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na Turner
서른여섯 살에 주머니에 36센트만 들고 집을 나온 여성은, 마흔넷에 미국 싱글 차트의 맨 꼭대기에 다시 섰다.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가족아이크 터너
그녀를 무대에 세우고 예명을 지어 준 밴드 리더이자 남편이었지만, 자서전에 따르면 결혼 생활 내내 폭력을 휘둘렀다.
- 동료필 스펙터
「리버 딥, 마운틴 하이」를 제작해 그녀의 목소리를 아이크의 레뷰 바깥으로 꺼내 보인 프로듀서였다.
- 우정믹 재거
1966년부터 롤링 스톤스 투어에 그녀를 세웠고, 1985년 라이브 에이드에서 함께 무대에 섰다.
- 동료로저 데이비스
1979년부터 매니저를 맡아 카바레 가수로 밀려나던 그녀를 록 가수로 다시 세운 설계자였다.
- 후원데이비드 보위
레코드사 간부들을 그녀의 뉴욕 공연으로 데려가 캐피톨과의 계약에 다리를 놓았고, 1984년 함께 노래했다.
- 가족에르빈 바흐
1980년대 중반 만난 독일 음반업계 임원으로, 2013년 결혼한 평생의 동반자였다.
I. 넛부시의 소녀 · 1939–1956
(출생) 1939년 11월, 미국 테네시주 브라운즈빌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애나 메이 불럭, 생일은 26일이다. 자란 곳은 인근의 작은 농촌 마을 넛부시였다. 아버지 플로이드 리처드 불럭은 농장에서 소작인들을 감독하는 일을 했고, 어머니 젤마는 남편과 자주 부딪쳤다. 세 살 위의 언니 앨린이 있었다. (이별) 부모의 결혼은 오래가지 못했다. 열 살 무렵 어머니가 세인트루이스로 떠났고, 몇 해 뒤 아버지도 집을 나갔다. 자매는 조부모와 친척 집을 오가며 자랐고, 어린 애나 메이는 다른 아이들처럼 목화를 땄다. 그녀는 훗날 자서전에서 어머니에게 사랑받지 못했다는 감정을 여러 차례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원치 않은 아이였다는 생각은 평생 따라다닌 상처였다. (노래) 노래는 교회와 학교에서 익혔다. 침례교회 성가대에서 목청을 키웠고, 학교 행사에서도 자주 노래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가스펠과 흑인 대중음악은 시골 소녀에게 바깥세상으로 난 창이었다. 이 시절 몸에 밴 교회식의 큰 발성은, 훗날 그녀의 목소리가 마이크 없이도 객석 뒤까지 닿는다는 평을 듣게 한 바탕이 됐다. (전환) 1956년, 함께 살던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열여섯 살의 애나 메이는 어머니가 사는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로 떠났다. 언니 앨린이 먼저 와 있었다. 넛부시는 그 뒤 그녀의 삶에서 멀어졌지만, 십수 년 뒤 그녀는 이 마을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노래를 직접 쓰게 된다.
II. 강 건너의 밤 · 1956–1962
(클럽) 세인트루이스에서 앨린을 따라 강 건너 일리노이주 이스트세인트루이스의 클럽 맨해튼에 드나들었다. 무대의 주인은 미시시피 출신의 기타리스트이자 피아니스트 아이크 터너와 그의 밴드 킹스 오브 리듬이었다. 1957년 무렵, 쉬는 시간에 드러머가 건넨 마이크를 잡고 비비 킹의 노래를 불렀다. 아이크는 그 목소리에 놀라 그녀를 밴드의 객원 가수로 세웠다. (일상) 무대에 서면서도 낮에는 고등학교를 다녔고, 세인트루이스의 반스 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했다. 간호사가 되는 길도 진지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1958년에는 밴드의 색소폰 연주자 레이먼드 힐과의 사이에서 첫아들 크레이그를 낳았다. (데뷔) 1960년, 아이크가 다른 남성 가수를 위해 쓴 「어 풀 인 러브」 녹음에 그 가수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가 대신 연습용 보컬을 불렀는데, 뉴욕 수 레코드의 사장 주기 머리는 이 목소리를 그대로 내자고 했다. 곡은 R&B 차트 2위에 올랐다. 이때 아이크는 그녀와 상의 없이 '티나 터너'라는 예명을 지어 붙였다. (결혼) 같은 해 아이크와의 사이에서 아들 로니가 태어났고, 둘은 1962년 멕시코 티후아나에서 결혼했다. 그녀는 아이크가 이전 관계에서 얻은 두 아들까지 네 아이를 키웠다. 그러나 자서전에 따르면 아이크의 폭력은 이미 「어 풀 인 러브」 녹음 무렵부터 시작됐다. 데뷔곡의 거칠게 내지르는 목소리 뒤에는 그 시작이 겹쳐 있었다.
대타로 부른 연습용 녹음이 데뷔곡이 됐다. 폭력이 시작되던 무렵의 녹음이라는 사실을 알고 들으면 목소리의 절박함이 달리 들린다.
- 다듬지 않은 채 목을 긁듯 내지르는 보컬 — 원래 다른 가수가 따라 부를 길잡이로 녹음한 소리라, 거친 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 리드 보컬이 한 줄 던지면 여성 코러스가 받아치는 주고받기(콜 앤드 리스폰스)가 흑인 교회의 예배 분위기를 무대 위로 옮겨 온다.
- 아이크 터너 밴드의 느릿하게 출렁이는 블루스 리듬(셔플) 위에서 그녀의 목소리만 앞으로 튀어나와, 당시 R&B 음반 중에서도 유난히 날것으로 들린다.
III. 소리의 벽 · 1962–1970
(유랑) '아이크 앤드 티나 터너 레뷰'는 여성 코러스 아이케츠를 앞세운 대형 공연단이었다. 흑인 관객을 위한 남부의 공연장들을 잇는 순회 경로, 이른바 치틀린 서킷을 1년 내내 돌았다. 1960년대 초 근거지는 로스앤젤레스로 옮겨졌다. 곡과 편곡, 돈과 일정은 모두 아이크가 쥐었고, 그녀는 쉼 없는 무대의 얼굴이었다. (스펙터) 1966년, 프로듀서 필 스펙터가 그녀의 목소리에 주목했다. 그는 아이크에게 2만 달러를 주고 녹음 과정에서 빠지도록 했다. 그렇게 만든 「리버 딥, 마운틴 하이」는 스펙터가 공들인 대작이었지만 미국에서는 88위에 그쳤다. 반면 영국에서는 3위에 올랐다. 미국에서의 실패는 스펙터가 한동안 녹음 일선에서 물러나는 계기가 됐다. (영국) 영국의 반응은 다른 문을 열었다. 같은 해 롤링 스톤스의 영국 투어에서 오프닝 무대를 맡았고, 1969년에는 스톤스의 미국 투어에도 동행했다. 흑인 공연장을 돌던 레뷰가 백인 록 관객 앞에 선 것이다. 믹 재거가 그녀와 아이케츠의 춤에 큰 관심을 보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절망) 무대 뒤의 삶은 무너지고 있었다. 1968년, 공연을 앞두고 다량의 수면제를 삼켜 목숨을 끊으려 했고 병원에서 깨어났다. 그녀는 훗날 이 시기를 가장 어두웠던 때로 회고했다. 관객 앞에서는 지치지 않는 가수였지만, 집에서는 빠져나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필 스펙터가 아이크를 녹음에서 떼어 내고 만든 대작. 미국에서의 실패와 영국에서의 성공이 그녀의 다음 길을 갈랐다.
- 기타·피아노·현악·관악·합창을 여러 겹 동시에 쌓아 벽처럼 밀려오게 만든 스펙터식 녹음(월 오브 사운드)의 정점으로 꼽힌다.
- 그녀는 이 곡을 수없이 반복해 불렀다고 회고했다. 거대한 반주에 묻히지 않으려고 음역 꼭대기에서 버티는 목소리의 긴장이 곡 전체를 끌고 간다.
- 중반부 이후 반주가 한 단계씩 부풀며 절정으로 치닫는 짜임새에 귀를 기울여 볼 것 — 곡이 끝날 무렵엔 소리의 밀도가 처음의 몇 배가 된다.
- 조지 해리슨이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음반이라고 극찬한 일로 유명하며, 영국에서는 차트 3위에 올랐다.
IV. 서른여섯 센트 · 1970–1976
(돌파) 1971년,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의 「프라우드 메리」를 다시 불렀다. 느리게 시작했다가 갑자기 속도를 높여 몰아치는 편곡은 레뷰의 무대를 그대로 옮긴 것이었다. 곡은 미국 4위에 올랐고, 이듬해 그래미 R&B 그룹 보컬 부문을 받았다. 부부가 함께 거둔 가장 큰 상업적 성공이었다. (작곡) 1973년에는 고향을 소재로 직접 쓴 「넛부시 시티 리미츠」를 발표해 영국 4위에 올랐다. 작은 시골 마을의 일상을 그린 이 곡은, 그녀가 아이크의 곡을 부르는 가수만이 아니라 스스로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 줬다. (신앙) 같은 해 무렵, 지인의 권유로 니치렌 불교의 염불 '남묘호렌게쿄'를 외우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 수행이 두려움을 다스리고 자기 삶을 스스로 바꿀 수 있다고 믿게 해 줬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말했다. 불교는 이후 평생 그녀의 중심이었다. (토미) 1975년에는 켄 러셀 감독의 록 오페라 영화 「토미」에 '애시드 퀸' 역으로 출연했다. 짧은 출연이었지만 강렬한 연기로 레뷰 바깥의 존재감을 처음 증명했다. (탈출) 1976년 7월, 텍사스주 댈러스. 호텔로 가는 차 안에서 다시 폭행을 당한 뒤, 아이크가 잠든 틈을 타 호텔을 빠져나와 고속도로 건너편의 다른 호텔로 달아났다. 주머니에는 36센트와 주유 카드 한 장뿐이었다. 그녀는 훗날 이날을 자신이 다시 태어난 날로 여겼다.
남의 히트곡을 레뷰의 무대 문법으로 다시 짠 곡. 부부의 가장 큰 성공이자, 훗날 비욘세와 함께 부르며 다음 세대로 건너간 노래다.
- 곡 앞머리에서 그녀가 노래 대신 말로 관객에게 말을 거는 대목이 있다. 천천히 시작해서 거칠게 끝낸다는 이 곡의 설계도를 미리 알려 주는 장치다.
- 전반부는 가스펠처럼 느리고 낮게 깔리다가, 어느 순간 템포가 두 배 가까이 뛰며 전혀 다른 곡처럼 몰아친다. 이 급격한 전환이 곡의 핵심이다.
- 후반부에서 아이케츠의 코러스와 혼 섹션이 그녀의 목소리와 맞물려 쉴 틈 없이 달리는데, 무대에서는 여기에 격렬한 군무가 더해졌다.
- 2008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비욘세와 함께 부른 무대는 이 곡이 세대를 건너 이어진 장면으로 자주 회자된다.
그녀가 직접 쓴 고향의 노래. 떠나온 작은 마을을 담담하게, 때로는 장난스럽게 그린다.
- 도입부부터 반복되는 짧고 단단한 기타 리프가 곡의 뼈대다. 단순한 몇 음이 끝까지 되풀이되며 몸을 움직이게 만든다.
- 당시로서는 새로웠던 신시사이저의 날카로운 소리가 기타·드럼과 섞여, 소울과 록과 펑크가 겹친 독특한 질감을 낸다.
- 그녀는 노래라기보다 반쯤 말하듯 리듬을 타며 마을의 풍경을 하나씩 짚는다. 시골 사람의 말투를 흉내 내는 듯한 여유가 들린다.
- 호주에서는 이 곡에 맞춰 여럿이 줄지어 같은 동작을 하는 춤(라인 댄스)이 학교와 결혼식의 단골 놀이로 자리 잡았다.
V. 빈손의 재출발 · 1976–1983
(이혼) 이혼은 1978년에 확정됐다. 그녀는 집과 재산, 저작권 수입 대부분을 포기하고 단 하나, '티나 터너'라는 이름만은 지키겠다고 했다. 갑자기 취소된 레뷰 공연들의 손해도 떠안았다. 한동안 지인들의 집을 전전하며 정부의 식료품 지원을 받아 생활했다고 그녀는 회고했다. (카바레) 빚을 갚기 위해 라스베이거스의 카바레 무대와 TV 버라이어티 쇼를 가리지 않고 섰다. 솔로 음반 「러프」 등을 냈지만 반응은 미미했다. 업계에서 그녀는 한때 잘나갔던 레뷰의 가수로 여겨졌고, 마흔을 앞둔 흑인 여성 가수에게 록 무대를 내주려는 레이블은 없었다. (데이비스) 1979년, 호주 출신의 젊은 매니저 로저 데이비스를 만났다. 그는 카바레 레퍼토리를 정리하고 그녀를 록 가수로 다시 세우자고 했다. 1981년 롤링 스톤스의 미국 투어 오프닝, 로드 스튜어트와의 공연이 이어지며 록 관객 앞에 다시 섰다. (부활) 1983년, 영국 그룹 B.E.F.의 마틴 웨어가 제작한 앨 그린의 「렛츠 스테이 투게더」 리메이크가 영국 6위에 오르며 반전이 시작됐다. 뉴욕 리츠 공연 때 데이비드 보위가 레코드사 간부들에게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를 보러 간다며 그들을 공연장으로 데려간 일은 유명하다. 캐피톨 레코드는 곧 정식 앨범 계약을 맺었다.
VI. 프라이빗 댄서 · 1984–1993
(앨범) 1984년 「프라이빗 댄서」가 나왔다. 영국의 여러 프로듀서가 나눠 맡아 짧은 기간에 만든 앨범이었지만, 전 세계에서 천만 장 넘게 팔렸다. 데이비스의 판단대로 R&B와 록, 신시사이저 팝을 아우른 소리였고, 그녀의 목소리는 이혼 뒤의 세월을 거치며 더 거칠고 깊어져 있었다. (정상) 처음엔 내키지 않아 했던 「왓츠 러브 갓 투 두 위드 잇」이 그해 9월 빌보드 1위에 올랐다. 그녀는 마흔네 살이었다. 이듬해 그래미에서 올해의 레코드를 포함해 세 개의 상을 받았다. 사랑을 냉소하는 노래가 아이크를 떠난 여성의 목소리로 불리며 특별한 무게를 얻었다. (무대) 1985년 영화 「매드 맥스 썬더돔」에 출연해 주제가 「위 돈 니드 어나더 히어로」를 불렀고, 같은 해 필라델피아의 라이브 에이드에서 믹 재거와 함께 무대에 섰다. 1988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경기장 공연에는 약 18만 명이 모였다. (자서전) 1986년 음악 기자 커트 로더와 함께 쓴 자서전 「아이, 티나」에서 결혼 생활의 폭력을 처음으로 상세히 밝혔다. 1980년대 중반 독일에서 EMI의 임원 에르빈 바흐를 만났다. 열여섯 살 아래인 그는 이후 평생의 동반자가 됐다. (유럽) 1989년 「포린 어페어」의 「더 베스트」가 크게 히트했고, 그녀는 거처를 점차 유럽으로 옮겼다. 1993년 앤절라 배싯이 그녀를 연기한 전기 영화가 개봉했다. 그녀는 사운드트랙을 새로 녹음했지만, 그 시절을 다시 겪고 싶지 않다며 영화는 끝까지 보지 않았다고 밝혔다.
처음엔 부르기 싫어했던 곡이 마흔넷의 그녀를 미국 1위에 올렸다. 사랑에 대한 냉소가 그녀의 지난 삶과 겹치며 무게를 얻었다.
- 절(verse)에서는 낮은 음역에서 숨을 섞어 속삭이듯 부르다가, 후렴에서 목소리를 거칠게 열어젖힌다. 이 대비가 곡의 감정선을 만든다.
-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인 테리 브리튼은 그녀의 의견을 받아 곡의 편곡을 다듬었다고 전해진다. 그 덕에 특유의 쉰 듯한 질감이 살아났다.
- 기계로 찍은 드럼(드럼 머신)과 부드러운 신시사이저가 여백을 넉넉히 남겨, 목소리가 한가운데 홀로 선 것처럼 들린다.
- 1985년 그래미 올해의 레코드를 받았다.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마크 노플러가 자기 밴드용으로 썼다가 여성의 목소리가 맞다며 내준 곡. 돈을 받고 춤추는 여성의 무심한 독백이다.
- 노플러를 뺀 다이어 스트레이츠 멤버들이 반주를 맡아, 느리고 안개 낀 듯한 분위기가 밴드 특유의 질감으로 깔린다.
- 그녀는 감정을 터뜨리지 않고 지친 듯 거리를 두는 화법으로 부른다. 힘을 아낀 목소리가 오히려 인물의 고단함을 드러낸다.
- 후반부의 기타 솔로는 제프 벡이 연주했다. 끝을 길게 끄는 음과 비틀린 음색이 노래의 공허함을 이어받는다.
- 7분 가까운 긴 곡으로, 짧은 싱글 위주의 당시 팝 앨범에서 드물게 천천히 쌓아 올리는 짜임새를 택했다.
보니 타일러가 먼저 부른 곡을 다시 불러 그녀의 대표곡으로 만들었다. 유럽으로 무대의 중심을 옮기던 시기의 상징이다.
- 곡이 진행되며 조를 한 단계씩 끌어올리는(전조) 대목이 여러 번 나온다. 계단을 오르듯 높아질 때마다 목소리의 힘도 함께 커진다.
- 중간의 색소폰 솔로는 록 연주자 에드거 윈터가 맡았다. 1980년대 말 팝 록 특유의 화려한 질감을 대표하는 대목이다.
- 같은 곡이지만 보니 타일러의 원곡보다 리듬이 단단하고 보컬이 더 거칠어, 비교해 들으면 해석의 차이가 선명하다.
- 호주 럭비 리그가 이 곡을 홍보 캠페인에 쓰며 그 나라에서 스포츠 응원가처럼 자리 잡았다.
VII. 호숫가의 말년 · 1994–2023
(정착) 1994년 무렵 스위스 취리히 호숫가의 퀴스나흐트에 자리를 잡았다. 1995년 보노와 디 엣지가 쓴 제임스 본드 영화 주제가 「골든아이」를 불렀고, 이듬해 앨범 「와일디스트 드림스」를 냈다. 2000년 「트웬티 포 세븐」 투어는 그해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투어 가운데 하나였다. (계승) 2005년 미국 케네디 센터 공로상 시상식에서 비욘세가 그녀 앞에서 「프라우드 메리」를 불렀다. 2008년 그래미 시상식에서는 둘이 함께 이 곡을 불렀다. 2007년에는 허비 행콕의 조니 미첼 헌정 앨범 「리버: 더 조니 레터스」에도 참여했다. 2008~2009년의 데뷔 50주년 투어가 마지막 순회공연이 됐다. (시민권) 2013년 7월 바흐와 결혼했고, 같은 해 스위스 시민권을 얻으며 미국 시민권을 내려놓았다. 말년에는 불교·기독교 등 여러 종교의 기도문을 노래하는 명상 음악 프로젝트 「비욘드」에 몰두했다. (투병) 2013년 뇌졸중을 겪었고, 2016년 장암 진단을 받았다. 2017년에는 신장 이식을 받았는데, 바흐가 자신의 신장을 내줬다고 그녀는 2018년 회고록 「마이 러브 스토리」에서 밝혔다. (상실) 2018년 장남 크레이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2022년 12월 둘째 로니도 세상을 떠났다. 같은 시기 그녀의 삶을 다룬 뮤지컬 「티나」가 런던에서 막을 올렸고, 2021년 HBO 다큐멘터리 「티나」로 대중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해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솔로로 헌액됐고, 음악 권리를 BMG에 넘겼다. (별세) 2023년 5월 24일, 퀴스나흐트 자택에서 83세로 세상을 떠났다.
스위스에 정착한 뒤 부른 제임스 본드 영화 주제가. 보노와 디 엣지가 그녀를 위해 썼다.
- 낮은 음역에서 천천히 끌어당기듯 부르는 보컬이, 20대의 폭발적 창법과는 다른 쉰 살 무렵의 원숙한 음색을 보여 준다.
- 현악과 금관이 어둡게 깔리는 편곡은 1960년대 본드 영화 주제가의 전통을 의식적으로 이어받은 것처럼 들린다.
- 프로듀서 넬리 후퍼가 다듬은 묵직한 드럼과 저음이 옛 본드풍 편곡에 1990년대의 질감을 더한다.
덜 알려진 이야기
그녀가 처음 꿈꾼 직업은 가수가 아니라 간호사였다. 세인트루이스 시절 반스 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했고, 클럽 무대에 서면서도 한동안 병원 일을 계속했다. 화려한 무대 이미지에 가려졌지만, 그녀 자신이 인터뷰에서 여러 번 밝힌 사실이다. '티나 터너'라는 이름은 아이크가 지었을 뿐 아니라 상표로 등록해 두었다. 그녀가 떠나면 다른 가수를 '티나'로 세울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었다고 그녀는 자서전에서 증언했다. 이혼 때 모든 재산을 내주면서도 이름만은 지키려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그녀는 남이 붙인 이름을 자기 것으로 되찾아 평생을 살았다. 최대 히트곡 「왓츠 러브 갓 투 두 위드 잇」은 그녀에게 가기 전 클리프 리처드에게 먼저 제안됐고, 영국 그룹 벅스 피즈도 이 곡을 녹음했다. 그녀 자신도 처음엔 너무 가벼운 팝이라며 꺼렸다. 이 곡이 그녀의 인생을 대변하는 노래가 된 것은 결과론적 신화에 가깝다. 말년에 그녀는 스위스 가수 레굴라 쿠르티, 티베트 출신 가수 데첸 샤크다그사이와 함께 「비욘드」라는 명상 음악 연작을 냈다. 불교의 염불과 기독교의 기도를 한 곡에 엮은 음반이었다. 로큰롤의 이미지와 너무 달라 대중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50년 가까이 이어진 그녀의 신앙이 음악으로 남은 마지막 기록이다.
용어 노트 📚🔎
월 오브 사운드
(말뜻) 영어 Wall of Sound, 곧 소리의 벽이라는 뜻이다. 소리를 벽돌처럼 겹겹이 쌓아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로 밀려오게 만든다는 의미가 이름에 담겼다. (팝에서) 1960년대 프로듀서 필 스펙터가 만든 녹음 방식이다. 기타와 피아노 같은 같은 악기를 여러 대 동시에 연주시키고, 소리를 울리는 방(에코 체임버)에 통과시켜 악기 하나하나가 따로 들리지 않고 한 덩어리로 뭉치게 했다. 합창 대회에서 한 반 전체가 한목소리로 부르면 누구 목소리인지 구별되지 않고 커다란 소리 하나로 들리는 것과 비슷하다. 「리버 딥, 마운틴 하이」가 이 방식의 대표작이다.
레뷰
(말뜻) 프랑스어 revue에서 왔다. 다시(re) 본다(voir)는 뜻으로, 원래는 한 해의 사건들을 훑어보며 풍자하는 무대극을 가리켰다. (팝에서) 노래·춤·연주 등 여러 순서를 한 공연단이 이어 붙여 보여 주는 쇼를 말한다. 아이크 앤드 티나 터너 레뷰는 밴드, 코러스 아이케츠, 댄서가 한 무대에서 쉬지 않고 이어지는 공연으로 유명했다. 학교 축제에서 합창·댄스·밴드 공연이 차례로 이어지는 장기자랑을, 한 팀이 통째로 꾸며 전국을 돌며 매일 밤 보여 준다고 생각하면 된다. (다른 데서는) 철자가 비슷한 영어 review는 비평이나 복습이라는 뜻으로 흔히 쓰인다.
콜 앤드 리스폰스
(말뜻) 영어로 부름(call)과 응답(response)이라는 뜻이다. (팝에서) 리드 가수가 한 줄을 부르면 코러스나 관객이 그것을 받아서 되부르는 방식이다. 아프리카의 노동요와 미국 흑인 교회의 예배에서 비롯돼 블루스·가스펠·R&B로 이어졌다. 운동회에서 응원단장이 선창하면 반 전체가 받아 외치는 응원과 같은 구조다. 티나 터너의 초기 곡에서는 그녀와 아이케츠가 이렇게 주고받는다.
가이드 보컬
(팝에서) 정식 가수가 녹음하기 전에 연주자나 진짜 가수가 따라 부를 수 있도록 임시로 불러 두는 노래를 말한다. 길잡이(guide) 역할만 하고 나중에 지워지는 것이 보통이다. 친구에게 보여 주려고 연필로 대충 쓴 숙제 초안이 너무 좋아서 선생님이 그대로 내라고 한 상황을 떠올리면 된다. 「어 풀 인 러브」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다른 데서는) 가이드라는 말은 여행에서는 길을 안내하는 사람을 뜻한다.
리듬 앤드 블루스
(말뜻) 블루스(blues)는 영어에서 우울함을 뜻하는 표현 blue devils에서 나왔다고 알려져 있다. 여기에 강한 박자를 뜻하는 리듬이 붙었다. (팝에서) 1940년대 후반 미국 흑인 음악가들이 블루스에 강한 박자와 가스펠의 창법을 더해 만든 대중음악이다. 줄여서 R&B라고 하며, 음악 잡지 빌보드가 흑인 음악 차트의 이름으로 쓰면서 널리 퍼졌다. 오래된 집밥 요리법(블루스)에 매운 양념(리듬)을 더해 새 메뉴를 만든 것처럼, 뿌리는 같지만 훨씬 몸을 움직이게 하는 음악이다.
전조
(말뜻) 한자로 轉調, 옮길 전(轉)에 가락 조(調)다. 노래의 가락을 다른 높이로 옮긴다는 뜻이다. (팝에서) 곡 중간에 음 전체를 한 단계 높이거나 낮춰 다시 부르는 기법이다. 팝에서는 마지막 후렴에서 음을 올려 감정을 끌어올리는 데 자주 쓴다. 계단을 한 칸 올라가서 같은 노래를 다시 부르는 것과 같다. 「더 베스트」는 이 전조를 여러 번 거듭하며 점점 높아진다. (다른 데서는) 소리가 같은 전조(前兆)는 앞으로 일어날 일의 징조를 뜻한다.
크로스오버
(말뜻) 영어로 건너간다(cross over)는 뜻이다. (팝에서) 한 장르의 음악이나 가수가 다른 장르의 청중에게까지 인기를 얻는 것을 말한다. 미국에서는 흑인 음악 차트에서 성공한 가수가 백인 중심의 팝·록 차트에서도 성공하는 것을 특히 이렇게 불렀다. 축구부 에이스가 육상 대회에 나가서도 1등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티나 터너는 R&B 무대에서 출발해 롤링 스톤스의 록 관객과 전 세계 팝 시장으로 건너간 대표적인 가수다. (다른 데서는) 농구에서는 드리블하며 공을 좌우로 빠르게 바꿔 수비를 따돌리는 기술을 크로스오버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