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ta James
교회에서 배운 외침과 블루스의 상처를 한 목소리에 담아, 무너질 때마다 노래로 다시 일어선 가수.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가족도로시 호킨스
열네 살에 그를 낳은 어머니로, 늘 멀리 있었지만 딸을 샌프란시스코로 데려가 새 삶의 문을 열었다.
- 후원조니 오티스
1954년 그를 발굴해 로스앤젤레스로 데려가 첫 녹음을 이끌고 에타 제임스라는 이름을 붙여 준 밴드 리더였다.
- 후원레너드 체스
체스 레코드의 수장으로 그를 현악 발라드 가수로 키웠고, 그는 레너드를 아버지처럼 따랐다.
- 동료하비 푸쿠아
문글로스의 리더이자 연인으로 그를 시카고로 이끌고 듀엣을 함께 낸 동료였으며, 훗날 마빈 게이를 모타운에 소개했다.
- 우정키스 리처즈
재활 중이던 그에게 편지로 투어를 제안했고, 그는 1978년 롤링 스톤스 투어의 오프닝 무대에 섰다.
- 영향빌리 홀리데이
그가 삶과 노래를 겹쳐 본 선배 가수로, 1994년 헌정 앨범 『미스터리 레이디』로 첫 그래미를 받게 했다.
I. 열네 살 어머니의 딸 · 1938–1950
(출생) 1938년 1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제임스타 호킨스였다. 어머니 도로시 호킨스는 딸을 낳을 때 열네 살이었고, 아버지는 끝내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어린 어머니는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았고, 아이는 이웃의 위탁 부모 손에서 자랐다. 그는 훗날 어머니를 늘 기다리기만 했던 유년을 숨기지 않고 회고했다. (성가대) 다섯 살 무렵 그는 로스앤젤레스의 성 바울 침례교회 성가대에 들어가 지휘자 제임스 얼 하인스에게 노래를 배웠다. 하인스는 목이 아니라 배에서 소리를 밀어 올리라고 가르쳤고, 어린 제임스타는 곧 독창을 맡아 교회의 라디오 방송에 목소리를 실었다. 몸 전체를 울리는 큰 소리, 설교하듯 밀고 당기는 가스펠의 호흡이 이때 몸에 배었다. (그늘) 위탁 가정의 기억이 밝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자서전 『레이지 투 서바이브(Rage to Survive)』에 따르면 위탁 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한밤중에 아이를 깨워 카드판 손님들 앞에서 노래를 시켰다. 그는 누군가의 명령에 맞춰 노래하는 일에 평생 거부감이 남았다고 적었다. 무대 위에서 끝까지 고집스럽게 자기 방식대로 노래한 태도의 뿌리를 그는 이 시절에서 찾았다. (이별) 1950년 위탁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 도로시가 열두 살 딸을 데리고 샌프란시스코로 올라갔다. 성가대와 교회라는 울타리가 한꺼번에 사라졌고, 낯선 도시의 거리와 클럽이 그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II. 미스 피치스 · 1950–1959
(필모어) 샌프란시스코의 필모어 지구는 흑인 클럽과 길거리 보컬 그룹이 넘치는 동네였다. 열다섯 살 무렵 제임스타는 동네 친구 자매와 3인조 크리올레츠를 꾸려 파티와 길모퉁이에서 노래했다. 어머니의 감독은 느슨했고, 소녀는 학교보다 거리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오티스) 1954년 순회공연 차 샌프란시스코에 온 밴드 리더 조니 오티스가 이 소녀들의 노래를 들었다. 그는 셋을 로스앤젤레스로 데려가 모던 레코드에서 녹음하게 했다. 그룹 이름은 피치스가 됐고, 제임스타는 이름의 앞뒤를 바꾼 에타 제임스로 다시 태어났다. 피치스라는 별명은 이후 오래도록 그를 따라다녔다. (답가) 첫 녹음 「월플라워」는 행크 볼러드의 히트곡에 말대꾸하듯 만든 답가(앤서 송)였다. 1955년 리듬 앤드 블루스(R&B) 차트 1위에 올랐지만, 백인 가수 조지아 깁스가 가사를 순하게 다듬어 다시 부른 노래(커버)가 팝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같은 노래로 더 큰 돈과 이름을 가져가는 쪽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그는 열일곱 살에 배웠다. (순회) 후속곡 「굿 로킹 대디」도 R&B 차트에 올랐고, 그는 리틀 리처드 등과 함께 남부를 도는 순회공연에 섰다. 흑인 연주자가 식당과 호텔에서 거절당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모던 레코드에서 낸 이후의 싱글은 갈수록 반응이 줄었고, 1950년대 말 그는 잊혀 가는 십대 가수에 가까웠다.
열여섯 살의 에타가 조니 오티스와 처음 녹음한 답가로, R&B 1위에 올랐지만 백인 가수의 커버에 팝 차트를 내준 곡이다.
- 처음부터 끝까지 출렁이며 굴러가는 셔플 리듬(짧고 긴 음을 번갈아 튀기는 박자) 위에서 노래가 가볍게 뛰어논다.
- 중간중간 낮고 굵은 남자 목소리가 끼어들어 대꾸하는데, 이 역할은 훗날 「루이 루이」를 쓴 리처드 베리가 맡았다.
- 십대 에타의 목소리는 아직 밝고 당돌하다. 훗날의 거친 소리와 비교해 들으면 한 가수의 변화가 선명하게 보인다.
- 오티스 밴드의 색소폰이 꽥 하고 내지르듯 끊어 부는 소리가 1950년대 로스앤젤레스 R&B의 들뜬 공기를 전한다.
III. 체스의 현악 · 1960–1965
(시카고) 그를 시카고로 이끈 사람은 보컬 그룹 문글로스의 리더 하비 푸쿠아였다. 둘은 연인이었고, 1960년 그는 머디 워터스와 척 베리의 레이블 체스 레코드와 계약했다. 레너드 체스는 그를 산하 레이블 아르고에 두고, 거친 R&B 가수가 아니라 현악기를 두른 발라드 가수로 키우려 했다. 그는 레너드를 아버지처럼 따랐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고디) 푸쿠아와는 에타와 하비라는 이름으로 듀엣을 냈다. 푸쿠아는 얼마 뒤 디트로이트로 가 그웬 고디와 결혼했고, 젊은 마빈 게이가 모타운에 들어가는 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같은 해 에타의 첫 체스 히트 「올 아이 쿠드 두 워즈 크라이」를 쓴 이들이 바로 베리와 그웬 고디, 빌리 데이비스였다. 그의 체스 시절은 이렇게 모타운의 출발과 한 줄로 이어져 있다. (현악) 편곡자 라일리 햄프턴이 짠 바이올린과 첼로의 반주(스트링 편곡) 위에서 그는 1940년대 영화 음악과 재즈 스탠더드를 불렀다. 1960년 말 발표한 「앳 라스트」는 R&B 차트 2위에 올라 평생 그의 이름을 대표하는 노래가 됐다. 1962년 「섬싱스 갓 어 홀드 온 미」에서는 반대로 교회에서 배운 외침을 그대로 꺼내 놓았다. (헤로인) 성공과 같은 무렵 헤로인 중독이 시작됐다. 그는 자서전에서 이 시기를 숨기지 않았다. 1963년 내슈빌의 뉴에라 클럽에서 녹음한 실황 앨범 『록스 더 하우스』의 거칠고 뜨거운 목소리는, 무대 밖에서 조금씩 무너지던 삶과 나란히 기록된 것이었다.
베리·그웬 고디와 빌리 데이비스가 쓴 곡으로, 체스에서의 첫 큰 히트이자 발라드 가수 에타의 출발점이었다.
- 노래는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이와 결혼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이야기로 짜여 있어, 한 편의 짧은 단편소설처럼 흘러간다.
- 느린 셋잇단 박(한 박을 셋으로 쪼개 흔들리듯 가는 리듬) 위에서 코러스가 부드럽게 받쳐 주고, 에타는 그 위로 감정을 점점 끌어올린다.
- 후반으로 갈수록 목소리가 울음을 삼키듯 갈라지는 대목이 있는데, 꾸민 흐느낌이 아니라 성가대에서 익힌 소리의 힘으로 들린다.
1941년 영화 음악을 라일리 햄프턴의 현악 편곡으로 다시 부른 곡으로, 레너드 체스가 꿈꾼 발라드 가수 에타의 정점이다.
- 도입에서 바이올린들이 물결처럼 부풀어 오르며 문을 연다. 1960년 R&B 녹음으로는 드물게 화려한 현악 편곡이다.
- 에타는 박자보다 살짝 늦게 들어가며 단어를 끌어당기듯 부른다. 이 여유가 노래를 느긋하고 관능적으로 만든다.
- 한 음절을 여러 음으로 굽이치게 늘이는 창법(멜리스마)을 아껴 쓰다가, 결정적인 대목에서만 목소리를 높이 밀어 올린다.
- 발표 당시 팝 차트 순위는 47위에 그쳤지만, 이후 결혼식과 영화, 2009년 대통령 취임 무도회를 거치며 그의 대명사가 됐다.
현악 발라드 사이에서 교회의 외침을 정면으로 꺼낸 곡으로, 에타가 가스펠 성가대 출신임을 가장 분명히 들려준다.
- 도입부는 박자 없이 느리게, 예배당에서 찬송을 시작하듯 길게 끌며 노래한다.
- 그러다 갑자기 빠른 박자로 뒤집히며 박수와 코러스가 몰아친다. 이 급변의 순간이 곡의 핵심이다.
- 코러스가 받고 에타가 다시 받아치는 주고받기(콜 앤드 리스폰스)는 흑인 교회 예배의 방식을 그대로 옮겨 왔다.
- 2011년 아비치의 「레벨스」가 이 곡의 목소리 한 토막을 잘라 쓰며(샘플링) 새로운 세대에게 다시 알려졌다.
IV. 머슬 숄스 · 1966–1969
(앨라배마) 1967년 레너드 체스는 그를 앨라배마주 머슬 숄스의 페임 스튜디오로 보냈다. 시카고의 마약 환경에서 잠시 떼어 놓으려는 뜻도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같은 해 초 아레사 프랭클린이 바로 이 스튜디오에서 「아이 네버 러브드 어 맨」을 녹음해 새 출발을 알린 터였다. (홀) 프로듀서 릭 홀과 스튜디오의 리듬 섹션은 현악 대신 트럼펫과 색소폰 묶음(혼 섹션), 오르간, 단단한 드럼을 깔았다. 남부 백인 연주자들이 흑인 소울을 연주하는 방은 그에게 낯설었지만 녹음은 빠르게 풀렸다. 앨범에는 오티스 레딩의 「시큐리티」도 실려, 같은 남부 소울의 언어로 그와 이어졌다. (텔 마마) 클래런스 카터의 노래를 여성의 목소리로 고쳐 부른 「텔 마마」는 R&B 10위, 팝 23위에 올라 체스 시절 가장 큰 팝 히트가 됐다. 싱글 뒷면(B면)에 실린 「아이드 래더 고 블라인드」는 연인이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느니 차라리 눈을 잃겠다는 마음을 노래한 발라드로, 세월이 흐르며 앞면보다 더 오래 불리는 노래가 됐다. (상실) 1969년 레너드 체스가 세상을 떠났다. 그를 믿고 앨범을 맡겨 온 사람이 사라지자 체스 레코드는 곧 다른 회사에 팔렸고, 그의 자리도 흔들렸다. 같은 해 그는 아티스 밀스와 결혼해 생을 마칠 때까지 부부로 지냈다.
머슬 숄스 페임 스튜디오에서 릭 홀과 만든 곡으로, 체스 시절 가장 큰 팝 히트가 됐다.
- 첫 소절부터 트럼펫과 색소폰 묶음(혼 섹션)이 짧고 굵게 끊어 치는 반복 가락(리프)이 귀를 붙잡는다.
- 둘째·넷째 박을 세게 치는(백비트) 드럼이 단단하게 박혀 있어, 시카고의 현악 녹음과는 전혀 다른 남부 소울의 몸집이 느껴진다.
- 에타는 목을 긁듯 거칠게 내는 소리(그로울)를 섞어, 위로해 주겠다는 화자를 다정하면서도 당당하게 그린다.
- 2분 남짓한 짧은 곡이라 군더더기가 없다. 반주가 노래를 밀어붙이고 노래가 반주를 끌고 가는 긴장이 끝까지 이어진다.
「텔 마마」의 뒷면에 실렸던 발라드로, 세월이 흐르며 그의 노래 가운데 가장 많이 다시 불리는 곡이 됐다.
- 오르간이 낮게 깔아 주는 소리 위로 기타가 짧은 응답을 던지며, 곡 전체가 느리고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 에타는 지친 듯 낮은 음역에서 시작해 박자를 끌며 부르다가, 후반에 목소리를 찢듯 높이 올린다. 그 갈라지는 소리가 곡의 감정을 다 말해 준다.
- 가사의 화자는 배신을 목격한 마음을 격하게 원망하기보다 체념에 가까운 말투로 털어놓아, 오히려 더 아프게 들린다.
- 2008년 영화 「캐딜락 레코드」에서 비욘세가 이 곡을 불러, 원곡과 나란히 비교해 듣는 사람이 늘었다.
V. 긴 어둠 · 1970–1987
(중독) 1970년대 초 그는 중독의 가장 깊은 바닥에 있었다. 마약과 관련된 일로 여러 차례 법정에 섰고, 1974년 법원은 수감 대신 로스앤젤레스의 치료 시설 입원을 명령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이 치료를 삶의 갈림길로 회고했지만, 중독과의 싸움은 그 뒤로도 오래 이어졌다. (메클러) 그런 와중에도 음악은 끊기지 않았다. 1973년 프로듀서 게이브리얼 메클러와 만든 앨범 『에타 제임스』는 록과 펑크의 질감을 끌어안은 소리로 그래미 후보에 올랐다. 두 아들은 자라서 어머니의 밴드에서 연주하게 된다. (스톤스) 1978년 그는 롤링 스톤스의 미국 투어에서 오프닝 무대에 섰다. 키스 리처즈는 그가 재활 치료를 받던 시절 편지를 보내 함께 투어하자고 제안했다고 전해진다. 1984년에는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개막식 무대에서 노래하며 수많은 시청자 앞에 섰다. (클럽) 그러나 체스 이후의 레이블들은 그를 어떻게 팔아야 할지 몰랐다. 1980년대 중반 그는 큰 계약 없이 클럽과 블루스 축제를 돌며 생계를 이었다. 히트곡의 이름값은 남았지만 차트는 멀어졌고, 그는 무대 위의 실력 하나로 버텼다. 이 시기의 공연에서 그의 목소리는 젊은 날보다 낮고 굵어졌다.
VI. 두 번째 노래 · 1988–2002
(재활) 1988년 그는 베티 포드 센터에 들어가 다시 중독 치료를 받았다. 같은 해 머슬 숄스 출신 프로듀서 배리 베킷과 만든 『세븐 이어 이치』로 아일랜드 레코드에서 메이저 레이블 무대로 돌아왔다. 남부 소울의 단단한 소리는 이십 년 전 페임 스튜디오의 기억을 다시 불러냈다. (명예) 1993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이듬해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를 부른 『미스터리 레이디』를 발표했고, 1995년 그래미 최우수 재즈 보컬 퍼포먼스를 받았다. 데뷔 40년 만의 첫 그래미 수상이었다. 그는 젊은 날 홀리데이의 비극적인 삶과 자신의 처지를 겹쳐 보았고, 그 마음이 앨범의 절제된 노래에 배어 있다. (자서전) 1995년에는 작가 데이비드 리츠와 함께 쓴 자서전 『레이지 투 서바이브』가 나왔다. 그는 위탁 가정의 기억, 중독, 친아버지에 대한 의문을 꾸밈없이 적었다. 살아남으려는 분노라는 제목처럼, 책은 성공담이 아니라 버텨 낸 기록에 가까웠다. (몸) 그는 오랫동안 체중 문제로 무릎과 몸을 앓았다. 2002년 위 우회 수술을 받아 크게 감량했고, 이후 무대에서 한결 가볍게 움직였다. 이 무렵 레이블 프라이빗 뮤직에서 블루스와 소울, 재즈를 오가는 앨범을 꾸준히 내며 원숙한 목소리를 남겼다.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를 부른 헌정 앨범으로, 데뷔 40년 만에 그에게 첫 그래미를 안겼다.
- 에타는 홀리데이의 가늘고 쓸쓸한 음색을 흉내 내지 않고, 자기 특유의 굵고 낮은 목소리로 같은 노래를 다시 읽는다.
- 피아노·베이스·드럼 중심의 작은 재즈 편성이 조용히 받쳐 주고, 드럼은 솔로 북을 쓸어내리듯 치는 브러시로 부드럽게 흐른다.
- 젊은 날의 큰 외침 대신 숨을 아끼고 음을 짧게 끊는 절제가 돋보인다. 나이 든 목소리가 오히려 노래의 무게를 더한다.
VII. 마지막 꿈 · 2003–2012
(공로) 2003년 그래미 평생공로상을 받았고,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이름이 새겨졌다. 이어 『렛츠 롤』로 2004년 최우수 컨템퍼러리 블루스 앨범, 『블루스 투 더 본』으로 2005년 최우수 트래디셔널 블루스 앨범 그래미를 연달아 받았다. 칠순을 앞둔 나이에 그는 여전히 현역이었다. (캐딜락) 2008년 체스 레코드의 역사를 그린 영화 「캐딜락 레코드」에서 비욘세가 에타 제임스를 연기하며 「앳 라스트」와 「아이드 래더 고 블라인드」를 불렀다. 2009년 1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 무도회에서도 비욘세가 「앳 라스트」를 불렀고, 이 노래는 대통령 부부의 첫 춤에 쓰였다. 반세기 전의 발라드가 다시 한 나라의 노래가 된 순간이었다. (병) 말년의 그는 치매와 C형 간염을 앓았고, 2011년 백혈병 진단 사실이 알려졌다. 같은 해 마지막 앨범이라고 밝힌 『더 드리머』를 발표했다. 목소리는 거칠고 낮아졌지만, 그는 끝까지 녹음실에서 자기 방식대로 노래했다. (작별) 2012년 1월 20일, 일흔네 번째 생일을 닷새 앞두고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에서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에서는 스티비 원더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노래로 그를 배웅했다. 열네 살 어머니의 딸로 태어나 위탁 가정과 거리, 중독의 긴 터널을 지나온 삶은 그렇게 노래 속에서 마무리됐다.
덜 알려진 이야기
그는 친아버지가 당구 도박사로 이름난 루돌프 원더론, 흔히 미네소타 패츠로 불린 인물일지 모른다고 오랫동안 믿었다. 자서전에 따르면 어머니가 그렇게 암시했고, 그는 1987년 원더론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다만 이는 검사로 확인된 적이 없는 그의 믿음이었고, 그래서 공식 전기에는 대개 아버지 미상으로만 남아 있다. 「아이드 래더 고 블라인드」의 작곡자 표기에는 그의 이름이 없다. 그는 자서전에서 엘링턴 조던과 함께 이 곡을 썼지만, 자기 몫의 크레디트를 당시 연인이던 빌리 포스터에게 넘겼다고 밝혔다. 음반에 적힌 이름과 실제 창작 사이의 이 간극은 그의 회고 속에만 남아,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같은 노래는 미국보다 영국에서 먼저 생명력을 얻었다. 1969년 블루스 밴드 치킨 섀크가 크리스틴 퍼펙트, 훗날의 크리스틴 맥비의 목소리로 이 곡을 불러 영국 차트에 올렸고, 이후 로드 스튜어트 등 수많은 가수가 다시 불렀다. 원곡이 미국에서 싱글 뒷면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이 곡이 처음부터 그의 대표곡이었던 것처럼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 「앳 라스트」 역시 처음부터 시대의 노래는 아니었다. 1961년 팝 차트 최고 순위는 47위였다. 이 노래가 결혼식의 표준이 된 것은 수십 년에 걸쳐 광고와 영화에 쓰이면서였고, 2009년 대통령 취임 무도회가 그 정점이었다. 지금의 명성을 기준으로 과거를 보면 놓치기 쉬운 대목이다.
용어 노트 📚🔎
리듬 앤드 블루스 (R&B)
(말뜻) 리듬(rhythm)과 블루스(blues)를 이은 말이다. 1949년 미국 음악 잡지 빌보드가 흑인 음악 차트의 이름을 이것으로 바꾸면서 널리 쓰이게 됐다. (팝에서) 블루스의 슬픔과 가스펠의 힘찬 외침, 춤추기 좋은 박자를 하나로 합친 흑인 대중음악을 가리킨다. 에타 제임스가 데뷔한 1950년대에는 로큰롤과 거의 붙어 다니던 음악이었다. 줄넘기 노래처럼 몸이 먼저 박자를 타게 되는데, 그 노래에 실린 이야기는 이별이나 그리움처럼 어른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앤서 송 (답가)
(말뜻) 영어 answer song, 곧 대답하는 노래라는 뜻이다. (팝에서) 먼저 나온 히트곡에 말대꾸하듯 만든 노래를 말한다. 원곡의 인물에게 다른 인물이 대답하거나, 같은 이야기를 반대편 시점에서 다시 들려준다. 교실에서 친구가 보낸 쪽지에 답장을 써서 돌려보내는 것과 비슷하다. 「월플라워」는 남자가 부른 히트곡에 여자가 받아치는 답장이었다.
커버
(팝에서) 다른 가수가 먼저 발표한 노래를 새로 녹음해 부르는 것을 말한다. 1950년대 미국에서는 흑인 가수의 히트곡을 백인 가수가 순하게 다듬어 다시 부르면 라디오에 더 많이 나오고 돈도 더 많이 버는 일이 흔했다. 친구가 만든 춤을 다른 친구가 따라 해서 학예회에서 더 큰 박수를 받는다면 처음 만든 친구는 서운할 것이다. 에타 제임스가 「월플라워」로 겪은 일이 그랬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는 덮개나 책 표지를, 보험에서는 보장해 주는 범위를 뜻한다.
B면
(말뜻) 레코드판의 뒷면이라는 뜻이다. 앞면은 A면이라고 부른다. (팝에서) 옛날 싱글 레코드는 양면에 한 곡씩 실었는데, 레코드 회사가 밀고 싶은 곡을 A면에, 덤으로 끼우는 곡을 B면에 넣었다. 그런데 가끔은 B면 곡이 더 사랑받기도 한다. 급식에서 덤으로 나온 반찬이 그날 가장 맛있었던 경험과 비슷하다. 「아이드 래더 고 블라인드」가 바로 그런 곡이다.
스트링 편곡
(말뜻) 스트링(string)은 줄, 곧 줄을 켜서 소리 내는 바이올린·비올라·첼로 같은 현악기를 말한다. 편곡(編曲)은 곡을 엮는다(編)는 뜻이다. (팝에서) 노래 뒤에 현악기들이 연주할 부분을 따로 짜 넣는 작업이다. 편곡자가 어떤 악기가 언제 나와서 얼마나 크게 울릴지를 정한다. 같은 라면이라도 어떤 재료를 언제 넣느냐에 따라 맛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처럼, 같은 노래도 편곡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다. 「앳 라스트」의 우아함은 라일리 햄프턴의 스트링 편곡에서 나왔다.
혼 섹션
(말뜻) 혼(horn)은 원래 짐승의 뿔로 만든 나팔이었고, 지금은 트럼펫 같은 관악기를 두루 부른다. 섹션(section)은 한 부분, 한 묶음이라는 뜻이다. (팝에서) 트럼펫·트롬본·색소폰 같은 관악기들을 한 팀으로 묶어 함께 연주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소울 음악에서는 짧고 굵게 끊어 부는 반복 가락으로 곡에 힘을 싣는다. 운동회 응원단이 다 같이 한목소리로 짧게 구호를 외칠 때 분위기가 확 살아나는 것과 비슷하다.
그로울
(말뜻) 영어 growl은 개나 사자 같은 짐승이 낮게 으르렁거린다는 뜻이다. (팝에서) 목을 긁듯 거칠고 쉰 소리를 일부러 섞어 부르는 창법이다. 깨끗한 소리로는 담을 수 없는 분노나 절실함을 전할 때 쓴다. 운동회에서 응원을 너무 열심히 한 다음 날 목소리가 쉬어 있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다만 가수는 목을 다치지 않게 이 소리를 조절해서 낸다.
샘플링
(말뜻) 샘플(sample)은 견본, 일부를 떼어 낸 조각이라는 뜻이다. (팝에서) 이미 있는 녹음에서 일부를 잘라 내어 새 노래의 재료로 쓰는 것이다. 목소리 한 마디나 드럼 소리를 반복해 깔기도 한다. 영상을 편집할 때 다른 영상의 한 장면을 잘라 내 붙이는 것과 같다. 2011년 아비치가 에타 제임스의 목소리를 잘라 쓴 일이 유명하다. (다른 데서는) 통계에서는 전체 가운데 일부를 뽑아 조사하는 표본 추출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