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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DC

1973–

단순한 리프 몇 개로 반세기를 버틴, 꾸밈없는 하드 록의 원형이었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영국 글래스고 출생호주 시드니 이주이지비트와 조지 영2. 결성호주 시드니 결성본 스콧 합류스쿨보이 복장3. 질주하이웨이 투 헬머트 랭 프로듀스국제 시장 진입4. 격변본 스콧의 죽음브라이언 존슨 합류백 인 블랙 성공5. 흔들림필 러드 교체맬컴의 공백선더스트럭 복귀6. 유산맬컴의 죽음액슬 로즈 대타파워 업 복귀AC/DC1973–교복 차림의 기타리스트와 거친 목소리가 반세기…
무대가 된 도시 🧭🗺️
N영국글래스고1953–1963런던1976–1980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멤버와 동료들 ⏳🌊

  • 멤버맬컴 영

    리듬 기타를 맡으며 밴드를 이끈 공동 창립자였다.

  • 멤버앵거스 영

    리드 기타와 스쿨보이 복장으로 상징이 된 공동 창립자다.

  • 멤버본 스콧

    거친 음색과 즉흥적인 무대로 밴드의 초기 목소리를 만든 보컬이었다.

  • 멤버브라이언 존슨

    본 스콧의 뒤를 이어 전설적인 성공을 함께 이끈 보컬이다.

  • 가족조지 영

    이지비트의 멤버였고 동생들의 초기 음반을 프로듀스한 맏형이다.

  • 협업액슬 로즈

    2016년 투어에서 브라이언 존슨을 대신해 보컬을 맡아 무대를 지켰다.

YouTube에서 6곡 이어 듣기 ↗

I. 글래스고에서 시드니로 · 1953–1973

1973년, 호주 시드니에서 결성됐다. 그러나 이야기는 그보다 20년 앞선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시작된다. (출생) 맬컴 영은 1953년, 앵거스 영은 1955년 글래스고의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윌리엄과 마거릿 영 부부는 여러 자녀를 두었고, 맬컴과 앵거스는 그중 어린 쪽에 속했다. 집안은 가난했지만 음악이 끊이지 않았다. (이주) 1963년, 영 가족은 전후 영국 정부가 지원한 이민 제도를 타고 호주 시드니로 건너갔다. 어린 형제들에게 이주는 낯선 땅에서 다시 시작하는 일이었고, 두 소년은 학교보다 기타에 먼저 마음을 붙였다. (형) 맏형 조지 영은 이미 시드니에서 밴드 이지비트의 멤버로 전국적인 인기를 얻고 있었다. 「프라이데이 온 마이 마인드」 같은 히트곡을 남긴 조지는 동생들에게 음악이 생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보여준 첫 사람이었다. 훗날 그는 동생들의 음반을 손수 프로듀스하며 밴드의 가장 가까운 조언자가 된다. (교복) 앵거스는 아직 학생 신분으로 동네 밴드를 전전했다. 공연장에 교복을 입은 채 뛰어든 어느 날, 누나가 재미있어하며 그대로 입고 연주하라 권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우연한 복장은 훗날 그의 상징이 된다.

II. 결성과 멤버들 · 1973–1975

(결성) 1973년 말, 맬컴 영은 자신의 밴드를 새로 꾸리며 동생 앵거스에게 합류를 제안했다. 밴드 이름은 누나 마거릿이 집에 있던 재봉틀에 적힌 AC/DC라는 표기를 보고 제안했다고 전해진다. 교류전류와 직류를 뜻하는 이 전기 용어는 밴드의 거칠고 직선적인 사운드와 잘 맞아떨어졌다. (보컬) 첫 보컬은 데이브 에반스였지만 성격 차이로 오래가지 못했다. 1974년,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호주 프리맨틀에서 자란 본 스콧이 밴드에 들어왔다. 그는 오토바이 사고로 다친 몸을 추스르며 처음엔 밴드의 운전기사로 일했는데, 에반스가 해고된 직후 마이크를 넘겨받아 노래하기 시작했다. (리듬) 1975년 필 러드가 드럼 자리에 들어와 리듬의 중심을 잡았다. 베이스는 여러 사람을 거쳐 마크 에반스가 자리를 잡으며 초기 라인업이 완성됐다. (무대) 앵거스는 스쿨보이 복장을 그대로 밴드의 트레이드마크로 가져갔고, 척 베리의 오리걸음을 변주한 동작을 더해 무대를 뛰어다니는 연주자로 자신을 완성해갔다. 본 스콧의 거칠고 즉흥적인 쇼맨십은 이 어린 기타리스트의 에너지와 짝을 이뤘다.

♪T.N.T. (T.N.T.)1975실황 AC/DC · 2009 River Plate

초기 라인업이 처음으로 완성된 직후 나온 곡으로, 거친 쇼맨십과 단순한 구조가 이미 뚜렷하다.

  • 도입부는 두 음만 눌러 굵게 울리는 화음(파워 코드)을 맬컴이 반복하며 곡 전체의 뼈대를 세운다.
  • 후렴에서는 밴드 전체가 함께 외치듯 주고받는 구간이 나오는데, 라이브에서는 관객이 그대로 받아 부르는 합창으로 이어진다.
  • 필 러드의 드럼은 장식 없이 일정한 박을 지키며 리프가 숨 쉴 자리를 만들어준다.
  • 본 스콧의 목소리는 가다듬지 않은 거친 질감 그대로 녹음돼, 스튜디오보다 공연장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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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첫 성공 · 1975–1979

(음반) 1975년 발표한 데뷔작 《하이 볼티지》는 호주 안에서 먼저 반향을 일으켰고, 이듬해 국제판이 묶여 나오며 밴드를 처음으로 호주 바깥에 알렸다. 그 안에 담긴 「T.N.T.」는 관객이 후렴에서 함께 외치는 합창 구간으로 밴드의 상징 같은 곡이 됐다. (투어) 1977년 베이시스트 클리프 윌리엄스가 합류하며 라인업이 다시 다져졌다. 밴드는 영국과 유럽의 작은 클럽을 돌며 거의 쉬지 않고 공연했고, 《렛 데어 비 록》과 《파워리지》를 그 과정에서 쌓아 올렸다. 화려한 치장 없이 노동자 계급의 언어로 말하는 가사와 사운드는 당시 유행하던 아트 록과 거리를 두며 고유한 자리를 만들었다. (해외) 초기작들은 맏형 조지 영과 그의 동료 해리 반다가 프로듀스했다. 두 사람은 거칠고 단순한 사운드를 그대로 살리는 쪽을 택했는데, 이것이 밴드 특유의 투박한 질감을 지키는 토대가 됐다. (도약) 1979년, 프로듀서 로버트 존 머트 랭이 참여한 《하이웨이 투 헬》은 더 또렷하고 단단하게 다듬어진 사운드로 밴드를 처음으로 미국 시장의 중심에 올려놓았다. 성공과 함께 투어 일정은 더 빡빡해졌고, 본 스콧의 술자리도 늘어갔다.

♪하이웨이 투 헬 (Highway to Hell)1979실황 AC/DC · 2009 River Plate

끝없는 투어 생활을 스스로 신화화한 타이틀 곡으로, 머트 랭의 손길로 사운드가 한층 또렷해졌다.

  • 메인 리프는 이전 앨범들보다 또렷하게 분리돼 들리는데, 이는 머트 랭이 각 악기를 녹음 단계에서 더 선명히 배치한 결과다.
  • 앵거스의 짧은 기타 솔로는 꾸밈을 최소화한 채 리프의 멜로디를 그대로 변주한다.
  • 브리지 없이 절과 후렴을 반복하는 단순한 구성이 오히려 곡을 더 집요하게 만든다.
  • 본 스콧의 보컬은 지친 듯하면서도 여유 있는 화법으로, 고된 투어 생활을 농담처럼 넘기는 어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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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상실과 정점 · 1980–1981

(죽음) 1980년 2월, 본 스콧은 런던에서 밤새 술을 마신 뒤 친구의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검시 결과는 급성 알코올 중독에 따른 질식사였다. 서른세 살이었다. (결정) 밴드는 해체를 고민했지만, 본 스콧의 부모가 계속하길 바란다는 뜻을 전해왔다는 이야기와 함께 활동을 이어가기로 했다. 뉴캐슬 출신 밴드 조디의 보컬 브라이언 존슨이 새 목소리로 뽑혔는데, 본 스콧이 생전에 그의 무대를 보고 감탄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앨범) 같은 해 바하마 콤파스 포인트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백 인 블랙》은 머트 랭의 손끝에서 완성됐다. 종소리로 시작하는 첫 곡 「헬스 벨스」와 타이틀 곡은 공개적으로 본 스콧에게 바치는 헌사로 받아들여졌고, 앨범은 역대 가장 많이 팔린 음반 중 하나로 남았다. (정점) 1981년 《포 더즈 어바웃 투 락, 위 설루트 유》 투어에서는 실제 대포를 무대에서 쏘아 올리는 공연을 선보이며 스타디움 록의 한 정점을 보여줬다.

♪앨범 《백 인 블랙》 (Back in Black)1980실황 「Hells Bells」 AC/DC · 1991 도닝턴 페스티벌

본 스콧을 잃은 밴드가 브라이언 존슨과 함께 완성한 헌사이자, 역대 최다 판매 앨범 중 하나다.

  • 대표곡 「헬스 벨스」는 실제 종소리 녹음으로 시작해, 죽음을 암시하는 분위기를 곡 전체에 깔아놓는다.
  • 브라이언 존슨의 목소리는 쇳소리에 가까운 높은 샤우트로, 본 스콧과는 다르지만 비슷한 긁힌 질감을 지녔다.
  • 맬컴과 앵거스의 기타는 서로 다른 역할로 또렷이 나뉘어 들리는데, 한쪽은 리프를 지키고 다른 쪽이 그 위에 멜로디를 얹는다.
  • 바하마 콤파스 포인트 스튜디오의 녹음은 이전보다 울림이 넓고 깨끗해, 스타디움에서 들을 것을 미리 염두에 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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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흔들림 · 1983–1994

(해고) 1983년, 필 러드는 맬컴과의 불화 끝에 밴드를 떠났다. 사이먼 라이트가 자리를 이었고, 라인업은 10년 가까이 바뀐 상태로 유지됐다. (공백) 맬컴 자신도 오랜 음주로 건강이 흔들리고 있었다. 1988년 투어 도중 그는 자리를 비웠고, 조카 스티비 영이 임시로 기타를 메웠다. 이 시기 밴드는 관계를 추스르며 사운드도 자연히 머뭇거렸다. (모색) 《플릭 오브 더 스위치》와 《플라이 온 더 월》은 평가가 엇갈렸지만, 밴드는 해체 없이 다음을 모색했다. 맬컴이 건강을 추스른 뒤, 1990년 《레이저스 엣지》로 돌아오며 분위기를 되돌렸다. (복귀) 이 앨범에 실린 「선더스트럭」은 앵거스의 빠른 손가락 주법 인트로로 시작해 다시 한 번 전 세계 라디오를 장악했다. 1994년에는 필 러드도 밴드로 돌아와 가장 익숙한 조합이 다시 완성됐다.

♪선더스트럭 (Thunderstruck)1990실황 AC/DC · 1991 Donington

흔들리던 시기를 지나 돌아온 밴드가 다시 세계 라디오를 장악한 복귀곡이다.

  • 곡을 여는 인트로는 앵거스가 손가락으로 재빠르게 현을 두드려 짚는 주법으로, 기타 한 대만으로 긴장을 끌어올린다.
  • 이어지는 구간에서 멤버 전체가 한 단어를 되받아 외치는 콜앤리스폰스가 곡의 긴장을 폭발시킨다.
  • 필 러드가 떠난 자리를 지키던 크리스 슬레이드의 드럼은 단순하지만 힘 있게 곡을 받친다.
  • 라이브에서는 인트로 기타 연주가 곡 길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만큼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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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상실과 변화 · 2014–2017

(은퇴) 2014년, 맬컴 영은 치매 진단을 받고 무대를 완전히 떠났다. 조카 스티비 영이 정식으로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됐다. (법정) 같은 해 말 필 러드는 살해 위협과 약물 소지로 기소돼 이듬해 유죄 판결을 받았고, 투어에 함께할 수 없었다. 《록 오어 버스트》 투어는 크리스 슬레이드가 드럼을 대신 쳤다. (청력) 2016년에는 브라이언 존슨이 심한 청력 손실을 공개적으로 밝히며 남은 투어 일정에서 물러났다. 같은 시기 건즈 앤 로지스의 액슬 로즈가 남은 공연의 보컬을 대신 맡아, 서로 다른 세대의 록을 잇는 흥미로운 장면을 만들었다. (죽음) 2017년 11월, 맬컴 영은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같은 해 10월에는 맏형이자 오랜 프로듀서였던 조지 영도 숨을 거뒀다. 한 해에 두 사람을 잃은 것은 밴드와 가족 모두에게 무거운 시간이었다.

♪록 오어 버스트 (Rock or Bust)2014공식 MV — AC/DC

맬컴 없이 처음 만든 앨범의 타이틀 곡으로, 상실 이후에도 계속하겠다는 선언처럼 들린다.

  • 리프는 과거보다 더 단단하게 다듬어진 소리를 일부러 찢어지게 왜곡한 기타 음색(디스토션)으로 들려,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정체성을 확인시켜 준다.
  • 조카 스티비 영의 리듬 기타는 맬컴의 연주 어법을 의식적으로 이어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곡 길이는 3분 남짓으로 짧게 끝나, 긴말 없이 치고 빠지는 밴드 특유의 태도를 그대로 지킨다.
  • 브라이언 존슨의 보컬은 짧고 간결한 구절을 반복해, 선언문을 외치는 듯한 어조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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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 지금 · 2020–

(복귀) 2020년 《파워 업》으로 밴드는 다시 모였다. 클리프 윌리엄스와 필 러드가 돌아왔고, 브라이언 존슨도 보컬로 복귀했다. 앨범은 맬컴 영에게 바치는 헌사로 소개됐다. (무대) 앵거스 영은 일흔을 앞둔 나이에도 교복 차림으로 무대를 뛰어다니며 2023년과 2024년 공연을 이어갔다. 새로운 세션 연주자들과 함께한 무대는 밴드가 여전히 현역이라는 사실을 또렷이 보여줬다. (유산) 2003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이 밴드는 하드 록과 헤비메탈 이후 세대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단순한 리프와 꾸밈없는 태도로 반세기를 버텨온 이야기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샷 인 더 다크 (Shot in the Dark)2020공식 MV — AC/DC

오랜 멤버들이 다시 모여 완성한 《파워 업》의 대표곡으로, 맬컴을 향한 기억이 여전히 배어 있다.

  • 오프닝 리프는 초기작들의 단순한 어법으로 되돌아간 듣기로, 밴드가 의도적으로 복고적인 색을 입혔다는 평이 많다.
  • 필 러드와 클리프 윌리엄스가 함께 만드는 베이스와 드럼의 호흡(그루브)은 수십 년을 함께 연주한 사람들만 낼 수 있는 안정감을 보여준다.
  • 브라이언 존슨의 목소리는 전보다 낮아졌지만, 후렴에서 여전히 힘 있게 끌어올리는 구간이 남아 있다.
  • 앵거스의 짧은 솔로는 화려한 기교 대신 익숙한 멜로디 조각을 다시 들려주는 쪽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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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알려진 이야기

AC/DC가 결성되기 직전, 조지 영과 해리 반다는 마커스 훅 롤 밴드라는 프로젝트를 꾸려 앨범 한 장을 녹음했다. 이때 기타를 보탠 것이 다름 아닌 어린 맬컴과 앵거스였는데, 정식 밴드가 생기기도 전에 이미 형의 스튜디오 작업에 조용히 참여했던 셈이다. 밴드 이름이 양성애를 가리킨다는 소문이 수십 년째 떠돌지만, 멤버들과 전기 작가들은 거듭 이를 부인했다. 누나 마거릿이 가전제품에 적힌 교류·직류 표기를 보고 제안했다는 쪽이 멤버들이 직접 밝힌 설명이며, 성적 의미와는 무관하다. 본 스콧은 처음부터 보컬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오토바이 사고로 다친 몸을 추스르며 밴드의 운전과 잡무를 돕는 쪽으로 먼저 인연을 맺었다. 당시 보컬이던 데이브 에반스가 해고되자 그 자리를 자연스럽게 넘겨받은 것은, 계획된 영입이 아니라 우연에 가까운 전환이었다. 본 스콧이 묻힌 호주 프리맨틀의 묘지는 오늘날 팬들의 순례지가 됐고, 한 여행 조사에서 호주 내 가장 인상적인 관광지 중 하나로 뽑히기도 했다. 음악가의 무덤이 이런 식으로 대중적 명소가 된 사례는 드물다.

용어 노트 📚🔎

리프

(록에서) 노래 내내 반복되며 곡을 지탱하는 짧은 기타 선율이나 화음 진행을 말한다. 운동 경기에서 응원단이 계속 반복하는 짧은 구호처럼, 리프도 한 번 들으면 곡 전체를 떠올리게 하는 역할을 한다.

파워 코드

(록에서) 보통 세 음으로 이뤄진 화음에서 밝고 어두운 느낌을 결정하는 음을 빼고 두 음만 남겨 더 굵고 단단하게 울리게 만든 연주법이다. 여러 재료를 뺀 간단한 샌드위치처럼, 구성은 단순하지만 그만큼 힘이 세다.

디스토션

(말뜻) 영어 디스토션은 비틀다라는 뜻의 라틴어 디스토르케레에서 왔다. (록에서) 기타 증폭기에 일부러 과도한 신호를 흘려 보내 소리를 찢어지게 만드는 효과로, 값싼 스피커에 대고 큰 소리로 외칠 때 소리가 갈라지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다른 데서는) 사진이나 렌즈에서도 같은 말이 쓰이는데, 이때는 이미지가 휘어지거나 뒤틀려 보이는 현상을 가리킨다.

그루브

(말뜻) 영어 그루브는 원래 레코드판에 새겨진 홈을 뜻하며, 바늘이 그 홈을 따라 반복해서 도는 모습에서 비유가 생겼다. (록에서) 베이스와 드럼이 서로 맞물려 만들어내는 반복적인 리듬감으로, 농구공을 일정한 간격으로 계속 튀기는 느낌과 비슷하게 몸을 움직이게 만든다.

오버더빙

(말뜻) 더빙은 겹쳐 씌운다는 뜻의 영어 더블에서 왔고, 오버더빙은 그 위에 한 번 더 덧씌운다는 뜻이다. (록에서) 이미 녹음한 음악 위에 추가로 기타나 목소리를 덧입혀 녹음하는 방식으로, 투명한 종이 여러 장에 따로 그린 그림을 겹쳐 하나의 완성된 그림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한국에서 더빙은 보통 영화나 드라마의 대사를 다른 언어 목소리로 바꿔 입히는 작업을 가리킨다.

솔로

(말뜻) 솔로는 혼자라는 뜻의 이탈리아어에서 왔다. (록에서) 다른 악기들이 뒤로 물러서고 한 악기, 보통은 기타가 짧게 주목받는 구간을 말한다. 조별 발표에서 한 사람이 잠깐 앞에 나와 자기 몫을 발표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여행이나 카드 게임에서도 혼자 하는 활동을 가리킬 때 같은 말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