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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emptations

템테이션스 (1960–)

다섯 개의 목소리와 한 몸처럼 움직이는 발걸음으로, 모타운의 품격을 무대 위에 세운 그룹.

한눈에 보기 🔭💭

1. 뿌리미국 미시간 디트로이트 결성디스턴츠와 프라임스남부 출신 청년들2. 도약히트 없는 3년스모키 로빈슨「My Girl」 1위3. 황금기클래식 파이브휘트필드 합류템테이션 워크4. 변신「Cloud Nine」사이키델릭 솔모타운 첫 그래미5. 정점「Papa」 그래미 3관폴 윌리엄스와 작별켄드릭스 솔로6. 유산명예의 전당 1989브로드웨이 뮤지컬오티스의 60여 년템테이션스1960–디트로이트의 다섯 목소리로 시작해 모타운의 화…
무대의 여정 🧭🗺️
N미국영국버밍엄1940s–1950s디트로이트1950s–1972로스앤젤레스1972–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후원베리 고디

    1961년 그룹과 계약한 모타운 창업자로, 무명의 3년을 지나 성공에 이르기까지 그룹의 활동 기반이 된 회사를 이끌었다.

  • 동료스모키 로빈슨

    「The Way You Do the Things You Do」와 「My Girl」을 써 주어 그룹에 첫 히트와 첫 1위를 안긴 작곡가이자 프로듀서다.

  • 스승촐리 앳킨스

    모타운의 안무가로, 폴 윌리엄스의 초기 동작을 다듬어 템테이션 워크로 상징되는 그룹의 무대를 완성했다.

  • 동료노먼 휘트필드

    1966년부터 그룹을 맡아 거친 솔에서 사이키델릭 솔까지 이끈 프로듀서로, 그룹의 정점과 갈등을 함께 만든 인물이다.

  • 영향슬라이 스톤

    록과 펑크를 섞고 멤버들이 리드를 주고받던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의 소리는 「Cloud Nine」 이후의 방향 전환에 직접적인 자극이 됐다.

  • 동료릭 제임스

    멜빈 프랭클린의 조카로, 1982년 재결합 앨범의 첫 싱글 「Standing on the Top」을 쓰고 제작했다.

YouTube에서 7곡 이어 듣기 ↗

I. 두 갈래의 뿌리 · 1939–1961

(결성) 1960년,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흩어져 가던 두 보컬 그룹의 멤버들이 한 그룹이 됐다. 한쪽은 오티스 윌리엄스가 이끌던 디스턴츠였고, 다른 쪽은 앨라배마주 버밍엄 출신의 에디 켄드릭스와 폴 윌리엄스가 몸담았던 프라임스였다. 오티스, 멜빈 프랭클린, 엘브리지 '앨' 브라이언트, 켄드릭스, 폴 윌리엄스의 다섯이 훗날 템테이션스의 첫 얼굴이 된다. (남부) 멤버 대부분은 남부에서 북부 공업 도시로 옮겨 온 흑인 가정의 아이들이었다. 오티스 윌리엄스는 1941년 텍사스주 텍사캐나에서 오티스 마일스 주니어로 태어나 할머니들 손에 자라다가, 열 살 무렵 디트로이트에 살던 어머니에게 왔다. 멜빈 프랭클린(본명 데이비드 멜빈 잉글리시)은 1942년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태어나 디트로이트에서 컸다. 깊고 낮은 그의 베이스 음성은 10대 시절 이미 동네에서 이름이 났다. (교회) 켄드릭스와 폴 윌리엄스는 버밍엄의 엔슬리 지역에서 함께 자란 단짝으로, 교회에서 노래를 시작했다. 1950년대 중반 둘은 캐벌리어스라는 그룹을 꾸려 클리블랜드를 거쳐 디트로이트로 왔고, 그곳에서 프라임스로 활동했다. 높고 가는 켄드릭스의 가성과 따뜻한 바리톤의 폴 윌리엄스는 이때부터 짝을 이뤘다. (합류) 디스턴츠는 1959년 지역 레이블 노던에서 「Come On」을 내며 얼마간 알려졌지만 멤버 이탈이 잇따랐다. 프라임스마저 흩어지자 오티스는 켄드릭스와 폴 윌리엄스를 불러들였다. 새 그룹은 처음에 엘긴스라는 이름을 썼고, 1961년 베리 고디가 세운 모타운의 오디션을 통과하면서 템테이션스로 이름을 바꿨다. 이름을 누가 처음 제안했는지는 증언이 엇갈린다.

II. 히츠빌의 무명 시절 · 1961–1965

(무명) 계약 뒤의 3년은 길었다. 1961년 자회사 미라클 레이블에서 낸 「Oh, Mother of Mine」을 시작으로 싱글이 잇달아 실패했고, 회사 안에서는 히트 없는 템테이션스라는 농담이 돌았다. 그사이 멤버들은 히츠빌 USA 스튜디오에서 다른 가수들의 녹음에 박수와 코러스를 보태며 모타운의 작업 방식을 몸으로 익혔다. (교체) 1963년 말, 앨 브라이언트가 폴 윌리엄스와 몸싸움을 벌인 끝에 그룹을 떠났다. 빈자리를 채운 이는 미시시피주 출신의 데이비드 러핀이었다. 1941년 침례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갓난아기 때 어머니를 잃은 그는 형 지미 러핀과 함께 가스펠 무대를 돌며 자랐다. 거친 결이 섞인 그의 바리톤은 켄드릭스의 가성과 정반대 자리에 섰다. (스모키) 막힌 길을 뚫은 사람은 미라클스의 리더이자 모타운의 핵심 작곡가였던 스모키 로빈슨이었다. 그가 바비 로저스와 쓴 「The Way You Do the Things You Do」가 1964년 초 팝 차트 11위에 오르며 첫 히트가 됐다. 로빈슨은 이어 로널드 화이트와 「My Girl」을 썼고, 러핀에게 리드를 맡긴 이 곡은 1965년 3월 빌보드 핫 100 1위에 올랐다. 리드를 처음 크게 맡은 러핀은 이 노래로 단번에 그룹의 얼굴이 됐다. (안무) 무대도 이 무렵 다듬어졌다. 폴 윌리엄스가 짠 초기 동작 위에 모타운이 영입한 안무가 촐리 앳킨스가 정교한 스텝을 얹었다. 맞춘 정장을 입은 다섯 명이 한 몸처럼 미끄러지는 이른바 '템테이션 워크'는 그룹의 상징이 됐다. 오티스, 멜빈, 켄드릭스, 폴, 러핀의 다섯은 훗날 클래식 파이브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더 웨이 유 두 더 싱스 유 두 (The Way You Do the Things You Do)1964실황 The Temptations · 1965 It's What's Happening Baby!

3년의 무명을 끝낸 첫 히트. 스모키 로빈슨의 재치 있는 곡이 켄드릭스의 가성을 그룹의 첫 얼굴로 내세웠다.

  • 켄드릭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남자 목소리로는 높은 음역을 가볍게 띄워 내는 가성(팔세토)으로 리드를 끌고 가는데, 힘을 주지 않아 오히려 경쾌하게 들린다.
  • 연인의 매력을 일상의 사물에 하나씩 빗대 칭찬하는 로빈슨 특유의 말장난 같은 화법이 곡의 재미를 이끈다.
  • 리드 뒤에서 멜빈 프랭클린의 낮은 베이스를 포함한 나머지 멤버들이 짧은 화음을 받아 주어, 한 사람이 메기고 여럿이 받는(콜 앤 리스폰스) 짜임이 또렷하다.
  • 둘째·넷째 박을 짚는 박수와 드럼(백비트)이 곡을 춤추기 좋은 속도로 밀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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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걸 (My Girl)1964노래 The Temptations

로빈슨이 쓰고 러핀에게 리드를 맡긴 곡으로, 그룹의 첫 팝 차트 1위이자 클래식 파이브 시대의 문을 연 노래다.

  • 도입부에서 세션 베이시스트 제임스 제머슨의 짧은 베이스 음형이 먼저 나오고, 기타리스트 로버트 화이트의 맑은 기타 리프(짧게 반복되는 악구)가 그 위에 얹힌다. 이 몇 초가 곡 전체의 인상을 정한다.
  • 손가락 튕기는 소리와 낮게 깔린 화음 위에서 러핀은 거친 결을 눌러 둔 채 부드럽게 노래를 시작해, 뒤로 갈수록 음색에 힘을 더한다.
  • 현악과 관악이 절마다 조금씩 더해지며 소리가 차오르고, 후반부에는 곡 전체의 음높이가 한 단계 올라가는(전조) 순간이 있어 감정이 한 번 더 들어 올려진다.
  • 멤버들이 제목을 되받아 부르는 코러스는 리드와 주고받는 짜임(콜 앤 리스폰스)의 교과서 같은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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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거친 목소리의 시절 · 1966–1968

(휘트필드) 1966년 무렵 그룹의 프로듀서 자리는 로빈슨에게서 노먼 휘트필드에게 넘어갔다. 휘트필드는 매끈한 발라드 대신 드럼과 베이스가 앞으로 나서는 단단한 소리를 원했고, 러핀의 목소리를 한계 가까이까지 밀어붙였다. 에디 홀랜드와 함께 쓴 「Ain't Too Proud to Beg」(1966)가 R&B 차트 1위에 올랐고, 「Beauty Is Only Skin Deep」과 「(I Know) I'm Losing You」가 뒤를 이었다. (상실) 1967년 말에 나온 「I Wish It Would Rain」에는 작사가 로저 펜자베니의 사연이 얽혀 있다. 휘트필드, 배럿 스트롱과 함께 이 곡을 쓴 펜자베니는 결혼 생활의 파경으로 괴로워하던 중이었고, 싱글이 나온 직후인 1967년 12월 31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떠난 연인 때문에 흘리는 눈물을 빗속에 감추고 싶어 하는 남자의 노래는 그렇게 실제의 슬픔을 품게 됐다. (갈등) 성공은 균열도 불렀다. 리드를 가장 많이 맡게 된 러핀은 다이애나 로스와 슈프림스처럼 그룹 이름 앞에 자기 이름을 넣어 달라고 요구했고, 모타운에 그룹 수입의 회계 장부를 보여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코카인 의존이 깊어지면서 그는 리허설과 공연에 빠지는 일이 잦아졌다. 1968년 6월, 나머지 네 멤버는 그를 그룹에서 내보냈다. (후임) 후임은 모타운의 다른 그룹 콘투어스에서 노래하던 데니스 에드워즈였다. 1943년 앨라배마주 페어필드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디트로이트에서 자란 그 역시 가스펠에 뿌리를 둔 거친 음색을 지녔다. 해고된 뒤에도 러핀은 한동안 그룹의 공연장에 나타나 무대에 뛰어오르곤 했고, 관객은 그를 반겼다고 전해진다.

♪에인트 투 프라우드 투 베그 (Ain't Too Proud to Beg)1966실황 The Temptations

휘트필드가 러핀의 목소리를 한계까지 밀어붙인 곡. 매끈한 로빈슨 시대에서 단단하고 거친 시대로 넘어가는 경계에 있다.

  • 러핀은 높은 음역으로 올라갈 때 목소리를 일부러 긁듯 거칠게 내는데, 가스펠 설교자처럼 체면을 버리고 매달리는 화자의 정서가 그 거친 결에 실린다.
  • 드럼과 베이스가 앞으로 나와 곡을 밀어붙이는 단단한 리듬은 휘트필드가 원한 새 소리의 출발점이다.
  • 멤버들의 화음은 리드의 외침을 짧게 받아치며 긴장을 이어 가고, 곡은 쉬어 가는 대목 없이 끝까지 달린다.
  • 당시 TV 무대에서 그룹은 이 곡에 맞춰 발을 맞추고 몸을 돌리는 안무를 선보여, 노래와 춤이 하나인 템테이션스의 모습을 각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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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구름 위로 · 1968–1971

(전환) 에드워즈의 합류와 함께 휘트필드는 방향을 크게 틀었다. 록과 펑크를 뒤섞고 멤버들이 리드를 주고받던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의 소리에 자극받은 그는 와와 기타와 콩가, 긴 연주 구간을 들여왔다. 1968년의 「Cloud Nine」은 이른바 사이키델릭 솔의 첫 결과물이었고, 이듬해 그래미 R&B 그룹 보컬 부문을 수상해 모타운에 첫 그래미를 안겼다. (시대) 노래가 다루는 세상도 넓어졌다. 「Runaway Child, Running Wild」, 「Psychedelic Shack」, 「Ball of Confusion (That's What the World Is Today)」(1970)은 가출과 마약, 전쟁과 도시 폭동 같은 시대의 혼란을 정면으로 노래했다. 한편 1968년에는 다이애나 로스와 슈프림스와 합동 앨범과 TV 특집 「TCB」를 만들었고, 함께 부른 「I'm Gonna Make You Love Me」는 팝 차트 2위에 올랐다. 1969년 「I Can't Get Next to You」는 다시 1위를 차지했다. (균열) 그룹 안에서는 방향을 둘러싼 이견이 커졌다. 켄드릭스는 사회성 짙은 곡과 긴 연주 사이에서 보컬 그룹의 몫이 줄어든다고 느꼈고, 그룹 운영을 두고도 다른 멤버들과 의견이 갈렸다. 폴 윌리엄스는 의류 가게 사업이 실패하며 진 빚과 술, 건강 악화에 시달렸다. 공연에서 그의 파트를 무대 뒤의 리처드 스트리트가 대신 부르는 날도 생겼다. (이별) 1971년 초 나온 「Just My Imagination (Running Away with Me)」는 두 사람이 함께한 마지막 히트가 됐다. 휘트필드가 오랜만에 돌아간 느린 발라드에서 켄드릭스가 가성으로 리드를 맡았고, 곡은 팝 차트 1위에 올랐다. 그 무렵 켄드릭스는 솔로의 길을 택해 그룹을 떠났고, 폴 윌리엄스도 의사의 권고로 순회 공연에서 물러났다. 빈자리는 리처드 스트리트와 데이먼 해리스가 채웠다.

♪클라우드 나인 (Cloud Nine)1968무대 The Temptations · TV 쇼 〈The Temptations Show〉

에드워즈가 합류한 직후 휘트필드가 방향을 튼 첫 곡.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의 영향 아래 사이키델릭 솔이 시작됐고, 모타운에 첫 그래미를 안겼다.

  • 세션 기타리스트 데니스 코피가 연주한 와와 기타(발 페달로 소리가 '와와' 하고 열렸다 닫히게 만드는 기타)가 곡의 첫인상을 이룬다.
  • 콩가 같은 타악기가 촘촘한 리듬을 깔고, 그 위에서 기타와 베이스가 맞물려 이전 모타운 곡보다 훨씬 두꺼운 그루브를 만든다.
  • 리드를 한 사람이 독차지하지 않고 에드워즈, 켄드릭스, 폴 윌리엄스, 멜빈 프랭클린이 차례로 주고받는다. 각자의 음색 차이를 비교하며 들으면 그룹의 폭이 드러난다.
  • 가난과 절망을 피해 현실 너머로 떠나고 싶은 마음을 노래해 발표 당시 약물을 암시한다는 해석이 따랐지만, 그룹은 그런 뜻이 아니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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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트 마이 이매지네이션 (Just My Imagination (Running Away with Me))1971실황 The Temptations

켄드릭스와 폴 윌리엄스가 함께한 마지막 히트. 사회성 짙은 곡들 사이에서 휘트필드가 내놓은 조용한 발라드가 두 사람의 작별 인사가 됐다.

  • 켄드릭스의 가성은 이 곡에서 가장 섬세하다. 숨을 많이 섞은 여린 소리로 시작해 높은 음에서도 힘을 거의 주지 않는다.
  • 부드러운 현악이 리드를 감싸고, 리듬 섹션은 한발 물러나 느린 걸음으로만 받쳐 준다.
  • 창밖으로 바라만 보는 여인과의 사랑을 상상 속에서만 이뤄 가는 남자의 백일몽을 노래해, 행복한 장면 뒤에 쓸쓸함이 남는다.
  • 뒤에서 깔리는 멤버들의 화음은 꿈속의 배경처럼 낮고 길게 이어져, 리드의 목소리를 더 멀리 떠 있는 듯 들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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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떠도는 아버지의 노래 · 1972–1980

(정점) 1972년의 「Papa Was a Rollin' Stone」은 휘트필드 시대의 정점이었다. 휘트필드와 배럿 스트롱이 쓴 이 곡은 앨범 「All Directions」에 12분 가까운 길이로 실렸고, 줄여 낸 싱글은 그해 12월 팝 차트 1위에 올랐다. 이듬해 그래미에서 그룹 보컬, 연주, 작곡의 세 부문을 휩쓸었다. (아버지) 아버지 없이 자란 아들이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머니에게 묻는 노래였다. 첫 대목을 맡은 에드워즈는 노래 속 아버지의 죽음이 자기 아버지의 죽음과 겹쳐 처음에는 부르기를 꺼렸고, 휘트필드가 그 감정을 그대로 녹음에 담으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반면 다른 멤버들은 노래보다 연주가 훨씬 길다는 데 불만을 품었다. (작별) 1973년 8월 17일, 폴 윌리엄스가 디트로이트에 세워진 자기 차 안에서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서른네 살이었고, 당국은 자살로 결론지었다. 그룹의 첫 동작을 짜고 「Don't Look Back」 같은 곡에서 깊은 리드를 들려주던 그였다. 순회 공연에서 물러난 지 2년 만의 일이었다. (결별) 휘트필드와 그룹의 관계는 1973년 앨범 「1990」 무렵 한계에 이르렀다. 멤버들은 목소리가 연주에 묻힌다는 불만을 숨기지 않았고, 휘트필드는 그룹 작업에서 손을 뗀 뒤 1975년 모타운을 떠나 자기 레이블을 차렸다. 템테이션스는 1977년 애틀랜틱 레코드로 옮겨 두 장의 앨범을 냈지만 디스코가 휩쓴 시장에서 자리를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한때 그룹을 떠났던 에드워즈와 함께, 그룹은 1980년 모타운으로 돌아와 「Power」를 냈다.

♪파파 워즈 어 롤링 스톤 (Papa Was a Rollin' Stone)1972무대 The Temptations · 1972 TV

휘트필드 시대의 정점이자 갈등의 상징. 그래미 세 개 부문을 휩쓸었지만 멤버들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연주에 밀렸다고 느꼈다.

  • 앨범판은 노래가 시작되기까지 거의 4분 가까이 연주만 이어진다. 한 음을 고집스럽게 반복하는 베이스, 또박또박 찍히는 하이햇, 와와 기타가 하나씩 쌓이며 긴장을 끌어올린다.
  • 외롭게 울리는 트럼펫과 긴장감 있는 현악이 영화 음악처럼 도시의 어두운 풍경을 그린다.
  • 에드워즈가 거친 바리톤으로 첫 대목을 열고, 데이먼 해리스, 리처드 스트리트, 멜빈 프랭클린이 차례로 이어받는다. 아버지에 대해 묻고 답하는 짜임이 목소리의 교대로 표현된다.
  • 싱글 B면에 실린 연주 버전은 따로 그래미 연주 부문을 받았다. 노래 없이도 곡이 서 있었다는 것이 휘트필드 편곡의 힘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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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재회와 작별 · 1980–1995

(재회) 1982년 그룹은 러핀과 켄드릭스를 다시 불러 앨범 「Reunion」과 순회 공연을 꾸몄다. 첫 싱글 「Standing on the Top」은 멜빈 프랭클린의 조카인 릭 제임스가 쓰고 제작했다. 일곱 명이 한 무대에 섰지만 투어는 오래가지 못했고, 러핀의 결석이 이어진 끝에 두 사람은 다시 그룹을 떠났다. (축제) 1983년 모타운 창립 25주년 TV 특집 「Motown 25: Yesterday, Today, Forever」에서 템테이션스는 포 톱스와 히트곡을 주고받는 무대 대결을 벌였다. 같은 방송에서 마이클 잭슨이 「Billie Jean」을 부르며 문워크를 처음 선보였고, 두 무대는 그 밤을 대표하는 장면으로 함께 기억된다. 1984년에는 새 리드 알리-올리 우드슨이 오티스와 함께 쓴 「Treat Her Like a Lady」가 R&B 차트 2위에 오르며 그룹이 다시 숨을 골랐다. (명예) 1985년 러핀과 켄드릭스는 홀 앤 오츠와 함께 재개관한 뉴욕 아폴로 극장 무대에 섰고, 이 공연은 실황 앨범으로 나왔다. 1989년 템테이션스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오티스, 멜빈, 켄드릭스, 러핀, 에드워즈와 함께 세상을 떠난 폴 윌리엄스도 이름을 올렸다. (상실) 그 뒤 몇 해 사이 원년의 목소리들이 차례로 꺼졌다. 러핀은 1991년 6월 필라델피아에서 약물 과다 복용으로 쉰 살에 숨졌다. 1973년 「Keep On Truckin'」으로 솔로 1위를 거둔 켄드릭스는 고향 버밍엄으로 돌아가 지내다 1992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오랜 류머티즘성 관절염과 당뇨 속에서도 무대를 지키던 멜빈 프랭클린은 1995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숨을 거뒀다. 원년 다섯 가운데 남은 사람은 오티스 윌리엄스 한 명이었다.

♪트리트 허 라이크 어 레이디 (Treat Her Like a Lady)1984노래 The Temptations

원년 멤버들이 하나둘 떠난 뒤, 새 리드 알리-올리 우드슨과 오티스가 함께 쓴 곡으로 그룹이 1980년대에 다시 R&B 차트 상위권에 섰다.

  • 우드슨의 가스펠풍 테너는 거칠게 갈라지는 대목에서 러핀과 에드워즈로 이어진 그룹의 전통을 잇는 듯 들린다.
  • 드럼 머신과 신시사이저가 깔린 1980년대식 소리 위에서도 멤버들의 화음은 예전처럼 리드를 받쳐 주어, 시대가 바뀌어도 그룹의 뼈대가 무엇인지 보여 준다.
  • 연인을 존중해 대하라는 다정한 권유의 화법으로, 거친 정서가 많던 이전 곡들과 결이 다르다.
  • 멜빈 프랭클린의 낮은 베이스가 후렴 아래에서 여전히 바닥을 받친다. 그가 함께한 후기 히트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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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 이름을 잇는 사람 · 1998–2026

(기록) 오티스는 1988년 퍼트리샤 로마노스키와 함께 그룹의 역사를 담은 자서전 「Temptations」를 냈고, 이 책은 1998년 NBC 2부작 미니시리즈로 만들어졌다. 같은 해 앨범 「Phoenix Rising」은 「My Girl」의 기타 리프를 빌려 온 「Stay」에 힘입어 오랜만에 크게 팔렸다. 2000년 앨범 「Ear-Resistible」은 그래미 전통 R&B 보컬 부문 트로피를 안겼다. (계승) 노래들은 다른 세대의 손에서도 살아났다. 1993년 조지 마이클은 「Papa Was a Rollin' Stone」을 자기 곡 「Killer」와 엮어 불러 영국 차트 상위권에 올렸다. 다섯 명이 화음을 나누며 동작을 맞추는 템테이션스의 형식은 이후 수많은 보컬 그룹이 되풀이해 참조한 본보기가 됐다. 2013년 그룹은 그래미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작별) 2018년 2월, 데니스 에드워즈가 일흔다섯 번째 생일을 이틀 앞두고 시카고에서 세상을 떠났다. 1970년대 말부터 몇 차례 그룹을 떠났다 돌아오기를 거듭했지만, 「Cloud Nine」과 「Papa Was a Rollin' Stone」의 첫 목소리로 남은 그였다. (무대) 2019년 3월, 그룹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Ain't Too Proud」가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해 그해 토니상 안무상을 받았다. 대본은 디트로이트 출신 극작가 도미니크 모리소가 썼다. 2022년에는 결성 60주년을 기념한 앨범 「Temptations 60」이 나왔다. (오티스) 60여 년 동안 그룹을 거쳐 간 멤버는 스무 명이 넘지만, 오티스 윌리엄스는 한 번도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 그는 여든을 넘겨서도 새 멤버들과 무대에 서며 다섯 목소리의 화음과 맞춘 발걸음이라는 처음의 형식을 지켜 왔다. 템테이션스라는 이름은 이제 한 그룹이면서 하나의 전통이 됐다.

덜 알려진 이야기

슈프림스의 출발은 템테이션스와 이어져 있다. 켄드릭스와 폴 윌리엄스가 몸담았던 프라임스의 매니저 밀턴 젠킨스는 자매 그룹으로 소녀 4인조 프라이메츠를 꾸렸는데, 이 그룹이 뒷날 다이애나 로스가 이끈 슈프림스가 됐다. 두 그룹의 이야기가 대개 모타운 계약부터 시작되다 보니, 같은 매니저 아래 형제 그룹으로 출발했다는 사실은 각자의 역사에서 앞부분 각주로만 남아 있다. 「Papa Was a Rollin' Stone」을 처음 녹음한 것은 템테이션스가 아니었다. 휘트필드는 같은 해 자신이 제작하던 그룹 언디스퓨티드 트루스에게 먼저 이 곡을 녹음시켰지만 반응이 크지 않았고, 몇 달 뒤 템테이션스판을 훨씬 길고 어둡게 다시 만들었다. 한 곡을 여러 가수에게 녹음시켜 가장 좋은 판을 고르는 것은 휘트필드와 모타운의 오랜 방식이었다. 템테이션스도 마빈 게이의 판으로 유명해진 「I Heard It Through the Grapevine」을 녹음해 앨범에 실은 적이 있다. 멜빈 프랭클린과 릭 제임스는 삼촌과 조카 사이였다. 제임스는 1960년대 중반 캐나다 토론토에서 닐 영 등과 마이나 버즈라는 밴드를 꾸려 모타운과 계약했지만 앨범은 끝내 나오지 않았고, 그 뒤 독자적인 펑크 스타로 자리 잡았다. 1982년 그가 삼촌의 그룹을 위해 「Standing on the Top」을 쓰고 제작하면서 두 사람은 처음으로 한 녹음에서 만났다. 이 인연은 그룹의 공식 연대기보다 제임스의 전기 쪽에서 더 자세히 다뤄진다.

용어 노트 📚🔎

팔세토

(말뜻) 이탈리아어 falsetto 는 '가짜의'라는 뜻의 falso 에서 나온 말이다. 그래서 우리말로도 가짜(假) 목소리(聲), 곧 가성(假聲)이라고 부른다. (팝에서) 평소 말하는 목소리로는 닿지 않는 높은 음을 머리 쪽으로 띄워 가볍게 내는 창법이다. 에디 켄드릭스처럼 남자 가수가 이 창법을 쓰면 부드럽고 여린 느낌이 난다. 친구를 웃기려고 갑자기 아주 높은 목소리를 내 보면, 목에서 무언가 '딸깍' 넘어가며 소리 결이 바뀌는 느낌이 드는데 그 넘어간 쪽의 목소리가 바로 팔세토다.

콜 앤 리스폰스

(말뜻) 영어 call(부르다)과 response(대답하다)를 이은 말로, 한 사람이 부르면 여럿이 대답하는 방식이라는 뜻이다. 우리 민요에서는 같은 방식을 메기고 받는다고 한다. (팝에서) 리드 보컬이 한 구절을 부르면 다른 멤버들이나 악기가 짧게 받아 주는 노래의 짜임이다. 흑인 교회의 설교와 가스펠에서 이어진 전통으로, 템테이션스 노래의 뼈대가 됐다. 체육대회에서 응원 단장이 구호를 외치면 반 친구들이 한목소리로 받아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사이키델릭 솔

(말뜻) 사이키델릭(psychedelic)은 그리스어 psyche(마음·영혼)와 delos(드러나는)를 합친 말로, 마음 깊은 곳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1960년대에 환각 체험과 그것을 닮은 예술을 가리키는 말로 퍼졌다. (팝에서) 1960년대 말 흑인 음악인 솔에 록의 거친 기타, 이펙트를 건 소리, 긴 연주 구간, 사회적인 가사를 섞은 스타일이다. 템테이션스의 「Cloud Nine」이 대표적인 출발점으로 꼽힌다. 늘 먹던 떡볶이에 치즈와 크림을 넣어 전혀 다른 맛을 낸 것처럼, 익숙한 솔 위에 낯선 재료를 잔뜩 얹어 새 맛을 낸 음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세션 연주자

(말뜻) 세션(session)은 라틴어 sedere(앉다)에서 나온 말로, 사람들이 모여 앉아 함께 일하는 한 차례의 시간을 뜻한다. (팝에서) 자기 이름으로 앨범을 내지 않고, 다른 가수의 녹음에 불려 가 연주를 맡는 전문 연주자다. 모타운에는 펑크 브라더스라 불린 세션 연주자들이 있어서 「My Girl」의 베이스와 기타처럼 귀에 남는 소리를 만들었지만, 오랫동안 음반에 이름조차 실리지 않았다. 학예회에서 무대 위 친구들이 노래하는 동안 뒤에서 반주를 맡아 공연 전체를 떠받치는 친구들을 떠올리면 된다. (다른 데서는) 컴퓨터와 인터넷에서는 한 사용자가 접속해 있는 동안의 연결을 세션이라고 부른다.

와와 페달

(말뜻) 소리가 '와와' 하고 들린다고 해서 붙은 이름으로, 소리를 흉내 낸 말이다. (팝에서) 기타와 앰프 사이에 연결해 발로 밟는 장치다. 발끝을 눌렀다 뗄 때마다 소리의 밝기가 바뀌어 기타가 사람의 목소리처럼 우는 듯한 소리를 낸다. 「Cloud Nine」과 「Papa Was a Rollin' Stone」에서 이 소리가 곡의 분위기를 만든다. 입을 오므렸다가 크게 벌리면서 '우와' 하고 소리를 내 보면, 입 모양만 바꿨는데 소리 색깔이 달라지는데 와와 페달은 그 일을 발로 해 준다.

리프

(팝에서) 곡 안에서 짧게 되풀이되며 귀에 박히는 악구다. 기타나 베이스, 관악기가 주로 맡고, 한번 들으면 제목보다 먼저 떠오를 만큼 곡의 얼굴 노릇을 한다. 「My Girl」의 도입부 기타가 대표적인 예다. 좋아하는 게임을 켜면 들리는 짧은 배경 음악 한 토막이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 것처럼, 리프는 곡을 기억하게 만드는 손잡이다.

전조

(말뜻) 전조(轉調)는 굴러 옮겨 간다는 뜻의 轉(전)과 음의 높낮이 체계를 뜻하는 調(조)를 합친 말로, 노래의 조(調)를 옮긴다는 뜻이다. (팝에서) 곡 중간에 노래 전체의 음높이를 한 단계 올리거나 내리는 기법이다. 특히 후반부에 한 단계 올리면 듣는 사람의 감정이 한 번 더 들어 올려지는 효과가 있어 팝에서 자주 쓴다. 노래방에서 마지막 후렴 직전에 키 올림 버튼을 눌러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것과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