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arpenters
가장 낮은 음에서 가장 가까이 들리던 목소리, 그리고 그 목소리 하나를 위해 쌓아 올린 오빠의 화음.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가족애그니스 카펜터
남매의 어머니로, 리처드의 음악 진로를 위해 가족의 이주를 이끌었고 카렌은 오래 그 인정을 갈구했다고 전기 작가들은 기록한다.
- 후원허브 앨퍼트
A&M 레코드의 공동 창립자이자 트럼페터로, 데모 테이프의 카렌 목소리에 끌려 계약하고 「클로스 투 유」를 건넸다.
- 영향버트 배커랙
핼 데이비드와 함께 「클로스 투 유」를 쓴 작곡가로, 그의 세련된 화성과 편곡은 리처드의 음악 감각에 큰 본보기가 됐다.
- 동료존 베티스
스펙트럼 시절부터 함께한 작사가로, 리처드와 「굿바이 투 러브」 등 여러 곡을 썼다.
- 동료폴 윌리엄스
로저 니컬스와 함께 「우린 이제 막 시작했어요」, 「레이니 데이스 앤 먼데이스」를 써 듀오의 초기 정서를 만든 작곡가다.
- 동료필 라몬
빌리 조엘의 음반을 만들던 프로듀서로, 1979–80년 뉴욕에서 카렌의 솔로 앨범을 함께 만들었다.
I. 다우니의 남매 · 1946–1968
(결성) 1969년 4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다우니에서 자란 한 남매가 A&M 레코드와 계약하며 듀오 카펜터스가 됐다. 오빠 리처드와 동생 카렌의 이야기는 그보다 한참 동쪽,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에서 시작됐다. (뉴헤이븐) 리처드는 1946년 10월, 카렌은 1950년 3월 뉴헤이븐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해럴드는 인쇄 관련 일을 하면서 음반을 즐겨 모았다. 리처드는 아버지의 음반 더미 속에서 스윙 밴드와 레스 폴·메리 포드 부부의 다중 녹음을 들으며 자랐고, 일찍부터 피아노에 매달렸다. 카렌은 오빠를 따라다니고 야구를 좋아하는 평범한 소녀였다. (이주) 1963년 가족은 로스앤젤레스 남동쪽 다우니로 옮겼는데, 리처드의 음악 진로가 중요한 이유였다고 전해진다. 아들의 재능에 집안의 무게를 싣는 결정이었다. 어머니 애그니스는 리처드의 앞길을 누구보다 열심히 챙겼고, 훗날 전기 작가들은 카렌이 어머니의 인정을 오래 갈구했다고 기록했다. (드럼) 카렌은 다우니 고등학교에서 체육 수업을 피하려고 학교 밴드에 들어갔다고 전해진다. 처음 받은 악기는 글로켄슈필이었지만 곧 드럼으로 옮겼고, 몇 달 만에 오빠가 놀랄 만큼 실력이 늘었다. (트리오) 1965년 리처드는 튜바와 베이스를 맡은 친구 웨스 제이콥스, 그리고 카렌과 함께 재즈 트리오를 꾸렸다. 이듬해 할리우드 볼의 밴드 경연에서 우승해 RCA와 계약했으나 음반은 나오지 않았다. 같은 무렵 카렌은 세션 베이시스트 조 오스본의 차고 스튜디오에서 첫 솔로 싱글을 녹음했다. 1967년에는 작사가 존 베티스 등과 스펙트럼이라는 밴드를 했다.
II. A&M의 문 · 1969–1970
(데모) 남매는 오스본의 차고에서 만든 데모 테이프를 들고 여러 회사를 두드렸다. 테이프는 결국 트럼페터이자 A&M 레코드의 공동 창립자인 허브 앨퍼트에게 닿았고, 앨퍼트는 무엇보다 카렌의 목소리에 끌려 계약을 결정했다. 1969년 4월의 일이었다. (오퍼링) 그해 가을 나온 데뷔 앨범 「오퍼링」은 조용히 지나갔다. 비틀스의 「티켓 투 라이드」를 느린 발라드로 바꾼 싱글이 차트 중간에 잠시 머문 정도였다. 그러나 앨퍼트는 이들을 내치지 않았다. (배커랙) 앨퍼트는 버트 배커랙과 핼 데이비드가 쓴 「클로스 투 유」의 악보를 리처드에게 건넸다. 이미 여러 가수가 녹음했으나 빛을 보지 못한 곡이었다. 리처드는 템포와 짜임을 새로 짜고 카렌의 목소리와 자신의 목소리를 여러 겹 겹쳤다. 1970년 여름 이 곡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라 4주를 지켰다. (은행 광고) 같은 해 리처드는 텔레비전에서 한 은행의 결혼 광고를 보다가 귀가 번쩍 뜨였다. 폴 윌리엄스와 로저 니컬스가 쓴 광고용 노래였다. 리처드는 곡의 전체 버전이 있는지 수소문했고, 그렇게 완성된 「우린 이제 막 시작했어요」는 2위까지 올라 미국 결혼식의 단골 노래가 됐다. (드럼 뒤) 무대의 카렌은 처음에 드럼 세트 뒤에 앉아 노래했다. 객석에서는 노래하는 사람이 잘 보이지 않았고, 레코드의 드럼 상당수는 핼 블레인 같은 세션 연주자가 맡았다. 스스로를 드러머로 여겼던 카렌은 점차 마이크 앞으로 걸어 나와야 했는데, 그 변화를 오래 아쉬워했다고 전해진다.
허브 앨퍼트가 건넨 악보를 리처드가 새로 짜 맞춰 듀오의 운명을 바꾼 첫 1위곡이다. 여러 가수가 지나쳐 간 노래가 카렌의 목소리를 만나 비로소 자리를 찾았다.
- 카렌은 첫 소절을 여성으로서는 낮은 음역(알토)에서 거의 속삭이듯 시작한다. 마이크에 바짝 다가선 숨결이 노래를 듣는 사람 바로 옆에서 부르는 것처럼 들리게 한다.
- 피아노가 한 박을 셋으로 쪼개 굴리는 반주(셋잇단음)가 곡 전체의 느긋한 걸음걸이를 정한다. 리처드가 원곡보다 템포와 짜임을 정돈한 결과로 알려져 있다.
- 중간의 짧은 트럼펫 간주(플루겔혼)는 앨퍼트가 이끌던 A&M 특유의 부드러운 금관 색깔을 떠올리게 한다.
- 마지막에는 남매의 목소리를 수십 겹 겹쳐 녹음한(오버더빙) 의성어 화음이 천천히 사라진다. 두 사람이 만든 합창 같은 벽은 이후 카펜터스 사운드의 서명이 됐다.
은행 광고의 짧은 노래가 리처드의 귀에 걸려 정식 곡으로 완성됐다. 막 결혼한 부부의 첫걸음을 담은 이 곡은 남매의 단정한 이미지를 굳혔다.
- 도입부 카렌의 목소리는 낮고 평평하게 깔리다가 후렴으로 갈수록 조금씩 밝아진다.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담담히 다짐하는 화법이 곡의 정서를 만든다.
- 후렴에서 겹겹이 쌓인 배경 화음이 갑자기 넓게 펼쳐지는데, 리처드가 두 사람의 목소리를 반복해 덧입혀 만든 효과다.
- 목관 악기와 부드러운 현이 리듬보다 색채를 맡아, 결혼식장 같은 따뜻한 공기를 깔아 준다.
- 곡을 쓴 폴 윌리엄스와 로저 니컬스의 노래는 카펜터스의 녹음으로 가장 널리 알려지게 됐다.
III. 정점 · 1971–1973
(그래미) 1971년 카펜터스는 그래미에서 최우수 신인상과 듀오·그룹 보컬 부문을 함께 받았다. 그해 여름에는 자신들의 이름을 건 텔레비전 버라이어티 쇼까지 맡았다. 데뷔 2년 만에 가장 바쁜 이름이 된 셈이었다. (공방) 작업은 철저히 남매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리처드는 곡을 고르고 편곡하고 녹음을 지휘했으며, 카렌은 주로 낮은 음역에서 숨소리까지 들릴 만큼 가깝게 노래했다. 두 사람은 같은 화음을 수없이 겹쳐 녹음해 합창단 같은 배경을 만들었다. 카렌은 첫 테이크부터 좋은 노래를 들려주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해진다. (작가들) 이들은 남의 노래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 능했다. 리언 러셀의 「슈퍼스타」, 윌리엄스와 니컬스의 「레이니 데이스 앤 먼데이스」가 연달아 히트했고, 1972년 앨범 「어 송 포 유」에는 캐럴 킹이 토니 스턴과 쓴 것으로 알려진 「잇츠 고잉 투 테이크 섬 타임」도 실었다. 동시에 리처드는 존 베티스와 짝을 이뤄 「굿바이 투 러브」 같은 자작곡을 내놓았다. (백악관) 1973년 5월 남매는 백악관에서 리처드 닉슨 대통령 앞에서 공연했다. 닉슨은 이들을 미국 젊은이의 가장 좋은 모습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그 단정한 이미지는 반문화의 기운이 남아 있던 평단에서 촌스럽다는 조롱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체중) 같은 해 한 업계지 공연 평이 카렌의 몸매를 두고 무심한 표현을 썼고, 카렌이 이 무렵부터 엄격한 식이 조절을 시작했다고 전기 작가들은 기록한다. 노래가 가장 높이 올라간 해에 훗날의 그늘도 함께 드리우기 시작했다.
리언 러셀의 곡을 리처드가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듣고 골랐다. 정점의 해에 남의 노래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이들의 솜씨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녹음이다.
- 카렌의 보컬은 본 녹음 전에 방향을 잡으려고 부른 연습용 녹음(가이드 보컬)이 그대로 쓰였다고 알려져 있다. 가다듬지 않은 그 첫 느낌이 오히려 체념 섞인 쓸쓸함을 살렸다.
- 도입부는 목관 악기의 가녀린 선율처럼 들리는 소리로 열리고, 첫 절 내내 반주가 최소한으로 물러서 목소리만 남는다.
- 후렴에 들어서면 금관과 현이 한꺼번에 부풀어 오른다. 조용한 절과 터지는 후렴의 대비가 곡의 짜임새를 이룬다.
- 주인공이 떠나간 음악가를 기다리는 이야기를 원곡보다 훨씬 절제된 목소리로 들려주어, 원곡의 자유분방함이 고독의 노래로 바뀌었다.
리처드가 존 베티스와 함께 쓴 곡으로, 옛 영화 속에 제목만 등장하는 가상의 노래에서 착상했다. 가장 단정하다는 듀오가 가장 거친 기타 소리를 끌어들인 실험이었다.
- 곡 후반부를 찢듯 지나가는 기타 솔로는 소리를 일부러 일그러뜨리는 장치(퍼즈)를 걸었다. 세션 기타리스트 토니 펠루소가 연주했고, 앞부분 선율은 리처드가 써 주고 뒷부분은 즉흥으로 맡겼다고 알려져 있다.
- 발라드에 퍼즈 기타 솔로를 얹은 것은 당시로서는 드문 조합이었다. 리처드는 이 곡 때문에 팬들에게 변절했다는 항의 편지를 받았다고 회고했다.
- 카렌의 노래는 처음부터 끝까지 낮고 차분하다. 사랑을 단념하는 화자의 목소리가 담담할수록 뒤의 기타가 대신 울어 주는 구조다.
- 끝에서는 남매의 겹쳐진 허밍 화음과 기타가 함께 페이드아웃(소리를 서서히 줄여 끝내기)되며 길게 사라진다.
라디오로 옛 노래를 듣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곡으로, 아버지의 음반 더미 속에서 자란 리처드의 기억이 배어 있다. 앨범 「나우 앤드 덴」에서는 옛 히트곡 메들리로 이어졌다.
- 피아노 화음으로 열리는 도입부 뒤에 카렌이 아주 낮은 음역에서 첫 절을 부른다. 회상하는 사람이 혼잣말을 하듯 가라앉은 목소리다.
- 후렴에 이르면 남매의 겹친 배경 화음이 점점 두꺼워지며, 그리움이 기쁨과 슬픔 사이를 오간다.
- 곡 자체는 1960년대 초 팝의 짜임을 의식해 단순한 화성과 또렷한 후렴으로 지어졌다. 그 시절 음악에 대한 리처드의 존경이 곡의 형식에도 들어 있다.
- 앨범에서는 이 곡이 실제 라디오 디제이 흉내를 낸 진행과 함께 1960년대 히트곡 메들리로 이어진다. 이 곡은 특히 일본과 한국에서 카펜터스를 대표하는 노래로 오래 사랑받았다.
IV. 균열 · 1974–1977
(투어) 정점의 대가는 끝없는 일정이었다. 남매는 해마다 미국 전역과 일본, 유럽을 오가며 수백 회에 가까운 공연을 했고, 무대가 없는 날에는 스튜디오에 있었다. 1974년 일본 투어는 특히 열광적이었고, 일본은 이후로도 카펜터스를 가장 오래 사랑한 나라 가운데 하나로 남았다. (쇠약) 1975년 가을, 카렌의 체중은 40킬로그램 남짓까지 떨어졌다. 영국과 일본 투어가 취소됐고 카렌은 휴식에 들어갔다. 당시에는 신경성 식욕부진증(거식증)이라는 병명이 대중에게 낯설었고, 가족도 주변도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호라이즌) 같은 해 나온 앨범 「호라이즌」은 녹음의 정교함으로 평가받았지만, 싱글 순위는 예전 같지 않았다. 마블렛츠의 옛 노래 「플리즈 미스터 포스트맨」이 1위에 오른 것이 마지막 1위가 됐다. (변화) 디스코와 펑크가 차트를 흔들면서 카펜터스의 자리는 좁아졌다. 1976년 「어 카인드 오브 허시」에 이어 1977년 「패시지」에서 리처드는 클라투의 우주풍 노래와 뮤지컬 「에비타」의 곡을 실으며 방향을 바꿔 보려 했다. 성과는 엇갈렸다. (독립) 이 무렵 카렌은 부모의 집을 떠나 로스앤젤레스 센추리시티의 아파트로 옮겼다. 스물여섯에야 처음 가져 본 자기만의 집이었다. 카렌은 미키 마우스 수집품을 모으고 친구들을 불러 저녁을 차리기를 좋아했다. 「아이 니드 투 비 인 러브」는 그 시절 카렌이 자기 노래 가운데 가장 아낀다고 말한 곡이다.
인기가 꺾이고 몸이 쇠약해지던 시기, 카렌이 자기 노래 가운데 가장 아낀다고 말한 곡이다. 리처드와 베티스, 그리고 앨버트 해먼드가 함께 썼다.
- 완벽을 좇다 지친 화자가 사랑을 찾고 싶다고 털어놓는 노래다. 고백하듯 조심스러운 카렌의 목소리가 그 시절 자신의 처지와 겹쳐 들린다.
- 카렌은 고음으로 치고 올라가는 대신 중저음 안에서 미세한 음색 변화만으로 감정의 기복을 그린다.
- 현악과 부드러운 전기 피아노가 리듬을 앞세우지 않고 배경을 채운다. 1970년대 성인 취향 팝의 매끈한 프로듀싱이 잘 드러난다.
- 리처드는 이 곡의 프로듀싱과 편곡을 직접 맡았다. 마지막 후렴의 짧은 겹 화음이 곡을 조용히 닫는다.
V. 홀로 선 목소리 · 1978–1981
(성탄) 1978년 남매는 「크리스마스 포트레이트」를 냈다. 오케스트라와 합창을 동원한 이 캐럴 앨범은 차트 성적보다 해마다 겨울이면 다시 꺼내 듣는 음반으로 더 오래 살아남았다. (휴지기) 리처드는 훗날 인터뷰에서 스스로 밝혔듯 수면제 의존을 겪어 1979년 초 치료를 받았고, 듀오의 활동은 잠시 멈췄다. 처음으로 두 사람이 각자의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뉴욕) 카렌은 이 틈에 뉴욕으로 가서 첫 솔로 앨범을 만들었다. 프로듀서는 빌리 조엘의 음반들을 만들던 필 라몬이었고, 조엘의 밴드 연주자들이 녹음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를 쓰게 될 로드 템퍼턴도 곡을 줬다. 카렌은 오빠의 편곡 바깥에서, 더 높고 숨 섞인 소리로 리듬 앤드 블루스와 성인 취향의 팝을 노래했다. (보류) 1980년 완성된 앨범을 들은 A&M은 발매를 보류했다. 카렌은 크게 낙담했다고 주변 사람들은 전한다. 이 음반은 카렌이 세상을 떠나고 13년이 지난 1996년에야 「카렌 카펜터」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결혼) 1980년 8월 카렌은 부동산 개발업자 톰 버리스와 비벌리힐스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복귀) 1981년 남매는 다시 손을 잡고 「메이드 인 아메리카」를 냈다. 「터치 미 웬 위어 댄싱」이 성인 취향 라디오에서 사랑받았지만, 카렌의 몸은 다시 눈에 띄게 야위어 있었다.
1980년 뉴욕에서 필 라몬과 만든 카렌의 솔로 앨범에 실린 곡으로, 로드 템퍼턴이 썼다. 리처드가 다시 손본 판이 1989년 카펜터스 앨범 「러브라인스」에 먼저 실렸고, 원래 녹음은 카렌이 세상을 떠난 뒤 1996년 솔로 앨범으로 빛을 봤다.
- 카펜터스 시절보다 한층 높은 음역에서, 숨을 많이 섞은 부드러운 소리로 노래한다. 오빠의 편곡 밖에서 카렌이 찾던 다른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다.
- 가볍게 튀는 전기 피아노와 베이스가 만드는 리듬(그루브)이 앞으로 나와 있다. 템퍼턴 특유의 리듬 앤드 블루스 감각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 화음을 겹겹이 쌓는 카펜터스 방식 대신, 리드 보컬 하나를 공간 안에 드러내는 라몬의 녹음 방식이 귀에 띈다.
- 연인 사이의 관계를 다시 일으켜 보자고 권하는 정서인데, 성숙한 여성의 목소리로 들리게 하려는 카렌의 의도가 느껴진다.
VI. 마지막 노래 · 1982–1983
(치료) 1982년 카렌은 스스로 병을 인정하고 뉴욕으로 가서 심리치료사 스티븐 레벤크론에게 거의 한 해 동안 치료를 받았다. 체중이 조금 회복됐고, 연말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왔을 때 카렌은 다시 일할 계획을 이야기했다. (나우) 그해 4월 치료 중 잠시 돌아와 녹음한 곡이 「나우」였다. 카렌의 생애 마지막 녹음이다. 카렌은 이 녹음을 나중에 다시 부를 생각이었다고 전해지지만, 그럴 기회는 오지 않았다. (작별) 1983년 2월 4일, 카렌은 다우니의 부모 집에서 쓰러져 서른두 살로 세상을 떠났다. 검시 결과 사인은 거식증에 따른 심장 이상이었고, 구토를 유도하는 약물을 오래 쓴 흔적이 심장을 손상시킨 것으로 기록됐다. 장례에는 디온 워윅, 올리비아 뉴턴존, 페툴라 클라크 등이 함께했다. (각성)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목소리 하나가 섭식장애로 사라졌다는 사실은 이 병을 공론장으로 끌어냈다. 가족은 카렌의 이름으로 섭식장애 연구를 지원하는 재단을 세웠다. 같은 해 남은 녹음을 모은 「보이스 오브 더 하트」가 나왔다. (그 후) 리처드는 1984년 결혼해 가정을 꾸렸고, 1987년 솔로 앨범 「타임」을 내는 한편 카펜터스의 음원을 다시 다듬어 펴내는 일에 긴 시간을 바쳤다. 1994년에는 젊은 얼터너티브 록 음악가들이 헌정 앨범 「이프 아이 워 어 카펜터」를 냈고, 한때 촌스럽다던 이 남매의 음악은 정교한 팝의 본보기로 다시 평가받았다. 리처드는 지금도 그 유산을 지키고 있다.
1982년 4월, 뉴욕에서 치료를 받던 중 잠시 돌아와 녹음한 카렌의 생애 마지막 녹음이다. 그가 떠난 뒤 앨범 「보이스 오브 더 하트」에 실렸다.
- 카렌은 이 녹음을 임시로 여기고 나중에 다시 부를 생각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더 꾸밈없는, 거의 날것의 목소리가 남았다.
- 목소리의 중심은 여전히 낮은 음역에 있지만 숨이 조금 짧게 들리는 대목이 있다. 그 미세한 떨림이 오히려 곡을 더 가깝게 만든다.
- 리처드는 카렌이 떠난 뒤 이 녹음을 다듬어 앨범에 실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겹 화음을 절제해 목소리 하나가 잘 들리도록 비워 둔 편곡이 인상적이다.
- 지금 이 순간 곁에 있는 사람에 대한 고백을 담은 곡으로, 마지막 녹음이라는 사실을 알고 들으면 의미가 새삼 무겁게 다가온다.
덜 알려진 이야기
카렌은 대중에게 가수로 기억되지만 스스로는 먼저 드러머라고 생각했다. 초기 무대에서는 드럼을 치며 노래했고, 1970년대 중반 한 잡지 독자 투표에서 이름난 록 드러머들을 제치고 상위에 올랐다는 이야기가 전기에 실려 있다. 그러나 히트곡의 드럼 상당수를 세션 연주자가 맡았고, 공연에서도 점점 앞자리로 불려 나오면서 이 면모는 노래의 그늘에 가려졌다. 카렌의 첫 레코드는 카펜터스보다 먼저 나왔다. 1966년 열여섯 살 무렵 세션 베이시스트 조 오스본이 차린 작은 레이블에서 솔로 싱글을 냈는데, 레이블이 곧 문을 닫으면서 거의 팔리지 않았다. 오스본의 차고 스튜디오는 그 뒤 남매가 데모를 만들던 곳이 됐고, 오스본은 이후 카펜터스 음반에서 베이스를 맡았다. 화려한 계약 이야기에 가려진, 출발의 실제 무대다. 리처드가 처음 이름을 알린 것은 팝이 아니라 재즈였다. 1966년 할리우드 볼 경연에서 우승한 리처드 카펜터 트리오는 튜바를 베이스처럼 쓰는 독특한 편성이었다. 카펜터스의 매끈한 팝 뒤에 숨은 재즈 화성 감각은 이 시절에 다져졌다고 평자들은 본다. 1996년에야 나온 카렌의 솔로 앨범은 오랫동안 팬들 사이에서만 소문으로 오갔다. 발매 보류 결정 이후 녹음은 서고에 묻혔고, 공개되기 전까지 일부 곡만 다른 음반에 흩어져 실렸다. 이 음반이 늦게 나온 탓에, 카렌이 오빠의 그늘 밖에서 다른 가수가 되려 했던 시도는 오늘날에도 덜 알려져 있다.
용어 노트 📚🔎
오버더빙
(말뜻) 영어 over(위에)와 dub(소리를 입히다)를 합친 말로, 이미 녹음된 소리 위에 새 소리를 덧입힌다는 뜻이다. (팝에서) 먼저 녹음한 연주나 노래를 들으면서 그 위에 다른 소리를 한 겹씩 더 녹음하는 방법이다. 카펜터스는 카렌과 리처드 두 사람의 목소리를 수십 번 덧입혀 마치 큰 합창단이 부르는 것 같은 화음을 만들었다. 미술 시간에 투명한 색지를 여러 장 겹치면 한 장일 때보다 색이 더 깊고 풍성해지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영화에서는 외국 영화의 대사를 우리말 목소리로 다시 녹음하는 더빙을 가리킬 때가 많다.
알토
(말뜻) 이탈리아어로 높다는 뜻의 alto에서 왔다. 옛날 합창에서 남성 성부보다 높은 성부를 부르던 데서 붙은 이름이라, 지금은 오히려 여성 목소리 가운데 낮은 쪽을 가리키게 됐다. (팝에서) 여성 가수 중 낮은 음역을 편안하게 부르는 목소리를 말한다. 카렌은 높은 음을 낼 수 있었지만 낮은 음역에서 가장 따뜻하고 가까운 소리를 냈고, 리처드는 그 음역을 살리도록 곡의 높이를 맞췄다. 학교 합창에서 소프라노가 주선율을 부를 때 그 아래에서 화음을 받쳐 주는 파트가 알토다.
퍼즈
(말뜻) 영어 fuzz는 보풀이나 솜털처럼 보송보송하게 일어난 것을 뜻한다. 소리가 거칠게 부풀어 오르는 느낌을 그대로 이름에 담았다. (팝에서) 전기 기타 소리를 일부러 일그러뜨려 지글거리고 굵게 만드는 장치나 그 소리를 말한다. 주로 록 음악에서 쓰였는데, 카펜터스는 「굿바이 투 러브」라는 조용한 발라드에 이 소리를 넣어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스피커 볼륨을 너무 크게 올리면 소리가 찢어지듯 갈라지는데, 그 갈라짐을 음악적으로 다듬어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가이드 보컬
(팝에서) 정식 녹음을 하기 전에 연주자들이 곡의 흐름을 알 수 있도록 미리 불러 두는 임시 노래다. 원래는 나중에 지우고 다시 부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카렌의 「슈퍼스타」는 이 임시 노래가 너무 좋아서 그대로 음반에 실렸다고 알려져 있다. 체육 시간에 본 경기 전 몸풀기로 공을 찼는데 그 슛이 가장 잘 들어간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 가이드는 여행지를 안내해 주는 사람을 뜻한다.
커버
(팝에서) 다른 가수가 먼저 발표한 노래를 새로 녹음해 부르는 것이다. 카펜터스는 비틀스, 버트 배커랙, 리언 러셀, 캐럴 킹 등의 노래를 자기 방식으로 다시 불러 원곡보다 더 유명하게 만든 경우가 많았다. 친구가 만든 요리법을 따라 하면서 내 입맛에 맞게 양념을 바꿔 새로운 맛을 내는 것과 닮았다. (다른 데서는) 책에서는 표지를, 운동 경기에서는 동료의 빈자리를 막아 주는 수비를 뜻한다.
메들리
(말뜻) 영어 medley는 여러 가지가 섞인 것이라는 뜻으로, 섞다라는 옛 프랑스어에서 왔다. (팝에서) 여러 곡을 끊지 않고 이어 붙여 한 곡처럼 연주하는 것이다. 카펜터스는 앨범 「나우 앤드 덴」에서 「예스터데이 원스 모어」 뒤에 1960년대 히트곡들을 라디오 방송처럼 이어 붙였다. 장기자랑에서 여러 노래의 후렴만 골라 쉬지 않고 이어 부르는 무대가 바로 메들리다.
페이드아웃
(말뜻) 영어 fade(희미해지다)와 out(밖으로)을 합친 말로, 서서히 희미해지며 사라진다는 뜻이다. (팝에서) 노래를 딱 끊어 끝내지 않고 소리를 조금씩 줄여서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하는 마무리 방법이다. 노래가 끝나지 않고 멀리 계속 이어지는 듯한 여운을 남긴다. 운동장에서 친구들 목소리가 내가 멀어질수록 점점 작아지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영화나 영상에서는 화면이 서서히 어두워지며 장면이 끝나는 것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