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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edence Clearwater Revival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 (1967–1972)

샌프란시스코만 근교에서 자란 소년들이 한 번도 제대로 가 본 적 없는 남부의 늪과 강을 짧고 단단한 노래로 지어냈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미국 엘세리토 결성포톨라 중학교남부 R&B2. 도약골리워그스군 복무수지 Q3. 정점1969년 앨범 셋프라우드 메리우드스톡4. 시대포추네이트 선코스모스 팩토리런 스루 더 정글5. 균열톰 포거티 탈퇴마디 그라1972년 해체6. 유산명예의 전당2023 저작권리바이벌1967–1972캘리포니아 소년들이 상상의 남부와 시대의 분노…
무대가 된 도시 🧭🗺️
N미국콜롬비아버클리1941–1972엘세리토1959–1967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멤버와 동료들 ⏳🌊

  • 멤버톰 포거티

    존의 형이자 리듬 기타리스트로, 1971년 밴드를 떠나 솔로로 활동하다 1990년 세상을 떠났다.

  • 멤버존 포거티

    리드 보컬과 리드 기타, 작곡과 편곡, 프로듀싱을 맡은 밴드의 중심이었다.

  • 멤버스투 쿡

    중학교 동창인 베이시스트로, 1995년 클리퍼드와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비지티드를 꾸렸다.

  • 멤버더그 클리퍼드

    중학교 동창인 드러머로, 그의 별명 코스모가 앨범 《코스모스 팩토리》의 이름이 됐다.

  • 우정브루스 스프링스틴

    1993년 명예의 전당 헌정 연설을 맡았고, 2004년 존과 같은 순회공연 무대에 섰다.

YouTube에서 6곡 이어 듣기 ↗

I. 엘세리토의 소년들 · 1941–1963

(결성) 195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엘세리토에서 결성됐다. 처음 이름은 블루 벨벳(The Blue Velvets)이었고,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이라는 이름은 1967년 말에야 붙었다. 샌프란시스코만 동쪽, 버클리와 리치먼드 사이의 작은 주택가 도시에서 네 소년은 십 대를 보냈다. (형제) 중심에는 포거티 형제가 있었다. 톰은 1941년, 존은 1945년 버클리에서 태어났고, 둘은 다섯 형제 가운데 둘이었다. 아버지 갈렌은 신문사 식자공이었고, 부모는 아이들이 어릴 때 갈라섰다. 존은 2015년 자서전에서 넉넉지 않고 어수선한 집에서 자신을 붙든 것이 라디오와 음반이었다고 회고했다. (친구) 1959년 포톨라 중학교에서 존은 같은 해에 태어난 더그 클리퍼드, 스투 쿡과 만났다. 클리퍼드는 드럼을 쳤고, 쿡은 처음에 피아노를 치다가 나중에 베이스로 옮겼다. 셋은 연주곡 위주의 밴드를 꾸려 학교 행사와 파티에서 연주했고, 네 살 위의 톰이 노래를 부르면 그 뒤를 받쳤다. 1961년에는 토미 포거티 앤드 더 블루 벨벳이라는 이름으로 지역 소규모 레이블에서 싱글을 냈다. (뿌리) 존이 귀 기울인 것은 멤피스 선 레코드의 로커빌리, 리틀 리처드와 칼 퍼킨스, 그리고 부커 T. 앤드 더 MG's 같은 남부의 리듬 앤드 블루스였다. 샌프란시스코가 곧 사이키델릭 음악의 수도가 되어 가던 시절, 이 소년들은 멤피스와 뉴올리언스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방향 감각이 훗날 밴드의 소리를 결정했다.

II. 골리워그스에서 크리던스로 · 1964–1968

(판타지) 1964년 밴드는 샌프란시스코의 재즈 레이블 판타지 레코드와 계약했다. 데이브 브루벡과 빈스 과랄디의 음반을 내던 회사였다. 존은 이 회사 창고에서 일하기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사장 맥스 와이스는 영국 밴드처럼 보이게 하려고 이름을 골리워그스로 바꾸고 멤버들에게 털모자를 씌웠다. 몇 해 동안 지역에서 조금 팔린 싱글 외에 성공은 멀었다. 이때 맺은 계약은 로열티가 낮고 의무 기간이 길었으며, 이 조건은 밴드의 남은 역사 내내 따라다녔다. (징집) 1966년 베트남 전쟁이 깊어지면서 존과 더그에게 징집이 닥쳤다. 존은 육군 예비군에 들어가 여러 기지에서 복무했고, 클리퍼드는 해안경비대 예비군에 들어갔다. 1968년 제대한 존은 기쁨을 못 이겨 집 앞 잔디밭에서 재주넘기를 했다고 회고했다. 그 무렵 그는 「프라우드 메리」의 착상을 노트에 적고 있었다. 군대에서 본 것은 2년 뒤 「포추네이트 선」의 분노로 돌아온다. (이름) 1967년 판타지에서 영업을 맡아 온 솔 자엔츠가 투자자들과 함께 회사를 인수했다. 밴드는 톰의 친구 크리던스 뉴볼의 이름, 맥주 광고 속 맑은 물, 다시 살아난다는 뜻의 리바이벌을 합쳐 새 이름을 지었다. 역할도 이때 굳었다. 존이 리드 보컬과 리드 기타, 작곡과 편곡, 프로듀싱을 맡고, 톰이 리듬 기타를, 쿡이 베이스를, 클리퍼드가 드럼을 맡았다. (라디오) 1968년 첫 앨범에 실린 8분이 넘는 「수지 Q」가 샌프란시스코의 FM 라디오를 타고 퍼졌다. 1950년대 로커빌리 곡을 긴 즉흥 연주로 늘린 이 곡은 전국 싱글 차트 11위까지 올랐고, 십 년 가까이 무명이던 밴드는 갑자기 전국의 무대에 섰다.

♪수지 Q (Suzie Q)1968

십 년 가까운 무명을 끝낸 곡이다. 1950년대 로커빌리를 샌프란시스코식 긴 즉흥으로 늘려 FM 라디오의 시대에 맞춘 것이 통했다.

  • 도입부의 기타는 앰프 속 장치로 소리 크기를 빠르게 출렁이게 하는 효과(트레몰로)를 걸어, 물결이 일듯 떨리며 울린다.
  • 쿡의 베이스와 클리퍼드의 드럼은 8분이 넘는 동안 거의 같은 패턴을 지킨다. 그 단단한 바닥 위에서 기타만 자유롭게 움직이는 구조에 귀를 두면 좋다.
  • 후반의 긴 기타 즉흥은 블루스 음계(블루스에서 쓰는 다섯 음 남짓의 음 묶음)를 오가며 조금씩 긴장을 쌓는다.
  • 앨범판이 너무 길어 싱글은 곡을 두 부분으로 잘라 앞면과 뒷면에 나눠 실었다. 앨범판으로 들어야 원래의 흐름이 보인다.

III. 상상의 늪 · 1969

(속도) 1969년 한 해에 밴드는 앨범 세 장을 냈다. 1월 《바이유 컨트리》, 8월 《그린 리버》, 11월 《윌리 앤드 더 푸어 보이스》였다. 「프라우드 메리」, 「배드 문 라이징」, 「그린 리버」가 잇달아 빌보드 싱글 차트 2위에 올랐다. 밴드는 끝내 1위 곡을 갖지 못했지만, 그해 미국에서 가장 많은 음반을 판 밴드 가운데 하나였다. (남부) 이 노래들이 그린 것은 미시시피강의 증기선과 루이지애나의 늪, 남부의 작은 마을이었다. 그러나 존은 그때까지 그 남부를 제대로 겪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어려서 들은 음반과 영화, 책으로 상상의 남부를 지어냈다. 거친 목소리와 단순하고 단단한 리듬 때문에 많은 청취자가 이들을 남부 출신 밴드로 여겼다. 평론가들은 블루스와 컨트리가 끈적하게 섞인 이 소리를 늪지 록(스웜프 록)이라 불렀다. (작업) 비결은 반복과 준비였다. 밴드는 공연이 없는 날에도 거의 매일 연습했고, 존은 편곡을 미리 다 짜 와서 각 파트를 정확히 지시했다. 녹음은 샌프란시스코의 월리 하이더 스튜디오에서 엔지니어 러스 개리와 함께 짧고 빠르게 이뤄졌다. 화음 코러스까지 존이 혼자 겹쳐 녹음하는 일이 많았다. 존은 이 방식이 지금의 성공을 만들었다고 믿었다. (우드스톡) 8월에는 우드스톡 페스티벌에 섰다. 유명 밴드 가운데 가장 먼저 출연 계약을 맺은 쪽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순서가 그레이트풀 데드 뒤 자정 넘어로 밀렸고, 존은 공연이 만족스럽지 않았다며 기록 영화와 음반에 싣는 것을 거절했다. 그 무대는 50주년이던 2019년에야 온전히 공개됐다.

♪본 온 더 바이유 (Born on the Bayou)1969실황 John Fogerty · Bruce Springsteen·Robbie Robertson · 1993 명예의 전당

《바이유 컨트리》의 첫 곡이자 존이 지어낸 상상의 남부가 가장 짙게 드러나는 노래다. 가 본 적 없는 늪을 고향처럼 노래한다.

  • 첫 코드가 떨림 효과(트레몰로)를 머금고 길게 번지는 도입부는 늪 위의 안개처럼 들린다. 기타는 줄을 한 음 낮춰 조율해 더 묵직한 울림을 냈다고 알려져 있다.
  • 드럼과 베이스는 서두르지 않는 중간 빠르기로 끈적하게 밀고 나간다. 늪지 록(스웜프 록)이라는 말이 어떤 몸의 느낌인지 이 그루브(몸을 저절로 움직이게 하는 리듬의 결)에서 알 수 있다.
  • 존의 보컬은 노래라기보다 외침에 가까운 거친 질감이다. 화자는 어린 시절의 고향을 회상하는 어조로 말한다.
  • 밴드는 이 곡으로 공연을 여는 일이 많았다. 라이브판에서는 도입부를 더 길게 끌며 분위기를 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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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우드 메리 (Proud Mary)1969무대 Creedence Clearwater Revival · 1969 Ed Sullivan Show

제대한 해에 착상한 곡으로, 밴드의 첫 2위 곡이 됐다. 도시의 고된 일을 떠나 강 위의 배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해방감을 그린다.

  • 도입부의 엇박 코드 반복은 존이 베토벤 5번 교향곡의 첫머리처럼 힘 있게 시작하고 싶어서 만들었다고 설명한 대목이다.
  • 후렴의 화음 코러스는 존이 자기 목소리를 여러 번 겹쳐 녹음(오버더빙)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사람이 합창단처럼 들리는 지점을 찾아보면 좋다.
  • 간주의 기타는 화려한 속주 대신 컨트리풍으로 두세 음을 짧게 튕긴다. 이 절제가 크리던스 기타의 특징이다.
  • 1971년 아이크 앤드 티나 터너가 느리게 시작해 빨라지는 판으로 다시 불러 크게 히트했다. 원곡의 고른 중간 빠르기와 비교해 들으면 곡의 뼈대가 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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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 문 라이징 (Bad Moon Rising)1969실황 Creedence Clearwater Revival · 1970 Royal Albert Hall

1969년의 2위 행진을 이은 곡이다. 존은 오래된 영화 「악마와 대니얼 웹스터」의 폭풍 장면에서 착상을 얻었다고 말했다.

  • 도입의 기타 리프(곡을 대표하는 짧은 반복 악절)는 세 개의 코드만으로 된 로커빌리풍이라 밝고 경쾌하게 들린다.
  • 그런데 노래의 내용은 다가오는 재앙에 대한 예감이다. 흥겨운 리듬과 불길한 주제가 엇갈리는 대비가 이 곡의 핵심이다.
  • 전체 길이가 2분 남짓으로 아주 짧다. 군더더기 없는 절과 후렴, 짧은 기타 간주로 끝나는 구성을 따라가 보면 좋다.
  • 드럼은 컨트리 음악처럼 통통 튀는 리듬을 유지해, 무거운 예언을 춤추듯 가볍게 실어 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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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코스모의 공장 · 1969–1970

(분노) 1969년 가을 「포추네이트 선」이 나왔다. 존은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의 손자가 닉슨 대통령의 딸과 결혼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권력자의 자식은 전쟁에 가지 않고 가난한 집 아이들이 끌려간다는 생각에 이 곡을 썼다고 말했다. 예비군으로 복무한 그는 반전 집회의 구호보다 징집되는 쪽의 시선으로 분노했다. 곡은 「다운 온 더 코너」와 앞뒷면을 나눠 가진 양면 싱글로 나와 3위에 올랐다. (공장) 밴드는 버클리의 한 창고를 연습실로 썼다. 쉼 없이 돌아가는 일정을 두고 클리퍼드의 별명을 따서 코스모의 공장이라 불렀다. 1970년 7월 같은 이름의 앨범 《코스모스 팩토리》가 나와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9주 동안 머물렀다. 경쾌한 「트래블린 밴드」, 「업 어라운드 더 벤드」, 「룩킹 아웃 마이 백 도어」 곁에 어두운 「런 스루 더 정글」과 「후일 스톱 더 레인」이 나란히 놓였다. (비) 존은 「후일 스톱 더 레인」에 우드스톡에서 비에 젖은 군중을 본 기억과 끝없이 되풀이되는 정치인의 약속이 함께 들어갔다고 말했다. 「런 스루 더 정글」은 흔히 베트남 전쟁의 노래로 들렸지만, 그는 미국 안에 넘쳐나는 총기를 두고 쓴 곡이라고 설명했다. 시대의 불안이 밝은 리듬 아래 깔렸다. (정상) 1970년 봄 첫 유럽 투어에서 밴드는 런던 로열 앨버트 홀 무대에 섰다. 상업적으로 정점이었지만 무대 밖에서는 긴장이 쌓였다. 다른 세 멤버는 작곡과 노래, 사업 결정에 더 큰 몫을 원했고, 존은 성공을 만든 방식을 바꾸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 차이는 다음 해에 갈라짐으로 이어졌다.

♪포추네이트 선 (Fortunate Son)1969실황 Creedence Clearwater Revival · 1970 Royal Albert Hall

예비군으로 복무한 존이 특권층의 자식은 전쟁에서 빠지는 현실에 분노해 쓴 곡이다. 오늘날까지 베트남 전쟁 시대를 상징하는 노래로 남았다.

  • 곡은 클리퍼드의 드럼 연타와 기타 리프가 거의 동시에 터지며 시작한다. 예열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출발이다.
  • 존의 목소리는 목이 쉰 듯 갈라지며 앞으로 튀어나온다. 화자는 징집되는 평범한 집 아이의 처지에서 권력자를 향해 말한다.
  • 2분 20초 남짓한 짧은 곡이라 분노가 식을 틈이 없다. 반복되는 후렴이 같은 말을 점점 더 세게 밀어붙이는 구성에 귀를 기울여 보자.
  • 2004년 '보트 포 체인지' 순회공연에서 존은 스프링스틴, R.E.M.과 같은 무대에 서며 이 곡을 불렀다. 시대가 바뀌어도 다시 불리는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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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코스모스 팩토리》 (Cosmo's Factory)1970공식 MV 「Travelin' Band」 — Creedence Clearwater Revival

버클리의 연습 창고에서 이름을 딴, 밴드의 정점이 된 앨범이다. 밝은 히트곡과 어두운 시대의 노래, 로커빌리 커버가 한 장에 모였다.

  • 앨범의 「런 스루 더 정글」은 녹음테이프를 거꾸로 돌린 소리(백워드 테이프)로 시작한다. 이어지는 하모니카도 존이 직접 불었다.
  • 11분이 넘는 「아이 허드 잇 스루 더 그레이프바인」은 남의 곡을 다시 부른 노래(커버)를 긴 즉흥 연주로 늘린 것이다. 「수지 Q」에서 시작된 긴 연주의 결정판으로 들을 만하다.
  • 「우비 두비」와 「마이 베이비 레프트 미」 같은 1950년대 로커빌리 커버는 엘세리토 소년들의 뿌리가 어디인지 보여 준다.
  • 「롱 애즈 아이 캔 시 더 라이트」에서는 존이 연주한 색소폰이 들린다. 앨범을 끝맺는 이 느린 곡은 다음 작품 《펜듈럼》의 넓어진 소리를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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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비를 본 적이 있나 · 1970–1972

(변화) 1970년 12월 《펜듈럼》이 나왔다. 존은 오르간과 색소폰을 더하고 녹음 시간을 늘려 소리의 폭을 넓혔다. 이 앨범에 실린 「해브 유 에버 신 더 레인」에 대해 그는 훗날, 모든 것을 이룬 듯한 순간에 밴드 안에서 무언가가 무너지고 있다는 예감에서 나온 노래라고 설명했다. 성공의 한가운데에서 쓴 쓸쓸한 노래였다. (탈퇴) 1971년 초 톰 포거티가 밴드를 떠났다. 그는 동생의 곡 뒤에서 리듬 기타만 치는 데 지쳤다는 뜻을 밝혔고,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 형의 노래를 받쳐 주던 동생이 이제 밴드의 얼굴이 되어 있었다. 남은 세 사람은 삼인조로 투어를 이어 갔다. (분담) 세 사람은 다음 앨범에서 작곡과 노래를 똑같이 나누기로 했다. 1972년 4월 나온 《마디 그라》에는 존, 쿡, 클리퍼드의 곡이 비슷한 비율로 실렸고, 존은 자기 곡이 아닌 곡에서는 기타 연주로만 거들었다. 앞서 싱글로 나온 존의 「스위트 히치하이커」는 6위에 올랐지만, 앨범은 이전 작품들에 비해 판매와 평단의 반응이 모두 크게 떨어졌다. (해체) 1972년 10월 판타지는 밴드의 해체를 공식 발표했다. 블루 벨벳 시절부터 따지면 13년, 크리던스라는 이름으로는 5년이 채 안 되는 시간이었다. 그 짧은 동안 밴드는 정규 앨범 일곱 장과 오늘날까지 라디오와 영화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스무 곡 가까이를 남겼다.

♪해브 유 에버 신 더 레인 (Have You Ever Seen the Rain)1970실황 John Fogerty · 2010 Night of the Proms

존은 성공의 정점에서 밴드가 흔들리기 시작한 순간의 예감을 담은 곡이라고 설명했다. 톰이 떠나기 직전에 나온 노래다.

  • 바닥에 깔린 오르간은 존이 직접 연주한 것이다. 기타 중심이던 이전 곡들보다 소리가 둥글고 따뜻하게 들린다.
  • 드럼은 단순한 여덟 박 리듬을 흔들림 없이 지킨다. 그 위에서 보컬이 체념한 듯 담담하게 질문을 되풀이하는 어조가 곡의 정서를 만든다.
  • 후렴에서 겹쳐 쌓인 화음은 이번에도 존 혼자 녹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의 절보다 소리가 넓게 퍼지는 순간을 느껴 보자.
  • 밝은 장조 가락 위에 쓸쓸한 내용을 올린 점에서 「배드 문 라이징」과 같은 대비의 방법을 쓰지만, 이번에는 훨씬 차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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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긴 그림자 · 1973–2026

(계약) 해체 뒤에도 판타지와의 계약은 존을 붙들었다. 그는 1973년 모든 악기를 혼자 연주한 블루 리지 레인저스 앨범을 냈고, 다른 레이블로 옮기는 과정에서도 크리던스 시절 노래의 권리를 되찾지 못했다. 그는 오랫동안 무대에서 그 노래들을 부르지 않았다. 1987년 7월 워싱턴 근교에서 열린 베트남 참전 용사를 위한 공연에서야 다시 크리던스의 곡을 불렀다. (소송) 1985년 솔로 앨범 《센터필드》가 1위에 오르자 자엔츠의 판타지는 수록곡 「디 올드 맨 다운 더 로드」가 판타지가 권리를 가진 「런 스루 더 정글」을 베꼈다며 소송을 냈다. 작곡자가 자기 노래를 표절했다는 주장이었다. 1988년 배심원단은 존의 손을 들어 줬고, 변호사 비용을 둘러싼 후속 다툼은 1994년 연방대법원 판결로 역시 그의 승리로 끝났다. (상실) 톰은 솔로 음반을 내며 음악을 이어 갔지만, 허리 수술 중 받은 수혈로 HIV에 감염됐고 1990년 9월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에서 결핵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마흔여덟 살이었다. (명예) 1993년 밴드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올랐고, 헌정 연설은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맡았다. 시상식에서 존은 스프링스틴, 로비 로버트슨 등과 함께 연주했다. 쿡과 클리퍼드는 1995년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비지티드를 꾸려 2020년까지 옛 노래로 세계를 돌았다. 존은 2004년 스프링스틴, R.E.M.과 함께 '보트 포 체인지' 순회공연에 서며 「포추네이트 선」을 다시 불렀다. (귀환) 2023년 존은 반세기 만에 크리던스 시절 노래의 저작권 대부분을 되찾았고, 2025년 그 노래들을 새로 녹음한 앨범 《레거시》를 냈다. 노래를 쓴 사람의 손으로 노래가 돌아온 셈이었다.

덜 알려진 이야기

남부의 늪과 강을 노래한 밴드였지만, 존 포거티는 그 노래들을 쓸 무렵 남부를 제대로 겪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그 남부가 어린 시절의 음반과 영화가 만든 상상의 장소였다고 밝혔다. 「로다이」의 캘리포니아 소도시 이름도 실제로 가 본 경험보다 소리가 좋아서 골랐다고 말했다. 거친 목소리 탓에 남부 밴드라는 인상이 굳었고, 그래서 이 사실은 오래 묻혔다. 1980년 판타지는 런던 로열 앨버트 홀 실황이라며 라이브 앨범을 냈다. 그러나 실제 녹음은 1970년 1월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공연이었다. 잘못은 뒤에 알려졌고, 음반은 조용히 「더 콘서트」로 이름을 바꿨다. 그래서 옛 판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만 오가는 이야기가 됐다. 밴드의 우드스톡 공연은 기록 영화가 그 축제의 기억을 정의하는 동안 반세기 가까이 빠져 있었다. 존이 수록을 거절한 탓이었다. 2019년 50주년 공개로 그 무대가 늦게나마 되살아났다. 밴드는 1970년대 초 자문을 받아 해외 금융 기관에 돈을 맡겼다가 큰 손실을 봤다. 같은 시기 크리던스가 벌어들인 판타지의 수익은 솔 자엔츠가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1975)를 제작하는 바탕이 됐다는 점을 여러 평전이 짚는다.

용어 노트 📚🔎

스웜프 록

(말뜻) 스웜프(swamp)는 영어로 늪이라는 뜻이다. 늪처럼 끈적하고 습한 미국 남부의 느낌을 가진 록이라는 이름이다. (록에서) 블루스와 컨트리, 리듬 앤드 블루스를 섞어 무겁고 끈적하게 흐르는 리듬을 내는 록을 가리킨다.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이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비가 그친 운동장의 진흙을 밟으며 걸을 때 발이 묵직하게 끌리면서도 리듬은 일정한 느낌과 비슷하다.

트레몰로

(말뜻) 이탈리아어 tremolare, 곧 떨다라는 말에서 왔다. (록에서) 기타 앰프 안의 장치가 소리의 크기를 아주 빠르게 줄였다 키웠다를 반복해, 소리가 물결치듯 떨리게 만드는 효과다. 「수지 Q」와 「본 온 더 바이유」의 도입부에서 잘 들린다. 선풍기 앞에서 아 하고 길게 소리를 내면 목소리가 떨려 들리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클래식 현악기에서는 활로 같은 음을 아주 빠르게 되풀이해 긋는 연주법을 트레몰로라 부른다.

오버더빙

(말뜻) 위에(over) 소리를 입힌다(dub)는 뜻이다. (록에서) 이미 녹음된 소리 위에 다른 소리를 하나씩 덧입혀 녹음하는 방법이다. 존 포거티는 자기 목소리를 여러 번 겹쳐 녹음해 혼자서 화음 코러스를 만들곤 했다. 휴대폰 녹음 앱으로 내 노래를 틀어 놓고 그 위에 다시 화음을 불러 혼자 합창을 만드는 것과 같다.

리프

(록에서) 곡 안에서 여러 번 되풀이되며 그 곡을 대표하는 짧은 악절을 말한다. 대개 기타가 연주하며, 처음 몇 초만 들어도 무슨 곡인지 알게 해 준다. 「배드 문 라이징」과 「포추네이트 선」의 도입부가 좋은 예다. 축구 응원가에서 모두가 따라 하는 짧은 박수 리듬이 경기 내내 되풀이되며 그 팀을 떠올리게 하는 것과 비슷하다.

양면 싱글

(록에서) 예전 싱글 음반은 한 장에 앞면(A면)과 뒷면(B면)에 한 곡씩 실었다. 보통 앞면이 히트를 노린 곡이고 뒷면은 덤이었지만, 양쪽 곡이 모두 라디오에서 인기를 얻는 경우를 양면 싱글이라 불렀다. 「다운 온 더 코너」와 「포추네이트 선」이 그런 예다. 급식에서 반찬 두 가지가 모두 인기 메뉴라 어느 쪽이 주인공인지 가리기 어려운 날과 비슷하다.

로열티

(말뜻) 영어 royalty는 왕의 권리라는 말에서 왔다. 옛날 왕의 땅이나 광산을 쓰는 사람이 왕에게 바치던 사용료에서 뜻이 넓어졌다. (록에서) 음반이 팔리거나 노래가 방송될 때마다 음악가와 작곡가에게 돌아가는 몫이다. 계약서에 정한 비율에 따라 받으며, 이 비율이 낮으면 아무리 많이 팔려도 손에 쥐는 돈이 적다. 친구들이 내가 만든 게임 맵을 쓸 때마다 사탕을 하나씩 받기로 약속하는 것과 같다. (다른 데서는) 일상 영어에서 royalty는 왕족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저작권(퍼블리싱)

(록에서) 음악에는 두 가지 권리가 있다. 하나는 녹음된 음반 자체의 권리이고, 다른 하나는 노래, 곧 곡과 가사에 대한 권리다. 퍼블리싱은 이 노래의 권리를 관리하는 일로, 다른 가수가 부르거나 광고와 영화에 쓰일 때 돈을 받는다. 존 포거티는 자기가 쓴 노래의 이 권리를 2023년에야 대부분 되찾았다. 요리 사진과 요리법이 따로 있는 것과 같다. 사진은 남의 것이어도, 요리법을 만든 사람에게는 그 요리법의 권리가 있다. (다른 데서는) 퍼블리싱은 일반적으로 책이나 잡지를 펴내는 출판 일을 뜻한다.

커버

(록에서) 다른 음악가가 먼저 발표한 노래를 자기 방식으로 다시 연주하고 녹음하는 것을 말한다. 크리던스는 「수지 Q」와 「아이 허드 잇 스루 더 그레이프바인」을 길게 늘인 판으로 커버했고, 반대로 「프라우드 메리」는 아이크 앤드 티나 터너가 커버해 크게 히트했다. 합창 대회에서 유명한 가요를 우리 반만의 편곡으로 부르는 것과 같다. (다른 데서는) 커버는 책이나 음반의 표지를 뜻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