가브리엘 메클러와 만든 「아이 갓 뎀 올 코즈믹 블루스 어게인 마마!」가 나왔다. 「트라이」와 「리틀 걸 블루」에서 재니스는 소리를 지르기보다 호흡을 길게 끌며 노래하는 법을 시험했다. 평단의 반응은 엇갈렸지만 앨범은 골드 레코드가 됐다. (헤로인) 이 해 그녀의 헤로인 의존은 깊어졌다. 무대에는 위스키 리큐어 서던 컴퍼트 병을 들고 나와 거친 이미지를 연기했다. 그 이미지가 팔릴수록 무대 밖의 재니스는 외롭다고 친구들에게 털어놓았다. (우드스톡) 1969년 8월 우드스톡에서는 긴 기다림 끝에 일요일 새벽에야 무대에 올랐다. 그녀는 이 공연을 만족스러워하지 않았고, 이듬해 개봉한 기록영화에도 실리지 않았다. 같은 축제에는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과 더 밴드, 그리고 크로스비, 스틸스, 내시와 함께한 닐 영도 섰다. (탬파) 11월 플로리다 탬파 공연에서는 관객을 자리로 돌려보내던 경찰에게 욕설을 퍼부었다가 공연 뒤 체포됐다. 관객이 일어나 춤추는 것을 막는 권위에 그녀는 거침없이 분노했다. 같은 해 텔레비전 토크쇼 「딕 캐빗 쇼」에서는 재치 있는 말솜씨로 시청자를 놀라게 했다. 연말, 코즈믹 블루스 밴드는 흩어졌다.
코즈믹 블루스 밴드와 만든 소울 곡이다. 혼 섹션 위에서 재니스가 스택스 소울을 향한 동경을 드러냈다.
- 도입부부터 트럼펫과 색소폰이 짧게 끊어 치는 혼 섹션이 곡을 끌고 간다. 기타 중심이던 빅 브러더 시절과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이다.
- 베이스와 드럼은 록의 굉음보다 소울 음반처럼 단단하고 절도 있는 박자를 깐다. 귀를 낮은 음역에 두고 들어 보라.
- 재니스는 사랑을 얻기 위해 더 애쓰겠다고 스스로를 다그치는 화자로 노래한다. 문장 끝을 길게 늘이고 꺾는 소울 가수식 장식이 이전보다 많아졌다.
- 라이브에서는 후반부를 즉흥으로 늘려 관악기와 목소리가 주고받는 대목이 길어진다. 스튜디오판과 공연판을 번갈아 들으면 이 밴드의 가능성과 미완성이 함께 보인다.
VI. 풀 틸트 · 1970
(브라질) 1970년 2월, 재니스는 약을 끊겠다며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카니발로 떠났다. 몇 주 동안 해변과 여행으로 지내며 건강을 되찾는 듯했지만, 미국으로 돌아온 뒤 다시 헤로인에 손을 댔다. (밴드) 5월, 새 밴드 풀 틸트 부기가 꾸려졌다. 대부분 캐나다 출신 연주자들로, 피아노와 오르간이 단단한 바닥을 깔고 그 위에서 그녀가 마음껏 노래할 수 있는 작고 촘촘한 밴드였다. 주변 사람들은 그녀가 이 밴드와 있을 때 가장 편안해 보였다고 회고했다. (열차)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는 캐나다를 기차로 가로지르는 순회공연 페스티벌 익스프레스에 참여했다. 그레이트풀 데드, 더 밴드와 같은 열차를 타고 도시를 옮겨 다녔고, 객차 안에서는 밤새 술과 즉흥 합주가 이어졌다. 더 밴드의 릭 댄코, 데드의 제리 가르시아와 어깨를 맞대고 노래하는 장면이 기록영화에 남아 있다. (동창회) 8월에는 포트아서의 고등학교 졸업 10주년 동창회에 참석했다. 스타가 되어 돌아온 자리였지만, 기자회견에서 학창 시절을 묻자 굳은 얼굴로 짧게 답했다. 화해를 바랐던 귀향이 오히려 오랜 상처를 확인시켰다고 전기 작가들은 썼다. (묘비) 같은 달, 그녀는 1937년 세상을 떠나 묘비 없이 묻혀 있던 베시 스미스의 무덤에 비석을 세우는 비용을 함께 냈다. 자신을 노래로 이끈 사람에게 진 빚을 갚는 일이었다. 무대에서 그녀는 갈수록 원숙해져, 소리를 지를 때와 속삭일 때를 고르는 감각을 얻어 가고 있었다.
VII. 진주 · 1970–1971
(펄) 9월, 재니스는 로스앤젤레스의 선셋 사운드 스튜디오에서 프로듀서 폴 로스차일드와 새 앨범을 녹음했다. 도어스의 음반을 만든 그는 밴드의 연주를 깔끔하게 다듬고 그녀 목소리의 결을 하나하나 살렸다. 친구들이 부르던 그녀의 별명 펄이 앨범 제목이 됐다. (약혼) 이 무렵 그녀는 훗날 소설가가 되는 세스 모건과 약혼했다. 녹음은 순조로웠고, 주변 사람들은 그녀가 오랜만에 앞날을 이야기했다고 기억했다. 10월 1일에는 친구들과 함께 지은 짧은 노래 「메르세데스 벤츠」를 반주 없는 아카펠라로 단번에 녹음했다. (죽음) 1970년 10월 4일, 재니스는 할리우드 랜드마크 모터 호텔의 객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헤로인 과다복용이었고, 그 주에 돌던 헤로인의 순도가 유난히 높았다고 전해진다. 스물일곱 살이었다. 지미 헨드릭스가 세상을 떠난 지 16일 뒤였다. 스튜디오에는 이튿날 목소리를 입히기로 했던 곡 「버리드 얼라이브 인 더 블루스」의 반주만 남았다. (유언) 그녀는 유언장에 친구들이 자신을 위해 파티를 열 수 있도록 2,500달러를 남겼다. 파티는 마린 카운티의 한 클럽에서 열렸고, 유해는 캘리포니아 해안의 태평양에 뿌려졌다. (유산) 1971년 1월 나온 「펄」은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9주 동안 올랐고,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 쓴 「미 앤드 바비 맥기」는 싱글 1위에 올랐다. 1995년 그녀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블루스를 빌려 자기 외로움을 정직하게 드러낸 그 목소리는, 록에서 여성 보컬이 설 자리를 넓힌 기준점으로 남았다.
죽기 며칠 전 녹음돼 사후에 싱글 1위에 오른 곡이다. 작곡자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은 그녀가 죽은 뒤에야 이 녹음을 처음 들었다고 회고했다.
- 시작은 어쿠스틱 기타 한 대와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다. 컨트리 가수 같은 소박한 화법은 그녀가 오스틴의 술집에서 부르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 절이 거듭될수록 드럼과 오르간, 피아노가 하나씩 쌓이고, 곡 중간에 음높이의 기준을 한 단계 올리는 조바꿈(전조)이 일어나며 분위기가 밝아진다. 풀 틸트 부기가 서서히 불을 붙이는 과정을 따라가 보라.
- 곡의 주제는 함께 떠돌던 사람을 잃은 뒤의 자유와 상실이다. 재니스는 그것을 슬픔보다 회상하는 어조로 들려주다가 후반부에 감정을 터뜨린다.
- 마지막에는 가사 없이 흥얼거리고 외치는 즉흥(애드리브)이 길게 이어진다. 끝을 정하지 않고 부르는 듯한 이 대목이 녹음에서 가장 생생하다.
마지막 정규 앨범이자 최고 판매작이다. 폴 로스차일드의 정교한 제작이 원숙해진 그녀의 목소리를 가장 선명하게 담았다.
- 카드 영상의 「크라이 베이비」는 「피스 오브 마이 하트」를 쓴 제리 라고보이와 버트 번스의 곡이다. 떠난 연인에게 돌아오라고 달래다 다그치는 어조가 절마다 바뀐다.
- 풀 틸트 부기의 오르간과 피아노가 곡의 바닥을 넓게 깐다. 기타가 이끌던 이전 밴드들과 달리 건반 악기의 울림이 소리의 중심이다.
- 「메르세데스 벤츠」는 반주 없이 목소리와 발로 박자를 짚는 소리만으로 녹음한 아카펠라다. 녹음 직전 그녀가 웃으며 건네는 말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 「버리드 얼라이브 인 더 블루스」는 목소리가 끝내 녹음되지 못해 연주곡으로 실렸다. 노래가 들어갈 자리가 비어 있는 채로 듣는 것이 이 앨범의 가장 쓸쓸한 순간이다.
- 로스차일드는 악기마다 소리를 또렷이 나눠 담았다. 「값싼 스릴」과 번갈아 들으면 같은 목소리가 얼마나 정교하게 다듬어졌는지 들린다.
덜 알려진 이야기
재니스는 흔히 남의 노래를 자기 것으로 만든 해석가로 기억되지만, 남아 있는 가장 이른 녹음 가운데 하나는 직접 쓴 블루스다. 1962년 무렵 오스틴의 친구 집에서 녹음된 「왓 굿 캔 드링킨 두」는 술의 덧없음을 다룬 짧은 노래로, 오랫동안 친구의 테이프로만 남았다가 1975년 기록영화 음반 「재니스」에 실리며 알려졌다. 1970년 8월 펜실베이니아주 샤론힐의 묘지에서 베시 스미스의 무덤에 비석이 섰다. 스미스는 1937년 교통사고로 숨진 뒤 묘비 없이 묻혀 있었다. 비용은 재니스와, 어린 시절 스미스의 집에서 일했던 후아니타 그린이 나눠 냈다. 당시에는 작은 기사로만 다뤄져, 그녀의 거친 무대 이미지 뒤에 가려진 일이 됐다. 1992년 여동생 로라 조플린이 펴낸 「러브, 재니스」는 그녀가 가족에게 보낸 편지를 바탕으로 했다. 편지 속 재니스는 무대의 반항아와 달리, 공연 성과와 기사를 어머니에게 꼼꼼히 알리며 인정받기를 바라는 딸이었다. 공적 이미지가 워낙 강해 이런 면은 편지가 공개되기 전까지 잘 드러나지 않았다. 1970년 10월 1일, 그녀는 존 레넌의 서른 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노래로 「해피 트레일스」를 짧게 녹음했다. 레넌은 훗날 그 테이프가 그녀가 죽은 뒤에야 자신에게 도착했다고 밝혔다. 이 녹음은 이후 「펄」의 확장판에 실렸다.
용어 노트 📚🔎
블루스
(말뜻) 영어 blue 는 파란색이지만 '우울하다'는 뜻도 있다. 우울한 기분을 blue devils(파란 악마들)라 부르던 옛 표현에서 슬픔을 노래하는 이 음악의 이름이 나왔다고 본다. (록에서) 19세기 말 미국 남부의 흑인들이 만든 음악으로, 고된 삶과 사랑의 아픔을 노래한다. 보통 열두 마디짜리 짧은 틀을 되풀이하는데, 가수는 한 줄을 부르고 같은 줄을 한 번 더 부른 뒤 그에 답하는 줄을 붙인다. 친구에게 속상한 일을 털어놓을 때 같은 말을 두 번 하고 나서야 결론을 꺼내는 것과 비슷하다. 로큰롤과 록은 거의 모두 블루스에서 자라났다. (다른 데서는) 일상 영어에서 the blues 는 음악이 아니라 그저 울적한 기분을 뜻하기도 한다.
사이키델릭 록
(말뜻) 사이키델릭(psychedelic)은 그리스어 psyche(영혼, 마음)와 delos(드러나다)를 합친 말로, 마음을 드러내 보인다는 뜻이다. 1950년대 한 정신의학자가 만든 말이다. (록에서) 1960년대 중반 샌프란시스코와 런던에서 퍼진 록으로, 큰 음량과 낯선 음향 효과, 길게 늘어지는 즉흥 연주로 꿈속 같은 느낌을 만든다. 공연장 벽에는 색색의 빛이 일렁이는 조명 쇼가 함께했다. 공책 귀퉁이에 소용돌이 무늬를 끝없이 그리다 보면 시간이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 드는데, 그 기분을 소리로 옮긴 음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다른 데서는) 디자인에서는 형광색과 소용돌이 무늬가 가득한 1960년대풍 그림을 사이키델릭 스타일이라 부른다.
피드백
(말뜻) 피드백(feedback)은 되돌려(back) 먹인다(feed)는 뜻이다. (록에서) 앰프 스피커에서 나온 기타 소리가 다시 기타 줄과 소리를 받는 장치(픽업)로 들어가고, 그 소리가 또 스피커로 나가기를 되풀이하며 생기는 길고 날카로운 울음소리다. 원래는 사고였지만 1960년대 기타리스트들은 일부러 이것을 일으켜 연주의 일부로 썼다. 학교 강당에서 마이크를 스피커 가까이 대면 삐 하고 날카로운 소리가 나는데, 바로 그 현상이다. (다른 데서는) 학교나 회사에서는 선생님이나 동료가 내 숙제나 일에 대해 돌려주는 의견을 피드백이라고 한다.
커버
(록에서) 다른 가수가 먼저 발표한 노래를 새로 녹음하거나 공연하는 것을 커버 또는 리메이크라고 한다. 같은 노래라도 누가 어떻게 부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곡이 되기도 한다. 옆 반이 먼저 만든 율동을 우리 반이 빠르기와 동작을 바꿔 새로 해 보는 것과 비슷하다. 재니스의 대표곡 가운데 상당수가 커버였지만, 많은 사람이 원곡보다 그녀의 판을 먼저 떠올린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 커버는 책의 표지나 무언가를 덮는 덮개를 뜻한다.
혼 섹션
(말뜻) 혼(horn)은 원래 동물의 뿔이다. 옛날에는 뿔로 나팔을 만들어 불었기 때문에, 입으로 부는 관악기를 통틀어 혼이라 부르게 됐다. 섹션(section)은 전체 가운데 한 부분이라는 뜻이다. (록에서) 트럼펫, 트롬본, 색소폰 같은 관악기 연주자 여럿이 한 묶음이 되어 함께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보통 짧고 힘 있는 가락을 한목소리로 끊어 쳐서 곡에 박력을 더한다. 응원단이 한꺼번에 구호를 외쳐 경기장 분위기를 띄우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오케스트라에서 혼이라고만 하면 대개 둥글게 말린 금관 악기 호른 하나를 가리킨다.
오버더빙
(말뜻) 오버더빙(overdubbing)은 위에(over) 덧녹음한다(dub)는 뜻이다. (록에서) 이미 녹음된 소리 위에 새 소리를 한 겹 더 녹음해 얹는 작업이다. 기타를 먼저 녹음하고 노래를 나중에 따로 얹거나, 같은 가수가 화음을 여러 번 겹쳐 부르기도 한다. 「값싼 스릴」에서는 스튜디오 녹음 위에 관객의 환호를 얹어 공연 실황처럼 꾸몄다. 미술 시간에 수채화를 먼저 칠하고 마른 뒤 그 위에 색연필로 덧그리는 것과 같다. (다른 데서는) 영화에서 더빙은 외국 배우의 대사를 우리말 목소리로 바꿔 입히는 일을 뜻한다.
아카펠라
(말뜻) 아카펠라(a cappella)는 이탈리아어로 예배당(cappella) 식으로라는 뜻이다. 옛 교회 예배당에서 악기 없이 목소리로만 성가를 부르던 데서 온 이름이다. (록에서) 악기 반주 없이 목소리만으로 부르는 노래를 말한다. 기댈 악기가 없어 가수의 음색과 호흡, 작은 흔들림까지 그대로 드러난다. 수련회 밤에 기타 하나 없이 다 같이 둘러앉아 손뼉만 치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