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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 Cooke

샘 쿡 (1931–1964)

교회에서 배운 목소리로 팝의 문을 열고, 그 노래의 주인이 끝내 자기 자신이기를 바랐던 사람.

한눈에 보기 🔭💭

1. 뿌리미국 미시시피 클라크스데일 …시카고 목사의 아들하이웨이 QC스2. 가스펠소울 스터러스 리드스승 J.W. 알렉산더가명 데일 쿡3. 도약「유 센드 미」 1위1958년 교통사고코파 첫 무대 실패4. 사업RCA와 휴고 앤 루이지SAR 레코드 설립원판권 확보5. 변화아들 빈센트의 죽음알리·맬컴 X6. 끝해시엔다 모텔 총격B면에 실린 유작명예의 전당 1986쿡1931–1964가스펠의 목소리로 팝을 열고, 노래의 소유권과…
무대의 여정 🧭🗺️
N미국클라크스데일1931–1933시카고1933–1957로스앤젤레스1957–1964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가족찰스 쿡

    성결교 계열 교회의 목사였던 아버지로, 아들에게 신앙과 함께 청중 앞에서 말하고 노래하는 법을 물려줬다.

  • 동료J.W. 알렉산더

    필그림 트래블러스를 이끌던 가스펠 선배로, 쿡에게 저작권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SAR 레코드와 카그스 뮤직을 함께 세운 평생의 사업 동반자였다.

  • 동료범프스 블랙웰

    스페셜티의 프로듀서로 쿡의 팝 전향을 이끌었고, 로열티를 포기하면서까지 녹음을 들고 나와 「유 센드 미」를 세상에 내놓았다.

  • 우정루 롤스

    시카고 가스펠 시절부터의 친구로, 1958년 교통사고에서 함께 살아남았고 「브링 잇 온 홈 투 미」에서 쿡의 노래를 받아 불렀다.

  • 영향아레사 프랭클린

    아버지의 교회에 드나들던 쿡을 10대 시절 우러러봤고, 그의 선례를 따라 가스펠에서 팝으로 건너가 훗날 「어 체인지 이즈 고나 컴」을 불렀다.

  • 우정무하마드 알리

    1964년 소니 리스턴을 꺾은 밤 쿡과 맬컴 X, 짐 브라운과 함께 시간을 보낸 친구로, 흑인의 자립과 자부심이라는 생각을 쿡과 나눴다.

YouTube에서 5곡 이어 듣기 ↗

I. 목사의 아들 · 1931–1949

(출생) 1931년 1월, 미국 미시시피주 클라크스데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새뮤얼 쿡(Samuel Cook)이었다. 아버지 찰스 쿡은 성결교 계열 교회의 목사였고, 어머니 애니 메이는 여덟 남매를 길렀다. 샘은 그중 다섯째였다. 목화 지대의 흑인 가족에게 남부는 기회가 좁은 땅이었고, 1933년 무렵 가족은 수많은 흑인 가정이 그랬듯 북부의 시카고로 옮겨 갔다. (교회) 시카고 남부의 흑인 거주지에서 아버지는 교회를 맡았고, 아이들은 예배에서 노래했다. 샘은 어린 형제자매와 함께 '싱잉 칠드런'이라는 이름으로 교회를 돌며 노래한 것이 첫 무대였다고 알려져 있다. 노래는 신앙의 일이었고, 가족의 일이기도 했다. (우상) 웬델 필립스 고등학교에 다니던 10대 시절, 그는 가스펠 4중창단 하이웨이 QC스에 들어갔다. 당시 시카고는 흑인 가스펠의 중심지였고, 소년은 이름난 그룹들이 교회를 돌며 겨루는 무대를 가까이서 보며 자랐다. 그가 가장 열심히 들은 사람은 소울 스터러스의 리드 R.H. 해리스였다. 해리스의 맑은 고음과 가성(팔세토), 한 음절을 여러 음으로 굽이치게 늘이는 창법(멜리스마)이 훗날 쿡의 출발점이 됐다. (성격) 형제들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어려서부터 사람들 앞에 서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설교단의 아버지에게서 청중을 읽고 말의 호흡을 고르는 법을 배웠다. 쿡의 노래가 평생 크게 외치기보다 말을 건네듯 들리는 데에는, 목사관에서 자란 이 어린 시절이 깔려 있다는 것이 전기 작가들의 공통된 해석이다.

II. 소울 스터러스 · 1950–1956

(입단) 1950년, 열아홉 살의 쿡은 해리스가 떠난 소울 스터러스의 리드 자리를 이어받았다. 미국에서 손꼽히는 가스펠 그룹에 갓 스물 된 청년이 들어간 것이었다. 처음에는 해리스를 흉내 낸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는 곧 자기 방식을 찾았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대신 가볍게 띄운 음색, 목 안에서 짧게 굴리는 꾸밈음이 그의 표지가 됐다. (스승) 그룹은 로스앤젤레스의 스페셜티 레코드와 계약했고 1951년 첫 녹음을 남겼다. 같은 레이블의 가스펠 그룹 필그림 트래블러스를 이끌던 J.W. 알렉산더는 쿡에게 음반업의 셈법을 가르쳤다. 노래를 부르는 것만으로는 돈이 남지 않고, 곡을 쓰고 그 권리를 소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청중) 쿡이 선 무대에는 젊은 여성 청중이 몰렸다. 오랜 신자들 사이에서는 그가 성가를 연애 노래처럼 부른다는 수군거림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터치 더 헴 오브 히스 가먼트」 같은 자작곡으로 작곡가로서도 이름을 얻었다. (결혼) 1953년 그는 가수 돌로레스 모호크와 결혼했지만 순회공연으로 떨어져 지내는 날이 많았고, 두 사람은 1958년 이혼했다. 같은 무렵 시카고 시절부터 알던 바버라 캠벨과의 사이에서 첫딸이 태어났다. (갈림길) 레이 찰스가 가스펠의 화법을 리듬 앤드 블루스로 옮겨 성공하는 것을 보며 쿡은 세속 음악을 고민했다. 그러나 가스펠 가수가 팝으로 건너가는 것은 공동체를 등지는 일로 여겨졌다. 1956년 그는 데일 쿡이라는 가명으로 첫 팝 싱글 「러버블」을 냈다. 그 목소리를 알아보지 못할 사람은 없었고, 가명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터치 더 헴 오브 히스 가먼트 (Touch the Hem of His Garment)1956무대 The Soul Stirrers · Arthur Crume

소울 스터러스 시절 쿡이 직접 쓴 곡으로, 그가 가수이자 작곡가로 서 있던 가스펠 시대의 정점을 들려준다.

  • 옷자락만이라도 만지면 낫는다고 믿은 여인의 복음서 이야기를, 쿡은 설교하듯 하나하나 짚어 가는 이야기꾼의 화법으로 풀어 간다.
  • 목소리를 크게 터뜨리지 않고 가볍게 띄운 채 음절 끝을 짧게 굴리는 꾸밈음이 곳곳에 나온다. 훗날 팝 히트곡에서 듣게 될 그 버릇이 이미 완성돼 있다.
  • 뒤에서 그룹 멤버들이 화음을 받쳐 주며 리드와 주고받는(콜 앤드 리스폰스) 짜임새에 귀를 기울여 보자. 악기는 최소한이고, 목소리들의 층이 곡을 끌고 간다.
  • 곡이 뒤로 갈수록 리드의 음이 조금씩 높아지며 긴장이 쌓인다. 고함 없이 고조시키는 이 절제가 동시대 가스펠 리드들과 쿡을 가른 지점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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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유 센드 미 · 1957–1959

(결별) 1957년 6월, 스페셜티의 프로듀서 범프스 블랙웰과 쿡은 로스앤젤레스에서 팝 녹음을 진행했다. 녹음실에 들른 사장 아트 루프는 백인 코러스를 쓴 부드러운 편곡을 못마땅해했다고 알려져 있다. 다툼 끝에 블랙웰은 받을 로열티를 포기하는 조건으로 쿡과 함께 일부 녹음을 들고 레이블을 나왔고, 그 녹음은 신생 레이블 킨 레코드에서 빛을 봤다. (정상) 그해 가을 나온 「유 센드 미」는 빌보드 팝 차트와 R&B 차트 정상에 함께 올랐다. 흑인 가스펠 가수의 노래가 백인 10대의 방까지 닿은, 장르의 벽을 넘은 성공(크로스오버)이었다. 곡의 작곡자 이름은 동생 L.C. 쿡으로 등록됐다. 스페셜티와 맺은 퍼블리싱 계약이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시험대) 성공은 곧 시험으로 이어졌다. 1958년 뉴욕의 고급 나이트클럽 코파카바나 첫 무대는 반응이 미지근했다. 중년 백인 관객 앞에서 그는 아직 자기 자리를 찾지 못했고, 이 실패를 오래 곱씹었다고 전해진다. (사고) 1958년 11월 아칸소주에서 투어 차량이 트럭과 부딪쳐 운전하던 동료 에디 커닝엄이 숨졌다. 함께 탔던 시카고 시절 친구 루 롤스는 한때 사망 판정을 받을 만큼 크게 다쳤고, 쿡은 비교적 가벼운 부상에 그쳤다. 이듬해에는 첫 아내 돌로레스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독립) 자기가 쓴 곡으로 남의 회사가 이익을 보는 구조를 겪은 그는 1959년 J.W. 알렉산더와 함께 퍼블리싱 회사 카그스 뮤직과 레이블 SAR 레코드를 세웠다. 같은 해 그는 바버라 캠벨과 결혼했다.

♪유 센드 미 (You Send Me)1957실황 Sam Cooke

스페셜티를 떠나며 들고 나온 녹음이 팝과 R&B 차트 1위를 함께 차지하며, 가스펠 가수 쿡을 전국적인 팝 스타로 만들었다.

  • 곡은 거의 처음부터 목소리로 시작된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 자기 마음을 어리둥절하게 털어놓는 듯한 낮고 부드러운 화법이 특징이다.
  • 느긋하게 흔들리는 기타와 가벼운 드럼, 뒤에서 길게 받쳐 주는 백인 코러스가 깔린다. 아트 루프가 못마땅해했다는 바로 그 편곡이 곡을 크로스오버 히트로 만든 열쇠였다.
  • 한 음절을 여러 음으로 굽이치게 늘이는 창법(멜리스마)을 쓰면서도 과하지 않다. 가스펠에서 온 기교를 속삭이듯 작게 줄여 쓴 것이 이 곡의 비밀처럼 들린다.
  • 같은 짧은 문장을 되풀이하며 조금씩 음을 바꾸는 단순한 짜임새가 곡 전체를 이룬다. 복잡한 브리지 없이 반복만으로 귀를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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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두 개의 이름표 · 1960–1962

(이적) 1960년 쿡은 킨을 떠나 메이저 레이블 RCA 빅터와 계약했다. 프로듀서는 사촌지간인 휴고 페레티와 루이지 크레아토레, 이른바 휴고 앤 루이지였다. 두 사람은 그의 목소리 둘레에 현악과 코러스를 두른 매끈한 소리를 만들었고, 「체인 갱」(1960), 「큐피드」(1961), 「트위스틴 더 나이트 어웨이」(1962)가 잇달아 히트했다. (평가) RCA의 화려한 편곡이 그의 목소리를 덮었다는 평과 그 덕에 전국적인 스타가 됐다는 평은 지금도 엇갈린다. 쿡 자신은 싱글과 앨범을 나눠 생각했다. 싱글은 시장을 향했고, 앨범에서는 블루스와 스탠더드를 시도했다. (SAR) 자기 레이블 SAR에서 그는 사장이자 작곡가, 프로듀서였다. 소울 스터러스의 후임 리드 조니 테일러, 워맥 형제의 밸런티노스, 10대 오르간 연주자 빌리 프레스턴이 이곳에서 녹음했다. 당시 흑인 가수가 레이블과 출판사를 직접 운영한 예는 드물었다. (재회) 1962년 「브링 잇 온 홈 투 미」에서 그는 사고에서 살아난 루 롤스를 불러 교회식 주고받기(콜 앤드 리스폰스)를 녹음했다. 가스펠을 떠났다는 말을 듣던 그가 가장 가스펠다운 노래로 R&B 차트 2위에 올랐다. (아레사) 쿡은 디트로이트의 C.L. 프랭클린 목사 집을 드나들던 가스펠 동료이기도 했다. 목사의 딸 아레사 프랭클린은 자서전에서 10대 시절 그를 우러러봤고, 그가 팝으로 건너가는 것을 보며 자신도 같은 길을 꿈꿨다고 회고했다. 1960년 아레사가 컬럼비아와 계약하며 세속 음악으로 나아간 데에는 쿡의 선례가 있었다.

♪원더풀 월드 (Wonderful World)1960

킨 레코드 시절 허브 앨퍼트, 루 애들러와 함께 다듬은 곡으로, 쿡이 RCA로 옮긴 직후 킨이 발매해 히트했다.

  • 공부는 잘 못하지만 사랑만큼은 확실하다는 학생의 고백을 담은 곡이다. 학교 과목을 하나씩 늘어놓는 장난스러운 화법이 곡의 매력이다.
  • 어깨에 힘을 뺀 기타와 가볍게 걷는 듯한 리듬이 곡을 받친다. 쿡의 목소리는 노래라기보다 친구에게 말을 거는 듯 편안하다.
  • 후렴에 이르면 목소리가 살짝 높아지며 밝아지는데, 그 상승 폭이 크지 않아서 오히려 담백하다. 꾸밈음을 아껴 쓴 쿡의 절제가 잘 드러나는 곡이다.
♪체인 갱 (Chain Gang)1960실황 Ry Cooder·Bobby King · 1987 The Catalyst

RCA 이적 뒤 첫 대형 히트로, 휴고 앤 루이지의 매끈한 제작 속에 남부 흑인 죄수 노역의 풍경이 담겼다.

  • 남자 코러스가 박자마다 내뱉는 짧은 기합 소리와 쇠붙이를 두드리는 듯한 타악기가 곡의 뼈대다. 사슬에 묶여 일하는 죄수들의 노동 리듬을 소리로 옮긴 장치다.
  • 가사는 하루 종일 일하며 집에 있는 연인을 그리는 죄수들의 마음을 담는다. 쿡은 무거운 주제를 비탄 대신 담담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부른다.
  • 뒤에 깔린 현악과 코러스는 RCA 특유의 성인 취향 팝 사운드다. 거친 노동의 소리와 매끈한 편곡이 한 곡 안에 맞붙어 있다는 점을 들어 보자.
  • 한 박자를 고르게 내려찍는 둔중한 리듬이 끝까지 바뀌지 않는다. 그 단조로움이 곧 반복되는 노역의 시간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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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링 잇 온 홈 투 미 (Bring It On Home to Me)1962실황 Van Morrison · 2017 런던 Porchester Hall

교통사고에서 살아난 친구 루 롤스가 코러스로 참여해, 두 사람의 시카고 가스펠 뿌리를 팝 싱글 위에 되살렸다.

  • 피아노의 교회식 화음으로 열리는 도입부부터 가스펠 예배당의 공기가 느껴진다.
  • 쿡이 한 줄을 부르면 루 롤스의 낮고 굵은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받아 부른다. 설교자와 회중이 주고받는 콜 앤드 리스폰스를 연인의 호소로 옮겨 놓은 짜임새다.
  • 떠난 연인에게 돌아와 달라고 청하는 내용인데, 쿡의 목소리는 매달리기보다 차분히 설득한다. 롤스의 응답이 그 호소에 무게를 더한다.
  • 뒤로 갈수록 두 목소리가 겹치는 부분이 늘어나며 열기가 오른다. 같은 해 실황에서 쿡이 이 곡을 훨씬 길고 뜨겁게 늘여 부른 것과 비교해 들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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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변화가 오리라 · 1963–1964

(소유) 1963년 쿡은 뉴욕의 회계사 앨런 클라인을 사업 관리인으로 들였다. 클라인은 RCA와 재협상해 쿡 쪽 회사가 녹음의 원판권(마스터)을 갖고 RCA에 빌려주는 구조를 만들었다. 가수 쪽이 녹음의 주인이 되는 계약은 당시 매우 드물었다. (상실) 그해 6월, 한 살 반이던 아들 빈센트가 집 수영장에서 익사했다. 쿡은 깊이 무너졌고, 가까운 이들은 그가 이후 술을 부쩍 늘렸다고 전한다. (밤) 같은 해 그는 매끈한 히트곡과 다른 얼굴을 녹음했다. 1월 마이애미의 흑인 클럽에서 녹음한 실황은 땀에 젖은 거친 무대였지만 RCA는 이를 내지 않았다. 2월 소규모 밴드와 녹음한 앨범 「나이트 비트」는 블루스에 가까운 담담한 밤의 음악이었다. (모욕) 1963년 10월, 루이지애나주 슈리브포트의 홀리데이 인은 예약해 둔 쿡 일행을 돌려보냈다. 항의하던 그와 일행은 치안 방해 혐의로 체포됐다. 그 무렵 그는 밥 딜런의 「블로잉 인 더 윈드」를 듣고, 백인 청년이 흑인의 처지를 노래하는데 자신은 침묵해 왔다는 데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알려져 있다. (응답) 1964년 1월 녹음한 「어 체인지 이즈 고나 컴」이 그 응답이었다. 2월, 그는 마이애미에서 소니 리스턴을 꺾은 친구 캐시어스 클레이(훗날의 무하마드 알리), 맬컴 X, 미식축구 선수 짐 브라운과 한 호텔 방에서 밤을 보냈다. 흑인의 자립과 존엄을 놓고 나눈 이들의 교류는 그해 쿡의 생각에 깊은 자국을 남겼다. 7월, 그는 6년 전 실패했던 코파카바나 무대에 다시 섰고 이번에는 박수를 받았다.

♪라이브 앳 더 할렘 스퀘어 클럽 1963 (Live at the Harlem Square Club, 1963)1985

1963년 1월 마이애미의 흑인 클럽 실황으로, 매끈한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22년간 묻혀 있다가 공개됐다.

  • 스튜디오 녹음의 부드러운 목소리 대신, 갈라지고 거칠게 소리치는 쿡이 들린다. 같은 사람이 무대에서는 이렇게 다른 목소리를 냈다는 점이 이 음반의 가장 큰 충격이다.
  • 색소폰 연주자 킹 커티스가 이끄는 밴드가 혼과 백비트(둘째·넷째 박을 세게 치는 드럼)로 쉼 없이 몰아친다. 곡과 곡이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짜임새도 들어 보자.
  • 「브링 잇 온 홈 투 미」 대목에서 쿡은 곡을 길게 늘이며 관객에게 따라 부르기를 청한다. 클럽 전체가 교회 회중처럼 응답하는 순간이 생생하게 담겼다.
  • 관객의 함성과 박수가 녹음 전면에 크게 들어가 있다. 흑인 청중만을 위한 무대에서 쿡이 무엇을 할 수 있었는지 보여 주는 기록으로 평가된다.
♪어 체인지 이즈 고나 컴 (A Change Is Gonna Come)1964실황 Al Green · 1995 로큰롤 명예의 전당 콘서트

슈리브포트에서 겪은 모욕과 민권 운동의 열기가 만든 곡으로, 쿡의 사후 싱글 B면으로 나와 민권 운동의 노래가 됐다.

  • 르네 홀의 편곡으로 현악이 크게 휘몰아치며 곡이 열린다. 여느 쿡의 곡과 달리 영화 음악처럼 장엄하고 어두운 도입부다.
  • 강가에서 태어나 줄곧 떠돌아야 했던 한 사람의 생애를 1인칭으로 풀어 가며, 지친 체념과 꺾이지 않는 희망이 교차한다. 쿡의 목소리는 끝까지 높아지지 않고 낮게 버틴다.
  • 중간의 브리지에서 현악이 물러나고 드럼이 무겁게 내려앉으면서, 차별 속에서 문 앞에서 거절당하는 경험이 그려진다. 1964년 말 싱글로 나올 때 이 대목이 잘려 나갔다는 사실을 알고 들으면 무게가 다르다.
  • 곡 끝에서 마지막 긴 음을 길게 끌며 힘을 모으는 순간이 클라이맥스다. 소리를 지르지 않고도 확신을 전하는 쿡 창법의 정점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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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해시엔다 모텔 · 1964

(죽음) 1964년 12월 11일 새벽, 로스앤젤레스의 해시엔다 모텔에서 쿡은 관리인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서른세 살이었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함께 모텔에 들어간 여성이 그의 옷가지를 들고 방을 떠났고, 그녀를 찾던 쿡이 관리실로 들이닥쳤다가 일어난 일이었다. 검시 심리는 정당방위로 판단했다. (의문) 가족과 동료 다수는 이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시신을 직접 본 에타 제임스는 자서전에서 그가 총상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을 만큼 심하게 맞은 상태였다고 썼다. 그러나 사건은 다시 조사되지 않았고, 다른 결론을 뒷받침할 확정된 증거도 나오지 않았다. (장례) 장례는 시카고와 로스앤젤레스에서 치러졌다. 두 도시 모두 수많은 조문객이 몰렸고, 로스앤젤레스 장례식에서는 레이 찰스가 노래를 불렀다. (유작) 그달 말 싱글 「셰이크」가 나왔고, 그 B면에 「어 체인지 이즈 고나 컴」이 실렸다. 노래는 이듬해부터 민권 운동의 행진 속에서 불렸다. 쿡을 우상으로 여긴 오티스 레딩은 1965년 앨범 「오티스 블루」에 이 곡과 「셰이크」를 녹음했고, 아레사 프랭클린도 1967년 첫 애틀랜틱 앨범에 이 곡을 실었다. (유산) 알 그린, 마빈 게이, 바비 워맥 등 많은 소울 가수가 그의 창법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1986년 그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 첫 헌액자 가운데 하나가 됐다. 그가 지키려 했던 1960년 이후 녹음의 권리는 그의 사후 클라인의 회사 ABKCO가 관리하게 됐다. 가스펠의 신앙, 팝의 성공, 사업가의 자립, 민권의 목소리 — 그는 이 모두를 한 몸에 담으려 했고, 그 시도는 서른셋에 멈췄다.

덜 알려진 이야기

(동생의 이름) 「유 센드 미」의 작곡자는 오랫동안 동생 L.C. 쿡으로 표기됐다. 쿡이 스페셜티와 맺은 퍼블리싱 계약이 남아 있어, 자기 이름으로 곡을 등록하면 권리가 옛 레이블로 넘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기 작가 피터 거럴닉은 이 일을 쿡이 곡의 소유권에 눈뜬 출발점으로 본다. 음반 크레디트만 보면 드러나지 않는, 계약서가 만든 이름이었다. (필명) 「원더풀 월드」의 초기 크레디트에는 바버라 캠벨이라는 이름이 적혔다. 쿡과 젊은 작곡가 허브 앨퍼트, 루 애들러가 함께 다듬은 곡을 당시의 연인이자 훗날의 아내 이름으로 등록한 것이다. 앨퍼트는 이후 A&M 레코드를 세웠고 애들러는 이름난 프로듀서가 됐지만, 두 사람의 초창기가 쿡의 곡에 숨어 있다는 사실은 크레디트 때문에 오래 가려져 있었다. (묻힌 실황) 1963년 1월 마이애미 할렘 스퀘어 클럽 실황은 녹음 직후 RCA가 발매를 보류했다. 나이트클럽과 백인 성인 시장을 겨냥한 쿡의 매끈한 이미지와 거칠고 뜨거운 무대가 맞지 않는다고 봤기 때문이다. 테이프는 1985년에야 공개됐고, 지금은 소울 실황 음반의 고전으로 꼽힌다. 사후 20년이 지나서야 그의 다른 얼굴이 알려진 셈이다. (잘린 대목) 「어 체인지 이즈 고나 컴」을 쿡이 생전에 공개 무대에서 부른 것은 1964년 2월 텔레비전 「투나잇 쇼」 한 번뿐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 방송 녹화는 남아 있지 않다고 전해진다. 또 1964년 말 싱글로 나올 때는 차별 속에서 거절당하는 경험을 그린 브리지가 잘려 나갔다. 오늘날 널리 듣는 것은 앨범에 실린 온전한 판본이다.

용어 노트 📚🔎

가스펠

(말뜻) 영어 gospel 은 옛 영어 god-spel, 곧 좋은(god) 소식(spel)이라는 말에서 왔다. 기독교에서 예수의 가르침을 담은 복음(福音), 기쁜 소식을 가리킨다. (팝에서) 미국 흑인 교회에서 자란 종교 음악을 말한다. 리드 가수가 한 줄을 외치면 합창이 받아치고, 감정이 차오르면 목소리를 굽이치게 늘이며 회중을 들뜨게 한다. 소울과 R&B의 창법 대부분이 여기서 나왔다. 학교 강당에서 다 같이 부르는 노래가 점점 박수와 함성으로 뜨거워지는 장면을 떠올리면, 가스펠 예배당의 분위기와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일상 영어에서는 의심할 여지 없는 진리라는 뜻으로도 써서, 누군가의 말을 그대로 믿을 때 가스펠처럼 받아들인다고 한다.

팔세토

(말뜻) 이탈리아어 falsetto 는 가짜를 뜻하는 falso 에서 왔다. 평소 목소리가 아닌 가짜 목소리라는 뜻으로, 우리말로는 가성(假聲)이라 한다. (팝에서) 성대를 얇게 써서 평소 목소리보다 훨씬 높은 음을 가볍고 맑게 내는 창법이다. 남자 가수가 여성 음역까지 올라갈 때 자주 쓴다. 샘 쿡의 우상이던 R.H. 해리스가 이 가성으로 유명했다. 친구를 놀래 주려고 일부러 높고 가는 목소리로 말해 본 적이 있다면, 그게 팔세토의 시작이다.

멜리스마

(말뜻) 그리스어 melisma 는 노래, 가락이라는 뜻이다. (팝에서) 가사의 한 음절을 여러 음으로 굽이치게 늘여 부르는 창법이다. 예를 들어 한 글자를 부르면서 음을 위아래로 여러 번 오르내린다. 가스펠에서 시작돼 소울과 R&B 가수들의 대표 기술이 됐다. 생일 축하 노래 마지막 줄에서 누군가 한 글자를 길게 꺾고 돌리며 멋을 부릴 때, 바로 그게 멜리스마다.

콜 앤드 리스폰스

(팝에서) 부름(call)과 응답(response)이라는 뜻 그대로, 한 사람이 노래로 부르면 다른 사람이나 무리가 받아 부르는 짜임새다. 아프리카 음악과 흑인 교회의 설교 전통에서 왔고, 가스펠·블루스·소울 곳곳에 쓰인다. 「브링 잇 온 홈 투 미」에서 쿡이 부르고 루 롤스가 받는 것이 좋은 예다. 운동회에서 응원단장이 한 마디를 외치면 관중석이 한꺼번에 받아치는 응원이 꼭 이렇다. (다른 데서는) 교실에서도 선생님이 질문을 던지고 학생들이 함께 대답하는 수업 방식을 같은 이름으로 부른다.

크로스오버

(말뜻) 영어 crossover 는 건너가다(cross over)라는 말에서 왔다. 경계선을 넘어 다른 쪽으로 건너간다는 뜻이다. (팝에서) 한 장르나 한 청중층을 위해 만든 노래가 다른 시장에서도 크게 성공하는 일이다. 1950년대 미국에서는 흑인 청중의 R&B 차트와 백인 청중의 팝 차트가 나뉘어 있었는데, 「유 센드 미」가 두 차트 모두 1위에 오른 것이 대표적인 크로스오버였다. 원래 동생들 사이에서만 유행하던 게임이 어느 날 부모님까지 하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농구에서는 공을 한 손에서 다른 손으로 빠르게 옮겨 수비수를 제치는 드리블을 크로스오버라고 한다.

마스터(원판권)

(팝에서) 마스터는 음반을 찍어 내는 맨 처음의 원본 녹음이고, 원판권은 그 원본 녹음을 소유할 권리다. 마스터를 가진 쪽이 그 녹음을 어디에 팔지, 언제 다시 낼지를 정하고 수익의 가장 큰 몫을 가져간다. 대개 가수가 아니라 음반사가 가졌기 때문에, 쿡처럼 가수가 원판권을 손에 넣는 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 반 단체 사진의 원본 파일을 가진 사람만 마음대로 인화하고 나눠 줄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 마스터는 주인이나 어떤 분야의 대가를 뜻하고, 게임에서는 최고 실력자를 부르는 말로도 쓴다.

퍼블리싱

(말뜻) 영어 publish 는 라틴어 publicare, 곧 공공(public)에 내놓는다는 말에서 왔다. (팝에서) 녹음이 아니라 곡 그 자체, 즉 멜로디와 가사에 대한 저작권을 관리하는 일이다. 누가 그 곡을 녹음하거나 방송에서 틀 때마다 작곡가와 퍼블리싱 회사가 돈을 받는다. 같은 노래라도 녹음의 주인(마스터)과 곡의 주인(퍼블리싱)이 다를 수 있다. 내가 지은 동시를 친구가 낭송해 녹음했다면, 녹음 파일은 친구 것이어도 시 자체는 내 것인 것과 같다. (다른 데서는) 일반적으로는 책·신문·잡지를 펴내는 출판 일을 가리킨다.

B면

(팝에서) 옛날 싱글 레코드는 원반 한 장의 앞뒤에 한 곡씩 실었다. 음반사가 밀고자 하는 대표곡을 앞면(A면)에, 덜 중요하게 여긴 곡을 뒷면(B면)에 실었다. 그런데 B면 곡이 더 사랑받는 경우도 있었고, 「셰이크」의 B면이던 「어 체인지 이즈 고나 컴」이 그랬다. 급식 메뉴에서 주 메뉴보다 곁들임 반찬이 더 인기를 끄는 날이 있는 것과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