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lly Joel
뉴욕 교외 주택가의 피아노 앞에서 미국 보통 사람들의 일상과 꿈을 노래로 기록한 이야기꾼.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가족하워드 조엘
나치를 피해 독일을 떠난 아버지로, 클래식 피아노를 잘 쳤으며 이혼 뒤 빈에 정착했다.
- 가족로절린드 조엘
음악과 연극을 사랑한 어머니로, 네 살 아들에게 피아노 교습을 시작하게 했다.
- 영향레이 찰스
어린 시절의 우상이었고, 1986년 「베이비 그랜드」에서 듀엣 상대로 함께 노래했다.
- 후원클라이브 데이비스
컬럼비아 레코드 대표로 무명의 조엘을 영입해 「피아노 맨」을 내게 했다.
- 동료필 라몬
「더 스트레인저」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그의 전성기 앨범들을 프로듀싱했다.
- 우정엘턴 존
1994년부터 두 대의 피아노를 마주 놓고 공동 투어를 이어 간 동시대의 피아노 가수다.
I. 레빗타운의 소년 · 1949–1966
(출생) 1949년 5월, 미국 뉴욕시 브롱크스에서 윌리엄 마틴 조엘이 태어났다. 이듬해 가족은 롱아일랜드 힉스빌의 레빗타운 지구로 옮겼다. 2차대전에서 돌아온 병사들을 위해 같은 모양의 집을 줄지어 지은 교외 주택단지였다. 이 평범한 중산층 동네는 훗날 그의 노래가 늘 돌아가는 고향이 됐다. (부모) 아버지 하워드는 독일 뉘른베르크의 유대인 집안 출신으로,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와 미군으로 참전했다. 클래식 피아노를 잘 쳤지만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어머니 로절린드는 영국계 유대인 집안 출신으로 음악과 연극을 사랑했다. 부부는 1957년 이혼했고 아버지는 유럽으로 떠나 빈에 자리 잡았다. 조엘은 어머니, 누이 주디와 함께 넉넉지 않은 살림 속에서 자랐다. (피아노) 네 살 무렵 어머니의 권유로 피아노 교습을 시작했다. 바흐와 모차르트를 배웠지만 악보대로 치기보다 곡을 제멋대로 바꿔 치는 데 더 끌렸다. 피아노 치는 남자아이라는 놀림을 견디려 10대에는 권투를 배워 아마추어 시합에 나갔고, 그 무렵 코뼈가 부러졌다. (비틀스) 1964년 텔레비전 「에드 설리번 쇼」에서 본 비틀스가 진로를 정했다. 레이 찰스의 소울, 필 스펙터의 두꺼운 사운드, 동네 소년들이 길모퉁이에서 부르던 두왑도 그의 귀에 쌓였다. 밤에는 술집에서 피아노를 치고 낮에는 졸린 눈으로 학교에 다녔다. 졸업을 앞두고 밤늦게까지 연주하느라 영어 시험을 놓쳐 졸업장을 받지 못했는데, 그는 대학 대신 음반사로 가겠다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졸업장은 1992년에야 모교가 수여했다.
II. 피아노 바의 빌 마틴 · 1967–1974
(밴드) 1960년대 중반 그는 롱아일랜드의 록 밴드 하슬스에 키보드 연주자로 들어가 앨범 두 장을 냈다. 밴드가 흩어진 뒤에는 드러머 존 스몰과 오르간·드럼 2인조 아틸라를 만들어 1970년 앨범 한 장을 냈지만 반응은 없었다. 그는 남의 음반에 연주를 보태는 세션 연주자 일과 음악 잡지 기고로 생계를 이었다. (우울) 이 무렵 그는 깊은 우울에 빠져 잠시 병원 치료를 받았다고 훗날 스스로 밝혔다. 그 시기를 지나며 그는 남의 밴드가 아니라 자기 이름으로, 자기 노래를 부르는 싱어송라이터가 되기로 했다. (계약) 1971년 아티 립의 패밀리 프로덕션과 계약하고 첫 솔로 앨범 「콜드 스프링 하버」를 냈다. 그러나 마스터링 과정에서 테이프 속도가 잘못 맞춰져 그의 목소리가 실제보다 높게 실렸고, 앨범은 조용히 묻혔다. 계약 조건도 그를 오래 묶었다. 1972년 그는 로스앤젤레스로 옮겨 반년가량 윌셔 대로의 피아노 바 이그제큐티브 룸에서 빌 마틴이라는 이름으로 연주했다. 엘리자베스 웨버가 곁에 있었고 두 사람은 1973년 결혼했다. (전환) 필라델피아의 라디오 방송국 WMMR이 그의 공연 실황 「캡틴 잭」을 거듭 틀면서 음반사들이 움직였다. 컬럼비아 레코드의 클라이브 데이비스가 그를 잡았고, 컬럼비아는 립의 회사로부터 계약을 사들였다. 그 대가로 립은 이후 오랫동안 조엘의 음반에서 로열티를 받았고, 음반에는 패밀리 프로덕션의 로고가 남았다. 1973년 11월 나온 「피아노 맨」은 피아노 바에서 지켜본 손님들의 모습을 그린 노래로 그의 이름을 처음 알렸다. 이듬해 「스트리트라이프 세레나데」의 「디 엔터테이너」에서 그는 한 곡을 팔고 버리는 음악 산업의 냉정함을 꼬집었다.
로스앤젤레스 피아노 바에서 빌 마틴으로 일하던 반년이 그대로 노래가 됐다.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을 스케치하듯 그린 이 곡으로 그는 이름을 얻었다.
- 도입부에서 피아노와 목에 건 하모니카가 번갈아 나온다. 포크 가수들처럼 하모니카를 거치대에 걸고 피아노를 치며 부는 방식이다.
- 하나-둘-셋으로 세는 3박자 왈츠 리듬이다. 술집 손님들이 잔을 들고 몸을 흔드는 듯한 흔들림이 곡 전체를 끌고 간다.
- 절마다 새 인물이 등장하는 구성이다. 바텐더, 웨이트리스, 소설가 지망생처럼 한 사람씩 소개하는 이야기꾼의 화법에 주목할 것.
- 후렴에서 반주가 커지며 합창처럼 부풀어 오른다. 공연에서는 이 대목을 관객 수만 명이 함께 부르는 것이 오랜 전통이 됐다.
III. 뉴욕으로 돌아오다 · 1975–1979
(귀향) 1975년 그는 뉴욕으로 돌아왔다. 1976년 앨범 「턴스타일스」에는 로스앤젤레스와 작별하는 「세이 굿바이 투 할리우드」, 고향 도시에 대한 애정을 재즈 발라드로 풀어낸 「뉴욕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가 실렸다. 처음에는 외부 연주자들과 녹음을 시작했으나 결과에 만족하지 못해, 자신의 투어 밴드와 처음부터 다시 녹음했다. 이 무렵부터 아내 엘리자베스가 매니저를 맡아 흩어져 있던 사업을 정비했다. (라몬) 1977년 프로듀서 필 라몬을 만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라몬은 드러머 리버티 디비토, 베이시스트 더그 스테그마이어, 색소폰 연주자 리치 카나타 등 그의 라이브 밴드를 그대로 스튜디오에 세우고, 무대의 생기를 녹음에 담는 데 힘썼다. 그해 나온 「더 스트레인저」는 당시 컬럼비아 사상 최고 판매작이었던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앨범을 넘어섰다고 알려져 있다. (사랑) 엘리자베스에게 바친 「저스트 더 웨이 유 아」는 정작 조엘 자신이 너무 감상적이라며 앨범에서 빼려 했던 곡이다. 녹음실을 찾은 린다 론스태트와 피비 스노가 남기라고 권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 곡은 1979년 그래미 올해의 레코드와 올해의 노래를 받았다. 같은 앨범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의 장면들」은 롱아일랜드 청춘들의 이야기를 세 부분으로 엮은 모음곡으로, 오늘날까지 그의 공연의 중심에 있다. (52번가) 1978년 재즈 클럽 거리의 이름을 딴 「52번가」는 재즈 연주자들과 손잡고 한층 세련된 소리를 냈고, 1980년 그래미 올해의 앨범을 받았다. 레빗타운의 소년은 이제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가수 가운데 하나가 됐다.
캘리포니아 생활을 정리하고 뉴욕으로 돌아온 해에 쓴 귀향의 노래다. 자기 투어 밴드와 다시 녹음한 「턴스타일스」에 실렸다.
- 도입의 피아노는 블루스와 재즈 스탠더드의 어법이다. 레이 찰스를 사랑한 그의 뿌리가 그대로 드러난다.
- 리치 카나타의 테너 색소폰이 노래 사이사이와 간주를 채운다. 늦은 밤 맨해튼 거리 같은 분위기를 만드는 핵심이다.
- 보컬은 낮은 음역에서 담담하게 시작하다가 후렴에서 목소리를 거칠게 긁으며 힘을 싣는다.
- 2001년 9·11 테러 뒤 열린 「뉴욕시를 위한 콘서트」에서 그가 이 곡을 불러, 뉴욕을 대표하는 노래로 자리를 굳혔다.
아내 엘리자베스에게 바친 노래다. 그 자신은 빼려 했으나 동료들의 권유로 남았고, 그래미 올해의 레코드와 올해의 노래를 함께 받았다.
- 주된 건반은 어쿠스틱 피아노가 아니라 펜더 로즈 전자 피아노다. 소리가 물결처럼 일렁이는 효과를 걸어 부드럽고 몽롱한 질감을 낸다.
- 드럼과 퍼커션이 보사노바처럼 가볍게 찰랑이는 리듬을 깐다. 발라드인데도 느슨하지 않고 은근히 앞으로 흐른다.
- 조엘 자신의 목소리를 여러 번 겹쳐 녹음한 배경 화음이 후렴을 감싼다.
- 재즈 색소폰 연주자 필 우즈의 알토 색소폰 솔로가 곡 후반을 장식한다. 프로듀서 필 라몬이 재즈 연주자를 직접 불러들인 결과로, 팝 발라드 속 재즈 솔로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롱아일랜드 청춘들의 이야기를 세 개의 짧은 곡으로 이어 붙인 7분 넘는 모음곡이다. 레빗타운에서 자란 그의 기억이 가장 촘촘히 담겨 있다.
- 처음은 피아노 발라드다. 오랜 친구와 식당에서 다시 만나는 듯한 차분한 대화체로 시작한다.
- 곧 템포가 바뀌며 클라리넷과 튜바가 등장하는 옛 뉴올리언스풍 재즈로 넘어간다. 한 곡 안에서 장면이 갈아 끼워지는 순간이다.
- 세 번째 부분은 경쾌한 로큰롤이다. 고교 시절 가장 빛났던 한 커플이 결혼하고 헤어지기까지를 빠른 이야기체로 몰아친다.
- 끝에서 처음의 발라드 선율로 돌아와 원을 닫는다. 비틀스 「애비 로드」 B면의 메들리 구성에서 영향을 받은 것처럼 들린다.
IV. 경의와 실험 · 1980–1986
(로큰롤) 평론가들은 그를 말랑한 발라드 가수로 여기곤 했다. 1980년 「글래스 하우시스」는 거친 기타를 앞세운 응답이었고, 여기 실린 「잇츠 스틸 로큰롤 투 미」가 그의 첫 빌보드 핫 100 1위 곡이 됐다. (나일론) 1982년 「나일론 커튼」은 그의 가장 야심 찬 작업이었다. 비틀스, 특히 존 레넌의 소리에 대한 경의를 품고, 펜실베이니아 철강 도시의 몰락을 그린 「앨런타운」과 베트남에 간 해병들의 시점으로 쓴 「굿나잇 사이공」을 담았다. 녹음을 앞둔 그해 4월 그는 롱아일랜드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손을 다쳐 한동안 치료를 받았다. 같은 해 첫 결혼이 끝났다. (헌사) 1983년 「언 이노센트 맨」은 자신을 키운 1950·60년대 두왑과 소울, 모타운에 바친 앨범이다. 그는 이 시기 곡들이 몇 주 만에 쏟아져 나왔다고 회고했다. 포 시즌스의 가성 창법을 빌린 「업타운 걸」과 「텔 허 어바웃 잇」이 크게 성공했다. 「업타운 걸」 뮤직비디오에는 당시 교제하던 모델 크리스티 브링클리가 출연했고, 두 사람은 1985년 결혼했다. (연대) 1985년 1월 그는 마이클 잭슨과 라이오넬 리치가 쓴 아프리카 기근 구호곡 「위 아 더 월드」 녹음에 참여해, 티나 터너 등과 함께 솔로 대목을 맡았다. 이듬해 「더 브리지」에서는 어린 시절의 우상 레이 찰스와 「베이비 그랜드」를 듀엣으로 불렀다. 피아노를 오랜 벗처럼 노래한 이 곡에서 두 피아니스트 가수는 서로의 목소리를 주고받았다.
처음에는 고향 레빗타운을 소재로 쓰기 시작했다가, 펜실베이니아 철강 도시의 몰락 이야기로 옮겨 간 곡이다.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 세대의 좌절을 담았다.
- 도입부의 쇠망치 소리와 기적 소리 같은 효과음이 공장 지대를 그린다. 노래가 시작되기 전에 무대가 먼저 세워진다.
- 드럼은 둘째·넷째 박을 무겁게 내리치는(백비트) 행진 같은 걸음이다. 공장 라인의 반복 노동을 떠올리게 한다.
- 보컬은 분노를 터뜨리기보다 체념 섞인 담담한 어조를 유지한다. 그래서 후렴에서 목소리가 커질 때 무게가 더 실린다.
- 아버지 세대가 지킨 약속이 아들 세대에서 깨지는 이야기를 한 도시의 이름에 담은 화법이 핵심이다.
1950·60년대 음악에 바친 앨범 「언 이노센트 맨」의 대표곡이다. 노동계급 청년이 부잣집 아가씨에게 구애하는 이야기로, 영국 차트 1위에 올랐다.
- 포 시즌스의 프랭키 밸리처럼 진성 위로 높이 뽑아 올리는 가성 창법을 의도적으로 흉내 냈다. 조엘의 목소리가 가장 높이 올라가는 곡 가운데 하나다.
- 손뼉과 남성 코러스가 주고받는 배경 화음은 길모퉁이에서 부르던 두왑의 화법이다.
- 뮤직비디오는 자동차 정비소를 배경으로 한 춤과 연기로 꾸몄고, 크리스티 브링클리가 출연해 MTV 시대의 상징적 영상이 됐다.
- 통통 튀는 베이스와 빠른 템포가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밀어붙인다. 옛 음악을 흉내 내면서도 1980년대 녹음의 선명한 소리로 다듬었다.
V. 레닌그라드에서 꿈의 강까지 · 1987–1993
(소련) 1987년 여름 그는 냉전이 풀려 가던 소련에서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 공연을 열었다. 미국 록 스타의 소련 대형 공연으로는 이른 사례였고, 실황은 앨범 「콘체르트」로 나왔다. 레닌그라드에서 만나 우정을 나눈 서커스 광대 빅토르는 1989년 노래 「레닌그라드」의 주인공이 됐다. 1944년 소련에서 태어난 빅토르와 1949년 미국에서 태어난 조엘이 냉전의 양쪽에서 다르게 자란 이야기다. (소송) 1989년 그는 오랫동안 매니저로 재정을 맡겼던 프랭크 웨버를 재정 관리 문제로 고소했고, 법원은 조엘의 손을 들어 배상 판결을 내렸다. 그는 이 일로 사업 구조를 새로 짰고, 다시 오랜 투어에 나섰다. (불) 같은 해 포리너의 믹 존스와 함께 만든 「스톰 프런트」를 냈다. 수록곡 「위 디든트 스타트 더 파이어」는 스물한 살 청년이 지금은 끔찍한 시대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자신이 태어난 1949년부터 40년 동안의 사건을 나열해 답한 노래다. 이 곡은 빌보드 핫 100 1위에 올랐다. (강) 1993년 「리버 오브 드림스」는 가스펠과 블루스의 색이 짙었다. 제목곡은 꿈에서 떠오른 선율에서 시작됐다고 전해진다. 어린 딸을 위해 쓴 자장가 「룰라바이」도 이 앨범에 있다. 그는 이 앨범 뒤로 대중음악 앨범을 내지 않았다. 노래로 하고 싶은 말은 다 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고, 이후 그의 관심은 가사 없는 피아노 음악으로 옮겨 갔다.
자신이 태어난 1949년부터 1989년까지의 사건과 인물을 연대순으로 나열한 곡이다. 젊은 세대의 한탄에 대한 중년의 응답이었다.
- 절에는 이야기가 없다. 100개가 넘는 이름과 사건을 숨 가쁘게 쏟아 내는, 랩에 가까운 빠른 낭송이 특징이다.
- 드럼이 기계처럼 일정한 박자를 밀어붙이고, 그 위에 연도순 목록이 쌓이며 시간이 빨리 감기는 듯한 효과를 낸다.
- 후렴은 짧은 구호처럼 반복돼 귀에 박힌다. 정보로 가득한 절과 단순한 후렴의 대비가 곡을 끌고 간다.
- 조엘 자신은 이 곡의 선율이 좋지 않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그럼에도 차트 1위에 올랐고, 지금은 역사 수업 교재로도 쓰인다.
그의 마지막 대중음악 앨범의 제목곡이다. 꿈에서 들은 선율에서 시작됐다는 이 곡으로 그는 노래 작가로서의 긴 시기를 마무리했다.
- 도입부의 허밍과 무반주 같은 목소리는 조엘 혼자 여러 겹 녹음해 만든 것이다. 교회 성가대처럼 겹겹이 쌓인 화음이 곡을 연다.
- 손뼉과 리드 보컬, 합창이 주고받는(콜 앤드 리스폰스) 가스펠 화법이 곡의 뼈대다.
- 흔들리듯 튀는 리듬(셔플) 위에서 보컬은 밤새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사람처럼 들뜨고 갈급한 어조로 노래한다.
- 기타리스트 대니 코치마와 함께 만든 소리로, 피아노보다 리듬과 목소리가 앞에 나선다. 그의 다른 대표곡들과 결이 다른 지점이다.
VI. 노래 대신 피아노 · 1994–2013
(동행) 1994년부터 그는 엘턴 존과 함께 「페이스 투 페이스」 투어를 돌았다. 두 대의 그랜드 피아노를 마주 놓고 서로의 히트곡을 번갈아 부르는 무대였다. 같은 시대에 피아노를 치며 노래한 두 사람은 경쟁자로 비교되곤 했지만, 이 공동 투어는 2000년대까지 여러 차례 이어졌다. (명예) 1999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새 노래는 쓰지 않았지만 무대에는 꾸준히 섰다. (클래식) 2001년 그는 자신이 쓴 피아노 독주곡을 모은 앨범 「판타지 앤드 딜루전」을 냈다. 연주는 피아니스트 리처드 형기 주가 맡았다. 쇼팽과 슈만을 떠올리게 하는 낭만주의 양식의 작품들로, 어린 시절 아버지가 치던 클래식 피아노로 돌아간 셈이었다. 앨범은 빌보드 클래식 차트 정상에 올랐다. (무대) 2002년 안무가 트와일라 타프가 그의 노래들로 만든 무용 뮤지컬 「무빙 아웃」이 브로드웨이에서 막을 올렸다. 대사 없이 노래와 춤만으로 롱아일랜드 청년들의 베트남전 전후 삶을 그린 작품이었고, 조엘은 2003년 토니상 오케스트레이션 부문을 공동 수상했다. (회복) 같은 시기 그는 음주 문제로 재활 치료를 받았다고 스스로 밝혔다. 2008년 철거를 앞둔 뉴욕 셰이 스타디움에서 마지막 공연을 열었고, 폴 매카트니가 무대에 올라 함께 노래했다. 2013년에는 미국 문화 예술의 최고 영예 가운데 하나인 케네디 센터 공로상을 받았다.
VII. 가든의 피아노 맨 · 2014–2026
(가든) 2014년 1월 그는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매달 한 번씩 무대에 서는 레지던시를 시작했다. 새 앨범 없이 옛 노래만으로 매달 객석을 채운 이 공연은 10년 넘게 이어져 2024년 7월 25일 막을 내렸다. 레지던시만 100회가 넘었고, 그가 이 공연장에서 연 공연은 모두 150회에 이르렀다. 2014년에는 미국 의회도서관이 대중음악인에게 주는 거슈윈상도 받았다. (가족) 그는 네 차례 결혼했고 세 딸을 두었다. 공연에서 그는 종종 가족 이야기를 짧게 꺼냈고, 롱아일랜드는 여전히 그의 근거지였다. (신곡) 2024년 2월 그래미 시상식에서 그는 새 노래 「턴 더 라이츠 백 온」을 불렀다. 대중음악 신곡으로는 약 17년 만이었다. 오래 노래를 쓰지 않은 사람이 시간과 후회를 돌아보는 발라드였고, 이 곡은 그가 여전히 작곡가임을 보여 주었다. (기록) 2025년 HBO는 2부작 다큐멘터리 「빌리 조엘: 앤드 소 잇 고즈」를 공개했다. 가족과 동료들의 증언, 그의 육성을 통해 노래와 삶이 어떻게 맞물렸는지를 되짚은 작품이었다. (건강) 2025년 5월 그는 뇌 질환인 정상압 수두증 진단을 받았다고 공식 발표하고 예정된 공연을 취소했다. 2026년 현재 그는 일흔일곱 살이다. 레빗타운의 피아노 앞에서 시작된 그의 노래들은 미국 보통 사람들의 반세기를 기록한 목록으로 남아 있다.
덜 알려진 이야기
조엘 집안은 원래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의류 통신판매 회사를 운영했다. 할아버지 카를 조엘은 1938년 나치의 압박 속에 회사를 헐값에 넘기고 가족과 함께 독일을 떠났는데, 사들인 사람은 훗날 독일 최대 통신판매 기업을 일군 요제프 네커만이었다. 이 이야기는 집안에서도 거의 입에 오르지 않다가, 2001년 베아테 탈베르크 감독의 다큐멘터리 「조엘 파일」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조엘은 이 작업을 위해 뉘른베르크를 찾았다. 첫 앨범 「콜드 스프링 하버」는 마스터링 때 테이프 속도가 잘못 맞춰져 그의 목소리가 실제보다 높게 실렸다. 오랫동안 이 상태로만 들을 수 있었고, 그가 스타가 된 뒤인 1983년에야 속도를 바로잡은 재발매판이 나왔다. 그래서 처음 발매된 판과 지금 듣는 판은 같은 앨범이라도 소리가 다르다. 1978년 앨범 「52번가」는 1982년 10월 일본에서 소니의 첫 CD 플레이어와 함께 출시되며 세계 최초로 상업 발매된 CD로 기록됐다. 음반 기술사의 각주 같은 이 사실은 그의 음악 이야기 속에서는 좀처럼 언급되지 않는다. 로스앤젤레스 피아노 바에서 쓴 이름 빌 마틴은 지어낸 가명이 아니라 본명 윌리엄 마틴 조엘에서 성만 뺀 것이었다. 음반사와의 계약 문제가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기 이름을 드러내지 않으려 한 선택이었다.
용어 노트 📚🔎
싱어송라이터
(말뜻) 영어 singer(가수)와 songwriter(작곡가)를 붙인 말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곧 노래를 쓰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팝에서) 다른 작곡가가 써 준 곡을 받아 부르는 대신, 자기가 쓴 곡을 직접 부르는 가수를 가리킨다. 1970년대 초 자기 삶을 솔직하게 노래하는 가수들이 많아지면서 하나의 흐름이 됐다. 빌리 조엘은 피아노를 치며 자기 동네와 자기 이야기를 노래한 대표적 싱어송라이터다. 남이 써 준 발표문을 읽는 것과, 내가 쓴 일기를 내 목소리로 읽어 주는 것의 차이를 떠올리면 된다.
세션 연주자
(말뜻) 세션(session)은 일정한 시간 동안 모여서 하는 활동을 뜻한다. 녹음 한 회차에 불려 와 연주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팝에서) 정식 밴드 멤버가 아니라, 녹음이 있을 때마다 불려 가 다른 가수의 음반에 연주를 보태고 보수를 받는 연주자다. 이름은 잘 드러나지 않지만 실력이 뛰어나야 하고, 처음 보는 곡도 바로 연주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 연극에서 주인공은 아니지만, 필요한 장면마다 불려 나가 무대를 채워 주는 든든한 조연 같은 역할이다. (다른 데서는) 컴퓨터에서는 로그인해서 로그아웃할 때까지 접속한 한 번의 기간을 세션이라고 부른다.
마스터링
(말뜻) 마스터(master)는 여기서 모든 복사본을 찍어 내는 원판을 뜻한다. 마스터링은 그 원판을 만드는 일이다. (팝에서) 녹음과 섞기(믹싱)가 끝난 뒤, 음반으로 찍어 내기 직전에 소리의 크기·음색·곡 사이 간격 등을 마지막으로 다듬는 단계다. 여기서 실수가 나면 모든 음반에 같은 실수가 찍힌다. 조엘의 첫 앨범은 이 단계에서 테이프 속도가 잘못 맞춰져 목소리가 높게 실렸다. 숙제를 다 쓴 뒤 제출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맞춤법과 글씨 크기를 점검하는 것과 비슷한데, 잘못된 파일로 100장을 인쇄해 버린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 실수의 무게를 알 수 있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 마스터한다는 말은 어떤 기술을 완전히 익혔다는 뜻으로 쓴다.
프로듀서
(말뜻) 영어 produce(만들어 내다)에서 온 말로, 만들어 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팝에서) 음반을 녹음할 때 어떤 소리를 낼지, 어떤 연주자를 부를지, 어떤 녹음을 고를지를 결정하는 책임자다. 가수가 곡을 쓰고 부르더라도 프로듀서에 따라 같은 곡이 전혀 다른 음반이 된다. 필 라몬은 조엘의 라이브 밴드를 스튜디오에 그대로 세워 그의 전성기 소리를 만들었다. 운동부로 치면 선수들의 장점을 살려 작전을 짜는 감독 같은 사람이다. (다른 데서는) 영화와 방송에서는 돈과 사람을 모아 작품 제작 전체를 꾸리는 제작자를, 경제학에서는 물건을 만드는 생산자를 가리킨다.
두왑
(말뜻) 노래 뒤에서 깔아 주던 두-왑, 슈-비-두 같은 뜻 없는 소리를 그대로 이름으로 삼았다. (팝에서) 1950년대 미국 도시의 흑인·이탈리아계 청년들이 길모퉁이에서 악기 없이 목소리만으로 부르던 화음 노래다. 한 사람이 선율을 부르면 나머지가 낮은 소리, 높은 소리로 화음을 쌓는다. 조엘은 이 소리를 들으며 자랐고, 1983년 「언 이노센트 맨」에서 이 스타일에 경의를 바쳤다.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한 명은 노래를 부르고 나머지는 둠둠, 빠빠 하며 입으로 반주를 넣어 주던 장난을 떠올리면 된다.
빌보드 핫 100
(말뜻) 빌보드(Billboard)는 원래 광고판이라는 뜻으로, 1894년 창간된 미국 음악 잡지의 이름이다. 핫 100은 가장 인기 있는 노래 100곡이라는 뜻이다. (팝에서) 빌보드가 매주 발표하는 미국 싱글 순위표다. 음반 판매, 라디오 방송 횟수, 오늘날에는 스트리밍 횟수까지 합쳐 순위를 매긴다. 이 차트 1위는 미국 대중음악에서 가장 상징적인 성공으로 여겨진다. 반에서 매주 가장 인기 있는 급식 메뉴를 투표로 뽑아 게시판에 붙이는 것과 비슷한데, 그 반이 미국 전체인 셈이다.
오케스트레이션
(말뜻) 오케스트라(관현악단)에 맞게 만든다는 뜻이다. 우리말로는 관현악 편곡이라고도 한다. (팝에서) 이미 있는 선율과 화음을 어떤 악기가 어느 대목을 맡을지 나눠 주는 작업이다. 같은 노래라도 피아노 혼자 칠 때와 금관·현악·드럼이 나눠 맡을 때 전혀 다른 느낌이 난다. 조엘은 뮤지컬 「무빙 아웃」에서 자신의 노래를 무대용 밴드에 맞게 다시 짠 공로로 토니상을 받았다. 음악 시간에 같은 동요를 리코더·실로폰·탬버린 모둠으로 나눠 합주할 때, 누가 어느 부분을 맡을지 정하는 일과 같다.
레지던시
(말뜻) 영어 residency는 거주, 머물러 사는 것을 뜻한다. 한 공연장에 눌러앉아 공연한다는 뜻이다. (팝에서) 가수가 여러 도시를 도는 투어 대신, 한 공연장에서 정해진 기간 동안 정기적으로 공연하는 방식이다. 라스베이거스 공연이 대표적인데, 조엘은 2014년부터 2024년까지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매달 한 번씩 무대에 서는 레지던시를 이어 갔다. 운동부가 원정 경기를 다니지 않고 매주 같은 홈구장에서 경기를 치르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의학에서는 전문의가 되기 위해 병원에서 받는 수련 기간을 레지던시라고 하고, 그 의사를 레지던트라고 부른다.